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가톨릭일꾼운동의 한국적 적용
<참사람되어> 운동 가톨릭일꾼운동은 1933년 미국에서 도로시 데이와 피터 모린이 시작하여 벌써 70년이 넘는 이력을 지니고 있는 ‘가톨릭 급진주의자’들에 의한 대중적 영성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들은 <가톨릭일꾼>이란 신문을 발행하며, 도시와 시골에 환대의 집을 건립하여 하느님의 자비를 실천하고, 전쟁과 인종차별, 여성문제와 노동문제 등 다양한 사회적 이슈에 관하여 원탁토론을 통하여 식별하고, 복음적 실천을 감행하고 있다. 한편 가톨릭일꾼운동은 평신도들이 시작하고 평신도들이 중심이 되어 세상에 봉사하는 운동이지만, 제도교회와 영향력을 다투지 않으며, 수많은 사제 및 수도자들이 이 운동에 정신적 영적 후원자로 지원을 보내고 있다. 이들은 자본주의의 바다 안에서 교회가 간직해 온 ‘복음’이라는 영적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려 공동선에 입각한 ‘더 선해지기 쉬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사람들을 모우는 섬이다.
1980년에 죽기까지 50년가량 가톨릭일꾼운동을 창립하고 이끌어 왔던 도로시 데이와 가톨릭일꾼운동이 한국에 소개된 것은 대략 1980년대부터였다. 당시 인성회(현 한국가톨릭사회복지전국협의회)에서 발간하던 <하나되어>라는 비공식간행물을 통해서였는데, 인성회가 없어진 뒤에는 <하나되어>의 편집을 맡고 있던 한현 선생이 1990년대에 <참사람되어>로 제호를 바꾸어 개인적 차원에서 계속 발간해오고 있다. <하나되어>는 ‘천주교민족자주생활공체운동’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 발간하였다는 표명에서 알수 있듯이, 당시 활성화되어 있는 천주교 기층운동(도시빈민운동, 노동운동, 농민운동, 생활공동체운동 등)을 신학적, 사목적, 영적으로 뒷받침하려는 성격이 강했으나, <참사람되어>는 좀더 영성적 측면으로 초점을 이동하였다. 특별히 <참사람되어>는 잡지에서 단행본 형식으로 바뀌면서 가톨릭일꾼운동과 상관있는 필자들의 저서들을 완역, 편역의 형태로 소개해 왔다. 헨리나웬, 장 바니에, 토마스 머튼, 프란치스 카바나, 비르거 셀린, 제임스 맥기니스, 머레이 보도, 로버트 에이 죠나스, 케리 월터스, 로버트 엘스버그, 도로시 데이를 비롯해서 주로 영성-신비가들의 저서가 주종을 이루고 있으며, <가톨릭일꾼> 신문에 게재되었던 가톨릭일꾼운동의 활동과 경험을 소개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저서들은 교계 출판물을 통해 널리 알려진 일부 영성가의 서적을 빼고는 대부분 비공식간행물이라는 성격상 교회 안에서 광범위하게 대중적으로 읽히지는 못하였다. 그만큼 한국교회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저서들이었다. 그런 점에서 최근 들어서 도로시 데이에 대한 관심이 교계 안에서 늘어나고 있는 것은 예외적인 현상이라고 보인다. 도로시 데이는 1991년에 분도출판사에서 <잣대는 사랑>이라는 평전을 발간하면서 일반 신자들에게 선을 보였고, 그후 1995년에 <오늘, 유성처럼 살아도>가 발간되었지만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지 못하였다. 다만 최근에 <도로시와 함께 하는 기도>라는 책이 번역되고, 교계 잡지에서 현대의 신비가로 다루기 시작하는 것은 고무적 현상이라고 본다.
이처럼 그동안 도로시 데이의 영성과 가톨릭일꾼운동에 대한 소개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지만, 한국에서 가톨릭일꾼운동이나 그와 유사한 형태의 운동이 실천된 적은 아직 없다. 주로 <참사람되어>를 통하여 일꾼운동을 알게 된 이들은 자기 삶의 현장에서 그러한 영성으로 살려고 개별적인 노력을 하거나 한시적인 소모임 형태를 유지하다가 해소되는 경우는 적지 않게 발견되지만, 전국적 단위에서 이들이 한꺼번에 모인 적도 없거니와, 어느 누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움직이는 지 파악하는 조차 쉽지 않다. 한때 한현 선생이 잡지 형식의 <참사람되어>를 그만 두면서, 구독자들을 중심으로 지역별 모임을 갖게 하고, 그 모임에서 소식지 형태의 간행물을 내도록 독려한 적이 있으나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현재 수많은 사제와 수도자, 신학생, 평신도들이 이런 영적 자산에 감화되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으며, 이들이 느슨한 공동체의 형태로라도 만나고, 더불어 실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길 기대한다.
한국 가톨릭운동에 대한 반성과 과제 1970-1980년대의 군사독재정권에 항거하는 과정에서 출현한 천주교사회운동은 시대의 당면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인 ‘과제 중심의 당파적 이익집단’이라고 부를 수 있다. 민주화를 위한 대열에서 참여자의 신앙적 진정성을 물을 필요가 없었다. 그결과 운동초기에는 “외피론이냐 세력화론이냐”라는 해묵은 논쟁과정을 겪어야 했고, 가톨릭운동을 참여하는 이가 명시적으로 세례를 받았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실상 가톨릭신자라 해도 모두가 운명을 더불어 나누어 가질만한 교형자매가 아니었듯이, 신자가 아니라 해도 얼마든지 실천적으로 복음적 신실함을 증거할 수 있었다. 민주화와 인권신장이라는 대의에 동의할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이 민중의 당파적 이익을 대변하기 위하여 교회 밖에서 교회 안에서 결집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제 중심의 당파적 이익집단은 당면한 과제가 해소되는 순간, 동시에 조직의 위기를 맞이한다. 왜냐하면 집단 구성원을 결속시킬만한 공동의 과제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집단은 일시성 또는 한시성을 특징으로 하는데, 이를 두고 편의상 ‘단체’란 개념을 사용할 수 있겠다. 이러한 단체는 특수한 상황에서 특수한 과제를 실현하기 위하여 강령과 규약에 의존한다. 조직의 힘을 믿는 것이다. 조직의 힘은 숫자에 의존하고, 숫자는 곧 권력이다. 천주교사회운동은 다른 부문 사회단체보다 대체로 생명력이 긴 편이나, 마찬가지로 과제 중심이어서 과제의 재편을 통하여 생명을 연장하는데, 이에 실패하면 그 단체는 와해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는 계속 새로운 과제를 내놓고 있기 때문에 이에 조응하여 새로운 단체가 생기거나 기존 단체가 성격변화나 과제재편을 통하여 새로운 과제를 중심으로 모이게 된다. 이는 사회발전을 위해 필요한 일이기는 하나 충분하지는 않다.
현재 천주사회운동의 연합적 조직인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이 겪고 있는 조직적 위기는 각 소속단체들이 더불어 숙의하고 협력해야 할 공동의 과제를 찾기 힘들고, 이 단체들이 참으로 공동의 지향과 영성을 소유하고 있는지 확인되지 않았으며, ‘정의구현’이라는 총체적 수립과제가 너무 협소하고 무거워서 가톨릭교회의 관심과 대중의 지지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는 까닭이다. 실상 천주교사회운동은 소수의 의식있는 활동가들과 소수의 협력자들이 중심이 되어 활동하는 ‘폐쇄적 집단’의 성격을 갖고 있다. 그 운동에 선의를 가진 신자대중들이 선뜻 참여할 수 여지가 별로 없으며, 결과적으로 활동가들의 양성에도 어려움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과연 시대적 과제를 수행하면서 복음적 견지에서 광범한 신자대중과 만날 수 있는 운동의 형식과 내용은 없을까? 도로시 데이의 영성과 가톨릭일꾼운동은 이점에서 몇가지 우리가 배울만한 요소를 담고 있다.
가톨릭일꾼운동의 시사점 도로시 데이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유토피아가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가난한 이들은 늘 우리 곁에 있을 것이다. 공산주의 경제가 성공한다 해도 가난한 이들은 여전히 있을 것이다. 무정부주의적 방식의 정책이 설사 성공한다 해도 가난한 이들은 우리와 함께 있을 것이다. 우리의 구원 역사와 함께 추락의 역사는 늘상 일어날 것이다.”(22)
여기서 가난함이란 취약함이다. 물질적 영적으로 누군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불안전의 상태이다. 그러므로 취약함 안에 머무는 이들은, 그 벗지 못할 십자가 안에서 하느님께 온전하게 열려 있는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그들은 취약함 안에서 하느님의 무상적 은총과 절대적 사랑을 상기하고, 그 안에 머문다. 그 하느님은 육화를 통하여 취약한 인간조건 안으로 오신 분이고, 우리는 취약함 안에서 그분과 일치한다. 그분과 일치한다는 것은 그분처럼 사는 것이다. 그분처럼 산다는 것은 아래로 내려가는 삶이고, 두려움 없이 모든 이를 사랑하는 것이고, 그분처럼 사랑 때문에 사랑 안에서 죽는 것이다.(23) 그 사람이 곧 성인(聖人)이다.
가톨릭일꾼운동은 우리 모두가 성인이 되라는 부르심을 받았다고 믿는다. 그래서 역사 속에 등장한 성인들과 일치하여 살고자 열망한다. 예전엔 사막에서 하느님을 만났고, 수도원에서 수행을 하였지만, 실상 수도원은 어디에나 있다. 오죽하면 도로시 데이가 젊은이들에게 감옥에 갈만한 일을 하라고 당부하였겠는가? 그만한 피정 장소가 따로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도로시 데이는 리지외의 소화 데레사 성인의 ‘작은 길’을 따라 가도록 권한다. 우리 일상의 자잘한 사건 속에서 우리는 하느님을 경험하고, 모든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몸소 수행하는 것이다. 우리 자신의 취약함과 소심함을 경험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가톨릭일꾼운동에서 마련한 프로그램은 우리들로 하여금 성인으로 가는 길을 준비시키고 경험하고 배우게 한다. 원탁토론을 통하여 경청하는 법을 배우고, 우리의 지성을 단련하며, 하느님의 뜻을 공동으로 식별할 수 있다. 환대의 집을 통하여 하느님의 자비를 몸으로 실행하고 낯선 이들을 가족으로 맞이하는 법을 배운다. 여기서 나의 취약함을 발견하고, 내 취약함 안에 더불어 계시는 그리스도를 경험한다. 농경공동체를 통하여 건강하고 창조적인 노동의 가치를 깨닫고 자연친화적이고 우주적인 아름다움을 경험하고 하느님과 모든 생명에게 감사하는 법을 배운다. 이처럼 공부하고, 베풀고, 찬양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정립된 이야기를 표현하고, 세상에 나아가 그러한 영성에 바탕을 둔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뜻에 반하는 모든 불의와 부당함에 대하여 저항하고, 낡은 껍질 속에서 새로운 공동체를 건설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가톨릭일꾼운동의 과제는 좀더 궁극적인 것이다. 그리고 철저하게 개인에게 주목하는 것이다. 그 개인의 영적 성장에 최종적 관심이 있으며, 결과에 사로잡히지 않고 과정에 주목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영적 여정에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누구든지 원탁에서 이야기에 참여할 수 있으며, 환대의 집에서 누구나 언제든지 시간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제 가진 사랑을 나누어 줄 수 있으며, 이들의 생각이 담긴 신문을 친구나 이웃에게라도 전달해 줄 수 있고, 농장에서 원하는 만큼 일을 하며 쉴 수 있다. 가톨릭일꾼운동은 세세한 규칙이나 정해진 계획 속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갈망과 영성을 서로 나누고 격려하고 공유할 뿐이다. 이들이 나누는 대화는 일상과 교회와 사회와 우주에 걸쳐 얼마든지 주제를 확장해 간다. 하느님은 이 모든 것 안에서 우리와 함께 호흡하신다고 믿기 때문이다. -----------------------------------------------------------감사합니다. 샬롬_()_ [각주] (22) 1952년 4월, <가톨릭일꾼> 컬럼.(<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 5쪽) (23) <야곱, 상처를 대면하다- 불안한 시대에 하느님을 찾아서>, 케리 월터스, 참사람되어, 2003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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