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플랜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신 분들은 다들 느끼셨겠지만, ‘No Smoking Orchestra’의 멤버들은 기본적으로 록 밴드의 정서를 가진 자유로운 영혼들이었습니다. 공연 직전까지도 참으로 즐겁고 유쾌한, 어찌 보면 조금은 헐렁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덕분에 편한 점도 있었지만, 당황스러운 때도 많았죠.
공연당일, 단체 측은 갑작스레 두 명의 댄서가 무대에 오를 것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저희는 몹시 놀랄 수밖에 없었죠. ‘아니, 우리가 공항에서 데려온 멤버 중에 댄서가 없었는데?’
곧이어 두 명의 외국인 여성이 옷과 가면 등을 잔뜩 가지고 극장으로 들어왔습니다. 예, 공연에서 탈을 쓰고 춤을 추던 두 명의 여성 댄서들이 바로 그들이었죠. 한 눈에도 좀 노시는(?) 분 같아 보여 순간 경계심이 발동했습니다.
"당신들 누구야? 노 스모킹 오케스트라와는 어떤 사이지?"
"우리도 잘 몰라. 쟤네 어제 만났어."
“어제? 대체 어디서?? ”
“우리 남이섬에서 퍼포먼스 하는데, 쟤네가 어제 와서 보드라고...”
“남이섬? 뭐야? 거긴 왜 간 거야?”
“그건 잘 모르겠고… 하여튼 우리 공연하는 거 보더니 오늘 오라고 하던데?”
"...... "
사연은 이랬습니다. 공연 전날 모국 세르비아 대사관 직원들을 만난 '노 스모킹 오케스트라'는 그들을 따라 남이섬으로 당일치기 관광을 떠났고, 거기서 퍼포먼스를 하던 두 여성 댄서를 만난 것이었습니다. 밴드는 그들의 공연이 좋았던지 즉석에서 이런 제안을 한 것이죠.
“우리 내일 LG아트센터에서 공연할 건데, 너희도 같이 하자!”
하여튼 여러모로 사람을 당황시키는 재주가 있는 그들이었습니다.
춤추게 해줘! 제발! 객석은 정말 다양한 연령의 관객들로 가득 찼습니다. 노 스모킹 오케스트라의 음반이 국내에 정식 발매된 게 불과 공연 2주 전이었음을 고려한다면, 이들의 음악을 전혀 들어보지 못한 채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도 상당히 많았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무엇이 그들을 이곳으로 모이게 하였을까요?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던 영상처럼, 노 스모킹 오케스트라는 장엄한 러시아 국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하나둘씩 무대에 등장했습니다.
사실 이들의 공연 실황 영상을 보며 걱정되는 점이 한가지 있었습니다. 영상에서 보이는 광란의 분위기가 과연 우리 극장에서도 가능할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아무래도 국내 관객들이 서양 관객들보다는 조신한(?) 편이고, 더군다나 LG아트센터는 관객이 쉽게 엉덩이를 떼지 못하게 만드는 나름의 분위기를 갖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들이 누굽니까. ‘순진녀도 키스하게 만들고, 관 속에 누운 드라큘라도 깨우는 초절정 쿵짝리듬’의 소유자, 노 스모킹 오케스트라가 아닌가요! 우려는 공연 시작과 함께 눈 녹듯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미 몇몇 관객들이 자리에서 몸을 들썩이기 시작했기 때문이죠.
공연 중반 보컬 Dr.Nelle는 자연스레 관객들의 스탠딩을 유도했습니다. 정말 순식간에, 전 관객들이 기립하여 신나게 몸을 흔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날 그 자리에 있던 모두 이런 마음이 아니었을까요?
‘어서 춤추게 해줘! 제발!’
예지원씨의 깜짝 등장 공연 분위기는 ‘Was Romeo a Really Jerk?’ 연주 시 예지원씨가 무대에 등장하며 더욱 달아올랐습니다. 공연 후 몇몇 분들이 공연 전에 미리 짜고 한 게 아니냐고 물으셨는데… 에이, 노 스모킹 오케스트라가 그렇게 치밀한 사람들이 아니죠. 노 플랜 오케스트라 라니까요.
하긴 저희도 놀라긴 했어요. 하고많은 관객들 중에 하필이면 연예인을 고르다니, 또 아무 준비 없이 끌려나간 예지원씨가 그렇게 멋진 춤을 보여주다니! 역시 배우는 남다른 아우라와 끼가 있는 가 봅니다.
진짜로 그렇게 길 줄이야 공연 3주 전, 다른 단체들처럼 '노 스모킹 오케스트라'도 공연 전 반입할 장비의 리스트를 먼저 보내주었습니다. 그런데 리스트에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죠. 바로 '바이올린 활 2.5m' 라는 문구였습니다. 저희는 '0.25m를 잘못 표기한 것이겠지…' 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설마 2.5m짜리 바이올린 활이 있을 리가 없잖아요?
아… 근데 진짜로 그렇게 길 줄이야… ‘Evergreen’ 이란 곡을 연주할 때, 노 스모킹 오케스트라는 관객 두 명을 무대에 올려 이 활을 꺼내 들게 했습니다. 그리고 바이올린 연주자 Dejan Sparavalo가 이 활 위, 아니 아래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묘기를 보여주었습니다. 심지어 에밀 쿠스트리차는 그 활에 기타를 연주하며, Dejan과 ‘베틀’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묘기에 가까운 이들의 쇼맨십은 공연 중간 중간 적절히 삽입되어 공연장 분위기를 더욱 돋구어 주었습니다.
이보다 더 신날 순 없다 노스모킹 오케스트라는 공연과 관련해서 극장에 요구했던 사항이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오직 한 가지만은 거듭해서 확인에 확인을 거듭했죠. 그것은 바로
"어떤 경우에도 관객들을 제지하지 말라"라는 것이었습니다. 관객 여러분도 눈치 채셨을 거에요. 이 날은 극장 내에서 제지가 거의 없었다는 사실을요.
공연 마지막, ‘Wanted Man’이란 곡을 연주하던 순간, 수십 명의 관객들은 무대 위에 올라가서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몇몇은 밴드 멤버들이 데리고 올라왔지만, 반 이상은 자신의 흥을 주체하지 못하고 무대 위로 뛰어올라가신 분들이었죠.
이날만큼 많은 관객이 공연 중 무대 위로 올라왔던 것은 LG아트센터 개관 이래 최초였습니다. 아마 올라가고 싶은데 참느라 고생하신 분들도 꽤 많으셨을 겁니다. 사실 저희도 참느라 정말 힘들었거든요.
아, 정말 그렇게 미친 듯 신나는 순간이 다시 올까요?
Good Start !! 공연 후, 노 스모킹 오케스트라는 관객들의 열광적인 반응에 한껏 고무된 듯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바로 이동해야 하는 빡빡한 스케줄에도
불.구.하.고. 뒤풀이 술자리는 새벽까지 이어졌습니다.
사실 LG아트센터 공연은 노 스모킹 오케스트라의 첫 번째 아시아 공연이었습니다. 한국-일본-호주로 이어지는 투어를 앞두고, 그들은 아시아 관객들의 반응이 어떨지 걱정이 많았다고 (정말?) 합니다. ‘Good Start’를 자축한다며 밤새도록 마시는 데, 이거 뭐 말릴 수가 있어야죠.
다음 날 아침 8시, 최악의 경우 일일이 방에 들어가서 한 명씩 버스에 태울 각오를 하고, 호텔로 향했습니다. 근데 이게 웬일? 모두가 멀쩡한 얼굴로 짐 싸들고 로비에 나와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하긴 투어 하루 이틀 다니는 분들이 아닌데… 괜한 걱정을 했나 봅니다. 역시 프로페셔널!
아, 지각자가 딱 한 명 있긴 했습니다. 어젯밤에 피곤하다며 일찍 들어간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님! 멤버들이 툴툴거릴 때쯤 눈이 퉁퉁 부은 채로 나오시더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