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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신춘문예>시.1 국제신문 / 마농꽃이 걸어서 우체국에 간다_이언지 국제신문 / 시조 : 서울 황조롱이_김춘기 부산일보 / 예의_조연미 영남일보 / 나무는 나뭇잎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_조혜정 매일신문 / 파문_이장근 대전일보 / 책장애벌레_이종섶 전북일보 /오리떼의 겨울_이지현 한라문예 시 가작/오월의 잠_김은실 ------------------------------------------------------------------------ 2008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마농꽃이 걸어서 우체국에 간다 / 이언지 가을, 입질이 시작되었다 만물이 보내는 연서가 속속 배달 중이다 온몸이 간지럽다 배롱나무 붉은 글씨는 화사체라고 하자 작살나무가 왜 작살났는지 내야수는 내야에만 있어야 하는지 계집들의 질문이 쏟아진다 작살나게 이쁜 열매가 미끼였다고 의혹은 무조건 부인하고 보는 거야 경자년이 정해년에게 속삭인다 낮은 음들이 질러대는 괴성에 밥숟갈을 놓친 귀들 은해사 자두가 맛있었다고 추억하는 입술을 덮친다 누가 빠앙 클랙슨을 누른다 -당신의 유방이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테이프을 갈아끼우는 사이 농염의 판타지가 물컹 섞인다 비탈 진 무대에서 마지막 스텝을 밟는다 끼어들고 싶다 소리와 소리 사이 스텝과 스텝 사이, 소문과 소문 사이 납작하게 드러눕고 싶다 내 것도 아니고 네 것도 아닌 죽은 나에게 말 걸고 싶다 거시기, 잠깐 뜸들이고 싶다 마농꽃이 걸어서 우체국에 간다 노랑 소인이 찍힌 연서는 하룻밤만 지나면 사라질 것이다 사라져 도착할 것이다 소멸을 윙크하는 가을 프로젝트 데카당스도 이쯤이면 클래식이다 ▶마농꽃 / 달래의 제주 방언, 샤프란 -2008년 국제신문 시 당선작 <시 심사평> -탁월한 언어 솜씨와 거침없는 상상력의 힘 / 정일근, 남송우, 문정희 400여 명의 시 1800편을 읽으면서, 여전히 한국시의 지층은 흔들리지 않고 있음을 확인했다. 시인도 많지만 아직도 시인 지망생도 많음을 새삼 확인하는 자리였다. 그러나 시의 경향은 전반적으로 전통 서정시의 큰 흐름을 넘어서는 실험적 시도가 크게 보이지 않았다. 시의 수준은 상당히 평준화 되어가고 있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만큼 패기만만하면서도 신인으로서의 놀라운 역량을 엿보게 하는 발군의 작품들이 많지는 않았다. 그런 중에도 김진의 '달, 멈추다', 김미혜의 '몽유', 김정의 '숨 쉬는 고서점', 이언지의 '마농꽃이 걸어서 우체국에 간다' 등은 최종 논의 대상 작품으로서 시를 읽는 즐거움을 맛보게 했다. '달, 멈추다'는 설화적 이미지를 현재화하는 발상 자체는 살만 했지만, 그 현재화를 통해 보여주고자 한 이미지화가 선명하게 부각되지 못한 한계가 보였다. 시는 세계에 대한 시인의 새로운 해석이란 점을 새삼 환기시켜 주었다. '몽유'는 예민한 감각을 통한 이미지화나 새벽의 분위기를 형상화하는 시선은 좋으나, 시어 선택에서 아직은 개성적인 자기 언어를 창출하는 힘이 모자랐다. 시인은 일상어를 자기 언어로 새롭게 전환시켜가는 힘을 스스로 내장하고 있어야 한다. '숨 쉬는 고서점'은 활달한 시적 상상력의 전개라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으나, 그 상상력을 밑받침해줄 수 있는 이미지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한계가 지적되었다. 이에 비해 '마농꽃이 걸어서 우체국에 간다'는 우선 언어를 다루는 솜씨가 언어유희에 가까울 정도로 능수능란함을 보여주고 있다. 또 인간의 내밀한 욕망을 드러낼 듯하면서 감추며, 감출 듯하면서 드러내는 암시적이며 은유적인 시적 전개와 거침없이 펼쳐가는 상상력의 힘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이와 함께 다른 작품들이 보여주는 시적 수준도 앞으로의 가능성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 역량을 보여주었기에 심사위원 전원은 '마농꽃이 걸어서 우체국에 간다'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정진을 빈다. / 본심 심사위원 - 문정희· 남송우·정일근 <시 당선소감> -시 쓰기란 마음의 불순물을 제거하는 행위 이언지 잔뜩 찌푸린 하늘을 바라보며 태안 바닷가에서 방제 봉사를 하고 있는 아들녀석을 생각하고 있을 때 빗방울처럼 당선 축하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이 다정히 만나는 시를 쓰고 싶었다. 깊어질 수만 있다면 기꺼이 아프고 싶었다. 내 행복은 고통 속에 있다는 걸 알기까지 참 많은 가을을 낭비했다. 자명한 인식이 상상력을 끌어당기는 바로 그 지점에 내 시가 있어야 함을 어렴풋이 안다. 묵묵히 바다의 얼굴을 닦고 있을 아이의 분주한 손길처럼 시쓰기란 마음의 불순물을 제거하는 행위일 것이다. 끝없이 밀려드는 세상의 때를 닦아내는 일일 것이다. 하얀 흡착포에 묻어나던 시의 분비물을 빗방울이 와서 태워버린다. 늘 바깥보다 안이 추웠다. 그럴수록 시의 손발은 더욱 뜨거웠다. 눈만 높아 시집 못 간 노처녀같은 시에 면사포를 씌워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의 절을 올린다. 시를 익힐 무렵부터 기꺼이 시의 동료로 대해 주셨던 유병근 선생님, 늘 푸른 나무처럼 곁을 지켜주시는 부모님, 시인이 되기 전부터 시인으로 불러주었던 믿음직스러운 내 아들 혁, 흐린 날 함께 달을 찾아 다니던 당신, 당선 소식에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주시던 시의 동료들, 모두 모두 따뜻하고 고마운 인연들이다. <약력> 본명 이선숙 ▷1961년 부산 출생 ▷국제문예아카데미 수료 ▷한때 구성작가로 활동 <2008년 국제신문 시조 당선작> 서울 황조롱이 / 김춘기 1. 비정규직 가슴 속에 안개비가 내리는 밤 여의도길 전주 한켠 둥지 튼 황조롱이 옥탑방 살림살이가 긴병처럼 힘에 겹다 2. 산 능선 너럭바위에 건들바람 불러 모아 풋풋한 날개 저어 억새 탈춤에 신명나면 제일 큰 나무에 올라 흐벅진 몸 곧추세우던 너 3. 오늘은 밤섬에서 찢긴 비닐 비집고는 마포대교 어깨에 앉아 북악산 여름 숲으로 건듯 날아오르는구나 4. 순환선 철길 위를 에도는 내 발자국 휴대폰에 떠오르는 눈빛 모두 잠재우고 물소리 푸른 강가에서 시계 풀고 살고 싶다 -2008년 국제신문 시조 당선작 <시조 심사평> 4연 작품의 구성과 긍정적 삶의 자세 돋보여 최종심에 다섯 편이 올랐다. 강원도 이영신의 '동강사설', 부산 변경서의 '가을과 겨울 사이', 경주 김희동의 '풍경 울다', 광주 이상선의 '아침, 수산시장', 경기 김춘기의 '서울 황조롱이'다. 모두 연시조 작품으로 4연 구성 2편과 3연 구성 3편이었다. 이들 작품 모두 언어 감각, 표현력, 이미지 처리 능력, 가락의 유연성에 있어 열심히 쓴 작품이었으나 연과 연 짜임의 필연성이 부족한 것 같았다. 당선작 '서울 황조롱이'는 4연 작품의 구성이 돋보였고 시인의 감정을 황조롱이에 이입하여 현실 문제를 아프게 조명하였으며 현대 시조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였다. 또 자연 속으로 돌아가 일상사의 무거운 짐을 부려놓고 건강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긍정적 삶의 자세가 돋보였다. / 본심 심사위원 전치탁·정해송 <시조 당선소감> - 시어 갈고닦아 다시 보고 싶은 시조 쓰고파 김춘기 아름다운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 행복하다. 시조는 우리 주변에서 작은 소재를 찾아 그것을 가장 선명한 언어로 압축하고, 거기에 운율을 담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시를 좋아한다. 그러나 많은 시를 읽고 난 후, 그 시가 다시 손에 잡히는 경우는 드물었다. 오히려 현대시조를 읽고서 그 잔잔한 울림에 마음이 끌릴 때가 많았다. 시는 세상의 많은 광물 중 가장 순도가 좋은 것들만 골라내 이를 다시 깎고 다듬어 독특하게 진열해 놓은 언어의 보석인 것이다. 나는 이 보석들이 보면 볼수록 다시 보고 싶어지는 그런 시조를 쓰고 싶다. 나는 본래 전공이 과학지만, 문학을 전공하지 않아 시쓰기에 더욱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평소 관심이 있는 환경문제에 대하여 접근해 볼 생각이다. 당선소식을 들으니 멀리 광주의 송광룡 시인이 생각난다. 7~8년 전 내가 시조에 입문할 때 길라잡이가 되어 주신 분이다. 이 기쁨을 맨 먼저 전해드린다. 또한, 열린시조학회의 윤금초 선생님과 동료문인들께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오늘따라 고향의 늙으신 아버님과 두 달 전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아내가 더욱 그리워진다. 그리고 두 아들 남인이 남규의 존재가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앞으로 문학의 텃밭을 일구며, 내가 아끼는 제자들을 비롯한 정겨운 사람들과 어울리며 아름답게 세상을 살아가고 싶다. <약력> ▷1954년 경기도 양주 출생 ▷공주대학교 사범대학 지구과학교육과 졸업 ▷제9회 금호시조상 우수상 ▷제5회 공무원문예대전 시조부문 우수상 ▷현재 경기도 고양시 덕양중학교 교감 --------------------------------------------------------------------------------------- 2008 부산일보신춘문예 시 당선작_예의 / 조연미 손바닥으로 찬찬히 방을 쓸어본다 어머니가 자식의 찬 바닥을 염려하듯 옆집 여자가 울던 새벽 고르지 못한 그녀의 마음자리에 귀 대고 바닥에 눕는다 누군가는 화장실 물을 내리고 누군가는 목이 마른지 방문을 연다 무심무심 조용하지만 숨길 수 없는 것들을 예의처럼 모르는 척 하는 일상 아니다, 아니다 그러나 아니더라도 어쩔 수 없다 몸의 뜨거움으로 어느 귀퉁이의 빙하가 녹는지 창 너머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또 잊혀지는 것들이 생기는 것이다 뻔하고 흔한 세상의 신파들 사이를 질주하며 이번에는 흥청망청 살고 싶어요 소리치며 눈은 내리고 가지런히 슬픔을 조율하며 우는 벽 너머의 당신 찬 바닥에 기대어 누군가의 슬픔 하나로 데워지는 맨몸을 가만 안아본다 [2008 신춘문예 - 시] 심사평 / 상투형 벗어난 신선한 가능성 -황동규 시인, 박태일 경남대 교수, 박태일 경남대 교수, 최영철 시인 뽑는이들의 손에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은 김중곤의 '소금밭의 기억', 조연미의 '예의' 두 편이다. '소금밭의 기억'은 녹록지 않은 시력으로 다져진 단단한 틀거지를 지녔다. 바닷물이 소금으로 변화해 가는 과정이라는 다소 낯익은 글감에 대한 흔치 않은 상상적 투사가 돋보인다. 그러나 작품 세부까지 충분한 제어력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열아홉 줄에 걸친 한 편 시 속에서 '하얀'이라는 수식어를 다섯 번이나 거듭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 무엇인가를 응모자는 곰곰 헤아려 보아야 할 일이다. 조연미의 '예의'는 '소금밭의 기억'에 견주어 단연 신선하다. 함께 보내온 작품들이 지닌 역량도 만만찮다. 사소한 일상을 결코 범상하지 않게 다듬어 내는 솜씨가 고르다. '예의'는 나와 타자의 만남이라는 주제를 따뜻하면서도 곡진하게 끌어 안은 작품이다. '창'과 '벽'으로 표현되고 있는 경계를 축으로 그 너머 세계와 합일을 꿈꾸는 상상적 줄거리는 가벼운 반어적 기슭까지 닿아 있다. 아직도 시가 우리 둘레에서 위안의 장소가 될 수 있음을 잘 보여주는 본보기가 됨직한 작품이다. 게다가 '몸의 뜨거움으로/어느 귀퉁이의 빙하가 녹는지/창 너머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와 같은 빛나는 깨달음까지 얻고 있음에랴. 뽑는이들은 상투형을 벗어난 '예의'의 신선한 가능성에 훨씬 높은 점수를 주어 당선작으로 민다. 모름지기 오래 기억될 시인으로 거듭나기 바란다. 뽑는 이들의 눈을 한참 머물게 했던 작품을 보내준 세 사람, 예컨대 '아버지의 침대'의 박금숙, '벽'의 박해술, 그리고 '102번을 타고'의 조해점과 같은 이에게도 격려를 보낸다. 머지않아 제 목소리를 내는 신인으로 즐겁게 만날 수 있으리라 [2008 신춘문예 - 시] 당선소감 / 조연미 -꿈꾸고 원한다면 결국 다다를 것 당신의 이름은 은주…, 최은주(崔恩主). 내가 당신을 만날 수 있을까요. 언니의 가난한 끼니를 챙기며 자신의 젖을 짜 내밀던 스물 셋의 어미, 쌀가마니 쌓인 곳간을 보고 배 굶지 않아도 되겠다 싶어 시집간 스물의 처녀, 쌀 사오라는 심부름으로 책가방을 사 쫓겨난 맹랑하던 고아 계집아이. 당신과 나의 심장이 하나로 포개져, 그 심장의 두근거림이 멀리까지 징검다리를 놓던 시절, 당신이 도곤도곤 울려 주던 심장의 장단에 맞춰 세상으로 나아갈 걸음을 놓던 조그마하던 아이가 당신을 불러도 될까요. 시인들의 시를 따라 적던 굳은살 하나면 족하다, 했던 나날들. 늘 열정을 열망하면서도 먹기 위해서 잠자릴 위해서 다른 곳에 있어야 해도, 늘 그것만 생각하고, 꿈꾸고, 원한다면, 한 줄의 글은 당신의 심장소리를 따라 놓이던 징검다리처럼 나를 다다르게 할 거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나의 구원은 당신의 이름을 불러 보는 것으로 족하기도 했습니다. 살아있는 발화로 나는 다른 얼굴을 가진 무수한 당신을 만날 수 있을까요. 그리운 나의… 은주 씨. 부족한 작품을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과 부산일보에 감사드리며, 강형철 교수님, 박상률 교수님, 또한 강연호 교수님께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 2008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파문 / 이장근 결혼을 코앞에 두고 여자는 한강에 투신했다 이유를 묻지 않았다, 물은 여자를 결과로만 받아들였다 파문을 일으키며 열리고 닫히는 문 물은 떨어진 곳에 과녁을 만든다 어디에 떨어져도 적중이고 무엇이 떨어져도 적중이다 투신한 죽음도 다시 떠오른 삶도 물은 과녁을 만들어 적중을 알렸다 적중을 알리며 너는 왔다 온몸에 파문처럼 돋던 소름 빗나간 너의 말도 떨어지는 족족 적중했다 사랑처럼 민감한 것이 또 있으랴 이유 없이 떠나도 결과는 적중이었다 이유 없이 너는 가고 나는 안개 같은 거짓말로 너를 미워했다, 그리워했다, 지웠다, 썼다 사랑처럼 가벼운 것이 또 있으랴 구름이 되어 제멋대로 문장을 만들다 지치면 낱글자가 되어 떨어졌다 지금도 비가 온다 몸에 소름이 돋는다 네가 오고 있는 것이다 이 밤 이 세상에는 또 얼마나 많은 사랑이 투신할 것인가, 투신하는 족족 파문을 일으키며 적중할 것인가 심사평 예심을 거쳐 올라온 서른 분의 작품을 다시 검토해 본 결과 남은 작품은 ‘황소’(서은교), ‘아가리 마을’(이규), ‘가야동 계곡’(김순자), ‘아스팔트 칸트’(기우연), ‘입이 없는 비평’(최문희), ‘나무별똥’(문성록), ‘불안의 거처’(김지고), ‘일획’(정수원), ‘마네킹’(박정수), ‘소금밭의 기억’(김중곤), ‘바늘’(김명희), ‘파문’(이장근), ‘토마토’(하숙욱), ‘등피를 닦으며’(박선영) 등이었다. 매번 느끼는 일이지만 신춘문예의 특성상 새로운 것에 천착한 나머지 일부러 문장을 비틀고 기발한 착상에 몰두해 난삽한 기교의 과잉에 의한 억지가 많았다. 비튼 문장이나 발상이 독특한 감각으로 살아나 신선한 감동을 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새로운 감수성이 되기 위해서는 그것을 표현하기까지의 데생의 기초가 우선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냥 시단의 한 흐름을 따르고 있는 난해한 아류의 것들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런 점에서 새로움도 있고 표현의 신선함을 주는 작품으로 ‘일획’ ‘마네팅’ ‘소금밭의 기억’ ‘바늘’ ‘파문’ ‘등피를 닦으며’ 등을 들 수 있었다. 작품 하나 하나 놓고 볼 때 모두 독특한 포즈을 지니고 있어 오래 고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투고한 작품이 모두 고르다는 점에서 이장근의 ‘파문’을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파문’은 자칫 통속적으로 떨어질 평이한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독특한 시적 비전에 의해 삶의 진지성과 감동을 주는 데 효과를 이루고 있다. 그것은 이 시인이 지닌 삶에 대한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된다. 앞으로 더 깊은 비전에 천착해 좋은 작품을 생산하길 바란다. / 권기호(시인·경북대 명예교수) 정호승(시인) 당선소감 -어쩔 수 없는 유혹 시가 떠오르면 어쩔 수가 없었다.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하루 종일 2% 부족한 사람으로 살아야 했다. 시는 나를 2% 부족한 사람으로 살게 한다. 아니면 2% 부족한 나였기 때문에 시를 쓰며 사는지도 모르겠다. 돌이켜 보니 완벽한 것은 나를 유혹하지 못했다. 2%의 여백, 살랑살랑 여운을 남기며 가는 꼬리를 따라다녔다. 하늘도 어둠의 2%를 열어놓기 위하여 별을 띄웠으리라. 별이 빛나는 한, 지상에는 2%의 갈증을 느끼는 시인들이 노래를 부르리라. 부족하지만 나도 함께 노래를 부르고 싶다. 지하철 1호선을 타고 동대문운동장으로 가는 길에 당선통보를 받았다. 전화기를 들고 허둥지둥하는 나를 보고 있는 아내의 눈빛도 요란하게 떨렸다. 한나절이 지났지만 아직도 얼떨떨하다. 부족한 시를 뽑아주신 매일신문사와 심사위원님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낳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의 은혜, 옆에서 묵묵히 지켜봐 준 아내와 아들딸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시의 스승인 아모르파티님들과 어젯밤에 쓴 시를 오늘 아침에 들어주었던 제자들을 위해 붉은 마음을 펴서 장미꽃 한 송이를 접는 중이다. 이장근 씨 ◆약력 ▷1971년 경북 의성 출생 ▷한남대학교(대전) 국어교육과 졸업 ▷세일중학교(서울) 교사(국어) ------------------------------------------------------------------------------------ 2008 영남일보신춘문예 당선시-나무는 나뭇잎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 조혜정 나무는 나뭇잎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 조혜정 처음 찍은 발자국이 길이 되는 때 말의 반죽은 말랑말랑 할 것이다 나무는 나뭇잎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쏙독새는 온몸으로 쏙독새일 것이다 아랫도리를 겨우 가린 여자와 남자가 신석기의 한 화덕에 처음 올려놓았던 말. 발가벗은 말. 얼굴을 가린 말. 빵처럼 향기롭게 부풀어 오른 말. 넘치고 끓어오르는 말. 버캐 앉는 말. 빗살무늬 허공에 암각된 말. 처음 만난 노을을 허리띠처럼 차고 만 년 전 바람이 만 년 전 숲에서 불어온다 뒤돌아보는 여자의 열린 치맛단 아래 한번도 씻지 않은 말의 비린내 훅 끼쳐온다 여자가 후후 부풀린 불씨가 쏙독새 울음소리에 옮겨 붙는다 화덕 앞에 쪼그린 아이들 뜨겁게 반죽한새소리를 공깃돌처럼 굴리며 논다 진흙 같은 노을 속에 층층 켜켜 찍히는 손가락 자국들, 귀먹은 아이는 자꾸 흩어지는 소리를 뭉치고 굴린다 깊고 먼 어둠을 길어 올려 둥글게 반죽한다 천 개의 나뭇잎들이 천 개의 귀를 붙잡고 흔드는 소리, 목구멍 속에서 쏙독새 울음소리가 허공을 물고 터져나온다 바람이 석류나무 아래서 거친 숨결을 고르자 처음부터 거기 살고 있는, 아직도 증발하지 않은 침묵의 긁힌 알몸이 보인다 나무는 나뭇잎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쏙독새는 온몸으로 쏙독새인 그 길이 보인다 안팎으로 열리는 문만을 열어본 사람은 구름의 손잡이를 찾을 수 없다. 손잡이 없는 구름은 줄곧 나를 따라다녔다. 시(詩)는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었다. 누군가 길을 가르쳐주었지만 그가 말해준 빛나는 것들을 찾을 수 없었다. 목탁을 두드리는 것 같은 도마소리가 집집의 문밖으로 새어나오는 저녁이었다. 꿈에서 울다 깬 한밤중이면 이미 끝장난 세상의 다음날, 고요까지 다 사라졌는데 홀로 남아 소리를 애타게 기다리는 귀 같았다. 詩는 사라진 세상의 소리들을 하나씩 되살려 기억하는 꿈이었다. 나는 세상의 모든 나무들이, 바람들이, 돌멩이들이 한순간의 기억만으로영원을 견딘다고 믿는다. 구름의 손잡이를 잠시 잡았다 놓친 것 같은 이 느낌만으로 시를 놓지 않고 길의 끝까지 갈 수 있길 바란다. 시와 반시 문예대학 강현국·구석본 선생님, 가르침을 주신 모든 선생님들과 시를 쓰며 만난 소중한 친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과 영남일보에 감사드린다. 부모님과 내 가족, 꿈에서 울다 깬 '한밤중'에게도 감사를 전한다. ◇작가약력 △1963년 충남 당진 △목원대 국어교육학과 졸업 △2007년 11월 시와반시 하반기 신인상 {심사평] "작품 장점 찾으려 후속작까지 정독" 예심을 거쳐 넘어온 작품들의 수준은 비슷비슷했다. 거듭 읽어도 두드러진 작품이 보이지 않아 두 심사위원은 당선작을 결정하지 못한 채 숙고를 거듭했다.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은 '메타세콰이어' '유클리드 연대기' '구름 위의 문장들' '두부의 힘' '주왕산' '천 개의 붉은 방' '나무는 나뭇잎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등이었다. 이 작품들은 나름대로의 장점을 지니고 있었으나 그것으로 한 시인의 개성화에 이르기에는 부족한, 군데군데의 흠을 지니고 있었다. 심사위원들은 이 작품들의 장점을 발견하는데 주력하며 후속 작품들까지 정독했다. '메타세콰이어'는 발상이 신선하고 마지막 연이 진한 여운을 던진다는 미덕이 있으나 전체의 시가 지니는 언어들의 긴장감이 떨어지며 후속 작품들의 수준이 이 시를 받쳐주지 못한다는 결함이 지적되었다. '유클리드 연대기'는 일종, 이야기 시의 재미를 느끼게 한다. 최근에 유행하는 시의 흐름을 띠고 있다. 그러나 이야기 시는 편안하게 읽히기는 하나 언어의 긴장미가 떨어진다는 결함이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시 안에 탈자(脫字)가 있음도 주의를 요한다. '구름 위의 문장들'은 '붉은 호수'와 함께 최근 유행하는 시들을 많이 읽었거나 그런 습작의 훈련을 쌓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시가 일상성에서 일탈한 신선한 감수성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점이 결함으로 지적되었다. '주왕산'은 섬세한 감각의 미덕을 보이고 있다. 흔하지 않은 새 이름, 꽃 이름들이 불러일으키는 시적 아름다움도 돋보인다. 그러나 이런 류의 시가 갖는 공통적인 흠인 전달력과 무게의 약화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두부의 힘'은 부드럽고 유려한 언어의 감각을 지니고 있어 음미할수록 시의 맛이 우러나는 작품이고 부분 부분 좋은 구절들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전반부가 서술적이고 긴장미가 떨어져 독자를 견인할 힘이 약하다. 마지막으로 남은 작품은 '천개의 붉은 방'과 '나무는 나뭇잎 속으로…'였다. '천 개의 붉은 방'은 강렬한 이미지와 생동하는 어휘들을 동원하고 있음이 장점이다. 형태상으로도 완성도가 높아 오랫동안 심사위원들을 숙고케 한 작품이다. 하지만 허두 부분의 신선함에 비해 중간 부분이 흐려져 있다. 거기 비해 '나무는 나뭇잎 속으로…'는 허두부터 언어의 세련미가 돋보이고 참신한 상상력의 자장을 띠고 있다. 글을 쓰기 위한 정련의 과정을 말한 시인데 읽을수록 새로운 맛이 솟아난다. 그러나 후반부가 흐리고 기성 시인의 냄새를 풍기며 행을 좀더 압축할 필요가 있다. 심사위원은 이상의 작품들이 갖는 결함에서 조금이나마 자유로운 작품으로 보이는 '나무는 나뭇잎 속으로…'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응모자 여러분의 문운을 빈다. / 심사위원 이기철(시인·영남대 교수), 최동호(시인·고려대 교수) ------------------------------------------------------------------------------------- 2008년 대전일보신춘문예 시 당선작_책장애벌레 / 이종섶 낡은 책장은 망치로 부수는 것보다 드라이버를 사용하는 것이 더 간단하다 나무의 이음새마다 박혀있는 나사못 숨쉬기 위해 열어놓은 십자정수리를 비틀면 내장까지 한꺼번에 또르르 딸려 올라오고 허물처럼 남아있는 벌레의 집에 어두운 그림자가 밀려들었다 안간힘을 다해 붙어있는 것들을 대여섯 마리씩 잡을 때마다 하나 둘 떨어져나가는 책장의 근육들 바닥에 납작 주저앉을 무렵엔 한 줌 넘게 모인 애벌레가 제법 묵직했다 가지와 가지 사이를 물고 깊은 잠을 자야했던 동면기가 끝나면 훨훨 나비가 되어 숲속으로 돌아갈 줄 알았는데 책장이 늙어버린 탓에 애벌레만 집을 잃고 말았다 꼼지락거리는 것들 땅바닥에 던져버리려다 회오리돌기가 마디마디 살아있어 공구함에 보관해둔다 상처도 없고 눈물도 없으니 언젠가는 다시 나무속에 들어가 살게 될지도 모른다 밤만 되면 꾸물꾸물 기어 다니는 소리 나무의 빈 젖을 물고 싶어 오물거리는 소리 고아원의 밤이 깊어간다 “독특한 상상력… 개성 돋보여” -심사평 결심에 오른 작품들의 수준은 작년보다 높았다. 언어를 다루는 능력이나 깊이 있는 주제를 다루려고 노력한 점 등에서 대부분의 작품이 일정 수준에 올라 있었다. 그러나, 신춘문예 투고작들이 종종 그렇듯이 요설로 인해 불필요하게 글이 길어진 작품이 많다는 점, 그리고 개성적인 작품이 드물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이 중에서 다섯 사람의 작품이 거론되었다. ‘흑백필름’은 착상의 신선함에서, ‘털과 향로’는 섬세한 언어구사에서, ‘졸참나무 숲’은 주제를 추구하는 힘에서 좋은 인상을 주었다. 그러나 이 작품들은 약간씩의 결점도 가지고 있어 당선작으로 밀기에는 미진하였다. 마지막으로 ‘그녀의 집’과 ‘책장애벌레’를 놓고 꽤 오랜 시간 숙의하였다. 나름대로의 장점을 갖추고 있어 우열을 가리기가 어려웠던 때문이다. ‘그녀의 집’의 지은이는 상상력이 풍부하고 다양한 시어를 자유롭게 엮어가는 솜씨가 돋보인다. 특히 이 작품은 장애를 가진 몸으로 아이를 길러내는 여인을 토마토 나무와 연결하여 건강성을 추구한 짜임새 있는 전개가 좋았다. ‘책장애벌레’는 독특한 상상력을 보여준다. 낡은 책장을 부수는 과정을 담은 이 시는, 해체된 책장 자체보다 책장을 지탱하였던 나사들에 주목하였다. 나무를 물려 책장을 구성했다가 할 일을 잃은 나사들에게 연민과 애정을 표현한 이 시는, 이 시대에 자기 자리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상실감을 우회적으로 전달한다. 숙고 끝에 심사위원들은 시적 표현의 세련미보다는 개성 쪽의 손을 들어주기로 했다. ‘책장애벌레’는 생생하고 힘이 있어 감동을 창출하는 데 좀 더 강했다. ‘그녀의 집’도 당선작이 될 만한 역량을 가지고 있었기에 아쉬움이 남는다. 좌절하지 말고 좋은 시를 쓰기를 기대한다. / 심사위원: 김명인, 양애경 (예심 심사위원: 이정록, 박형준) 당선소감 “시는 진실한 나의 평생친구” 시를 습작하기 시작했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시와 함께 걸어온 듯 했으나 실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시는 날마다 나의 위로와 기도가 되었으나 나는 돌아서면 시를 잊어버렸다. 시는 나에게 기꺼이 친구가 되어주었으나 나는 결코 시의 친구가 되어주지 못했다. 시가 나에게 찾아와 조용히 말을 걸 때마다 나는 귀 기울여 들어주지 못했고 내 길을 가기에만 바빴던 것이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시 쓰기를 한 이후는 오히려 내가 시를 붙잡으려고 무던히 애를 썼고, 동시에 시를 절망하고 원망하는 일이 많았었다. 뒤늦게 다시 손을 벌리는 내가 친구에게 해서는 안 될 행동이었다. 그렇게 지내는 동안 친구와 함께 계속 한 길을 걸어갈 수 있을까 또다시 저울질 하곤 했었는데, 바로 그 순간 시가 슬며시 내게로 와서 내 손을 꼭 잡아주었다. 오랜 친구와의 반가운 해후가 이루어진 순간이었다. 이제 서로의 마음을 깊이 알고 이해하는 사이가 되었으니, 그동안 시가 나를 친구로 대해주며 나를 지켜주었던 것처럼 나도 시를 내 진실한 친구로 대하며 살고 싶다. 친구 이야기를 잘 듣고 잘 전하며 살고 싶은 것이다. 이 친구를 내게 보내주신 하나님께 제일 먼저 감사드린다. 가족과 함께 몇몇 이름도 부르고 싶다. 사랑하는 아내 선미와 두 딸 가을과 하늘, 시를 쓸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주었던 최영환 조수일 백미경 시인, 시의 깊이를 위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박은영 시인, 함께 동행하고 싶은 최은묵 시인. 무엇보다 심사위원들께 머리 숙여 깊이 감사드린다. 부족한 시를 뽑아주신 그 뜻을 알고 더욱 정진할 것을 약속드린다. ‘18일에 본심이 끝났으나 성탄선물을 드리려고 24일에 전화했다’는 대전일보사에도 가슴 벅찬 감사를 드린다. -이종섶 시인 1964년 경남 하동 출생 한양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 졸업 2007년 기독교타임즈문학상 시 당선 200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 2008 전북일보신춘문예 당선시-오리떼의 겨울 / 이지현 오리떼의 겨울 / 이지현 강 위에 오리가 머리를 숙였다 올린다 노란 부리로 쪼아낸 물방울은 베틀을 돌리지 않았는데도 모퉁이에서 가운데로 물결을 만들어간다 물결이 엉키지 않도록 휘휘 발 저어 옮기는 오리들, 혼자서는 저 넓은 강을 물고 날아오를 수 없다고 함께 강을 담아갈 보자기를 짜고 있는 것이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도 서로의 날갯소리를 엮을 수 있다는 것을 그리하여 코와 코를 매듭지을 수 있다는 것을 결국 삶의 보자기는 혼자 짜낼 수 없다는 것을 오리떼가 함께 날아 오를 때 알았다 살얼음이 발목을 조여와도 강의 끝자락을 팽팽히 잡아당기는 오리떼, 놓고 가는 건 없는지 막바지 점검을 끝낸 후 세상 바깥으로 일제히 날아 오른다 세상 안쪽으로 폭설이 쏟아진다 [심사평-시]시문학의 양산, 빈곤한 시대의 역설 위-정양(시인, 우석대 명예교수), 아래-이동희(시인) 시대는 참으로 수상하다. 사람됨의 가치와 삶의 의미가 물질의 위력과 현실 의제에 밀려나는 형국이니 어찌 수상타 하지 않으리오. 사람됨의 최소한의 덕목들이 정신의 가치로 승화되지 못하는 시대는 암울하다. 정신·문화적 가치가 황폐한 시대일수록 이를 안타까워하고 이를 정신력으로 복원시켜야 한다는 욕구는 더 뜨거워지는 것인가? 올해 신춘문예 시부문 응모작품 수가 모두 1351편에 이르렀다. 양적인 수확에서 기록적이며, 각 작품들이 드러내고자 하는 시정신의 치열성에서도 기대에 값하였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작품은 모두 10여분의 응모자들이 투고한 30여 편이었다. 이희정의 ‘기억의 성지’는 시적 완결성에서는 일정한 구성력을 확보하고 있으나 세계를 보는 안목에서 당선작으로 밀기에는 미흡하다는 데서, 원창훈의 ‘FTA’는 현실을 조응해 내고 이를 시적 어법으로 형상화하는 시력은 확인할 수 있으나 전체적인 시적 긴장도가 처진다는 데서, 이혜숙의 ‘빌딩’은 소재가 주는 비인간성의 측면을 예리하게 잡아내고 있으나 시정신의 참신함을 드러내지 못했다는 데서 심사자들의 선택을 망설이게 했다. 마지막까지 남은 이지현의 ‘오리떼의 겨울’은 일단 정통적인 시수업의 흔적을 느끼게 했다는 데서 안정감을 주었다. 삶의 진정성을 담아내기 위해 구축해 내는 이미지들이 여타 응모작들에 비해서 참신하였으며, 소재를 응시하는 서정으로 시의 의미 맥락을 담아내는 솜씨를 인정하면서 최종 당선작으로 삼았다. ‘함께 강을 담아갈 보자기를 짜고 있는 것이다’나 ‘강의 끝자락을 팽팽히 잡아당기는’ 등의 아름다운 의미나 참신한 표현은 시 수업을 희망하는 이들의 귀감이 될 만하였다. 더욱 분발하여 더 큰 시업의 성취를 기대한다. 사족 하나. 응모자들이 서너 편의 응모작 중에서 대표작으로 올린 시보다 그 다음 장의 시들에 호감이 가는 시가 많았다. 야구선수가 어깨에 힘이 들어가면 홈런이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시도 그럴 것이다. ------------------------------------------------------------------------------------- 2008 신춘한라문예 시 가작-오월의 잠 / 김은실 오월의 잠 / 김은실 황사를 빠져나오자 나의 행방은 나무들의 습성을 닮아간다 뒤를 돌아보면 오롯이 되살아나는 잎새들의 발자국 기린처럼 도시를 넘겨보거나 하루의 마지막 햇살들을 꿈인듯 곱씹어간다 사막이 될 사랑과 목마름 하나로 건너야 할 기억의 행방을 찾아내는 것 나무들의 소문이 심상치 않다 뿌리째 뒤적여도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해묵은 반란들, 나이테들의 구석에 처박혀 잠이 들거나 이루어지지 않을 불면의 등성이들을 오르내린다 숨이 가빠지고 발목이 푸르러진다 누군가 적어놓은 유서들의 단서를 찾는 동안 문맹의 슬픔이 불어온다 심장의 한 켠에 푸른 병조각이 들어차고 이 도시에선 어떤 나무이든 술의 날들을 깨뜨리지 않으면 조금씩의 간격도 좁혀지지 않는 것이다 황사를 빠져나오자 나의 의문들은 나무들의 틈바구니에 묶인다 어제의 위치와 잎들의 수런거림이 나를 가둔 채 숲 저쪽으로 사라진다 오후의 통화와 몇개의 망각이 푸른 위궤양을 앓는다 기린처럼 목을 늘려도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오월의 잠들, 계단을 타고 오르는 몇개의 잎새들을 상상하면서 나는 누군가 녹이다 만 박하사탕같은 사랑을 되짚어간다 2008년도 신춘한라문예 시 가작 김은실씨 -섬 안 이야기들 새로이 풀어낼 것 실로 오랫만의 시인이다. 구름을 쫓거나 들꽃들의 길목을 지키는 동안에도 목마름은 그치지 않았고 섬, 꿈으로부터 망명하듯 달려온 것이 또다른 문제였다. 섬의 곳곳은 잃어버린 시의 시간들이 되어갔고 때로 파도들의 끝에 이르러서는 시에 대한 멀미는 더욱 가까운 맥박소리처럼 깨어났다. 서울은 점점 아득해졌고 기억의 시침들은 몇 계절의 힘으로도 힘없이 휘어졌으리라. 굴절된 시간의 페이지를 넘기는 사이 섬 안의 새벽과 노을이 조금씩 밀물과 썰물로 뒤바뀌는 질서를 배우게 되었고 겨울산과 낯선 말들의 골짜기를 헤매는 사이 가슴 한 켠에 묻어나는 푸른 반점의 비표, 그게 시였으리라. 서울을 떠나며 영영 헤어질거라 단정했던 시가 나보다 더 깊은 섬을 헤매고 있었음을…. 이제 꿈을 꾼다는 건 또다른 종류의 부채감이다. 자유롭던 공상, 무수한 밤들이 부려준 섬 안의 이야기들도 새로운 등잔 새로운 불면 속에서 밝혀내야 하리라. 인연이란 참 오래된 전생같다. 까풀까풀 희미해지던 가슴 속 오두막 하나 그리움의 더듬이로 찾게 해준 차령문학의 박경원 선생님. 이젠 좀 더 제 몫의 방식으로 깨있는 법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늘 이면의 표정 속에서 낯선 행장과 밀행하던 나를 알아 보신 강화문학회와 최 회장님, 차소담 박은혜선배 문지수 황인호후배 그리고 그동안 함께 했던 몇몇 분들…. 내 안의 분신인 훈, 혁과 함께 기쁨을 나누며 뽑아주신 선생님들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1963년 서울출생 ▷차령문학회 회원 ▷강화문학회 회원 [시 심사평]한줄기 사랑 놓지않으려는 당당함 시(詩)가 말(言)의 사원(寺)이라고 할 때, 그것은 사유와 언어의 적절한 긴장을 담보하는 의미일 것이다. 시가 다른 글쓰기보다 얼마간 힘들고 신중하게 여겨지는 것도 바로 그 긴장의 밀도가 유다른 데서 연유하는 것이라 여겨진다. 좋은 시란 그 숨 막히는 긴장을 잘 견뎌낸 결과물에 다름 아니다. 2008 한라신춘문예 시부문은 1백50명이 넘는 많은 분들이 응모하여 풍성한 말의 성찬을 이루었고, 나름대로 각각의 솜씨들을 뽐내고 있었으나 아쉽게도 언어와 사유의 긴장을 잘 견뎌내고 있는 작품은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어느 정도 가능성이 보이는 작품들은 김경애, 김은실, 김일호, 명순이, 송정애, 이언지, 정두섭 제씨의 것들이었다. 이분들은 시적 구성이나 언어를 다루는 기술에서 일정한 성취를 보여주고 있었지만, 반면에 사유를 끌어가는 힘과 긴장의 밀도 면에서 각기 일정한 한계를 갖고 있었다. 그 중 사유의 깊이와 언어의 긴장에서 김은실씨의 '오월의 잠'이 조금 더 돋보였다. '오월의 잠'은 권태와 절망의 팍팍한 삶 속에서도 한 줄기 사랑을 놓지 않으려는 자아의 의지를 담담하게 그린 작품으로써 구성의 탄탄함과 신선한 비유가 뛰어났지만 부분적으로 모호한 진술과 맥락의 불분명함 때문에, 그리고 다른 작품들의 완성도가 부족한 점도 고려하여 아쉽지만 가작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심사자가 인색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후일을 위한 격려 차원임을 이해하여 정진을 바란다. <김승립·시인> |
첫댓글 듬성듬성 노력한다 눈높이 시선의 깊이 무한 이다 다음날 약속하며........
또 땡큐~~~
오리떼의겨울 삶의 진정성 구축해 내는 이미지 심사평을 열심히 또 읽고 ....난 이런 시가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