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남대로 시발점인 해남의 남겨놓은 첫 구간이 그간 짐스러웠다.
가는 길에 환승 막간을 활용하여 구(舊)나주역에 들러 보리라.
처음 떠나던 때처럼 나서면 누릿재도 넘어볼 수 있으리라.
(8회1) 학생독립운동의 진원지 옛 나주역사(驛舍)
나주역 도착 즉시 예전의 나주역으로 갔다.
남고문 지근(500m정도)인데도 그냥 가야만 했던 지난 번에 비해
걸음이 퍽 부드러워 산뜻한 출발이었다.
이 곳, 옛 나주역사(驛舍:나주시 죽림동 60-1)는 우리나라의 3대
항일 독립운동의 하나인 학생독립운동의 진원지다.
일제하인 1913년 7월 1일 호남선열차의 개통에 따라 신축한 근대
건축물로 자금은 전남도 기념물 제 183호로 보존, 관리되고 있다.
건물의 유지를 위해 일본기와를 바꾼 것 외에는 기본 구조와 골재,
목조 등이 초기 그대로 란다.
개찰구, 매표창구 등의 직원을 마네킹으로 대치했을 뿐 사무실의
집기비품, 대합실의 의자, 통일호가 운행되던 때의 열차시각표와
운임표도 그대로 걸려 있다.
벽시계도 현재 진행형이고 고객(열차 이용)만 갖춰진다면 현재형
역사같은 느낌이다.
통칭 '나주역사건'은 1929년 10월 30일 오후 4시경에 일어났다고
안내판은 말한다.
일본인 학생들의 한국 여학생 희롱에서 비롯된 사건이다.
나주에서 통학중인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 (현 전남여고) 박기옥
(朴奇玉) 등에게 일본인 통학생 후꾸다(福田) 등이 민족차별적인
조롱과 댕기머리를 잡아당기는 등의 희롱을 했다.
여학생의 동생 박준채(朴準埰:광주고보)가 이를 힐책했으나 일본
학생들은 '조센징' 운운하며 오히려 적반하장이었다.
쌍방의 시비가 확대됐을 때 현장에 있던 일인 경관의 편파적 행동,
일본인 신문의 편벽 기사 등이 더욱 자극제가 되어 조선 학생들의
민족적 분노를 격앙시켰다.
상 / 옛 나주역사 전경
중상 / 대합실(맞이방)과 개찰구 직원(마네킹)
중하 / 역무실, 매표 직원(마네킹),열차시각 및 운임표(벽 상단)
하 /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
11월 3일을 기해 광주에서 시작된 학생 항일 봉기는 전남 전역을
넘어 도시에서 농촌으로, 중등학교에서 초등학교로, 국내에서 국
외로 요원의 불길처럼 퍼져 나갔다.
당시의 통계에 의하면 54개 초등학교,136개의 중등학교와 4개의
전문학교, 간도의 8개교가 이 운동에 가담했으며 총 54,000 여명
(간도 제외)의 참가학생중 퇴학 582명, 무기정학 2,330명이었다.
이 항일운동은 이듬 해 3월까지 계속되었다.
표면적으로는 일본인 학생들의 한국 여학생 희롱에서 비롯된 것
처럼 보인다.
그러나 1919년 3월 1일의 기미독립선언과 1926년 6월 10일 순종
국장일의 6. 10 만세 등, 억압과 수탈 및 말살정책에 대해 10년간
다방면에 걸쳐 다양한 방식의 조직적인 항거가 날로 거세어 가는
중이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6회1) 목숨 걸 만한 누릿재인가
영암에서 도중 하차했다.
월출산 누릿재를 넘기 위해서 였다.
걷기가 부드러워진데다 울창한 숲이 휑하니 뚫렸고 가시덩굴들이
맥없이 꺾여서 재넘어 강진땅 월남리로 내려가기 용이한 때니까.
80~90년대에 자주 오르던 월출산의 한 들머리 천황사 입구까지는
택시를 이용했다.
시간 절약이 이유지만 지난 번 북상때 걸었던 옛길이니까.
천황사(天皇寺)의 옛 이름은 사자사(獅子寺)란다.
잦은 화재로 천년 사찰의 세(勢)가 위축되었으며 법당과 요사채로
사용되던 1동마저 2001년의 화재로 소실되었다.
현재는 임시 법당으로 사용하는 요사채 1동이 겨우 복원되어 대한
불교 법화종(法華宗)의 법맥(法脈)을 이어가고 있다고.
사자저수지 지나 누릿재 입구의 여름철 풀장 겸 음식점 '물통거리
농원'이 철을 잃어 지저분하고 을씨년스러웠다.
널다란 마당에 진돗개 두 마리뿐 인적이 없이.
한 마리가 묶인 채 연방 짖어대지만 또 하나는 자유천하다.
첫돌도 채 지나지 않은 듯 애티나는 놈의 붙임성이 어찌나 좋은지
마구 덤벼들며 앞서거니 뒤따르거니 했다.
산야를 누벼서인지 군살 없고 날씬해서 준마에 버금갈 듯 한데다
아주 영특해 보였다.
물통거리농원
저 애에겐 자유를 주고 자기만 구속한다고 심통스런 인상이다.
누릿재 옛길
이 놈 이름을 진의(珍義)라고 부르겠다(진돗개는 의롭다)
처음에 길 잘못 들었을 때 앞뒤를 맴돌며 따라가던 진의는 내가
가려는 곳을 알아차렸는지 다음에는 계속 앞에서 날 이끌었다.
잎이 다 진 활엽수 사이로 월출산 암봉들이 다가왔다.
정 다산이 탐진촌요(耽津村謠)15수중 첫수에서 월출산을 두고
봉봉이 도봉산을 닮았다(峰峰都似道峰尖)고 한 것은 귀양가는
중에도 월출산을 제대로 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그의 집이 양주땅에 있어서 도봉산을 잘 알고 있었듯이 내
누옥 역시 우이동이라 나는 도봉산을 뒷정원이라 하지 않는가.
얼마 안가서 오를 수록 분탕질만 쳤을 뿐 실속을 차리지 못한 멧
돼지들의 흔적이 넓어져 갔다.
자기네 양식을 다 도적질해 간 인간들(약초꾼)로 인해 헛 고생만
한 멧돼지들이 시장끼를 참고 오수에 빠져 들었겠거니 연민하며
누릿재 코 앞에 이를 무렵이었다.
앞서 올라가 보이지 않던 진의가 저들의 단잠을 깨웠나.
가히 송아지에 견줘도 될 만한 대형 한 놈이 노성(怒聲)을 발하며
진의를 쫓고 있었다.
달아나던 진의는 앞을 막는 딴 놈에게 또 쫓겨서 진퇴 양난인 듯,
서로 이리 뛰고 저리 튀는 양상이더니 진의의 외마디 비명이 들린
후로는 정적이 이어갔다.
늙은 이는 비겁하게도 거꾸로 걷고 있었다.
대간과 정맥, 산들에서 나는 저들과 호의적이라고 할 수는 없어도
적대적 관계라고 생각해 본 적 없고 그럴 이유도 없었다.
언제나 그들이 날 외면해서 조우하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잠시 생각을 하게 했다.
어떤 이유에서건 노한 상태에서 공격형이 된 그들과 굳이 조우를
자처해야 하는가.
그래서 후퇴를 하면서도 진의가 아른거려 미쳐갈 지경이었다.
이 세상에서 처음 연을 맺은지 겨우 1시간 만에 그녀는 나를 위해
희생됐는지도 모른다 생각되었으니 말이다.
전장에서 부하를 죽게 하고 패퇴하는 상사의 마음이 이럴까.
천적부재로 왕중 왕이 된데다 번식력이 왕성하여 날로 더욱 늘어
나는 멧돼지들 때문에 농촌의 원성이 자자해도 나는 그들을 일정
부분 변호하기도 했다.
저들을 포살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원론적 동의는 하지만 적극적
이지도 않던 늙은 이다.
그러나 잠시나마 꼬리치며 매달리던 진의가 아른거리는 이 시간에
만은 저 멧돼지들이 죽이고 싶도록 원망스러웠다.
목숨을 걸만한 누릿재인가?
그까짓 누릿재가 뭐길래 늙은 이 옹고집이 결국 진의를 죽게 해?
심한 자책감과 허탈한 마음 어찌할 줄 모르며 농원마당에 당도했을
때, 내 눈을 의심케 하는 일이 일어났다.
처음에 잘못 들어 헛걸음했던 쪽에서 진의가 내게로 달려왔으니까.
눈물이 핑 돌도록 반가워서 끌어안으려고 했을 때 그녀가 잽싸게도
먼저 내 양어깨를 타고 올라왔다.
자기도 감개무량한 듯 내 얼굴을 마구 애무하려 했다.
그런데 진의를 자세히 살펴보다가 나는 기겁을 했다.
그녀의 우측 뒷쪽 옆구리 두 곳(10cm정도 간격)이 직경 3cm 쯤 푹
패어 있지 않은가.
털과 가죽은 물론 살점까지 떨어져 나간 것이다.
멧돼지가 조금만 더 깊이 물었더라면 진의는 정녕 처참한 최후를
맞고 말았을 것이다.
황급히 배낭의 비상약을 꺼냈다
마침 우편물을 가지고 온 포스트맨(postman)의 도움을 받아 약을
듬뿍 발라주었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진의와 나 모두 진정이 된 듯 했다.
잠시의 악몽에서 깨어난 것 처럼....
진의에게 좋은 것들을 먹이도록 음식값을 주려고 농원의 누군가를
기다렸으나 허사였다.
멧돼지에게 물린 자국
멧돼지 이빨이 1cm만 더 깊이 들어갔더라면 진의는 영영 보이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될 때 아쩔했다.
약(마이신연고)을 듬뿍 발라주었더니 고맙다는 표정인 듯.
저수지 앞까지 배웅나왔다가 돌아가는 진의.
이별이 싫은가 맥이 빠진 모습이다.
이번에도 누릿재는 끝내 넘지 못했으나 불행중 다행이라는 기분인
까닭인지 걸음만은 가벼웠다.
진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내게로 달려오지 않고 도리어 내게서
왜 멀리 달아났을까.
죽음을 각오하고 이 늙은 이를 보호하려고?
그래서 저들을 내게서 멀리 떼어놓으려고 유도한 것이었을까.
대를 이어오는 의견(義犬), 충견(忠犬)의 명예와 영예를 지키려고?
얕잡아 보일 만큼 왜소한 진의가 저들의 오수를 방해하지 않았다면,
설혹 잠에서는 깨어났다 해도 나를 보고도 못본 척, 모른 체 했거나
후닥닥 달아났을 지도 모를 일이다.
자기네 보다 덩치가 월등히 크고 시꺼먼 괴상체니까.
사고력이 없는 동물 세계에서는 시각적 체구의 우열이 기선 제압에
결정적(절대적)으로 작용하니까.
일진 광풍후 편하고 여유로워지니까 별 생각이 다 나는 것이겠지.
진의는 사자저수지 앞까지 따라오며 나를 배웅했다.
그녀가 위험한 곳에 뛰어들지 말고 행복하기를 빌며 헤어졌다.
그랬어도 돌아가지 않고 서있는 진의가 자꾸만 돌아다 보아졌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