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훈님의 글을 대신 올립니다.
광야에 울려펴진 예수전도단의 찬양
1월 10일 18명의 젊은 대학생으로 구성된 [예수전도단]이 전세 버스로 이집트 국경을 넘어 무려 2400 km을 달려왔다. 7명의 여학생과 10명의 남학생 그리고 이집트에서 선교하시는 김모세 목사님. 13년 전 3명의 [예수전도단]이 온 이후 두번째 방문이었다.
3일간의 짧은 일정 내내 비가 그치지 않고 내렸다. 이들은 방학을 기해 약 4주간 이집트 곳곳을 여행하면서 어렵게 리비아를 찾아왔다.
리비아는 공식적으로 선교단의 입국을 허용하지 않아 관광객으로 방문하게 되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이들 방문단을 리비아한인교회 김희윤목사님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교회에서 숙박하게 되었고 식사는 [동아건설]에서 제공하게 되었다. 나는 이들의 관광 가이드를 맡아 트리폴리도시 이곳저곳과 사브라타(Sabratha) 고대유적지를 안내하면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도착 다음날 저녁 우리는 동아건설의 [가라볼리] 현장교회를 방문하여 그곳에 있는 외국인 근로자와 함께 예배를 드렸다. 이날 모든 예배 순서는 [예수전도단]이 맡아서 했다.
동아건설은 트리폴리 외곽에 있는 가라볼리 지역에서 대수로공사에서 나오는 지하수로 농작물을 경작하는 대규모 농지을 조성하고 있다. 이 공사를 감독하는 한국인 근로자는 얼마되지 않지만 수백명의 현장 근로자들은 모두 중국인, 조선족, 베트남, 필리핀 등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이들 중 약 200여 명이 동아건설의 평신도들에 의해 운영되는 현장교회에 출석하고 있었다.
나는 처음으로 베트남어로 된 성경과 찬송가를 가라볼리교회에서 보게되었다. 조립식 가건물로 되어진 막사안에는 중앙 복도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나뉘어져 의자가 놓여있었다. 한쪽은 중국인과 조선족이 차지하고 또 다른 편에는 베트남과 필리핀, 한국인 등 다른 인종이 각각의 성경과 찬송가를 펴고 반주에 맟추어 찬송을 하였다.
굻은 빗방울 소리가 베니아 합판의 천장을 때리는 속에서 울려펴지는 찬송을 들노라니 문득 베드로가 성령강림 이후 수다한 무리앞에서 히브리어로 주의 부활을 전파했지만 무리들은 각기 자신들의 방언으로 알아들었다는 사도행전의 기사가 떠올랐다. 각기 다른 방언으로 찬양할찌라도 하나님은 하나의 찬양소리로 들으시리라!
예수전도단들은 준비해온 찬송과 율동, 간증 그리고 무언극으로 예배를 진행하였다. 김모세 목사님과 한 대학생의 간증 등을 한국인이 영어와 한국어로 하면 즉석에서 조선족 성도가 중국어로 그리고 영어를 하는 베트남 성도는 베트남어 각기 통역이 되어졌다.
나는 [예수전도단]의 준비와 예배진행을 보면서 몇 가지 상념에 잠겼다. 얼마전 ccf의 한 자매님의 글에서 동남아 단기간의 선교여행을 간다는 소식을 본 기억이 났다. 혹시 국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방학중 대학생 해외선교라는 것이 이런 것인가라는 반문이 일어났다.
선교단이란 이름을 붙이고 있지만 정확히 선교인지 아니면 단순한 기독교 유적지 몇 곳을 보는 풍물여행의 프로그램중에 그냥 한인교회 몇 곳을 방문하여 엉성한 공연을 연출하는 것으로 스스로 선교한다고 하는것인지 분간이 어려웠다.
나 자신이 이미 기성 세대가 되어버려 그렇게 느꼈는지 모르지만 그들의 안무는 한국에서 유행하는 랩댄스 그자체였고 찬양 역시 제대로 다듬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간증 역시 한국인이어야만 이해할 수 있는 우리네 문화와 생활환경에서 일어난 지극히 사적인 내용이었다. 진지함은 있어도 준비성이 결여되어 있었다. 준비성이 결여되었다고 느낀 것은 메세지 전달에 대한 사전의 꼼꼼한 준비를 의미하며 방문하는 지역과 대상에 대한 사전 연구가 결여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복음을 듣는 대상이 누구이며 이들의 입장과 처지에 대한 문제의식이 전혀 없었다. 갑작스럽게 방문한 이들에게 찾아가는 현장교회에 대한 사전 설명이 부족한 리비아측의 준비성도 반성의 여지가 있었다.
도시에서 떨어져 외출조차 쉽지 않는 외지 황량한 돌밭 한가운데서 사랑하는 가족과 연인을 홀로 둔채 오직 돈을 벌 목적으로 왔지만 한국근로자의 전도를 받아 언어소통조차 제대로 안되는 예배이지만 성령님의 위로하심으로 목이 터지라 찬송을 부르면서 자신들의 외로움과 고통을 달래가고 있는 이들 앞에서 말과 율동을 하는 우리 대학생들은 너무나 이질적이었다. 그들은 단지 한국의 남녀 젊은이들이 공연하는 그자체만도 즐거운 것이었다.
아무리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그때그때 부딪혀서 해결한다는 각오도 중요하지만 미리 준비하는 지혜도 이방선교에서는 더욱 중요하다고 본다.
예배가 끝이 나고 안무를 누가 어떻게 준비했느냐고 학생들에게 물었다. 예수전도단 본부에서 준비했다고 했다. 과연 우리가 전할 선교의 대상에 대해서 얼마나 연구하고 준비하는지 의아했다. 대부분의 선교단이 비기독교권의 후진국으로 방문하는데 만약 이런 식으로 한국 젊은이의 유행감각에 익숙한 것으로 준비한다면 오히려 복음을 접하는 대상들로부터 거부감을 불러일으키지 않을까라는 염려가 생기곤 했다.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왜 자신들의 어그제 모습을 쉽게 망각하는가. 얼마전까지 우린 기독교 토착화를 부르짖고 우리의 문화적 정체성 속에서 기독교를 내면화하자고 했지 않았나. 그런데 이제 와서 정체불명의 미국 대중문화와 복음송을 섞어 우리 것도 남의 것도 아닌 형식으로 복음을 포장을 하여 후진국에 가서 선교한다는 것은 한번쯤 재검토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예수전도단의 공연을 보면서 한 가지 새삼 놀라운 것은 [찬양]의 위대함이었다. 간증이나 무언극, 율동 등은 자신들의 문화적 배경으로 쉽게 공감하고 교류하기는 어려워도 찬양만큼은 비록 언어가 다르더라도 멜로디와 화음이 같기에 충분히 공감하고 은혜받는 것을 목격하였다. 차라리 어설프고 준비되지 않은 즉석 외국어 설교보다는 준비된 아름답운 찬양이 이방인과 초신자에게 훨씬 신령한 감동을 주지 않을까 느꼈다.
지난 7개월간 우리 집에서 파출부로 일한 모로코 무슬림 여성인 [하키마]가 있었다. 나는 언제나 아침에 일어나면 카세트에 찬송가를 틀어놓는다. 어느날 하키마와 식탁에 마주앉아 아침 식사를 하는데 느닷없이 하키마가 흐밍을 하다가 나중에 [아~멘]이라고 하지 않는가! 깜짝 놀라 그녀를 쳐다보니 하키마는 아무일도 없었듯이 태연히 먹던 빵에 잼을 바르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아~ 아름다운 화음과 멜로디는 문화적 차이와 상관없이 그 내용이 무엇인지도 모르지만 받아들이고 따라하게 되는구나라고 느꼈다. 그렇게 무슬림에게 찬송을 계속 틀어주면 언젠가 자신이 좋아서 따라한 것이 기독교 찬송인지를 알면 스스로 놀랄 것이고 또한 기독교에 관심내지는 덜 배태적일 수 있겠구나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예수전도단의 대학생들은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면서 떠났다. 그들을 보내면서 아쉬운 것은 저렇게 순수한 영혼을 간직한 채 선교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찬 저들을 본부의 지도자들이 선교사명을 일켜워주돼 왜 좀더 문화적 교양으로 의욕을 다듬어주지 못할까였다.
글을 끝내면서 이런 그림이 자꾸 떠오른다. 예배가 끝난 뒤 한 예쁜 여학생과 사진 한장을찍길 원하는 베트남 친구의 청을 수줍어 피하는 그 여학생, 간증했던 남학생과 나이가 같다는 중국인 젊은이 그리고 까치머리로 누런 이빨을 드러낸 채 계속 끽끽거리며 마냥 즐거워하는 중국 노동자들, 이들 모두와 우리 선교단 남녀 젊은이들이 다음 번에는 강단에 나와 함께 연습한 찬송가로 각자의 방언으로 힘껏 찬양하는 모습이 …..
CCF 찬양선교단이 만들어진다면 얼마 좋을까~~~~
첫댓글 루하님 매번 번거럽게 부탁드려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호주 hillsong conferrence로 신혼여행가신다는 글을 보았는데 참 아름다운 계획이네요. 축하드리며 좋은 시간이 되시길 기원드립니다.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