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백산 촛대봉(1,080m)
◈ 위 치 : 충북 단양군 대강면과 경북 예천군 상리면의 경계
◈ 일 시 : 2009. 08. 04. 08시 화요일, 날씨: 맑음, 바람: 약함, 기온: 30℃
◈ 참 석 자 : 한국산악회원 및 청소년 40명과 동행
◈ 등반코스 : 단양유황온천 ► 골짜기 ► 싸리재 갈림길 ► 배재 ► 촛대봉
► 투구봉 ► 저수령
◈ 총 12 km, 소요시간 7시간
☞ 8월의 장마전선이 아직도 남아 괴롭히고 있다. 제9회 청소년 백두대간 생태탐방 행사에 참여키로 하고 어제 오후 황정산 자연휴양림 본부에 합류를 했다. 원래는 1일부터 시작하는 데 함께 하기로 했으나 군에 간 아들 영훈이 휴가차 오는 바람에 이틀 연기를 하여 어제 귀대 시키고 오게 되었다.
31명 청소년과 함께 한다는 사실에 다소 기분은 좋았고 마음은 조금 달아올랐다. 지친 모습은 가시고 모두 씩씩한 표정으로 버스에 올랐다. 벌써 삼일 째 계속 된 산행으로 무리가 따르지 않을까 염려도 되었으나 의외로 밝은 표정들이다.
8시 30분경 단양유황온천 들머리에서 내려 산행 준비를 한 후 계곡을 따라 오르기 시작했다. 이흥복 선생이 싸리재를 가로 질러 가는 지름길이라며 1시간 정도 줄일 수 있다하여 선택한 길이다. 하늘의 햇살이 습기와 열기를 몰고 와 무덥기만 했다. 땀이 등을 타고 주르르 흘렀다. 제 키보다 큰 배낭을 지고 막내 6학년짜리 민철이 앞장서서 잘도 오른다.
갑자기 앞줄이 더딘 행보를 했다. 기다리며 주춤거리는 양상이 예사롭지 않았다. 중2 박상희가 힘이 든다며 한걸음 떼고 쉬고 하기를 반복하고 있다. 어제도 그랬냐고 묻자 그렀다며 웃음을 만들어 보냈다. 그래도 힘을 내라며 억지로 잡아끌기도 하고 뒤에서 밀기도 했다. 나중에는 산림청 최승호가 목줄을 하여 끌고 가듯이 억지로 잡아 당겼다. 그러나 힘이 들기는 마찬가지였다. 다행인 것은 포기하지 않는다는 그 애의 의지였다.
임도를 따라 걷다가 이상하다며 이 선생이 길을 찾아 다녔다. 오른편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길은 자꾸만 왼편으로 나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하는 수 없이 싸리재를 보고 언덕을 올라갔다. 멀리 싸리재가 보였고 그 방향을 따라 새로이 길을 만들어 가기로 했다. 학생들에게는 위험하지만 원시림을 헤치고 길을 만들어 나가는 모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모두 재미있다며 잘 따라왔다. 산수국과 동자 꽃이 만발하였다.
겨우 길을 찾아 능선에 오르자 아우토호반에 왔다며 환호성이었다. 그만큼 험한 길이 따로 없었던 모양이다. 백두대간 길이라 누구나 쉽게 찾아다닐 수 있을 정도로 곳곳에 꼬리표가 붙어있었다. 10시 30분으로 한 시간 이상을 계곡에서 헤맨 꼴이었다. 고속도로 같은 산행 길을 따라 대열을 지어 앞으로 나갔고 헬기장을 지났다.
12시 싸리재에 도착하였다. 이정표가 있어 방향을 알려 주었다. � 배재 2.6km � 흙목정상 1.2km � 원용두 1.93km � 단양유황온천 2.7km 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자리를 잡았다. 도시락으로 싸온 짐을 풀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학생들과 같이 먹기로 하고 옆에 슬쩍 끼어들었다. 캠프에서 싸준 것이라 반찬이 모두 그게 그것이었다. 별다른 감흥은 없었으나 모두 잘도 먹었다. 신응주가 반찬 없는 도시락을 내민다.
12시 40분 떨어지지 않는 엉덩이를 끌어당겼다. 3일째 계속되는 힘든 산행에 다소 체력이 떨어지고 다리가 풀려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서 힘들이 나는지 배낭을 걸머지는 모습은 대견스럽기만 했다. 여학생 3명만이 자꾸 뒤로 쳐졌다. 박소은, 조민정, 박상희 등이다. 언니 이현영에게 혼이 난다고 하면서도 좀 체로 빨리 가지를 못했다. 생각다 못해 서울에서 왔다는 3학년 이정규를 불러 여학생 하나를 책임지라고 했다. 알았다며 손을 잡아 주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잘 따라왔다. 1학년 유광석은 박상희를 밀어주며 누나 체면을 살리라고 독려를 했다.
큰 재를 몇 개씩이나 넘어야 하는 만만치 않은 산행이었다.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하는 힘든 코스로 은근과 끈기가 필요한 시련을 요구하는 산행이었다.
15시 촛대봉에 도착했다. 플라스틱판으로 촛대봉(1080m)이라고 쓴 표시판에 � 투구봉 1.1km � 저수재 1.1km가 남아 있고 바위로 된 표지석에 ‘촛대봉 1,080m 충북 단양군’이 표시되어 있으며 뒤에는 ‘ 이 표석은 2002. 10. 18 산림청 헬기의 도움으로 제작되었다’고 적혀 있었다. 표지석을 받치고 있는 오석에는 � 배재 2.5km � 수리봉 4.0km � 대강면 13.5km 가 표시되어있다. 뜨겁기만 한 해가 이마를 때리고 있어 땀이 얼굴 전체로 퍼졌다. 바람도 별로 없어 더운 열기를 그대로 느껴야 했고 따라서 몸이 잘 따라주지 못했다. 단체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모이라고 하니 모두 풀어져 김낙중 선생의 호통소리에 겨우 모여들었다. 그러다 보니 인상을 쓴 표정이라 나중에 보면 재미있을 거라고 놀려댔다.
능선 길을 달려가는 사이 진달래와 철쭉이 쑥쑥 자라 우리키를 넘겼다. 봄철에 오면 그만이라며 감탄을 숨겨 놓았다. 급경사 내리막길을 잘도 피해 갔으나 몇 명은 미끄러지기도 했다. 아직 수분을 담고 있는 나무뿌리는 밟는 순간 뒤로 나가자빠지기에 충분했다. 후미에 쳐진 줄 알았던 상희가 보이지 않았다. 그새 하산을 했나 하며 가는 길을 재촉했다. 이배근 선생과 신응주가 함께 하여 하산 길을 독려했다.
오후 3시를 조금 넘겨 오늘의 목적지인 저수령(低首嶺)에 도착했다. 경북 예천과 충북 단양의 경계로 옛날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이 재가 험하고 힘이 들어 고개를 밑으로 떨어뜨리고 간다하여 저수령이라는 사연을 담고 있었다. 커다란 자연석에 ‘低首嶺 저수재 慶尙北道’ 표지석이 떡하니 버티고 서있어 그것을 배경으로 역시 김낙중 선생이 오는 대로 사진을 박아 주고 있어 우리도 한 장 부탁을 했다. 김영환 처 김양숙 대원과 조경준 처 손은미 대원이 함께했다.
저수령 휴게소는 지난 몇 해 전 겨울철 정기산행 시 만둣국을 끓여 먹던 기억을 담고 있어 새롭다. 검은콩 막걸리를 팔던 휴게소는 그러나 거미줄만 엉기성기 이어졌다. 버스에 오르자 어느새 올라왔는지 박상희가 기다렸다는 듯 상기된 표정으로 말을 뗀다.
“제가 제일 먼저 내려 왔어요!”
“정말?” 미끼지 않는다는 웃음을 지어 보내며 오늘 청소년들과 함께한 산행의 의미를 더듬어 보았다.
소백산 문복대(門福臺, 1,074m)
◈ 위 치 : 충북 단양군 대강면과 경북 예천군 상리면의 경계
◈ 일 시 : 2009. 08. 05. 09시 수요일, 날씨: 맑음, 바람: 약함, 기온: 31℃
◈ 참 석 자 : 한국산악회원 및 청소년 40명과 동행
◈ 등반코스 : 저수령 ► 장구재 ► 문복대 ► 들목재 ► 벌재
◈ 총 8 km, 소요시간 4 시간
☞ 어제의 피로를 물리치고 서둘러 일어났다. 황정산의 계곡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은 천막의 틈새를 잘도 찾아들어 온기를 빼앗아 가고 추위만 남겼다. 덕분에 판초 우의를 덮어 쓰고 자느라 여간 고생이 아니었다. 발이 차갑고 어깨는 서늘했다. 잠을 설치면서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진리를 새삼 기억해냈다.
아침 햇살은 벌써부터 따갑게 얼굴에 흘러 넘쳤고 이로 인해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절로 배어 나왔다. 오늘 산행이 마지막이라는 말에 아이들은 벌써 신이 났다. 그러면서 “오늘은 몇 시간해요?” 의문과 설레임이 교차하는가 보다. 하긴 지금껏 5일 동안 집을 떠나 이곳에서 고생 아닌 고생을 사서하고 있으니 그 고통 또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도 평상심을 유지하고 긴장감을 주기 위해 5시간 이상을 할 거라고 말해 주었다. 그들의 표정에서 의지가 묻어났다.
버스는 우리를 어제 하산했던 저수령에 내려놓았다. 이흥복 선생이 간단한 주의와 오늘 산행 일정 등에 대한 안내를 하고 도로를 건너 8시 40분 오른편을 오르며 우리는 본격적인 산행에 들어갔다. 역시 남자애들은 잘 걸었다. 별 탈 없이 앞장서서 씩씩한 모습을 보여 주었으며 간혹 전강원(전승주 아들)과 이영준이 1학년답게 앙탈을 부렸으며 어제의 용사 박상희와 조민정, 박소은이 뒤로 처졌다. 장구재를 지나 제법 가파른 오르막에서 정규를 불러 소은을 책임지라하고 광석을 불러 상희를 데리고 올라 오라고 했다. 다섯 발자국 가서 한번 쉬겠다는 상희를 열심히 챙기는 가운데 청소년의 순순한 마음이 서로 통하는지 그런대로 산행은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다.
10시 큰 나무사이로 바위 덩어리 하나가 눈앞을 가로막았다. 사방이 훤하게 트인 속에 작은 자연석에 표시된 것은 ‘門福臺 1,074m’다. 김낙중 선생이 정규 일행을 앞세우고 사진을 한 장 찍어 주었다. 어디선가 새소리가 청아하게 귀를 훔쳤다. 멀리 보이는 낮은 산들이 아담하게 보이고 우거진 울창한 숲이 시원스럽게 눈가에 매달렸다.
봉우리 몇 개를 더 넘어야 되느냐며 근심어린 표정으로 강원과 영준이 물어왔다. 이제 조금만 가면 된다고 안심을 시킨 후 대단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자 신이 났는지 서로 경주하듯이 내달렸다. 뛰지 말라고 이르고 애써 따라가자니 내가 힘이 들었다. 역시 더운 날씨 탓에 땀이 온몸을 감쌌다.
11시가 되자 마지막 큰 재를 남기고 우리는 점심을 먹기로 했다. 밥을 먹자는 말에 모두 환호성이다. 배들이 많이 고팠을 거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아침 배식을 하며 보니 밥들을 적게 가져갔다. 그러니 지금은 한창 배가 고플 것은 자명한 이치였다. 햄과 소시지를 서로 주고받으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입이 바빴다. 어제처럼 신응주와 함께 학생들 틈에 끼어 점심을 먹었다. 복숭아 후식까지 젊잖게 챙겨 먹고 잠시 짬을 내어 이흥복 선생의 훈화가 시작되었다. 5일간의 일정을 뒤돌아보며 잘한 점과 잘못한 점 등을 생각해 보라며 반성과 각오의 시간을 주었다.
11시 40분 출발키로 하고 각자 배낭을 졌다. 산속이라서인지 제법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점심을 먹는 내내 땀이 쏙 들어가 한기를 느낄 정도였다. 겉옷을 챙겨 입은 놈이 시야에 잡혔다. 나도 조금 춥다고 느꼈다. 하늘은 구름에 가려 더욱 그랬다.
들목재를 지나 이제 정말 하나의 재를 남겼다고 다독거리며 가파른 오르막을 올랐다. 백두대간 산행을 알리는 꼬리표가 어지럽게 달려있고 바람에 나부끼는 것이 마치 귀신의 표상처럼 보였다. 엷은 푸른색 잔대 꽃이 눈을 붙잡았다. 오늘도 분홍색 동자 꽃이 귀엽게 보였고 보라색 범의 꼬리와 흰색 여우꼬리가 지천이었다. 간간히 멧돼지들의 파놓은 흔적을 뒤로 하며 부지런히 앞을 따라 걸었다.
벌재를 향한 내리막길은 미끄럽고 위험했다. 가파른 길이라 모두 조심하라고 하며 발걸음 하나하나를 조심스럽게 놓았다. 어느새 햇살이 등허리에 꽂혔다. 지열이 훅하고 입가를 스쳤다. 12시 30분 벌재에 내려섰다. 이정표가 서 있어 열심히 쳐다보았다. 앞으로 계속가면 � 황장산 5.5km고 지나 온 � 만복대 4.0km 다.
불과 이틀간 청소년들과 함께 산행을 하며 나 또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는지, 그때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더 큰 꿈과 이상을 향한 원대한 모험을 그리워했는지 등등을 열심히 반추해 보았다.
그러면서 4일 동안 7시간 이상씩 산행을 하고도 내색하지 않으며 동행을 해준 청소년들이 자랑스럽다고 외치고 싶다. 너희들이 있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행복의 순간을 만들어 준다고 당당하게 말하고 싶다. 한낮의 태양이 이글거리며 타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때 우리는 그보다 더한 꿈과 희망을 불사르자고 외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