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스컴의 카메라 세례 속 폭력조직 두목으로 체포된 최익현의 모습에서 시작되는 영화는 1982년으로 경쾌하게 넘어간다. 일개 세관 공무원이었던 그가 겨우 10년 만에 어떻게 변신했는지,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영화는 그와 최형배를 중심으로 다양한 인물군상들이 활약하는 부산의 80년대를 파노라마처럼 펼쳐 놓는다. 권력과 밀착하고 이권을 따내고 경쟁조직을 제압해 나가며 두 사람이 함께 부산을 접수해 나가는 과정은 때론 폼나고 낭만적으로, 때론 찌질하고 잔인하게 그려진다. 정의와 질서가 아닌 힘의 논리가 지배하고, 돈과 주먹과 권력이 공생했던 80년대의 풍경은 단순한 복고나 향수를 자극하는 소재에 머물지 않고, 21세기 대한민국과 묘하게 겹쳐지면서 극의 재미를 더욱 흥미진진하게 만든다.
<쉬리>부터 <악마를 보았다>까지 그를 빼놓고는 한국 영화사를 쓸 수 없을 정도의 케릭터 배우인 최민식은 건달도 아닌 것이 민간인도 아닌 ‘반달’로 푸근하고 능글능글한 코믹 이미지를 오랜만에 선보이고, 신세대 연기파의 대명사로 떠오른 하정우는 부산 최대 조직의 보스로 기존과는 다르게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보여준다. 당대를 대표할 만한 신구세대 연기파 배우가 양 날개를 책임진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는 자신만의 고유한 개성과 포스를 가진 배우들이 탄탄하게 포진하고 극의 재미를 촘촘하게 완성한다.

피보다 진한 의리로 부산을 접수해 가는 최익현(최민식)과 최형배(하정우) 두 사람의 전성기 뒤편으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배신의 징조를 더욱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두 사람 사이에 배치된 다양한 인물군단이다. 형배를 향한 콤플렉스가 강한 경쟁조직 두목 김판호 역의 조진웅, 형배의 지시로 익현을 형님으로 깍듯하게 모시지만 내심 자신을 제치고 형님의 신뢰를 얻은 익현이 못마땅한 형배의 오른팔 박창우 역의 김성균, 익현과 마찬가지로 뼈 속 깊이 건달일 수는 없는 핸디캡을 가진 태권도 7단을 강조하는 익현의 매제 김서방 역의 마동석, 그리고 부산 지역에서 범죄와의 전쟁을 진두지휘하는 악질검사 조범석 등 강렬한 마스크와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과 연기력으로 무장한 배우 군단은, 쉴 틈 없이 이야기가 전개되는 영화에서 단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영화의 완성도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캐스팅 전쟁’을 치르기 위해 제작진이 우선순위로 둔 미션은 첫째, 주연 배우를 제외한 대사가 있는 모든 조, 단역은 네이티브 수준으로 부산 사투리를 구사할 것. 둘째, 몽타주가 80년대 Feel이 나야 한다는 원칙을 두었다고 한다. 카메라가 슬쩍 훑고 지나가는 몇 초 동안 등장하는 엑스트라조차 ‘80년대 스타일로 생긴 사람’으로 캐스팅하기 위해 인물 담당 조감독은 부산, 대구, 울산 지역에서 활동하는 연극인들을 오디션 하기 위해 장소를 빌려서 한 사람에 10분씩, 꼬박 3달 동안 매일 배우들을 만나야 했다. 포스터에서 폼 나게 부산 뒷골목을 활보하며 걸어오는 인물들의 면면을 봐도 리얼리티를 위해 제작진이 기울인 각고의 노력을 확인할 수 있다.

최민식의 80년대부터 현재까지를 아우르는 반달 패션부터 그 당시 패션 리더로 불리었을 법한 하정우의 보스 패션뿐만 아니라 스크린을 압도하는 최민식과 하정우의 연기 앙상블, 그리고 리얼리티를 위한 두 배우의 외모 변신 또한 화제다. 먼저, 최민식은 허세 100%의 유들유들함과 생존하기 위해 온갖 권모술수를 동원해 영향력을 펼치는 최익현 캐릭터를 위해 촬영 전 과감하게 10Kg 이상의 살을 찌우기로 결정했다. 또한 카리스마 넘치는 조직의 보스로 변신한 하정우는 전문 타투 전문가 6명이 교대로 가면서 시술했을 정도로, 다른 영화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급이 다른 고난이도, 고품질의 정교한 문양의 전신 문신을 선보인다. 살을 찌우게 된 과정을 두고 관리보다는 방치에 가까웠다고 밝힌 최민식은 맛있는 음식을 맘 편히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는 겸손한 감회를 밝혔지만 촬영 종료 후, 찌웠던 10Kg을 서서히 감량해야 하는 과정을 생각하면 중견 배우로서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최민식이 연기 인생 최대의 수난시대를 겪었다. 나이트클럽의 사무실에서부터 화장실까지 장소에 제한 없이 무자비하게 얻어맞는 명연기를 펼친 것. 비리 세관원에서 생존을 위해 화려한 화술과 온갖 권모술수를 바탕으로 실속을 챙기는 로비의 신으로 변신한 최민식은 극 중에서 나이트클럽의 경영권을 두고 여사장과 한판 막 싸움을 벌이던 도중 머리끄덩이를 잡히는가 하면, 어떤 연줄과 로비도 먹히지 않는 최고의 강적 악질 조검사에게는 화장실에서 엉덩이를 발로 차이기도 한다. 실제 상황을 방불케 할 만큼 리얼하게 탄생한 구타 장면들은 200% 캐릭터에 몰입해 어떤 연기든지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최민식의 미친 연기력을 확인할 수 있는 알짜배기 명장면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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