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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소년님의 여행기를 퍼왔읍니다.
[기 간] 2006. 8.23∼9. 1
[네덜란드] 나막신공장-풍차마을-치즈공장-담광장
[노르웨이] 베르겐-보스-래르달-게이랑에르피오드르-룸-요튼하이멘국립공원-오르달-오슬로
[스 웨 덴] 시스타사이언스 - 스톨홀름시내 - 감라스탄 - 시청사 - 바사 전함박물관
[출발]
북유럽 여행을 떠나는 날, 마음은 한없이 설렙니다. 고등학교 때의 수학여행 그 느낌 이상으로 여행이란 언제나 모르는 것에 대한 동경과 기대로 두려움이 섞인 기대감으로 열정이 타오릅니다. 네덜란드의 KLM 비행기를 타고 12시간의 긴 비행에 나섭니다.
[비행기에서 본 구름과 하늘]
서해바다를 건너 구름이 환상적인 모습을 나타냅니다. 북극이나 남극 얼음대지위에 가보진 못했지만 눈 쌓인 히말라야의 풍경이 아닐까 상상해 봅니다. 금년 겨울 눈 쌓인 덕유산의 그 멋진 풍경처럼 정말 탁 트인 전망과 눈을 찌르는 강렬한 태양빛은 일단 눈이 먼저 실컷 포식을 합니다.
끝도 없이 메마른 대지가 나타납니다. 지상에서 만 미터 이상인데도 어찌나 넓은지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사막 아마 고비사막 인가 봅니다. 여기서 황사의 발원지 인 듯 끝이 없는 사막을 보니 우리나라에 맡기면 그까짓 황사와 사막쯤 해결 못할까 했던 자만심이 사라질 정도로 한반도보다도 훨씬 큽니다.
[네덜란드]
비행기에서 보는 네덜란드는 색감은 회색과 녹색입니다. 바다보다 낮은 땅을 개간해서 목축을 하는 탓인지 도시 전체가 푸른데 네덜란드를 상징하는 운하가 빗살처럼 도시전체를 감싸고 있습니다. 가장 높은 산이 300미터를 간신히 넘는 낮은 땅 네덜란드 그 지명 자체가 낮은 땅을 나타냅니다. 스키폴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공항의 규모가 상당히 큽니다. 인천공항보다 훨씬 넓은 것 같습니다. 저녁식사를 한 한식집 부근은 마치 시골의 전원처럼 느껴지고 쾌적합니다.
[비행기에서 본 네덜란드]
풍차마을로 널리 알려진 잔세스칸스는 암스텔담 북쪽 약 15km 지점의 잔강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동화나라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는 17~18세기의 목조가옥과 크고 작은 풍차들이 마을 곳곳에 흩어져 있으며, 잔 강변을 끼고 풍차 4기가 돌고 있습니다. 풍차 외에도 나막신과 치즈를 만드는 곳이 있어 박물관, 상점, 풍차를 구경하다 보면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일하는지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은 전기로 물을 퍼내고 있기 때문에 관광을 위해서 풍차를 이용한다고 합니다. 네덜란드는 우리나라처럼 인구밀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 중의 하나인데 나라가 산이 별로 없는 탓인지 생각보단 넓게 살고 있는 듯 보입니다.
[풍차마을]
[암스텔담의 풍차마을]
[나막신공장 ]
[치즈공장]
담광장입니다.
현재 담 광장이 있던 자리에는 Y자형으로 흐르는 암스텔 강을 막으려고 건설한 암스텔 댐(Amstel dam)이 있었는데 암스텔 댐은 이 광장에 담이라는 이름을 준 것은 물론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텔담의 이름이 나온 곳이기도 합니다. 시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담라크와 로킨 도로가 만나는 곳에 자리하고 있는 담 광장에서는 각종 공식 행사와 축제, 컨서트, 노천시장이 펼쳐집니다.
담 광장의 중앙에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가했던 네덜란드 전사자들을 기리는 위령탑이 서 있고, 주위에는 왕궁과 신교회, 마담터소 왁스 박물관, 백화점 등 오래된 건물들과 명소가 자리하고 있는 암스텔담 관광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많은 거리들을 이곳 담 광장에서 출발하고 있어, 암스텔담 관광을 시작하려는 이들이 찾아오는 곳이기도 하고 유럽의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중심가입니다. 약국에서 처방전만 있으면 마약도 팔고 마약을 근절시키기 위해 마약밀수업자들 보다 싸게 팔아 이익을 남기지 않도록 하여 위험한 마약필로폰 등을 근절시키기 위함인데 마약중독자가 줄어드는 효과가 있어 다른 나라도 도입을 검토 중이라고 합니다.
[담광장]
매춘부들도 정식 근로자로 인정 세금을 내고 연금도 가입하고 의료보험 혜택도 보는 정말 세계에서 가장 개방적인 나라인 듯 합니다. 섹스용품과 사진들을 모아 논 섹스 박물관도 작지만 관광객들이 호기심을 자아내며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습니다.
렘브란트 공원입니다.
네덜란드가 고흐와 함께 세계에 자랑하는 화가입니다. 강렬한 화풍을 말해주듯이 강인해 보입니다.
사이사이로 보이는 운하의 물은 깨끗해 보이진 않습니다. 그에 비하면 우리의 서울에 있는 한강은 얼마나 깨끗하고 멋진지 새삼 생각납니다.
[렘브란트 공원앞의 운하-결혼식 피로연]
[렘브란트 동상]
[노르웨이]
드디어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 노르웨이입니다. 유라시아 대륙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하여 알래스카와 같은 위도에 있는 피오르드를 볼 생각에 설렙니다.
하늘에서 보는 노르웨이의 베르겐 상공은 온통 섬들로 가득 찬 것 같기도 하고 굴곡이 심한 해안선 탓인지 파란 북해의 바닷물과 어울려 무척 아름답습니다.
[비행기에서 본 베르겐]
베르겐의 피오르드 입니다. 심해가 약 1000미터 이상이라니 대단합니다. 경사가 심한 곳에 집들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경치를 지닌 곳에서도 가장전망이 좋은 곳(가장 높은 곳이 대부분) 가장 집값이 비싸다고 합니다. 베르겐은 연간 250일정도가 비가 온다고 하니 경치가 아름다워도 한국 사람들의 정서엔 맞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저 이렇게 여행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뷔르겐 거리입니다. 나무로 지어진 건물들이 아름답고 우물도 우리나라의 시골모습과 비슷합니다. 화재에는 매우 취약할 듯 합니다.
[베르겐거리]
[뷔르겐거리]
[베르겐의 모습]
[베르겐의 어시장]
보스를 거쳐 래르달로 향합니다. 지금부턴 북쪽으로 갑니다.
한국에서 왔다니깐 바로 한국국기를 거는 상점주인이 밉지 않습니다.
[보스 기차역]
잠깐 비가 뿌리고 나서 해가 나는데 북극에 가까운 햇살은 살갗을 파고 드는 듯 날카롭습니다. 오존이 구멍 난 탓인지?
보스에서 래드달 가는 길에 스탈하임이란 노르웨이에서 가장 경사가 급한 도로에 올라서 본 곳입니다. 경사가 거의 80도 이상을 된 듯한 산들이 병풍처럼 있고 가운데 약간의 평지에 풀을 키우고 있습니다. 피오르드 사이의 평지를 “달”이라고 부른답니다. 호텔도 멋집니다. 양옆의 산 높이를 두고 일행과 의견의 분분했는데 약 1000미터이상이 된다는 가이드의 말에 무척 놀랐습니다.
1,000미터라면 서울에 북한산에 150미터정도를 더 올라가야 하는데 그 정도라면 산자락만 해도 10여킬로미터 이상 나오는데 여기선 거의 직선이라서 산자락이 2킬로미터도 되지 않을 듯하여 실감이 잘 나지 않습니다.
[스탈하임에서 본 피요르드]
[스탈하임에서 본 협곡]
[스탈하임 주변의 농장]
[스탈하임의 폭포]
[스탈하임 호텔]
세계에서 가장 긴 터널인 래르달 터널입니다. 24km으로 스위스의 최장터널 보다 2km가 더 길다고 합니다. 노르웨이의 터널 뚫고 관리하는 기술은 세계적 수준 같습니다. 워낙 터널이 많아서 인지 불이 꺼진 채 놔둔 터널도 많고 자동차도 키만 돌리면 바로 헤드라이트가 켜지도록 되어있습니다.
[래르달 터널 안]
래르달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의 연어 시험장이 있고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피오르드 입니다.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이라서 그런지 연어 시험장도 있습니다. 저녁의 래르달은 조용합니다. 호텔 외엔 인가도 없는 듯 너무 조용합니다. 호텔은 고풍스럽게 멋스럽게 지어져 있습니다. 동양 3국 인 한국, 일본, 중국의 관광객들이 섞여서 동양인들이 세계관광에 나서는 것이 낯선 풍경이 아닌듯합니다.
베르겐 어시장에서 산 해산물을 안주삼아 소주를 한잔 하니 정말 꿀맛입니다. 이렇게 경치 좋은 호텔에서 자는 것이 처음인 듯 합니다.
[래르달 풍경]
[래르달의 호텔]
[래르달의 거리]
피요르드
노르웨이의 최대 명물은 뭐니 뭐니 해도 노르웨이해의 피오르드(Fjord)를 으뜸으로 꼽지 않을 수 없습니다. 피오르드란 내륙으로 들쑥날쑥 깊이 파고 들어와 있는 톱날 모양의 해안선을 일컬으며 우리말로는 협곡이라고 합니다. 피오르드는 100만 년 전 북유럽을 뒤덮고 있던 1000미터가 넘는 거대한 빙하가 계곡 등으로 굴러 들어오면서 깊이 패인 빙식곡을 만들었다가 간빙기에 빙하가 녹고 난 후 그 곳에 다시 바닷물이 밀려들어와 만들어진 자연이 빚어낸 걸작품인데.
피오르드 가운데 가장 유명한 송네 피오르드는 그 길이가 무려 204Km에 이르며 가장 깊은 곳의 수심은 1300m을 넘는다고 합니다. 노르웨이는 피오르드를 적시는 해안선의 총연장이 2만8천Km이고 약 5만개나 되는 섬들의 해안선까지 모두 합하면 무려 5만Km나 되는 해안을 가진 나라입니다. 지구의 둘레가 약 4만Km인 점을 감안할 때 5만Km는 어마어마한 거리인 것입니다.
다음날 게이랑에르 피오르드를 향해 갑니다.
[산의 그림자가 비치는 피요르드]
일단 송내피오드르의 지류를 건너 브릭스달 빙하로 먼저 갑니다.
브릭스달의 요스테달빙하는 북유럽 최대의 빙하로서 몇 만 년 전부터 내린 눈이 쌓이고 굳어 생성된 것 입니다. 빙하의 빛은 순백색이 아니고 푸른 기운이 감도는 흰색입니다. 햇빛의 여러 색깔 중 파란색을 빙하가 흡수하지 못해서 푸른색을 띤다고 합니다. 만년설이 응결해서 생성된 빙하를 직접 손으로 만져보는 감격이이 대단합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단단하고 생긴 모양이 한반도와 흡사하여 더욱 정감이 갑니다.
빙하가 녹아 흐르는 물은 호수와 폭포를 이루는 주요 수원이 되고. 빙하는 과거 130년 동안 약 200정도 후퇴했다고 합니다. 노르웨이는 비가 연간 250일 이상 오는 강수량에다 10월말부터 5월초까지 내리는 눈으로 세계에서 가장 수량이 풍부한곳중의 하나입니다. 주변의 돌과 바위 나무들은 온통 이끼로 덮여있어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빙하가 계속 녹아내리면 빙하가 다 없어질듯 하지만 녹는 양에 비해 눈이 와서 쌓이는 양이 균형이 맞아 항상 균형이 유지된다고 합니다.
[먼곳에서 본 브릭스달 빙하]
브릭스달 푸른 빙하는 도착에 앞서 중간에 정말로 멋진 풍경을 보여줍니다. 피오르드는 노르웨이 어디랄 것도 없이 해안선은 거의 피오르드 지형입니다. 끝없이 흐르는 폭포 바닷물인지 빙하 녹은 물인지 너무 맑아 산들이 그대로 비치는 명경지수 그대로입니다.
[빙하가 녹아내려 만든 폭포]
[빙하가 녹아내려 만든 폭포]
[빙하에 의한 폭포]
브릭스달 빙하지대에 오니 폭포수량이 점점 많아집니다.
너무 멋집니다. 특히 브릭스달 빙하로 올라가는 길에 만난 폭포는 빙하가 녹아 흘러내린 물로 정말 엄청난 폭포를 이룹니다. 여태껏 본적이 없는 대단한 규모의 폭포입니다.
[요스테달 빙하]
[요스테달 빙하 -한반도 모양]
[요스테달 빙하]
게이랑에르 피오르드 입니다.
16km 이어진 게이랑에르 피오르드는 좁고 구불구불하며 높이 솟은 바위 암벽, 절벽 끝에 매달려 있는 버려진 농장, 놀랄 만큼 높은 폭포 등을 끼고 있습니다. 피오르드 양 끝에 있는 것이 게이랑에르와 헬레쉴트 마을인데, 페일로 연결됩니다. 게이랑에르 피오르드를 따라 내려가는 유람선 여행은 아주 근사합니다.
한국관광객이 많은 듯 한국어 방송도 나오는데 북한의 어느 아줌마 목소리인 듯 한 것이 조금 우스꽝스럽습니다.
게이랑에르 피오르드 상류에 있는 게이랑에르는 폭포가 많은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특히 칠자매 폭포는 그 위용을 한껏 자랑합니다.
[게리랑에르를 운행중인 작은 유람선]
[칠자매 폭포]
게이랑게르의 명물 칠자매 폭포입니다.
[게이랑에르의 높은 산과 바다]
양쪽에 자리한 산들은 예의 1,000미터 이상의 높이를 자랑하며 병풍처럼 피오르드를 호위하고 있고 산들 중턱에 힘겨운 자연과 싸워온 이들의 삶을 대변하듯 곳곳에 정말 사람이 살수 없어 보이는 곳에 버려진 농장이 있습니다.
[버려진 농장]
결코 축복받은 자연이 아닌 옛날 로마인들이 온 유럽을 정복하고도 날씨때문에 점령하지 않은 험한 자연입니다.
지금 북해산 석유가 나오지 않음 관광하기엔 좋을지 몰라도 결코 살고 싶은 곳은 아닙니다.
너무 비와 눈이 많아 농작물도 자라지 않아 풀만 키워 양이나 염소, 소들을 키워 치즈나 유제품으로 살아온 이들이 삶이 얼마나 고단했을까. 생각합니다. 겨울에 이들이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하여 이웃나라에 먹을 것과 생필품을 빼앗으러 간 것 이 바이킹의 역사라니 다른 나라에는 노략질이 이들에겐 생존의 몸부림이었을 것입니다.
[게이랑에르의 폭포]
[게이랑에르의 마을]
[게이랑에르끝 동네]
게이랑에르 끝 쪽에 자리 잡은 동네는 환상적입니다. 마을 주민은 300여명에 지나지 않지만 노르웨이에서 가장 관광객이 많이 몰려드는 지역이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람선과 관광버스가 지나가고 난 저녁 무렵에는 상당히 고즈넉합니다. 호텔도 멋지고 경치도 뭐라 더할 나위 없습니다. 경치로만 따지면 노르웨이가 스위스 보다 멋진 것 같습니다.
저녁 무렵에 잠깐 본 피오르드 옆의 산은 많은 수분과 추운날씨 탓인지 굉장히 풍화속도가 빠릅니다. 돌은 단단하데 꼭 시루떡의 절편처럼 돌들이 쪼개져 많은 수량 탓에 급속도로 침식이 이루어집니다. 해안가 산은 등산도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게이랑에르에서 올라 본 전망입니다. 계속 환상적인 경치 탓에 좋은 경이체 대한 감각이 무디어져 갑니다.
[게이랑에르에서 본 동네]
여기는 1500미터정도의 달스니바란 곳입니다. 산정상은 구름에 덮여있어 주변을 볼 수가 없지만 빙하와 호수로 참 이국적인 풍경입니다. 1,500미터에 있는 호수는 너무 멋집니다. 정상이 맑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들 아쉬워합니다. 너무 아쉽습니다.
[달스니바 호수에 있는 휴게소]
[1500미터 고지에 있는 호수]
브릭스달 빙하지대에서 게이랑에르 피오르드를 거쳐 달스니바에 이르는 경로가 노르웨이 관광의 하일라이트같습니다.
이곳에서부턴 계속 평탄한 지형이 한동안 이어집니다. 여기서부턴 호수가 길옆에 끝도 없이 이어집니다. 석유가 많이 나고, 나무가 많고 물이 많다더니 이 호수의 넓이가 정말 큽니다.
이곳은 스타브 교회란 곳입니다. 바이킹의 전통양식과 결합된 교회건물이 이채롭습니다.
교회마당에 가득한 묘지들도 멋집니다.
[스타브 교회]
[엘테세배 호텔]
[엘베세테 호텔]
[엘베세테호텔식당 내부]
식당을 소개하긴 뭐하지만 엘베테세란 호텔입니다. 마치 전통가옥에 식당을 차린 듯 멋진 건물과 주변 산들이 어울려 엽서의 한 장면을 이룹니다.
노르웨이에서 가장 높은 산들이 양옆에 호위하듯 서있습니다.
이제 요툰하이멘 국립공원을 통과합니다. ]
노르웨이에서 가장 넓은 국립공원인 요툰하이멘은 면적 2,173km2. 송네피오르드와 구드브란스달렌과의 분수령을 이루며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가장 높은 산지로, 최고봉은 글리테르틴덴산(2,472m)과 갈회피겐산(2,468m)이라고 합니다. 여름철에는 산기슭 일대의 초원에서 이목(移牧)이 행해진답니다. 북유럽의 전설에 많이 등장하며, 입센의 《페르귄트》의 무대이며. 지명은 ‘거인의 주거’라는 뜻입니다.
마치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지형 같습니다. 너무 보기만 해서 아쉽기가 그지없어 한군데라도 직접 올라가 봤으면 하는 바람이 꿀떡같습니다만 그럴 수 없어 안타깝습니다.
[요툰하이멘의 산들]
수목한계선을 넘어서 나무가 없는 곳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블루베리등이 많아 이것을 따먹는 맛도 참 쏠쏠합니다.
[빙하와 산들 - 길가의 나무는 눈이 쌓였을 때 길을 구분하기 위함]
길가에 서있는 5미터정도의 나무막대기는 눈이 너무 많이 왔을 때 길을 찾기 위한 막대라니 얼마나 눈이 쌓이는지 짐작 갑니다.
여기에 눈이 쌓이면 온천지가 눈 세상이 되고 그땐 노르딕 스키를 타고 온 나라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많다니 스키가 발달될 수밖에 없는 나라입니다.
[만년설과 호수]
[요툰하이멘의 협곡]
[요툰하이멘의 도로]
긴 거리를 온 끝에 엊그제 건넜던 송내피오드르 지류를 건너 오르달에 도착합니다.
오르달은 조용한 시골동네입니다.
이곳의 동네는 아름답게 꾸며진 집들로 가득합니다. 노르웨이는 집을 꾸미는 게 취미이고 미덕인 듯 작고 예쁜 사과나무와 꽃열매로 꾸며져 있습니다.
[오르달의 저녁]
[오르달 동네]
[낚시하는 사람]
[노르웨이와 스웨덴 어딜가나 있는 예쁜 열매나무]
오르달을 떠나 파르기네스를 거쳐 오슬로로 갑니다.
오슬로도 복잡한 해안선 때문에 많은 요트와 크루즈 여행선 들이 많습니다. 워낙 뛰어난 경치 탓인지 다른 볼거리가 그렇게 많아 보이진 않지만 오슬로 시청은 노벨평화상을 수여하는 곳이고 건물도 멋집니다.
오슬로의 상징인 시청사는 오슬로 시 창립 900주년을 기념하여 1931년에 착공했으나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중단되었다가 우여곡절 끝에 1950년에 완성되었답니다. 항구에 위치하며, 2개의 탑을 가진 이 건물의 내외 벽은 노르웨이의 대표적인 예술가들에 의한 그림과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고. 모두가 볼륨 있고 힘찬 작품들로서, 특히 독일군 점령하의 고뇌를 표현한 것이 많아 국민감정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2층에는 뭉크의 <인생>이라는 그림이 걸려있습니다. 스웨덴에서 수여하는 노벨상중 노르웨이를 달래기 위해 평화상은 이곳에 양보해서 여기서 수여한다니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곳에서 평화상을 수여받았을 생각을 하니 너무 정감이 갑니다.
[시청안 벽화-노벨평화상 수여장소]
[카를요한슨 거리]
[오슬로 왕궁]
왕궁은 1825-48년에 걸쳐 만들어 졌으며, 카를 요한스 거리 서쪽 끝의 공원에 둘러 싸여있다.
왕궁 앞에는 스웨덴 왕으로 노르웨이를 지배했던 카를 요한의 청동 기마상이 서 있으며, 궁전의 내부는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궁전 주위는 공개하고 있어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 특히 매일 오후 1시 30분에는 왕궁 위병 교대식이 있어 좋은 볼거리를 제공합니다.
[불가리아 왕 방문시 의전행사]
비겔란드 조각공원은 많은 조각과 잘 가꾼 주위환경으로 참 아름답습니다.
프로그네르 공원 (Frognerparken)으로 불리는 비겔란 조각공원은 193점에 이르는 세계적인 조각가 구스타브 비겔란의 작품으로 총면적 32만 3700㎡에 조성되어 있는 공원입니다. 입구부터 중앙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탄생과 죽음에 관련된 조각품들이 펼쳐져 있으며 윤회에 대한 동양적인 사상조차 엿볼 수 있습니다. 입구 정면에는 어린이들의 다양한 표정을 담고 있으며, 중앙의 분수에는 인간의 탄생에서 죽음의 과정을 순서대로 조각해놓고 있습니다.
[비겔란 조각공원 입구]
[여러가지 주제를 담고있는 조각들]
[비겔란드 조각공원 출구쪽]
바이킹배 박물관은 날렵하게 생긴 바이킹 배들이 그 옛날 용맹함을 보여줍니다. 평상시 전투에 쓰이던 배를 그대로 엎어서 묘지의 관으로 썼다니 오슬로의 피오르에서 발견된 오세베르그호, 고크스타호, 투네호등 3척의 바이킹선을 복원해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입니다. 이중 가장 크고 우아한 오세베르그호는 9세기초에 건조된 것으로 35명의 노젓는 사람과 돛을 이용해 항해하였고. 오세비르그호에서는 각종 장식품과 부엌용품과 가구류가 발견되었으며 50년 정도 사용된 후 오사여왕의 관으로 사용되었습니다.
9세기에 만들어진 고크스타호는 32명의 노젓는 사람과 돛으로 항해한 전형적인 바이킹 선으로 12두의 말과 6두의 개, 짐승머리로 장식된 침대, 3척의 보트 등이 발견되었습니다. 투네호는 배밑바닥을 제외한 다른 부분은 대부분 부패된 채 발견됐는데 원거리 항해용으로 이용된 것으로 보이며, 배들의 이름은 발견된 지명을 따서 붙여졌다고 합니다.
[바이킹배]
오슬로 시민들이 각별하게 사랑한다는 홀멘콜렌 스키 점프대도 멋집니다.
[홀멘콜렌 스키점프대]
아케르 후스 성입니다. 오슬로 항 동쪽 기슭의 바위 위에 있는 중세의 성채로, 한 때 노르웨이 왕의 거성이기도 했고. 오슬로에 현존하는 최고의 건물로 현재는 영빈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1300년 호콘5세에 의해 바위 위에 건축되었지만 1527년 화재로 대부분 소실되었다가. 1624년 화재로 소실된 요새의 아래에 크리스티안 4세가 신도시를 건설하고 요새는 지금의 모양으로 재 건축했습니다. 성이라 기 보다 르네상스풍의 궁전 같은 느낌입니다.
성채 안에는 1940∼45년에 걸친 독일에 대한 레지스탕스 운동의 자료를 모은 노르웨이 저항운동 박물관과 옛 무기고에 설치한 방위박물관이 있습니다.
[아케르 후스성에서 본 오슬로항]
[오슬로 항에서 본 아케르 후스성]
[아케르 후스성에서 본 오슬로 항구]
[스웨덴]
오슬로에서 비행기로 스톡홀름으로 갑니다.
[시스타 사이언스]
스톡홀름의 첨단산업 클러스트인 시스타 사이언스는 보기만 해도 글로벌스러운 기업들이 자리 잡고 있어 부럽습니다. 오라클, 아이비엠, 후지쯔, 휴렛팩커드 등 스톡홀름도 양옆에 늘어선 요트와 크루즈 여행선들이 스웨던의 수도가 멋집니다. 노르웨이도 그렇고 스웨덴도 해안가에 수도가 위치해 있습니다.
몇 개의 섬을 육지와 다리로 연결해 만든 스톡홀름은 맑은 공기와 넓은 평야지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노르웨이보단 사람이 살기엔 좀 나아 보이는 곳입니다.
[방송타워]
[방송타워에서 본 스톡홀름 항구]
점심을 먹은 스톡홀름 방송타워에서 보는 스톡홀름 전경은 바다와 녹색으로 어우러진 멋진 도시입니다. 도시의 30%이상이 녹지 공원이라는데 부럽기 그지없습니다.
[인프라 시티 호텔]
스톡홀름의 인프라 시티 호텔도 최신식 호텔입니다. 건물 옆에 삼성, 기아, 현대, LG 등 우리기업들의 홍보물이 있어 더욱 반갑습니다.
13-19C에 지어진 건물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구시가의 중심은 스토르토에트 광장입니다. 오래된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육중하게 자리하고 있는 이들 건물 내부는 레스토랑이나 목로주점, 카페, 부티크 등으로 개조되어 관광객의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다리를 건너 국회의사당을 지나면 왕국과 대성당, 1776년에 세워진 증권거래소 등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증권거래소의 맨 위층에는 노벨상 수상자를 뽑는 스웨덴 아카데미 본부가 있습니다.
[전통의 거리, 광장]
[옛날거리-스토르토에트]
[귀족들의 성]
[스톡홀름에 입항중인 크루즈]
스웨덴 시내에 있는 바사 전함 박물관입니다.
구스타프 2세 시대인 1625년에 건조되어 1628년 8월10일 처녀 항해때 스톡홀름 항에서 침몰한 스웨덴 왕실의 전함 바사호가 전시된 곳입니다. 침몰된 이후 1956년에 해양 고고학자인 안데스 프란첸(Anders Franzen)에 의해 발견되었으며 발견후 333년만인 1961년에 인양되었습니다.
1962년 임시 박물관이 문을 열어 이곳에서 1979년까지 보호액을 뿌리는 작업이 계속되었으며 1988년 바사호는 반 정도 완성된 새로운 박물관으로 옮겨졌으며, 1990년 바사 박물관이 개관되었다고 합니다. 건조 당시 스웨덴의 국력을 과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호화 전함으로 침몰한 이유는 애초에 계획된 것보다 더 많은 수의 포를 이 배에 싣고자 한 것이 원인으로. 당시의 건조기술로는 경험이 없었던 큰 선박을 건조해야 했고 이에 있어서 바사는 상부하중이 너무 커 균형을 유지 하지 못하고 돌풍에 침몰하고 만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바사호의 인양과 함께 당시의 목조품과 배안의 조각상등과 더불어, 당시 선원들의 유골과 유품들이 함께 발견되어 17세기의 사회상을 잘 반영해 주고 있다. 박물관은 총 7층으로 구성되어져 있어, 바사호를 여러 각도에서 바라 볼 수 있도록 배치되어있습니다.
우리도 거북선을 건져내어 저런 박물관 하나 세우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바사호]
[바사호가 침몰할 당시의 모습을 재현한 모형]
스톡름스웨덴의 시청은 노벨상을 수여하고 만찬을 하는 장소만으로도 많은 관광객들이 드나듭니다.
북유럽 최고의 건축미를 자랑하는 시청사(Stadshuset)는 쿵스홀멘(Kungsholmen)섬 남쭉에 위치해 북유럽 최고의 건축미를 자랑합니다. 1923년 라그나르 오스트베리의 설계로 만들어 졌으며, 800만개의 벽돌과 1,900만 개의 금도금 모자이크 완성되어. 시청사 내부의 푸른방(Bla Hallen)은 해마다 12월 10일경에 열리는 노벨상 수상식후의 만찬회가 열리는 곳으로 유명하다. 높이 106m의 탑위로 올라가면 스톡홀름 시가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는 데 시간관계상 올라가보진 못했습니다.
[스톡홀름 시청 외부]
[스톡홀름 시청 황금의 방]
비행기로 암스텔담을 경유하여 인천공항으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