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불가사의...화순 운주사 천불 천탑 이야기..
'전라도에도 이런 외진 곳이 있구나' 의아스러울 정도로 운주사 가는 길은 만만치 않다.
들녘을 지나고 구불구불한 고갯길을 넘어가는 것이
피안의 세계로 빠져 들어가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우리나라에서 운주사처럼 신비스럽고 많은 궁금증을 자아내는 절이 또 있을까?
수많은 불상과 탑이 왜 이곳에 세워졌는지 어떠한 문헌도 찾아 낼 수 없어
애간장을 태우는 곳이기도 하다.
수 백년 동안 묻혀 있었던 앙코르와트처럼 신비 그 자체로 남아 있다.
널브러진 돌 조각을 보면서
수수께끼를 풀고 상상력만으로 이 절의 내력을 추측할 수밖에 없다.
하긴 운주사에 와서 무엇인가 알려고 하지 마라.
그런 생각 자체가 무의미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저 한적하게 거닐고 나름대로 감동 받으면 그만인 것을….
그다지 어울리지 않지만 근래에 만들었음직한 육중한 일주문을 지나면 뱀이 요동치는 듯이
휘감아 도는 길이 나온다.
초입 왼편 한 구석에 나뒹구는 돌무더기가 바로 대웅전터다.
신비의 사찰 운주사는 언제 누가 창건을 했는지,
골짜기에 줄지어 늘어선 천불천탑은
언제 어떻게 만들어 졌는지 아무 것도 알려진 것이 없는 미스테리한 사찰이다.
다만 도선 국사가 하루 밤 하루 낮 동안 도력으로 천불천탑을 만들었다는
전설만이 전해 내려올 뿐이다.
현재는 불상 91개와 탑 21기 만이 남아 아쉬움을 더하지만,
각양각색의 부처와 탑은 보는 이로 하여금 신비한 느낌이 들게 한다.
운주사 입구에 있는 구층석탑(보물 제796호)은 10.7m 높이의 석탑으로 넓은 자연석 위에
지대석과 기단 겸 탑신을 올려놓아 9층까지 쌓았다.
배의 모습을 닳은 운주사의 지형에서 구층석탑은 돛대의 위치에 해당한다고 한다.
운주사 불상들은 천불산 각 골짜기 바위너설 야지에
비로자나부처님(부처님의 빛, 광명)을 주불로 하여 여러기가 집단적으로 배치되어있다.
크기도 각각 다르고 얼굴 모양도 각양각색이다.
홀쭉한 얼굴형에 선만으로 단순하게 처리된 눈과 입, 기다란 코, 단순한 법의 자락이 인상적이다.
민간에서는 할아버지부처, 할머니부처, 남편부처, 아내부처, 아들부처, 딸부처, 아기부처라고
불러오기도 했는데,
마치 우리 이웃들의 얼굴을 표현한 듯 소박하고 친근하다.
이러한 불상배치와 불상제작 기법은 다른 곳에서는 그 유형을 찾아볼수 없는
운주사 불상만이 갖는 특별한 가치로 평가받는다.
코가 떨어진 부처도 있고 귀가 없어진 부처도 있고...
아들 못낳는 사람이 돌부처 코를 갈아 마시면
아들 낳는다고 코를 떼어 갔다는 말도 있고
천년세월 풍파에 저절로 떨어진 줄도 모르겠고
어디를 가나 그저 평범한 모습으로 보는이의 마음을 편안케 하고
구층석탑
구층석탑을 지나 위로 올라가면 돌로 만든 함처럼 생긴 석조불감(사진 왼쪽, 보물 제 797호)과 만난다.
불감의 석실 앞면과 뒷면에는 각각 2.5m 높이의 석불좌상 2구가 안치되어 있다.
석조불감에서 위로 조금 떨어진 거리에는
사용된 석재가 모두 원형으로 이루어진 원형다층석탑(보물 제 798호)이 있다.
억새 위에 공깃돌을 얹어 놓은 듯한 이형탑
제기 위에 떡을 포개놓은 것 같아 떡탑이라고도 불리며,
한국 석탑에서는 보기 드문 양식으로 고려시대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 위에는 종각과 선방, 대웅전이 자리잡고 있으며,
대웅전 오른쪽으로는 동그란 돌을 쌓아 올린 원구형석탑과
운주사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공사바위가 있다.
바위 밑에 불상이 숨어있고
불상앞에 복전함도 보이고
한 여인이 복전을 넣을까 말까 망설이기도 하고
운주사 석탑들은 모두 다른 모양으로 각각 다양한 개성을 나타내고 있다.
연꽃무늬가 밑에 새겨진 넙쩍하고 둥근 옥개석(지붕돌)의 석탑과 동그란 발우형 석탑,
부여정림사지 5층 석탑을 닮은 백제계 석탑, 감포 감은사지 석탑을 닮은 신라계 석탑,
분황사지 전탑(벽돌탑) 양식을 닮은 모전계열 신라식 석탑이
탑신석의 특이한 마름모꼴 교차문양과 함께 두루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운주사 탑들의 재료로 쓰인 돌은 석질이 잘 바스라져서
오히려 화강암질의 강한 대리석보다
더 고도의 기술을 습득한 불모(석공)님이 아니면 제작이 불가능하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이다.
그 석질로 빚어만든 탑이 이렇게 수많은 세월의 풍상을 버티어 전해져 오는 것을 보면
이곳의 조형자들의 기술이 가히 최고 수준이었다는데는 반론의 여지가 없을 듯 싶다
마애여래좌상 바위에 새겨진 부처님 모습은 언뜻 지나치면 아무것도 안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봐야 부처님 형상이 나타나고
석불군
다른 사람이 만든 석불을 건드리면 안되고 돌을 다시 주워와서 만들어야 공이 된다고 하고
염원을 빌며 석불을 쌓고 있는 사람들
왜 진즉 이곳을 오지 못했을까? 예전에 와서 부처님 코라도 베어 마셨더라면 아들도 낳았을것을... <
공사바위에서 바라본 운주사 전경은 뱀이 꿈틀대고 있는 모습이고
여기 저기 숨어 있는 불상들을 보며 민중들이 바라는 세상은 무엇일까?하고
고민도 해보고..
마당바위를 이고 있는 석불
천년을 하루같이 그큰 마당바위를 머리에 이고 있어서 얼마나 힘들까
고달프고 힘이든 모습이 민중들 모습 같기도 하고
머슴바위
머슴처럼 일잘하고 힘세게 생긴 머슴바위도 있고
남녀 모습의 와불
저마다 와불앞에서 포즈도 재보고 만져도 보고...저마다 소원도 빌어보고
대웅전 왼쪽의 산을 올라가면 운주사에서 가장 유명한
부부와불이 있고..
부부가 나란히 누워있는 모습의 부부와불은 길이 12m에 폭 10m이며,
‘와불이 일어서는 날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는 천불천탑에 대한 민중의 염원이 담겨 있고
이 와불이 일어서면 용화세상을 이룰 수 있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으며..
와불을 보고
산을 내려오다 오른쪽으로 가면 7 개의 원반형 돌로 이루어진
칠성바위를 만나게 된다.
이 바위들은 원반형 7층석탑의 옥개석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원반의 크기와 배치 각도가
북두칠성의 방위각이나 밝기와 매우 흡사하다..
운주사의 칠성바위는 운주사 천불천탑의 신비를 푸는 데 중요한 자료다.
더구나 다른 계절도 아닌 한 여름철 초저녁 밤하늘에 반짝이는 북두칠성을 땅에
그림자로 드리워진 모습으로 만든 점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천불천탑의 대역사(大役事)가 한여름밤의 꿈처럼 진행된 사실에 대한 어떤 역설일지도 모를 일이다.
채석장과 암반 마멸 흔적은 운주사 천불천탑을 어떻게 제작했으며 10t 정도의 칠성바위 같은
거대한 돌들을 어떻게 운반하였는가에 대한 이해를 돕기도 한다.
하지만 무게가 1백t 정도는 족히 나가는 암반에 조각한 초대형 석불좌상·입상은
어떻게 일으켜세우려 했는지는 여전히 수수께끼다.
당시의 토목기술로 그것은 가능했을까.
지금의 기술로도 1백t을 들어올리려면 3백t 정도의 크레인을 동원해야 하는데 비탈진
야산 정상에 자리한 ??거대한 돌부처에 접근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고 일으켜세울 수 없는 돌부처를 암반에 조각했을 리는 없다.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데 그 시원스런 해답이 없다
불자가 아니라도 숙연한 마음으로 나도 따라 합장도 해보고
하루해가 지는줄도 모르고.....여기저기 둘러보다.
돌아오는 길목에서 도곡온천에 들러 온천욕을 하고 피로를 풀어본다
운주사 교통정보
1. 서울-호남고속도로- 북광주ic - 화순 -(10km)- 능주-(5.1km)- 평리사거리 -(2.4km)- 클럽900 -(2.8km) - 도장리 -(8km)- 도암삼거리 -(3km)- 운주사
2. 서울- 호남고속도로- 광주- 광주대학교 -(11km)- 도곡온천 -(4.4km)- 평리사거리 -(2.4km)- 클럽900 -(2.8km) - 도장리 -(8km)- 도암삼거리 -(3km)- 운주사
2) 대중교통
1. 광주-운주사행 군내버스 이용/34회 운행/1시간 20분 소요(38km)
2. 화순읍-운주사행 군내버스 이용/40분 간격(34회)/40분 간격(26km)
3. 나주-운주사행(중장터행) 군내버스 이용/1시간 간격(11회)/30분 소요(19km)
시와풍경:그대가 머문 자리
카페 게시글
▣-여행 정보방
(여행)
화순 운주사 천불탑
오팔과진주
추천 0
조회 89
05.04.17 10:01
댓글 1
다음검색
첫댓글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