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들은 그를 “어-이”라고 부르지만 그는 자칭 어엿한 사업가이자, 예술가라 했다. 나도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처럼 “어이!” 라고 했지만 왠지 호칭하기가 좀 망설여졌다. 그 뒤로는 “사장님”이라 부른다.
“이거요? 아무나 못합니다, 이 작업도 예술입니다, 예~술,
이천 원짜리라고 우습게보지 마시우. 허허, 참! 아저씨도.......,“
졸지에 한 방 먹었다.
『 하루 얼마쯤 벌어요? 쉽게 돈을 버는 것 같네요, 복장 편하고.......,』
쓰고 있는 모자가 좀 고상하게 보여 농담으로 무심코 한 마디 던졌는데 상대방은 진지하게 정색을 하며 대번에 맞받아쳤다. 노련함이 몸에 밴 직업의식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아차! 그게 아니네' 싶어 화제를 슬쩍 바꾸어 내가 평소에 구하고 싶었던 모자를 쓰고 있기에,
『사장님, 쓰고 있는 모자 어디서 구했어요? 굉장히 좋아 보이네요, 외모에 딱 어울리고 품위가 있어 보이고, 나도 그런 모자를 구하려고 아무리 돌아 다녀도 없던데........,”』
그때서야 경계심을 풀고는 사람 좋은 순진한 미소를 지으면서 모자 자랑에 열을 올렸다.
“말도 마시오, 이런 것 파는데 아무 데나 없구마, 나도 요런 모자 구하려고 서울, 부산 등 큰 도시의 모자 점마다 다 돌아다니다, 작년에 88고속도로 지리산 휴게소에 들렀다가 마침 하나가 있어 비싸게 샀다우, 어디로 다니다 모자 파는 곳만 있으면 무조건 함 둘러보소......,“
친절하게 구입하는 요령까지 이야기해 주며 아주 대견한 듯 모자를 벗어 구경시켜 주었다.
처음 그렇게 시작한 대화로 서로 얼굴을 익히게 된 그와는, 알고 보니 나이도 55년생 같은 양띠였다. 더욱 친근감이 생기고 가끔씩 자판기의 커피를 한 잔씩 뽑아다 주면서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취미도 낚시와 바둑으로 같았다. 농담까지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남들이 다 아는 구두 닦는 천한 일을 본인은 ‘예술작업’한다고 우겨대니 ‘그게 아닌데? 좀 모자라거나 아니면 예술을 장난으로 취급하는 건방지고 허풍이 센 무식한 사람이 아닌가.’ 라는 묘한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는 매주 화요일 오전마다 우리 사무실을 방문한다. 내가 근무하는 민원실 정면에서 바로 보이는 측문 발코니 구석에서 좌판을 펼쳐놓고 간이의자에 앉아 작업(예술)하는 것을 유심히 관찰해 보기도 하고, 지나치면서 이것저것 연장과 도구에 대해 물어도 보면서 ‘진짜 예술작업 인지? 아니면 흔히 말하는 딱새 작업인지?’를 유심히 지켜봤다. 확인하는데 몇 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러가고서야 어느 정도 틀린 말이 아니구나 라는 감을 잡을 수가 있었다. 그렇다고 예술이라기 하기에는 좀 무리인 듯싶기도 했다.
먼저 그의 외모를 보면,
50대 초반이라 보기에는 더 젊어 보이는 비쩍 마른 후리후리한 덩치에, 허구 헌 날 주머니가 많이 달린 등산용 조끼를 걸치고 있었다. 검붉고 씩씩하게 생긴 얼굴에다가 머리에는 모 인기가수가 즐겨 써서, 트레이드마크가 된 일명 “마드로스 캡”이라는 멋있는 모자를 삐딱하게 얹어 쓰고는 담배를 꼬나든 모습이, 탐험가 ‘훅-크 선장’ 아니면 현대판 ‘보헤미안’처럼 외모가 좀 특이하게 생겼다고 할까. 각종 연장과 깔창 등 좌판을 벌려놓고는 작업할 때만 빼고 관상을 보는 사람처럼 앉아서 날카로운 실눈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신발만 쳐다보면서 유유자적했다. 본인 말로는 구두가 닳은 모습만 척 봐도 그 사람의 성격을 알아맞힌다며 구두에 관한 지식과 기술에 대해서는 세상의 누구보다 자신이 있다는 자칭 ‘구두박사’라는 위인이다.
그가 말하는 ‘2천 원짜리 예술품’이 완성되는 과정을 보면 별 것이 없다. 먼저 그가 펼쳐놓은 작업도구는 구두약, 각종 구두 굽(밑창), 질긴 실, 양초, 밀랍 덩어리, 강력 본드와 소형 물 분무기 못 등이었다. 연장 통에는 구두 솔과 구두 칼, 끌, 가위, 집게(팔자로 생긴 못 빼는 도구), 나무망치, 칫솔, 니퍼, 송곳, 뺀치, 코바늘, 사포, 칼, 타월, 보드라운 무명천과 융단 천, 수선할 때 무릎 위에 펼쳐놓는 넓은 가죽 천, 야외용 버너 등등 생각보다 수가 많고 복잡했다. 가장 소중히 여기는 작업 도구로는 통나무 밑둥치를 자라낸 밑받침에 발바닥 모양의 쇠 모형을 박아 그 위에서 모든 작업을 하는 ‘징글이’라는 것이었다.
그 다음으로 작업 순서를 보면, 절대로 ‘구두 닦으라’고 말을 걸거나, 직접 사람들에게 강요를 하는 일 없다. 구두닦이란 직업의 선입감인 시커멓게 때가 묻은 얼굴과 팔에 문신을 하고 강제로 빼앗다싶게 딲을래? 말래?라는 막가파 젊은 애들의 공포분위기가 아니다. 그 고상한 생김새와 소리 없는 동작으로 실내화를 몇 켤레 들고 각 사무실로 휘적휘적 걸어 다니며 한 바퀴 돌기만 한다. 직원들이 그를 보고 “어-이”라고 부르고는 구두를 벗어주면, 손가락 사이에 몇 켤레씩 움켜잡고 와서는 작업을 개시한다. 단골들은 화요일 오전이면 아예 직접 와서 구두를 벗어놓고 가기도 한다.
먼저 거친 칫솔로 옆면이나 바닥에 묻은 흙을 깨끗이 털어 내고 구둣솔로 먼지를 제거한다. 초벌 약칠을 하고 난 뒤 검지와 엄지 두 손가락을 천으로 싸서 구두약을 듬뿍 찍어 원을 그리듯이 골고루 바르고 난 뒤, 2-3분 후 구두약이 가죽 속으로 스며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물 뿜이개로 물을 몇 방울 뿌린 후 광택(때깔)내는 작업에 들어간다.
초벌 광은 메리야스 같은 무명천에 물과 구두약을 연하게 묻혀 시계방향으로 돌려가며 표면을 문지르면 서서히 광이 난다. 끝맺음 작업으로 구두 콧잔등을 융단 같은 고급 천으로 좌우로 쓸어내리면서 마감을 하는데 이때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광이 빤질빤질하여 파리가 내려앉다 쫄딱 미끄러져야 되고, 차 백미러에 부착하여 거울로 사용할 수 있도록 광이 나야된다’고 했다. 이때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약 6분가량이다.
다른 작업인 구두 수선은 터진 구두를 바느질로 깁는 것과 밑굽을 새로 갈아주는 것이다. 남자들의 구두 굽은 앞창과 뒤창으로 구분되어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동일한 크기의 고무제품이다. 구두의 크기에 맞춰 구두칼이나 끌로 도려내어 모양을 맞추고, 사포로 문질러 표면을 부드럽게 한 다음, 강력 본드를 발라 압착한 후 마르면 완성된다. 고급구두는 이때 가장 자리를 삥 둘러 가며 빈틈없이 가죽 실로 다시 한 번 깁는다. 그리고 여자 구두의 굽(힐)은 크기와 모양이 다양해서 동일한 규격제품이 아닌 수십 가지의 완성품을 미리 준비하고 있다가 새로 갈아 끼워만 주면 되는데 여자들의 구두 힐이 그렇게 다양하고 종류가 많은지 종전에는 상상도 못했다. 다음으로는 구두 뒤축 즉 구겨 신는 부분과 구두 볼이라는 앞면의 좌우측 넓은 부분이 터진 것을 깁는 작업이다. 순서를 보면 먼저 사용할 분량의 실을 마름질하여 어림잡아 끊어 낸 후, 양초 칠을 한 다음 은박지에 싼 후 밀랍덩어리로 풀을 몇 번 먹인다. 그 이유는 양초 칠을 많이 해야 실이 물에 잘 젖거나 스며들지가 않는다. 또한 밀랍을 먹이는 것은 꿔 멘 실이 미끄럽거나 따로 놀지 않게 하고 가죽과 잘 접착할 수 있도록 함이다. 다른 사람들은 아교풀을 먹인 실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튼튼한 반면 잘못하면 실이 부러질 경우가 많다. 그리고는 코바늘로 한 뜸 한 뜸 박음질하며 깁는데, 이때 너무 간격이 벌어지면 물이 스며들기나 사이가 너무 촘촘하면 가죽이 상할 염려가 있어 적당한 간격이 필요하고, 바느질 또한 정성을 다해야 삐뚤삐뚤하지 않고 모양새나 그 튼튼함이 다 드러나므로 일류 기술자인지 초짜 인지 금방 알 수가 있다. 한 켤레 수선하는데 보통 20-30여분 소요되는데 수선비용은 닦는 비용처럼 통상화 된 가격이 아니라 본인 마음대로 받는다. 똑같은 기술과 수선시간이 들더라도 수선비는 구두에 따라 작게는 2천 원부터 많게는 1만 5천 원씩 차등을 두어 받는 것을 보고 그 이유가 궁금하여 물어봤다. 구두의 구입가격이나 미래의 가치 즉 수선을 함으로써 앞으로 얼마나 더 신을 수 있느냐에 따라 많이 받기나 적게 받는다고 했다. 아무리 시간과 기술을 투자하여 수선을 하여도 구두 수명이 1년 미만 일 경우와 가격이 싼 구두나, 여성용 구두는 실비로 받는다. 2-3만 원짜리 구두를 수선하는데 1만 원 이상 받으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서 양심상 그렇게는 못한다고 했다. 그 대신에 남자용 고급신발은 제 값을 다 받는다. 한번 수선해 놓으면 수명이 다하고 닳아서 재 수선이 필요 없도록 최고의 부속품을 사용하여 완벽하게 고쳐주면서 그만한 가치의 돈을 받아야 된다는 생각은 기술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이기도 하다. 어찌 보면 그게 예술인지도 모른다.
그가 말하는 구두에 대한 상식을 몇 가지 들어보자. 먼저 구두의 광, 즉 때깔을 내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흔히 보는 물(水) 광이다. 옛날 길거리의 구두닦이 소년들이 구두를 닦을 때 보면 구두 약칠을 하고선 연신 침을 발라 가면 수건으로 문질러 광을 내는 것을 보기에 안 좋아 보였는데, 지금은 화초에 물을 주는 소형 물뿜이개로 물을 칙-칙 뿌려서 하니 침이 필요 없고 위생상에도 좋다. 이것이 정통파 광이다. 다른 하나는 불(火)광이라는 것인데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일명 ‘벼락치기 광’이란다. 목욕탕이나 길거리 등에서 급하게 닦아 달라는 손님의 주문이 있으면 1-2분 만에 해결해 준다.
구두약이 가죽에 스며들 시간을 주지 않고 야외용 가스버너나 라이터 불로 강제로 스며들게 하여 속성으로 광을 내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가죽이 금방 갈라지고 잘 상해서 구두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주원인이 될 수 있으므로 웬만하면 급하게 닦아 달라고 주문을 하지 말거나 낯선 곳에 가서 구두를 닦지 말라고 했다.
또 한 가지 상식은 보통 여름용과 겨울용의 두 켤레의 구두를 구입하여 번갈아 신으면 발의 건강에도 좋고, 그리고 처음 구입할 때 케이스를 절대 버리지 말고 보관했다가 구두를 갈아 신을 때는 그 케이스에 넣어 보관하면 그냥 신발장에 넣어 놓는 것보다 습기와 먼지나 곰팡이도 안 들고 구두의 수명이 연장된다고 했다. 또한 신고 있는 구두를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을 알 수 있다. 깔끔하고 깨끗한 성격의 소유자는 구두도 깔끔하고 정갈하게 관리하는 반면, 성격이 불안정하기나 급한 사람은 신발 자체도 지저분하고 더럽게 신는다고 했다. 예부터 멋쟁이남자는 구두, 여자는 핸드백에 관심과 목숨을 건다고 했다. 그리고 ‘구두쇠’라는 별명이 있듯이 구두 한 켤레로 10년 이상을 신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요즘은 1년도 안 신고 유행 따라 자주 바꾸는 젊은 사람도 많단다. 구두는 자주 손질을 해야 오래 신을 수 있고, 멋을 아는 사람은 의복보다 구두에 더 신경을 쓰는 까닭은 구두를 잘 신어야 입고 있는 옷이 살아나고 값어치가 더 나간다나......,
그의 하루 일과를 보면 월요일 아침부터 시작하여 항만청-세무서-농협-해양경찰서-구룡포읍사무소의 순으로 기다리는 단골손님을 위해 일주일에 하루씩 순례자처럼 구역을 돈다. 그나마 요즘은 워낙 불경기라 가는 곳마다 오전이면 일이 끝나, 벌이도 시원찮고 재미도 없단다.
하루 평균 수입은 5-8만 원 정도이지만 비오는 날은 공치고 토, 일요일은 쉬는 날이라 평균치며 몇 푼 안 된다고 했다. 지출은 티코자동차 운영비와 용돈으로 하루 한 갑씩 피우는 담배값과 점심값을 제하고는 액수를 불문하고 전부 마누라에게 다 갖다 준다고 했다.
세상에는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말들을 많이 하지만 분명 직업에는 천한 일과 귀한 일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대신에 그 직업이 천하냐? 귀하냐? 는 당사자가 본인의 직업을 천하게 느끼느냐, 아니면 귀하다고 느끼느냐에 따라 결정될 수가 있다. 그와 대화를 해보면 물론 깊은 삶의 철학과 높은 지식이나, 종교적인 인격의 소유자는 아니다. 비록 남들이 천한 직업이라 멸시하고 손가락 질 해도 본인은 전혀 개의치 않고 직업이나 사회에 대한 불만 한마디 없다. 항상 웃는 낯으로 먼지와 냄새로 얼룩진 신발을, 단돈 2천 원을 받지만 값비싼 예술품 다루듯이 정성을 다해 최선을 다해 고객에게 서비스한다는 생각으로 일하는 것을 보면 장인匠人이나 예술가 같은 느낌을 주는 것만은 사실이었다.
그도 한때는 대도시에서 종업원을 여럿이 두고 수제 화를 만드는 어엿한 사장님 이였다. 유명 메이커 제품의 대량생산으로 인해 수지 타산이 맞지 않아 청산하고 이것저것 해보다 여의치 않아 몸에 배인 기술인 구두수선과 닦는 것을 직업으로 생각하고 시작한 지가 15년째 접어들었다. 왕년에는 찍새(사무실로 다니면 구두를 거둬 오고 갖다 주는 심부름을 하는 아이) 두 명과 딱새까지 1명씩 두고 포항 육거리를 주름잡았다. 돈은 크게 못 벌어도 그저 주어진 일에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것을 보람으로 아는 낙천주의자다.
비 오는 날은 공치는 날이요, 쉬는 날이다. 이때는 그의 유일한 취미인 민물낚시를 간다. 낚시 조력 30년에 아직 월척 맛을 못 봐, 평생의 소원은 월척을 한 마리 당겨 보는 것이 그의 소박한 꿈이었다. 또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이것도(수선과 깁는 것) 어떻게 보면 손기술과 전통에 해당된다. 본인도 어릴 때 동네에서 나이 많은 노인네에게 기술을 전수 받았으니 기술이 끊기지 않으려면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의무가 있다. 요즘의 젊은이는 아무도 이 기술을 배우려 하지 않으니 예술가의 첫째 고민이라 했다.
(2004.05)
첫댓글 시선이 따뜻하네요 관찰력도 좋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