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 성곡동주민자치위원회 발행 성곡주민자치소식 43호 성곡사랑 (07.8.25)
기사에 실린내용의 원본입니다.
- 본 문 -
처음 동한이의 이야기를 써달라는 의뢰를 받고 지난날들을 돌이켜보는 작업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는 어려웠던 일들을 다시 들추어낸다는 것은 참으로 괴로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동한이와 같은 장애로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을 다른 부모들을 위해 용기를 내어본다
처음 동한이가 다른 아이들과 다르단 것을 알게 된 것은 4살 무렵, 당시 엄마는 고등학교교사였고 동한이는 할머니의 손에 의해서 자라고 있었다. 말이 좀 더디다는 것 외에는 별다른 이상이 없었으나 처음 놀이방에 가던 날 아이들 틈에 전혀 끼지 못하고 미끄럼틀위에서 하루 종일 울었다는 것이다. 이 후 강남의 아동상담소를 찾았고 아이가 애착장애가 보인다고 만하였다. 엄마는 학교를 그만두고 이곳 원종동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1994년). 이곳은 나에게 엄마 같은 존재인 언니가 살고 있었다. 그러고는 또 일년을 그냥 보냈다. 아이와 잘 놀아주면 나을 수 있는 병이려니 하였다.
하지만 상황은 더 심각해져서 더 이상 아이를 감당하기가 어려워 졌다. 전혀 사람에게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옷도 자신이 원하는 것 만 입으려하고, 먹는 것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 외에는 전혀 입을 벌리지 않았다. 길을 나서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용수철처럼 튀어 가는 통에 나는 항상 마라톤복장으로 집을 나서야 했다. 슈퍼에 들어가서는 마구집어오고 사주지 않을 때는 바닥에 드러누워 소리 지르는 것이 다반사였다.
어디 색다른 길을 가게 되면 차에서부터 울고불고 떼쓰기는 시작된다. 결국 남의 집 방문은 꿈도 꿀 수 없고 겨우 집안행사에도 얼굴만 비치고 오기 일쑤 였다.
아이를 데리고 시장이라도 가게 되면 집에 돌아왔을 때 사 가지고온 계란이 다 깨져있었던 기억이 난다. 놀이에도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그저 머릿속에는 숫자만이 가득하였다. 달력이며, 전화번호, 차번호... 모조리 보는 대로 외워버린다. 달력의 요일은 과거, 미래까지 어떻게 그렇게 잘 맞추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이름을 불려도 대답하지 않는 아이, 눈 맞춤도 하지 않는 아이, 말보다도 글씨를 먼저 배운아이. 그런 천방지축의 무법자였다.
5살 때 놀이치료를 시작하였다. 가까운 곳에는 치료기관이 없어 강남까지 전철을 타고 다녀야했다. 뒤이어 미술치료를 시작하였다. 역시 서울 수서동 거의 2시간을 두고 출발을 해야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그 당시 미술치료가 생소할 때 였는데 지금의 미술치료와는 조금 다르게 일본에서 공부하고오신 선생님의 나름대로의 치료방법은 동한이에게 가장 잘 맞아떨어지는 교육 방식이었다. 먼저 동한이 머릿속에 있는 쓸데없는 기억들을 지워내는 작업이 몇 개월 진행되었다. 숫자와 문자에 대한 집착들....
그런 다음 흰 종이에 그림을 그리듯 동한이 머릿속에 하나하나 선생님은 개념들을 심어 넣어 주셨다. 감각통합과 소 근육 발달도 미술을 통해 진행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 강조하신 것은 등산이었다. 등산을 하는 과정에서 아이의 상태와 평상시 모습을 파악할 수 있었고, 아이에게 힘든 과정을 이겨내며 느끼는 성취감과 용기, 그리고 인내를 가르칠 수 있었다. 그렇게 몇 년을 일요일만 되면 산으로 향하였다. 평소 먹지 않던 음식도 산에 가서 등산 후에 배고플 때 꺼내놓았다. 서서히 편식도 좋아지고 있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여서도 여전히 산만한 행동 때문에 선생님들을 많이 힘들게 하였다. 1학년시절 엄마는 교실 밖 복도에서 보초를 서야했다. 그래도 특수학교를 보내지 않고 일반학교의 통합교육을 고집한 이유는 아이의 사회성발달을 위해서였다. 다른 아이들이 무서워서 도망가는 동한이 에게 어떻게 해서든지 그 공포를 깨어 주어야했다. 그건 특수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앞으로 사회에 적응해 살아가야 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었다.
근 4년의 미술치료를 마치고 초등학교 4학년때 음악치료를 접하게 되었다. 음악을 통한 치료방법 역시 아이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고 지금 동한이가 첼로를 전공하겠다고 진로를 정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치료에 쓰이는 여러 가지 악기 중에 크로타라는 첼로와 비슷한 악기가 있었는데 동한이가 많은 관심을 보였고 음감이라든가 청음이 좋다는 얘기를 음악치료 선생님으로부터 처음으로 듣게 되었다. 2년 정도 음악치료를 하였고 바로 첼로를 시작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아직까지도 동한이의 산만함은 남아있었고 호기심이 많아 여기저기 뒤지고 탐색하기 바쁜 일과를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은 초등학교 건물을 종이에 그리더니 학년, 반, 담임선생님 이름들까지 몽땅 나열하고 있었다. 거의 70학급은 더 되지 않았나 싶다.
동네 피아노 학원에서 몇 군데 쫒겨 나며 피아노를 먼저 배우기 시작했고 초등학교6학년 겨울 방학 때 비로소 첼로를 처음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학원에서 우는 날도 있었고 떼를 쓰며 고집을 피우는 날도 있었으나 동한이를 한결같은 사랑으로 지금도 피아노를 지도해주시고 계신 학원 선생님께 감사할 따름이다.
현재 첼로를 지도해주시는 선생님은 작년 6월부터 동한이와 함께하시는데 아이의 단점보다 장점을 더 많이 칭찬하시며 동한이를 꼼짝 못하게 하신다. 결국 지난 6월 전국장애인종합예술제에서 대상을 거머쥘 수 있도록 뒷바라지 해주신 고마운 분이시다.
부천소년소녀 앙상블 오케스트라 단장님도 많은 도움을 주셔서 감사드리고 있다.
지난날 동한이가 어렸을 때를 기억하는 많은 동네 분들은 많이들 감탄하시고 격려해주신다.
사실 어릴 때를 생각하면 지금의 동한이는 몰라보게 좋아졌기 때문이다. 이건 모두 그 동안 동한이를 잘 참고 지켜봐주신 여러 선생님들, 친구들, 그리고 이웃 분들 덕분이다.
동네에서 혼자 돌아다니더라도 걱정되지 않는 것은 이웃의 많은 분들이 열린 마음으로 동한이를 지켜봐주시기 때문이다. 십년 넘게 이 동네에서 살면서 이 곳을 싶게 떠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처음 동한이가 자폐란 것을 알았을때, 그리고 이건 치료가 될 수 있는 병이 아니라 평생을 지니고 살아야한다는 것, 교육은 약간의 도움은 줄 수 있으나 근본적인 치료는 아니라고 사실을 받아드려야 할 때, 많이 절망했으나 결코 포기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라는 생각이 들 때도 다시 희망을 놓치 않고 일어설 수 있었던 건 내가 그 아이의 엄마라는 것 때문이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내 아이를 포기할지라도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아이를 감싸 안아야 할 사람은 바로 엄마인 것이다. 부모인 것이다.
자폐 아이들은 틀림없이 집착을 보이는 부분이 있게 마련이다. 이것을 없애려기 보다는 그걸 잘 이용하면 아주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일본의 최초자폐인 공무원이된 테츠유키는 물을 너무 좋아해서 엄마는 청소 하는걸 가르쳐서 정식으로 청소공무원으로 자립할 수 있게 한 것처럼, 한번 습득한 것은 완벽하게 이루어내는 우리아이들의 특성을 잘 다듬으면 우리아이들도 힘들지만 이 사회에서 잘 적응하고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제 엄마의 키를 훌쩍 넘어서 자라버린(덕산고2) 우리 아이의 그 특별함,
엄마의 많은 부분을 포기하게 만들었던 내 아이의 그 특별함,
그 특별함이 고통이고 절망이던 시절도 있었으나 이젠 내 아이의 그 특별함을 나는 사랑한다.
첼로 하나를 통해서 우리아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으나 그것으로 인해 아이가 행복해하고 같은 어려움을 지닌 많은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며 살아가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
글 박해숙(오동한어머님 작동)
첫댓글 늘 감사하며 사는 마음을 일깨워주시는 미라클님...감사합니다~!
참 뿌듯합니다. 그리고 해숙님과 비창님 부부의 헌신이 존경스럽구요. 이만큼 클동안 그 크고 작은 많은 어려움들을 모두 잘 극복하고 또 앞으로 닥칠 미래에 대해서도 두려움없이 흔들림 없이 맞서 나가는 동한이네 가정의 단란한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들어내지 못하고 힘들게 생활하고 있는 수 많은 우리 발달장애우의 가정들에게 큰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는 엇진 글 참 감사합니다~! 동한이 만세~! 해숙님 부부 만만세~!!
아하, 사실 제가 세분의 삼각관계에 대해 많이 궁금했었는데 -- 훌륭한 부모님이시군요. 앞으로 좋은 일만 가득하시리라 믿습니다. 동한이가 참 잘 생겼어요. ㅎㅎㅎ
우리의 멋진 첼리스트 동한이..글구 어머니 아버지 화이팅!!^^
정말 장하십니다. 진정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보냅니다.
드뎌 동한이 아버님 성함도 알게 되었네요. 정의에 찬 님 덕분에!~...희망과 용기 주신 글 감사하구요!!~~동한이 어머니, 아버지, 우리집 꿈둥이 동한이!!......만만세!!!~~~~~
감사합니다. 꾸벅~~~ 돋움님들의 격려의 말씀 하나하나가 저희에겐 소중하고 큰힘이 된답니다. 더욱 노력하며 열심히 살겠습니다.
캄솨합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