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에 비젼 트립차 온 지구촌교회 아이들과의 3박4일간의 여정을 가감없이 그려보았습니다. 아직 때묻지 않은 동심을 보는 것 같아 같이 동행했던 저에게도 큰 기쁨이었습니다. 아이들이 떠난 빈자리는 남아있지만 누군가 큰 뜻을 품은 어른으로 다시 올것을 오늘도 바라봅니다. 그 사람 큰바위 얼굴을 닮은 사람을 기다리는 사람마냥.....
선교지에 아이들이 오면 오른들이 오는 것과는 상당히 다릅니다. 아이들이 오면 안전문제라든지 잠자리나 먹는 것이나 신경을 더 써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에 대해 무한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아이들이 오는 것은 기쁘고 즐거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오랫동안 기다렸던 드림선교학교 아이들..... (아마도 한국에서 아내가 드림선교학교를 처음 시작하여 몇 년동안 같이 했었기에 더욱 애정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들을 마중하기 위해 30분쯤 거리에 있는 기차역으로 갔습니다. 태국의 기차중에는 한국에서 만들어 납품한 기차도 있습니다. 한국 국기가 선명하게 그려져있는 기차를 보노라면 가슴이 뿌듯해짐을 느낍니다. 태국의 기차는 대개 정시에 오는 법이 없습니다. 늦으면 10분 어쩔때는 30분, 한시간 가량도 늦을 때도 있습니다. 벌써 10분이 지났는데 기차는 오지 않습니다. 마중나온 사람들의 북적거리는 틈새로 케리카를 준비해가지고 기다리는데 도착한다는 종이 울립니다. 기차가 도착하고 맨 앞 칸에서 어린이들이 하나둘씩 짐을 내리기 시작합니다. 여행용 가방을 든 아이들... 케리카에 짐을 싣고 제 차로 돌아갑니다. 트럭 겸 짐차로 쓰는 쏭태우를 빌려 아저씨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쏭태우는 원래 트럭인데 개조하여 시내에서는 택시 대용으로 쓰는 차입니다. 뒤켠을 두줄로 앉게 만들었다고 하여 쏭(둘) 태우(줄)이라는 말에서 그렇게 부릅니다. 쏭태우는 여러 가지 색깔이 있습니다. 빨간색은 개인이 택시처럼 아무곳이나 갈 수 있는 택시이고 노란색이나 힌색, 청색 등은 시내 중심에서 정해진 지역으로 다니는 일종의 노선 버스입니다. 팀이나 손님들이 오면 봉고차를 이용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값도 싸고 친절한 빨간 쏭태우를 이용합니다. 짐을 싣고 로터스라는 쑈핑몰로 식사를 하러 갔습니다. 피곤하였는지 아이들은 태국음식을 게눈 감추듯 먹어치웠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와서 도착 감사예배를 드렸습니다. 이 땅에서 가난한 것도, 어려운 것도 보아야 하지만 본디 이 땅은 하나님의 땅인데 지금은 다른 영들이 지배하고 있는 땅을 주님이 회복시켜주시도록 이 땅을 보아야 한다고 메시지를 선포하였습니다. 불교인구가 95%가 넘고 4%이상이 이슬람이며 기독교 인구는 0.5%도 안되는 이 땅... 이 땅을 주님의 눈으로 바라보기를 요청하였습니다.
산으로 갈 짐을 정리하여 가지고 12시 15분이 다 되어 산으로 출발하였습니다. 한시간 가량은 포장된 도로를 달려 다달은 곳이 사므옹이라는 작은 면소재지, 그곳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카오팥까이라는 복음밥과 꾸아이 뛰아우라는 쌀국수를 아이들은 남기지도 않고 잘도 먹었습니다. 한시간 가량을 지나면서 부터는 포장된 도로가 끝나있었고 움푹움푹 패인 황톳길의 비포장 도로가 가지런히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흔하던 대나무 숲은 점점 사라지고 하나 둘씩 소나무가 나타나기 시작했고(소나무가 있다는 것은 산이 높고 깊다는 표시입니다.) 대낮인데도 차창으로 스치는 바람은 추위를 느끼기에 충분하였습니다. 피곤에 지친 아이들을 위해 가끔 중간중간 서서 용변을 보기도 하고 쉬기도 하면서 목적지인 젬노이에 도착하였습니다. 쉬엄쉬엄 온 것이 오후 다섯시를 넘어서고 있었습니다. 운동장의 아이들은 캄캄해지는줄도 모르고 공을 차기에 여념이 없었고 카렌족 산골 마을 집집에서는 벌써 저녁을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도착을 감사하고 난후 아내는 산족 아낙들과 같이 화로불로 저녁을 짓기 시작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새로지은 학교며 마을을 돌아보기로 하였습니다. 10분을 걸어올라 새로 지은 학교에 다달으니 언덕배기에 나무로 지은 교실을 보며 아이들은 너무도 좋아하였습니다. 앞 마당의 운동장은 아직 만들고 있는 중이어서 나무뿌리들이 시신을 드러내며 어지러이 널려 있었습니다. 이전에 학교가 있던 자리에서는 아이들이 열심히 공을 차고 있었습니다. 보기에도 새까만 아이들... 나이에 비해 훨씬 작아보이는 아이들... 그 아이들과 같이 축구를 하고자 하였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큰지 마치 중학생과 초등학생으로 보일 정도였습니다. 막상 시합을 하니 그들은 매일 축구를 하기에 너무도 잘 뛰고 발재간이 좋아 한국 아이들이 지고 말았습니다. 땅거미가 밀려와 공이 안보여도 산족 아이들은 잘도 쫒아가 공을 잡았습니다. 다음날 다시하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와 산족 쌀과 순두부국과 생선튀김을 반찬으로 하여 저녁을 먹었습니다. 전기불이 있다고 하지만 어두 컴컴한 곳에서 아이들은 저녁을 어찌도 잘 먹는지. 저녁을 먹고 동네아이들과 학교에서 모이기로 하였습니다. 가로등이 없기에 관솔에 불을 붙여 앞세우고 학교로 갔습니다. 하늘에는 뭍 별들이 그리도 많은지.... 한국에서 온 아이들은 하늘을 보며 이렇게 별이 가깝게 느껴지고 또 많은지 신기하며 의아해 하였습니다. 학교에는 어른들과 아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찬송가가 없어도 찬송을 잘하는 산족 사람들.... 같이 찬송하고 서투른 태국어로 말씀을 듣고 찬양하고 서로를 소개하고 난후 준비해온 과자며 사탕을 나눠주었고 가는 풍선으로 온갖 동물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주니 아이들은 좋아서 어쩔줄 몰라합니다. 아이들에게도 직접 만들어 보도록 하였더니 너무 좋아합니다. 어른들도 신기한 듯 만들어 보고싶어 하여 결국 어른들도 같이 풍선을 만들며 즐거워 하였습니다. 어느 덧 시간은 말을 달려 저녁 아홉시를 넘어서고 있었습니다. 아쉽지만 아이들이 내일 학교를 가야하니 끝내고 돌려보내야 했습니다.
문제는 집에 와서 시작되었습니다. 어디서 잘 것인가가 ? 산족마을의 저녁은 무척 춥습니다. 보온기구라고는 전혀 없고 벽이나 바닥에서도 바람이 솔솔 들어오기에 새로지은 집이 아니면 대부분의 집에서는 가운데에 불을 피우고 그 곁에서 자곤 합니다. 또 대개는 귀한 손님이 오면 자기 집으로 초대하여 안방에서 잠을 재우기도 하는데 이때는 대개는 극진히 대접합니다. 남자들을 두팀으로 나누고 여자들이 한팀으로 나우어 세집에서 자기로 하였는데 갑자기 그동네 교회 전도사님께서 우리 가족을 초청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거절할 수가 없어 전도사님의 집으로 갔는데 이것은 집이라기 보다는 움막이었고 누우니 하늘의 별이 총총 보였습니다. 바람은 막힘없이 들어와 달리고 있었고 곁에는 외양간이 있어 소가 밤새도록 울어 잠을 깨우고 못자게 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우리 가족은 감기에 걸려 목소리마저 낼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다음날 아침 산족마을은 춥기에 집집마다 모닥불을 피워놓고 아침을 맞습니다. 콜록콜록 기침하는 아이들이 불 곁으로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아침이 준비되어 아침을 먹고 학교로 올라갔습니다. 예정대로라면 학교에서 운동장을 만드는 곳에서 나무뿌리를 치우는 작업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너무 나무 뿌리가 커서 어린이들 힘으로는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어서 운동장의 돌을 줍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정도의 일을 하고 10시 30분 정도에 집으로 내려와 큐티와 이 마을과 학교를 위해 기도하고 오전을 보냈습니다. 점심을 먹고는 한시간 정도 비포장된 도로를 달려 카렌족 마을에 교회를 짓고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2층으로 짓고 있는 건물인데 골조는 거의 완성이 되었고 2층의 교회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같이 찬양하며 주위의 영혼들과 또 아직 예수님을 모르는 마을 사람들이 속히 예수님을 믿을 수 있도록, 또 이곳에서 사역할 집사님 부부를 위해 같이 기도하고 다시 젬노이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니 산족 아이들이 축구를 하겠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8명씩 정식 멤버를 구성하여 팀을 만들고 선생님으로 봉사하는 형제가 심판을 보고 축구를 하였습니다. 결과는 7대3... 작지만 발재간이 좋아 운동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한국 아이들과는 상대가 되질 안았습니다. 쉬는 시간에는 같이 손을 잡고 찬송하고 같이 사진도 찍고 어느 덧 친구가 되었었습니다.
저녁에는 같이 켐파이어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운동장 한가운데 나무를 쌓고... 저녁을 먹고 어둠을 거슬러온 아이들이 하나둘 늘어나자 불을 지폈습니다. 같이 한국어와 태국어로 찬양하며 각기 나랏말로 기도하며 우정을 나누었습니다. 불가에 미리 준비해온 감자를 넣어 구어먹으니 얼마나 맛있는지 서로 먹으려고 야단들이었습니다. 처음으로 외부 손님을 맞이해본 아이들... 요즘에는 TV도 있어서 수월하게 태국어를 배워 시내에도 오고 문명의 이기를 경험할 수 있지만 그 곳에서 시내로 나오려면 4, 5시간이 걸리지만 카렌족 말만을 하는 사람들은 좀처럼 시내에 한번도 나오지 못하고 산 속에서 죽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모처럼만에 찾아온 외국 손님들을 따뜻한 가슴으로 맞이해준 카렌족 아이들의 티없는 맑은 눈과 헤아릴수 없이 많은 별들을 한국 아이들은 오래토록 기억할 것입니다. 저녁 켐파이어가 끝나는 것이 아쉬워 산족 아이들은 한국 아이들을 자기 집으로 초대하여 같이 자자고 하였습니다. 몇몇 용감한 한국아이들은 그들과 함께 집에 가서 잠을 자기도 하였습니다. 한국 아이들의 가슴속에 때묻지 않은 영혼을 간직한 이곳 아이들과 함께 한 시간들이 오래토록 마음에 기억될 것입니다.
젬노이를 떠나야 하는 날입니다. 아침 일찍 떠나야 하는데 시간이 자꾸 지체되었습니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다말고 보내는 것이 못내 아쉬운듯 집주위를 기웃거렸습니다. 마마라는 태국 라면을 먹고 이틀간의 정들었던 젬노이를 떠나야 했습니다. 잠을 잤던 집 주인들에게 감사를 하고 먼길을 떠나야 했습니다. 비포장 도로에서는 시속 30Km를 넘지못하는 쏭태우를 타고 집에 도착하자 12시를 넘어서고 있었습니다.
가방을 챙겨서 그레이스 홈으로 보내고 로빈산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쿠폰으로 사먹는 한국식당에서 아이들은 복음밥이며 비싼 한국라면이며 김치찌개를 등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다시 우리는 도이수텝이라는 절로 향하였습니다. 이곳 치앙마이의 도시역사 700년 만큼이나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절 도이수텝.... 어쩌면 그곳의 형상처럼 용이 주리를 틀고 있는 모습처럼 악한 영들이 이 땅을 사로잡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산허리를 휘돌아 다다른 도이수텝에는 많은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었습니다.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지점에 위치해있고 수백개의 금빛 불상이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불상을 수리하려면 매년 많은 돈이 들어야 하기에 불상 앞에는 시주를 하도록 권장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들과 조용히 이 땅을 주님의 땅으로 회복시켜주시도록 조용히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회개하고 기도하면 이 땅을 고칠지라는(역하7:14하) 말씀을 생각하며 이 땅에도 속히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도록 기도하였습니다. 이곳 태국에서는 크리스챤이 되면 여러 가지 불이익을 당하기에 복음을 알면서도 종교를 바꾸기를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이곳 사람들을 생각하며.... 아이들은 피곤할 터인데도 300개가 넘는 계단을 잘도 내려왔습니다. 도이수텝에서 30여분을 달려 다다른 곳은 그레이스 홈이라는 고아원입니다.
학교에서 일찍 돌아와 기다리고 있는 그레이스 홈 아이들과 함께 곧바로 학교로 향했습니다. 한국에서 학생들이 오면 같이 축구를 하자고 하였었기에 그레이스 홈 아이들도 한국 아이들도 모두 기뻐하였습니다. 트럭과 쏭태우에 나누어 타고 근처에 있는 학교로 갔습니다. 유난히도 작은 고아원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한팀이 되고 한국아이들이 한팀이 되어 축구를 하였습니다. 한참을 하다보니 태국 축구부 아이들이 같이 경기를 하자고 하여 한국 아이들과 고아원 아이들이 한팀이 되어 경기를 하였지만 결국은 지고 말았습니다.
저녁식사는 원래는 한국에서 가지고 온 짜장으로 밥을 해가지고 고아원 아이들과 같이 식사하기로 하였는데 취소하고 태국 식당에 가서 모두 식사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모처럼 만의 나들이에 그레이스 홈 아이들은 너무 너무 신나했습니다. 식당에 가서 태국 음식을 주문하여 식사를 하는데 한국 아이들은 물론이고 그레이스 홈 아이들은 신이나서 너무 잘 먹습니다. 어른 들도 밥을 두 번 세번 먹으면 잘 먹는데 아이들은 배부른줄도 모르고 잘 먹습니다. 밥을 먹고 놀이터에서 놀다가 아이들은 그레이스 홈으로 돌아가고 한국 아이들은 나이트 바자라는 야시장이 열리는 곳으로 갔습니다. 마음이 느긋하고 좀처럼 화를 안내는 태국 사람들은 쏨씨가 그만입니다. 손으로 그림을 그린다든지, 무엇을 만드는 기술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물건들을 관광객들을 상대로 파는 시장인데 저녁에만 열리기에 야시장(나이트 바자)이라고 합니다. 이곳은 치앙마이에 오는 관광객은 반드시 들르는 그런 곳입니다. 가격은 가게마다 다르지만 잘만사면 좋은 물건을 싸게도 구입할 수 있는 장점도 있습니다. 처음 관광에 나선 아이들이라 또 사는 것에 익숙지 않은 아이들이라 잘 사지 않았지만 밤이 깊어가는 줄을 모르고 돌아다녔습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아이들을 다시 그레이스 홈으로 가서 여독을 풀게하고 집에 돌아오니 11시가 넘어 있었습니다.
우유와 빵으로 아침을 먹고 관광길에 나섰습니다. 먼저 매림이라는 곳에서 코끼리 타고 코끼리 쑈를 보았습니다. 옛날 태국은 교통수단이 없어 코끼리가 주요한 교통수단이었고 전쟁시에도 코끼리를 타고 전쟁에 나갔을 정도로 코끼리는 이들에게 있어 중요한 재산이었습니다. 지금도 코끼리 한 마리를 가지고 있다면 큰 부자라고 할 정도로 비쌉니다. 많은 코끼리들이 관광객들을 태우고 있었고 일부에서는 쑈를 하고 있었는데 쑈에는 귀여운 아기 코끼리와 30살이 넘는 코끼리들이 관광객들의 시선을 사로 잡고 있었습니다. 쑈가 끝나고 난농장에 들러 난을 구경하고 뱀쑈를 구경하러 갔습니다. 잘 훈련된 조련사에 의해 길들여진 뱀을 조련사는 능수능란하게 다루었고 해설자는 익살을 석어가며 재미있게 해설을 하였습니다. 쑈가 끝난후 관광객들은 뱀을 목에다 감고 사진을 찍기도 하였는데 한국에서 온 아이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고아원으로 돌아온 아이들과 함께 3박4일간의 평가회를 하고 가방을 꾸려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관광도 좋았지만 카렌족 어린이들과의 만남을 결코 잊을 수 없다는 아이들.... 피곤에 지친 아이들이지만 이제는 돌아간다는 기쁨에 잠시 잊었던 고향이며 엄마를 생각하는 듯 하였습니다. 같이 기도하고 형들이 출입국문을 모두 빠져나간 후 기준이가 한마디가 하였습니다. "아빠! 우리도 형들따라 비행기 타고 한국가자." 한국에서 손님들이 올 때마다 헤어짐에 익숙지 않은 기준이는 아직 잘 생각나지 않은 한국을 많이 많이 그리워하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