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 졸음이여 제발 내 돔 살려둬....(무박태극왕복종주기)
○ 산행일시 : 2005. 10. 23. 12:00 ? 10. 26. 18:50(76시간 50분) ○ 산 행 지 : 지리산 태극능선 왕복종주기 ○ 산행구간 : 어천→천왕봉→성삼재→덕두봉→성삼재→천왕봉→어천 = 약 148km ○ 날 씨 : 2005. 10. 23 ∼10. 26일 까지 3일 동안 맑음(쾌청하고 기온도 따뜻) ○ 참 가 자 : 늘빈자리 단독산행
<서언>
▶ 산꾼들에게 가까이 다가서는 무박태극종주. 삶의 질이 좋아지고 건강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산을 찾는 인구가 점점 많아지고 5일 근무제가 도입되면서 주말이면 산으로 바다로 여가를 즐기기 위한 나들이 행락객들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추세와 어우러져 지리산, 설악산 등.... 산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몇몇 산꾼들의 전용물처럼 여겨졌던 지리산 태극종주에 대한 정보들이 okmountain.com의 J3(지리3대종주)카페를 통해 구체적인 정보가 알려지고 공유되면서 많은 이들이 도전의
밑그림을 그리고 태극종주라는 장거리 산행의 험난하고도 거대한 산맥을 일부 넘어서고
있는 실정이다.
▶ 경쟁적인 도전은 우리가 경계해야 할 문제이다. j3(지리3대종주)카페 회원들은 무박편도종주에 만족하지 아니하고 무박태극왕복종주의 밑그림을 금년 봄부터 그리기 시작하여 몇 번의 실패를 거듭하다가
마침내 지난 10월 초 그리운산님께서 최초로 무박태극왕복종주를 성공함으로써 성공 가능성에 대한 불씨를 지피기 시작하여 최근에 j3카페 회원들 간에 무박태극왕복종주 붐이 조성되어 실황중계 식으로 도전과정을 공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누가 하닌까 나도 한다는 경쟁적인 도전은 참으로 경계를 해야 할 문제이며 지양해야 할 방향임에 틀림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그러한 의식이 전혀 없었다고 나 스스로가 떳떳하게 말할 자신이 없음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그래도 도전은 아름답고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래도 늘 세상사에는 도전이란 명목으로 저질러지며 발전하는 것들이 다반사라 그 도전이 약간의 공명심을 내포한 것일지라도 나름대로의 의미는 있다할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제3차 무박태극왕복종주에 도전하기로 마음을 정하고 지난 2번에 걸친 실패를 분석한 결과 먹거리와 날씨가 주요 원인이었음을 파악하고 대비책을 강구하며 10월 23일을 택일하여 출전의 준비를 한다.
▶ 무박태극왕복종주를 성공하기 위한 몇 가지 조건들. 무박태극왕복종주를 성공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산행에 대한 경험이 상당히 많음을 전제로 다음의 몇 가지 기본사항이 필요하다고 생각이 된다.
그 첫째는 100km 이상거리를 갈 수 있는 체력과 야간산행에 대한 능력을 길러야 하며, 둘째는 완주를 하겠다는 필살의 굳은 의지와 열정이 있어야 하며, 셋째는 상기의 조건을 완비했다 하더라도 자연의 도움을 얻어야 한다.
상기 조건 중 첫째와 둘째는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므로 개인의 노력여하에 달려있는 문제이다. 그러나 세 번째 조건은 본인의 의지로는 극복할 수 없는 대자연의 조건이기 때문에 날씨의 도움의 받기 위해서 기상예보를 눈여겨 보아야 한다.
따라서 무박태극왕복종주의 성공은 체력과 열정을 겸비하고 자연의 지원 아래 즉 기상조건의 도움을 얻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성공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산행후기>
▶ 복로1(어천?천왕봉, 28km, 10/23. 12:00 ? 10/23. 23:45. 11시간 45분 소요) 아무리 산을 좋아한다 하더라도 생활의 근간을 저버리고서는 산에 갈 수 없는 것이 우리 아무추어 산행인들의 현실적인 가장 큰 애로사항일 것이다.
더구나 무박태극왕복종주는 4일이라는 긴 시간적 여유가 필요한 산행임으로 이 시간을 확보하는데도 여간 힘든일이 아니다. 그러나 뜨거운 열정이 상존하고 있었기에 4일이라는 시간을 확보하고 출전의 날이 밝았다.
그 간 두 번에 걸친 도전이 이런저런 이유로 실패를 거듭했으니 이번이 3번째 도전인 셈이다.
10월 초 그리운산님께서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왕복종주을 무사히 성공하셨으니 이제는 왕복이 불가능하다고 말할 여지가 사라졌고 사석에서 지나치는 농담조로 왕복종주를 처음 이바구했던 자로써 부담이 되는 것도 부인하지 못 할 현실이었다.
그러니 이번에는 나도 기필코 성공을 해서 왕복을 처음으로 주창했던 자로써의 자부심을 유지하고 j3카페 최정예 회원으로써의 명예도 지켜야 한다는 공명심 앞에 진정한 산행의 의미는 가볍게 여겨지고 멋지게 성취해 보고자 하는 과욕만이 마음에 가득했다.............쩝
*야근의 졸음은 그 질을 높여 휴게소에서 해결하고..... 무박태극왕복종주를 하기 위해서 필요한 4일이라는 긴 시간을 확보를 하고 10/23일 06:10분 경 천안을 떠난다. 지난 밤은 야근으로 두어 시간 눈을 붙인 것이 고작이라 겨우 대전을 지났는데 졸음이 몸속으로 스며들며 한 몸 되기를 시작하며 몸살을 앓는다.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인삼드림랜드휴게소에 들러 아침을 먹고 나른해지는 식곤증으로 졸음의 질(?)을 높인 다음 덕유산휴게소에 차를 세우고 약 1시간의 깜빡 잠으로 졸음을 미봉했지만 이 가당치 않는 졸음 해결법은 결국 산행 중 졸음속에서 홍야홍야하게 만들고 만다.
*12시 정각에 어천 들머리 진입.........웅석봉은 잘 있고
▲ 경호강을 따라가며 웅석봉(중앙 봉우리)을 견준다
경호강 좌측으로 난 도로를 따라 어천에 접근하며 웅석봉을 바라본다.
태극종주 들머리 주봉으로써의 듬직한 기상을 드러내 보이는 늠름한 자태는 산꾼으로 하여금 "아쭈구리 그넘의 등짝 오를만 하겠는데...."라는 독백을 쏟아 내기에 충분한 모습이다.
▲ 어천에 더 가까이 다가서며 ....
"그래 오늘 늘빈자리가 웅돌이 터전을 따블로 탐색하고자 왔노라, 만약 안개나 비구름으로 앞길을 막는다면 큰 낭패를 볼 것이로되 그렇지 않는다면 미소로 화답할 것이로다 .........쩝"
그 웅장하고 고고한 자태에 필살어린 눈빛을 발하며 기선을 제압해 본다.
11:50분 어천 '쉴만한물가집'에 주차하고 12시 정각에 나와 2~3분 후 내린천 들머리에 진입이다.
고개를 뒤로 젖히고서야 바라볼 수 있는 웅석봉의 정상은 아무리 봐도 만만찮다............Uec.
"무엇을 믿고 저리도 높이 솟아 있노? 동부능선의 장자면 다냐?...........쩝 내 오늘은 숨 한 번 거칠게 쉬는 일이 없이 웅석봉 상투를 넘보리라"
마음을 다지며 스틱 끈을 잡아챈다.
*웅석봉에 투정어린 시비를 걸고..... 내린천 물소리가 힘차다. 스쳐가는 산꾼에 불과한 날 너그러이 환대하며 왕복성공를 기원해 주는 응원소리 같기도 하고,
부질없는 공명심에 쌓여 있는 어리석은 마음가짐을 질책하는 경고의 목소리 같기도 하다.
아무렴은 어떠랴 금수강산 산천초목 천지의 도움이 있었다한들 종주가 끝난 뒤에는 어차피 나 스스로의 힘이 더 컸다고 말할 것이 뻔한데 뭐.........
웅석봉 오름이 가파르다.
기온이 떨어지는 야간 산행을 염두에 두고 동계 상의와 바지를 입고 왔더니 여름이 다시 돌아왔는가, 몸이 흥건히 젖도록 그 흔한 바람도 없이 시작부터 구박을 받는다.
▲ 능선안부에 있는 119조난 게시판
양곱창을 삶아 먹다 버린 등로인가 엄청 구불거리는 지그재그식 급등로를 넘어서니 능선 헬기장이 잠시 쉬어가라 웃음 짓고, 119조난 게시판이 눈길을 끌며 반긴다.
이제는 능선이라 시원한 미풍녀가 종종 동행을 해주며 열기로 가득 찬 몸속을 엿보노니 때로는 덥기도 하고 때로는 시원하기도 하는 등 체온 감각이 왔다리 갔다리다
▲ 웅돌이의 영역표시
웅돌이의 영역임을 알려주는 정상석 부근에는 이미 많은 산님들이 진을 치고 앉아있다.
청명한 하늘에 유유히 떠도는 옅은 흰구름이 천고마비의 계절을 노래하고 있는 가운데
이미 절정의 시기를 지나 색 바랜 단풍잎 사이로 무딘 여름기운이 위험하게 머물러 있다.
시원하고 상큼한 가을 향기를 흠뻑 머금고 송글송글 불어오는 바람이 노니는 곳, 청포도 하늘이 열리고 단청을 닮은 단풍잎들이 반사되어 눈부시게 빛나는 곳
신선이 머물다 가는 곳이 따로 없도다. 웅돌이가 지키는 이곳이 바로 신선이 사는 곳이로구나. 웅석봉에서 그냥 이대로 주저앉고 싶은 갈등을 달래며 정상석의 곰돌이에게 한 마디 쏜다.
"야 돌이돌이 웅돌이 눈 깔어, 빨랑 안깔어? 너이 샤카 지난번 새벽에 웅순이 하고 거시기 재미 보다가 들키닌끼니 안개로 눈 멀게 하고서리 토꼈잖어, 빨랑 눈 깔어 안깔어?"
그랬었다. 매번 올 때마다 안개를 뿌리고 일출을 삼켜버리는 등 텃세를 무쟈게 했었고 혹시나 했던 웅순이 마져 끝까지 보여주지 않았었다.
청포도 물이 뚝뚝 떨어지려는 하늘빛을 머리에 이고 웅석봉에서 바라보는 전망감은 가히 일품이로다, 팔방을 조망하며 시원한 산들녀를 벗 삼아 나 신선되고 싶어 랑랑랑.........
점심시간이 되었기에 배낭을 열고 맛난 김밥을 신선된 기분으로 씹노니 밥맛이 절로 나고 청명한 날씨에 천왕봉이 지척으로 보이니 금새 오를 것 같은 느낌이로다.
▲ 웅석봉의 북서사면을 뒤돌아 보며 한 컷
고우나 미우나 제법 정이 든 웅석봉과 아쉬운 마음으로 재회을 다짐하고 출발이다. 굽이쳐 연결되는 능선을 치고 내려오며 웅석봉을 뒤돌아본다.
작은 골짜기마다 단풍이 들어선 웅석의 북서사면은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도토리봉아 안뇽, 내 다시 돌아 올꼬마..... 주로 능선이나 능선의 왼쪽사면으로 이어지는 동부능선의 허리들은 그야말로 첩첩 봉우리로 이리구불 저리구불 형상이다. 왕복이므로 돌아올 때의 체력을 가늠할 길이 없어 가능하면 초반
오버페이스를 하지 않으려고 시간에 꽤 신경을 쓰면서 진행을 한다.
등로에는 이미 생을 다하고 뒹구는 낙엽들이 깡마른 표정으로 다음 세대를 위해 누워 있고 나무들은 지나는 바람결에 한 잎 두 잎 떨구며 다가올 겨울을 대비하여 몸을 줄이고 있구나
▲ 보기에는 착하게 보이나 진을 빼게 하는 도토리봉
왕재라는 갈림길을 지나고 10여분 진행을 하노니 잘 생긴 도토리봉이 얼굴을 드민다.
청명한 하늘아래 드러난 도토봉의 자태는 수려하기보다는 동부능선 제1의 길목인 밤머리재를 지키는 수문장답게 듬직한 자태는 보는 이로 하여금 믿음을 던지게 한다.
그러나 동부능선의 가을은 화려하기 보다는 쓸쓸함이 묻어나는 느낌이로다. 단풍의 화려함이 기대보다는 수려하지 못하고 갈색톤으로 장식했기 때문이다.
지척에 다가온 밤머리재를 향해 헬기장을 지나고 버거운 통나무 계단을 탄다.
▲ 밤머리재
내리치는 계단길 돌아올 때는 정말 몸을 어지럽도록 힘들게 하리라는 예감 속에 밤머리재 도로에 내려선다. 언제부턴가 가건물이 들어서서 지나가는 이들에게 쉼터와 목마름을 해결해주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다시 돌아온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래도 예보대로 날씨만 도와준다면 돌아올 수 있다는 희망으로 물만 보충하고 가파른 도토리봉의 정상을 향한다.
시절은 가을이지만 태양의 열기는 아직도 여름의 여운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몸의 마지막 남은 물기마저 짜내려는 듯 던지는 더위를 힘겹게 감수하며 길마다 뿌려진 낙엽의 잔재들을 넘고 넘어 확 트인 전망 창을 소유한 도토리봉의 정상 헬기장에 올라선다.
▲ 도토리봉 정상에서 바라본 가야할 동부능선
아! 시원한 바람이 가슴속을 파고들며 파라다이스 같은 동영상으로 동부능선의 전망을 보여준다. 잡힐 듯이 가까이 보이는 천왕봉과 중봉 그리고 그 연장선의 초암능선...........
앞쪽으로는 동왕등재와 우로 굽어지며 N자 모양의 오름길로 알바하기 쉬운 갈림길이 는 암봉,
그리고 콧대 높은 능선으로 습지를 살짝 숨기고 있는 서왕등재, ... 모두들 보는 이로 하여금 다리의 힘이 저리도록 당당한 기세로 서 있다.
그러나 이미 여러 번 안면이 있는 저들이기에 나도 당당한 마음으로 미소를 보낸다.
“친구들이여 안뇽 늘빈자리가 또 왔데이, 반갑제?” “며칠만이라도 도와줘....맑은 날씨랑, 따스한 기온이랑.....알것제?”.............그저 살살 긴다.
도토리봉 앞에 있는 높은 봉우리가 동왕등재인데 양 봉우리 사이에는 안부가 존재하고 내림 길로 도토리봉을 벗어나고 오름길로 동왕재 능선에 들어서는 형국이다.
*동왕등재야 잘 있었노? 보고 싶었데이.......... 도토리봉 내림 길이 가파르나 곧 완만한 내리막을 준다면 마지막 내림길을 급경사로 장식한다. 그리고는 완만한 오르막으로 동왕등재의 영역으로 들어선다.
▲ 동왕등재 정상....삼각점이 깨어져 있다.
동왕등재는 마지막 오름길에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전망바위 같은 곳을 내어주며 힘든 다리품을 누그러뜨리게 하는 따뜻한 배려를 주고서 정상을 열어준다.
그래서 그러는 것일까, 동왕등재 오름길이 상당히 급경사임에도 불구하고 힘들다는 느낌이 전혀 없다. 정상주위에는 바위군들이 반경 3~5미터의 둘레를 분지형으로 형성하고 오르는 이로 하여금 잠시 쉬어가라는 눈짓을 보이는 듯하나 아쉽게도 삼각점은 깨어져 있다.
▲ 동왕등재에서 바라본 천왕봉이 지척에 있는 것 같다.
동왕등재 정상에서 제일 큰 바위에 올라 천왕봉을 바라본다.
그림상 양 봉우리 간에는 그다지 멀지 않아 보이지만 동부능선은 동왕등재에서 다시 북서로 꺾여서 서왕등재에 이르고 다시 서쪽으로 꺾이고 또 다시 쑥밭재에서 남쪽으로 꺾여서 천왕봉에 이르게 되니 보기보다는 많은 다리품이 남아 있는 것이다.
▲ 동왕등재에서 바라본 서왕등재 방면 능선
그림은 동왕등재에서 북서쪽으로 펼쳐진 다리품을 팔아야 할 능선들이다. 아마도 오른쪽 제일 끝봉이 서왕등재일 것으로 생각이 되는 바 유순해 보이는 능선들이지만 실제는 육즙이 삐질삐질 거리도록 오르내림이 심한 동부능선의 주봉들인 것이다.
16:29분 동왕등재에 도착하여 절경에 한 눈을 파는 사이 한 분의 산님이 가야할 방향
에서 올라오신다. 간단한 대화 속에 ok사단 추백팀의 일원임을 알게 되지만 천왕봉 자락에 햇님이 걸리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가야겠기에 가벼운 인사만 하고 갈 길을 재촉한다.
얼마 진행 후 추백팀의 후미를 만나고 나와 동일한 장갑을 끼고 있는 여성 산우와는 안전산행을 기원하는 기분 좋은 하이파이브 까지 하며 인사를 나눈다.
▲ 해 기운이 떨어져 가는 동부능선에 그늘이 점점 드리우고....
서쪽으로 기운 해는 아직 많이 남아 있는 듯하지만 골짜기마다 그늘이 깊어지고 해가 잠시라도 구름에 가리우면 늦은 오후의 불안한 서늘함이 산기슭 곳곳에 번지고 있다.
이 따스하고 여름 같았던 날씨가 과연 밤에는 얼마나 변덕을 부리며 추워질 것인가? 배낭의 무게를 생각하며 준비한 동계복장만으로 견딜 수 있을 것인가?
예측할 수 없는 것이 바로 가을철 지리산의 기온이기에 마음속에서 걱정이 꾸물거린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이미 내 힘의 범주를 벗어난 일이므로 지리산 신령께서 베풀어 주는 상황대로 대처해 가기로 하고 편한 길은 총총 걸음으로 빠르게 치고 나간다.
*첫 출현한 산죽에 습지와 새재의 안부를 묻고.......... 17:00경 첫 산죽지대를 지난다. 왠지 반가운 산죽님들.........우중산행이면 물기를 머금어 전신샤워를 하게하고 겨울산행이면 눈을 뒤집어씌우는 장난꾸러기 같은 벗이지만,
더운 여름날에는 시각적 시원한 느낌으로 더위를 덜어주고, 청각적으로는 달콤한 속삭임의 느낌을 주는 정겨운 이웃 아줌마 같은 느낌이 아니던가.
이제부터 산죽들이 심심찮게 산길마다 동행을 할 것이고 특히 독바위 근처에 이르러서는 그 절정을 이룰 것이다.
시간은 흐름은 더 머물러 있어 주기를 바라는 이의 마음도 아랑곳없이 해를 서산으로 넘어 뜨린다. 그리고는 세상을 잠재우는 어둠을 던지며 휴식의 공간을 남긴다.
▲ 옅은 어둠이 내린 왕등재습지 다리
어느덧 옅은 어둠이 찾아든 왕등재습지에서 걸음을 멈춘다. 이곳에 이르면 어느 곳보다도 편안한 마음이 깃들고 당연히 쉬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가슴을 지배하는 곳이다.
그만큼 왕등재습지는 최고지의 습지로써 자연생태학적 가치가 있는 곳이고 그 가치만큼이나 우리 산꾼들에게도 평온한 마음과 쉼의 그늘을 제공해 주고 있다할 것이다.
잡목이 엉켜진 습지지대를 벗어나며 수철리 갈림길에서 좌회전이다. 작은 둔덕 같은 오르막 이후 급경사 내리막이 어두워지는 산길을 더디게 한다.
동부능선의 야간길은 산꾼들에게 늘 알바의 부담을 안겨주는 험난한 곳이다.

▲ 갈대들이 점령하고 있는 외고개
갈대가 무성한 외고개에 이르니 키 넘은 갈대들이 고개안부를 장악하고 어둠을 머금고 있지만 랜턴없이 계속 진행한다. 초행자 같으면 어둠속에서 길 찾기가 만만찮을 것이다.
따스했던 햇살의 온기는 사라진지 오래고 점점 차가워지는 밤공기가 그 기세를 더하는 가운데 새재고개 안부직전 부드러운 풀밭에 이르러 바람을 피하며 남은 김밥으로 저녁을 해결하고 싸늘해진 기온에 자켓을 입고 출발이다.
이제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어둠에 감추어지고 산기슭의 먼 마을의 불빛만이 초롱거릴 뿐 헤드랜턴 불빛 속으로 좁혀진 세상을 바라보며 산죽들이 도열해 있는 새재 오름길을 탄다.
밝은 낮같으면 새재의 언덕은 지나는 이의 마음을 헤아려 주는 듯한 편안한 인상과 매일 넘어 다니던 이웃동네 고갯길 같은 느낌을 주는 아름다운 곳이다.
절벽 같은 곳도 지나고 완만한 지역도 지나는 등 몇 번을 오르고 내렸을까?
▲ 새봉 정상바위 로프릿지
바위 틈새로 밧줄이 나오면서 새봉이 머리 위에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제법 널따란 새봉 정상바위에 올라서니 바람이 센 건 아니지만 차갑게 불어온다.
이 바람이 천왕봉에서는 얼마나 더 차갑게 다가올 것인가?
윗새재 마을로 보이는 곳의 불빛을 바라보며 장년의 고독을 음미한 차에. 가까이 다가올 듯 파고들던 쓸쓸함이 엄습해 오는가 싶더니 차가운 기운에 못내 멀어져 간다.
왕복은 꼭 이번만 하리라는 각오가 냉기 서린 밤공기를 비집고 가슴속으로 스며든다.
늘 그랬듯이 못 믿을 것이 산에 대한 산꾼의 마음이 아니던가, 이번만이라는 결정을 수 없이 했으면서도 언제 그런 결정이 제대로 지켜졌던 적이 있었던가?
새봉 이후부터 산죽의 행열이 두드러지면서 야간산행의 묘미를 더해준다.
새봉에서 15분 정도를 진행하면 제일 긴 밧줄이 매어져 있는 릿지길이 나온다. 그리고는 잠시 후 동부능선에서 제일 큰 바위가 머물고 있는 독바위 고을(?)이다.
▲ 독바위 부근의 바위
여기서부터 동부능선 최대의 산죽지대가 열리면서 산죽과 함께하는 산행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는 구간이 다가온 것이다.
계속되는 산죽의 도열 속에 추성리 갈림길이 나온다. 나무가 있고 돌이 있는 왼쪽길이 천왕봉으로 가는 길이요 오른쪽 내리막길이 추성리로 가는 길이다.
여기가 바로 동부능선 길눈이 어두운 산님들이 알바로 헤매는 곳 중의 하나이기도하다.
산죽으로 가려진 등로이기에 아직 바람의 차가움은 전해오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땀이 나는 것도 아니어서 산행을 하기에 적당한 상태인 듯 하다.
*청이당샘물로 재충전하고 영봉의 정상을 향해서..........
▲ 청이당 샘터 갈림길.....있는 곳
밤머리재에서 보충했던 1.2리터의 물로 여기까지 버티고 왔다. 청이당샘터 갈림길 나무에는 그림처럼 청이당샘터 갈림길이라고 코팅된 안내문이 매달려 있다.
총각샘까지 갈 요량으로 다시 1.2리터의 물을 보충하고 간식까지 곁들이며 약 15분 정도를 소비하고 청이당 갈림길을 나선다. 이제부터는 동부능선 최대의 오르막이고 고비인 하봉 능선으로의 진입을 시도할 차례다.
거의 돌과 너덜길로 이루어진 이 구간의 등로는 불편하기 짝이 없다. 오직 랜턴이 보여주는 좁은 세상만을 조아리며 발길을 재촉한다.
오름길의 힘든 것 보다는 새벽녘 천왕봉 이후에서 춥지않았으면 하는 소망으로 가득하다.
21:36분 경 국골사거리를 오르니 능선바람이 허리를 휘감고 돌며 반기는 듯 하나
그 감각이 그리 차갑지 않아 안도의 한숨을 쉬며 쉼 없이 왼쪽 능선길로 오른다.
고도가 높아짐에 따라 없었던 안개구름이 가끔 앞을 지나치다 시비를 걸며 초롱초롱한 별들을 숨기는 가운데 어느때부턴가 반달이 나타나 뒤를 따라오고 있다.
▲ 나무가지에 사이에 걸린 반달
하봉은 올 때마다 어느 봉이 하봉의 머리인지 구별이 쉽지 않았는데 밤이니 더욱 구별이 쉽지 않다. 아마도 확실한 하봉 정상을 모르게 있기 때문이리라.
하봉 헬기장을 지나면서 하봉 정상을 지났음을 인지하고 30여분 후에 싸늘한 밤기운이 맴도는 중봉을 넘어선다. 조금만 더 가면 우리의 영봉 천왕봉이 지존의 자리에 서서 잠든 산야를 지키고 있을 것이로다.
▲ 천왕봉의 정상석
천왕봉이다. 바람도 종일 불다가 지쳤 잠시 잠들어 있는 것인가 유순하기 그지없고 안개구름마저 고개를 떨구고 말그대로 쾌청이지만 밤 공기만은 손이 시러울 정도로 차갑다.
낼 새벽 해돋이를 맞이하는 산님들은 제대로 된 사진 한 장 건질 것 같은 예감이로다.
뒤따라온 반달이 어둠을 머뭇거리게 만들어 놓았지만 정상석을 바르게 잡아내기가 쉽지가 않다.
번져오는 냉기에 더 머뭇거리다간 몸 마저 떨릴 것 같은 예감에 총총 내려선다.
▶ 복로2(천왕봉?성삼재, 28km, 10/23. 23:45 ? 10/24. 13:15. 13시간 30분 소요)
*덕두봉 찍고 돌아오는 동료 산님들, 아! 부러버라 울고싶도록 부러버라.......... 천왕봉을 내려선다. 이제 복로의 1/3을 왔으니 아직도 시작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조금은 언 듯한 다리를 질척거리며 돌 너덜길을 내려선다.
통천문을 노크하고 대머리 제석봉을 넘어서 장터목산장에 이르나 야외등만이 잠든 산장을 지키고 있을뿐 모두들 잠들어 있다. 그래서인가 장터목산장을 지나면서부터 졸음이 서서히 밀려오기 시작한다.
아! 다리에 점점 힘이 빠져가고, 서 있다는 것이 버겁도록 졸음이 밀려온다. 야근하고 출발을 했기에 졸음이 빨리오리라고 예상을 했었지만 너무 빨리 오는 것 같다.
그래도 그냥 그대로 걷는다. 발이 나가는지 몸이 나가는지 가늠하기 어렵도록 밀려온다.
어찌어찌하여 걷다보니 연하봉을 지나고 촛대봉을 넘어서서 세석산장을 바라보며 터벅터벅 돌길을 내딛는다. 앞쪽에 2개의 그림자가 나타나더니 어느새 다가와 내 앞에 멈추어 선다.
우잉, 이게 누구신가? 나보다 이틀 앞서서 무박태극왕복길에 오른 신현철님과 원타이정님이 아니신가!’
크아! 짐승같은 인간들 살아서 돌아오고 계시누만, 동부능선만 지나면 왕복성공이라니 아이고 부러버라.......울고 싶도록 부러버라, 미치도록 부러버라...........
‘낸 살아온다는 보장도 없는 덕두봉까지 언제 갔다오남‘...............꼴랑지를 팍 내리뿐다.
촛대봉 내림길에서 5분 정도의 대화를 나눈 다음 서로의 안전산행을 기원하며 작별이다.
아! 존경하옵는 울 J3회원님들 그 열정과 끈기에 내 스스로도 탄복하고 기가 찹니다. 태극을 편도도 아닌 왕복을 그것도 무박으로 그냥 밀어 부치고들 있으니........이거이 인간들인가?
나 자신도 참 그렇지만 저 분들이 증말 인간의 심성을 지닌 인간인가 말이다..........
두 분과의 조우로 졸음이 잠시 멀어진 틈을 타 세석산장을 지난다.
그리고 정상을 벗어난 영신봉 안내목 자리도 넘는다. 앉으면 졸까봐 졸음이 오든지 말든지 몸이 따라 오던지 말던지 그냥 터벅터벅 걸음으로 밀어 부친다.
*칠선봉의 은은한 자장가에 취해 휘청거리고.......... 영신봉 나무계단을 쓰러질 듯 힘없이 내려오며 찬바람에 잠시 졸음이 달아나는 듯 하였지만, 새벽으로 갈수록 날씨는 더 차가워지고 있건만 졸음은 아직 그대로 몸속에 남아 아우성이다.
▲ 칠선봉 안내목
칠선봉에 이른다. 주변에 우뚝우뚝 솟은 형제봉들이 반달의 은은한 달빛아래 가을밤 자장가를 부르고 있다. 나도 잠시 안내목에 등을 기댄 채 눈을 감고 자장가를 듣는다.
휘청거리는 균형감각에 깜짝 놀래 눈을 뜨니 코앞에 안내목이 몸을 지탱해 준다.
‘으이크, 칠선봉의 달콤한 유혹에 정신을 놓을 뻔 했네 그려..............쩝`
그러나 졸음은 아직도 몸속에 가득하다. 아무리 가도가도 벽소령이네 마을은 보이지 않고 너덜길 만이 고문스럽게 다리품을 팔게한다.
졸음에 길들여진 몸은 휘청거리면서 진행속도만 느릴 뿐 넘어지지 않고 잘도 간다. 이 마귀같은 졸음속에서도 넘어지지 않고 잘도 간다. 태클 귀신이 보면은 귀가 찰 노릇일 것이다.
06:14분 드뎌 벽소령이다. 그러나 아직 어둠이 남아 있어 산장은 조용하다. 그렇다고 벽소령산장에 볼일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그냥 통과한다.
몇 군데 지나면서 안내목의 안내 내용이 달라졌음을 인지한다. 예전에는 안내목 기둥에 현재 위치표시가 되어 있었는데 그 표시가 없어진 안내목이 대부분이다.
▲ 연하천산장
날은 밝아지만 옅은 안개기운이 곳곳에 남아 있어 해가 보이질 않는다. 형제봉을 넘어서고 수량이 넘쳐나는 연하천산장에 들어선다.
아침을 준비하는 산님들이 산장 앞마당에 북적대고 있어 비로소 사람이 사는 동네에 들어온 기분이다. 따스한 국물이 생각나 산장나으리에게 컵라면을 부탁해서 아침을 해결한다.
*연하천 산장의 컵라면 국물은 졸음을 쫒는 음양수여라....... 뜨끈한 국물이 몸속에 자리를 펴노니 온기가 퍼지며 좀 살 것 같은 기운이 번지고 끝까지 반항하던 졸음이 어느새 콧뺑이도 보이지 않게 사라져 버리고 없어졌다.
라면국물에 다시 힘이 살아나고 졸음을 멀찌감치 쫒은 다음 명선봉을 가볍게 등정을 하고 토끼봉도 한 걸음에 가볍게 넘는다. 아침 안개속으로 드러나는 태양을 맞이하니 힘은 더욱 넘쳐나는 듯 몸놀림을 가볍게 만든다.
▲ 화개재 계단
무르익은 가을 기운이 넘쳐나고 잠시 머물고 싶은 평화로움이 넘실대는 화개재 고갯길을 지나 다들 힘들어 하는 550여 개의 계단길에 다가선다.
지난 번에 세어보니 분명 554계단이었는데 어떤 산님들은 551개라고 주장을 하고 있으니 이번에는 정확히 세어 보리라 마음 먹고 계단을 세며 오른다.
100개를 셀 때마다 10초 씩 쉬고 오른다. 근데 어찌된일인 겨? 이번에는 마음먹고 세어 보았더니 551개 아닌감?
지난 번에 2회에 걸쳐 세었을 때는 분명 2번 모두 554개 였는데...........아이고 나도 헤갈리네.
화개재 계단길을 넘고 나니 암봉지대를 거쳐 삼도봉이 인사를 건넨다.
▲ 삼도봉
▲ 삼도봉 아래 먹통골의 안개와 단풍
삼도봉에 잠시 서서 먹통골의 안개와 단풍을 감상하며 짬을 내어 숨을 가다듬는다.
반야봉 갈림길도 잘 있고 노루목 가는 너덜길과 노루목 갈림길도 여전히 잘 있다.
청이당샘터에서 보충한 1.2리터의 물로 임걸령샘터까지 왔으니 날씨가 추워서 물이 먹히지 않았음을 알 수가 있다.
▲ 수량이 풍부하고 물 맛이 좋은 임걸령샘터
임거령샘터에서 다시 물을 보충하고 길을 떠난다. 가능하면은 쉼 없이 천천히 걸어가면서 산행의 피로를 줄이기로 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전진한다.
낮의 신체리듬이 돌아오니 몸이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오고 지친 기색이 전혀 없다. 컨디션이 정상으로 돌아오니 발걸음이 너무 가벼워지고 왕복이 아니라 왕왕복복도 자신이 생길 정도로 몸이 가볍다. 성삼재에서 매식으로 점심을 하기로 하고 피아골 삼거리와 돼지령을 쉼 없이 진행하여 노고단을 넘는다.
▲ 노고단의 단풍....코재부근에서 바라본.......
노고단의 단풍 역시 화려한 모습은 아니지만 가을이 깊어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성삼재 가는 임도길엔 노고단의 단풍과 코재의 단풍을 구경하려는 나들이 객들이 줄을 잇듯이 많이 올라오고 있다.
13:15분 성삼재에 이른다. 간단한 전화통화로 진행정보를 전하고 매식을 한다.
파전에 만두를 주문해서 허기진 배를 해결하고 다시 물을 보충 후 잠시 휴식을 취하고 출발한다.
▶ 복로3(성삼배 ? 덕두봉, 23.4km, 10/24. 13:15/14:10 ? 10/24. 22:10. 10시간 소요)
* 반환점을 향해서...... 성삼재 앞마당엔 단풍구경 인파를 싣고 온 대형버스들로 가득하다.
▲ 성삼재 휴게소 주차장
성삼재를 빠져나오며 드디어 서북능선으로 접어든다. 주로 잡목과 갈참나무류들이 등로를 형성하고 있는 서북능선은 그래도 흙길이 많은 지역으로 주능선보다는 훨씬 편안한 등로이나 잡목의 가지들이 앞길을 방해하는 껄꺼러운 면도 있다.
작은고리봉에 망설임이 없이 오른다.
▲ 작은 고리봉 정상
뒤돌아 보는 종석대와 성삼재휴게소 하늘엔 옆은 검은 먹구름이 덮여 있고 반대편 가야할 만복대의 듬직한 자태는 큰 언니 같은 모습으로 산꾼들을 포용하고 있는 듯하다.
어느새 돌탑이 자리하고 있는 만복대 정상에 이른다. 가야할 바래봉이 아련하게 보일 듯 말 듯이 하게 보이니 그냥 가슴이 답답해져온다.
‘으이구 저기까지 언제갔다오냐`.......다리에 힘이 쭉 빠져나감을 느낀다.
그래도 가야한다. 무엇 때문에 가야하는 지는 잘 모른다.
단지 나는 가야한다는 생각이 내 가슴과 머리를 지배하고 있을 뿐이다. 그것이 열정이라면 맞는 말일까?.........................그것도 자신이 없다.
▲ 정령치 휴게소와 뒤쪽에 큰고리봉이 보인다.
정령치다. 매식이 가능한 곳에서는 무조건 먹고 간다는 원칙이었기에 국물이 있는 국수를 한 그룻 후루룩하고 떠난다.
큰고리봉을 오르면서 해가 서산으로 숨기 시작한다. 저해가 넘어가면 내일 아침에 다시 이곳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태양을 만나게 될 것 같은 시간적 계산이 나온다.
* 세걸산의 귀신은 온데간데 없고...... 다시 어둠이 찾아들고 인적 없는 길목으로 던져진다. 앞만보고 가야하는 헤드랜턴의 틀 속에 갇힌 채 밝음이 올 때까지 어둠의 자식이 되어 찾는 이 없는 답답한 길로 밤 새워 가야만 한다.
귀신이 출몰하여 갈길을 혼몽케 한다는 세걸산의 안내목을 맞이한다.
▲ 세걸산 정상 안내목
정상에는 갈대들이 자리를 잡고 있고 공터같은 곳이 있지만은 귀신이 놀만한 곳은 없어 보이나 간혹 세걸산 부근에서 진행을 어지럽히는 유령이 있다하니 괜히 신경이 곤두선다.
그러나 세걸산의 야밤은 조용하고 얌전하고 안개 기운마저도 잠들어 있다. 귀신은 무슨 귀신이람..............................
10여분 후에 세동치를 지나 몇 개의 작은 봉우리를 넘어서 부운치도 지난다. 그리고는 바래봉을 바라보는 마지막 봉이라 할 수 있는 1122.8봉의 삼각점을 확인한다.
야간산행이야 뭐 볼 게 있겠는가 그저 위치만 확인하며 진행하는 것이다.
* 바래봉은 안개속에 숨어 태클을 걸고.......... 1122.8봉 이후 내리막길을 지나 팔랑치를 넘어서면서 갑자기 안개가 자욱하게 몰려오기 시작하더니 바래봉 가는 길은 3~4미터 정도의 시야만 확보해 줄 뿐 안개속에 빠져들고 만다.
길옆의 풀섭은 이미 물기운이 흠뻑이라 등산화가 젖을까봐 조심조심 지난다.
등로를 제대로 모르는 산꾼이라면 오늘 같은 안개속에서는 그야말로 알바의 함정속으로 빨질 수 밖에 없는 지경이로다.
▲ 안개에 빠진 바래봉 정상봉
임도 삼거리에 다다랐으나 아직은 물이 많이 남아 있어 바래샘터를 거치기 않고 능선을 바로 치고올라 바래봉 정상에 이른다.
이제는 반환점인 덕두봉을 다녀오는 길이다. 그런데 이것이 어인 일인가? 바래봉 능선을 벗어나니 안개가 깨끗이 사라지고 어둠만이 남아있다.
아마도 바래평전 부근만 안개가 활개를 치고 있는 모양이다.
덕두봉 가는 길도 쉽지가 않다 생각보다 지루한 길이 이어진다.
그러나 마지막 봉우리는 생각에 가벼운 발걸음으로 내리쳐 덕두봉 정상에 발을 내 딛는다.
▲ 덕두봉 정상표시
즐거운 마음으로 몇 분에게 전화로 반환점에 이르렀음을 알리고 10분 정도 머무른 후 출발이다.
이제 반환점에 이르렀으니 어천까지 언제 돌아갈 것인가. 가슴이 콱 막히는 듯 답답해 온다. 훨훨 날아 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부질없는 생각으로 곤란한 처지를 탈출하려는 심리가 마음에 가득하다. 차라기 인월로 내려가 버릴까? 마음의 갈등이 복잡하게 얽히고 난리 부르스다.
▲ 변함없이 3일간 따라다닌 내사랑 반달님
되돌아 오는 길엔 또 다시 반달이 동행을 하며 위로의 시선을 보낸다.
* 졸음이여 나 좀 살려둬.......... 이제부터 그야말로 지상 최대의 알바작전에 돌입하여 바래봉을 넘는다. 그리고 팔랑치의 철쭉전망대를 지나고 1122.8봉도 쉼 없이 넘어서며 고개를 떨군다.
1122.8봉을 넘고 부운치를 향한 발걸음에 졸음이 서서히 태클을 걸어오기 시작한다. 하루를 야근하고 와서 벌써 이틀 밤을 걷고 있으니 졸음의 마각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는 노릇이니 어찌하랴
졸음이 징그러운 벌레처럼 스멀스멀 기어들어온다. 걷고 있는 것인지 자고 있는 것인지 순간순간 졸음과 현실사이에서 곡예를 하고 있다.
졸음 앞에 체력은 그야말로 추풍낙엽이요 풍전등화라 도통 힘을 쓸수가 없다.
순간 눈을 뜨면 풀섶에 누워있는 나를 발견하고 다시 걷기를 시작하고, 또 순간 눈을 뜨면 나무에 기대어 서서 졸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또 걷기를 시작한다.
뒤로 가고 있는 것인지 앞으로 가고 있는 것인지 따질 생각도 없고 그럴 겨를도 없다.
그저 간야한다는 집착적인 일념으로 순간순간의 위기를 넘기며 걷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희안한 것은 돌길이던 흙길이던 넘어지지 않고 제대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 현상을 무엇으로 설명을 해야할지 아무리 생각을 해도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 밝아오는 햇살에 다시 힘을 얻고.......... 세걸산 넘어 큰고리봉 직전까지 비몽사몽간에 많은 시간을 소비하며 무사히 넘어 왔다. 큰고리봉 허리를 지나면서 동녘의 밝아오는 기운을 맞이하니 정신이 제대로 돌아온다.
06:40분 경 정령치에 도착하여 잠시 휴식을 취면서 천왕봉 뒤편으로 솟아 오르는 해돋이를 얻기 위해 몇 명의 사진작가들 속에 끼어 20분 이상 기다려 보지만 신통 찮다.
▲ 정령치에서 맞은 해돋이
아침을 맞는 만복대의 허리가 든든해 보인다. 정상 돌탑과 안내목에는 까치들이 모여 아침인사를 나누고 일정을 논의 하는 듯 총총거리다 다시 선회를 하며 내가 가까이 갈 때까지 정상을 비워주지 않고 앉아 있다.
다시 아침을 맞아 태양의 열기를 받으니 온 몸에 생기가 돌고 힘이 모아지며 졸음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정상적인 컨디션으로 되돌아 오는 것 같다. 이래서 신체리듬이 중요한 모양이다.
만복대 내림길에서 바라본 작은 고리봉과 성삼재의 종석대에 이르는 능선이 아침을 맞아 길고도 부드러운 허리선를 드러내며 빨리 밟아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듯 하다.
▲ 만복대 정상에서 바라본 성삼재방면.....
* 성삼재의 파전으로 재충전을 하고 .......... 이제는 배도 고프고 다리도 아프다. 성삼재에는 단풍인파로 북적거리고 주차장에는 대형차들이 즐비하다.
다시 아침 대용으로 우동과 파전을 주문하여 단숨에 해치우고 출발이다.
성삼재의 파전은 즉석 음식이 아닌데도 왜 이리 꿀맛인가.....한끼의 식사대용으로 충분하다.
즐거운 가족과 함께 오르는 단풍인파에 섞여 노고단을 쉬엄쉬엄 오른다.
돌이켜보건대 지난 밤 서북능선의 졸음산행은 날씨가 춥지 않아서 천만 다행이었고 졸음에 취한 내모습이 측은 했던지 바람까지도 숨을 죽이며 도와주고자 하는 마음으로 얌전히 굴었던 덕분에 지금 살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쾌청한 날씨는 계속되도 있으니 이번 산행은 날씨의 지원을 토톡이 받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일기예보를 보고 택일해서 일정을 잡긴 잡았으나 날씨의 도움이 너무 큼을 느낀다.
* 반야봉의 엉덩이 골짝 모양은 여전히 호기심을 낳게 하고.......... 발걸음도 가볍게 노고단을 넘으며 반야봉의 야릇한 자태를 넘겨본다.
▲ 노고단에서 바라본 반야봉
아무리 좋게 보아도 엉덩이 골짜기 모양임에 틀림이 없으니 내가 음흉한 심보를 지닌 것인가 빠르게 치고 나가는 모산악회의 뒤를 따라 나도 빠르게 따라 가본다.
낮만 되면 힘이 남아 도는 듯이 몸이 가벼워지는 신체리듬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면서, 돼지령를 발판삼아 임걸령도 넘고 반야봉 갈림길 노루목도 이미 지나고 있다.
삼도봉에 이르러 먹통골의 단풍 그림을 그런대로 담아 본다.
▲ 돌아오며 재회하는 먹통골의 단풍
그리고는 삼도봉 내림길을 지나 화개재 내림길 계단을 넘어서니 따뜻한 햇살아래 여름기운이 번지면서 육체를 나른하게 짓이긴다 싶더니 졸음이 꾸벅꾸벅 밀려온다.
마지막 밤인 오늘밤의 졸음방지책으로 잠시 누웠다가도 무리가 없을 성싶어 누울만한 곳을 찾아 20분 정도의 오수를 즐긴다. 그리고 일어나니 눈동자가 한결 초롱초롱해지는 것 같다.
▲ 554(551?) 나무계단......화개재 내림길
▲ 가을이 무르익어 가는 화개재 고개
* 오수는 보약이고 토끼봉은 언제 뉘가 깎아 놓은 겨? 앞으로도 최소한 20시간 이상은 가야하기에 오늘 밤의 졸음산행을 위해서 오수는 필요한 것이다. 20분의 오수로 피로를 말끔히 정리하고 토끼봉을 오른다.
“헌디 토끼봉이 왜 이리 변변찮은 겨? 언제 뉘가 깎아 내리기라도 했는가 말이여?“
기억속으로 들어가면 토끼봉 오름이 보통이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이 되는데 너무도 싱거운 일전을 치루며 쉽게 올라선다.
주능선 길은 낯 익은 길이기에 부담없이 그저 걷기만 하면 된는 곳이기도 하다. 토끼봉에서 3개 정도의 봉우리를 넘어서니 명선봉 오름길의 나무계단이 나오는 걸로 미루어 보아 연하천산장이 머지 않았음을 알 수가 있다.
▲ 명선봉 전전봉의 계단 오름길
▲ 다시 찾은 연하천 산장.....컵라면 맛이 꿀맛
연하천산장에 도착하여 다시 컵라면에 햇반을 말아 저녁끼니로 대용하고 출발한다. 형제봉을 넘어서면서 랜턴을 밝히고 진행하는데 벽소령을 1km 정도 남겨둔 곳에서 커다란 배낭을 매고 희미한 랜턴으로 끙끙거리는 두 젊은이를 만난다.
얘긴 즉슨 벽소령에서 1박을 하려고 하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려 늦어졌으며 더구나 초행길에 랜턴이 방전되어 둘이서 어렵게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이런 계획 없는 젊은이들 이로고 산의 무서움을 모르는 것을........................쩝 새 건전지로 갈아 끼운 LED 9촉의 내 헤드랜턴은 그들의 것에 비하면 대낮처럼 밝다.
어찌하랴 그들을 벽소령까지 안전하게 안내하기로 천천히 앞서가며 그들의 진행을 돕는다. 연신 감사함을 표하는 것으로 보아 건실한 청년들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벽소령의 앞마당은 비어 있는 의자가 없을 정도로 많은 산우들이 나와 있다. 날씨가 춥지 않아서 야외 의자로 나와 먹거리들을 준비하거나 맛있게들 먹고 있다. 나도 잠시 숨을 돌리고 있다가 슬며시 빠져나온다.
▲ 벽소령산장의 우체통
선비샘에 들러 간식을 하고 칠선봉과 영신봉을 넘어선다. 20분 정도의 오수로는 해결이 될 리가 없는 3일째의 밤이기에 또 한 차례의 졸음을 맞이하는 고비가 오리라는 것을 예견하며 진행을 한다.
오늘밤도 자정이 넘어 서면 반달이 나타날 것이지만 밤 9시가 넘은 이시간은 칠 흙 같은 어둠이 헤드랜턴을 감시하고 있는 듯이 숨을 죽이고 있다.
장터목산장을 목전에 둔 연하봉 내림길 졸음이 밀려오는 듯한데 밑으로부터 올라오는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소식을 들은 바 있어 배신웅 선배님 아니시냐고 물었더니 반가워 하시며 찰떡 한 무더기를 건네주신다.
j3회원 중 연배가 제일 높으신 분임에도 불구하고 무박태극을 동네 뒷산 오르듯이 하시는 분이시니 대단한 분이시다. 더군다나 무박왕복을 하시겠다고 지금 여기까지 오고계시니 그 뜨거운 열정에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지경이다.
건네받은 찰떡 몇 개를 입에 물고 연하봉을 내려간다. 날씨는 점점 차가워지고 있지만 졸음은 그 반대로 점점 짙게만 밀려든다.
지척거리로 다가온 장터목산장의 불빛을 응시하며 잠시 들러 새우잠을 청해볼까 하고 서둘러 산장의 식당으로 들어간다.
식당 안은 온기가 있어 따뜻하다. 그러나 앉아 있을 만한 의자 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입식 식당이기에 그런 모양이다. 할 수 없이 주변의 신문지 몇 조각을 주어모아 바닥에 깔고 등을 벽에 기대고 앉아 허리를 구부려 머리를 무릎에 얹은 채 졸음을 이기려 애를 써본다.
5분만 지나도 허리다리가 다 절리고 아파온다. 그러나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일어났다 앉아다 하기를 몇 번이나 했던가. 아마도 1시간 이상은 지난 것 같았다
00:30분 조금 넘어 들어온 것 같은데 정신을 차리니 새벽 2시가 훌쩍 넘어섰다.
이제는 정말 마지막 밤이다. 이 밤이 지나고 새로운 밤이 오면 편안한 잠자리에서 마음 놓고 잘 수 있으리라.........이제 동부능선만 남았다. 아직도 몸이 말짱하고 힘이 있으니 졸음만 벗어나면 거뜬히 완주를 할 수 있다는 판단으로 다시 힘을 내기 시작한다.
다시 몸을 추스르고 장터목산장을 나선다. 00:30분 조금 넘어 들어 온 것 같은데 벌써 새벽 2시를 넘어 섰다.
제대로 한 번 졸아 보지도 못하고 식당안에서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앉았다 섰다를 반복하다가 1시간 30분 정도를 허비했다..........으이그 아까버라,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걸으면서 졸걸....
오늘밤도 바람은 잠들어 있다. 장기 출타를 한 모양이로세 그려 새벽으로 이어지면서 달님이 마지막 밤의 이별을 아쉬워하는 듯이 다시 등장한다.
반가우이.........동행을 하면서 짙은 어둠을 물리쳐 주고 있다.
▲ 천왕봉 정상 안내목
다시 천왕봉 곁으로 돌아왔다. 돌아온다는 약속을 지키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정상석으로 있는 곳으로 가지 않고 그냥 우회길로 접어들며 바로 중봉으로 향 한다.
중봉을 넘고 암봉이 즐비한 하봉도 오르락 내리락 거리며 넘었다. 그리고 국골사거리에서 우측으로 방향을 바꾸어 한 참을 내려오니 청이당샘터가 나온다.
정말이지 어제 밤에는 이슬도 내리지 않은 모양이다. 풀잎에 물방울이 맺혀 있지 않다. 덕분에 등산화는 건조한 상태가 유지되어 발상태가 매우 양호한 편이다.
청이당샘터에서 밤머리재까지 마시고 갈 물을 보충하고 산죽들이 진을 치고 있는 독바위 고을로 진군이다.
▲ 청이당 샘터의 계곡물
아침을 맞은 산죽머리에는 분명 굴러떨어지는 이슬들이 맺혀 있었야 하거늘 어인 일인가? 꼬들꼬들하게 건조한 그들의 머리에는 촉촉함도 없이 건조하다.
어제밤의 동부능선은 이슬도 없이 건조했나보다. 누굴위해서? 날 위해서?........zzzzzz
▲ 독바위
▲ 새봉전에 뒤돌아 본 독바위 동네 뒷 모습
태양이 주는 따스한 온기를 머리 위에 받고 가는 동부능선의 진행은 몸놀림이 경쾌하다. 그러나 다 된 밥에 코 빠뜨릴까봐 무리를 자제하며 조심조심 진행을 한다.
그러나 평온함이 넘실대는 새재의 능선은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두리번거리게 한다. 아마도 이곳 새재에는 우리가 그리는 평온함과 따스함 그리고 아늑함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 새재를 내려오며 외고개방면으로 한 컷
▲ 새재를 내려서서 새봉방면으로 뒤돌아 한 컷
이제는 만만디로 진행하여 가는 일만이 남아 있다. 종점을 근거리에 두고 굳이 이것저것 과욕스런 마음으로 갈 일이 없다.
외고개의 가파른 오르막도 불만 없이 오르고, 습지의 손짓도 못 본 듯이 지나친다.
완주의 종착점이 머지않았다는 생각에 긴장이 풀리고 마음이 문이 열리니 모든 것이 순조로워 보이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주변을 돌아 볼 수가 있어서 산속에 핀 야생화도 동공속으로 찾아들고 단풍이 들어 있는 곳도 시야에 들어온다.
▲ 동부능선에 핀 야생화
▲ 단풍은 곳곳에 있으나 좀 늦은 듯....
동왕등재도 쉬 넘어서고 7개 정도의 봉우리를 넘고 넘어야 하는 도토리봉도 평소 같으면 지루하기 짝이 없었을진대 부드러운 마음으로 가볍게 넘어서고 밤머리재에 당도하여 임시가게에서 컵라면에 밥 말아 먹고 휴식을 가진 후 마지막 코스인 웅석봉을 향한다.
헌데 웅석봉으로 향하는 등로가 생각보다 힘들다. 넘어도 넘어도 끝이 없이 이어지는 능선과 봉우리, 다 왔나 싶으면 아직도 몇 개의 봉우리가 기다리고 있는 형국이다.
왕재를 지나고 웅석봉 전전봉을 오르면서 박용우 선배님을 만난다. 지난번에 날씨 때문에 실패했던 태극왕복을 하기 위해 다시 오시는 거란다.
정말이지 못 말리시는 양반이다.
태극편도 최다 종주자 이면서도 성이 차지 않으신 건가? 이제는 왕복도 최다가 되기 위해 뛰시는 것 같아 그 열정과 산행 욕심에 고개가 절로 흔들거린다.
아무튼 무사종주를 기원하며 한 컷의 기념사진을 주고받고 멀어져 간다.
▲ 태극종주 최다 보유자이신 김해의 박용우님......태극을 동네 뒤동산 다니듯...
30미터만 더 가면 웅석봉이다. 웅돌이의 환영을 받을 만도 한데 그냥 귀찮아 우측 내림길로 발길을 돌린다.
이제는 오르막도 없는 마지막 내리막길.......짧은 거리에서 900미터 정도를 하강해야 한다. 물론 올라올 때도 힘든 경사였지만 지쳐있는 상태에서 내리막길은 정말로 고역이다.
다른 발가락은 괜찮은데 새끼발가락이 너무 아파 등산화를 벗어 확인해 보았더니 양쪽 발 모두 발갛게 부어 있다. 이걸 어쩌지 .......
고육지책으로 가지고 간 살색테이프로 새끼발가락을 칭칭 동여매여 미이라를 만든다. 그리고는 등산화를 신었더니 그나마 걸을 수 있을 정도로 통증이 완화된다.
지금까지 어느 구간보다도 힘들고 어렵게 느껴지는 곳이 웅석봉 내림 길이다. 더구나 새끼발가락까지 아프니 천천히 내려갈 수밖에 없는 터라 하산 도중 어둠이 찾아들어 헤드랜턴을 다시 착용하고야 만다.
발가락이 터지는 듯한 고통을 감내하며 어천마을 가까이에 이르지만 내림 길의 끝자락이 뭔가 이상하다. 보지 못한 길이 있는 것 같아 18:50분 들머리를 확인한 후 10여분에 걸쳐 주변의 임도를 살펴보지만 이미 어둠으로 덮여 있어 자세한 확인이 곤란해 그냥 돌아선다.
쉴만한 물가집으로 들어서니 안사장님께서 전화를 받으시고 손전등을 들고 마중 나오고 계신다.
넘 반가운 어른 이시다. 정 깊은 악수로 인사를 드리며 왕복의 일정을 마무리한다.
▲ 쉴만한 물가 뜰에 걸려있는 완주기념 플래카그 앞에서 한 컷....눈빛이 완전히 갔습니다.
<에필로그> 힘든 산행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힘에 겨웠다기보다는 가보지 않았던 거리와 겪어보지 못한 긴 시간이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누군가가 그 가능성을 입증해줌으로써 성공의 밑그림을 그리고 도전의 실마리를 풀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만큼 최초 완주자의 공로가 크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그 과정여하에 불구하고 첫 왕복 완주자이신 J3의 그리운산님의 공로는 크다 할 것이다.
무박태극왕복종주는 걸출한 산꾼들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어려운 산행이고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산행이다. 하물며 일반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미친 짓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이러한 산행 행태가 바람직스러운 산행 행태라고 할 수는 없을지언정 잘못된 산행이라고 말하는데는 동의하고 싶지 않다.
그러한 산행의 결과물을 얻기까지는 많은 시행착오와 숨겨진 고통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떠한 이익이나 반대급부를 원하고 행한 산행이 아니기에 더욱 그렇다.
또한 무박태극왕복산행을 한 번 해보지않겠느냐고 권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하겠다고 한다면 굳이 말리고 싶은 생각도 없다.
도전의식을 즐기는 산꾼이면 자신의 한계를 노출하며 도전해볼 가치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일명 지상최대의 알바산행, 지리산 태극능선의 무박왕복종주는 2005. 11. 1일 현재 8명의 산꾼들이 이미 그 벽을 넘어섰다. 도전의 그림을 그리고자하는 분들은 J3카페에 오셔서 정보를 수집하고 다듬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하늘의 도움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지루하고 긴 왕복산행에 편승해서 끝까지 읽어주신 산님들께 감사드리며 인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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