족보는 조선시대 가문의 일개 사문서의 성격을 띄고 있지만, 실제로 공적인 역할도 상당히 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때문에 족보의 위조가 널리 행해졌고 족보에 기재되면 상인은 양역을 면하고 천인도 양반행세가 가능했다.
양반들은 이를 악이용하여 돈을받고 상천을 족보에 모록하였으며 심지어 세력 없는 일가는 사감으로 족보에서 이름을
삭제하기도 하여 조선후기 족보 문제는 큰사회문제로 되어 가고 있었다.
상황에 따라서 족보에서 이름이 빠짐으로서 군역에 충당되는 경우도 나타났고, 적자와 서자의 명분이 엄하여 첩자는
서자라고 명기하여 서족의 원한을 산 기록도 많이 나타난다,
대개 족보에 이름을 인위적으로 올리기 위해서 돈을 주고 남의 족보에 기재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 투탁(投託)이
라고 불렀다.
투탁이 많고 적서의 명분이 엄하지 못하면 탁보(濁譜)라 하여 족보 기록이 정확하게 한다고 주장하는 청보(淸譜)를
고집하는 사람들의 야유를 받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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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안이씨 1984년 갑자보와 이전의 파보들 일부가 위의 경우와 같은 현상으로 족보로서의 신뢰도를 무너뜨리고
의정공파 종중 종토 분쟁과 같은 문제를 불러오게 되는 원인이 된다.
돈을 받고 투탁이를 부쳐 넣었으니 자업자득이라 하겠지만, 그에 따른 사회적 자존심을 지키게 해준 것도 사실이다.
시련은 겪은 만큼 성숙해진다. 지금 종중이 겪고 있는 시련이 시대에 맞는 종중으로 새로 날 기회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타성 씨의 많은 종중이 종재를 이용 장학재단을 설립하는 등 시대에 맞는 종중으로 탈바꿈하는 것을 어떻게 평가
할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하겠다.
1984년 갑자보등 을 탁보로 공개 선언하고 이 족보를 인용하는 것을 막아 투탁이가 투탁이를 불러들이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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