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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 플러스의 시
『巨 像』(1960)
장마철의 띠까마귀 Block Rook in Rainy Weather
저기 뻣뻣한 가지 위에
젖은 띠까마귀가 웅크리고 앉아
빗속에서 깃털을 다듬고 또 다듬는다.
나는 어떤 기적이나
우연이
내 눈에 그 광경을 불붙여 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또한
변덕스런 날씨에서 어떤 의도를 찾지도 않는다.
그저 얼룩진 잎새들이 아무런 禮式이나 前兆없이
떨어지도록 내버려둘 뿐이다.
솔직히 말해 이따금 말없는 하늘에서
무슨 말대꾸라도 있기를 바라지만,
그걸 대놓고 불평할 수는 없다.
그래도 어떤 작은 빛이
부엌 식탁이나 걸상에서
빛을 내며 상체를 내밀지도 모른다.
마치 天上의 불길이
가장 무딘 대상들을 때로 점거하듯이--
그리하여 아량과 명예와
혹은 사랑이라는 것을 줌으로써
무관한 것이었을 幕間을
신성하게 하듯이. 어쨌든 이제 나는 조심스럽게
걷는다. (이 따분하고 황폐한 풍경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회의적이지만
교활하게, 어떤 신사가
갑자기 내 팔꿈치에서 확 타오를 수도 있음을
알지 못한 채, 내가 아는 건 단지
검은 깃털을 다듬는 띠까마귀가 환하게 빛나
내 五官을 사로잡고, 눈꺼풀을
끌어올리며, 완전한 中性狀態에 대한
두려움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휴식을 허용해줄 수 있다는 것뿐. 운이 좋으면
이 피로의 계절을 끈질기게 버텨나가
보잘것없는 내용이나마
기워 맞출 수 있으리라.
기적이 일어나기도 한다.
光輝의 발작적 장난을 굳이 기적이라고
부르고 싶어 한다면 말이다. 다시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천사에 대한, 그 드물고 느닷없는 강림에 대한
그 오랜 기다림이.
야윈 사람들 The Thin People
그들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있다. 영화 스크린에 나오는
창백한 사람들처럼 빈약한 체구의
야윈 사람들. 그들은
實在하지 않는다고 우리는 말한다.
그들이 굶주려 야위어가고,
평화가 가장 인색한 식탁 밑에 있는
쥐들의 배를 볼록하게 해 줄 때도
그들의 꽃대 같은 四肢를
다시는 살찌우려 하지 않았던 것은
단지 영화 속이었다고, 또 우리가 어릴 적
불길한 記事거리를 만들어주던 전쟁 때문이었다고.
그 긴 굶주림과의 싸움 끝에
그들은 야윔 속에서 견디며
훗날 우리의 악몽 속에 들어오는
재능을 갖게 되었다. 그들의 위험은
총이나 욕설이 아니라
야윈 침묵,
벼룩에 뜯긴 당나귀 피부에 감싸여,
불평도 없이, 언제나
양철컵에서 식초를 따라 마시며, 그들은
제비 뽑힌 속죄양의 참을 수 없는 圓光을
두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처럼 야위고
그처럼 잡초 같은 종족은 꿈속에만 머무를 수 없었고
머리속의 축소된 나라에서
異國의 희생자들로 남아 있을 수 없었다.
마치 진흙 오두막에 사는 노파가
밤마다 뜰에 발을 내민 달을
칼로 잘라내어
마침내 조그마한 빛의 껍질로 남을 때까지
그 관대한 달의 허리에서
살찐 고깃조각을 잘라내는 일을 그만두지 못하듯이.
이제 야윈 사람들은 새벽 어스름이
푸르스름해지고 붉어지며, 이 세계의
윤곽이 또렷해지고 색깔로 가득찰 때
그들 자신을 말살하지 않는다.
그들은 햇빛 비치는 방 안에서 살아간다. 겹장미와
수레국화가 그려진 작은 벽은
그들의 야윈 입술의 미소와
시들어가는 왕관 밑에서 창백해진다.
서로를 버텨주는 그들!
우리에게는 그들의 용맹한 大軍을 막을
요새가 되어 줄 만한 풍요롭고 깊은 황야가
없다. 보라, 야윈 사람들이 그저 숲속에 있으면서
이 세상을 장수말벌의 둥지처럼 야위게 하고
더 창백하게 만들 때면, 어떻게 나무 줄기가 평평해지고
그 좋은 갈색을 잃게 되는가를.
그들이 뼈 하나 꼼짝 않아도.
神託의 몰락에 관하여 On the Decline of Oracles
아버지는 돛을 올린 배처럼 생긴 두 개의 청동 책꽂이 곁에
아치형의 조가비 하나를 올려놓고 있었다.
내가 귀를 기울이자, 그것의 차가운 이(齒)는
자기가 들을 수 없는 바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조가비를 들고 있던 뵈클린* 영감이 그리워한
그 애매한 바다의 목소리들로 시끄러웠다.
조가비가 그의 귓속에 들려준 이야기를
그는 알았지만, 농부들은 아무도 모른다.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그리고 돌아가시면서
당신의 책과 조가비를 없애버리라고 유언을 하셨다.
책은 다 태워버렸고, 조가비는 바다가 삼켜버렸지만
난, 난 아버지가 내 귀에 담아준 목소리들을
간직하고 있고, 뵈클린의 유령이 슬퍼하는
그 보이지 않는 푸른 파도의 모습을
내 눈 속에 간직하고 있다.
농부들은 祝宴을 즐기며 자꾸 늘어만 간다.
꼬챙이에 꿰어진 황소를 덮어가리며 나는
보다 준엄한 시대의 紋章인
놋쇠 백조도 불타는 별도 보지 못하고,
세 남자가 안마당에 들어와
계단을 올라오는 모습만 볼 뿐이다.
잡담하는 그들의 무익한 映像은
조잡한 연재만화의 그림처럼
속세를 떠난 눈을 침범하고
이 갑작스런 사건 쪽으로
대지는 이제 방향을 바꾼다. 삼십 분이면
나는 낡은 계단을 내려가, 올라오고 있는
그 세 남자를 만나게 되리라. 현재나
과거보다 더 하잘 것 없다-- 이 미래는.
한때 트로이의 탑들이 무너지는 모습을 알아보고
북쪽에서 惡이 나타나는 것을 본 적이 있는,
이젠 흐릿해진 눈에 그러한 비젼은 하잘 것 없다.
* 아르놀트 뵈클린, 스위스의 후기 낭만파 화가
조각가 Sculptor
- 레너드 배스킨을 위하여
그의 집으로 無形의 것들은
간다. 비젼과 지혜를
그의 몸처럼 만질 수 있고 무게가 있는
형체들과 끝없이 바꾸기 위해.
움직이는 손은 司祭의 손보다
더 사제처럼 움직이고, 빛과 공기의
헛된 映像들이 아니라
청동과 나무와 돌로 된 안전한 駐屯地를 불러낸다.
완강하게, 결이 조밀한 나무로,
대머리 천사는 연약한 빛의 모양을 뜨고
형체를 만든다. 팔짱 끼워진 팔은
그의 성가신 세계가 바람과 구름의
텅 빈 세계를 가리는 것을 지켜본다.
청동 死者들이 반항적인 태도와 건장한 모습으로
마루를 지배하며,
우리를 왜소하게 만든다. 그가 없어서
장소와 시간과 형체마저 털려버린
그 눈 속에서 우리의 형체는
꺼지려고 깜박거린다.
경쟁심 많은 혼령들은 內紛을 일으키고,
들어가려 애쓰다가, 악몽 속으로 들어간다.
그의 끌이 우리의 생명보다 더 활기찬 생명을,
죽음의 휴식보다 더 견실한 휴식을
그들에게 물려줄 때까지.
겨울 배 A Winter Ship
이 부두에는 거창한 선착장 같은 건 없다.
빨간색과 오렌지색의 거룻배들은 번지르르하고
파괴될 성싶지 않은 구식 독크에 사슬로 매여
기우뚱거리고 부풀어 오른다.
바다는 기름의 피부 밑에서 고동친다.
갈매기 한 마리가 선술집 마룻대 위에서 포즈를 잡더니,
재(灰)의 쟈켓을 입고, 숲처럼 침착하게,
격식을 차려 바람의 물결을 타고 간다.
납작한 항구 전체가 단추 같은
그의 노란 눈의 圓 속에 닻을 내렸다.
소형 비행선이 낮달이나 양철 여송연처럼
물고기 링크 위에서 유영하고 있다.
부식된 낡은 銅版처럼 전망은 흐릿하다.
사람들은 새끼 게 세 통을 내려놓는 중이다.
저 멀리 부두의 말뚝과
흔들거리는 창고 건물과 기중기와 굴뚝과
다리가 함께 무너지려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 주위에선 바다가 미끄러지며
엉성한 사투리로 수군대다가
죽은 대구와 타르의 냄새를 싫어간다.
멀리서 파도는 허풍선이 얼음과자가 되리라--
공원에서 자는 사람들이나 연인들이 지내기엔 비참한 달.
우리 그림자조차 추위로 창백하다.
우리는 태양이 솟아오르는 모습을 보길 원했지만
수염나고 부풀어오른 얼음 肋材를 두른 배.
서리의 신천옹, 사나운 날씨의 유물,
하나같이 유리막에 싸인
윈치와 支索을 만났을 뿐.
태양은 곧장 그것을 줄여 놓으리라.
파도 끝 하나하나가 칼처럼 반짝거린다.
은 유 Metaphors
난 아홉 음절*로 된 수수께끼.
코끼리, 육중한 집,
두 개의 덩굴손 위에서 거니는 멜론,
오 붉은 과일, 상아, 좋은 材木들!
발효되느라 크게 부풀어 오른 이 빵덩어리,
이 두둑한 지갑에서 새로 주조된 돈.
난 수단이고, 무대이며, 새끼 밴 암소,
난 녹색 사과 한 부대를 먹고는,
내릴 수 없는 열차에 올라탔어.
* pregnance(임신)을 뜻함
둥근 돋을새김 Medallion
껍질 벗겨진 오렌지 나무에 세공된
별과 달이 있는 문 옆에서
청동 뱀은 구두끈처럼 굼뜨게
햇빛 속에 누워 있었다. 죽었지만
여전히 유연한 그의 턱은
빠진 채, 싱긋거리는 모습은 뒤틀려 있었고,
혀는 장밋빛 화살 같았다.
손 위로 나는 그를 잡아들였다.
내가 불빛 속에서 그를 뒤집었을 때
그의 조그마한 주홍색 눈은
유리 속의 불꽃으로 점화되었다.
내가 언젠가 돌을 쪼갰을 때
석류석 조각도 그렇게 빛났었다.
태양이 송어를 부패시키듯
그의 등은 먼지로 황사가 되어버렸다.
그런데도 그의 배(腹)는 쇠사슬로 엮어 만든 갑옷 속에서
그 불을 꺼뜨리지 않았다.
흐릿한 배의 비늘 하나 하나에선
오래된 보석들이 그을려지고 있었다.
젖빛 유리를 통해 본 日沒.
그리고 나는 어두운 상처 속에서
흰 구더기들이 핀처럼 가느다랗게 꾸물대는 것을 보았다.
마치 쥐라도 소화시키는 듯
그의 내장은 볼록해져 있었다.
칼처럼, 그는 몹시 순결했다.
순수한 죽음의 금속. 철도계원이
내던진 벽돌이 그의 웃음을 완성시켰다.
巨 像 The Colossus
저는 결코 당신을 온전히 짜맞추진 못할 거예요.
조각 조각 잇고 아교로 붙이고 올바로 이어 맞추어.
노래 울음, 돼지가 꿀꿀거리는 소리, 음탕한 닭 울음 소리가
당신의 커다란 입술에서 새어나와요.
그건 헛간 앞뜰보다도 더 시끄럽답니다.
아마 당신은 스스로를 神託이거나
죽은 사람들, 아니면 이런 저런 神들의 대변자로 생각하겠지요.
삼십 년 동안이나 저는 당신의 목구멍에서
진흙 찌끼를 긁어내려고 애썼답니다.
그런데도 전 조금도 더 현명해지질 못했어요.
아교 남비와 소독액이 담긴 바께쓰를 들고 작은 사닥다리를 기어올라
저는 잡초만 무성한 당신의 너른 이마를 슬퍼하면서
거대한 두개골 板을 수선하고
민둥민둥한 흰 고분 같은 당신 눈을 청소하려고
오레스테스* 이야기에 나오는 푸른 하늘이
우리 머리 위에 아치 모양을 이루어요 오 아버지, 혼자만으로도
당신은 로마의 대광장처럼 힘차고 역사적이에요.
전 까만 삼나무 언덕 위에서 도시락을 폅니다.
홈이 패인 당신의 뼈와 아칸더스 잎 모양의 머리칼은
옛날처럼 어수선하게 지평선까지 널려 있어요.
그처럼 황폐하게 되려면
벼락 한 번으로는 부족할 거예요.
밤마다 전 바람을 피해
양의 뿔 모양을 한 당신의 왼쪽 귀 속에 쭈그리고 앉아
붉은 별들과 자줏빛 별들을 헤아린답니다.
태양은 기둥 같은 당신 혀 밑에서 떠올라 와요.
제 시간은 그림자와 결혼했어요.
이제 전 더 이상 선착장의 얼빠진 돌에
배의 龍骨이 긁히는 소리엔 귀 기울이지 않아요.
*오레스테스- 희랍신화, 아가멤논과 클뤼템네스트라의 아들. 어머니를 죽인 죄로 복수의 여신들에 의해 쫓겨남
생일을 위한 詩 Poem for a Birthday
1. 누구일까 Who
꽃피는 달은 끝났어요. 과일들은 入庫되었고
누가 먹었거나 썩어버렸어요. 난 입밖에 없어요.
10월은 저장하는 달.
이 헛간은 미이라의 胃처럼 곰팡내가 나지요.
낡은 연장들, 손잡이들, 그리고 녹슨 엄니들.
난 여기 죽은 球根들 사이에서 마음이 편해요.
내가 화분 속에 앉아 있더라도
거미들은 알아차리지 못할 거예요.
내 마음은 성장을 저지당한 제라늄.
바람이 내 허파를 내버려두면 좋을 텐데.
개의 몸뚱이가 꽃잎을 뒤적거립니다. 꽃잎들은 혼란스럽게 피어있군요.
그것들은 수국 덤불처럼 덜그럭거리죠.
이제 서까래에 못박힌
썩어가는 구근들이 내게는 위안이 돼요.
冬眠하지 않는 同宿者들.
양배추 구근들, 벌레먹은 자줏빛, 銀 -釉藥,
노새 귀의 드레싱, 좀먹은 모피들, 그러나 녹색의 심장을 가진
돼지 비계처럼 흰 그들의 정맥.
오 쓸모의 아름다움!
오렌지색 호박은 눈이 없어요.
이 홀은 자신들을 새라고 생각하는 여자들로 가득차 있군요.
이곳은 따분한 학교.
난 어떤 꿈도 갖고 있지 않은
뿌리이고, 돌이고, 올빼미 똥이에요.
어머니, 당신은 유일한 입이고
전 그 혀일 거예요. 다른 것의 어머니
절 드세요. 휴지통을 멍하니 바라보는 자, 문간의 그림자.
난 말했죠. 난 이것을, 작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무지무지하게 큰 꽃들,
아주 사랑스러운, 자줏빛과 붉은 입들이 있어요.
검은 딸기의 줄기들은 나를 울렸어요.
이제 그것들은 전구처럼 나를 밝혀주는군요.
몇 주 동안 난 아무 것도 기억할 수가 없어요.
2. 어두운 집 Dark House
이곳은 무척 크고 어두운 집.
잿빛 종이를 씹으며,
아교방울을 짜내며,
휘파람 불며, 귀를 꿈틀거리며,
다른 것을 생각하며,
조용한 구석의 작은 방부터 하나 하나
나 혼자 이 집을 만들었어요.
그 많은 지하실,
뱀장어 같은 움들이 있다니!
난 올빼미처럼 토실토실하고
내 스스로의 빛으로 보지요.
오늘이라도 난 강아지들을 낳거나
말의 어미가 될 수도 있어요. 배가 움직이네요.
난 지도를 더 만들어야 해요.
이 骨髓로 가득찬 터널들!
사마귀 투성이 손을 가진 나는 내 길을 파먹어 들어가요.
올마우스*는 덤불과
고깃단지를 다 핥아 먹는군요.
그는 돌투성이 구멍인
오래된 우물에서 살지요. 그는 비난받아 싸요.
그는 살찐 편이구요.
자갈 냄새, 순무 같은 방들.
조그마한 콧구멍들이 숨을 쉬고 있네요.
작고 소박한 사랑!
코처럼 뼈없는 어리석은 것들.
뿌리의 상자 속은
따뜻하고 견딜 만하답니다.
여기 꼭 껴안고 싶은 어머니가 있어요.
* 올마우스- 아프리카 민담에 나오는 <입뿐인 녀석>이란 뜻
3. 매내드 Maenad
한때 난 평범했었어요.
지혜의 손가락을 먹으며
난 아버지의 콩나무 옆에 앉아 있었지요.
새들은 젖을 만들었어요.
천둥이 치면 난 납작한 돌 아래 숨었답니다.
입들의 어머니는 날 사랑해주지 않았어요.
늙은이는 인형으로 오그라들었구요.
오 난 너무 커져서 퇴보할 수도 없었답니다.
새젖은 깃털이고,
콩잎은 손처럼 벙어리에요.
이번 달은 뭘 하기에도 별로 적당치 않아요.
죽은 이들은 포도잎 속에서 익어갑니다.
붉은 혀가 우리 사이에 있어요.
어머니, 제 안뜰에는 들어오지 마세요.
전 딴 사람이 되어가고 있으니까요.
게걸스레 먹어대는 Dog-head**
어둠의 딸기를 먹여주세요.
눈꺼풀은 감기지 않을 거예요. 시간은
태양의 거대한 배꼽에서
그 끝없는 광채를 풀어내는군요.
난 그 모든 걸 삼켜버려야 해요.
아가씨, 달의 큰 통 안에 있는 이 사람들은 누구인가요--
잠에 취해 사지를 버둥거리고 있는 이들은?
이 빛 속에서는 피가 검게 보여요.
제 이름을 알려주세요.
* 매내드- 희랍신화, 디오니소스신을 섬기던 여자들
** 독헤드- 아프리카 민담에서 <개대가리>라는 뜻
4. 짐승 The Beast
일찍이 그는 황소 인간.
음식의 왕, 내 행운의 동물이었어요.
그의 소유물인 공기 속에서 숨쉬는 일은 수월했지요.
태양은 그의 겨드랑이 밑에 앉아 있었어요.
곰팡내 나는 건 없었답니다. 눈에 띄지 않는 자잘한 것들은
부지런히 그의 시중을 들었어요.
푸른 자매들은 날 딴 학교로 보냈지요.
원숭이는 바보모자를 쓰고 살았어요.
그는 줄곧 내게 키스를 불어 보냈답니다.
난 그를 거의 알지 못했어요.
그를 떨쳐버릴 순 없을 거예요.
눈물어린 불쌍한 멈블포오즈*,
파이도 리틀소울*, 내장의 친구.
그에겐 쓰레기통 하나로 충분하지요.
어둠은 그의 뼈랍니다.
어떤 이름으로 부르건, 그는 따라올 거예요.
난 쓰레기 찬장과 결혼했었지요.
난 물고기 웅덩이에서 잔답니다.
이 아래쪽에선 하늘이 언제나 낮게 드리워져요.
흑월로우*는 창가에 있어요.
이 달엔 별 벌레들이 날 구해주진 못할 거예요.
난 개미떼와 연체동물 사이
시간의 창자 끝에서 살림을 꾸려나가요.
無의 공작부인,
헤어터스크*의 新婦가 되어.
* 멈블포오즈, 파이도 리틀소울, 흑월로우, 헤어터스크- 아프리카 민담에 나오는 존재들. 각각, <우물거리는 발>, <어린 영혼 파이도>, <돼지수렁>, <털상아>의 뜻.
5. 갈대 무성한 연못의 플루트 가락 Flute Notes from a Reedy Pond
이제 추위가 체에 걸러져 층층이 떨어지며
백합 뿌리에 있는 우리들의 亭子로 옵니다.
머리 위에선 여름의 낡은 우산들이
골수 없는 손처럼 시들어 가는군요. 피난할 곳이라곤 없습니다.
매시간 하늘의 눈(眼)은 공백의 영토를
넓혀갑니다. 별들이 그렇게 가까이 보일 수 없어요.
벌써 개구리 입과 물고기 입은
나태함의 술을 마시고 있고, 만물은
망각의 부드러운 大綱膜 속으로 가라앉네요.
바래기 쉬운 색깔들은 희미해집니다.
물여우들은 비단 케이스 속에서 졸고 있고,
燈머리를 한 요정들도 彫像처럼 꾸벅꾸벅 졸고 있어요.
부리는 사람의 줄에서 풀려난 꼭두각시들이
뿔가면을 쓰고 잠자리에 드네요
이건 죽음이 아니고, 보다 안전한 어떤 것이에요.
날개달린 신화는 더 이상 우릴 끌어당기지 않을 거예요.
골고다의 물 위 갈대 끝에서 노래하는
빠진 털들은 혀가 없고
아기 손처럼 가냘픈 神은
깍지를 쓰고 대기 속으로 나아갈 테니까요.
6. 마녀 화형식 Witch Burning
장터에선 사람들이 마른 나무토막을 쌓아올리고 있어요.
그림자의 덤불은 누추한 코우트. 난 나 자신의 밀랍 像인
인형의 몸뚱아리에서 살고 있어요.
여기에서 병은 시작됩니다. 나는 마녀들의 과녁판.
악마만이 악마를 먹어치울 수 있지요.
붉은 잎의 달에 난 불의 침대로 기어 올라가요.
어둠을 나무라기는 쉽지요. 門의 입,
지하실의 배(腹), 사람들이 내 불꽃을 불어서 꺼버렸어요.
까만 껍질의 숙녀는 나를 앵무새 새장 속에 가두네요.
죽은 사람들의 저 커다란 눈!
나는 털북숭이 유령들과 친한 사이에요.
연기가 이 텅 빈 유리병 주둥이에서 방향을 바꾸는군요.
전 조그마할 때엔 남을 해치지 못해요.
이리저리 돌아다니지 않으면 아무것도 뒤집어엎지 않을 거예요. 쌀알처럼
작고 둔한 냄비뚜껑 밑에 앉아서 난 그렇게 말했죠.
사람들은 원형으로 버너의 불길을 세게 하고 있어요.
우리는 전분으로 가득 차 있지요. 내 희고 작은 친구들, 우리는 자라나요.
처음엔 아파요. 붉은 혀가 진실을 가르쳐 줄 거예요.
어미 딱정벌레여, 손을 벌려만 주세요.
난 불에 그슬린 자국 하나 없는 나방이마냥 양초의 입을 지나 날아갈 테니까요.
내 형제를 돌려주세요. 난 돌 그림자 속에서 먼지와 짝지운
날들을 해석할 준비가 되어 있답니다.
내 발목이 빛나요. 밝은 빛이 내 넓적다리까지 올라오는군요.
이 모든 빛의 衣裳 속에서 난 길을 잃었어요. 길을 잃었어요.
7. 돌 들 The Stones
이곳은 사람들이 수선되는 도시입니다.
난 커다란 모루 위에 누워 있어요.
내가 빛 바깥으로 떨어졌을 때
단조롭고 푸른 하늘의 圓은
인형의 모자처럼 날아가 버렸습니다. 말없는 찬장 같은
무관심의 胃 속으로 난 들어갔었죠.
어미 절구공이가 나를 축소시켰습니다.
난 조용한 조약돌이 되었어요.
뱃속의 돌들은 평온했었고
주춧돌도 얌전했어요. 무엇에 의해서도 떠밀리지 않고,
다만 입구멍만이 소리를 냈답니다.
침묵의 채석장에 있는
끈질긴 귀뚜라미처럼
도시의 사람들이 그 소리를 들었지요.
그들은 말없이 따로 떨어져 있는 돌들과
그들이 어디 있는가를 소리 높이 외치는 입구멍을 찾아 다녔어요.
난 태아처럼 취해서
어둠의 젖꼭지를 빨고 있어요.
식량 튜브들이 날 껴안아요. 스펀지가 내 苔癬*을 입맞추며 지워 없애네요.
보석 세공의 大家가 돌 눈 하나를 비집어 열려고
끌을 놀립니다.
이곳은 나중에 가게 되는 지옥입니다. 난 빛을 봐요.
바람이 늙도록 걱정만 해대는
귀의 방 뚜껑을 따는군요.
돌은 부싯돌 입술을 달래주고,
日光은 자기와 똑같은 모습을 벽 위에 찍습니다.
접목하는 사람들은 뻰찌를 달구고.
다루기 힘든 망치를 끌어올리며 즐거워합니다.
전류가 전압을 높이며
전선줄을 뒤흔들어 놓는군요. 창자줄이 내 갈라진 틈에 수를 놓습니다.
일꾼 한 사람이 핑크빛 토르소를 운반하며 지나가는군요.
저장실은 심장으로 가득차 있어요.
이곳은 예비 부품들의 도시랍니다.
포대기로 감싸진 내 팔다리는 고무처럼 달콤한 냄새를 풍기네요.
여기에서 손발이건 머리건 치료할 수 있답니다.
금요일엔 꼬마들이
자기들 갈고리와 손을 바꾸러 옵니다.
죽은 자들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눈을 남겨놓지요.
사랑은 내 대머리 유모의 제복이랍니다.
사랑이란 내 저주의 뼈와 살이지요.
개조된 꽃병은
빠져 달아나는 장미를 간수합니다.
열 손가락이 그림자를 위해 사발을 만들어요.
수선해야 될 곳이 근질거리는군요. 할 일이라곤 없어요.
난 새것마냥 좋아질 겁니다.
* 태선苔癬- 이끼와 버즘
버섯 Mushrooms
밤 사이에, 무척
희게, 신중하게,
무척 조용하게
우리의 발가락과 코는
壤土를 붙잡고,
공기를 손에 넣는다.
아무도 우리를 보거나
저지하거나 배신하진 않는다.
작은 낟알들은 자리를 비켜준다.
부드러운 주먹은 뾰죽한 잎들과
잎투성이 깔개와
鋪道까지
들어올리자고 우긴다.
귀도 없고, 눈도 없고,
아주 벙어리인
우리의 해머와 城을 치는 망치들은
갈라진 틈을 넓히고,
구멍을 밀어젖히며 나아간다. 우리는
물과 그림자 부스러기로
식사를 하고,
온화한 태도를 보이며
거의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이렇게나 많은 우리들!
이렇게나 많은 우리들!
우리는 선반이고, 우리는
탁자이고, 우리는 온순하고,
우리는 먹을 수 있고
팔꿈치로 찌르며 밀치는 자들이다.
우리 자신도 모르게
우리 종족은 늘어난다.
아침이면 우리는
지구를 상속받게 되리라.
우리 발은 문간에 들어섰다.
『에이리얼』(1960-63)
교수형 집행인 The Hanging Man
어떤 神이 내 머리카락을 송두리째 잡아쥐었다.
난 그의 푸른 전류 속에서 사막의 예언자처럼 지글지글거린다.
밤(夜)은 도마뱀의 눈꺼풀마냥 시야에서 뚝 끊어졌다.
차양없는 소케트 안에서 반들거리는 하얀 날들의 세계.
탐욕스런 권태가 나를 이 나무에 핀으로 꽂아버렸다.
만일 그가 나라면, 그도 나와 똑같은 일을 하겠지.
튤립 Tulip
튤립은 너무 흥분을 잘해요. 이곳은 겨울.
보세요, 모든 것이 순백색이잖아요. 조용하고 또 눈 속에 갇혀 있어요.
햇살이 이 흰 벽, 이 침대, 이 손에 떨어질 때
나는 조용히 혼자 누워 평화를 배우고 있습니다.
나는 無名人입니다. 그래서 폭발과는 아무 관계도 없지요.
나는 내 이름과 내 세탁물을 간호사들에게,
또 내 병력을 마취사에게, 내 몸은 외과 의사들에게 내주어 버렸어요.
그들은 내 머리를 베개와 시트 끝동 사이에 받쳐 놓았어요.
마치 닫히지 않는 두 개의 흰 눈꺼풀 사이의 눈처럼
멍청한 눈동자, 모든 걸 놓치지 않고 봐야만 되다니.
간호사들이 지나가고 또 지나가요. 그들이 성가시진 않아요.
그들은 흰 캡을 쓰고 갈매기가 내륙을 지나가듯 지나가요.
저마다 손으로 일하면서, 이 간호사나 저 간호사나 똑같이.
그래서 얼마나 많은 간호사들이 있는지 모르겠어요.
내 몸은 그들에겐 조약돌이죠. 그들은 마치 물이 흘러 넘어가야만 하는
조약돌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돌보듯 그것을 보살펴 주지요.
그들은 빛나는 주사바늘로 나를 마비시키고 나를 잠재우지요.
이제 뭐가 뭔지 모르겠어요. 여행 가방에는 신물이 났고--
가족사진 속에서 미소 짓고 있는 내 남편과 아이.
그들의 미소가 내 살에 와 박힙니다. 미소 짓는 작은 갈고리들.
나는 모든 것을 풀어 놓아 버렸어요.
고집스럽게 내 이름과 주소에 매달린 서른 살의 화물선.
그들은 내 사랑스러운 기억들을 깨끗이 닦아버렸어요.
초록의 플라스틱 베개가 달린 운반 침대 이에서 알몸으로 겁에 질린 채
나는 내 찻잔 세트, 내 속옷장, 내 책들이
시야에서 침몰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물이 내 머리를 뒤덮었지요.
나는 이제 수녀입니다. 이렇게 순결했던 적은 없었어요.
꽃은 필요 없어요. 그저
양 손을 위로 향하게 하고 누워서 완전히 나를 비워두고 싶을 뿐이었습니다.
얼마나 자유로운지, 당신은 모르실 걸요. 얼마나 자유로운지--
그 평화스러움이 너무 커서 멍해질 정도니까요.
그리고 그건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아요. 명찰 하나와 자질구레한 장신구 정도면 돼요.
평화란, 결국은 죽은 자들이 다가와 에워싸는 것이죠. 난 그들이
성찬식 밀떡처럼 평화를 입에 넣고 다무는 것을 상상합니다.
튤립은 우선 너무 빨갛죠. 그 꽃들이 나를 아프게 합니다.
포장지를 통해서도 난 그들이 가볍게 숨 쉬는 걸 들을 수 있답니다.
지독한 아기처럼, 그들의 하얀 기저귀를 통해서.
튤립의 빨간색이 내 상처에 말을 겁니다. 그것은 잘 어울려요.
그들은 교활하죠. 둥둥 떠 있는 듯 하지만 나를 내리누르며
그들의 느닷없는 혀와 색깔로 내 속을 뒤집어 놓아요.
내 목둘레엔 십여 개의 빨간 납 봉돌.
전엔 아무도 날 쳐다보지 않았지만, 지금은 주시당하고 있죠.
튤립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군요. 하루에 한 번은
햇빛이 천천히 넓어졌다 천천히 가늘어지는 내 등 뒤의 창문도
그리고 나는 태양의 눈과 튤립의 눈 사이에 있는
오려낸 종이 그림자 같은, 밋밋하고 우스꽝스러운 나 자신을 봅니다.
그리고 내 얼굴이 없군요. 난 스스로를 지워 없애고 싶었답니다.
활기찬 튤립이 내 산소를 먹어치웁니다.
그들이 들어오기 전엔 공기가 무척 고요했지요.
법석 떨지 않고 살금살금 오가며
그런데 튤립이 떠들썩한 소음처럼 공기를 꽉 채워버렸어요.
가라앉아 뻘겋게 녹슨 엔진 주위에 강이 부딪쳐 소용돌이치듯
이젠 공기가 튤립 주위에 부딪쳐 소용돌이치는군요.
그들은 얽매이지 않은 채 행복하게 놀고 쉬던
내 주의를 집중시킵니다.
벽들 또한 따뜻해지는 것 같군요.
튤립은 위험한 동물처럼 철책 안에 갇혀 있어야만 해요.
그들은 거대한 아프리카 고양이처럼 입을 벌리고 있어요.
그리고 난 내 심장을 깨닫게 되었어요. 그것은 나에 대한 순수한 사랑에서
그 접시 같은 빨간 봉우리를 열었다 닫았다 합니다.
내가 맛보는 물은 바닷물처럼 따스하고 짜며,
건강처럼 머나먼 나라에서 오는군요.
느릅나무 Elm
-루쓰 헤인라이트를 위하여
난 밑바닥을 알지요, 라고 그녀가 말합니다. 난 그걸 내 거대한 主根으로 알았어요.
그건 당신이 두려워하는 것이지요.
난 그게 두렵지 않답니다. 난 거기에 다녀왔거든요.
당신이 내 안에서 듣는 것은 바다입니까?
그것의 불만들인가요?
아니면 당신의 狂氣였던, 無의 목소리인가요?
사랑은 그림자랍니다.
사랑이 끝난 후, 당신은 얼마나 거짓말을 하고 우는가요.
들어보세요, 이런 것들은 사랑의 발굽이랍니다. 사랑은 말(馬)처럼 멀리 가 버렸어요.
온 밤을 나는 이렇게, 맹렬히, 질주할 겁니다.
당신 머리가 돌이 되고, 당신 베개가 잔디가 될 때까지.
메아리를 울리며, 울리며.
그렇지 않으면 당신께 毒의 소리를 가져다 드릴까요?
이건 지금 비에요. 이 커다란 쉬잇소리.
그리고 이건 그것의 열매죠. 砒素마냥 흰 양철빛의.
난 日沒의 잔악함에 시달려 왔습니다.
뿌리까지 그을리며
내 붉은 섬유질은 타오르며 서 있습니다. 전선줄의 손이.
난 산산조각이 나서 곤봉들처럼 하늘로 날아 오릅니다.
그런 거친 강풍 속에서
방관만 하고 있다는 것은 용납되지 않아요. 난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어요.
달도 역시 무자비하지요. 그녀는 불모이기 때문에
나를 잔인하게 끌고 다닐 겁니다.
그녀의 光輝는 날 시들게 해요. 아니 어쩌면 내가 그녀를 붙잡았을지도 모르죠.
난 그녀를 가도록 그냥 내버려두죠. 난 그녀를 그냥 둬요.
격렬한 수술 후처럼 여위고 납작해진 달을.
당신의 악몽이 얼마나 나를 사로잡고 나에게 寄附를 해대는지.
내 속에는 울음이 살고 있어요.
밤마다 울음은 파닥거리며 나와
갈고리를 들고서 사랑할 대상을 찾는답니다.
내 속에서 잠자고 있는 이 어두운 것이
난 무서워요.
온종일 나는 깃털처럼 가볍고 부드러운 그것의 선회, 그것의 악의를 느낀답니다.
구름이 지나가고 흩어집니다.
저런 것들이 사랑의 얼굴인가요, 저렇게 창백하고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이?
이런 것들 때문에 내 마음이 그토록 뒤흔들렸던가요?
더 이상은 알 수 없어요.
이건 뭔가요, 그 죄어드는 가지들 속에서
저렇게 살인적인 저 얼굴은?--
그것의 뱀 같은 酸투성이 키스.
그것은 의지를 돌로 만들어버리죠. 이것들은 고립되고 더딘 斷層들
그게 죽인답니다, 죽인다구요, 죽여요.
7월의 양귀비꽃 Poppies in July
작은 양귀비꽃들, 자그마한 지옥의 불꽃들아.
너희들은 아무 해도 끼치지 않니?
너희들은 날름거린다. 난 너희들을 만질 수 없구나.
손을 불꽃 속에 집어넣어 본다. 아무것도 타지 않는다.
그리고 그처럼, 주름잡힌 채 진홍색으로, 입술처럼 날름거리는
너희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피곤하구나.
이제 막 피로 물든 입.
자그마한 피투성이 치마들!
내가 만질 수 없는 향기가 있다.
너희들의 마취제, 너희들의 메스꺼운 캡슐은 어디에 있니?
만일 내가 피흘릴 수 있다면, 혹은 잠잘 수 있다면--
만일 내 입이 그런 상처와 결혼할 수 있다면!
혹은 이 유리 캡슐 속에 든 너희들의 액즙이 나에게로 스며나와
나를 무디게 하고 잠잠하게 해줄 수 있다면
그러나 無色으로, 無色으로.
벌상자의 도착 The Arrival of the Bee Box
난 이걸 주문했었다. 의자처럼 네모꼴이고
번쩍 들 수 없을 만큼 무거운 이 깨끗한 나무상자.
꼬마나 네모꼴 아기의 관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
그 안에서 저런 소음만 들리지 않는다면.
상자는 잠겨 있다, 그건 위험하다.
오늘 밤을 꼬박 이것과 함께 지내야 한다.
그리고 이것과 떨어져 있을 수도 없다.
창문이 없기에 난 그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볼 수도 없다.
다만 조그마한 격자무늬 창살만이 있을 뿐, 출구도 없다.
그 창살에 눈을 대어 본다.
어둡다, 어둡다,
검은색 위에 또 검은색이, 화가 난 듯이 기어오르며
수출하려고 작게 오그라뜨려진
아프리카인의 손들처럼 우글우글한 느낌을 주며
어떻게 하면 저들을 밖으로 내보낼 수가 있을까?
무엇보다도 날 섬뜩하게 하는 건 저 소음이다.
알아들을 수 없는 음절들.
그건 마치 로마의 군중들 같다.
하나씩 치면 적지만, 맙소사, 전부 합쳐보면!
격노한 라틴어에 난 귀를 갖다댄다.
난 시이저가 아니란다.
미치광이들의 상자를 주문했었나보다.
되돌려 보낼 수도 있지.
죽일 수도 있다구, 먹이만 주지 않으면 되니까. 내가 주인이라구.
그들은 얼마나 배가 고플까.
그들은 날 잊어버릴까.
만일 내가 자물쇠를 열고 뒤로 물러서선 한 그루의 나무가 된다면,
저기 금련화, 그 금빛 列柱
그리고 법꼬츼 페티코트들이 있다.
그들은 달의 옷과 장례식 베일을 걸친 나를
곧장 무시할지도 모른다.
내게서 꿀을 뽑아낼 순 없지.
그러니 무엇 때문에 그들이 내게로 향하겠는가?
내일 상냥한 신이 되어, 다들 풀어줘야지.
상자란 다만 일시적인 것일 뿐.
지원자 The Applicant
먼저, 당신은 우리와 같은 부류의 사람인가요?
당신은
유리로 된 눈, 틀니 한 개나 목발 한 개,
교정기나 갈고리 손,
고무 젖가슴이라든가 고무 샅,
무언가 잃어버렸음을 보여주기 위한 수술 바늘 자국들을 달고 다니시나요?
없어요? 없다구요? 그렇다면 아무것도 드릴 수가 없네요.
그만 울어요.
손을 펴 보세요.
비어 있나요? 비어 있군요. 자, 여기
그걸 채워주고, 기꺼이
찻잔을 날라다주며 두통을 깨끗이 몰아내주고,
또 당신이 말하는 것이면 다 해줄 손이 있어요.
이것과 결혼하시겠어요?
보증컨대 이 손은
마지막엔 당신 눈을 엄지로 감겨주고
슬픔을 녹여줄 거예요.
우린 소금으로 새로운 在庫를 만들어 내죠.
이제 보니 당신 완전히 알몸이군요.
이 옷은 어떤가요--
검고 뻣뻣하지만, 그리 어울리지 않는 건 아니네요.
이것과 결혼하시겠어요?
이 옷은 방수도 되고 충격에도 강하고
내구성도 좋고 지붕을 통해 들어오는 폭탄도 막아낸답니다.
절 믿으세요, 당신도 그 옷속에 묻어드릴 테니까요.
그런데 당신의 머리는, 실례되는 말이지만, 비어 있네요.
전 그 빈 머리에 안성맞춤이랍니다.
이리와요, 사랑스러운 사람, 옷장에서 나오세요.
자 그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처음엔 종이처럼 아무것도 쓰여져 있지 않지만
25년이 지나고 나면 그녀는 銀이 될 것이고
50년이 지나면 金이 된답니다.
어디를 보든지 살아 있는 인형,
그 인형은 바느질도 하고, 요리도 하고,
또 말, 말, 말도 할 수 있답니다.
그건 일도 하죠. 아무 이상도 없어요.
당신 몸엔 구멍이 하나 나 있군요. 폭포가 되어 막아드리죠.
당신은 눈도 하나 갖고 있네요, 영상이 되어 드리겠어요.
이봐요, 최후의 기회라구요.
당신 이것과 결혼하시겠어요, 결혼하시겠냐구요, 결혼하세요.
에이리얼 Ariel*
어둠 속의 靜止
그리고는 바위산과 거리의
실체 없는 푸른 流出
神의 암사자여,
이렇게 우리는 하나가 된다.
뒷발굽들과 腕骨들의 구축으로-- 그 고랑이
패어지며 지나간다, 내가 붙잡지 못하는
목덜미의 갈색 弧의
자매,
검은 눈의
열매들이 어두운 갈고리를
던진다--
입안 가득 검고 달콤한 피,
그림자들.
무엇인가가
공기 속으로 나를 끌고 간다--
넓적다리들, 털,
내 뒷발굽에서 떨어지는 얇은 조각들.
새하얀
고다이버*, 나는 옷을 벗어 버린다--
죽어버린 손들, 죽어버린 절박함.
그리고 이제 난
밀가루 거품, 바다의 광채.
어린아이의 울음이
장벽에서 녹아버린다.
그리고 난
화살이다.
시뻘건 눈,
아침의 큰 솥 속으로
자살하듯 돌진해 들어가는
이슬이다.
*에이리얼- 실비아 플러스의 말(馬) 이름
*고다이버- 11세기 영국의 귀족 부인으로 벌거벗은 채 말을 타고 거리를 돌았다고 전해진다.
急使들 The Couriers
나뭇잎 접시 위 달팽이의 전갈이라구요?
내 것이 아냐, 받아선 안 돼.
밀봉된 양철 깡통 속의 초산?
받지 말아, 진짜가 아냐.
태양이 박혀 있는 금반지?
거짓말이야. 거짓말과 슬픔.
나뭇잎 위의 서리, 아홉 개의 시커먼
알프스 봉우리 봉우리에서
저 혼자 얘기하며 탁탁 소리내는
흠 하나 없는 큰 솥.
거울 속의 소동,
스스로의 잿빛 거울을 산산조각내는 바다--
사랑, 사랑, 나의 시절이여.
그곳에 도착하기 Getting There
얼마나 멀까?
이젠 얼마나 남았을까?
거대한 고릴라의 배 같은
바퀴들이 움직인다. 그것들은 나를 소름끼치게 한다--
크루프 가의 끔찍한
두뇌들, 회전하는
시꺼먼 총구들, 대포처럼
<不在!>를 주먹으로 날려보내는 소리.
내가 건너가야 하는 러시아, 이런저런 전쟁.
난 화차의 짚더미 위로
조용히 내 몸을 끌고 간다.
지금은 뇌물을 주는 시간.
바퀴들은 무엇을 먹을까. 神처럼
스스로의 弧에 고정된 이 바퀴들.
의지의 은빛 가죽끈--
냉혹한, 그리고 그들의 자만심.
모든 신들이 알고 있는 것이라곤 행선지 뿐
나 이 우편함 구멍 속에 있는 한 통의 편지--
난 어떤 이름에게로, 두 눈에게로 날아간다.
거기엔 불이 있을까, 빵이 있을까?
여긴 굉장한 진흙탕이다.
기차 정거장이다. 작은 수도꼭지의 물,
그 베일들, 수녀원의 베일들을 견디며
부상병들을 어루만져주는 간호사들,
피가 아직도 퍼내는 사람들,
끊임없는 비명으로 가득찬 텐트--
바깥에 쌓여 있는 다리들, 팔들--
인형들의 병원.
그리고 사람들, 남은 사람들은
이 피스톤들, 이 피에 의해 퍼내어져
한 마일 앞
한 시간 앞으로 나아간다--
부러진 화살들의 王朝.
얼마나 남았을까?
내 발엔 질척질척하고 붉은
그리고 미끌거리는 진흙이 묻어 있다. 내가 솟아난
이 땅덩이는 아담의 편이구나. 그래서 난 고통에 시달리고
내 자신을 되물릴 수는 없다. 그리고 기차도 김을 내뿜고 있다.
마치 악마의 이빨처럼 김을 내뿜고
숨을 쉬면서, 그것의 이빨은 굴러갈 준비를 한다.
그것의 끝에는 1분이 있다.
1분, 이슬 한 방울이.
아직도 멀었나?
내가 가려는 곳은 아주아주
조그마한 곳인데, 이 장애물들은 도대체 뭔지--
信心 깊은 자들, 화환을 든 어린애들이 애도하는
이 여인의 몸,
숯이 된 치마와 데드마스크,
그리고 이제 폭발이--
천둥과 銃砲들.
우리 사이에 불꽃이 일어난다.
공기 한가운데서 돌고 돌아
만져지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는
그런 조용한 장소는 없구나.
기차는 그저 질질 끌려가고 있다. 비명을 질러댄다--
종착지를 향한 집념에 미쳐 있는
동물,
피 얼룩,
너울대는 불꽃 끝에서 만나는 얼굴.
난 번데기처럼 상처 입은 자들을 묻게 되리라.
주검을 세어보고 묻게 되리라.
그들 영혼이 한 방울 이슬 속에서 몸부림치다가
내 발자취 속에서 격노하도록 내버려 두자.
객차가 흔들린다. 그것은 요람이다.
그리고 나는 낡은 붕대를 감은 이 살갗,
따분한 일들, 그리고 낯익은 얼굴들로부터 걸어나와서는.
레테의 검은 차에서 너를 향해 걸어간다.
아기처럼 정결하게 되어서.
타박상 Contusion
색채가 그곳으로 밀려간다. 흐릿한 자줏빛.
몸의 나머지 부분이 모두 씻겨졌다.
진주빛.
바위 구멍 속에서
바다는 미친 듯이 빨아들인다.
파리만한 크기의
죽음의 표식이
벽을 기어 내려온다.
심장이 닫히고,
바다가 뒤로 미끄러지고,
거울에 시트가 덮인다.
풍선들 Balloons
성탄절 이후 그들은 우리와 함께 살아왔다.
악의 없고 또 산뜻하며,
허공의 반쯤을 차지하고는,
보이지 않는 비단결 같은 공기의 흐름 속에서
움직이며 비벼대다가,
공격을 받았을 때는 비명과
빵 하는 소리를 내고는, 쉬기 위해 달려가면서 거의 몸을 떼지도 않는,
달걀 모양의 魂이 들어있는 동물들.
노란 닻걸이, 파란색 물고기--
이런 괴상한 달들과 우리는 함께 살고 있다.
죽어 있는 家具 대신에!
밀짚 매트들, 새하얀 벽들
그리고 바램처럼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빨갛고 초록색의 엷은 공기로 가득찬
이 돌아다니는 공들 혹은
별 모양의 금속으로 세공된
깃털로 해묵은 땅을 축복해주는
자유로운 공작들.
네 어린
남동생은 자기 풍선이
고양이처럼 끽끽거리게 만들고 있다.
자기가 그 반대편에서 먹어버릴 수 없는
우스꽝스런 핑크빛 세계를 보고 있는 듯한
그는 한 입 깨물고
그리곤 물러나
관망한다, 물처럼 맑은
한 세계를 응시하는 볼록한 물병.
그의 조그마한 주먹 속엔
빠알간 조각 하나.
끝모서리 Edge
여인은 완성되었다.
그녀의 죽은
육체는 成就의 미소를 띠고 있고,
희랍적 필연성의 幻影이
그녀가 걸친 토가의 소용돌이무늬 속으로 흐른다.
그녀의 맨발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우리가 여기까지 오긴 했지만, 이젠 끝났어요, 라고.
죽은 아이들마다 또아리를 틀었다. 흰 뱀처럼.
지금은 텅 빈
각자의 작은 우유 주전자에.
정원이 뻣뻣해지고
밤(夜)꽃의 깊고 달콤한 목에서 향기가 흘러나올 때
장미꽃잎이 닫히듯,
그녀는 아이들을 다시 자기 몸 속으로
접어 넣었다.
달은 그녀의 뼈의 두건에서 지켜보며
슬퍼할 것이라곤 없다.
달은 이런 일에 익숙해져 있다.
달의 검은 옷이 따닥따닥 소리내며 끌린다.
『 巨 像 』, 실비아 플러스Sylivia plath(1932-63), 세계문제 시인선 4 , 청하,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