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까마귀(?)
(아내의 정보누설)
때는 아주 특별한 사람이‘나 이사람 보통사람입니다’하던 선거철이었습니다.
날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우리 가게에 찾아와 불쑥 악수를 청하는데 싫어도 그 사람 체면도 있으니 맛 만 보라고 슬쩍 내밀어주는 일도 지겨울 때 였습니다.
늦은 점심을 마악 뜨고 있을 때‘계십니까~’하는데 또 그분들이라고 생각하고 귀찮아 밥숟가락을 입에 물고 악수를 안 할 요량으로 방문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20대 후반에 안경을 쓴 자그마한 분이 활짝 웃으며 반갑게 달려들며‘아이구 형님 반갑습니다. 정~말 오랜만입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습니까?’하고 내 손을 덥석 잡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광주에서 20년 넘게 살았지만 소심한 성격이라 친구나 이웃을 사귀는 일에 소홀히 해서 죽었다 살아온 사람 만나듯 그렇게 나를 반갑게 대할 사람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렇게 반가워 할 정도면 분명히 나를 아는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에 수없이 스쳐가는 일가친척 사돈에 팔촌까지 수많은 얼굴들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그러나 내 기억 속에 전혀 없는 사람이라 ‘누굴까?’하는 표정으로 찬찬히 청년을 바라보자 그분은 잡은 내손을 또다시 세게 흔들며‘형님 절 모르시겠습니까? 정~말 서운 합니다~ 저를 모르시다니......’하는데 사람을 몰라본다는 것이 이토록 미안하고 죄송할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습니다.
바로그때.
안방에서 조용히 밥을 먹고 있던 아내가 슬그머니 내 곁으로 오더니 작은 목소리로‘몇 달 전에 진안에 산다는 당숙 딸 순이라고 하던가? 광주에서 결혼할 때 다녀왔잖아요~혹시 그분 아니에요?’그래서 순식간에 결혼식 날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결혼식장에 가면 그 까이꺼 대~충 축의금하고 예의상 신랑신부 멀리서서 3초정도 바라보고 밥 먹고 사라지지 않습니까? 화장한 당숙 딸도 몰라보겠는데 처음 본 신랑 얼굴 제가 기억 하겠습니까?
바로그때.
젊은이가 ‘아이구 형님 예식장에서 절 슬쩍 보고 어떻게 알아보겠어요, 제가 일일이 찾아 뵙고 인사를 드려야 하는데 그렇게 못한 제가 잘못이죠, 죄송합니다. 다 제 잘못입니다 형님.....’ 하며 연신 고개를 꾸벅이는데 그때야 ‘아 그렇구나,’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가깝게 지내지도 않았는데 당숙 딸 신랑이 나를 찾아 올 리가 없는데 무슨 이유일까 하는 생각에 아직도 인정을 못하고 어정쩡한 상태로 있는데 평소에 사람을 잘 못 알아본다는 나를 안식구가 가재미눈을 뜨고 바라보며 아까보다 조금 큰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숙 딸이 포항인가 광양인가 산다고 왜 저번에 당숙네 형님한테서 전화 왔잖아요’하고 육 개월 전 나도 잘 모르는 이야기를 꺼내는데 ‘그런가?’하고 짧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 젊은이는 큰 목소리로 아내에게‘아이구 형수님이 더 총명하십니다. 맞아요, 저 포항에 사는데요 직장을 광주로 옮기게 돼서 순이가 광주에 가면 꼭 형님을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라고 해서 한참을 찾았네요 여기가 학동 맞죠? 근데 애들은요? 학교서 안 왔네요? 아이구 빈손으로 왔는데 마실거라도 사 올께요.’그렇게 말할 틈도 주지 않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러자 아내는 갑자기 희색이 만연한 웃음을 참지 못하고‘호호호....그동안 당신이나 나나 소심해서 친구도 못 사귀었는데 친척이 이사를 오면 참 좋겠네요 교회도 같이 다니면 더욱 좋고 호호호......’웃는데 내가 소심해서 아내를 외롭게 한 것도 정말 큰 죄라는 사실을 그제야 알았습니다.
잠시 후에 음료수박스를 들고 온 순이 신랑은 신혼 이야기를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아내와 나누고 저는 멀뚱멀뚱 둘의 대화를 미소로 듣고 시간이 30분이 흘렀습니다.
그러다 순이 신랑은 무릎을 탁치며 일어나더니‘형수님, 형수님이 무척 맘에 들어 이곳 근처에 집을 얻어 이사를 해야겠네요, 잠깐 나가서 순이랑 살집 구경하고 갈 때 인사드리고 갈께요’하더니 밖으로 나갔습니다.
아내는 입가에 웃음이 떠날 줄 모르고 내 고향까마귀만 봐도 반갑다는데 얼마나 반가운 일이냐며 호호 하하 계 속 계속 즐거워하니 전염되어 나까지 즐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한 시간 쯤 흘렀을까?
순이 신랑이 와서‘형수님 여기서 조금 떨어진 곳에 집을 보았는데 아주 맘에 들어요 그래서 계약를 하려는데 집주인이 100만원을 걸어야 한다며 안 그러면 다른 사람 온다고 했으니까 그 사람 줄꺼라해서 50만원 밖에 없어 사정을 했더니 안 된다네요? 형님이 가서 대신 사정 좀 해주시던지 아니면 사흘 후에 순이랑 와서 집구경할 때 드릴테니까 50만 빌려.....아닙니다. 돈 예기는 없던 걸로 해 주세요 죄송합니다.’하고 무척 난감해 하는데 참 안되어 보였습니다.
그러자 아내가‘은행 문을 닫았는데 어쩌지? 나한테 50은 안되지만 조금 있는데 그거라도 가지고가서 사정해 봐요~’그리고 지갑에서 만 원 권 지폐를 세더니 두말없이 건네주는데 그 모습을 보고‘아, 내 아내!!!!!!!! 시 짜 들어가는 사람은 물론 사돈에 팔촌까지 집근처로 이사 오면 며느리들은 귀찮아하는데 저렇게 착할 수가....일가친척에 얼마나 목말랐으면....’했습니다.
순이 신랑은 아내가 자꾸만 쥐어주는 돈을 거절하다 마지못해 받아들고 다시 사정을 해보겠다고 나가고 아내는 친척이 이사 올 것이라는 믿음에 호호하하.....웃으며 친척과 즐길 만찬을 만들기 시작 했습니다.
그러나 그날 저녁은 물론이고 하루 이틀사흘 아니 보름이 지나도록 온다는 당숙 딸 순이와 그 망할 놈의 짜식은 오지 않았습니다.
어찌된 영문이냐 구요? 묻긴 왜 물어요~ 속상하게.....궁금해서 당숙 집에 전화를 해보니 순이는 군산에서 살고 나는 전혀 모르는 사람인데 아내가 일가친척에 정이 그리워 눈에 콩깍지가 씌워 괜히 끼어들어 순이가 어떻고 포항이 어떻고 진안 당숙이 어떻고 정보를 제공하는 바람에 나까지 사기꾼에게 속았잖아요. 나 참.....
‘여보야 제발 다음엔 내가 남들과 이야기할 때 끼어들어 정보 누설하지 말어, 내가 햇갈렸잖어~내 고향 까마귀만 봐도 반갑다고 하지만 까마귀는 원래 시커멓잖아, 내 고향 비둘기를 봐도 잘 살펴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