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의 나라>
학교 운동장 주변의 잔디 위에도 하얀 시계꽃이 송송이 덥혀 있었다. 방과 후에 운영되는 축구클럽이 벌써 시작되어 모든 학부형들은 수업에 방해되지 않으려고 잔디 위로 지나갔다. 여자아이, 남자아이 할 것 없이 한데 어우러진 팀은 경기를 하기 보다는 축구공을 다루는 법을 배우는 듯 보였다. 한 쪽에는 일부 아이들이 죽 늘어선 장애물 사이로 공을 요리 조리 몰고 다니며 연습을 하고 있었고, 운동장의 중간지점에서는 코치 선생님이 공을 들었다 내렸다하며 무언갈 설명하고 있었다. 곧 이어 선생님이 아이들 이름을 부르며 축구공을 차 올렸다. ‘뻥’하는 소리와 함께 경쾌하게 하늘 가운데를 향해 솟구치는 공을 따라 아이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몇몇 남자 아이들은 비호같이 뛰었지만 여자아이들의 몸놀림도 만만치는 않았다. 광택이 나는 부드럽고 얇은 소재의 축구복과 양말, 축구화를 신은 아이들의 모습이 앙증맞았다. 아이들 사이로 점점 긴박하게 날아 다니는 공을 피해 작은 아이의 교실을 향했다. 피한다고 애썼건만 타고나게 느린 운동신경은 꼭, 공이 오는 쪽으로만 피해 봉변을 당하고야 만다. 종아리 쪽으로 날아온 축구공을 허벅지로 막아 내고는 얼마나 아프던지 하늘이 노랗게 변했다. 저쪽에서 달려오는 코치 선생님과 영국 학부형들의 시선이 내쪽으로 몰리는 것이 허벅지에 번지고 있는 멍보다 더 괴로웠다. 얼굴은 벌써 새빨갛게 달아 올라 곤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안 아픈척 입술을 귀에 걸고 손을 들었다. 사방에서 “Are you alright?(너 괜찮니?)” 이 쏟아졌다. 무조건 괜찮다고 해야지 별 수 있겠는가. 걱정 가득한 얼굴을 한 코치 선생님이 눈 앞에 들이 닥치기 전에 멋지게 공을 차서 온통 내게로 쏠린 시선까지 보내 버려야지 하고 발 앞에 놓인 공을 있는 힘껏 차 올렸다. 아직 아픔이 가시지 않아 하늘빛깔이 파란색으로 돌아오진 않은 상태였지만 정말로 무언가 날아가긴 했다. 그런데, 그것이 축구공이 아니라 내 애꿎은 슬리퍼였다니!
나는 그렇게 학교 운동장 한 가운데 덩그러니 내던져진 뒤축 벗겨진 슬리퍼가 되고 말았다.
차라리 동네에서 노는 아이들의 발길질에 날아 온 공에 맞기라도 한다면 인상이라도 구겨 보겠건만, 방과 후, 코치 선생님이 직접 지도하는 엄숙한 축구수업 시간에는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공까지 피해가며 아이들을 데리러 가야한다.
이곳 학교에서는 방과 후, 이처럼 축구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학년별로 일주일의 반은 운영되는 어린이 축구교실에서는 낮은 학년의 아이들은 남아와 여아가 함께 축구를 하고 학년이 높을수록 세부적으로 나뉘어 좀 더 체계적인 지도를 한다. 물론, 이 중에서 재능이 탁월한 아이들은 따로 선별하여 국가적인 차원에서 관리하고 지도한다.
처음 축구클럽에서 운동을 하는 아이들이 모두 축구를 잘 했던 것은 아니었다. 일부는 엉덩이를 뒤로 빼고 뛰느라 어기적거렸고 또, 일부는 나처럼 공보다 신발을 더 잘 날렸을 것이다. 그런데, 한 학기가 지나고 일년이 되면서 운동장을 누비는 아이들의 빨라진 몸태와 발놀림의 기술을 보면서 선수는 발견되기도 하지만 만들어져 가기도 한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영국뿐만 아니라 유럽 전체가 그렇기도 하지만, 이들의 축구사랑은 한 두해에 걸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어릴적부터, 온 가족이 아이들을 데리고 축구경기를 관람하고 집안 대대로 응원하는 축구팀이 있는 가정도 상당히 많기 때문에 태어나면서부터, 아이들은 가문의 뜻에 따라 부모님과 할머니, 할아버지가 응원하던 축구팀에 자연스럽게 합류를 한다.
영국인들은 대부분 팝 같은 술집에 모여 맥주를 마시면서 함께 경기를 보는 것을 즐기지만 일년 전부터 시즌 별로 축구표를 예약하고 매 경기마다 관람석을 찾는 영국인도 많다.
아무것도 모르고 처음 축구장을 찾았던 동생은 바로 앞 자리에서 영국인 노부부가 진행하는 멋들어진 축구해설과 전문가 뺨치는 경기분석을 듣는 재미가 보통이 아니었다고 한다. 특히, 새로 영입한 한국선수에 관한 프로필을 줄줄 외우고 관심을 보이는 모습은 콧등이 시큰해질 정도의 감동이었다고 한다.
영국인들의 축구 열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길거리 차량마다 장식해 놓은 잉글랜드 국기가 우리 동네 집들까지 점령하고 있다. 우리 집이야 영국국기를 걸어놓을리가 없기 때문에 대문 앞이 깨끗하지만, 가끔은 숨길 수 없는 외국인이라는 사실에 주눅이 들기도 한다. 다행히 앞 집 켈리엄마는 스코틀랜드 출신이라 우리 집처럼 아무런 장식도 하지않고 있다. 잉글랜드 사람인 켈리아빠가 기가 쎈 켈리엄마를 이기지 못하고 국기를 걸지 못했구나 하며 짐작도 해보고, 대문 앞이나 창문이 깨끗한 집이 눈에 띄면 그제서야 그 집 사람들이 아일랜드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게되기도 한다. 우리 제부 존도 스코틀랜드 출신이라 잉글랜드와 경기를 치루는 국가는 무조건 응원을 하고 잉글랜드가 경기에서 패하기만을 기원한다.
이처럼, 월드컵 시즌만 되면 영국이란 국가는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웨일즈, 아일랜드로 나뉘어 출전을 하고 나라가 네쪽으로 갈라져 출신과 조상, 국가와 정체성을 속일수가 없게된다.
로버공장의 부도로 인하여 삼천여명의 근로자가 일자리를 잃게된 사태 앞에서도 조용하기만 하던 영국 사람들이 축구 앞에서는 나라 전체가 광분을 한다. 때문에, 방망이 하나 들고 느릿 느릿 걸어 다니는 배불뚝이 영국 경찰들도 훌리건들 앞에서는 전투태세를 갖춘다.
평소에는 조용한 순둥이 영국인들이 축구경기 후에는 언제 어떻게 바이킹으로 돌변할지 알 수가 없다. 그저 지금은 한국이 잉글랜드와 경기가 없어서 감사할 뿐이다.
영국이 축구와 친밀할 수 밖에 없는 가장 큰 혜택은 뭐니 뭐니해도 잔디 공원이라고 할 수 있다. 십여분만 걸어가면 곳곳에 있는 공원에는 잔디가 지천이다. 한 겨울에도 파랗고 산을 깎지 않아도 널린게 평야이며 물을 따로 주지 않아도 자라고 퍼지는 것이 이곳의 잔디밭이다. 영국국토의 대부분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잔디구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 이 곳을 뛰어놀고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축구환경은 최고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에 있을때만 해도 잔디구장도 변변히 없어 모래밭이나 아스팔트 위에서 공을 차는 우리나라의 실정이 안타까웠다. 그러나, 산을 깎아 구장을 만들고 비싼 비용을 들여 잔디구장을 유지해야만 하는 불리한 자연조건을 극복하고 타고난 체력과 뛰어난 기술을 소유한 유럽선수들과 당당히 겨루어 2002년 월드컵의 신화를 이루어 내고, 세계에 진출한 훌륭한 선수를 길러낸 한국의 저력이 자랑스럽기만 하다.
나라 전체가 축구에 열광하는 팬이라고 할지라도 그들에게는 우리의 붉은 악마는 없다. 그리고, 나라 전체를 축구선수로 길러내는 능력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들에게는 단 시간에 4강의 신화를 이룬 놀라운 역사는 없었다.
관중석의 붉은 물결에 가슴 뛰고, 태극전사들을 북돋는 애국가에 눈시울을 붉히면서 창 밖에서 펄럭이는 잉글랜드 국기들 사이에서 또 한 명의 붉은 악마는 큰 소리로 월드컵 구호를 외친다.
“대~한민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