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세한 설명이 오히려 구차한 지리산. 100여개의 산행코스가 있다지만, 그 중에서도 지리산 전체를 아우르는 46.2km 정통 지리 종주 코스로 불리우는 화대종주를 5월 11일에 무박으로 다녀왔습니다.
장거리 종주 산행에 관심이 많아질 무렵부터 염두에 두고 있었던 화대중주를 김세권 형으로부터 제의를 받고 함께 실행에 옮기기로 합니다.
검색을 열심히 하였으나 성삼재에서 중산리로 하산하는 산행을 예고하는 산악회는 몇군데가 있긴 했으나, 화엄사에서 대원사로 향하는 코스를 잡은 산악회는 찾을 수가 없어서 고속버스를 이용하기로 마음먹고 운행시간을 확인하던 중에 '한국의 산하'에서 우연히 '반더룽산악회'가 고지한 예고를 보고 동행하기로 하고 예약을 합니다.
간병 서비스가 중단이 된게 40여일이고 그 이전에도 부업이다, CBS 촬영이다 해서 정기산행 외에는 산행을 제대로 해본 게 3개월이 넘은지라 몸 상태가 심히 불량하긴 하지만, 세권 형의 간곡한 부탁과 따뜻해지는 날씨와 함께 나태해져 가는 내 자신에게도 단도리도 좀 할 겸 해서 이리저리 연구해 봅니다.
장거리 산행을 객기 쯤으로 치부하는 분들도 상당수 있는데, 장거리 산행을 위해 평상시에 얼마나 많은 노력과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지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그렇게 어이없는 말씀은 삼가하시리라 기대합니다.
이번 화대종주만 해도 약속은 했는데 간병인은 오지 않아서 제가 궁리 끝에 취한 방법은, 살고 있는 빌라의 계단 겟수를 헤아리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10여일을 4층 연립을 옥상까지 5층으로 늘려 하루에 100여번을 오르내렸습니다. 빌라, 하루에 100번 올랐다 내려갔다 해보세요 엄청 지겹습니다. 그래도 만보기에는 20,000보가 찍히기 어렵습니다.
'화대종주' 이 정도 가지고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힘들지만 고생했지만, 성공했고 그래서 김세권 형과 제 자신이 자랑스럽기도 하고 스스로 자신에게 고맙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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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무박 산행의 출발 시간이 토요일 밤 10시인데, 장거리 산행이니 만큼 양재역에 출발 시간이 밤 8시로 되어 있군요.
양주에서 서울 남쪽의 양재역까지 거리가 만만치 않아 서둘렀슴에도 불구하고 출발 예정 시간 3분 전에 간신히 도착했는데, 놀라운 것은 정시에 출발하는 것이었고 경유지인 사당역에서 산행대장의 안내를 듣고 또 다른 일정의 산행을 위해 리더를 한 사람 정해주고는 여자 총무에게 당부하고 대장은 내리고 차는 출발합니다. 고속도로 버스 정류장에서 몇 사람을 더 태워 33명의 인원이 됩니다.
02:06 화엄사 입구
중간 탈출로로 세석산장에서 거림으로, 천왕봉에서 중산리로 체력과 시간을 유념해서 늦어도 오후 7시에는 차가 출발할 수 있게 협조해 달라고 총무가 신신당부를 합니다. 이 산악회에서 여러번의 화대종주를 한 적이 있는데, 이 정도 인원이 산행을 하면 10명 정도가 완주를 한다는 군요. 여러곳으로 하산하므로 총무는 차에 남고 나머지는 조금 긴장한 표정으로 산행을 시작합니다.
지리산을 여러번 가보기는 했지만 이 화엄사 코스는 83년 중산리로 종주했을 때 외에는 와 본 적이 없어서 선두를 놓치지 않으려고 바짝 붙었으나, 어찌나 빨리 진행을 하는지 선두를 놓치고 2진의 선두가 되었는데, 몇군데 갈림길에서 망설였으나 선답자의 산행기를 주의깊게 본 게 많은 도움이 되어서 코재까지 잘 진행을 합니다. 예전의 기억으로는 코재에서 엄청 힘들었던 기억이 남아 긴장했는데, 흙길이라 엄청 미끄러웠던 등로가 돌을 세심히 박아서 계단같이 만들어 놓아 다소 싱겁게 올라 챕니다.
04:02 노고단산장.
좀처럼 땀이 나지 않습니다. 온도도 그렇겠지만 아무래도 몸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운동이 부족함을 실감하면서 힘든 하루가 되겠구나 하는 예감이 듭니다.
05:36 일출.
임걸령을 지나 삼도봉을 오르던 중에 일출입니다. 노고단에서 올려다 본 하늘에는 별이 엄청 쏟아지는 맑은 날이어서 내심 근사한 일출을 기대했는데 잡목 사이로 일출을 맞이하니 좀 아쉽습니다.
05:41 삼도봉
전남과 전북 그리고 경남이 갈라지는 삼도봉입니다. 예전에 어떤분의 산행기를 봤는데 이 분이 전국의 여러곳의 삼도봉을 답사한 기록이었는데 흥미로웠던 기억이 나는군요.
삼도봉을 오르는 중에 선두와 쳐져서 혼자 빵을 먹고 있는 리더를 만납니다. 초반에 오버페이스를 한 듯 몹시 힘들어 보입니다. 결국 이 사람은 완주를 하지 못했는데, 리더라는 사람이 초반에 자기 혼자 내빼더니 결국에는 지쳐서 완주도 못하다니 웃기는 일입니다. 더욱 황당한 일은 앞에 간 사람의 숫자인데, 21명이라고 합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처음에 7~8명이 뛰듯이 달려 나갔고 세권형과 내가 2진의 선두로 가면서 두명을 추월해서 5~6명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21명 이라니..... 나중에 보니 제 생각이 맞아서 우리 앞에는 5명이 먼저 갔습니다.
나도 역시 이 즈음부터 힘든 산행이 시작되었습니다. 평지와 내리막은 어찌어찌 속도를 내어 보는데, 오르막은 운동부족임을 실감하면서 속도가 나지 않습니다. 그동안 꾸준이 새벽산행을 했던 세권형은 역시 오르막에 강했으나 내리막엔 약해서, 내가 내리막에 속도를 내어 내빼면, 오르막에서 붙는 방법으로 조금이라도 시간을 줄여볼 요량으로 진행합니다.
부부 산객이 비박을 하고 짐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허옇게 서리가 내려있고 추워서 온도계를 보니 영하 2도를 가르키고 있습니다.
07:42 연하천산장
산장을 지나 물을 부어 놓았던 전투식량을 먹으려 했으나 아직까지 기온이 오르지 않은 상태에서 찬물로 된 밥이라서 덜덜 떨면서 먹다가 추워서 절반도 못먹고 길을 나섭니다.
08:13 형제봉입니다.
주능선 상에서의 절반에 해당하는 지점입니다. 오늘 산행하는 화엄사에서 대원사까지 전체 구간에서는 절반에 미치지 못했으나 화엄사에서 노고단까지는 줄곧 오르막이었고, 천왕봉에서 대원사까지는 다소 부침이 있긴하나 전체적으로는 하산길이어서 심리적으로도 오늘 산행의 절반에 이르렀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곳입니다.
08:37 벽소령산장
천
천왕봉이 선명하군요. 중간에 세석산장이 보이고 촛대봉 왼쪽으로 촛대봉보다 낮아 보이는 천왕봉이 보입니다.
10:48 세석산장과 촛대봉으로 오르는 평전의 모습입니다.
장터목산장(12:14)을 지나 천상으로 오르는 마지막 관문인 통천문입니다. 이 곳을 오르는데 왼편 그늘진 곳에 얼음이 있더군요.
13:14 천왕봉
오늘 산행의 정점인 청왕봉입니다. 산행시작 11시간 8분이 지났습니다. 산행대장에게 대원사로 하산한다는 문자를 보내고 어렵게 증명사진을 남김니다. 늘어선 줄을 기다릴 여유가 없어 궁색하게 사진을 찍게 되어서 세권 형에게 미안합니다. 처음 와보는 지리산이고 천왕봉인데...... 모자에 하얗게 일은 땀에 절은 소금기가 오늘 그가 쏟은 열정을 보상하는 훈장처럼 더욱 빛이 납니다.
중봉에서 보는 천왕봉입니다.
천왕봉까지는 내가 버벅댔다면 이제부터는 세권 형의 차례인가 봅니다. 속도가 너무 느려져서 서서히 시간이 걱정되어 물어보니 걷기가 힘들다며 무릎보호대를 바꿔보지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원인은 허기가 져서 그런건데 애끗은 무릎 탓만 했던 겄입니다. 전투식량을 먹다 말고 자유시간 같은 과자만 몇 개 먹었을 뿐이어서 허기가 져서 힘이 빠졌던 것이었습니다. 미숫가루 남은 것 하고 핫초코 분말을 물에 타고해서 건빵으로 요기를 하고 나니, 살 것 같다고 합니다. 집에서 양재역으로 오는 전철역에서 떡을 사려했으나, 짐이 된다고 형이 못사게 했는데 그 일을 엄청 후회합니다.ㅎㅎㅎ
15:05 치밭목산장
내가 물을 떠온 사이에 컵라면을 앞에 놓고 침을 삼키고 있던 세권 형의 모습이 지금 생각하니 너무 웃음이 나는군요. 국물 한 방울까지 싹싹 비우고 나니 살 것 같습니다. 이래저래 이곳에서 30여분을 머물게 되었군요.
16:43 유평리 14시간 37분의 마감입니다.
오늘 산행의 실질적인 날머리입니다. 명색이 화대종주인니 만큼 대원사까지 가야하나, 장거리이다 보니 개인간의 시간 차이가 클 수 밖에 없어서 지정 식당으로 가야하니 마지막 갈림길에서 대원사로 가는 길을 버리고 새재쪽 길로 방향을 틀어 나온 것입니다.
이 곳에서 차로 5분 거리라던 식당은 20여분을 부지런히 가도 보일 기미가 없어 지나가는 승용차를 얻어 탔는데, 이 분 말씀도 여전히 차로 5분 거리랍니다. 거, 참.....
식당에 도착해 보니, 먼저 온 분들이 다섯인데 그 중 13시간 걸려 제일 먼저 내려오신 분이 62세의 여성분이십니다. 50대 중반으로 밖에 보이질 않는데 그저 대단하시다란 말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가 나중에 하도 시간을 질질 끌어도 다른 사람들은 보이질 않기에 우리가 마지막인가 했는데 우리 뒤에 한 시간 쯤 지나 줄줄이 오더니 오늘 완주자는 15명이 되었습니다. 32명에 15명이라 상당히 양호한 성적이라고 합니다.
식당에서 제공한 차편으로 주차장에 가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중간에서 내려 오는 사람들이 늦어지는 지 8시가 넘어서야 차가 옵니다.
이러저러 길이 막혀 서초에 도착한 시간이 새벽 한 시이고, 그 늦은 시간에도 뒷풀이를 하느라고 생맥주 한 잔 하고 집에 오니 세 시가 되었습니다.
첫댓글 두분 대단하십니다.
장거리산행은 사람을 묘하게 자극하고, 긴장하게하고, 자꾸생각나게하고.그야말로 짜릿짜릿한 살아있는 한형태라고 말할수도있는것같읍니다
정말이지 두분 대단하십니다 말로마 듣던 지리산 종주산행을 우리 회원님들이 하셨다니 정말 엄청나십니다 종주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