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일희 시인의 시집 [별나라 통신]이
2009년 8월, 세종출판사에서 나왔다.
전일희 시인은
1951년 경남 통영에서 태어났으며
부산교대, 동아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교직에 있다가 2009년 퇴임하였다.
부산지역 동인지 '볍씨'의 창간회원으로 활동하면서
1975년 {월간문학} 당선으로 등단하였다.
1992년 제9회 성파시조문학상을 수상하였고 현재 부산시조시인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시집으로 [생선장수 김씨의 미소]가 있다.
시인은 '들어가는 시'에 이렇게 썼다.
"이제 남은 세월을 헤아려 보는 나이
한 평생 웃고 울며 성내고 기뻐하며 살다가
텅 빈 길
따박따박 올 때같이 걸어가야 한다.
길을 가다
끝이 보여
나그넨 한 동안
풀잎과 함께 앉아
가을볕을 쬐다가
덜 여문 생각을 모아
별나라 통신을 띄운다."
'삶과 소통'이라는 임종찬 부산대 교수의 발문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삶과 소통하는 일은 문학 일반에 주어진 과제이다.
창작자가 어떤 방식으로 삶을 재현하느냐에 따라서 그 소통 양상이 상이하게 드러날 따름이다.
특히 시조를 통해 삶이 재현될 때,
삶은 시조의 형식적 통제를 받게 된다.
이때 형식적인 통제라 하는 것은 시조성을 바탕으로 삶을 재현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아무리 훌륭한 사유와 참신한 표현력을 갖추었다 해도 그것이
시조라는 명명 아래 놓일 때는 당연히 시조의 형식미학을 우선적으로 성취해야 한다.
...
시조는 역사와 소통해야 한다. 이는 시조라는 장르 자체가 시대흐름에 민감하다는 것을 통해서도 명백하다.
종래 시조의 존재의의는 음악으로 가창하는 데서 출발하였다.
그러나 근대기 국민문학파에 의해 문학양식으로 재등용됨으로써 온전히 언어적 양상으로 전환한다.
사대부들에 의한 시조 향유가 주로 자연적이고 사상적 성향이었다면,
후대로 오면서 그 향유층이 다양화됨으로써 그 주제도 다양해지고
자연스럽게 그 형식미학도 변화를 거듭한다.
제시형식이 노래에서 언어로 전화되면서 시조는 정형적 형식미학 속에서
시성(詩性)을 획득해야 했다. 그리고 이 형식 속에 시대에 대한 사유를 담아야 했다.
...
결국 시인은 시조라는 완결된 형식을 통해서 일상을 파헤치고 들어가
현실의 위선과 직면하면서 다양한 삶의 양상들과 주체들을 호출하고
자신의 나이브한 삶을 성찰하려는 꿈을 꾸고 있다. 이것이
전일희 시인의 시작 비밀이고 전 시인을 주목하게 하는 근거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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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 전일희
어둠을 벗기면
수박냄새 나는 아침
하늘나라 과일이라
딸 수 없으련만
빨갛게 물오른 사랑을
가슴마다 심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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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함 / 전일희
이메일이 찍힌 명함을
고추 친구는 주고 갔다.
금박 넣은 기업 대표
덧니 박힌 정치박사님
이마에 번쩍거리는 이름
여름해가 눈부셨다.
내 이름 세 자 앞에
무얼 붙여야 하나
호주머니 빈 날처럼
허전한 나이를 돌아
사내는
이름표도 없이
느릿느릿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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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사 죽어 / 전일희
내사 죽어 푸른 하늘
고추잠자리 될란다.
청산 밖을 흘러가는
구름이 될란다.
흘러서 부끄럼 태우는
저 노을로 질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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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나라 통신 1 / 전일희
저기 깜박이는 별이
또 다른 고향이라지.
빛으로 41광년
숨차게 달려가면
아무도 손대지 못한
푸른 원석(原石) 덩어리.
그 요술 동네에는
아이들 웃음꽃이
하양
노랑
빨강
초록
사철 피는 들에서
모두들 어깨동무하고
춤춘다지, 나비로
그리고 나무와 풀
날짐승 길짐승이
물결 따라 바람 따라
눈인사 나누고
어울려 해종일 노래하는
참 이상하고 먼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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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나라 통신 2 / 전일희
명왕성의 '보이저'가
전송한 사진 한 장
아득한 우주서
가물가물 점멸(點滅)하는
'훅' 불면 날아갈 저 별이
숨을 쉬는 지구(地球)란다.
그 먼지 속 어디엔가
너와 내가 호흡할 터
흐려오는 안경알을
자꾸 닦아 보면
흐르는 섬 안에 갇힌
쪽배 한 척 가고 있다.
참으로 있고 없음이
카메라 속 마음 한 점
태양계를 향하여
한껏 팔을 벌려보자
영원을 꿈꾸는 유성(流星)도
티끌로 타는 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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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나라 통신 3 / 전일희
밤 바다에 앉으면
들리지, 별나라 통신
만개한 하늘 벚꽃과
그 사이로 잉닝거리는
깨끗한 모르스 부호가
날아오지
밤새도록.
그대도 저 별에 앉아
귀 기울이지, 내 노래를
눈 내리듯 차곡차곡
쌓이는 순백의 삶
그렇게 살다 가자고
속삭이지,
반짝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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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모르는 시인으로부터 시집을 받고 보니 통영에서 태어나신 분이다.
통영 하면, 서우승 시인의 고향......
언젠가 가본 듯도 하고(하도 오래 전이라) 아닌 듯도 하건만
서우승 시인의 고향이라는 의미로 더욱 친근하게 다가오는 지명이다.
'볍씨' 동인지도 몇 권을 보았건만
전일희 시인을 기억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서명까지 하셔서 보내주신 시집을 읽다가
전화를 걸었다. 댁으로 거니 사모님께서 받으셔서 하시는 말씀이
"공부하러 갔습니다!"였다.
1951년생, 공부하러 갔습니다.
그렇다, 삶의 공부는 끝이 없나니......
휴대전화를 걸었더니 받았다가 급히 끊어버린다. 아마 공부중이신 모양이다.
그래서 통화는 하지 못하고 문자메시지를 남겼다.
다음에 통화하리라, 마음먹는 건 마음먹는 데에만 의미가 있다.
대개는 통화를 하지 못하니까.
잘 모르는 시인이 보내온 시집은 더 열심히 읽어본다.
유명해서 또는 내가 좋아해서 아는 시인들의 시는
시조 모임에서 만나기도 하고, 얘기를 다른 사람을 통해 듣기도 하고
문예지에서도 더러 보게 되므로 그 성취나 성향을 어느 정도 알지만
그런 일별이 드문 시인은 시집 안에서만 할말을 하기 때문이다.
시인들이 시집을 보내온다.
끊임없이 그들은 쓰는 것이다.
나의 게으름을 어떤 핑계로도 용납할 수 없다.
그런데 구월이 되면서 몸이 무겁다. 마음은 더 무겁다.
한 발도 뗄 수 없는 자유의지라곤 행할 수 없는 삶은 더더욱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