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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의 주제 |
■ 부끄러움 /윤오영
고개 마루턱에 방석소나무가 하나 있었다.
예까지 오면 거진 다 왔다는 생각에 마음이 홀가분해진다. 이 마루턱에서 보면 야트막한 산 밑에 올망졸망 초가집들이 들어선 마을이 보이고 오른쪽으로 넓은 마당 집이 내 진외가로 아저씨뻘 되는 분의 집이다.
나는 여름 방학이 되어 집에 내려오면 한 번씩은 이 집을 찾는다. 이 집에는 나보다 한 살 아래인, 열세 살 되는 누이뻘 되는 소녀가 있었다. 실상 혼수를 따져 가며 통내외까지 할 절척(切戚)도 아니지만 서로 가깝게 지내는 터수라, 내가 가면 여간 반가워하지 아니했고, 으레 그 소녀를 오빠가 왔다고 불러내어 인사를 시키곤 했다. 소녀가 몸매며 옷매무새는 열 살만 되면 벌써 처녀로서의 예모를 갖추었고 침선이나 음식솜씨도 나타내기 시작했다.
집 문 앞에는 보리가 누렇게 패어 있었고, 한편 들에서는 일군들이 보리를 베기 시작했다. 나는 사랑에 들어가 어른들을 뵙고 수인사 겸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로 얼마 지체한 뒤에, 안 건넌방으로 안내를 받았다. 점심 대접을 하려는 것이다. 사랑방은 머슴이며, 일군들이 드나들고 어수선했으나, 건넌방은 조용하고 깨끗하다. 방도 말짱히 치워져 있고, 자리도 깔려 있었다. 아주머니는 오빠에게 나와 인사하라고 소녀를 불러냈다.
소녀는 미리 준비를 차리고 있었던 모양으로 옷도 갈아입고 머리도 곱게 매만져 있었다. 나도 옷고름을 매만지며 대청으로 마주 나와 인사를 했다. 작년보다는 훨씬 성숙해 보였다. 지금 막 건넌방에서 옮겨 간 것이 틀림없었다. 아주머니는 일군들을 보살피러 나가면서 오빠 점심 대접하라고 딸에게 일렀다.
조금 있다가 딸은 노파에게 상을 들려 가지고 왔다. 닭국에 말은 밀국수다. 오이소박이와 호박눈썹나물이 놓여 있었다. 상차림은 간소하고 정결하고 깔밋했다. 소녀는 촌이라 변변치는 못하지만 많이 들어 달라고 친숙하고 나직한 목소리로 짤막한 인사를 남기고 곱게 문을 닫고 나갔다.
남창으로 등을 두고 앉았던 나는 상을 받느라고 돗자리 길이대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맞은편 벽 모서리에 걸린 분홍 적삼이 비로소 눈에 띄었다. 곤때가 묻은 소녀의 분홍 적삼이.
나는 야릇한 호기심으로 자꾸 쳐다보지 아니할 수 없었다. 밖에서 무엇인가 수런수런하는 기색이 들렸다. 노파의 은근한 웃음 섞인 소리도 들렸다. 괜찮다고 염려 말라는 말같기도 했다. 그러더니 노파가 문을 열고 들어 왔다. 밀국수도 촌에서는 별식이니 맛 없어도 많이 먹으라느니 너스레를 놓더니, 슬쩍 적삼을 떼어 가지고 나가는 것이었다.
상을 내어 갈 때는 노파 혼자 들어오고, 으레 따라올 소녀는 나타나지 아니했다. 적삼 들킨 것이 무안하고 부끄러웠던 것이다. 내가 올 때 아주머니는 오빠가 떠난다고 소녀를 불렀다. 그러나 소녀는 안방에 숨어서 나타나지 아니했다. 아주머니는 "갑자기 수줍어졌니, 얘도 새롭기는."하며 미안한 듯 머뭇머뭇 기다렸으나 이내 소녀는 나오지 아니했다.
나올 때 뒤를 홀낏 홈쳐본 나는 숨어서 반쯤 내다보는 소녀의 빰이 확실히 붉어 있음을 알았다. 그는 부끄러웠던 것이다.
■ 백설부(白雪賦) /김진섭
말하기조차 어리석은 일이나, 도회인으로서 비를 싫어하는 사람은 많을지 몰라도, 눈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눈을 즐겨하는 것은 비단 개와 어린이들뿐만이 아닐 것이요, 겨울에 눈이 내리면 온 세상이 일제히 고요한 환호성을 소리 높이 지르는 듯한 느낌이 난다.
눈 오는 날에 나는 일찍이 무기력하고 우울한 통행인을 거리에서 보지 못하였으니, 부드러운 설편(雪片)이 생활에 지친 우리의 굳은 얼굴을 어루만지고 간지릴 때, 우리는 어찌된 연유(緣由)인지, 부지중(不知中) 온화하게 된 색채를 띤 눈을 가지고 이웃 사람들에게 경쾌한 목례(目禮)를 보내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나는 겨울을 사랑한다. 겨울의 모진 바람 속에 태고(太古)의 음향을 찾아 듣기를 나는 좋아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어라 해도 겨울이 겨울다운 서정시(抒情詩)는 백설(白雪), 이것이 정숙히 읊조리는 것이니, 겨울이 익어가면 최초의 강설(降雪)에 의해서 멀고 먼 동경의 나라는 비로소 도회에까지 고요히 고요히 들어오는 것인데, 눈이 와서 도회가 잠시 문명의 구각(舊殼)을 탈(脫)하고 현란한 백의(白衣)를 갈아입을 때, 눈과 같이 온 이 넓고 힘세고 성스러운 나라 때문에 도회는 문뜩 얼마나 조용해지고 자그마해지고 정숙해지는지 알 수 없는 것이지만, 이 때 집이란 집은 모두가 먼 꿈 속에 포근히 안기고 사람들 역시 희귀한 자연의 아들이 되어 모든 것은 일시에 원시 시대의 풍속을 탈환한 상태를 정(呈)한다.
온 천하가 얼어붙어서 찬 돌과 같이도 딱딱한 겨울날의 한가운데, 대체 어디서부터 이 한없이 부드럽고 깨끗한 영혼은 아무 소리도 없이 한들한들 춤추며 내려오는 것인지, 비가 겨울이 되면 얼어서 눈으로 화한다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만일에 이 삭연(索然)한 삼동이 불행히도 백설을 가질 수 없다면, 우리의 적은 위안은 더욱이나 그 양을 줄이고야 말 것이니, 가령 우리가 아침에 자고 일어나서 추위를 참고 열고 싶지 않은 창을 가만히 밀고 밖을 한 번 내다보면, 이것이 무어랴, 백설 애애한 세계가 눈앞에 전개되어 있을 때, 그때 우리가 마음에 느끼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말할 수 없는 환희 속에 우리가 느끼는 감상은 이 아름다운 밤을 헛되어 자버렸다는 것에 대한 후회의 정이요, 그래서 가령 우리는 어젯밤에 잘 적엔 인생의 무의미에 대해서 최후의 단안을 내린 바 있었다 하더라도, 적설(積雪)을 조망하는 이 순간에만은 생(生)의 고요한 유열(愉悅)과 가슴의 가벼운 경악을 아울러 맛볼지니, 소리없이 온 눈이 소리없이 곧 가버리지 않고 마치 그것은 하늘이 내리어 주신 선물인거나 같이 순결하고 반가운 모양으로 우리의 마음을 즐겁게 하고, 또 순화(純化)시켜 주기 위해서 아직도 얼마 사이까지는 남아 있어 준다는 것은, 흡사 우리의 애인이 우리를 가만히 몰래 습격함으로 의해서 우리의 경탄과 우리의 열락(悅樂)을 더 한층 고조하려는 그것과도 같다고나 할는지!
우리의 온 밤을 행복스럽게 만들어 주기는 하나, 아침이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감미한 꿈과 같이 그렇게 민속하다고는 할 수 없어도 한 번 내린 눈은, 그러나 그다지 오랫동안은 남아 있어 주지는 않는다.
이 지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은 슬픈 일이나 얼마나 단명(短命)하며 또 얼마나 없어지기 쉬운가! 그것은 말하자면 기적같이 와서는 행복같이 달아나 버리는 것이다.
편연(便姸) 백설이 경쾌한 윤무(輪舞)를 가지고 공중에서 편편히 지상에 내려올 때, 이 순치(馴致)할 수 없는 고공(高空)무용이 원거리에 뻗친 과감한 분란(紛亂)은 이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거의 처연한 심사를 가지게까지 하는데, 대체 이들 흰 생명들은 이렇게 수많이 모여선 어디로 가려는 것인고? 이는 자유의 도취 속에 부유(浮遊)함을 말함인가? 혹은 그는 우리의 참여하기 어려운 열락(悅樂)에 탐닉하고 있음을 말함인가? 백설이여! 잠시 묻노니, 너는 지상의 누가 유혹했기에 이곳에 내려오는 것이며, 그리고 또 너는 공중에서 무질서의 쾌락을 배운 뒤에, 이곳에 와서 무엇을 시작하려는 것이냐? 천국의 아들이요, 경쾌한 족속이여, 바람의 희생자인 백설이여! 과연 뉘라서 너희의 무정부주이를 통제할 수 있으랴? 너희들은 우리들 사람까지를 너희의 혼란 속에 휩쓸어 넣을 작정인 줄을 알 수 없으되 그리고 또 사실상 그 속에 혹은 기꺼이, 혹은 할 수 없이 휩쓸려 들어가는 자도 많이 있으리라마는 그러나 사람이 과연 그러한 혼탁한 와중(渦中)에서 능히 견딜 수 있으리라고 너희는 생각하느냐? 백설의 이 같은 난무(亂舞)는 물론 언제까지나 계속되는 것은 아니다. 일단 강설(降雪)의 상태가 정지되면, 눈은 지상에 쌓여 실로 놀랄 만한 통일체를 현출(現出)시키는 것이니, 이와 같은 완전한 질서, 이와 같은 화려한 장식을 우리는 백설이 아니면 어디서 또다시 발견할 수 있을까? 그래서 그 주위에는 또한 하나의 신성한 정밀(靜謐)이 진좌(鎭座)하여, 그것은 우리에게 우리의 마음을 엿듣도록 명령하는 것이니, 이 때 모든 사람은 긴장한 마음을 가지고 백설의 계시(啓示)에 깊이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보라! 우리가 절망 속에서 기다리고 동경하던 계시는 참으로 여기 우리 앞에 와서 있지는 않는가? 어제까지도 침울한 암흑 속에 잠겨 있던 모든 것이, 이제는 백설의 은총(恩寵)에 의하여 문뜩 빛나고 번쩍이고 약동하고 웃음치기를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라붙은 풀포기, 앙상한 나뭇가지들조차 풍만한 백화(百花)를 달고 있음을 물론이요, 괴벗은 전야(田野)는 성자의 영지(領地)가 되고, 공허한 정원은 아름다운 선물로 가득하다. 모든 것은 성화(聖化)되어 새롭고 정결하고 젊고 정숙한 가운데 소생되는데, 그 질서, 그 정밀은 우리에게 안식을 주며 영원의 해조(諧調)에 대하여 말한다.
이 때 우리의 회의(懷疑)는 사라지고, 우리의 두 눈은 빛나며, 우리의 가슴은 말할 수 없는 무엇을 느끼면서, 위에서 온 축복을 향해서 오직 감사와 찬탄을 노래할 뿐이다.
눈은 이 지상에 있는 모든 것을 덮어줌으로 의해서 하나같이 희게 하고 아름답게 하는 것이지만, 특히 그 중에도 눈에 덮인 공원, 눈에 안긴 성사(城舍), 눈 밑에 누운 무너진 고적(古蹟), 눈 속에 높이 선 동상(銅像) 등을 봄은 일단으로 더 흥취의 깊은 곳이 있으니, 그것은 모두가 우울한 옛 시를 읽은 것과도 같이, 그 눈이 내리는 배후에는 알 수 없는 신비가 숨쉬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공원에는 아마도 늙을 줄을 모르는 흰 사람들이 떼를 지어 뛰어다닐지도 모르는 것이고, 저 성사(城舍) 안 심원(深園)에는 이상한 향기를 가진 알라바스터의 꽃이 한 송이 눈 속에 외로이 피어 있는 지도 알 수 없는 것이며, 저 동상(銅像)은 아마도 이 모든 비밀을 저 혼자 알게 되는 것을 안타까이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어라 해도 참된 눈은 도회에 속할 물건이 아니다. 그것은 산중 깊이 천인만장의 계곡에서 맹수를 잡는 자의 체험할 물건이 아니면 아니 된다.
생각하여 보라! 이 세상에 있는 눈으로서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니, 가령 열대의 뜨거운 태양에 쪼임을 받는 저 킬리만자로의 눈, 멀고 먼 옛날부터 아직껏 녹지 않고 안타르크리스에 잔존(殘存)해 있다는 눈, 우랄과 알래스카의 고원에 보이는 적설(積雪), 또는 오자마자 순식간에 없어져 버린다는 상부 이탈리아의 눈 등 ....... 이러한 여러 가지 종류의 눈을 보지 않고는 도저히 눈에 대해서 말할 수 없다고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불행히 우리의 눈에 대한 체험은 그저 단순히 눈 오는 밤에 서울 거리를 술집이나 몇 집 들어가며 배회하는 정도에 국한되는 것이니, 생각하면 사실 나의 백설부(白雪賦)란 것도 근거 없고 싱겁기가 짝이 없다 할 밖에 없다.
■ 불씨
말끔히 다듬어진 길 위에 붉은 카펫이 깔리고 하객들이 자리를 채운다. 단상에 두개의 촛대가 가지런히 놓이고 누군가에 의해 촛불이 켜지기를 기다린다. 연미복을 입은 피아노연주자의 유연한 손이 건반위에 춤을 추고 분답한 소리들은 선율에 파묻힌다. 일순간 장내는 서래질 끝낸 무논처럼 자부룩한 정적만이 흐른다.
이윽고 하얀 옷의 목회자가 중앙에 자리 잡고 나는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단위에 올랐다. 손을 내밀어 가오리처럼 납작한 성냥갑을 일으켜 세워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불씨를 찾는다. 요리조리 곽을 돌리며 불기운을 모으려 손아귀에 힘을 주며 두드려 깨운다. 쑤석거려도 불꽃은 쉬이 일지 않고 타 -닥 성냥개비를 그어대는 소리만 귓전에 울린다. 첫국밥을 마주하던 그 순간처럼 뿌듯함과 설렘이 뒤섞이고 있다. 떨리는 어미의 마음이 손끝에 머물고 떠나지 않음인가. 가슴속에 활활 타고 있는 맹목적 사랑에 물 한바가지 끼얹어 잠시 식히기 위함인가. 조바심을 칠수록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성냥불의 어깃장에 내 가슴에 잠시 파문이 인다.
검불처럼 날리는 지난날들 너머로 신화 속 인물이 쇠사슬에 묶인 채로 바위산에 걸려있다. 코카서스 산정의 독수리무리에게 쉼 없이 간을 쪼이는 형벌을 감수했던 불씨를 꺼내준 그가 나를 다독인다. 내안에서 끄집어내는 작은 불씨는 입김에도 펄럭이는 촛불이어라. 흐르는 촛농처럼 질펀한 생활 속에 옹골찬 제 심지를 태우며 사위어도 바람막이가 되지못해 발구를 때 있으리라. 때로는 폭풍우에 가물거려도 눈길로만 바라봐야하는 유리창너머의 세상이기도하리라. 떠나보내야 하지만 붙잡고 싶은 것이 세상 속으로 나가는 자식의 발걸음이라면 한사코 놓고 싶지 않은 것은 탯줄로 이어진 끈끈한 혈육의 정이리라. 얼레에 감긴 실을 풀었다 감아가며 띄워 보냈던 아들이 구름너머 무지개를 쫒아 잰걸음으로 간다. 바람타고 오르내리던 나의 시야는 구멍 숭숭 뚫린 채 지상으로 내려앉고, 하늘위로 뻗어 올라 팽팽해진 연실은 이제는 끊어야하는 시간임을 자꾸만 일깨운다.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순리 앞에 왜소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나의 숙명이리라. 벌겋게 달아오른 용광로에 부글부글 끓고 있는 쇳물처럼 뜨거운 그 무엇이 울컥 목안까지 차오른다. “해깝하게 잘 살어라”등허리를 두드리며 나를 보내던 어머니가 탱자나무 울타리에 가물가물 서있다.
불구덩이 속에서 숯덩이가 되었다가 하얀 재로 남는 것이 부모의 자리라면, 장작개비에서 피워낸 화려한 불꽃은 손닿을 수 없이 멀어져가는 자식의 모습이런가. 어렴풋이 다가온 보이지 않는 손길이 들떠있는 마음 밭을 조곤조곤 다독여 가라앉힌다. 화로에 담긴 난만한 불꽃더미도 도톰하게 재를 덮지 않으면 금방 사그라진다. 재속에서 불꽃은 알불을 숨기고 뻗치기만 하는 불기운을 누그러뜨린다. 잉걸불이거나 잿불이거나 그 어둠의 재속에 묻혀야만 말간 꽃눈을 뜨는 것이니 재를 헤적여 놓으면 화로의 불은 꺼져버리고 만다. 죽었다고 생각되는 재가 불씨를 품어서 살려내는 것이다. 사람의 정도 그렇고 세상의 이치도 그러한 것이거늘 거스르고 싶은 내 심사는 어찌된 일일까.
땡-땡 상념을 깨우는 종소리가 울리며 교회의 오색 유리창으로 햇살이 밀려들어온다. 내 어버이가 그랬듯이 묻어둔 불씨를 정성스레 꺼내어 솔잎 향 가득한 그네에게 전하리라. 비갠 하늘처럼 열려진 가슴을 비집고 성냥개비불이 불쑥 고개를 내민다. 화안하게 드러나는 성장한 신랑신부의 설레는 마음이 넓은 단상을 그득하게 채운다. 불씨를 받아든 마주선 두 사람이 몸을 낮추어 서로에게 절을 한다.
화면가득 두 사람의 지나온 발자취가 슬라이더로 펼쳐지고 간간히 웃음소리와 감탄이 쏟아진다. 장난꾸러기 꼬맹이에서 선머슴아로, 의젓한 대장부와 숙녀로 모습을 달리하며 눈앞에 다가선다. 풋풋하고 싱그러운 연인들이 눈부신 바다를 향해 백사장을 달려가고 있다.
망망대해의 짙푸른 태평양과 대서양이 맞닿은 곳, 시드니에서 힘차게 닻을 올리고 꿈을 찾아 떠나는 두 사람을 환송하는 주례사를 한다. 땅에서 맺어지고 하늘에서 이루어진 두 사람의 결혼은 두 객체의 연합이며 합종이라는 설교가 이어진다. 마침내 결혼 서약이 이루어지고 친구들의 축가를 끝으로 불씨를 건네주는 의식은 끝났다. 이제 두 사람은 끈질긴 생명력으로 이 땅에 뿌리내려 서로에게 촛불이 되어 헌신하고 어둔 밤을 밝히는 등불로 세상 앞에 당당히 설 것이다.
그 겨울에 들여 놓은 어머니의 화롯불은 외풍 센 방안에 훈기를 불어주고 날것들을 익혀내며 윗목을 지켰다. 부엉새 우는소리에 밤은 깊어가고 문풍지도 덩달아 칼바람에 맞섰다. 군밤을 까먹으며 곁불을 쬐던 나는 어느새 불씨마저 사라진 질화로가 되어있다. 비어있는 화로는 또 하나의 소우주다.
저만치서 종종걸음으로 다가온 며늘애가 손을 모으고 다소곳이 고개를 숙인다. “고마-스무니다. 어-머-니” 쑥스러운 듯 어눌한 발음으로 인사하는 말투 속에 불씨는 벌써 싹을 틔우려는지 송골송골 땀 밴 얼굴이 곱다.
▪ 나무
출판사 가는 길 입구에는 주유소가 있다. 그 주유소 뜰에는 오동나무가 몇 그루 있다. 내가 남문시장을 갈라치면 꼭 그곳을 지나게 되는데, 해마다 사월이 오면 그곳의 오동나무에 보랏빛 꽃이 핀 것을 올려 보느라 넋이 나간다. 오늘도 그곳을 지나다가 오동꽃을 보았다. 나는 오동나무를 볼 때마다 이상하리만치 서운한 마음이 생기고 '아그배나무'가 생각난다. 몇 해 전, 오동꽃이 피었던 사월에 옥천에 가 있었다. 그곳에는 정지용 시인의 생가와 문학관이 있다. 생가의 마당에는 아그배나무가 한 그루 떡 하니 자리 잡고 있다. 사월 말경이면 아그배나무에 하얀 배꽃이 흐드러지게 핀다.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고 노래하던 시인의 고향을 나 역시 잊지 못하고 있다. 아그배나무 옆에는 정겨운 우물도 하나 있다. 나는 그곳에서 시원한 우물을 마셔보지 못한 것이 아직도 애석하다.
흰눈이 쌓인 듯 탐스럽게 핀 아그배꽃을 생각하다보니 어느새 내 마음은 제트기보다도 더 빠르게 다솔사의 경내로 날아가 내려앉는다. 경남 사천에 있는 다솔사의 경내에는 하얀꽃이 피는 복숭아나무가 한 그루 있다. 무자년 사월, 겹겹이 핀 흰복숭아꽃을 바라보면서 '정말로 진귀한 나무도 다 있다'는 생각을 했다. 복숭아꽃 하면 으레 여인의 수줍은 미소같은 연분홍꽃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연분홍빛을 피워내는 복숭아나무가 고향집 뒤뜰에도 딱 한 그루 있었다. 지금쯤 그곳은 복사꽃 진자리에 열매가 조롱조롱 열렸을 테지. 무시로 복사꽃 가득한 밭을 거닐 때면 '무릉도원'이란 단어가 생각나고 내가 신선인 양 도취된다. 또 의리에 죽고사는 유비,관우,장비 삼형제의 '도원결의'가 떠오른다. 내게도 그런 의형제가 있었으면 하고 소망한다.
꿈 많던 소녀시절에 복숭아는 밤에 먹어야 미인이 된다며 호롱불을 끄고 벌레와 함께 통째로 우걱우걱 씹어 먹었던 기억이 새삼스럽기도 하다. 어두운 밤엔 복스런 여인의 속살같은 뽀오얀 과육을 볼 수 없었지만 그 단맛은 천하 일미(一味)였다. 좋아하는 사내아이와 사랑을 하고 싶어 몸마저 달았던 그날 밤이 느닷없이 그리워진다.
시골에서는 배가 고플 때 아카시아 꽃을 따먹었다. 달콤한 맛과 향기가 너무나 좋았다. 주로 묘지주변에 잘 자라 숭조(崇祖)사상이 강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하루 빨리 뽑아내야할 나무지만 양봉업자들에게는 더 없이 소중한 밀원식물(蜜源植物)이다. 칠곡에서는 '아카시아벌꿀 축제'를 개최하는 것 같은데 올해는 한 번 가봐야겠다. 아카시아는 가시가 있어 접근하기 어려우나 화력은 좋다. 우리 집은 아궁이에 아카시아 나무로 밥을 지었다. 화력이 좋으니 밥맛도 좋았다. 그때는 하얀 쌀밥이 참 귀했었다. 보리밥 먹는 친구들이 많았고, 보리밥도 없어서 도시락을 못 가져온 친구가 학교 우물로 배를 채우는 것을 보고 가슴이 아렸던 그 때를 잊을 수가 없다.
그런 연유로 모든 물건을 아껴 쓸 수밖에. 나는 절약하고 아끼는 것이 습관화 되어있다. 사치하지 않고 검소하게 사는 것 그것이 내가 살 길이다. 우리나라 고유의 꽃들은 대체로 소박하고 작으며 흰꽃이 많은 편이다. 외래종은 크고 화려한데 반하여 우리 토종은 한국여인처럼 올망졸망한게 사랑스럽다. 그리고 대체로 향기가 은은한 꽃이 많다. 백의민족의 얼이 조국의 산하에 깃들어서일까. 하지만, 외래수종이 점점 우리땅을 차지하고 있는 듯 하여 마음이 편하지 않다. 우리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 염려스럽다. 남의 것 너무 좋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나라 내땅에서 자라는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조차 지키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자화상이다.
오늘따라 햇살은 더욱 무성하다.
수필의 구성 |
■ 그 봄날을 기억하고 있을까 /임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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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식장에서였다. 신랑 신부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느라고 정신이 없는데 바로 옆자리에서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다. 힐끗 돌아보니 친구의 오빠였다. 먼 곳까지 찾아와서 혼사를 축하해 주어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오빠는 마주보며 웃는 나를 피해 얼른 고개를 돌렸다. 그의 서늘한 눈빛이 순간적으로 내 눈에 잡혔다. 그 옛날 내게 내뱉었던 한 마디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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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시절이었다. 아마 그때가 신학기가 막 시작된 초봄으로 기억된다. 환경정리를 하고 오느라 친구들보다 늦은 귀갓길이었다. 책가방 대신 책보자기에 책 몇 권과 잉크병을 싸서 팔에 받쳐들고 혼자 신작로를 걸어가는 중이었다. 한참 걸었을까. 문득 왼쪽 팔을 보니 검은 잉크가 베어 나와 하얀 교복 셔츠에 묻어있는 게 아닌가. 순간 당황하였다. 그대로 마르면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 같아 두리번거리며 물을 찾았다. 신작로 아래를 내려다보니 도랑에 마침 물이 고여 있었다. 소매를 씻고 올라오는데 웬 남학생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친구의 오빠였다. 반가워서 배시시 웃자 대뜸 욕을 해댔다.
"가시나야, 니 저 아래서 어떤 놈하고 뭐 했노. 못된 년!"
울상이 되어 장승처럼 서 있는 내 앞에서 그는 휑 돌아서 가버렸다. 한 번쯤은 돌아볼 것 같았는데 끝끝내 꼿꼿한 걸음으로 신작로와 어긋난 둑길을 걸어가 버렸다. 그 날 이후 오가는 학교 길에서 마주칠 수 있을 법하였는데도 그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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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보다도 훨씬 이전 초등학교 상급생 때였다. 그 날도 토요일이었다.
하교 길에 친구가 자기 집에 놀러 가자고 집까지 따라오며 졸라댔다. 멀리 떨어져 있는 마을이라 걱정하시던 부모님도 친구의 성화에 못 이겨 결국은 허락을 하였다. 둑 너머 들녘에 아지랑이가 피어날 듯한 이른 봄날, 냇가를 낀 산기슭을 걸어 친구의 집에 도착했다. 우리는 조그만 소쿠리를 챙겨들고 마을 앞 못둑으로 쑥을 캐러 나왔다. 아직 어린 쑥은 소쿠리에 좀처럼 차 오지 않는데 그만 해가 졌다. 찬바람에 코끝이 얼얼할 즈음 친구 어머니가 쑥국을 끓였으니 어서 가자며 데리러 왔다. 두리반에 그 집 가족과 함께 빙 둘러앉았다. 가장 늦게 식탁에 온 친구 오빠는 비어있던 자리에 나와 마주 앉자마자 고개도 아니 들고 투정을 부렸다.
"나 쑥국 안 묵을 끼다"
용수철처럼 발딱 일어서더니 방문을 차고 나가버렸다. 그 다음 날 아침에도 친구오빠는 식탁에 나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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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식이 막 끝나고 사람들 틈에 밀려가는 그의 모습을 놓쳐버렸다. 나처럼 친구의 오빠도 그 봄날의 일들을 기억하고 있을까.
■ 여승 /백석
평안도의 어느 산 깊은 금덤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어린 딸아이를 때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도 않고
어린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 꿩도 섦게 울은 슬픈날이 있었다.
산 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처럼 서러워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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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처럼 서러워 졌다.
평안도의 어느 산 깊은 금덤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어린 딸아이를 때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도 않고
어린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 꿩도 섦게 울은 슬픈날이 있었다.
산 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 수의 / 주인석
마음이 서늘해 온다. 여름내 묵혔던 방충망을 뜯어내다가 기겁을 하고 말았다. 매미유충 한 마리가 탈피를 하다 자신의 갑옷에 끼인 채 활처럼 몸을 젖히고 바싹하게 말라 죽어 있다. 때론 목숨이 다한 것을 보는 것보다 오히려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에 함께 있는 것이 더 나을 때가 있다.
꼬리를 빼지 못한 매미유충의 마지막 두려움과 괴로움이 감지 못한 눈에 선명하다. 옥색 날개를 펴는 꿈을 꾸며 정신은 하나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갔을 것이다. 탈피를 간원한 휘어진 몸, 무엇이 끝까지 놓아주지 않았을까. 불완전한 삶을 완전하게 승화시키려했던 마지막 발버둥이 박제 되어 있다.
문득 십년 전에 본 몸부림이 떠오르면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생의 마지막을 보는 것은 엄숙하거나 아니면 괴롭다. 마무리가 잘 된 호상일 때가 그러하고 사연 많은 단명일 때가 그렇다.
형부는 사십대의 절반을 채우고는 매미유충 같은 삶을 마감했다. 표면상으로 언니보다 우리가 훨씬 애석하게 여겼던 죽음이었으니 당사자가 아니면 그 연유야 알뜰히 알 수가 없다. 내가 형부를 처음 만날 땐 기저귀를 차고 있었다하니 나에게 있어 형부는 숲 같은 아버지였다.
친정 장롱 안에는 아직도 형부 옷이 있다. 농사일을 거들어 줄 때 입던 아버지의 옷이다. 강산이 바뀐 지금도 그 옷에서 형부를 기억한다. 채 빠져 나가지 않은 형부 냄새와 그리움 때문에 눈보다 가슴이 먼저 소매를 적신다.
형부를 생각하면 매미같이 까만 눈이 떠오른다. 언니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 미남이었던 형부는 머리도 좋았다. 그래서 그런지 형부는 결혼한 이듬해부터 이 세상 떠나는 날까지 언니 속을 무던히도 태웠다.
언니와 다르게 우리에겐 항상 인기가 좋은 형부였다. 얼굴만 잘생긴 게 아니라 싹싹한 말솜씨와 통솔력으로 맏사위답게 일처리도 그만이었다. 그런 성격 때문에 무뚝뚝한 언니와는 충돌이 많았지만 밖에서는 늘 인기최고였다. 형부는 집보다는 밖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매미가 숲의 걸그림을 이탈하여 방충망에 앉아 있듯이.
수풀에 있어야 할 유충이 왜 아파트 베란다로 올라와 옷 벗기를 시도했을까. 유리에 붙은 스텐실 나비날개에 유혹을 당했나. 맴맴 잔소리 많은 집을 떠나 조용히 살고 싶었나. 현란한 환경에 사람이 흔들리듯 곤충도 사람 같은 구석이 있나보다.
불완전변태를 하는 매미는 유충 속에 날개가 있다. 그것은 우리 육안으로도 보인다. 그런 사실을 매미 자신은 모를 것이다. 나쁜 소문이 무성히 돌아도 몰랐던 형부처럼.
눈으로 보이는 것을 그것이라고 말하면 안 될 때가 있다. 유충 속에 날개로 보이는 것도 탈피가 되기 전까지는 날개라고 말 할 수 없다. 가끔 주변 사람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가운데 언니 마음에 더 불을 지르는 경우도 있었다. 형부도 모르는 일을 주변 사람들이 언니나 우리에게 왜곡된 해석으로 전해 줄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언니는 속상해 죽는다고 난리고 형부는 속 터져 죽겠다고 야단이다. 안 보이는 것이 원인이 되었는데 결과는 보이는 것이 되어 버렸다. 둘 다 죽는다고 할 때는 주변사람들이 오히려 원망스러웠다.
매미의 변태는 밤사이 몰래 이루어진다. 누가 보면 안 되는 사연이라도 있었을까.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는 속설의 말처럼 매미에게도 은밀한 장소와 여자의 등장이 필요했던 걸까. 완전변태를 하는 곤충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우화를 한다. 그것은 아마도 성숙된 번데기 과정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동안 먹지도 않고 두문불출해야 하는 번데기 과정은 답답할 것이다. 그래서 매미는 꾸물거리더라도 움직이는 애벌레 과정을 더 오래 거쳐서 등을 가르는 비상을 선택했나 보다. 껍질이 찢기는 아픔을 감내하면서까지.
형부가 언니에게 용서 받지 못했던 것도 매미의 속성을 일부 닮았기 때문이다. 밤을 낮 삼아 활동했던 것, 집에 있기보다는 장거리 여행을 좋아했고 게다가 잔꾀까지 부렸으니 매미라 할 만하다. 싸움도 하니 늘고 잔머리도 쓸수록 단이 높아지더라는 말은 형부의 능청스런 성격을 대변한다.
매미유충은 긴 세월 동안 땅속에서 열 번이 넘는 허물벗기를 하고 땅 위에서 마지막 한 번의 우화로 매미가 되는 것이다. 등이 갈라지고 머리와 가슴이 나오는 그 순간은 참으로 경이롭다. 그러다 한참을 쉰 후 마지막 꼬리를 뺀다. 그동안 자신의 삶을 가렸던 껍질을 잡고 한참 동안 회상에 잠기다가 날개를 추스르고 깊은 밤 속으로 파르스름한 줄을 긋는다.
형부는 죽기 전까지 꽤 많은 허물벗기를 했다. 그것이 임기응변이고 구렁이 담 넘듯 하여 언니에게 더 많은 고통을 줬다할지라도 형부 나름대로 가정을 지키기 위한 방편이었을 것이다.
불혹에 접어든 형부는 굼벵이 같은 생활에 손을 떼고 언니 곁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형부 몸은 이미 당뇨로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이었다. 언니에게 마지막으로 잘 해 보겠다던 형부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마지막 우화를 눈앞에 두고 돌아가셨다. 우화에 성공한 매미가 까만 밤에 파란 포물선을 그리고 하늘로 날았다면 형부는 파란 바다에 하얀 파도를 잠깐 일으키다 끝내 수평선을 그리고 바다와 맞닿은 하늘로 스며들었다.
형부는 임종을 앞두고 출입문을 향해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말을 반복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공간을 향한 눈빛이 참으로 애절했다. 형부는 미안하다고 몇 번이고 말했지만 언니는 눈을 감아버렸다. 그것이 용서를 의미하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삶은 겪는 자의 몫이라는 말이 딱 맞는 모양이다.
흐르는 눈물이 연애라면 마른 눈물은 결혼인 모양이다. 언니는 눈물도 말라있었다. 형부는 생의 부끄러운 옷을 벗고 가려고 안간 힘을 쓰다 자신의 옷에 끼여 우화되지 못한 매미였을지 모른다.
통증 때문이었는지 형부 몸은 구부정하게 보였다. 멈춰버린 형부 가슴에 미색수의가 얹혀있다. 수의는 형부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언니 마음이었던 것이다. 환자복을 벗기자 바짝 마른 형부 몸이 보였다. 생의 옷을 벗고 뽀얀 날개를 단 형부는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처럼 보였다.
끼여서 바스라질 것 같은 매미를 빼내 나무 사이로 날려 보낸다. 그리고 방충망을 씻는다. 여름내 입었던 먼지 옷을 벗기자 건너편 바람이 기다렸다는 듯 들어와 안긴다. 옷은 잘 벗으면 이렇게 시원하고 가볍다.
수필의 표현 |
■ 황혼/ 박완서
강변 아파트 칠 동 십 팔층 삼호에는 늙은 여자와 젊은 여자와 젊은 여자의 남편과 두 아이가 살고 있었다. 늙은 여자와 젊은 여자는 고부간이었다. 고부간의 의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젊은 여자는 좋은 가정 교육과 학교 교육을 받은 똑똑한 여자로서 매사에 완전한 걸 좋아했다. 비뚤어지거나 모자라거나 흠나거나 더럽거나 넘치는 걸 참지 못했다. 그러나 사람의 행복이라는 데 대해서만은 대단히 융통성 있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아무리 행복한 사람에게도 한 가지 근심이 있기 마련이라는 게 그것이었다. 늙은 여자는 젊은 여자의 바로 이 한 가지 근심이었다. 젊은 여자는 늙은 여자를 한 가지 근심으로서밖에 인정하지 않았다.
늙은 여자는 실상 늙은 여자가 아니었다. 아직 환갑도 안되었고 소녀처럼 혈색 좋은 볼과 검고 결 좋은 머리와 맑은 눈을 가지고 있었다. 젊은 여자를 며느리로 맞을 때는 더 젊었었다. 하객들은 동서간처럼 보이는 고부간이라고 수근댔었다.
시집온 지 며칠이 지나도록 젊은 여자는 늙은 여자를 결코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았다. 꼭 불러야 할 기회는 젊은 여자 쪽에서 교묘하게 피했기 때문에 늙은 여자는 그걸 별로 부자연스럽게 여기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젊은 여자는 친구를 초대했다. 친구들은 오이소배기 맛을 특히 칭찬하면서 누가 어떻게 담갔는가를 알고 싶어했다. 그것은 늙은 여자의 솜씨였다. 늙은 여자는 젊은 여자가 우리 어머님이 담그셨다고 그래주길 가슴 두근대며 기다렸다. 그러나 젊은 여자는 간결하게 말했다.
"우리 집 노인네 솜씨야."
늙은 여자는 그 말이 섭섭해 며칠 동안 입맛을 잃었다.
그러나 그것은 다만 시작에 불과했다. 감기 기운만 있어 뵈도 노인네가 옷을 얇게 입으시니까 그렇죠. 화장실만 자주 들락거려도 노인네가 과식을 하시니까 그렇죠. 질긴 거나 단단한 걸 먹으려해도 노인네가 그걸 어떻게 집수실려고 그래요. 이런 식으로 그 여자는 모든 자연스러운 행동을 하나하나 간섭받으면서 늙은 여자로 만들어졌다.
그러다가 젊은 여자는 아이를 낳았다. 늙은 여자에게 손자가 생긴 것이다. 그때부터 젊은 여자는 늙은 여자를 할머니라고 불렀다. 늙은 여자의 아들까지 덩달아서 할머니라고 불렀다. 마땅히 어머니라고 불러야 할 사람들이 할머니라고 부르기 위해 대화의 방법까지 간접적인 것으로 고쳐 나갔다.
할머니 진지 잡수시라고 해라. 할머니 그만 주무시라고 해라. 할머니 전화 받으시라고 해라. 이런 식이었다.
오늘 아침에도 늙은 여자는 깨어서 누워 있었다. 늙은 여자의 방은 아파트의 방 중 바깥으로 창이 나지 않은 단 하나의 방이었기 때문에 밖이 어느 만큼 밝았나를 알 수 업었다. 문은 부엌으로 나 있었다. 그 방은 방이 아니라 골방이었다.
늙은 여자는 눈감고 창 밖의 어둠이 군청색으로, 남빛으로, 엷어지면서 창호지의 모공을 통해 청량한 샘물 같은 새벽바람이 일제히 스며들던 옛집의 새벽을 회상했다. 그 여자의 회상은 회상치곤 아주 사실적이었다. 아파트촌의 새벽이 그 여자의 회상을 따라 밝아 왔다.
부엌에서 그릇 부딪는 소리가 들리고 이어서 할머니 일어나시라고 해라 하는 젊은 여자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은 아직 자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은 늙은 여자 들으라고 하는 소리였다.(하략)
■ 한계령/ 양귀자
전화에서 흘러나오는 여자의 목소리는 지독히도 탁하고 갈라져 있었다. 얼핏 듣기에는 여자인지 남자인지 구분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그 목소리를 듣자 나는 곧 기억의 갈피를 젖히고 음성의 주인공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내게 전화를 건 적이 있는 그런 굵은 목소리의 여자는 두 사람쯤이었다. 한 명은 사보 편집자였고 또 한 명은 출판인이었다. 두 사람 다 만나본 적은 없었지만 아무래도 활동적이고 거침이 없는 여걸이 아니겠냐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터였다.
두 사람 중의 하나라면 사보 편집자이기가 십상이라고 속단한 채 나는 전화 저편의 여자가 순서대로 예의를 지켜가며 나를 찾는 것에 건성으로 대꾸하고 있었다. 가스레인지를 켜놓고 무언가를 끓이고 있던 중이어서 내 마음은 급하기 짝이 없었다. 급한 내 마음과는 달리 여자는 쉰 목소리로 또 한번 나를 확인하고 나더니 잠깐 침묵을 지키기까지 하였다. 그리고는 대단히 자신없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였다.
“혹시 전주에서…… 철길 옆동네에서 살지 않았나요?”
수필이거나 꽁트거나 뭐 그런 종류의 청탁 전화려니 여기고 있던 내게는 뜻밖의 질문이었다. 그러나 어김없이 맞는 말이기는 하였다. 나는 전주 사람이었고 전주에서도 철길 동네 사람이었다. 주택가를 관통하며 지나가던 어린 시절의 그 철길은 몇 년 전에 시 외곽으로 옮겨지긴 하였지만 지금도 철로연변의 풍경이 내 마음에는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렇다는 대답을 듣고나서도 전화 속의 목소리는 또 한번 뜸을 들였다.
“혹시 기억할는지 모르겠지만 난 박은자라고, 찐빵집 하던 철길 옆의 그 은자인데…….”
잊었더라도 할 수 없다는 듯이, 그리고 이십 년도 훨씬 전의 어린 시절 동무 이름까지야 어찌 다 기억할 수 있겠느냐는 듯이 목소리는 한층 더 자신이 없었다.
박은자. 그러나 나는 그 이름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얼마큼이나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가 하면 전화 속의 목소리가 찐빵집 어쩌고 했을 때 이미 나는 잡채가닥과 돼지비계가 뒤섞여 있는 만두속 냄새까지 맡아버린 뒤였다. 하지만 나는 만두 냄새가 난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세월이 그간 내게 가르쳐준 대로 한껏 반가움을 숨기고, 될 수 있으면 통통 튀지 않는 음성으로 그 이름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음을 알렸을 뿐이었다. 그렇게 했음에도 반기는 내 마음이 전화선을 타고 날아가서 그녀의 마음에 꽂힌 모양이었다. 쉰 목소리의 높이가 몇 계단 뛰어오르고, 그러자니 자연 갈라지는 목소리의 가닥가닥마다에서 파열음이 튀어나오면서 폭포수처럼 말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하략)
■ 황혼 / 배형호
돈 봉투를 받았다. 할아버지는 노란봉투에 공사대금을 넣어서 주었다. 돈은 세어 보아야 한다는 것을 그냥 공손하게 받아왔다. 할머니가 세어서 건넨 돈을 할아버지가 받아서 다시 확인하고 넣어주는 돈을 또 셀 수는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 봉투속의 돈을 꺼내어 본다. 수표도 한 장 없이 지폐로 봉투 한 가득 든 돈에서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냄새가 난다. 숫자상 계산은 맞다. 그러나 봉투 속에 들어있는 돈의 모양을 보면 더 받아 온 것 같다.
동네에는 칠순을 넘긴 노부부가 살고 있다. 할아버지는 저녁에 출근을 한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의 공장에서 야간 경비를 하고 아침이면 집으로 온다. 집으로 돌아오는 할아버지의 자전거 짐받이에는 빈 종이 박스와 고물상에다 팔수 있는 물건을 한 자전거 가득 싣고 와 마당 한 곳에 모은다. 오늘도 할아버지는 기름걸레질로 반질반질 하게 닦은 자전거에 넘치도록 싣고 온 고물들을 내린다. 할머니는 건너다보이는 체육공원 옆 자리를 개간해서 채소를 심고 가꾼다. 할아버지 댁에서 며칠 동안 집수리를 하면서 본 풍경이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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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 홍억선 : 영남대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수료(수필학 전공), 계간 수필세계 주간, 대구수필창작대학 책임강사, 경주 동리목월문학관 수필반 강사, 경주대 사회교육원 교수, 진량고등학교 교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