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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정읍사람들 원문보기 글쓴이: 반석위에기둥
노량해전의 주역 태인출신 녹도만호 송여종 |
[연재]유종국의 인물井邑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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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여종(宋汝悰)은 1553년(명종 8) 당시 태인에서 태어났다. 자는 언온(彦蘊)이다. 본관은 여산(廬山)이다. 대사성 송인(宋璘)의 후손이다. 이조판서 송세형(宋世珩)의 손자이며, 찰방 송창(宋昌) 때마침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정읍 고부 출신 낙안군수 신호(申浩)의 막하에 들어가 종군하였다. 신호와 함께 이순신 장군을 따라 한산대첩에 참전하였다. 그가 이순신 장군의 명령에 따라 이순신 장군이 임금께 올리는 장계(狀啓)를 몸에 지니고 주야로 행재소로 달려가 왕에게 바쳤다. 왕은 그에게 술을 내리고 남평현감(南平縣監)에 제수하였다. 이후에 병조에서 임금에게 아뢰었다. "녹도만호가 전사하여 그 후임을 임명하여야 하는데 송여종이 이순신 장군 막하에서 공을 세웠고 또한 수전(水戰)도 익혔으니 이 사람을 임명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왕이 병조의 건의를 받아들여 그를 녹도만호에 임명하였다. 1597년(선조 30)에 조선 수군이 원균(元均)의 휘하에 들어갔다가 전투에 참여하여 왜적에게 전멸하였다. 이 때 그가 이끌던 함 그후 이순신 장군이 다시 수군통제사가 되어 수군을 영솔하였다. 이 때 이순신 장군은 그의 능력을 인정하여 병선 6척을 이끌게 하였다. 그는 돛을 올리고 곧바로 진격하여 왜적을 무수히 죽 1599년(선조32) 단성현감에 제수되었다. 이어 사복시정(司僕寺正) 임류진 첨절제사(臨溜鎭 僉節制使), 흥양현감(興陽縣監) 등을 거쳐 곤양군수(昆陽郡守)에 제수되었다. 경상좌도 수군우후(慶尙左道 水軍虞侯)를 역임하였다. 선무원종공신(宣撫原從功臣)에 녹훈되었다. 사후에는 증직으로 한성좌윤(漢城左尹)이 내려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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