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서: 10. 류광수, 11. 빈야드운동, 12. 예태해, 13. 트레스 디아스(Tres Dias, TD), 14. 문선명(통일교), 15. JMS(정명석), 16. 박윤식(평강제일교회, 구 대성교회), 17. 안식교
10. 류광수(다락방운동)
주요 교단으로부터 '이단'으로 규정된 류광수 씨는 지난 해 8월 본지 주최 '공청회'를 계기로 <한국교회 앞에 고백 드리는 글>을 발표, 전격 '회개'를 선언한 바가 있다. 그때, 류씨는 자신의 잘못된 사상을 인정하고 모두 고치겠다고 한 것이다. 이후 그에 대한 평가는 긍정, 부정의 양면이 공존하고 있다. 회개의 자세로 새출발하겠다는 점에 대해서는 긍정적이지만, 그 결과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면이 없지 않다는 것이다. 류씨의 회개가 과연 진실한 것인지, 그리고 그가 그에 합당한 행동을 이어갈 것인지 계속해서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아무튼 '공'은 전적으로 류씨 의지에 달려 있다.
1. 다락방 전도운동의 개요
가. 류광수 씨
다락방전도훈련원의 창시자요, 원장인 류광수 씨는(부산 동삼제일교회) 예장합동측 부산노회 소속 목사였으나, 1991년 11월에 류씨가 베뢰아 귀신론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과 1987년에 음주운전을 하다 사고를 내고 도주한 혐의로 구속되어 유죄 판결을 받은 것 등의 이유로 그 교단으로부터 면직된 자이다.
나. 다락방 전도운동이란?
류광수 씨는 다락방 전도운동을 정의하기를 '우리가 처해 있는 곳에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이 있는 줄 믿고, 전도의 지역에 침투해 들어가서 전도 활동을 펴기 위한 성경 공부 활동'이라고 한다(평신도가 읽을 전도훈련교재-전도훈련교재 1, p.11). 즉, 부산에 있는 류씨의 교회(동삼제일교회)에 본부를 둔 '다락방전도훈련원'에서 합숙훈련을 받은 요원이 전도 지역에 들어가서(학교, 직장, 기관 등 포함) 성경공부를 하면서 전도운동을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락방전도훈련원은 전국에 100개 이상의 지역에 전도학교, 전도신학원 등을 두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1천만 요원과 국내 40만 요원을 양성하고 '10만 대학 요원'과 '10만 중고 요원'을 확보하겠다고 선전하고 있으며, 다락방전도신문 . 도서출판 예수생명 · 다락방 방송센타(영상 다락방) 등의 기관들을 통해서 류광수 씨의 '다락방 메시지' 등을 담은 교재와 녹음(녹화)테이프를 공급함으로 이 운동을 확산시켜 가고 있다.
2. 다락방 전도운동의 문제점
가. 류광수 씨의 핵심 사상은 구속사를 마귀와의 대결로 보는 잘못된 마귀론에서 비롯되었다.
류씨는 김기동(베뢰아 아카데미) 마귀론의 기본 사상과 유사한 구도 속에서 '전도하기 위해서는 기도를 통해 마귀의 세력을 결박하라'(평신도가 읽을 전도훈련교재-전도훈련교재 1, p.15, 전도의 관점에서 본 창세기 - 현장메시지 4, p.12, 목회자·전도자를 위한 현장복음메세지 - 현장메세지 3, 제 44 과)고 하며, '성도에게는 기도하면 천사를 동원할 수 있는 천사동원권이 있다'(전도의 관점에서 본 창세기 - 현장메시지 4, p.31, 새생명, p.13, 지역복음화를 위한 다락방전도전략 p.122)고 주장한다. 또한, 자율신경이 약해지면 병이 든다고 하면서도, 모든 영적 정신적 육체적인 병은 마음을 타고 들어오며, 마음의 병은 악령의 활동이며 특히 정신병 영혼의 병은 사단(마귀)과 미혹의 영(악한 영)의 작용 때문이라거나 재난, 불화, 실패 같은 것이 연속되는 것은 전부 영적인 병이라고 규정하는 것이나, 미혹의 영이 평생 따라 다니고 계속 증가되어 결국 육체를 멸하게 한다([목회자·전도자를 위한 현장복음메세지 - 현장메세지 3], 제 8, 9, 10, 49 과)고 주장하여 구속사를 마귀와의 대결로 보고 있다.
류씨의 위와 같이 가르침이 비록 김기동의 마귀론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며, 또한 류씨의 변명에 의하면 자신도 김씨의 마귀론이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한다고 하며(지역복음화를 위한 다락방전도전략, p.120) 단지 역술인과 무당들을 전도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것이라고 변명하고 있긴 하지만, 결국 예수가 오신 것이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한 것이라는 류씨의 주장은 김기동의 마귀론과 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나. 기성교회를 부정적으로 비판하고 교회를 혼란하게 한다.
류씨는 '다락방전도훈련원'이라는 간판을 내걸었으나 전도 훈련을 시키는 것보다 다락방전도훈련원을 중심으로 한 전도운동을 목적으로 다락방식 성경공부를 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정통교회에서 수용할 수 없는 다락방 사상들을 주입시킴으로 교인들을 혼란하게 하고 있다. 나아가 다락방 전도운동을 하나의 전도의 방법으로 보는 차원을 넘어 전도의 유일한 방법인 양 강조하는 인상을 강하게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성교회를 부정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기성교회보다 다락방을 우월시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다. 다락방 전도운동 과정에서 기성교인들에게조차 다락방식으로 영접을 시키는 사례가 나타난다.
구원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것과 마귀의 일을 멸하는 것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라고 가르치는 류씨는, 예수 믿고 죽으면 하나님 나라에 가는 것은 맞지만 '하나님의 아들이 오신 것이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는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을 영접이며, 이것을 가르치는 것이 진짜 복음이라고 한다(다락방전도전략 pp.37-38, EBS 양육테이프 2A, 복음편지 테이프 1A, 복음편지 테이프 2A). 또한 믿음에는 '첫째는 예수를 아는 단계(사 53:5, 요삼 1:2)가 있고, 둘째는 믿는 단계가 있고, 세번째는 영접하는 단계가 있다'고 하였다(테이프).
즉, "정확한 복음을 빨리 전해야 돼요. … 전도지를 들고 나가기 전에 성도들로 하여금 이걸 깨닫게 해야 합니다. 올바른 구원(을 몰라) 지금 너무 너무 확신이 없이 방황하거든요. 신자 가운데 수많은 신자들이 지금 이것이 안돼 가지고 방황하고 있습니다."(복음편지 테이프 1A)라고 하고, '교인들의 80%가 믿지 않는다'(목회자·전도자를 위한 현장복음메세지 - 현장메세지 3, 제 28과)고 가르쳐 다락방 전도운동 과정에서 기성교인들에게 조차 다락방식으로 영접을 시키는 사례가 나타나는 것은 구원론에까지 심각 문제로 여겨진다.
류씨는 자신의 다락방에 대하여 문제들이 제기되자 수차에 걸쳐 자신의 잘못을 시정하겠다고 말은 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나 방법을 어떻게 시정하겠다고 밝히거나, 구체적으로 시정되었다고 인정할 수 있을 만한 일이 없다.
연구 결론
류광수 씨의 다락방 전도운동은 비록 전도운동이라 주장하지만 그 가르침 가운데 마귀론에서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고 교회를 어지럽히고 성도들을 혼란하게 하는 등, 사이비성이 있으므로 제 81회 총회 이후로는 본 교단 소속 목회자들과 교인들이 이 운동에 참여하거나 이 운동을 그대로 답습하는 일이 없어야 될 것이며, 본 교단에서 운영하고 있는 총회 전도학교를 적극 활용토록 함이 좋을 것으로 사료된다.
<예장 통합>
11. 빈야드 운동

▲빈야드 운동을 하는 한 교회의 집회 모습
지난 96년을 전후해서 소위 '빈야드 붐'이 일었다. 미국 빈야드 교회를 방문하는 것이 마치 성지순례나 다녀오는 것처럼 광고문이 홍수를 이루었고, 또 시대에 뒤떨어질세라 너도나도 이 대열에 참여하기도 했다. 일부 목회자들은 빈야드 교회를 그대로 흉내내기도 했다. 예배 형식의 파괴는 물론, 설교자가 청바지 입고 단위에 올라가는가 하면, 아예 교회 이름도 '00 포도원교회'라는 식으로 바꾸기조차 했다. 빈야드 계열의 '토론토 블레싱'이라는 것도 이때 유행을 탔다. 집회중 인도자로부터 안수받은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쓰러져 짐승 소리를 내는 등 이상한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한국교회는 빈야드 운동에 대해 이례적으로 발빠르게 대처했다. 빈야드 운동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각종 세미나가 때를 같이해 동시에 일어났다. 그때문인지 빈야드 운동은 약 1년만에 고개를 숙이기 시작, 요즈음에는 그 자취조차 보기 힘들어졌다.
빈야드 운동이란?
최근에 '제3의 물결' '빈야드 운동' 혹은 '토론토 축복'이라 불리워지는 운동 등이 있는데, 그것들이 '빈야드'라고 불리우는 이유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애나하임(Anaheim, California)에 있는 '빈야드교회(Vineyard Christian Fellowship)'를 이끄는 죤 윔버(John Wimber)를 비롯해서 그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형성한 단체가 '빈야드 교회 연합(Association of Vineyard Churches)'으로서 이제는 일종의 교단처럼 되었기 때문이고, '토론토 축복'이라 함은 죤 아노트(John Arnott)가 개척한 '토론토 공항 교회(Toronto Airport Vineyard)'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하여 언론이 그렇게 불렀기 때문이다.
빈야드 운동에서는 성령의 능력을 특히 강조하는 권능주의와 성령체험의 감정적 요소를 강조하는 감정주의의 두 관점이 강조되는데, 능력전도를 주장하는 죤 윔버의 경우는 권능주의적인 측면이 강하고, 감정적 경험을 중시하는 죤 아노트는 감정주의적인 면이 강하다고 하겠다.
죤 윔버는 권능(혹은 능력)이란 말을 자주 사용하는데, 그 능력이란 초자연적인 능력이요, 초자연적인 성령의 은사로서 병자를 치유한다든지, 귀신을 내어쫓는다든지, 예언을 한다든지, 혹은 지식의 말씀이라고 하는 은사를 사용해서 전도를 하는 것을 말한다.
반면에 토론토의 죤 아노트는 신앙 체험에 있어서 감정을 대단히 중요시 한다. 그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다분히 감정적으로 해석한다. 그가 로멘스(romance), 감정(emotion), 느낌(feeling)이란 단어들을 많이 사용하는 것과(John Amott, 'The Father's Blessing' Orlando, Florida:Creation House, 1995, pp.16, 21, 23, 25, 59, 89.), "하나님은 너와 더불어 깊고 감정적이며 의미 있는 관계를 가지고 싶어하시며, 그는 또한 네가 그런 관계를 다른 사람들과 갖게 되기를 원하신다"(The Father's Blessing p.14)라고 말하는 것과 "우리는 감정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감정적으로 사랑을 받을 필요가 있다. 감정은 우리의 창조주로부터 온다. 하나님은 감정을 가지고 계신다. 그는 감정적이시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 그는 우리를 감정적으로 사랑하기 원하신다. 그는 우리가 그를 온 마음과 생명과 뜻을 다해 감정적으로 사랑하기를 원하신다."(The Father's Blessing p.26)라는 말이 이를 입증한다.
현재는 죤 윔버(John Wimber)가 이끄는 '빈야드 교회(Vineyard Christian Fellowship)'를 중심한 빈야드 운동(Vineyard Movement)과 죤 아노트(John Arnott)가 이끄는 '토론토 공항 교회(Toronto Airport Vineyard)'를 중심한 토론토 축복(Toronto Blessing)은 분리되었다.
빈야드 운동의 문제점들
가. 성령과 그 사역에 대한 이해가 치우쳐 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은사를 주시는 것은 다양하다. 성령의 은사는 기적적인 것도 있으나, 기적적인 것 같지 않아 보이는 것도 있다. 또한 그런 은사들은 각 사람이 모두 다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각 사람의 사명과 필요에 따라 하나님께서 나누어주시는 것이다. 그러나 빈야드 운동에서는 초자연적인 은사들과 능력, 그리고 신비 현상들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있다. 특정한 은사들이나, 격렬한 감정의 분출 현상이나 이적들이 지나치게 강조되면, 성령의 역사의 다른 중요한 측면들(즉 말씀, 사랑의 삶, 공동체 안에서의 교제, 사회에 대한 책임적 행위에 관련된 성령의 역사)이 간과되거나 약화될 수 있다. 웬일인지 최근에 윔버는 이 점에 있어서 나름대로 균형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지만 사람들에게 그가 미친 영향은 결국 초자연적 능력을 매우 강조하여 열광주의에 빠지게 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나. 거룩한 웃음, 떨림, 쓰러짐, 짐승 소리 등의 현상은 비성경적인 현상들이다.
빈야드 운동이 사람들의 혐오감을 유발하는 가장 두드러진 점은 그들 가운데서 많이 일어나는 떨림, 쓰러짐, 거룩한 웃음 등의 현상 때문이다. 또한 이런 현상들이 실질적으로 이 운동의 특성이 진행되고 있으며 그들의 집회의 분위기는 그런 현상들을 암시적으로 격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짐승 소리는 토론토 교회의 현상으로서 죤 아노트가 그런 현상들과 특히 짐승 소리를 정당화하는 성경적인 증거로 예수님을 '유다 지파의 사자'라고 묘사한 계시록5:5 이라든지 '하나님이 사자같이 부르짖으신다'는 아모스 3:8 등을 인용하여 정당화하고 있는데(The Father's Blessing pp.172-173), 이는 억지스런 해석으로 위의 본문들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과 은유로 묘사한 것이지 실제적인 짐승 소리나 괴성을 정당화하는 말씀은 아니다.
또한 은혜를 체험하고 쓰러지는 현상은 가장 두드러진 현상으로 이들은 쓰러짐을 정당화하기 위해, 에스겔 1:28과 다니엘 8:17을 근거로 에스겔과 다니엘의 쓰러짐을 말한다. 그러나 에스겔이나 다니엘은 하나님의 위엄 앞에서 스스로 앞으로 부복한 것이지 빈야드의 경우와 같이 은혜의 체험으로 뒤로 넘어진 것이 아닌 것을 볼 때, 전혀 성경적으로 합리화할 수 없는 현상에 속한다. 또한 그들은 예수님을 잡으러 온 군사들이 넘어진 것(요18:6), 무덤을 지키던 파수꾼이 넘어진 것(마28:4) 등을 열거하지만(John Wimber, Kevin Springer, 능력치유 이재범 역, 서울:도서출판 나단, 1991, p.359), 성경의 그러한 예들은 은혜를 체험했기 때문에 넘어진 것이 아니므로 성경적 근거가 결코 되지 못한다. 그리고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쓰러진 것이라든지(행9:4), 요한이 밧모 섬에서 쓰러진 일(계1:17) 등은 주님 자신의 직접적인 출현에 직면한 것이었다. 거룩한 웃음을 정당화하기 위해 아브라함이나 사라의 웃음(창17:17, 21:6)과 같은 것을 예로 들지만(능력치유 p.362), 아브라함이나 사라의 웃음은 어떤 주체할 수 없는 감정 때문에 광적으로 웃는 웃음이 아니다.
또한, 떠는 현상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사야66:5이나 예레미야5:22, 마가복음5:33, 누가복음8:47, 사도행전16:29, 고린도전서2:3, 고린도후서7:15, 빌립보서2:12, 히브리서12:21 등을 인용하지만(능력치유 p.356), 거기에 나타난 것들은 구체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혹은 어떤 두려운 사건이 일어난 상황에서, 두려워서 떠는 의식적이며 자연스러운 현상이지, 빈야드 운동에서처럼 주체할 수 없는 주관적이며 잘못된 신비적인 감정이 아니다.
다. 위와 같은 현상들은 격렬한 종교적 감정의 표현으로 그런 현상들 자체가 강조되고 격려되는 분위기는 바람직하지 않다.
성령의 은혜를 경험하고 감동된 사람들이 격렬한 감정 속에서 그러한 현상이 수반되어 나타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현상들이 격려되고 장려되어 은혜 받은 표적으로 정형화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위험스럽다. 성령의 은사들은 우리가 복음을 전하며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데 소용되는 성령의 선물이며 능력이다. 은사들은 구체적인 유익, 특히 타자를 위한 유익을 가져온다(고린도전서 14장, 에베소서4:11).
빈야드 지도자들은 간혹 그런 현상들이 일어나느냐 아니냐는 관건이 아니라고 스스로 말하기도 한다. 그들에 의하면 문제는 성령의 은혜로 삶이 갱신되고, 새롭고 뜨겁게 주님을 사랑하며, 새로운 사역의 능력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The Father's Blessing, p.166; 능력치유 p.358). 그러나 그들이 실제로 각 사람을 위해서 기도할 때는 무언가 그런 일이 일어날 때까지 오랫동안 집중적으로 기도(그들은 이런 것을 soaking prayer라고 부른다)를 하는 경향을 보인다(The Father's Blessing p.96). 그럴 경우 사람들이 자기 스스로를 통제하지 말고 온전히 수동적이 되도록 하기 위해 심지어 방언도 하지 말도록 권한다고 한다(The Father's Blessing). 그런 경향은 암암리에 사람들로 하여금 그런 현상 자체를 중요시하고 사모하게 만들 우려가 있다. 그렇게 되면 그런 체험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사이에 어떤 차별이 생기게 되고, 특정 체험이 표준화되며, 오히려 성령의 포괄적인 역사를 제한하게 된다. 이 점에 관하여는 토론토측이 더욱 문제가 된다.
특히, 절제하지 못하여 덕을 세우지 못하게 된다. 그러한 극단적인 감정의 분출 현상이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경우에라도, 그런 것은 드러내고 공개하고 격려할 문제가 아니다. 그런 현상들은 사람들에게 의구심과 혐오감을 일으키기 쉽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14장에서 방언의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공개석상에서 방언하는 것에 대하여는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한 배려를 하는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한 것에 주의해야 한다. 그런 현상들을 체험한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어떤 유익을 경험했을지라도, 그것은 다른 이들에게 특히 불신자들에게, 덕이 되지 않고, 오히려 혐오감을 주게 될 우려가 있다. 그런데 빈야드 운동에서는, 특히 토론토 측에서는 그런 현상을 드러내고, 심지어 집회시 강단에서 간증할 때에도 나타나도록 하므로 바람직하지 않다(비디오 테이프 'Catch the Fire: God's Love, Bottom Line' by John Arnott, Toronto Airport Vineyard).
라. 예배를 무질서하게 드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찬양과 예배의 갱신은 그들이 강조하는 또 하나의 요점이기도 하다. 그들은 형식에 얽매어 역동성을 상실한 예배를 자유롭고 무형식적인 예배를 통해 갱신하고자 한다. 무형식적인 예배는 성령의 자유로운 역사를 따르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어떤 면에서 항상 똑 같고 형식적인 예배에 식상한 사람들에게 그것은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전통적인 형식 속에서도 참된 예배를 드릴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또한, 빈야드가 아무리 무형식이라고 해도 거기에 이미 나름대로의 어떤 형식이 자리잡게 된다. 자유로운 분위기의 긴 찬송 시간, 설교, 각 사람을 위한 기도 시간 등은 이미 하나의 형식이다. 사실상, 윔버 자신도 어느 정도 질서와 조직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기도 하다(Wimber & Springer, 능력전도 pp.57-58). 전통적인 형식들도 많은 경우 그 근원에 있어서 고대에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자연스럽게 나타난 현상에 근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각 사람이 무질서하게 각각 자기 원하는 식으로 찬송하고, 기도하고 하는 것은 여럿이 모였으되, 각각 자기 문제를 위해 기도할 때에는 문제가 없지만, 예배는 개인만이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교류하며 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질서가 유지되어야 한다. 예배는 엄숙하고 질서 있게 드리고, 기도가 필요한 사람들은 따로 기도하는 시간을 마련하면 좋을 것이다.
마. 수용하는 이들의 신학적 목회적 비성숙성이 더 문제를 확대하고 있다.
우리 나라의 많은 목회자들이 빈야드 세미나에 참석하고 돌아와서는 자기 교회에서 동일한 방식으로 시도하는 경우들이 많이 있다. 그런 경우 기존 신앙생활의 모습을 고수하려는 이들과의 사이에 마찰과 분열이 야기되고 있다. 그러므로 목회자들의 무비판적인 수용은 오히려 교회를 어지럽히게 된다. 본 교단 소속 목회자들과 교인들은 성령님의 여러 가지 놀라운 은사들과 역사를 받아들이고 추구하되, 성경이 가르치시는 바에 따라 건전하고 덕스러운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연구 결론
빈야드 운동은 성령과 그 사역에 대한 이해가 치우쳐 있고, 거룩한 웃음, 떨림, 쓰러짐, 짐승소리 등을 정당화하기 위한 그들의 성경 해석은 올바르지 않으며 또한 무질서한 예배도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므로 본 교단 소속 목회자들과 교인들은 빈야드 형식의 예배를 무분별하게 도입하여 들이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며, 이 운동에 참여하는 것을 삼가해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예장 통합>
12. 예태해

▲ 예태해 씨의 안수를 받고 집회 중 쓰러진 사람들.
일부 사람들은 집회중에 쓰러지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김기동, 이초석, 빈야드, 토론토블레싱 등의 집회에서는 여러 가지 모양으로 쓰러지는 형상이 나타난다. 귀신이 나간다며 쓰러지고, 또 어떤 집회에서는 쓰러져서 박수를 치거나 이상한 소리(그것도 짐승 소리)를 내기도 한다. 구역질 흉내를 내는 사람도 있다. 이러한 현상들을 두고 주최측에서는 '성령 임한 상태'라는 식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그러한 현상이 옳다는 것을 입증이라도 하려고 여러 성경구절을 들먹이기도 한다.
예태해 씨 집회중에서 쓰러짐의 현상이 발생한다. 예씨에게 안수라는 것을 받은 사람이 그 자리에서 뒤로 쓰러져 박수를 치거나, 이상한 소리를 내기도 한다. 예씨에게 배웠는지는 모르지만, 예씨를 강사로 초빙한 주최측 목사도 같은 행위를 하기도 한다.
이러한 예씨에 대해 말이 많다. '문제 있다', '아니다'의 의견이 분분하다. 분명한 것은 예씨를 돕는 교계 중신급 목회자가 몇몇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예씨에 대한 교단의 연구가 적지 않게 이루어졌다. 예장합동, 예장개혁, 그리고 지난 해(99년)에는 예장통합 교단에서도 예씨 문제를 다루었다. 이중 예장합동측 연구보고 내용을 전량 게재한다.
예태해 목사(미국 뉴저지 엠마오선교교회)가 한국에서 목회자 세미나를 가진 것과, 속사람.이란 책과 설교 테이프가 있다.
백봉산 기도원에서 영성수련회는 400여 명의 목사가 참가하고 청주 집회가 1500명 서울, 대구 집회는 1000여 명의 평신도들이 모여들었다. 예태해 목사가 한국에서 목회자 영성수련회 및 평신도 영성수련회에서 주강사로 활약입신의 붐을 일으키고 성황리 막을 내렸다. 그의 집회에 참석하고 돌아온 목회자들 중에 안수하여 넘어지는 일들을 하여 교회 성도가 분열되고 혹은 교회를 가지고 교단을 떠나 버리는 실례까지 나타나고 있다. 안수기도 받을 때 성령이 임하므로 말미암아 개별적 또는 여럿이 한꺼번에 넘어지는 현상에 대하여 이를 잘 이해하지 못하므로 인하여 여러 가지 오해가 계속되기에 간명히 설명하여 이해를 돕는다고 하면서 "성령이 권능으로 임할 때"라는 팜플렛 16페이지에 변증을 하고 있다.
총회 신학부 소위원회(예태해 목사 신학 성분 규명)에서는 그 동안 국내외에서 수집한 자료와 그가 78총회 이후 미주 동부노회에 가입한 사실 배경 확인과 그의 목회지 미국 뉴져지 현지에 가서 본인의 증언과 그가 이전에 담임했던 PC.USA교단 베다니교회와 태평양노회를 방문 사실 확인을 하고 LA와 NY 뉴져지교회 협의회 목회자들의 실증을 토대로 그의 신학성분 이단시비의 그 진상과 경위를 밝혀 총회에 보고하여 올바른 신학과 신앙을 보수하고자 한다.
예태해 씨의 인물

▲ 예태해 씨(좌)와 조원길 씨. 조씨는 목양세계선교회 회장으로서 예태해 씨의 집회를 유치하거나 후원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학 배경
그의 목회 생활의 출발이 신비적 체험이 동기가 되었다.
신비한 체험: 한번은 10여 명의 신도들과 함께 기도하고 있는데 갑자기 머리 위에서 물이 흐르는 것같아 눈을 떠보니 실제로 머리 윗부분이 젖어 있음을 확인했고 함께 있던 신도들이 기드온의 양털의 이슬이냐며 놀라 묻더니 이내 기도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뒤로 쓰러지더라는 것이다. 이 일을 계기로 교인들을 대상으로 첫 성회를 가지게 되었고 이때 많은 사람들이 뒤로 넘어지는 현장을 목격했다고 한다. 그후부터 그의 집회시엔 으례껏 교인들을 일어서게 한 상태에서 이마에 안수를 했고 안수받은 자들은 꼿꼿이 선 채로 뒤로 넘어지는 현상이 계속되었다는 것이다. 현재 Emmaus Mission Church(뉴져지 소재)가 주께서 환상 가운데서 동쪽에 교회를 세우라고 명령하셨다고 했는데 그는 꿈에 그곳 사람들이 오라고 해서 LA에서 뉴져지로 옮겨 교회를 세우게 되었다고 했다. 그의 목회생활의 출발이 계시 의존에서가 아니라 신비한 주관적 체험이 결정적인 동기가 되고 있다. 성경신학의 기본원리는 계시 의존 사생이다. 인간이 자기의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서만 알게 된다. 예수께서 하나님께로부터 절대적 권세를 받으시고 그의 원하시는 대로 사람들을 초청(계시)하셔서 하나님 아버지를 알게 하여 절대적인 구원을 주신다. 인간의 자력과 자율로써는 하나님을 아는 데 있어서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계시 의존 사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러한 계시 의존 사생으로써만 인간이 구원받는다는 사실이다. 그가 성경(기록계시)에 근거해서 인격의 결단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신비한 경험이 결정적 동기가 되고 있다. 그의 목회자로써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이나 산에서 기도하여 신비한 능력을 체험한 것이나 교회를 세우게 된 일들이 하나님께서 직접 음성이나 환상으로 계시하셨다는 것은 그의 신학사상의 바탕이 정상적이 아니라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불건전한 신비주의는 성경의 충족성을 믿지 않고 성경 이외의 교훈과 체험을 구하고 성경의 종결성을 믿지 않는다. 성령을 말씀에서 독립시켜 취급하고 말씀 곧 그리스도를 중심하여 내세우는 것보다 성령을 중심한다. 천연을 등한히 여기고 은혜만을 강조한다. 주관적 느낌에서만 찾는다. 그 자신이 주관적 체험과 그의 집회에서 일어났다는 현상들은 비성경적인 것들과 신학적 바탕과 비정상적인 것을 드러낸 것이다.
예태해 씨의 신학성분(이단성)을 규정할 수 있는 근거 자료
가. "성령이 권능으로 임할 때" 나타나는 현상을 증거한 팜플렛과
나. 그의 신학을 요약한 저서 '속사람'이란 책이 있다.
성령이 권능으로 임할 때 나타나는 현상
그가 안수기도할 때 성령의 권능이 임함으로 사람들이 한꺼번에 넘어지는 현상에 대하여 이를 성령의 외적 사역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여러 가지 오해가 계속된다고 하면서 그것이 정당한 성령 역사의 현상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성경의 예와 교회사의 예를 든다. 교회사 속의 현상으로 요한 웨슬리, 죠지 윗필트, 요나단 에드워드, 찰스피니, 케드린 쿨만 등 그들의 집회시 이런 현상이 있었다 해도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는 데 예태해 씨의 집회시에는 거의 대부분이 쓰러진다는 것이다. 넘어지는 현상은 성령의 권능으로 임할 때 그 사람의 육적인 것을 결박시킴으로써 일어나는 것이라고 한다. 그 근거로 마태복음 12장 29절을 제시했다. 이 구절은 사탄을 결박한 것을 나타낸 것이지 아무 연관이 없다. 계속해서 성령의 충만을 받지 않고 성령의 역사를 부인하거나 세상에 빠지기 때문에 성령의 권능에 의해 넘어진 사람이 후에 사탄에게 사로잡히거나 사탄의 도구로 쓰임 받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그러므로 넘어진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예태해 씨는 이것을 성령의 역사 가운데 일어나는 외적 현상이며 이를 문제삼는 것은 성령의 역사를 이해하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특히 한국교회에서 문제시되고 있는 것은 그 동안에 한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는데다가 유교적 예의범절과 점잖은 체면을 중시해 온 전통적 고정관념이 이를 용납하지 못한 때문이다"고 한다. 한국교회는 유교적 예의범절과 점잖은 체면 전통적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성령의 권능의 현상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칼비니즘 개혁신앙에서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하나님은 모든 일을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하시며 성령을 통해서 하신다. 성령은 말씀과 더불어 역사하신다. 성령님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자신에게 효과적으로 연결시키는 띠, 즉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신 객관적인 구속의 역사가 주관적으로 신자에게 효력을 발생시키는 것은 성령님의 역사다. 중요한 성령의 역사는 믿음을 일으키는 것이다. 성령의 중심 사명은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말씀을 기억나게 하는 것이요,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이해하고 선포하고 가르치는 것이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보혜사)은 영원토록 함께하신다(요14:16-17).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14:26). 성령은 인격적으로 일하시며 말씀과 더불어 역사한다. 손으로 안수하여 넘어져 입신함은 인격적으로 임하시는 성령을 망령되게 일컬음을 받게하는 행위다. 성령은 한 분이지만 은사는 다양하다(고전12:4-11). 하나님이 성령을 통하여 은사를 준 목적은 교회를 소란케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교회를 섬기도록 함에 있다. 섬기는 생활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교회에 덕을 주지 못하게 은사를 사용하는 것은 은사를 준 목적을 잘못 이해한 것이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못하는 비성경적인 은사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성령의 중요한 역사는 신유 은사나 방언이 아니라 예수를 믿게 하는 것이요, 믿고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이다. 올바른 성령운동이란 말씀에 기초한 감화 감동을 받아 전인격이 변화되어 교회를 섬기고 봉사하는 것이지 소란케 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신학을 대표하는 '속사람'에 대하여
(1) 인죄론
예태해 씨는 '속사람'이란 책에서 예수를 믿음으로 다시 태어난 속사람은 죄가 없다고 했다. 하나님의 아들은 겉사람이 아니라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은 속사람이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은 우리의 영원한 영이다. 이 영이 하나님의 아들이다. 영은 죄를 짓지 않고 혼과 육이 죄를 짓는다고 했다. 그는 인간의 구성요소를 영, 혼, 육 3분설을 말한다. 정통신학에서는 사람을 신체와 영혼의 두 부분으로 인생의 성질이 2분되었다고 한다. 예태해 씨는 사람의 구성요소를 영, 혼, 육 3분으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3분설은 성경 교훈의 결과로 기원한 것이 아니고 헬라 철학에서 기원하고 3분설은 신체를 인성의 물질적 부분으로 혼을 감정적 생활의 원질로 영을 하나님과 관계된 이성적 불사적 요소로 인정한다. 혼은 사람과 동물이 공유한 것이나(마2:20, 막3:4, 롬11:3) 영은 사람만이 독특하게 가진 것이요, 신적 본체의 한 부분과 같은 것이니 동물은 몸과 혼을 가졌고 죽을 때에 몸과 혼이 함께 없어지지만 사람은 몸, 혼, 영 세 가지를 갖추어 가진고로 그 몸은 사망하나 영은 영존불멸한다고 한다. 피타고라스와 아리스토를 그후 헬라 로마 철학자들이 사람은 이성적인 영, 동물적인 혼, 신체의 3요소로 구성되었다고 했다. 그노시스(영지주의)파는 이 설에 의하여 사람안에 영은 신적 본체의 일부이어서 범죄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후대 반펠라기우스파는 사람안에 영은 제외되고 몸과 혼만이 원리의 주체라고 가르쳤다. 헬라의 이원론 사상은 영은 선하고 물질은 악하다는 것이다. 예태해 씨는 철저한 3분설을 주장하여 성경해석을 거기에 맞추려고 한다. 혼과 육이 범죄한 결과로 영이 죽었다는 것이다. 또 사람의 혼과 육은 영의 지배를 받는다고 말한다. 거듭난 자의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 거듭난 자의 범죄한 것은 혼과 육이지 영은 아니라는 것이다. 혼과 육의 범죄는 영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2) 계시관(성경관)
그는 베다니교회를 담임목사로 시무할 때 어떤 여신도가 재림 예수의 영을 받아 예언한다고 했다. 조사 위원이 뉴져지 엠마오선교교회 찾아가서 만났을 때 "예태해 씨는 계시 종교를 믿느냐"고 질문을 했을 때 그는 분명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 환상이나 음성이나 예언이 지금도 하나님이 주신 계시로 받아들이고 있다. 성경을 완성된 계시요 충족함을 확실히 믿지 않고 지금도 계속해서 계시를 주신다고 믿는 것 같고 주관적인 느낌이나 체험을 성경보다 앞세우는 것 같다.
(3) 성령론
예태해 씨가 손으로 안수 할 때 사람들이 한꺼번에 모두 쓰러지는데 그것은 성령이 권능으로 임하는 성령의 특벌한 외적 사역이라고 주장한다. 그것이 정당한 성령 역사의 현상이라는 것을 강조 증명하기 위하여 성령의 예(단10:8-9, 계1:10,17, 대하5:13-14, 행9:3-4, 26:24, 22:17-18, 마17:5-6, 삼상19:23-24, 마28:3-4, 행10:10-11, 고후12:2-4)를 듣고 교회사의 예(요한 웨슬레, 조나단 에드워드, 조지 휫필드, 찰스 피니, 마리아 우도워쓰, 에터 케스린 쿨만, 케네스 헤이건, 존윔버)를 들었다. 그런데 성경의 보증으로든 내용이 안수하여 쓰러지는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고 교회사의 실예를 든 이들의 집회시 현상과도 별 관계가 없다.
칼빈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오직 성경의 인도하심을 따라 칼빈의 2대 원리로 "하나님은 모든 일을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하시며 또 성령을 통해서 하십니다" 성령은 말씀과 더불어 역사하신다. 성령님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자신에게 효과적으로 연결시킨다. 즉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신 객관적인 구속의 역사가 주관적으로 신자에게 효력을 발생시키는 것은 성령님의 역사라는 것이다. 성령의 중심된 사명은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말씀을 올바로 이해하고 선포하고 가르치도록 도우시는 내적인 선생이다. 성령의 중심된 사역은 방언이나 신유 은사가 아니다. 예태해 씨가 주장하는 성령은 성경말씀보다 어떤 음성이나 예언으로 보고 그가 안수할 때 넘어지는 것이 성령의 외적 사역이라고 주장한다. 성령의 인격성과 사역성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말씀과 더불어 역사하심과 그 목적을 올바르게 정리하지 못하고 자신의 안수로 인해 넘어지는 현상을 성령의 권능이 임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주장하고 이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성경구절을 증거로 들거나 성경인용이 전혀관계 없는 것으로 자기 중심적인 짝맞추기에 불과하다.
(4) 구원론
예태해 씨의 신학과 신앙의 특징은 '속사람'에 집중되어 있다. 그는 '속사람'을 강조함으로 사람의 인격을 영.혼.육으로 분리시켰다. 그는 영은 죄를 범하지 아니하고 육이 죄를 범하며 영이 혼, 육을 구원한다는 헬라 철학에 근거한 이원론에 근거한 비성경적인 주장에 빠져있다. 그의 '속사람' 책을 살펴보면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도 완전히 성취된 것이 부족하거나 부분적 불완전하다는 주장이 있다.
그는 "우리의 영은 성령으로 거듭나서 구원되고 혼과 육은 우리의 영이 구원한다"고 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듭난 우리 영이 우리의 혼과 육을 구원하는데 우리가 스스로 십자가의 말씀을 듣고 혼적인 것을 파괴하면서 새로움을 입어가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혼과 육이 구원되어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육신을 입은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이 불완전하다는 주장이 된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만 구원하시기에 혼과 육을 우리의 노력으로 훈련으로 구원시켜야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아담의 범죄로 전인격이 전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한 것이지 영은 범죄치 아니하고 혼, 육만 범죄하였다는 인성의 부분적 범죄와 타락으로 구분한 것은 주님의 고난도, 죽음도, 부활도, 구원도 전인격적이 아니고 부분적인 것이라는 것이다.
이에서 살펴볼 때 예태해 씨는 그의 신앙도 신학도 계시의존(성경중심)신앙과 신학이 정립된 것이라기보다 그의 주관적 체험을 중시하는 목회현장에서의 현상과 성경 계시 이외의 계시(음성예언)를 중시하여 '속사람'이라는 자기 나름의 신학을 세워 인간의 성품을 영, 혼, 육 3분설을 지나치게 세분하여 성경 본래의 뜻을 외면하고 성경을 짜맞추어 해석하고 있다.
성경의 진리를 바로 세우기 위해 신학이 정립되는 것이지 자기의 주관적 체험이나 이방철학의 설에서 비롯된 3분설을 내세우고 그것을 정당한 것으로 증명하기 위해 성경의 진리를 외면하고 이용한다는 것은 인간 자율주의의 지나친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결론(조사위원회의 견해)
조사해 보건대 예태해 씨는 기독교장로회(기장)목사의 가정에서 태어나 자라서 교직에 몸담고 있다가 미국에서 늦게 침례교 신학과 그외 여러 신학을 하고 미연합장로교 목사가 되었다. 그는 신앙과 신학이 일관성 있게 정리되지 않는 상태에서 신비한 주관적 체험을 중시하는 자기 나름대로의 신학을 정리하였다.
그의 신앙과 신학을 대표하는 '속사람'이라는 책에서 속사람을 너무 강조하여 인간을 영. 혼. 육으로 분리하여 영은 죄를 짖지 아니하고 혼과 육이 죄를 범하고 영이 혼과 육을 구원한다는 영지주의적인 비성경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
인간의 죄가 전적 부패하고 타락한 범죄가 아닌 부분적인 것으로 이렇게 볼 때 전인적 구원이 아닌 부분적 구원으로 연결이 된다. 그의 성령에 대해서도 인격적인 성령보다 기운이나 힘과 같이 나타나는 현상에 중시하여 부분적으로 제한하여 안수하여 넘어짐의 현상을 성령의 지배당함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을 성경의 진리인 것으로 증명하기 위해 성경을 인용하고 있지만 그 성경 인용이 올바르게 적용되지 않았다. 이상으로 볼 때에 예태해 씨의 신학 성분은 상당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예장 합동>
13. 트레스디아스(Tres Dias, TD)
TD가 단기간 내에 빠르게 확산됐다. 통계를 낼 수 없을 정도다. TD에 참가한 목회자가 자기 교회에서 곧바로 개설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곳에서는 TD라는 이름조차 변형해서 사용하고 있다. 물론 정통 개신교회 시켜 활용하고 있는 긍정적인 교회도 없지 않다. TD의 문제점은 두 가지다. 먼저는 프로그램의 가톨릭적 요소다. 그 다음에는 이단사상과의 혼합이다. TD가 한국에 소개된 경로는 이미 이단으로 규정된 바 있는 김기동 계열(귀신파)의 김광신, 이명범 씨에 의해서이다. 김광신 씨는 미국과 대전을 중심으로, 이명범 씨는 서울 양재동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따라서 어느 경로를 통해서든 TD참여의 권면을 받으면, 먼저 목회자나 전문기관에 문의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기원과 현황
트레스디아스(Tres Dias)는 가톨릭의 꾸르시오(Roman Catholic Cursillo: 스페인어로 '기독교 세미나'라는 뜻을 가짐)에 근원을 두고 있다. 꾸르시요는 1949년에 스페인의 '성 야고보의 무덤'에서 순례자를 안내하는 일에 종사하는 봉사자들이 초기에는 그 일을 기쁨과 즐거움으로 감당했으나 반복되는 일을 계속하다 보니 싫증을 느끼고 매너리즘에 빠지는 현상이 나타나자 이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이들에게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주교들에 의해서 개발된 프로그램이라 한다. 33차례의 훈련을 거쳐 1951년 3월에 완성되었으며, 1966년에는 로마 교황이 이 '꾸르시요'를 전 세계의 교구에서 실시하도록 지시하기에 이르렀다.
이 가톨릭의 '꾸르시요'가 미국으로 건너가 개신교인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변형되면서 붙여진 이름이 바로 '트레스디아스'(Tres Dias: 스페인어로 '사흘')이다. 트레스디아스는 외부와 철저치 차단된 상태에서 3박 4일간 실시되는 훈련으로서 강의, 그룹토의, 찬양, 섬김 훈련 등의 프로그램으로 진행되며, 프로그램의 진행 방법과 내용 역시 훈련 효과의 지속성 유지를 위해서 철저히 비밀로 하고 있는 것이 그 특색이다.
현재 한국에는 가톨릭의 트레스디아스를 제외하고 각기 다른 15개 이상의 트레스디아스가 있으며 앞으로 더 늘어날 전망이다.
문제점
트레스디아스에 대한 한국교회의 반응은 극단적으로 긍정적인 경우와 극단적으로 부정적 경우가 함께 공존하고 있다. 근래에는 트레스디아스를 운영하고 있는 단체들 중에 그 동안 제기되어 온 문제점들을 나름대로 수정 보와하여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일관된 비판을 할 수는 없으나 그 동안 제기된 문제점들을 정리하자면 대체로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가. 가톨릭적 요소
트레스디아스가 카톨릭에서 만들어졌다는 점이 개신교인들에게 이 운동을 거부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이다. 따라서 가톨릭적인 요소를 배제하기 위하여 트레스디아스라는 명칭이나 여기서 사용되는 용어, 내용 등을 변경하여 실시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일단 귀한 노력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가톨릭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이유 때문에 극단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지나친 평가라고 여겨지지만, 그렇다고 검토 없이 무분별하게 그대로 수용할 경우 신학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사료된다.
나. 이단이나 불건전한 사람들이 사용하는 경우
불건전한 단체들이 트레스디아스를 자신들의 세력확장에 이용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본 교단에서 이단으로 규정하였거나, 이단으로 지목받는 단체들에 의하여 운영되는 트레스디아스는 반드시 경계하고 교인들이 참여하지 못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다. 인위적 요소
이 훈련의 내용을 비밀로 하는 것은 트레스디아스 자체의 특성 때문이라고 하지만, 실시 과정에서 여러 가지의 상징적이고 시각적인 도구들을 사용하거나, 준비되고 계획된 분위기 등으로 피훈련자들의 감성을 자극하고 유도하는 것들은 인위적이고 조작적이라는 지적을 받을 수 있는데 앞으로 기독교 교육학적으로나 신학적으로 더 연구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사료된다.
일부에서는 훈련대상을 노인이나 부부의 동시 참여를 배제하고 남녀 숫자를 맞추어서 운영함으로 이성간에 문제를 야기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금지되어야 하며, 또한 이성간에 아브라죠(포옹하는 행위)를 하는 것은 우리의 문화적인 배경 속에서 볼 때 위험한 일이라 여겨진다.
라. 교회 내외의 파당형성
또 이 훈련을 경험한 사람들이 교회에서 파당을 형성하거나, 특권 의식을 가지고 행동하거나, 특히 리유니온(Reunion: 이 훈련을 받은 후 재충전의 목적으로 다시 지속적으로 모이는 것을 말함)을 가짐으로 교회 안팎에서 또 하나의 그룹이 형성되어 가는 것이 트레스디아스를 부정적으로 보는 실질적인 이유라고 사료된다. 이 프로그램을 '오직 유일한 영성 훈련 프로그램'으로 생각하거나, 비록 그렇게 표현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다른 교인들에게 그렇게 비쳐지고 있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또 이 운동이 타 교회 교인을 끌어오는데 이용되거나, 교회가 트레스디아스 중심으로 운영될 때 이 훈련에 대해서 참여하지 않는 교인들에게 배타적이고 이 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지 않는 목회자는 배척될 위험마저도 있다. 따라서 트레스디아스를 '오직 유일한 영성 훈련 프로그램'이 아닌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여기는 확고한 인식이 필요할 것이다.
연구 결론
트레스디아스에 대한 더 깊은 신학적 교육학적 현상학적 연구의 필요성이 남아 있다고 본다. 그러나 우선 이단이나 불건전한 단체(교회)에서 운영하는 트레스디아스에 참여하는 것은 철저히 금해야 하며, 남녀를 함께 참여시키거나, 리뉴니온을 실시하여 교회 내외에서 그룹을 만드는 일은 반드시 시정되어야 하고 또 금해야 할 것이며, 트레스디아스에 교인들이 참가할지의 여부는 각 교회의 목회자의 목회적 판단에 맡기되 반드시 목회자의 추천을 받도록 하는 단체에만 참여시키는 것이 바람직한 것으로 사료된다.
<예장 통합>
14. 통일교
통일교가 간판을 바꿔달았다. 소위 '가정교회'라고 한 것이다. 92년부터 시작한 '합동결혼식'이벤트가 그 효과를 톡톡히 본 모양이다. 92년에는 3만쌍, 95년에는 36만쌍, 97년에는 360만쌍의 합동결혼식이 통일교식으로 치뤄진 바가 있다. 2000년 2월 13일 통일교측은 4억쌍 합동결혼식을 준비하고 있다. 기네스북에 오를만한 이벤트다. 통일교측은 교주 문씨에게 축복이라는 것을 받은 가정을 참가정이라고 친다. 문씨의 나이 올해 80세. 통일교식 합동결혼식과 문씨의 결혼주례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두고볼 일이다.
국산 신흥종교로 많은 시비 논쟁을 일으켰고 국외에서도 수없이 물의와 충격을 유발시킨 통일교는 지금 이 시간도 엄청난 교세로 확장되고 있다. 종교단체 5개, 교육기관 18개 언론기관 11개, 사회단체 2개, 문화사업단체 8개, 기업체 150개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통일교는 문선명(본명:문용명)에 의해서 창립되었다. 그가 지난 84년 7월 미국 댄버리 교도소에 탈세혐의에 수감되자 통일교는 한때 침체현상에 빠지는 듯했으나, 최근 중공 진출시도, 각계각층 초청세미나 개최, 청평유원지와 제주도 개발 등에 적극 참여하면서 실세 회복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러한 심심찮은 조짐을 보며 통일교의 정체를 살펴보는 것은 중요한 일이라 생각된다.
문선명 그는 누구인가?
1920년1월6일(음), 평북 정주 문경유 씨의 차남으로 출생한 문교주는 올해로 68살이 된다. 교주의 형용수 씨가 정신분열증으로 사망하고 둘째 누이도 정신이상을 일으키게 되자 문교주 일가는 그가 15상 되던 해에 기독교로 개종하였다.
13-14세까지 동리 서당에서 한문공부를 한 그는 15세가 되던 때 정주의 오산 보통학교 3학년에 편입하여 처음 신학문과 접촉하였다. 16세가 되던 봄에 문용명은 공립심상보통학교 4학년에 전학하였다가 19살이 되자 서울의 경성상공실무학교 전기과에 입학한다. 1941년 서울서 중학과정을 마친 그는 일본의 와세다대학에 들어갔다고 하나 증거가 없다. 와세다대학 부속 공업고등하교 전기과를 졸업한 것으로 생각된다.
1945년 26살인 문용명은 최선길과 결혼하였으나 1957년 1월8일 본처와 이혼하고 1960년 당시 만17살이던 한학자와 결혼하였는데 이를 "어린양의 잔치"라고 불렀다. 통일교에서 이 결혼을 '복귀섭리'에 있어서 가장 중대한 사건으로 믿고 있다. '참어머니'라고 부르는 한학자와 사이에선 12명의 자녀를 낳았는데 그들을 모두 '죄 없는 자녀'라고 한다.
통일교는 어떻게 생겨났나
19살에 서울에 온 문교주는 예수교회 소속 명수대교회와 북아현동에 있던 오순절계통의 교회를 전전하며 열광적 신비주의에 빠졌다. 그는 1945년 해방이 되자 김백문이 경영하는 이스라엘 수도원에 들어가 처음 '기독교 근본원리'를 접하게 되었다.
이스라엘 수도원의 생활 6개월 동안 문교주는 그 계통의 상도동집합소에 예배 인도자로 파송을 받기도 했다.
1946년6월, 배운 '원리'를 전파하러 단신 월북한 그는 8월에 사회혼란죄로 구속되었다. 모일 때마다 울고, 방언을 한다하며 떠들어대니 문교주를 비롯한 간부들을 대동보안서에서 구속한 것이다. 그후 일시 석방되었으나 다시 어린양 혼인사건으로 평양형무소에 투옥되었다가 흥남교도소에서 국군 입성으로 1950년10월14일 풀려나게 되었다.
남하하는 국군을 따라 부산으로 내려 온 그는 범내골에 토담집을 짓고 부두 막노동을 하며 1951년 8월부터 포교활동은 시작했다. 1953년 12월 경성제대 예과를 다닌 적이 있는 유호원이 입교하여 문교주의 원리노트를 「원리해설」과「원리강론」으로 집필하였다. 김백문의 원리는 문선명의 입을 거쳐 유호원에 의해 체계화되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이 원리강론은 김건, 안창성의 도움으로 보완되었으며 전직 의사였던 이상현의 도움으로 반공사상이 이창환에 의해 통일사상이 각각 접목되었다. 이와 같이 여러 가지 사상들이 이론들이 혼합된 원리강론은 이대교수였던 김영운에 의해「신의 원리」란 제목으로 영역되어 서방세계로 퍼지기 시작했다.
통일교는 원리강론을 성약이라 하고 구약과 신약을 완성하여 지금은 성약시대라 하며 유혹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의 원리강론은 전편 7장, 후편 6장으로 내용은 창조론, 타락론, 종말론, 재림론, 부활론, 예정론, 기독론, 복귀론으로 시종일관 문교주가 재림주라는 대전제 밑에서 음양설 정감록의 허황한 숫자풀이로 채워져 있다. 성경과는 거리가 먼 혼합주의 사이비 종파임을 여실히 알 수 있다. 허황된 사상으로 교인들을 유혹하고 자신을 신의 위치에 올려놓을 뿐 아니라 용납할 수 없는 사이비성을 띤 그들의 사상은 기독교일 수도 없으며 인간두뇌로 짜낸 혼합종교의 사상일 뿐이다.
음양의 이치로 심리를 현혹시켜 통일사상을 갖게 하고 세계를 통일하여 부와 권력과 영화를 꿈꾸는 통일교에 대해 성도는 그들의 정체를 자세히 살피며 진리에 굳게 서야 할 것이다. 말세에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하여도 믿지도 말고 나가지도 말라 하신 마 24:23절 이하의 주님의 말씀에 유의하여 믿음과 중심을 굳게 지켜 미혹됨이 없어야 할 것이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타락론
통일교는 윈리강론에서 선악과와 생명과를 전혀 다른 의미로 설명한다. 즉 선악과는 여자요 생명과는 남자라고 아전인수격으로 억지 해석을 하는 것이다.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악의 피와 살을 받아 혈통으로 번식된 죄악사회를 이루었다면서 하와는 뱀과 성적관계를 맺었다고 한다. 성적으로 타락한 인간의 구원을 위해 재림한 메시야와 육체관계를 맺어서 혈통교환을 해야 한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문교주는 재림주 출현과 피가름 의식, 혼음은 이 같은 타락론을 근거로 전개된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타락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렸다는 데서 출발한다. 살아계신 하나님보다 사탄을 믿은 것, 그리고 하나님보다 높아지려는 교만이 타락의 시작이었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은 영적인 타락이었는데 통일교는 육체적 타락으로 그것도 원색적이며 본능적인 성의 타락으로 전락시킨 것이다. 통일교의 타락론을 받아들일 때 영의 멸망은 물론 육체적 멸망은 필연적이다. 요즘 만연하고 있는 AIDS는 이 같은 이단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아니라고 누가 말하겠는가?
돌아올 수 없는 복귀원리
통일교에서 말하는 복귀원리란 바로 구원론을 말한다. 사람의 주관 아래 있는 인간을 사탄에게서 분리하여 타락 이전의 인간으로 복귀하려면 원죄를 벗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원리를 벗는 수단이 참 기괴하다. 이 원죄는 참부모로 오는 메시야에 의하여 선한 혈통으로 교환되어야 벗을 수 있다는 것이다. 소위 참부모인 문교주 부부를 통하여 선의 사람으로 복귀하려는 통일교의 주장은 구속의 과정을 철저히 인간 중심의 것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그들의 복귀원리를 따라가면 돌아오지 않는 길을 갈 것은 뻔하다.
성경의 구원론은 인간의 철저한 무능력을 바탕으로 시작한다. 로마서 3장27절은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 없으니라 무슨 법으로나 행위로가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또 갈라디아서 2장16절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명확하게 말하고 있다. 성경의 구원론은 은총에 근거한 그리스도의 대속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기독론
통일교의 기독론은 전통적인 교회의 그것과 전혀 다르다. 통일교는 예수를 순전히 인간으로 본다. 통일신학은 사가랴가 예수의 실재 아버지라면서 그리스도를 부정모혈로 난 인간으로 전락시켜 버렸다. 또 그들은 하나님 아버지만 계신 게 아니라 하나님 어머니도 있다는 망발을 하고 있다. 또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는 완전한 구원을 이루지 못하고 반쪽만 이루었다면서 십자가는 실패작이라고 한다.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과 죽음, 부활을 부인하는 통일교는 기독교가 아니라 이단도 정통이단인 것이다. 복음의 중심은 그리스도의 탄생과 죽으심 그리고 부활인 것이다. 에베소서 2장16절은 십자가의 구원을 분명히 증거하고 있으며 그외 무수한 성경의 증거들이 십자가와 부활을 말하고 있음을 기억하자(히9:22,요1:19,요4:1,벧전2:20).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무익한 것으로 만드는 무리에게 지옥의 형벌밖엔 돌아갈 게 없다.
재림론
통일교는 재림주가 구름을 타고 오는 게 아니라 여인의 몸에서 난 인간의 지도자로 와서 육신을 가진 여성을 아내로 맞아 가정을 이룬다고 한다. 제 3의 아담으로 온 재림주는 이상적 가정을 이루어 지상천국을 이룬다는 데 그 장소가 또 걸작이다.
다름이 아니라 재림의 장소는 동방의 해돋는 나라인 한국이라고 한다. 이는 요한계시록의 해돋는 곳을 완전히 제멋대로 해석한 웃기는 소리이다. 또한 재림의 시기는 1차 세계대전 직후부터 시작되었는데 이런 재림론에서 우리는 문교주의 출생과 출생지를 뒷받침하기 위해 억지로 끼어맞춘 흔적을 역력히 볼 수 있다(문교주의 출생과 통일교의 역사는 월간고신 6월호에 상세히 기술했다).
맺는 말
통일교는 그외에도 신론, 창조론, 인간론, 영계론, 부활론, 종말론, 성경관, 예정론, 성령론, 중생론, 죄론 등에 걸쳐 방대하게 윈리를 세워놓고 있다. 그렇지만 그 원리란 게 자세히 살펴보면 무속신앙과 억지를 성경에 끼워맞춘 것임을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복음을 육욕으로 전락시킨 통일교가 학계와 산업계, 종교계에 발을 뻗치고 있는 이때 마태복음24:4절의 말씀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듣지 말라" 너희는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명심하자.
<예장 고신>
15. JMS(정명석)

▲자칭 메시아 정명석 씨. 현재 정씨의 단체는 '기독교복음선교회'로 명칭을 바꿨다.
신도 10만여 명을 자랑하던 JMS가 과연 몰락할 것인가. 지난 해(99년) 초 SBS, MBC TV 등의 뉴스와 다큐프로그램을 통해 정명석 교주의 성추행 문제 등이 집중 조명되면서 JMS는 장안의 화제 거리가 됐다. '구원의 문인가, 타락의 덫인가'라는 제목의 SBS TV<그것이 알고싶다> 프로에서 정명석 교주의 문제점을 집중적으로 다룬 것이 결정적이었다. 문제가 불거지자, 정씨는 해외로 잠적했다. 그러나 SBS는 홍콩에 있는 정씨를 찾아내는 후속보도물을 내보내기도 했다. 이때 정씨는 방송 앞에 떳떳하지 못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이 일 후, JMS 내부에는 적지 않은 요동이 일었다. JMS가 개혁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내부에서 들리기도 했다. 개혁과 관련, 정명석 씨의 친형(예장 통합측 목사)과 JMS 실세들의 바쁜 움직임이 포착되기도 했다. 또한 이 단체가 분리되거나 몰락할 것이라는 극단적인 추측이 나돌기도 했다. 몇몇 핵심 신도들이 JMS를 탈퇴하는 모습도 있었다. 또한 서울대의 '오손도손', 인하대의 'FAS' 등 주요 대학에서 JMS 관련 동아리가 제명되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 JMS 내부에서 돌출 상황이 발생했다. JMS와 결별을 선언한다며 기독교복음선교회(가칭)라는 단체가 지난 해 10월 대전에서 출범했다. 10명의 교역자가 주동이 되어 소위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그러나 아직 그 단체의 속내가 무엇인지 분명하지는 않다.
'교주 신격화', '교주 성추행' 등 교계 안팎으로 끊임없이 문제를 야기시키는 JMS. 과연 어떤 모습으로 변화될 것인가. 우리의 바람이라면, 먼저 교주 정씨의 철저한 회개일 것이다.
교조 정명석

▲정명석 씨가 태어났다는 생가
1945년 충남 금산에서 정팔성의 4남 3녀중 세째 아들로 태어나 초등학교를 졸업, 진학을 포기하고 용문산 기도원에서 20년간 있으면서 그의 젊음을 보냈다. 17세 때에 하나님으로부터 음성을 듣고 은사와 사명을 받았다고 한다(요셉이 17세에 애굽에 팔림과 연관시킴). 그러나 이것은 사탄의 작전이었다. 그 이유는 그가 하산하여 교회를 찾는 것이 아니라 고향에 있는 통일교에 입교하였다는 것이다. 그는 그 소속 기관인 '국제승공연합회' 강사요원으로 반공 활동과 통일교 포교활동을 2년간 하였다. 그는 1980년 통일교를 떠나 몇몇 추종자와 함께 서울 신촌에서 선교회를 만들어 대학생과 청년들을 대상으로 포교활동을 벌려 드디어 애천교를 조직하였다.
82년 5월에 강남구 삼선동 130-1에 빌딩 5층을 세내어 '대한예수교장로회 애천교회'라는 간판을 걸고 본격적인 포교활동에 들어갔다.
그는 신학교에 다닌 바도 없지만 83년 11월 26일에 예장감리회웨슬레신학교측에 의해 자신의 추종자 김시희, 안구현, 서인순, 김형만 등과 함께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는 목사가 되어 예감웨슬레측 총회임원으로 활동을 했다.
애천교회가 이단으로 종교잡지에 고발되자 천성교회, 명성교회, 영동교회 등으로 바꾸어가며 예수교대한감리회 교단 간판을 내걸고 기성교인들을 미혹하다가 낙성대 감리교회(현재는 신촌, 창동, 성내 등 여러 지역으로 분산되어 있다)의 간판을 내걸고 있다고 한다. 86년경에는 전국 50여 개 대학에 자신의 이름 명석의 영문 첫 자를 따서 M.S(Morning Star) 서클을 만들어 등록하고 교도소와 직장에서까지 포교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는 87년에 전국 작은 도시까지 지도자를 파송하여 중·고·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포교하기에 이른 것이다.
교리와 비판
엘리야복음선교회 박명호가 안식교의 교리를 약간 변형시켰다고 하면, JMS은 문선명의 통일교 원리강론의 중요부분을 표절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들은 성경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30개론'이란 교리를 만들어 교육을 시켜 세뇌하고 있다.
이들은 교주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게 되고 이들은 정명석을 위하여 직접 포교활동에 나서게 된다. 이 후에도 그들은 계속 30개론을 재교육을 받으며 수련회 등을 통하여 철저히 세뇌를 당한다.
이들은 교회에 다니는 학생이나 청년들을 상대로 성경토론을 벌이거나 "우리 학교에 MS서클이 생겼는데 대단하더라"는 식으로 유인하여 미혹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들의 30개론이 어떤 것인지에 대하여 살펴보자. 30개론은 4단계로 구분된다.
* 제 1단계 입문편(5개론)
1) 성경을 보는 관 2) 태양아 머무르라 3) 엘리야의 까마귀 밥 4) 7단계 법칙(광계물, 생물계, 물질계, 땅, 우주, 인간, 하나님과 인간) 5) 삼분설
* 제 2단계 초급(7개론)
6) 비유론 7) 불의 개념 8) 말세론 9) 무지속의 상극세계 10) 홍수 비판 11) 이단의 개념 12) 예정
* 제 3단계 중급(8개론)
13) 중심인물론 14) 부활론 15) 사탄론 16) 가인의 성격 17) 영계론 18) 계시론 19) 메시아 자격론 20) 지상천국론
* 제 4단계 고급(10개론)
21) 엘리야와 예수 재림, 승천 실상비교 22) 예수님과 세례요한 관계 사명 비교 23) 유대교와 기독교의 교리비교 24) 두 감람나무와 두 증인 25) 한 때, 두 때, 반 때 26) 창조 목적 27) 구원론 28) 타락론 29) 재림론 30) 역사
위의 30개론은 우리가 볼 때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황당무계한 것이나 성경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미혹 당할 정도로 합리적이고 체계적이라는 것이다. 이제 그들의 교리중에 중요한 것을 몇 가지 소개하면서 비판하고자 한다.
1. 성경을 보는 관
여기서 그들은 주장하기를 성경은 비유를 잘 풀어야 그 속에 담겨져 있는 하늘의 비밀과 하나님의 천지창조 목적과 인간의 삶의 목적도 알 수 있다. 그런데 기성교회는 성경의 시대성이나 과학성을 고려하지 않고 문자와 교리에 얽매여 획일적으로 해석하므로 비유와 상징으로 기록된 성경을 풀 수 없다고 주장을 한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그 이유는 성경을 제 유리한 대로 해석하기 위해서이다. 이들은 성경을 문자적으로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성경은 비유도 있으나 문자적으로 기록된 것이 더 많으며 성경은 성경이 해석한다는 것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2. 태양아 머무르라(수 10:12)
수 10:12에 있는 이스라엘의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태양이 머물렀다는 것을 문자적으로 믿는다고 안타깝게 생각한다. 지구가 돌고 있는 것이 명확한데 지금도 태양이 도는 것으로 알았던 그 시대의 천동설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한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통용 용어로 기록되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태양이 진다" "뜬다" "머문다"고 표현하고 있지 않는가? 그들의 표현대로라면 지동설이 확인된 지금에는 "태양이 떠오른다"고 하지 않고 "지구가 동쪽으로 돌아 태양이 보이는구나"라고 말하는가?
3. 엘리야와 까마귀 밥(왕상 17:1∼7)
그릿 시냇가에 숨어 있는 엘리야에게 까마귀가 물어주었던 고기와 떡은 바알과 아세라에게 바쳐진 우상 제물로 불결한 음식이었는데도 기독교에서는 그것도 모르고 하나님이 주신 기적의 음식으로 믿는다고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자신들의 추측으로 단정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기적과 섭리를 믿지 않는 합리적인 사고의 산물이다. 성경에 분명히 하나님께서 까마귀를 시켜 네게 먹이도록 하겠다고 하신 대로 까마귀가 떡과 고기를 물어다 주었다(왕상 17:2∼4). 하나님께서 물어다 주도록 하실 때에 우상의 제단에 있는 더러운 것을 가져다 가게 했겠는가?
4. 무지속에 상극세계(대하 35:18∼26)
애굽왕 느고가 하나님의 명을 따라 유브라데 강가의 갈그미스를 칠려고 하는데 유다의 요시야왕이 무지하여 느고를 방해하므로 하나님의 뜻을 어겨 죽고 세 나라가 다 바벨론에게 망했다. 이것은 오늘날의 시대적 배경을 깨우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즉 애굽은 통일교로, 유다는 기독교로, 갈그미스는 북괴, 바벨론은 애천교 정명석이라고 한다. 이러한 것이 이단들의 상투적인 성경 해석법이다. 얼마나 아전인수격인가? 자기들처럼 해석한다면 바벨론도 결국 멸망을 당하는데 자기들도 멸망당할 것을 전제하고 있는가를 묻고 싶다.
5. 타락론
뱀이 꼬여 먹게 한 선악과는 입으로 먹는 과일이 아니라 금단의 열매인 하와의 정조를 의미하는 것으로 '따먹었다'는 것은 마귀와 성적관계를 맺은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것이 영적 타락이고 육적 타락은 타락한 하와와 아담이 부부관계를 맺음으로 되었다고 한다.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예수님이 오셨으나 세례요한이 책임을 다하지 못하므로 예수님은 사람의 영만 살리고 육은 살리지 못한 채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실패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첫 재림주는 문선명으로 1978년까지이고 그 이후로는 정명석 자신이 재림주의 사명을 받았다고 한다.
이러한 이론은 통일교의 이론으로 문선명 자신이 재림주로 가장하기 위하여 만들어 낸 엉터리 교리이다. 이것을 통하여 정명석 자신이 재림주가 되기 위한 억지 수단인 것이다. 성경은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여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범죄 타락한 것을 말하고 있다. 성경 어디에도 하와의 타락을 말하고 있지는 않다. 그리고 천사나 마귀는 영물로 인간과 성적 관계를 맺을 수 없는 것이다.
6. 기독론과 구원론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본래의 뜻이 아니다. 세례요한의 시기와 의심 때문에 영만 구원하고 죽었다는 것이다. 구원하지 못한 육을 구원키 위하여 메시아가 왔는데 그 자격은 하나님과 심정이 일치된 자,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자, 진리를 아는 자, 창조의 목적을 가르치고 이루는 자 등 30가지의 메시아 자격 요건을 말한다(메시아 자격론). 이것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두 감람나무와 두 증인에서 하나님께서 시대마다 그 시대의 중심인물을 선택하셔서 구원을 이루셨다는 것이다. 즉 아담과 하와, 야곱과 에서, 세례 요한과 예수, 루터와 칼빈 등 두 사람씩 짝을 이루어 역사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재림주의 사명도 두 사람으로서 1945년부터 1978년 6월까지는 문선명 씨가 1978년 6월 이후에는 정명석 자신이 재림주의 권한을 이어 받아 역사하다가 1999년 7월 14일에 자신이 세상을 심판한다는 것이다.
주님은 분명히 죄인을 위하여 죽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실 것이 예언되었고(사 53장), 예수님께서도 친히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주시기 위하여 오셨다(막 10:45, 히 19:28, 갈 1:4, 딛 2:4, 요 10:15)라고 말씀하셨다. 죄는 아담의 불순종으로 이 세상에 들어왔고 이 죄를 사함받게 하기 위하여는 무죄한 자가 피를 흘리고 죽어야 하는데 이 일을 위하여 무죄하신 주님께서 속죄양이 되어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없이해 주신 것이다(히 10:11). 그러므로 "다른 이로서는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이름을 주신 일이 없다"고 하셨고(행 4:12) 예수를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행 16:31).
7. 재림론
기독교에서는 예수께서 공중으로부터 육신으로 구름을 타고 오신다고 믿고 있었으나 사실은 엘리야의 영이 세례요한에게 재림하고 모세의 영이 예수께 재림하고 재림의 주는 예수님이 다시 육신으로 오시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인 가운데서 시대적 중심인물을 선택하여 그에게 예수님이 재림하여 협조하므로 재림주의 사명을 다하게 된다는 것이다. 공중을 하나님 편에서 보면 지구이고 구름은 기독교인으로 재림주는 기독교인 가운데서 온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성경을 제 마음대로 해석하는 비판할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이다.
8. 삼위일체론
예수는 그리스도가 아니고 평범한 사람이었는데 그가 자라는 과정에서 모세의 영이 그에게 재림하고 부활해서 그리스도가 되었다고 주장을 하며 성령은 성부의 부인으로 성부께서 파장을 보내어 생명체를 낳는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이단중에 이단으로 윤회설을 변형시켜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사교이다.
9. 불의 개념과 말세론
초급 7, 8번에 보면 기독교인들은 불로 말세심판을 한다고 믿고 있으나 불이 아니고 어떤 무형인데 약 3:6과 렘 5:14보면 불은 말씀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로 심판한다는 것은 말씀에 의하여 새로운 세계로 전환되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정명석 자신이 말씀이라는 것을 정당화하여 자신이 말세심판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성경말씀을 비유나 상징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이유를 발견하게 된다. 예수님은 분명히 불로써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셨고(마 13:40, 25:41, 눅 17:29), 베드로도 불로 심판할 것을 분명히 예언했으며(벧후 3:8∼12), 새하늘과 새땅으로 된 천국이 있음도 말씀하고 있다(벧후 3:13, 계 21:1∼22).
10. 이단의 개념
그들은 주장하기를 이단은 시대와 장소와 역사에 따라 틀리며 과거의 이단이 현재의 정통이 되기도 하며 미래에는 다시 이단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가 더 주님과 가까이 있느냐가 중요하므로 함부로 이단이라고 판단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 시대에 보냄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이단이 되고 죄인이 된다"고 말하므로 정명석 자신이 이 시대에 보냄을 받았으므로 그를 믿지 아니하는 모든 기독교 신자가 다 이단의 무리가 된다는 것이다.
이단은 시대나 역사나 장소에 따라 이단이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표준인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어긋나는 것이 이단이다. 다시 말하면 성경의 진리를 왜곡하여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신성이나 인성을 부인하거나, 말씀을 가감하거나, 예수님 외에 구주를 주장하거나, 예수님의 구주되시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 등이 이단이다.
정명석을 이 시대에 보냄 받은 자라는 것을 내세워 그를 믿지 않으면 이단이라 하는 것은 유치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사도 요한은 분명히 밝히기를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뇨?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뇨? 아들과 아버지를 부인하는 그가 적 그리스도니"(요일 2:22)라고 하였다.
이외에도 정명석은 자신이 수시로 영계(靈界)를 드나들기 때문에 이 세상에는 자신이 그 나라에 대해서 제일 많이 안다고 허풍을 떨고 있다.
구원에 있어서도 기독교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자들은 죽어 지옥 가는 것이 아니라 연옥(음부, 선영계)에 가서 복음을 듣게 되며 영들끼리 복음을 전파할 수 있다고 주장을 하면서 이 시대는 정명석 선생을 중심하여 말씀으로 구원을 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용문산 나운몽 씨의 영향을 다분히 받은 것으로 정명석은 나운몽, 문선명, 기독교 교리를 혼합하여 만든 이단이다.
결론
이상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애천교는 문선명과 나운몽의 영향을 받은 악령의 집단으로 망령되고 헛된 30개론을 토대로 하여 젊은 대학생들을 미혹하는 사교이다. 그러나 이들은 기독교의 이름을 내걸고 특히 여자대학생들을 미혹하고 있다. 성경을 아는 신자가 볼 때는 단숨에 이단인 것이 드러나고 있으나 소위 지성인으로 자처하는 대학생들이 많이 미혹되고 있다는 데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자녀들이 어떤 경우에서라도 이단의 집단에 아예 참석치 않도록 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 아닐 수 없다(시 1편). 대부분의 이단들은 악령들에게 속아서 역사하고 있으며 그들에게는 악령에 의한 마력이 있어서 사람들을 미혹하고 끄는 힘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도 방언, 방서, 초혼, 입신 등의 신비를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예장 고신>
16. 박윤식(평강제일교회, 구. 대성교회)
'박윤식'이라는 이름이 부끄러운가. 평강제일교회는 자신의 주보에 '박윤식'이라는 이름을 고의로 누락시켰다. 그 대신 '원로 목사'라고만 기록되어 있다. 이름 자체를 '원로'라고 바꾼 것인지는 모르지만, 아마 위치를 서울 오류동으로 이전하면서 그 지역 새신자를 염두에 둔 비상 조치인 듯하다. 스스로 당당하지 못한 행동이다. 박씨는 현 '성경보수'라는 교단 하에 그리고 평강제일교회에 꼭 숨어있는 모양새다. 그렇다고 활동을 안 하는 것도 아니다. 주일 설교를 맡기도 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총회 때도 모습을 드러낸다. 예장 통합은 이미(91년) 그를 이단으로 규정해 놓았다. 박씨가 자신을 '말씀의 아버지'라고 했다는 것이 이단 규정의 주된 이유다.
박윤식 씨는 대성교회를 개척했는데 1964년 노량진 전모집사의 집에서 가정집회 형태로 시작되었다. 원효로로 이전했다가 1969년 대방동에 예배당을 신축하여 일석교회(一石敎會)라 이름 붙였다. 1971년 11월 신림동을 거쳐, 1977년 7월 노량진 전신전화국 앞에 자리잡은 후 대성교회(大聲敎會)로 바꾸었다. 박씨가 원로목사로 있는 대성교회의 현재 위치는 서울 구로구 오류동으로써 구 공군정보부대 부지이다. 1992년 5월에 이전했다.
박씨는 예장 호헌 소속으로 있다가 1982년 예장 합동보수 서울남노회로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예장 합동보수는 1979년 예장 합동의 분열과정에서 파생된 교단으로 볼 수 있다. 박씨는 1991년 이단으로 규정된 후에 대성교회 원로목사라는 신분으로 예장 합동보수의 총회장을 지냈다(제 77회기, 1992∼1993년). 이에 따라 본 교단(예장 통합) 서울동노회에서는 '본 총회가 이미 이단으로 규정한 박윤식 씨가 한기총 및 연합기관에 활동하고 있음을 보고 총회가 해 기관에 통보하여 박씨를 제명하도록 해달라'는 헌의를 한 바도 있다(제 78회 총회록 정치부 보고 p.94).
1994년 2월 18일 밤 국제종교문제연구소 소장인 탁명환 씨가 피습을 받아 숨졌는데, 그 '범인'이 문제의 대성교회 운전사 임모씨로 밝혀져 사회에 큰 충격을 던져 주었다. 뿐만 아니라 이 교회 관계자들이 '범행'을 조직적으로 은폐하려다 들통나 목사와 장로가 구속되었다. 탁소장은 박윤식 씨의 이단성을 폭로해왔는데 임모씨는 이에 분개해서 일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이단시비에 있어서 박씨를 옹호해 오던 합동보수 총회에서는 이런 사건이 터지자 뒤늦게 대성교회 당회장 김모씨는 해임, 사건 연루자는 면직 처리하라고 소속 노회에 지시했고, 대성교회는 동 총회를 탈퇴할 것을 결의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동 총회의 '대성교회대책위원회'는 '대성교회가 사회 교회 교단에 큰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해 총회서 지시한 내용을 이행치 않았기 때문에 제명키로 했다'고 밝혔다. 대성교회는 평강제일교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연구 보고
1. 예수께서 이 땅에서 죽으신 것은 하나님의 영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함으로 기독론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테이프 '영.혼.육' 1981. 8. 6.).
2. 타락론의 측면에서 볼 때, 하와가 뱀과 성관계를 맺어 가인을 낳았다고 함으로 통일교와 같은 성적 모티브를 가졌으며 특히 타락 후에 인간에게 월경이 생겼다고 하며 이 월경하는 여인의 입장에서 탈출하는 것이 구원이라고 함으로 정통적 타락관과 배치된다(테이프 '월경하는 여인의 입장을 탈출하자', '씨앗 속임', [목회와 신학] 1991년 2월호).
3. 박윤식 씨는 진리는 사망이요 말씀은 생명이란 틀을 가지고 있는데, 정통교회마저(타종교도) 진리차원으로서 이를 벗어나 말씀 차원에 이르지 못하면 결국 사망이라 함으로써 정통교회를 부정하는 경향이 있다([대성]지 1982년, [말씀승리가] 1971년, [내 주께 찬양] 1981년, 기타 테이프).
4. 박윤식 씨는 자신이 지리산에서 3년 6개월 동안 기도하다가 비밀말씀을 받았다고 하여 자신을 말씀의 아버지라고 하고 있으며 이것을 시나 찬송가로 노래하고 있는 것은 박씨를 신격화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테이프, [말씀승리가], [내 주께 찬양]).
5. 박윤식 씨는 주로 자신의 설교는 지리산에서 받은 계시임을 말하고 그 비밀은 주석에도 없다는 등의 표현을 하는 것은 성경계시 외에 직통계시를 말하는 것으로 성경계시를 왜곡시키거나 부정함으로 정통적 계시관과 위배된다(수많은 테이프).
6. 박윤식 씨의 창조론을 보면 에덴동산은 인간의 마음을 가리킨다고 하며 또한 아담은 미생물로부터 발아된 생명의 맨 윗가지에 핀 꽃으로서, 창조적 진화한 상향의 끝이 아담의 생령이고, 생령이 하향한 밑바닥의 근저는 물질이라 함으로 진화론적 창조론을 가지고 있다(테이프 "왜 아담을 흙으로 창조했나?", 기타 테이프).
7. 박윤식 씨가 지리산에서 3년 6개월 7일 동안 받았다는 위와 같은 계시들은 통일교 출신인 변찬린 씨가 썼던 [성경의 원리]로부터 대부분 인용 표절된 것이었다(변찬린 씨가 83년 1월 18일 보낸 편지와 기타 다수의 테이프 리스트).
8. 연구결론: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박윤식 씨(대성교회)는 기독론, 타락관, 계시관, 창조론 등 각 측면에서 볼 때 이단성이 명백히 밝혀졌다.
<예장 통합>
17. 안식교

▲ 서울 청량리역 인근에 위치한 안식교회
이단 단체 소속의 기관과 제품들은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 혹자는 상업적인 것인데 어떠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것으로 인해 이단 단체가 성장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전국에 있는 '위생병원'을 비롯해서, 위생치과병원, 삼육식품, 삼육대학교, 삼육대학교 신학대학원, 삼육간호보건대학, 서울삼육초등학교, 서울삼육중학교, 부산삼육초등학교, 한국삼육고등학교, 호남삼육중고등학교, 세 천사학교, 미션네트워크 21C, 재림신문, 영원한 복음, 나누리(서울봉화교회), 건강복음연구회, BACK TO EDEN(여수요양원), 무지개 청소년 오케스트라 등이 안식교 관련 기관들이다.

▲ 안식교 유관 단체인 '위생병원'.
'여운사'라는 출판사(대표 김경선)가 안식교 옹호 서적을 버젓이 내고 있다. 안식교의 교리서인 <각 시대의 대쟁투>를 <기독교를 조각한 불칼>이란 제목으로, <정로의 계단>이란 책을 <그리스도께 이르는 계단>이란 제목으로 둔갑시켜 발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외에도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성경만이 판단의 기준이다>, <진리의 등불은 꺼지지 않는다>는 서적으로 안식교를 홍보하고 있다. 주의해야 할 서적들이다.
안식교의 주장과 비판
(1) 권위
안식교 교인들은 성경을 하나님의 영감된 계시로 인정하며 신앙과 행위의 유일한 법칙임을 믿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표현상으로는 성경이 유일한 신앙의 척도임을 인정하고 있다.
"우리는 이렇게 믿는다. 곧 모든 신학상 신조들은 반드시 살아있는 말씀으로 사실에 근거하여 그 진리를 판단하고 사실에 의하여 통과하지 못하거나 또는 그 교훈과 조화되지 않는 것은 무척이나 배격해야 된다." 그러나 이들은 실제로 화이트 여사의 말과 저서 그리고 예언들을 성경과 동일한 권위로 인식하고 있다. 안식교인들은 화이트 여사가 특별한 은사를 받았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녀를 여선지자로 불렀다. 아더 맥스웰(Arthur S. Maxwel)은 말하기를 "많은 사람들이 화이트 부인은 사람의 지혜보다 더 우월하게 말하는 것으로 믿는다. 그가 쓴 책들 가운데 한 권을 친히 읽어보는 것이 좋겠다."라고 고백한다.
더군다나 화이트 여사의 쓴 책들이 성경과 같이 권위있는 것으로 믿는 그들의 주장은 그들이 영감되었다는 표현으로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은 화이트 여사의 저술은 오류가 없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화이트 여사 자신의 고백과는 판이하게 차이가 난다. 화이트 여사는 자신이 본 것을 다 기록할 수 없었다고 하며 이로 인해 그의 기록이 오류가 있음을 자인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식교인들은 사실 안식교의 권위의 진원을 1957년에 발간한 '안식교 교리 문답집'(Seventh-day Adventists Answer Questions on Doctrine)에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 책은 안식교의 교리의 총체로서 그들의 신앙과 생활규범이라 할 수 있다. 이제 교리 문답집에 나타난 그들의 주장과 모순점을 검토해 보자.
(2) 기독교
교회사적으로 이단과 정통을 구별하는데 시금석이 되었던 가장 중요한 잣대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에 관한 것이었다. 안식교도들은 교리문답서 2장에서 그리스도에 관한 교리를 다룬다. 여기서 그들은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성부와 같은 성품과 본질을 지니고 계시니 그는 바로 하나님이시다. 그는 신성을 보유하면서 또 사람의 성품을 취하고 사람과 같이 세상에서 사셨고 우리에게 의로운 원리를 실천해서 모본을 보여주셨고 큰 이적을 많이 행하셔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시범해 보이셨으며 우리 죄 때문에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셨고 아버지께로 올라 가셨고 또 거기에서 우리의 대언자로 항상 살고 계신다."
그런데 이러한 고백 속에서 피상적으로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이 인정되는 것처럼 나타내 보이지만 면밀한 연구를 하면 결국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개념은 역대 기독교가 이해하는 것과는 다르게 나타난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그리스도께서 성육신 하시긴 했지만 인간의 죄스런 성품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인간의 몸을 입었기 때문에 죄까지도 그대로 지니고 있다는 이론이다. 즉 그리스도가 죄악적 성품을 소유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성경은 이와는 정반대로 가르치고 있다. 예수께서 성령으로 잉태되셨고, 거룩한 아이로 잉태되셨다(눅 1:35). 그래서 그는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벧전 1:19)으로 불렀다. 사도 요한은 이점을 단언했다.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요1서 3:5) 안식교도들은 그리스도가 시험 당하기 위하여 타락한 인간의 성품을 소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 점은 정통교회에서 그리스도의 성품은 아담이 타락하기 이전의 성품과 같다는 주장에 맞서는 행위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온전한 인성을 파괴시키는 주장이라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성품에 대한 잘못된 견해와 더불어 기독론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그들의 속죄론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므로 그의 구속의 사업이 시작되었지 완성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대속의 죽음을 십자가에서 하신 것은 우리의 죄에 대한 일시적인 용서를 말함이요, 우리의 죄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도말되는 것도 아니며, 성령으로 중생되는 것도 아니며, 그리스도의 보혈로 속죄함을 받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이 문제 역시 그들의 예언의 불발에서부터 시작된다. 밀러가 세상의 종말과 그리스도의 재림을 예언했으나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실패하였다. 그의 후계자 에드슨은 밀러의 빗나간 예언을 그리스도가 하늘 지성소에 들어간 것이라고 해석하므로 예언의 성취를 만들어 낸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별안간 그의 마음에 이런 생각이 솟아올랐다. 구약 시대의 성소와 같이 천국 지성소에서도 그리스도께서 두 가지로 일하신다. 그가 첫날에는 저 하늘에 있는 성소의 이층에 들어가셔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시기 전에 거기에 있는 지성소에서 역사하시고 계신다."
이러한 주장의 흐름은 화이트 여사에 와서는 구체적으로 그리스도가 지성소서 조사심판해서 속죄함을 이루신다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이루신 구속의 은총으로 속죄가 충분하지 못함을 인정하는 논리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리스도가 대속의 죽음을 죽으신 결과는 우리의 죄에 대한 일시적인 용서요 또 우리의 죄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완전히 도말되는 것도 아니며 성령으로 말미암은 중생받음으로도 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율법이 표준이므로 그것으로 인간은 그의 성품과 생활이 조사 심판대에서 검토된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심사에서 심사결과가 믿음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요, 율법을 지킨 결과에 따라 결정된다면, 안식교인들은 진정으로 그리스도의 보혈을 구원의 유일한 근거로 인정한다고는 볼 수 없다.
안식교도들에 의하면 분명히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으로 모든 죄사함을 믿음으로 받는 것이 아니다. 지성소에서 하나님이 친히 의롭다고 하시는 단계는 그리스도가 심사해서 심판하므로 가능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미 믿은 자도 구원에서 제외될 수 있다. 그들은 분명히 말한다. "누가 회개하지 않고 사죄함을 받지 못했으므로 그의 죄들이 기록에 남아 있을 때에는 그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도말되고 그의 선행의 기록은 하나님의 기념책에서 지워버리게 될 것이다."
그들의 주장을 종합해 보면 결국 사람이 아무리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혜를 믿어도 죽은 후에야 구원의 여부를 알 수 있으며, 그것은 예수의 조사 심판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한 번 구원을 얻은 사람도 계속해서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면 다시 구원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음으로 우리의 구원의 조건이 충족되며, 한 번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는 단번에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가르친다.
(3) 안식일과 구원
안식일에 관한 문제는 안식교인들에게 가장 첨예한 이슈이다. 교리문답 제 5장에서 토요일 안식일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들은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세상을 창조하시고 이레 되는 날 쉬셨으므로 제 칠일 안식일은 후에 변경될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의 안식일 계명으로 항상 남아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로마교회의 교황권으로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예배 보는 날짜가 바뀌었다고 한다. 그리고 일요일은 원래 이방인들이 태양을 섬기는 우상의 날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요일날 예배를 드리는 것은 이중죄를 짓는다고 보았다. 하나는 안식일의 예배를 어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상숭배의 날을 예배일로 정해 우상을 섬기는 죄에 동참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종교개혁을 치른 개신교에서도 여전히 일요일을 안식일로 지킴으로 종교개혁을 완성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제 4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일요일 예배드리는 것을 그리스도가 정죄의 근거로 삼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그들 나름대로의 지나친 사변에 불과하다. 안식일은 토요일로 영원히 지킬 지정된 창조기념의 날은 아니었다. 그날은 창조사역의 안식일이었다. 그래서 신약시대에 안식일을 첫째 날(일요일)로 변경한 것은 그만큼 가변성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교황이 고친 것이 아니라 이미 신약시대에 벌써 일요일을 예배일로 정해 놓고 있었다. 그 예를 들면 신약시대의 교회의 전통을 전승한 교부들의 문헌 속에서 초지일관 첫날에 예배를 드린 언급이 풍부하게 사료로 제시되고 있다. 그들은 안디옥의 감독이었던 익나투스, 순자 저스틴, 이레니우스, 터툴리안, 오리겐 그리고 유세 비오 등이었다. 이들 중 아무도 안식일을 토요일로 지켜야한다고 주장한 자는 없다. 분명히 창세로부터 그리스도의 부활 때까지는 한 주일의 첫째 날로 바뀌었던 것이다.
게할더스 보스는, "안식은 인간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이다. 그것은 구약에서나 신약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옛 언약은 일어날 메시야의 사역을 내다보는 것이므로 당연히 일하는 날들이 먼저 있고 안식이 제 칠일에 있었다. 그러나 새 언약 아래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이루어 놓으신 사역을 되돌아본다. 그러므로 먼저 그리스도께서 이룩하신 안식을 축하하는 원칙이고, 안식일은 또한 최후 종말적 안식을 내다보는 예표로서 남아 있다"고 하였다. 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다음과 같이 안식일 날짜에 대해 새로 정의하고 있다. 기계적인 칠일이 아니라 7일중 한날을 안식일로 지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자연법칙에 있어서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한 시간이 적절히 배정되었지만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는 모든 세대에 걸쳐서 모든 사람과 관련하여 적극적이며 도덕적이고 영구적인 계명으로써 하나님은 특별히 7일 중 한 날을 안식일로 정하시고 거룩하게 지키도록 하셨다."(출 20:8,10,11; 사 56:2,4,6,7)
안식교인들은 또 제 칠일에 예배하는 것이 구원의 조건이라고 하지만 그러한 주장은 전혀 성경적인 가르침과는 무관한 것이다. 성경은 어떤 곳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제 칠일에 예배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구절은 없다. 물론 성경은 율법의 중요성과 그것들의 실천 과제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율법이 아무리 존귀하더라도 신앙에 그것을 첨부하면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방법을 도리어 파괴하는 것이다. 성경은 도리어,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되지 못하느니라"(롬 11:6)라고 가르치고 있다. 바울은 분명히 말하기를 율법을 행하므로 의롭다고 함을 받을 육체는 한 사람도 없다고 주장한다(롬 2:16). 또 그는 율법으로 의롭게 된다면 그리스도는 헛되이 죽었다고 한다(롬 2:21). 누구든지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면서 율법을 다 지키지 못하면 그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롬 3:10)라고 선포했다.
(4) 조사심판의 원리
안식교가 주장하는 또 하나의 교리적인 특성은 조사심판(The Investigative Judgement)교리이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안식교인들은 2300주야를 2300년으로 계산하면서 주전 457년을 2300년의 출발점으로 하여 그리스도의 재림을 1843에서 1844년 사이로 잡았다. 그러나 재림이 실패로 끝나자 에드슨은 그리스도께서 하늘 지성소에 들어간 환상을 보았다고 했고, 이 예언을 근거로 해서 밀러는 그리스도께서 성소를 정결케 하기 위해 하늘 지성소에 들어갔다고 했다. 그는 다니엘 8:14절의 "성소가 정결함을 입으리라"는 구절을 그와 같이 해석했던 것이다. 이러한 근거를 바탕으로 교리문답 7장에서 인간의 자유의지와 심판, 조사심판의 예언, 상징, 그리고 성경원리 등을 다룬다.
① 인간의 자유의지와 심판
안식교도들이 칼빈주의 입장과 달리하는 차이점의 하나가 바로 그들은 구원에 있어서 인간의 자유의지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신들을 알미니안주의라고 하면서 그들의 교리문답에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히 변치않는 작정에 의하여 그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믿음과 순종을 보존하는 자들은 하락하여 범죄한 인류에서 영생토록 결정하셨으나 그와 반대로 회개하지 않고 믿지 아니할 사람은 버리기로 작정하셨다.
이러한 그들의 표현은 구원의 선택은 신앙 위에만 아니라 계속하여 행하는데 의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안식교의 입장을 객관적으로 그리고 긍정적으로 설명하려고 하는 윌터 마틴도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율법주의의 티를 냈을 지라도 그 근거가 기본적으로 알미니안주의의 입장에서 유래했으니 곧 사람이 구원을 하나님의 은혜로 받으나 일단 그가 이 은사를 받은 후에는 신자에게 그것을 유지하고 계속할 책임이 있는데 이것을 성취는 데에 중요한 방편은 계명을 지키거나 또는 하나님의 율법을 다 순종하는 것이다."
결국 안식교도들은 인간은 타락한 후에도 손상되지 아니한 자유의지가 남아 있으며 그것은 아담의 타락의 영향이 후손에게 전가되지 아니했음을 주장한다. 즉 그들은 아담의 죄의 전가를 부인하고 있다. 이는 아담의 죄로 인해 인간이 전적으로 부패되었다는 어거스틴이나 칼빈의 입장을 벗어났을 뿐 아니라 로마서 5:12절의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왜곡하는 논리였다. 인간이 자력으로 구원을 이룰 수가 없는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자유의지의 부패 때문인 것을 감안한다면 안식교도들의 주장은 자력 구원설에 가까운 알미니안의 성격과 같이 함을 알 수 있다.
② 조사심판의 예언에 대한 오류
안식교의 결정적인 오류을 가져온 성경구절은 다니엘 8:11∼14이다. 안식교의 가르침은 이 성경 말씀을 그리스도가 하늘의 성소의 지성소로 들어가심을 뜻한다고 하지만 14절에 나타나는 숫자인 2300년은 그리스도의 재림이나 지성소에서의 조사심판의 기간이 전혀 아니다. 이는 고대 중동의 역사에 대한 상식적인 지식만 있어도 안식교의 해석이 얼마나 터무니없는가를 알 수 있다. 이 기간은 유대 역사 가운데서 수리아를 통치했던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Antiochus Epiphanes)의 통치기간인 주전 171년부터 165년까지 즉 유대의 마키비 왕조가 성전을 회복하여 제사를 드릴 때까지의 기간을 말한다.
다니엘 8장에 나타나는 예언은 결코 안식교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로부터 재림하거나 하늘 성소로 들어가는 것을 나타내는 말은 아니다. 그들은 성경의 역사적인 배경과 사건을 곡해하였으며 성경에 없는 조사심판교리를 그들의 불발된 재림 예언을 정당화하기 위해 창출해 낸 것이다.
분명히 이러한 오류는 구약의 제사제도를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되었다. 구약의 제사제도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성취되었고, 그것은 단회적인 것이며 영원한 속죄를 이루는 능력이다. 그런데 안식교인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원성취를 불완전한 것으로 간주하고 주께서 지금도 하늘 지성소에서 속죄의 사역을 부활하신 후에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며 조사심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중보의 기도를 하는 것이다(롬 8:34)
(5) 그리스도의 재림
안식교도들은 그들의 기본교리에 그리스도의 재림을 인격적이고, 가시적이고, 육체적이고, 영광스럽고, 전천년적이라고 선포한다. 그리고 그것은 갑작스런 재림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들은 재림이야말로 교회의 최고의 소망이요, 복음과 구원의 경륜의 최고의 절정이라고 한다. 이러한 재림의 실재성과 의에 있어서 기존교회와 상이한 점임을 인식할 수 있지만 그들의 재림날짜에 대한 오판은 바로 이단들이 범하는 동일한 실수를 했던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들은 마태복음 24:21∼22절의 마지막 때의 세상의 징조에 대한 말씀은 1780년에 미국 뉴잉글랜드 지방에서 성취되었다고 하며 그것은 대낮에 갑자기 어두워진 기이한 일을 토대로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을 538년부터 1260년간 계속된 박해로 본다. 또 별이 떨어진다는 예언도(계 6:13) 1833년 11월 13일에 성취되었다고 하였다. 그들은 이것을 예수의 재림의 징조로 보고 그리스도의 제 1차 재림이 1844년에 성취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제 2차 재림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로 보아 안식교인들이 예수의 재림 사실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종말에 대한 날짜와 예언의 해석을 아전인수격으로 수용하는 이단성을 갖고 있음을 인식할 수 있다.
종합평가
안식교는 그들이 주장하는 주요한 교리인 토요일 안식, 조사심판, 하늘 지성소, 재림관, 예언의 영 등 기존교회의 보편적인 신앙과 큰 차이점을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안식교도들은 특히 제 칠일에 예배드리는 것이 구원의 조건이라고 주장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성경 말씀들을 인간적인 조작으로 해석하여 만들어 낸 하늘 지성소의 교리 등은 분명히 성경의 왜곡된 해석에서 나왔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들은 종말론에 있어서 환상적인 신비주의적 경향이 강하고 율법을 주장하는 행위 강조의 구원사상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안식교를 이단으로 규정짓는 것을 유보하는 입장을 가지는 것은 다음과 같은 그들의 신앙에 대한 긍정적인 면이 있다는 데서 시작된다.
(1) 안식교도들은 어떤 특정 부분의 율법적인 행위를 강조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을 확실한 자신들의 구원교리로 주장하고 있다. 그들은 또한 성경의 완전 영감을 믿고 있으며, 그리고 삼위일체의 교리를 받아들이고 있으며, 성경을 자신들의 유일한 신경이라고 선포하고 있다. 그리고 정통교회로부터 전승된 풍부한 성경진리와 위클리프, 후스, 루터, 칼빈, 낙스, 웨슬리 등과 같은 개혁신앙가들의 계보를 인정하고 자신들의 전통으로 간주한다.
(2) 안식교는 비록 창시자 엘렌 지 화이트 여사의 예언과 책들을 중시하는 요소가 있으나, 그녀의 예언을 다른 명백한 이단들처럼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여 예수 이외의 구원을 주장하거나 교주를 신격화하거나 섬기는 경향이 없다.
(3) 안식교는 다른 이단들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혼음, 이권분쟁, 가정파괴 등과 같은 비도덕적이고 반사회적인 행위를 하지 아니한다. 그들의 경건생활의 패턴은 고전적인 청교도들과 유사한 점들이 많다. 특히 가정에서의 신앙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세속적인 생활 즉 댄스, 화투, 담배, 술 등을 금하고 검소한 옷차림에 지나친 화장이나 보석과 같은 장신구의 부착을 부적합한 신앙의 행위로 규정지을 정도로 생활 전반에 걸쳐 단순하고 검소한 생활을 추구한다.
(4) 안식교도들은 사회봉사와 구제활동에 역점을 두고 대 사회적으로 기독교의 정신을 실현하고 있다. 그들은 의료선교를 통해 지역 무료진료 선교활동을 전개하며 대중보건위생에 이바지하고 있다. 무공해 농산물과 식품 생산을 통해 위협받는 현대인들의 건강문제 등의 해결에 앞장서는 등 생활개혁의 정신을 통한 건전한 신앙활동을 하고 있다.
이상과 같은 주장과 실천을 통해 안식교도들은 그들의 이단성과 사이비성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을 바꾸는데 대단한 공헌을 했다. 유명한 보수적인 성경학자인 도날드 그레이 반하우스(Donald Gray Banhouse)교수와 월터 마틴(Walter Marthin)교수는 안식교를 구속함을 받은 형제요 그리스도의 몸된 교인들이라고 하였다. 빌리그레햄 전도대회 등에도 개신교도들과 함께 참석하여 초교파적인 복음사역에 동참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안식교인들이 화이트 부인이 잘못할 수 있다는 것과 천국에 있는 아무 기록에 의해서도 신자를 정죄할 수 없다는 것과 안식일을 지키는 등과 같은 율법에 의한 행위가 구원 얻는데 조건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할 때에 그들을 이단으로부터의 굴레에서 해방을 받을 것이다. 그들이 여전히 이런 것들을 인정할 수 없다면 그들은 스스로 갈아디아인식의 이단으로 자처하는 셈이 되는 것이며, 동시에 자신을 율법의 저주 아래 있게 할 것이다(갈 3:10).
<예장 합동>
(월간 <교회와신앙> 2000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