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1>
눈을 떴다. 어제일이 하나 둘 생각나기 시작한다. 그녀가 걱정된다. 내가 무슨짓을 한 걸까? 하지만 이제 돌이킬 수 없다. 언젠가 한번은 격어야 하기 때문이다. 밖에서 할머니가 부른다.
“학상”
“네”
“잠깐만 나와 보거라.”
“학상 이번 달 방세는 안 받을 랑께, 내일 까정 짐 챙겨가꼬 나가라. 난 학상같은 사람 생전 처음 본께.”
“예~!”
나는 그날로 짐을 챙겨서 칠암동 독서실로 방을 옮겼다.
개학이다. 학생들의 물결로 학교는 다시 살아난 듯 희망차 보였다. 오후가 되자 민주광장은 또 들썩인다. 이번엔 전두환이 항복한 것이 아니라 꼼수를 쓴 것이라고 한다. 그들의 5년 연장 집권이라는 또 다른 꼼수라는 것이 점점 드러나고 있었다. 그들은 김대중씨를 7월 10일 이한열열사의 발인 일에 맞춰 사면 복권 시켜줌으로써 민주계의 갈등을 일으킨다. 당시 김대중씨는 사면 복권이 되어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깨고 대통령 선거 출마를 결심한다. 그럼으로써 반여, 반군사정권의 세력은 3분되었다.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그동안 정치계의 중추세력인 이들 3김은 군사정권을 무너뜨리기 보다는 자신들의 정치적 야욕을 앞세워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식화 했다. 민주광장은 그래서 여전히 독재 타도를 외치고 있었으나 그 규모는 현저히 줄어 있었다.
영숙이 개학 3일이 지났는데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어찌된 일일까? 영숙은 어쩌면 내가 생각한 것 보다 훨씬 더 충격을 받은 게 틀림없다. 나는 독서실을 오가며 고민에 빠졌다. 내가 잘못 한 것이다. 후회했다. 시간이 지나고 내가 군대에 가고 나면 어쩌면 그냥 자연스레 헤어질 수도 있었던 것을 나는 왜 그토록 서둘렀을까? 나는 속으로 ‘영숙아 미안해’를 연거푸 외쳤다.
‘영숙아 미안해, 영숙아 미안해, 영숙아 미안해’
나는 계속 되뇌었다.
개학 일주일이 지나서야 그녀가 학교엘 왔다. 영숙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영숙도 내 얼굴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 하루 종일 그녀의 눈치만 살폈다. 그녀가 학교에서 나가는 순간까지. 나는 멀리서 영숙이 하교버스에 오르는 것까지 살폈다.
칠암동 독서실은 외로운 곳이었다. 독서실 앞 영화관에서 1000원짜리 외설영화를 보곤 했다. 그런 생활이 몇 번이나 지속되자 안 되겠다 싶었다. 결국 나는 한 달 만에 장자골로 다시 들어갔다.
생활은 1학기와는 완전 달랐다. 아무런 목표의식도 없고, 그저 시간만 가기를 바랄 뿐이었다. 이번 학기가 지나면 휴학을 할 것이다. 군데를 갈 것이다. 지금의 시간은 순전히 공백일 뿐이다. 학교도 공부도 내게 아무 의미가 없었다. 수업이 끝나면 ‘누구 술 마실 사람이 없나’만 살폈다. 그리고 밤이 되면 술을 마시고 비틀거리며 집으로 돌아오기 일쑤였다. 어떤 날은 현석이와 어떤 날은 국환이와 또 어떤 날은 정기와 어떤 날은 또 여러 친구들과 같이 마셨다. 그래서 친구들은 나에게 “술 안취한 날이 언제고?”
라고 묻곤 하기도 했다. 나는 술꾼으로 통했다. 그러다 친구들이 나를 외면하고 술 마실 친구가 아무도 없는 날도 있었다. 대게 친구들은 시골에서 올라온 애들이라 가난하기는 다 마찬가지였다. 그중에서 그래도 제일 낳은 친구는 현석이와 태현이였다. 현석이는 집이 진주였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신안동에서 혼자 자취를 하며 살았다. 태현이는 집이 부산이었다. 반면 얘네들은 술을 그리 많이 좋아 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나하고는 종종 술을 같이 마시기도 했다. 하루는 술을 먹어야겠는데 주변에 친구가 없었다. 그래서 현석이네 집에 놀러 갔었다. 그런데 거기에는 현석이의 여친 선영이가 함께 있었다. 나는 거기서 술을 마시고 시내버스가 끊기는 바람에 신안동에서 장자골까지 터벅터벅 걸어서 자취방을 향해다. 오는 길이 너무 멀게 느껴졌다. 학기 초에 도동에서 장자골까지 걸어오던 생각이 났다. 그때는 멀어도 가깝게 느껴졌었다. 그런데 지금은 너무나 멀게 느껴질 뿐 아니라 너무 힘들었다. 날씨마저 추웠다. 그렇게 겨우겨우 집 앞에 까지 이르렀는데, 문득 앞을 보니 현석이와 선영이가 자취집 앞에 있다. 이들은 택시를 타고 온 것이다. 속으로야 약이 많이 올랐지만 그것은 내 사정일 뿐이었다.
“어찌된 일이고?” 내가 물었다.
“너, 어디 다른데 갔다 왔나? 아까부터 와서 기다렸는데 와 이제 오노?”
“아 그랬나? 들어가자.”
현석이가 소주를 한 병 가지고 왔다. 거의 대부분을 내가 마셨다. 그리고 우리 셋은 한 이불을 덮고 잠을 청했다. 나와 현석이 그리고 선영이가 나란히 누워 잠을 잤다. 잠을 자려는데 둘이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잠을 잘 잘 수가 없었다.
“야 니네들 그거 하고 싶어서 그러제”
아무 말이 없다.
“내 30분만 나갔다 올거니까 그 안에 다 해결해라.”
밖으로 나왔다. 철도 위를 걸었다. 가로등 불빛이 멀어지면서 어둠이 점점 짖어지고 있었다. 10월의 밤은 차가웠다. 이방황의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랬다. 내가 선택한 어둠이 아니던가? 독한 청자담배 한 대 물고 터널 앞까지 걸어갔다. 터널 안은 말 그대로 칠흑 같은 암흑이었다. 내가 의지 할 수 있는 건 담배 한 개비에서 나오는 작은 불빛 하나. 나는 다시 발길을 돌렸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30분은 훨씬 지났겠지. 내가 문 앞에 다다랐을 때 그들은 여전히 그 놀이를 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기회를 엿보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다시 발길을 돌려 이번엔 반대쪽으로 걸어갔다. 이쪽은 그래도 동네 쪽이라 간간이 집에서 나오는 불빛들이 보인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쪽으로 한번 갔다가 되돌아 다시 반대쪽으로 가기도 한다.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면서 플라톤의 동굴비유처럼 항상 그림자만 바라볼 뿐 진실을 한 번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인생을 마감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날씨가 추웠다. 슬펐다. 그리웠다. 보고 싶었다. 다시 발길을 돌렸다. 방으로 들어갔다. 현석이는 담배를 피고 있었다. 그러나 선영이는 이불속에서 나오지 않았다.
셋이서 같이 잠을 자는 것은 참 곤란한 일이었다. 둘은 여전히 부스럭 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렇게 밤은 지나가고 있었다.
<산다는 것>
산다는 것은 힘들고 불편한 것일 것이다.
산다는 것은 행복보단 불행이 더 많을 것이다.
산다는 것은 이쪽과 저쪽을 왕복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산다는 것은 살아야 하는 것이다.
살아야만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산다는 것은 기 승 전 결의 이야기이다.
사진 ; 진양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