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 흩날리던 하계동 그 허공을 기억하는지
- 혜성여고 개교 30주년을 기리며
강세환 (시인)
이제 여기서,
우리들의 과거를 기억할 것이며 추억할 것이다!
아! 하베리아 허허벌판 그 겨울바람 기억하는지
하계중학교 사이 환한 배밭을 아는지
쪼그만 그 꽃잎 흩날리던 하계동 허공 아는지
허공 같던 우리들의 마음을 아는지
교문 앞 실개천 물소리도 허와 공에 닿았는지
그 무논 개구리 울음소리 어디 있는지?
음악실에서 다 함께 불렀던 에레스 뚜! 바람아! 그대 있는 곳 아는지
김인선 음악 쌤! 미국 어디 사는지?
성남운동장 하키 전국대회 여고부 결승전 기억하는지
그날 혜성의 꽹과리 소리
강당 로비 장식장의 땀에 젖은 트로피 아는지
남자 쌤들 보도 블럭 깔던 거 기억하는지
밤 10시 야자 후 쌤들과 들르던 팔십 년대 하계동 오리탕집 아시는지
하계동에 청춘을 묻었던 혈기 아는지
하계동 어디?
혜성 마음속 어디?
학교 발전 개혁 건의서 서명했던 공릉동 삼양갈비 아는지
혜성 평교협의 발걸음과 발자취를 기억하는지
뜨거운 깃발과 함께 서울역 집회 참가한 거 아는지
혜성 스쿨버스 차창에 비친 흐릿한 얼굴 아는지
타자기로 또박또박 쓴 학교 배정 진정서 아는지
동성아파트 자리 혜성 부속건물 같던 야산을 올라 보았는지
그 야산 하계동 뻐꾸기 아는지
성실관과 정진관 사이 꽃 사과나무 길
그 사과 꽃잎 흩날리던 곳도 허하고 공하였을까?
김희선 모교 나들이 때 계단 난간 무너진 거
노현희 뮤지컬 즉석 강당무대
혜성 FC 청색 줄무늬 공식 유니폼 기억하는지
운동장 모퉁이 그루터기 텃밭
텃밭 옆에 말없이 서 있는 모과나무 아는지
초과 근무 수당도 없이 초과 근무하던 야자여 팔자여 과거여 기억이여 추억이여
저기 불암산은 아는지!
공산(空山) 무언(無言)인가!
혜성 시계탑 자리에 혜성 시계탑 다시 세우면 안 될까?
한 방에 연대 수시 10명 합격한 거 아는지
혜성 생쥐 형님, 혜성 원조 neis, 혜성 원조 사진부, 혜성 원조 도서부, 영자(英字) 신문 혜성 해럴드, 혜성 교사 댄서, 혜성 교사 밴드, 혜성 축제 전담 엔지니어, 혜성 1박 2일 과학 캠프, 혜성 통키(通 key) 축구팀, 혜성 울림 중창단 혜울 ... 아시죠?
혜성 가족 대소사 메모리칩 송혜원 쌤 아는지
혜성 운동장을 날아다니던 행정실장님 아는지
혜 자(字)만 써도 혜성 생각난다던 권동진 쌤 아는지
나이든 쌤들 챙겨 달라던 윤연옥 쌤 송별연 한 마디 기억하는지
어느 교직원회의에서 초심으로 돌아가겠다던 쌤 아는지
수락산 교직원 등산대회 정상 등정 1호 쌤 아는지
혜성 람보, 켈로 부대 출신 아는지
혜성 맥가이버, 혜성 키다리책상 누구 작품인지 아는지
혜성의 피붙이였던 또 많은 혜성인들이여!
지금 어디 계신지?
혜성 마음속 어디!
아무 대가 없이 순결했던 청춘이여!
아무 대가 없이 순결했던 사랑이여!
아무 대가 없이 순결했던 영혼이여!
아무 대가 없이 순결했던 평교사들의 피와 땀이여! 또 복잡했던 눈물이여!
무명교사의 영이여! 혼이여!
분필을 움켜쥐던 간혹 분필을 집어던지던 아 아름답고 쓸쓸했던 분필이여!
우리들의 민낯 같은 자화상이여!
다시는 돌아오지 마라!
다시는 돌아보지 마라!
삼십 넘었으면 똑똑하게 독립하라!
삼십이면 돌아보지도 말고 네 길을 가라! 그냥 쭉 가라!
오십 육십 향해~
백을 향해~
천을 향해~
혜성답게 더 크게!
혜성답게 더 멀리!
혜성답게 더 밝게!
가라! 가라!
아름답고, 거룩한, 우리들의 혜성이여!
이제 여기서,
우리들의 과거를 기억하지도 추억하지도 않을 것이다!
기억도! 추억도!
과거도!
혜성 맘속 어디 뻥 뚫는 허공 되었을까? 내공 되었을까?
아아! 사랑하는 혜성의 딸들이여! 우리들의 혜성이여!
행복하라!
영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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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 국어과 교사. 1988년『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시집『벚꽃의 침묵』등 있음.
첫댓글 -선생님께서 직접 올려 주셔서 더 좋네요^^
-문학을 하려면 역시 살아있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