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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문 서식 예(父忌日) | ※ 주자가례 서식 예(母忌日) |
維 歲次庚辰○○月○○朔○○日○○ | 維 孝子○○ 敢昭告于 顯妣儒人寬鄕姓氏 歲序遷易 |
2. 삭(朔)과 월건(月建)의 관계
축문의 전문(前文)중 태세간지(太歲干支) 다음에 기월(幾月) 간지삭(干支朔)이라 되어 있는데 삭의 의미가 초하루냐, 달이냐에 대하여 일부에서 이의(異義)가 제기된 바 있어 이를 해명하고자 한다.
대구에서 발행되는 족보신문(99년 1월호)에 한산이씨 대종회 이원규 부이사장(韓山李氏 大宗會 李元珪 副理事長)의 기고에 의하면 삭(朔) 자는 초하루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달(月)을 의미한다고 다음과 같은 이론을 들었다.
※ 삭(朔)과 월건(月建)에 대한 고증
일진(日辰)의 간(干)과 지(支)에 기록으로 조선왕조실록 연대기에 역일(歷日)은 적지 않고 일진(日辰)만 기록된 것을 볼 수 있다. 일진(日辰)을 쓴 후 그날에 일어난 사실만을 기록한 것으로 보아 역일(歷日)보다 일진(日辰)이 더 확실성이 높은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다. 또 일진(日辰) 기제축문에 '유세차 을미 팔월 임진삭 십삼일 갑진효자 모 감소고우(維歲次 乙未 八月 壬辰朔 十三日 甲辰 孝子 某 敢昭告于) 이 글은 을미년 음력 8월 초하루의 일진(日辰)이 임진이고 13일의 일진(日辰)이 갑진이라 한다.
세차 월건(月建) 및 간지(干支) 기시법(紀時法)에서 년의 간지(干支)를 세차(歲次) 월(月)의 간지(干支)를 월건(月建)이라 했다. 세차(歲次)는 간지기년법(干支紀年法) 월건(月建)은 간지기월법(干支紀月法)을 밝히고 간지기시법은 매일의 시각을 간지로 나타내는 방법이라했다. 이와 같이 년에 간지(干支)를 배차(配次)하는 것을 간지기년법(干支紀年法)이라 하고 이때의 간지(干支)를 세차(歲次)라 한다.
역에 관한 간지(干支)는 오행(五行)에서 나왔다고 보는 것으로 월건(月建)은 간지인 간십이지(干十二支)를 음력매월에 배치하여 쓰는 것으로 달마다 십이지(十二支)를 고정배치한 예로서 정월은 인월(寅月), 11월이 자월(子月), 12월을 축월(丑月)이라 한다. / 참고문헌 : 역법원리분석(歷法原理分析) 정음사간 이은성(李慇晟) 칠정산외편역주자(七政算外篇譯註者)
(삭(朔)과 망(望)에 대하여)
달은 매일 매일 그 위상이 변한다. 달의 위상변화는 합삭(望)과 망(望)을 가져오고 일식(日食)과 월식(月蝕)이 나타나기도 한다. 특히 합삭(合朔) 시각이던 날을 음력 초하루라 정하였다.
부모의 복중에 있는 가정에서는 삭망전(朔望奠)이니 삭망차례니 하며 음력 매월 초하루와 보름날 아침에 제물을 차려놓고 곡을 하면서 제사를 지낸다. 삭망전(朔望奠)에서 삭(朔)은 음력으로 무조건 초하루날에 행한다. 합삭(合朔)이란 달과 태양이 궤도상(황경)에서 겹치는 때를 말하는데 이때 태양은 달의 뒤쪽을 비춰주고 지구에서는 달의 그늘진 부분만 보게 되므로 달의 모습을 볼 수 없다. 이후 계속 변하여 보름 그믐으로 초승 등으로 순환한다.
달은 1삭망월(朔望月) 동안에 합삭 → 상현 → 망 → 하현 → 합삭의 순서로 월상이 반복하여 변한다.
달의 원구상의 궤도를 백도(白道)라 하며 1회 운행하는 동안에 29.53일을 주기로 변한다. 이것은 1태음월(太陰月)또는 1삭망월(朔望月)이라 한다.
그러므로 조선왕조실록 연대기에 역일(歷日)을 적지 않고 일진만 기록한 예로 일진이 더 확실성이 높다는 견해로 기제 축문에 삭일을 쓴 점과 세차(歲次) 월건(月建) 간지기시법(干支紀年法)에서 기년기월기시(紀年紀月紀時)에 천간지간(天干地干)를 순차 배당 순차 배당하며 편의상 사용됐다는 설명이고, 삭(朔)과 망(望)에서 삭(朔)은 해와 달이 궤도상에서 겹치는 때를 말하며 이때를 반드시 삭(朔)으로 정했다는 설명과 달이 1삭망월(朔望月) 동안에 변하는 현상을 합삭→ 상현 → 망 → 하현 → 합삭의 순으로 월상이 순환반복하는데 합삭하는 시기를 삭(朔)이라 하였으니 삭(朔)은 월건(月建)과 다른 것임을 확인케 된다.
이 문제를 좀더 쉽게 부연 결론지우자면 월건(月建) 자리에 초하루 일진(日辰)이 들어가고, 그날의 당해 일진(日辰)과 중복되는 사유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음력의 달은 삭망(朔望)이 매우 중요한 기준이 된다. 이는 역법(歷法)에 의한 것으로 그달의 초하루가 그달의 모든 기준이 됨으로 과거 왕조실록에도 사건의 날자를 생략하는 반면 그날의 일진(日辰)을 쓰는 경우가 허다하였으며, 월건은 정월(正月) 인월(寅月)로 시작하여 12월 축월(丑月)로 끝나며 매년 12지(支)가 고정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윤달(潤月)이 있는 해의 윤달은 월건간지를 배당받지 못함으로 월건(月建) 간지(干支)가 있을 수 없다. 고로 축문상 월건(月建)은 아무 의의(意義)가 없다. 따라서 축문서식상 삭(朔)자는 초하루 일진(日辰)이 분명하다.
참고로 1972년 공주에서 발굴된 무령왕릉 묘지석(墓誌石)문의 일부를 소개하면 『 백제 사마왕년 62세 계묘년 오월 병술삭 칠일임진붕(百濟斯麻王年 之十二歲癸卯年(서기 523년) 五月 丙戌朔 七日壬辰崩)』이라 명기됨을 보아도 옛날인 백제시대에도 삭의 개념이 활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3, 종합
가. 축문 문장구성
축문의 서식을 보면 사백년전에 편찬된 것으로 지금에 와서는 그 문장이 현시대에는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일부 난해한 부분이 있고 문장해석상 착오가 있어 쉽게 풀어 해명코자 한다.
이 축문 서식 편찬에 대해서는 상편에서 설명하였거니와 당시 유학자들이 간편하면서도 내실있는 문장구성에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특히 본문에는 예기(禮記)에 나온 문장을 많이 인용하고 또 사자(四字)성어로 독축하기 좋게 문장구성이 되어 있다. 그리고 유자(維字) 상자(尙字)등의 외자는 현대에서는 단자(單字)로는 쓰지 않는 간결하게 축소하였고 문장의 상하위치 배열에 있어서도 천지인(天地人)의 위계(位階)를 분명히 하고 있다. 하늘을 상징하는 군주의 연호의 첫 자가 맨 윗칸이고 지(地)를 상징하는 고인의 현(顯)자가 둘째칸 아래에 배치되며 인(人)을 상징하는 제주의 고우(告牛)문은 아래 셋째칸에 배치됨을 볼 수 있다. 이를 보면 옛날 주자가례서식이 아주 과학적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한가지 유의할 점은 첫째줄 끝에 효자(孝子)모모라 하고 둘째줄 셋째칸부터 감소고우라함이 원칙이나 예시와 같이 첫째줄 말미에 제주의 이름을 쓸 지면이 모자라면 다음줄로 넘어가되 인의 자리인 셋째칸부터 써야 한다는데 유념해야 한다.
나. 문장의 해석
축문의 첫 자인 유(維)자 해석을 일반적으로 "이어"서로 알고 있음. 심지어 인터넷 해석도 "이어" 서로 하고 있으나 현대사전에 유신(維新), 유지(維持), 발어사(發語辭), 오직, 이어등으로 해석하는데 그중 "이어"로 해석하고 있으니 이는 지금 이때를 말하며 이때는 곧 "오늘"이 된다.
또 첫줄 아래 또는 효손 등으로 표기하는데 자칭 효자 칭호는 현대적 표현감각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예기(禮記)의 잡기상편(雜記上編)의 제(祭)에는 칭효자효손(稱孝子孝孫)하고 상(喪)에는 칭애자애손(稱哀子哀孫)하라고 명시됨을 볼 때 제례와 상례에는 이것이 예(禮)라 한다.
또 제사의 본질을 군자(君子)는 생칙경양(生則敬養)은 사종신불욕야(思終身不欲也)라 함은 군자는 어버이가 살아 계실 때 공경봉양하고 돌아가실 때는 공경하여 제사지낸다. 이는 자기몸이 다하도록 어버이를 욕되게 하지 않을 것을 생각하기 때문이라 했다. 그러나 일반적 현대해석은 대를 이어줄 장자 장손으로만 알고 있으나 예기에 효자가 되려면 기제날 언행을 규제하였고 제사에는 정성이 으뜸이라 제사를 지내는 그 자체가 효자라 한 그 깊은 뜻은 제사를 효행의 지표로 장려하려는데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또 장자 장손으로 보는 것도 제주는 장자장손이 원칙임을 감안한 것으로 본다.
축문에 부(父)를 고(考)라 하고 모(母)를 비(비)라 함도 예기곡례하편(禮記曲禮下編)에 생왈부모(生曰父母)요 사왕고비(死曰考비)라 한데 근거한 것이다.
그외 본문에는 난해한 것이 없어 생략하나 가령 탁주를 올리고도 근이청작(謹以淸酌)이라 함은 불효가 아니냐 하는 이의(異意)도 있으나 이 문제는 정성이 문제로 이해해야 한다. 이는 과거 보리고개때 일이고 생시에 밀밭 근처에도 못가든 고인에게 술을 올리는 것이나 왼손잡이에 유식때 "삽시반중서병(揷匙飯中西炳)"하는등은 생(生)자의 일상생활과는 상반된다. 혼신(魂神)을 모신 제례음식은 생자의 일반음식과는 다른점이라 하겠다.
신이 기피하는 과일중 복숭아라든지 칫자들은 생선은 쓰지 않는 것 등은 생자(生者)음식과 다른 점이다.
본문 말미에 상(尙)자로 단(單)자가 있는데 일반해석은 흠향(欽饗)을 높이는 것으로 고상(高尙)하다 할 때 상자로 알고 있으나 이 또한 잘못 해석하는 것으로 만일 높이는 뜻이라면 상자를 지계(地階)칸인 둘째칸으로 올림이 마땅하다. 그러나 본문이 끝난 아래칸으로 올림이 마땅하다. 그러나 본문이 끝난 아래칸에 둔 이유는 상금(尙今)의 상으로 봐 "이제"로 해석해야 한다. 또 상과 향을 붙여 읽지 않고 띠어 독축하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끝으로 마지막 향(饗)자는 글자 그대로 흠향향자로 흠짜를 생략하더라도 그 뜻이 흠향으로 통하기에 유(維) 상(尙 향(饗)자는 단자로 간소화한 것이다.
다. 맺음말
이상으로 기제축문중 부모의 축문만 단적으로 소개하였으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여 이해에 매우 미흡한 점이 있겠으나 옛 축문서식과 내용에 조금이나마 이해에 도움이 되었다면 다행으로 생각한다.
정보화사회로 급변하는 현대에서는 걸맞지 않다. 그러나 전통문화의 유지 계승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하여 각 문중의 제례행사에는 계속 전승보전할 일이나 요즘 일반가정에서는 지방대신 영정을 모셔놓고 강신절차에 이어 한문축문 대신 한글축문 또는 구두고우하는 예가 많은데 굳이 탓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끝으로 부연할 것은 일부 문중에서 제사를 높인다고 제향(祭享), 시향(時享), 향사(享祀)라 호칭함은 과대표현이라 본다. 원래 제향(祭享)은 나라의 큰 제사를 뜻하는 것인데 각 문중에서 이를 수용 보편화됐다.
따라서 사가에서는 제사(祭祀), 시제(時祭), 기제(忌祭), 묘제(墓祭)등으로 표현함이 타당하다고 본다. 그외 제사분방기에 축 또는 축관(祝官)을 대축(大祝)으로 표기함도 잘못이다. 대축이라 함은 나라의 종묘 또는 문묘 성균관 향교 대성전(大成殿)의 제향시 축관의 우두머리를 말한다.끝으로 졸자(拙者)의 조그마한 소고에 지나지 않음으로 기탄없는 지적과 충고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