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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16 |
원전사고가 났다는 소식에 대한 첫 반응은 "큰일 날 뻔 했군!"이었다. 사고를 숨기고 거짓말한 사실이 드러난 다음날은 "그래? 누구야, 속인 사람이!"로 바뀌었다. 일본 후쿠시마(福島) 원전 사고 1주년을 맞아 가뜩 민감해진 원전 공포증 때문일까. 고리원전 정전사고 은폐소식은 더욱 큰 충격이었다. 이웃나라의 참상을 보고도 그런 일을 저지르다니···. 2월 9일 오후 8시 34분 정비작업 종사자 실수로 부산시 기장군 고리원자력발전소 1호기 전력공급이 끊겼다. 외부 전원이 끊기고 비상발전기도 작동되지 않아 발전시설 동력이 완전히 끊겼다. 정전기간이 길어지면 냉각수가 순환되지 않아 후쿠시마 원전처럼 핵 연료봉이 녹아내리는 용융현상이 일어날 판이었다. 다행히 13분만에 전원이 복구되어 그런 사고는 면했지만, 비상전원까지 고장 난 일은 1978년 원전 운전개시 이후 처음이었다. 김수근 부산시의원이 사고소식 듣지 못했다면 사고는 공교롭게도 원전사고 방지대책이 발표된 날 일어났다. 2월 9일 오전 지식경제부는 '고장률 제로'를 목표로 삼는다는 원전사고 예방대책을 내놓았다. 작업자 과실 책임을 엄중하게 묻고, 기관장 평가에도 사고를 반영하겠다는 것이 주 내용이었다. 코앞으로 닥쳐온 핵 안보 정상회의를 겨냥한 '안심처방'이었다. 바로 그날 밤 사고가 났는데도 발전소와 한수원은 한 달이 넘도록 숨기고 거짓말까지 했다. 무슨 낯으로 핵 안보 회의를 열 것인가. 사고는 일어날 수 있다. 아무리 조심해도 피할 수 없는 것이 사고다. 그러나 그것을 숨기고 거짓말까지 한 일은 절대 용납될 수 없다. 그것은 양심과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대형참사의 원인이 된다. 비슷한 사고의 재발은 큰 사고로 이어진다. 운전일지를 조작하고 회의를 열어 사고를 숨긴 일은 그래서 절대 묵과할 수 없는 '범죄'다. 정부는 그런 일을 막기 위해 모든 원전에 원자력안전위원회 소속 주재관들을 상주 시키고 있다. 고리원전에도 당시 4명의 주재관이 있었지만 까맣게 몰랐다고 한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안전도를 높인다고 원자력안전위원회라는 기구를 신설해 장관급을 책임자로 앉히고도 사고를 방지도, 적발도 못했다. 그런 기구를 왜 만들어 헛돈을 썼나. 보도에 따르면 사고 20여분 후 발전소장과 처장 실장 팀장 등 핵심간부들이 회의를 열어 사고를 숨기기로 결정했다. 그로부터 1개월만인 3월 8일, 김수근 부산시의원이 고리원전을 찾아가 사고소문 확인을 요청했지만 발전소 측은 딱 잡아뗐다. 확인요청 사실을 보고 받은 신임 고리원전본부장이 10일 한수원 본사에 전화로 이 사실을 보고한 뒤에야 비상이 걸렸다. 그런데도 한수원은 이 사실을 즉각 발표하지 않고 사흘을 묵혔다. 면접보고를 받는다, 정부에 보고한다, 하면서 시간을 끌다가 13일에야 국민에게 알렸다. 늑장보고에 대해 한수원은 "경황이 없어서 보고할 시기를 놓친 것"이라고 말했다. 발전소장이 주재한 회의에서 사고를 숨기기로 결정한 사실을 또 숨긴 것이다. 부산시의회 김 의원이 사고를 알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2월 20일 기장군의 한 음식점에서 식사 중 "고리원전 1호기에서 정전사고가 났는데 괜찮은지 모르겠다"는 옆 자리 손님들 말을 듣고 알게 됐다는 것이다. 김 의원이 그 말을 듣지 않았더라면, 그가 원전에 사실 확인을 요청하지 않았더라면, 사고발생은 지금도 비밀일 것이다. 그랬다면 같은 사고는 또 일어날 수밖에 없고, 대형사고 발생 확률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안전이 120% 보장되지 않는 한 재운전 안돼 고리원전에서 부산은 불과 20km 거리다. 울산도 멀지 않다. 수백만 시민을 지척에 둔 곳에서 원전사고가 일어난다는 것은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다. 사고지점 반경 30여km 지역이 유령도시가 된 후쿠시마를 보면 알 것이다. 지금도 치명적인 방사성 물질이 배출되어 사고 수습에 별 진척이 없다. 녹아내린 핵연료봉과 파괴된 원자로를 제거하고 발전소를 폐쇄하려면 몇 십 년이 걸릴지 가늠도 할 수 없다고 한다. 고리원전 1호기는 우리나라 원전 1호기다. 1978년 수명 30년으로 설계되어 2007년 폐쇄될 것이었지만, 운전기간이 10년이나 연장되었다. 정부는 핵심부품을 교체해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비상전원까지 끊긴 사고가 난 것은 시설노후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전력생산에 차질이 있더라도, 안전이 120% 보장되지 않는 한 재운전을 해서는 절대 안된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
첫댓글 한국일보에서 보였던 문교우의 논설집은 격동하던 우리나라의 모습이었고, 아직도 그의 필력은 가히 예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