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장 달음산(588m)
왕관을 쓰고 바다를 지켜보는 산
부산 근교의 금정 천성산 대운산을 오르며 동쪽으로 또는 남쪽으로 머리에 왕관을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산 위에 쌓아 올린 거대한 성채처럼 보이기도 하는 멋있는 산을 볼 수 있다. 기장 바닷가에 있는 달음산(588m)이다.
부산 사람들에게 근교에서 어떤 산이 좋으냐고 물으면 달음산을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달음산은 팔기산과 함께 기장을 대표하는 산으로, 그리 높지는 않으나 몇 가지 특색을 가지고 있다. 어렵고 높은 산을 좋아하는 전문 산꾼이나 이제 산에 걸음마를 시작한 어설픈 초보자나 모두 좋아하다는 점이다.
보통의 산들은 오른다고 해도 더러는 민틋하고 편안한 곳이 있기도 하고 내려가는 곳도 있다. 그러나 달음산은 한번 산에 붙으면 고스락까지 계속 오르기만 해야 하고, 산의 머리를 이루고 있는 거대한 바위덩이를 오르려면 꽤 어렵고 위험하기도 해서 전문에 가까운 바위타기도 해야 한다. 그 때문에 해외 고산을 목표로 하는 훈련등반이 이 달음산에서 종종 벌어진다.
반면 그리 높지 않고 크지 않아서 쉬는 시간까지 합해도 3시간 정도면 오를 수 있어 산을 잘 오르지 못하는 사람들도 이 산을 즐겨 찾는다는 것이다.
달음산의 상(山相)이 좋고, 기복이 없이 오로지 올라붙기만 하고, 또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은 산이어서 부산과 울산 사람들이 이 산을 좋아하는 것만은 아니다. 이 산이 참으로 좋은 것은 오르내릴 때 시원한 바다를 조망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남쪽으로 하산할 경우 바다에 빨려드는 듯한 그 매력 때문에 달음산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기장군이 한반도 동남쪽 모서리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그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달음산에서 바다가 잘 보이는 것이다.
특히 달음산의 우뚝 솟은 고스락에서 서면 해운대쪽 바다에서부터 기장 앞바다를 거쳐 온산 울산의 바다까지 조망되고, 날이 맑은 때는 대마도도 조망된다. 많은 사람들이 거창한 바위성과 함께 남쪽 등성이를 타고 가며 망망대해를 바라보는 시원한 느낌이 좋아서 그 재미를 즐기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달음산에서는 바다 조망뿐만 아니라 부산의 장산 금정산 원효산 천성산 팔기산 대운산의 조방도 좋다.
우리나라에서 맨 먼저 해를 맞이하는 산
달음산은 기장팔경의 하나로 주민들이 몹시 아끼고 좋아하는 산이다. 기장군은 신라 때 기장현의 이름을 얻었으나 그 뒤 경주목이나 양산군에 편입되기도 했으며, 근래에도 울산군이나 동래군에 소속되어 있다.
기장군 읍지에는 달음산이 취봉(鷲峰)으로 쓰여 있다. 달음산의 머리에 거대한 바위가 독수리처럼 보여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이다. 그러나 옛 기장 사람들은 이 산을 추봉 또는 축봉산이라 부르기도 했다는데, 그 뜻은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달이 뜨는 산이라 해서 월음산(月陰山)이라 부르기도 했는데, 지금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월(月)을 온전한 우리말인 '달'로 해서 달음산이라 부르고 있다. 반은 우리 말이고 반은 한자로 된 이름이다.
기장 사람들은 동해에서 해가 솟아오르면 우리나라에서 맨 먼저 그 햇살이 닿는 곳이 달음산의 머리라 믿고 있다. 지금도 기장 사람들은 주봉을 취봉 또는 수리봉이라 부르고, 그 동북쪽 이웃에 있는 봉우리를 옥녀봉 또는 구슬아기봉이라 부르고 있다.
또 취봉에서 흘러내리는 일광천을 취청천이라 하고, 옥녀봉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옥정천이라 하며, 취봉 아래에 있는 절을 취정사, 옥녀봉 아래에 있는 절을 옥정사라 한다.
달음산은 낙동정맥이 동해 남부 해안에서 그 기세가 잦아들기 전에 만들어 놓은 바위봉우리로, 그 뿌리는 천성산(원적산)이다. 기장읍지에는 원적산의 맥이 동쪽으로 뻗어 백운산을 솟구치고, 백운산이 다시 동쪽으로 뛰어 동해에 닿으면서 달음산을 일으킨 것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이중화의 택리지 산형 조에도 '달음산의 뿌리가 되는 원적산의 산세에 이어 모든 산봉우리들이 서로 맥을 잇고 겹겹으로 되어 골짜기가 매우 깊숙하다'고 쓰고 있다.
광산 마을 원점회귀산행
장산이나 금정산 또는 천성산에서 동쪽으로 멋있게 보이는 달음산은 사실 오래 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산이었다. 산행기점이 되는 광산리 마을은 부산~울산 간 고속도로의 건설을 위해 높은 교각이 세워지고 있다. 달음산을 올려다보며 마을 오른편 산자락을 돌아 오르는 길이 옥정사로 가는 길이다. 들머리에 '관음대도량' 이르 쓴 큰 돌이 서있는 이 길을 조금 오르면 오른편에 부도전이 보이고 이어 옥정사가 나선다. 법화종 산하의 사찰로, 지장전과 명부전을 크게 짓고 있었다. 이 절의 감로수는 시원한 약수로 이름나 있다.
산길은 절 오른편 뒤 오솔길로 시작된다. 오솔길은 개울을 따라가다 점차 비탈로 들어선다. 100여 평이 넘는 공터(묵은 묘)를 지나 달음산에서 장안읍으로 뻗은 산줄기의 잘록이로 올라선다. 과연 듣던대로 길은 오르기만 할 뿐 조금도 내려가는 구간이 없다. 중간에 넘어야할 작은 봉우리들이 없기 때문이다. 산길치고는 제법 큰 길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이 산을 찾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잘록이에서 조금 오르면 너덜이 나오고 뒤돌아보면 오른편으로 바다도 보이기 시작한다. 길은 더 가팔라지고 흙길로 변하면서 턱에 올라선다. 여기쯤에서는 이제 바다가 넓게 펼쳐져 보인다. 숲속 곳곳에 너럭바위도 보여 그 위에서 쉬거나 도시락이라도 펴면 알맞을 것 같다.
거의 산 머리에 올라서면 등성이를 가로막고 있는 크나큰 바위벽과 부딪친다. 여기서 길은 바위 양편으로 갈라지지만 왼편 길에 들어서야 한다. 이 왼편 길로 조금 돌아가면 또 두 갈래 길이 나선다. 이번엔 바위 위로 올라서는 오른편 길로 가는 것이 좋다. 왼편 길은 바위봉우리 아래를 돌아가는 쉬운 길이어서 재미가 없다.
바위등올 올라선 길은 점점 더 어려워지며 아예 바위벽 타기를 해야 하고 위험하기도 하다. 전문가가 아니면 오른편으로 내려서서 돌아가야 한다. 바위를 끼고 돌아가면 바위 사이에 한가닥 줄이 매어져 있고 이 줄을 타고 올라가게 되어 있다.
줄을 붙들고 바위를 돌아가면 이번에는 줄사다리가 손에 잡힌다. 줄사다리를 타고 오르다 다시 밧줄 신세를 지고 올라서면 옥녀봉과 주봉인 독수리봉 사이의 잘록이에 올라서게 된다.
먼저 사방이 바위 낭떠리지인 옥녀봉에 올라서면 푸른 바다가 동에서 남으로 펼쳐져 보이고, 장안읍과 기장읍이 내려다보이며 서쪽과 북쪽의 천성산 대운산 등이 조망된다. 갖가지 색깔의 화사한 꽃들이 주봉인 독수리봉의 층층 낭떠러지 바위 사이에 피어 한 폭의 그림을 건너다보는 것 같아 탄성이 절로 나온다.
주봉인 독수리봉으로 오르는 길은 바위벼랑을 오르는 어려운 길이기는 하지만 붙잡을 곳과 발디딜 곳이 넉넉하여 오히려 재미있다.
고스락은 별천지다. 돌아가며 깎아지른 절벽을 이루고 있는 벼랑 위 고스락은 넓은 반석으로 되어 있어 쉬기에도 좋고 조망에도 좋다. 장산 금정산 천성산 대운산 등이 보이는가 하면 동에서 남에 걸쳐 푸른 바다가 시원하다. 바로 아래에 장안읍이 있고 바다 가까이에 기장읍이 있다. 아파트가 숲을 이루고 있는 해운대의 끝자락이 보이고 울산의 시가지도 보인다.
우리는 여기서 점심을 먹고 남쪽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봉우리 쪽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머리를 이루고 있는 바위벽을 조금 내려서면 벽을 돌아 내려가는 3층의 긴 철게단이 있다. 계단을 설치하기 전에는 여기를 지나기가 꽤 어려웠을 것으로 생각된다.
계단을 내려서면 바로 흙길이지만 벼랑을 이룬 너럭바위가 또 나선다. 달음산 제일의 멋인 바다에 빨려 들어가는 듯한 하산길이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여기서 뒤돌아보면 주봉의 모습이 우람하고 우둑하여 멋이 있다. 조금 내려섰다가 도도록한 봉우리에 오르면 산불감시초소가 있다. 여기서 내려다보면 물거품이 하얗게 금을 그리며 땅과 푸른 바다를 갈라놓고 있는 해안선 경관이 눈을 끈다.
산불감시초소를 지나 느긋하게 내려가는 넓은 등성이에는 드물게도 억새 아닌 갈대밭이 펼쳐져 있다. 저 아래 보이는 바다에 잠겨들 때까지 내내 등성이를 따라 내려가고 싶었다. 차가 기다리고 있는 광산 마을로 내려가려면 산불감시초소에서 10여 분 내려가다 둥근 봉우리를 앞에 두고 왼편으로 꺾어지는 길로 들어서야 한다. 갈림길에는 왼편으로 상리기도원(광산리쪽), 오른편에 산수곡 3km의 안내표지도 있고 길도 커서 길이 어긋날 걱정은 없다.
굵은 소나무 등 짙은 숲길을 조금 내려가면 큰 바위 아래 석간수 샘이 있다. 어제의 비로 제법 많은 물이 솟고 있었다. 길은 비탈을 오른편으로 돌아 넓은 등성이로 이어진다. 황토에 소나무 숲길이 느긋하다. 이 등성이 길은 얕은 잘록이에서 바위무더기를 앞에 두고 왼편 비탈로 내려간다.
먼저 내려간 일행들은 골짜기 바닥 삼나무숲 아래 공터에서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소리 높여 합창을 하고 있었다. 그곳은 개울물도 흐르고 있어 쉬기에도 좋다. 이 공터에서 개울을 따라 조금 내려가면 왼편에 큰 폐광터를 보게 되고, 이어 광산 마을 고샅길로 내려서면 곧 산행을 시작한 원점에 이르게 된다.
산행시간은 점심시간까지 합해 3시간에서 3시간30분이면 된다.
*산행길잡이
산행은 광산 마을에서 시작하고 또 끝내는 것이 가장 좋고, 대부분 이 길을 이용한다. 광산 마을은 장안읍 좌천역에서 1km 정도여서 택시를 타지 않아도 10여 분이면 갈 수 있고, 마을까지는 관광버스도 드나들 수 있다.
가)옥정사길(광산 마을에서 달음산을 향해 오른편) 마을 고속도로 교각 아래~옥정사~잘록이(왼편 길)~옥녀봉~취봉
나)폐광터길(광산 마을에서 달음산을 향해 왼편) 마을 고속도로 교각 아래~마을 고샅길~폐광터 앞~삼나무숲 공터~왼편 비탈길~등성이(오른편 길)~석간수~주능선~산불감시초소~갈대길~철계단~취봉
가) 또는 나)로 올라 다른 하나의 길로 내려오는 것이 가장 좋다.
그밖에 정관면 사무소~달산리~취봉~갈림길~원효사~화전초교 코스(약 4시간 소요)가 있고, 긴 산행을 하고자 하면 좌천역~상리~샘터~취봉~문래봉~함박산~병풍산철마산~영천초교 코스(약 7시간 소요)도 있다.
*교통
부산과 울산을 근거로 달음산을 찾아가야 한다.
부산 방면 열차편은 부전역에서 동해남부선 열차가 장안읍 좌천역까지 하루 7회(06:20, 07:05, 09:10, 18:30, 19:10, 20:00, 22:15) 운행. 좌천역에서 부전역 행 열차시각은 07:06, 07:43, 09:55, 19:08, 19:55, 20:42, 22:55.
시내버스편은 해운대에서 20분 간격(06:00~21:30)으로 좌천역까지 운행.
전철(부산)은 종착역이 노포동역인데, 이 역에서는 교통이 불편하므로 해운대역에서 내려 기장 또는 장안행 버스를 이용한다.
승용차나 관광버스는 동래에서 14번 국도를 타거나 해운대에서 31번 지방도를 타고 가다가 기장에서 14번 국도에 들어서서 장안읍 좌천에 이르면 된다. 기장에서 마을버스가 좌천까지 자주 다니고 있다.
울산 방면 열차편은 울산에서 동해남부선 부산행 열차가 하루 5회(06:08, 07:10, 09:20, 17:30, 19:33) 다닌다. 좌천역에서 울산행 열차 출발시각은 06:45, 07:42, 09:55, 18:10, 20:05.
울산에서 20분 간격으로 남창 경유 해운대행 직행버스를 이용, 좌천역에서 내린다.
승용차나 관광버스는 울산에서 곧장 14번 국도를 이용해 좌천으로 간다.
글쓴이 김홍주 소산산행문화연구소 소장
참조:달음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