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가 창세기를 썼다면, 애굽의 노예 출신들이 창세기의 독자입니다. 노예들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1:28)." 노예를 통치자라 부르십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셨으니, 노예가 통치자입니다.
어떻게 노예가 세상을 통치할 수 있겠습니까? 한낱 노예에게 세상을 통치할 자격이 있습니까? 노예에게 자격이 있습니다. 노예의 혈통이 하나님께 닿아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창1:26)" 노예의 근본은 ‘하나님’입니다. 파라오의 근본은 ‘매’요, 로마황제의 근본은 ‘늑대’요, 단군 왕검의 근본은 ‘곰’인데, 히브리 노예들의 근본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에게 근본을 둔 자가 통치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통치자는 통치를 해야 합니다. 통치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주신 것을 거두어가십니다(마25:28). 하나님께서 주신 권한을 행사해야 합니다. 역사는 발전해서, 성경의 원리가 세속 국가의 헌법에도 녹아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입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한민국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 주권자에게 순종하라 하십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롬13:1)” 로마 제정 시대에는 주권자가 황제였기 때문에, 황제에게 순종하는 것이 맞습니다. 공화정의 시대에는 주권자가 시민이기 때문에, 대통령과 국회의장과 대법원장은 순종의 대상이 아닙니다. 국민이 대통령과 국회의장과 대법원장을 통치하는 것입니다. “국민이 대통령입니다”
통치자라면 정의를 말해야 하고, 올바르게 판결해야 합니다. “통치자들아 너희가 정의를 말해야 하거늘 어찌 잠잠하냐 인자들아 너희가 올바르게 판결해야하거늘 어찌 잠잠하냐(시58:1).” 통치자가 정의롭게 통치하지 못하고 바르게 판결하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의는 하나님에게서 비롯됩니다. 통치자는 하나님의 뜻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통치자는 '귀머거리 독사'입니다. "그들은 귀를 막은 귀머거리 독사 같으니 술사의 홀리는 소리도 듣지 않고 능숙한 술객의 요술도 따르지 아니하는 독사로다(시58:5)"
노예로서, 아니 노예답게 통치자가 된 사람이 있습니다. 요셉입니다. 요셉이 바로의 꿈을 해몽합니다. 바로의 꿈은 어렵지 않습니다. 살진 일곱 암소가 나왔다가 파리한 일곱 암소가 나옵니다(창41:3~4). 빤한 꿈입니다.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고 마른 일곱 이삭이 나옵니다(창41:5~6). 같은 꿈으로 빤합니다. 풍년이 있다가 흉년이 있을 꿈입니다. 빤한 꿈을 애굽의 점술가와 현인들이 모를 리 없습니다. 애굽의 현인들이 바보일리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빤한 꿈을 말하지 않습니다. 마냥 길몽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흉몽을 말함으로 책임질 일에 연루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그들은 ‘통치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셉이 담대하게 말을 합니다. 요셉은 히브리출신의 노예였고, 감옥에 갇힌 수인(囚人)일 뿐인데, 애굽의 현인들이 말하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노예인 요셉이야말로 ‘통치자’이기 때문입니다. 바로가 아니라 노예가 통치자입니다. 한낱 날짐승 매를 섬기는 자가 통치자일 수 없습니다(창1:21).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창조된 자가 당연히 통치자입니다(창1:26).
녹내장은 시각이 좁혀지는 병입니다. 영안(靈眼)의 녹내장이 있습니다. 시각을 스스로 좁히는 것입니다. 노예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것은 영안이 녹내장에 걸린 것입니다. 통치자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라 하십니다. 히브리 노예였고 수인이었던 요셉은 통치자의 시각으로 바로의 꿈을 보았습니다. 애굽의 점성술사와 현인들은 파라오의 눈치를 보는 것에 그 시각이 좁혀져있어 심각한 녹내장에 걸린 사람들입니다.
자칭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바로가 아니라, 노예 같은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창6:1~4).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아들이고 딸이어서,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하나님처럼 세상을 통치해야 합니다(시2:7). 왕후장상(王侯將相)의 씨가 따로 있습니다.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우리가 왕후장상의 따로 구별된 씨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왕후장상의 거룩한 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