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 야화
- 교가 일부 개정을 중심으로 -
교 장 유 의 규
중앙아시아에 샤리아르 왕이 살고 있었다. 그는 여성을 혐오하여 매일 새 신부를 맞이했다가 다음날 죽이는 일을 계속하였다.
샤흐라자드라는 처녀가 신부들이 죽게 되는 것을 막으려고 왕에게 시집보내달라고 했다. 그녀는 결혼 첫날부터 왕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이야기의 끝을 맺지 않고 다음날 밤에 마치겠다는 약속을 한다. 그녀의 이야기는 계속되었고 왕은 이야기의 끝이 궁금해
하루하루 그녀의 처형을 연기하다가 결국 단념하기에 이른다.
대전고등학교에 근무했던 1000여일은 천일 야화처럼 명문전통을 이어가기 위해 매일매일 새로운 이야기를 전개해 왔던 기간이었다.
학생들의 자긍심을 일깨우기 위해 엄지손가락을 치켜 들었고, 낡은 교사를 재건축하기 위해 첫 삽을 들었고, 밥맛이 없다는 기숙사
학생들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기숙사 급식을 직영했고, 자율형 공립고로 지정 받기 위해 교육과학기술부에서 논쟁을 벌였고,
자율형 공립고의 첫 입학생을 위해 입학전 학습컨설팅을 실시했고, 선진형 교과교실제 운영을 통해 전 교실에 전자칠판을 설치하여
최적의 교육환경을 조성했고, 학교평가 최우수학교와 대한민국 좋은학교로 선정되어 교육박람회에 출품했으며,
학생들의 더 큰 꿈을 키울 수 있도록 미국 선진대학을 탐방했고, 효과적인 입시지도를 위해 3학년 담임들의 입학사정관 워크숍을
마련했고, 국회의사당을 방문하여 44회 동문인 강창희 국회의장의 환영을 받았으며, 야구부의 전국체전 준우승 2회와 밴드부의
전국대회 최우수 수상을 통해 대능인의 재질을 뽐냈고, 100주년 행사에 어울릴 교사를 신축하여 준공했으며, 뻗어가는 대전고
학생의 기상을 상징하는 한모탑을 세웠다.
매일매일 명문전통을 이어가기 위해 수많은 일을 했지만 채 마무리 짓지 못한 이야기가 있었다. 대전고 교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교장으로 부임하고 처음 참석한 동창회 모임에서 어느 동문이 의견을 말해 주었다. 교가의 일부 표현이 시대에 맞지 않으니
교육적으로 검토해야 된다는 주장이었다. 그 후 교가를 일부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간간히 제기되었다. 대전고 동문이 아닌
사람한테도 전화가 왔었다. 전국의 고등학교 교가를 수집하는 사람인데 대전고 교가 가사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었다.
2011년 3월 14일에는 ‘대전고등학교 교가에 대한 의견 제출’이라는 민원이 접수되었다. 발신자는 ‘대전고 교가 가사 검토를 요청하는
동창회원(42회 32명)’이었다.
민원에 대한 답변을 보내기 위해서 교가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먼저 대학교에 있는 동문 교수들의 자문을 구했다. 2011년 4월 1일에
경상대학교 외 14개 대학의 국문과에 재직하는 동문 교수들에게 ‘대전고등학교 교가 바로 알기를 위한 검토 의견 요청’이라는 공문을
발송했다. 대전고 교가 해설(대전고 60년사 발췌), 대전고등학교 교가에 대한 의견 제출(42회 동문 민원)과 강인순 동문 의견
(홈페이지 발췌)을 첨부하여 보냈다. 2011년 4월 30일까지 의견을 제출한 동문은 없었다. 그래서 2학기까지 민원에 대해 학교에서
공식적인 답변을 보내지 못했다. 여러 동문들에게 자문을 구해 보았는데 의견이 분분해서 답변을 보류하기로 했다.
2011년 9월 5일에 ‘대전고 교가 검토 재촉구’하는 민원이 다시 접수되었다. 학교 밖에 있는 전문가와 동문의 의견을 구하는데
한계가 있어 내부적으로 검토하기로 했다. 먼저 재직 동문과 담당부서의 교사에게 관련 자료를 구해서 검토하도록 했으나
특별한 의견이 나오지 않았다. 2012년 4월 4일 전직원 회의를 열고 교가에 대하여 설명한 후 교가 개정에 대한 설문지 조사를 시행했다.
조사 결과, 개정해야 한다 73.2%, 개정하지 않는다 23.2% 이었으며 개정 범위를 묻는 설문에 53.7%는 ‘장백과 남팔’을, 41.4%는
‘남팔’을 개정해야 한다고 응답하였다. 개정할 경우 표현 문구로 백두산, 계백, 이순신, 대한, 한밭벌, 대한의 남아, 충무공, 광개토왕
등의 대안이 제시되었다.
2012년 10월 28일에 신축 교사 준공식이 있었다. 2010년 5월 6일 기공식을 갖고 출발한지 2년 6개월 만에 완공되었다.
연건평 4300평, 교실 100개, 3000평의 소운동장이 마련되었고 전 교실에 전자칠판이 설치된 최신식 건물이 되었다.
준공식 때에도 교가 개정에 대한 비공식적 언급이 있어 검토 작업을 계속하였다. 2012년 12월 8일 대동모(대전고등학교 동문을 위한 모임)
총회에 참석하였다. 대동모는 47회부터 64회까지 사회 각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여론 주도층의 동문들이 참여하고 있는 모임이었다.
회의 진행 중에 교가 가사를 개정하여 독창으로 불러 주면서 느낌이 어떤가를 알아보는 시간이 있었다. 그리고 회원들이 교가 개정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건의문을 제출하였다.
2012년 12월 24일에 학생 대의원회를 소집하여 교가 개정 문제에 대하여 논의하도록 하였다. 문법상 오류, 중국 장수에 대한 표현은
개정해야 하고 백두산으로 개정하자는 주장들이 나왔다. 결의는 대의원 상대로 여론조사를 실시하자는 것이었다.
설문조사 결과, ‘장백’은 48.4%, ‘남팔’은 75.0%, 멈출‘줄’은 67.1%가 개정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개정 문구로 백두산, 태백산, 대한 남아, 천지, 무궁화, 한반도, 멈출 수, 단군아, 화랑도, 대한아, 한모의, 금강, 태극,
글로벌 시대이므로 바꿀 필요 없다 등의 의견이 나왔다.
2013년 1월 8일 한모탑 제막식이 있었다. 한모탑은 신축 교사가 완공되고 나서 대전고등학교를 상징하는 조형물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따라 설치하였다. 건립 위치는 야구장 조회대 뒤편 화단이며 높이 8m, 폭 1.2m, 로 상단에 정5각형 시계와 교훈이 새겨져 있다.
이 탑은 교표를 바탕으로 하늘 높이 치솟는 대전고 학생의 기백을 형상화하였다. 5각형은 교표를 의미하고 세 개의 기둥은 백색 삼선으로
순결, 진실, 용기를 의미하고, 하늘로 뻗는 기둥은 뾰족한 끝으로 높이를 달리하여 역동성을 나타내었다.
2012년은 대전고 역사에 큰 전환점이 되었다. 신축교사가 완공되었고 자율형 공립고등학교가 운영되고 있으며 한모탑도 세워졌고
3·8 민주의거기념비도 놓이게 되었다. 100년 역사의 전환점에서 다음 100년을 내다보며 또 하나의 디딤돌을 놓은 한 해였다.
이에 새로운 다음 세대를 위하여 교가 개정에 대해 분분했던 이야기를 마무리해야겠다는 판단을 했다.
학생, 교직원, 동문들의 교가를 개정하기를 주장하는 의견이 교육적으로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교가는 학교가 추구하는 교육적 가치를 제시하고 학생들이 교가를 부름으로써 그 교육 목표를 달성하는데 이바지할 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뜻에서 교가 가사를 개정하기로 하였다. 가사는 작사자의 ‘작사정신’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개정하기로 했다.
그리고 학교 특성에 맞는 어휘를 선정하며 학생들에게 쉽게 이해되는 가사를 만들기로 했다.
1. 「男八」
대전고등학교에 입학하면 신입생들은 제일 먼저 교가를 접하게 된다. 교장선생님의 특강을 통해 교가의 의미를 배우고,
음악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교가를 부르게 된다. 교장으로서 교가를 설명할 때 ‘남팔’이 제일 어려운 과제가 된다.
남팔이란 어휘를 아는 학생은 거의 없다. 그리고 대부분의 학생은 남팔 장군을 기백이 있는 장군이라기보다 지조가 있는 장군이라고
받아들였다. 또한 중국이 동북공정을 통해서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요즈음 남팔 장군을 학생들이 추앙해야할 기백 있는 장군으로
설명하기는 부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면에서 교가를 개정해야 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남팔’에 대한 설명은 교가를 작사한 지헌영(10회) 동문이 ‘한모’21호 21-33쪽에 ‘대고교가 작사정신’이라는 제목으로
기고한 해설에 잘 나와있다.
“「男兒의 氣魄」은 「男八」二字를 冠하였다. 이「男八」二字는 저 唐代의 文豪 韓昌黎(退之)의 「張中丞傳後叙」에서
引入한 것이었다.「傳後叙」에 보이는 『男八男兒死耳 不可爲不義屈』(男兒 죽을지언정 不義에 굽혀서는 아니된다)에 보이는
男兒의 氣魄」을 强調한 것인데 「男兒」의 語感을 强化하기 위하여 「男八」을 모았던 것이다.”(한모 21호 30쪽-31쪽)
지헌영 동문의 해설에서 논란이 되었던 몇 가지 문제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첫째, “‘남팔아 남아’가 ‘八道江山에서 南쪽의 사내(兒)중 사내(男兒)’”라는 주장은 근거가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둘째, 신당서(新唐書) 권192 남제운 열전(南霽雲列傳)에 의하면 「張中丞傳後叙」에서 引入된 남팔은 남제운임을 알 수 있다.
○원문 : 乃以刃脅降 廵不屈 又降霽雲未應 廵呼曰 南八 男兒死爾 不可為不義屈 霽雲笑曰 欲將有為也 公知我者 敢不死 亦不肯降
○번역문ː--- 이에 칼로 항복하라고 위협하였는데 장순이 굴복하지 않았고, 또 남제운에게 항복하라고 해도 응하지 않았는데,
이때 장순이 남제운에게 “남팔(南八)아, 남아는 죽음이 있을 뿐으로, 의롭지 못하게 굴복해서는 안 된다.” 하자, 남제운은,
“장차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공께서 절 알아주었으니, 감히 죽지 않겠습니까.” 하고, 또한 항복하지 않았다.
셋째, 「男八」은「男兒의 氣魄」을 강조하기 위한 수식어로 덧붙여 사용되었다. 따라서 남팔이 문제가 된다면,
남팔을 대신할 수 있는 수식어를 찾으면 된다는 주장이 가능하다.
이상의 근거에서 ‘남팔’을 대신 할 어휘를 찾았다. 지헌영 동문이 대고의 인간상을 설명할 때 썼던 어휘를 검토했다.
“대한 남아, 충청 건아, 대고 남아의 내면에서 發動하여 躍動하는 香氣가 不屈防禦·決死突擊의 정신적 자세를 갖춘 것을
浮刻시키려 한 것이 이 후렴(人間像)이었던 것이다.” (한모 21호 30쪽-31쪽)
지헌영 동문은 ‘남아’를 수식하는 어휘로 대한, 충청, 대고를 사용했다. 이 중에서 ‘남팔’을 대신하여
‘대한 남아’로 표현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대한’은 우리나라의 역사적 정통성을 나타내고,
‘대한 남아’는 국민의 보편성을 갖춘 어휘로 대전고등학교가 추구할 인간상을 적절히 나타낸다고 판단했다.
2. ‘장백’과 ‘줄’
언어는 시대를 대변한다는 말이 있다. 요즈음 학생들이 사용하는 언어에는 낯모르는 말이 많다. 특히 카카오톡에 쓰이는 대화나
친구들끼리 어울릴 때 쓰는 언어에는 그들만의 말이 있다. 교실 속에서 사용하는 말도 어려운 말이 있다. 한편 학생들은 한자어로 된
숙어나 오래된 어휘에는 약하다. 교가에 나오는 어휘들도 학생들이 잘 모르는 말이 많이 있다. ‘장백’이란 어휘도 잘 모른다.
지헌영 동문이 사용한 장백은 다음과 같은 뜻으로 사용되었다.
大高校歌의 地緣表現인 제1절은 저 멀리 長白·白馬江·鷄龍으로 돌아 소용돌이처럼 되돌아 磁場中心인 大田으로→
大高의 동산으로→ .... (한모 21호 29쪽)
해설에서 장백은 장백산, 계룡은 계룡산을 의미하고 있다. 장백산을 ‘다음(daum.net)’에서 검색해 보았더니
‘중국에서 백두산을 이르는 말’로 설명되었다. 또한 우리 학생들은 장백산이 백두산을 지칭한다는 것을 거의 모르고 있었다.
중국식 호칭인 ‘장백산’ 대신에 학생들이 이해하기 쉽고 국민들이 널리 사용하는 우리말 호칭인 ‘백두산’으로 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학생과 교직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대부분의 학생과 교직원이 ‘장백’을 ‘백두산’으로 바꾸는 것을 더 원했다.
가사가 쉽게 이해되고 기억하기 쉬울 때 교가에 대한 친밀도가 높아진다고 주장했다. 또한 (장백의∼) 를 (백두산∼)으로 바꾸었을 때,
음악적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음악교사의 설명이 있었다. 이에 ‘장백의’를 ‘백두산’으로 개정하기로 결정하였다.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고 한다.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언어도 그렇다. 우리말의 어법도 시대를
이어오면서 많이 바뀌었다. 교가의 ‘멈출 줄 없다’는 현대 어업에 맞지 않는 표현이다. 어떤 방법을 나타내는 불완전명사 ‘줄’ 다음에는
‘안다, 모른다’가 온다, ‘인사할 줄 안다. 운전할 줄 모른다.’ 가능성을 나타내는 불완전명사 ‘수’ 다음에는 ‘있다, 없다’가 온다.
‘실수할 수 있다, 추측할 수 없다’. ‘줄’을 ‘수’로 바꾸는 것은 의미의 전달에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에 현대적 어법에 맞게 ‘멈출 줄 없다’를 ‘멈출 수 없다’로 개정하기로 했다.
학교에 부임하고 1000여일을 학교 발전을 위해 있는 힘을 모두 쏟았다. 학생, 학부모, 동문이 만족하는 학교 경영을 위해 노력해 왔다.
이제 학교를 떠나면서 천일야화의 마지막 이야기처럼 교가 개정에 대한 이야기를 남긴다.
학생들이 교가가 담고 있는 뜻을 이해하고 교가가 추구하는 인간상을 구현해 주길 기원한다.
2012. 1. 23.
대전고등학교 교장 유 의 규
첫댓글 모교의 전 유의규교장선생님의 학교 발전을 위한 노고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본인이 게시했던 "초안" 글의 내용) --->첫째, “‘남팔아 남아’가 ‘八道江山에서 南쪽의 사내(兒)중 사내(男兒)’”라는 주장은 근거가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다.<---36회강인순이 "남팔아남아"글 초안에서 한말입니다..근거없는 구전(口傳)이었습니다. 이후 친구들의 지적으로 게시글이 수정되었습니다.(관련글 :본카페 >홍보게시판>"남팔아남아")
"남팔"이 싫어 이를 고치자니 "장백"이 또 걸리고. 그러다 보니 "줄"에 대하여 손을 댄 것 같습니다. 오랜동안 개정 요구에 얼마나 고충이 많았을 까요.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대고 동문(同門) 중 4.19때 부정에 항거하여 순절(殉節)한 36회 이기태(李基泰), 손중근(孫重槿.중학교 때 손성호), 37회 고병래(高炳來)가 남팔남아(南八男兒) 입니다.
교가로 부터 스승님으로 부터 배운 피끓는 청춘의 결과입니다. 교정에 고인들의 위령탑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