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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스와 타나토스
죽음을
생각할 때면 떠오르는 작품 중 하나가 에곤 실레(Egon Schiele)의 <소녀와 죽음>(1915년작)이다. 에로틱한 그림 속
요염한 포즈의 나부들을 그린 화가로서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겠지만, 나는 노골적인 성적 표현으로 가득한 그의 그림들 속에서 죽음 충동에
시달렸을 예술가의 불안한 심리를 느낀다. 1918년, 당시 유럽에 창궐하던 스페인 독감으로 삶을 마감했던 실레의 삶은 잠시이지만 개인적으로나마
행복감으로 충만할 수 있었다. 아내 에디트의 뱃속에는 그의 아이가 자라고 있었고 제 49회 ‘분리파 전시회’의 성공에 힘입어 그림 주문은 쏟아져
들어왔으며 드로잉 가격이 세 배 이상이 뛰었기 때문이다. 이런 삶의 클라이맥스에서 그는 좀 더 삶이 지속되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그러나, 죽음의 사신은 그의 손을 잡고 사후의 세계는 그다지 음산하지 않다며, 작품 <소녀와 죽음>을 그릴 때 실레, 당신도 그것을
표현하지 않았느냐며 그가 죽음의 초청을 거절할 수 없게 쐐기를 박는다. 그리고 얼마 뒤 그의 부인 역시 그림에서처럼 죽음의 사신의 손에 이끌려
그의 뒤를 따른다. 그와 절친한 화가였던 뢰슬러(Arthur Roessler)는 실레의 죽음의 침상을 지켰고, 훗날 다음과 같은 그의 유언을
세상에 전했다.
“세상 사람들은, 이제, 아마도, 자유로워질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들을 떠나야 합니다. 떠난다는 것, 죽는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며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살아가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지요. 나는 살면서 많은 사람들을 괴롭혔습니다.....(이하 생략)” (??에곤 실레??,202쪽, 프랭크 화이트포드, 시공사)
물론 이는 인플루엔자에 감염되어 고열에 시달리는 사람이 마지막으로 한 말이 아닐 수 있고, 훗날 세상이 그를 낭만적으로 추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뢰슬러가 지어낸 말일 수도 있다. 사실의 여부를 떠나, 유언의 고백처럼 그는 살아가면서 여인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그녀의 이름은 발리 노이칠(Wally Neuzil)이다. <소녀와 죽음>에서 실레는 스스로를 검은 옷을 입은 죽음의 신으로 표현하고 자신의 모델이자 연인이고 하녀였던 노이칠을 자신의 가슴에 슬픈 얼굴을 묻고 있는 소녀의 모습으로 그렸다. 1911년 초, 스물 둘 나이의 실레는 스승 클림트의 소개로 아직 열 입곱 소녀였던 노이칠을 알게 되고 크루마우라는 마을에서 동거생활을 시작했다. 이 그림을 그린 해까지의 4년간의 동거 생활은 실레 예술의 꽃봉오리가 활짝 피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실레는 예술가의 모델로서, 한 남자의 여자로서 자신의 곁을 지켜준 그녀에게 작별의 편지를 보낸다. 실레는 천박한 노이칠이 자신의 평생 배필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겼던 것이다. 갑작스런 작별 통보에 노이칠은 에곤 실레를 놓지 않겠다고 집착했을 수도 있다. 실레 역시도 그녀와의 영원한 헤어짐이 마음 아팠기에 여름휴가에는 섬으로 여행을 가자며 그녀에게 제안도 했다. 하지만 노이칠은 실레의 이기심에 등을 돌리고 제1차 세계대전에 간호사로 종군해 1917년 달마띠아에서 병사했다. 실레가 그린 <소녀와 죽음>의 소재는 서구 중세 사회 특유의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를 살짝 틀어 우의적 형식을 취하고 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소녀, 오히려 죽음을 꽉 끌어안고 집착하는 소녀의 간절한 애원은 죽음과 함께라도 사랑을 이루고 싶은 욕망을 드러내고 있음이오, 이 때 그런 소녀를 위로하면서도 내적으로 갈등하는 사신의 모습 또한 전혀 두려운 존재가 아니다.
그림에서와
같이 노이칠이 사신에게 목숨을 내어주었던 때 그녀 나이는 고작 스물 세 살이었다. 그런데 그녀보다 70년 정도 앞선 시대에 미 동부의
암허스트(Amherst)에는 서른이 채 되기도 전에 ‘난 무슨큰 일이 생기지 않는 한 절대로 집을 떠나지 않을 거야’ 라고 선언하고 평생을
은둔자로서 고독 속에 살다 죽음의 사신을 기꺼이 맞아들인 한 여류시인이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enson)이다.
비천한 신분인 노이칠과는 달리 암허스트 유지이자 법률가인 아버지를 둔 에밀리 디킨슨은 어린 시절 자신의 아버지 서재를 드나드는 명사들을 통해
지적인 세계를 관찰하게 된다. 누구보다도 문안하게 세속적 명성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던 그녀가 스스로를 세상과 격리하고 살아가기를 결정하기
까지는 타고난 예민한 감수성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지만, 그보다는 보다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을 실연의 사건을 눈여겨 봐야할 듯싶다. 소문에
의하면 서른 즈음에 그녀는 기혼자인 목사와 사랑에 빠지는데, 결국 이루지 못한 사랑에 자존심을 크게 다쳐 자신이 태어난 집인 홈스테드(the
Homestead)에 스스로를 감금하게 되었다고 한다. 육체를 통해 바깥세상과의 교류를 포기한 그녀는 보다 근원적인 정신세계를 산책하면서 울타리
안에서의 한정된 삶과 함께 영원불멸의 죽음을 깨달으며 자신의 고독을 시 속에 은닉하였다. 1886년 5월 홈스테드에서 죽음을 맏이 하기까지 하얀
색 옷만을 고집해 왔던 에밀리 디킨슨은 커튼을 늘 드리운 채 철저히 자신만의 우주 속에서 고독과 절망이 자신을 쓰다듬어 줄 것을 간절한 시어로
부탁을 한다. 혹시라도 방문자가 행여 홈스테드의 문을 열고 1층의 응접실에라도 들어온 것 같은 기미가 보이면, 자신을 돌봐주던 사촌 여동생을
남겨두고 황급히 자신의 방이 있는 2층으로 올라왔곤 했다. 심지어 그녀의 은둔은 자신이 몸에 병이 찾아왔을 때마저 왕진 온 의사를 방에 들이길
거부했다고 하니, 이 정도면 윌리엄 포크너의 단편 소설 ??에밀리에게 장미를??에서의 ‘에밀리 그리어슨’양의 모델이 그녀가 아니었는지 의심해보게
될 정도로 기괴스럽기도 하다.
스스로를
외부와 격리하고 살았던 집, 매사추세추 주 암허스트 소재의 ‘the
Homestead’
에밀리 디킨스 생애동안 세상에 알려진 시는 일곱 편이 고작이나, 이 역시 정확하지는 않다. 그러나 그녀가 죽었을 때, 그녀의 여동생 라비니아(Lavinia)는 무려 1,775편의 시 원고 뭉텅이를 시인의 서랍에서 찾아내었다. 실연의 사건이 있던 해로부터 이년 뒤인 1862년 한 해에만 366년의 시를 썼던 그녀는 그때로부터 6년 동안 거의 매일 일기를 쓰듯 천여 편의 시를 지었다. 그녀의 시의 주제는 크게, ‘죽음’, ‘자연’, ‘실연’으로 압축할 수 있는데, 그녀에게 ‘죽음’의 주제는 거의 절대적이었다. 그녀의 죽음은 보편적인 서구 사회의 ‘죽음’, 기독교적인 고통의 ‘죽음’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오히려 그녀의 죽음은 육체를 구원하고 영혼을 구제해주는 동양적 자비의 모습을 띠고 있다. 에밀리 디킨스는 죽음을 지연시키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조용히 기다린다. 꽃마차의 이미지를 빌려 다가오는 죽음은 그녀에게는 마치 인연의 고통으로부터 그녀를 영원히 해방시켜줄 구원자와 같았다.
내 죽음 때문에 멈출 수 없기에-
친절하게도 죽음이 날 위해 멈추었네-
수레는 실었네, 우리들 자신은 물론-
또 영원을. (??내 죽음 때문에 멈출 수 없기에??에서)
한편 이처럼 그녀는 홀로 조용히 죽음의 순간을 기다리면서도 사랑이 남기고 간 고통과 비애의 서글픔을 하잘 것 없다는 듯, 냉정하게 ‘실연’의 기억들을 관조하고 있다.
사랑이란 이 세상의 모든 것
우리 사랑이라 알고 있는 모든 것
그거면 충분해, 하지만 그 사랑을 우린
자기 그릇만큼밖에는 담지 못하지. (??사랑이란 이 세상의 모든 것??에서)
평생을 처녀로 살아간 에밀리 디킨스는 현실적으로는 모든 것을 거부하고 살았다. 결혼을 통한 안정, 문학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일체의 행위 등등. 과연 무엇이 그녀의 마음을 이처럼 차갑게 만들어 스스로 타인의 체온이 느껴지지 않는 싸늘한 방에 갇혀 죽음의 따듯한 손길이 스칠 때를 경건하게 기다리게 했을까? 하얀 옷을 입고 소녀로 늙어간 그녀에게 진정한 신랑은, 영원불멸의 사랑을 약속해 줄 죽음의 신이였을까? 아마 그렇다면 그녀는 한스 발둥의 그림 속, 죽음의 신의 손아귀에 잡혀 겁먹은 소녀가 아니라 오히려 죽음의 신에 매달려 함께 가주길 애원하는 에곤 실레의 그림 속 소녀의 현현인 셈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에곤 실레가 <소녀와 죽음>에서 우의적으로 표현한 에로스와 타나토스는 결국 서로가 한 몸으로 섞이길 원하는 우리들의 내밀한 갈망임을 깨닫게 된다.
에밀리에게 백합을
지금 매사추세추 주의 암허스트에 가면 에밀리 디킨스의 질녀인 마사 디킨슨 비안치(Martha Dickinson Bianchi)가 운영하고 있는 박물관을 만날 수 있다. 마사는 에밀리 디킨슨이 은둔했던 집 홈스테드와 디킨슨 일가와 후손들이 1988년까지 거주했던 집 에버그린(The Evergreens)을 정비하여 1990년 중반, 박물관으로 일반에 공개했다. 어느 날, 그림책 글 작가인 마이클 베다드는 에밀리가 살았던 이곳에 들러 에밀리의 시가 발견 된 벚나무 책상을 보고 생애의 마지막 25년간 이 곳을 벗어나지 않았던 시인에게 끌리게 된다. 낯선 사람들을 몹시 두려워했지만 아이들에게만은 친구가 되어 주었던 에밀리 디킨스를 소재로 그림책을 내어보면 어떨까 고민한 그는 ??챈티크리어와 여우??,??달구지를 끌고??로 칼데콧 상을 두 번이나 받은 바바라 쿠니에게 그림을 부탁한다. 그 둘은 홈스테드와 에버그린을 여러 차례 오가면서 그녀가 글을 쓰던 방 창문 아래에 서서 그녀가 자신의 2층 방 창문에서 내려 주곤 했다는 생강빵이 담긴 바구니를 상상하며 2층 창문을 올려다보기도 하고, 그녀가 자신의 슬픈 영혼을 노래했을 피아노가 있는 거실에 앉아 보기도 하면서 에밀리라는 여인을 그림책 속에서 구체화시켰다.
이야기는 암허스트에 사는 소녀를 통해 전달되고 있다. ‘우리 거리에, ‘신비의 여인’으로 불리는 아주머니가 한 사람 살고 있습니다. 그 아주머니는 길 건너편 노란 집에서 자기 여동생과 함께 살아요. 이층 왼쪽 방이 그 아주머니의 방이에요.‘ 라며 소녀는 이야기의 배경과 인물을 소개한다. 이어서 소녀는 다른 이들에게는 미친 사람으로 보이기도 하는 그녀가 자신에게만은 아름답고 신비한 여인 에밀리라는 고백을 한다. 소녀가 동네로 이사 온 지 얼마 안 된 겨울의 어느 날, 편지 한통이 소녀의 집 현관에 떨어져 있었다. 소녀는 그 편지를 피아노 연습 중인 엄마에게 가져간다. 편지를 뜯자 피아노 건반 위로 조그만 꽃잎이 떨어진다. 음악으로 자신을 소생시켜달라는 간절한 부탁이 담긴 편지 내용을 궁금해 하는 소녀와는 달리 소녀의 엄마는 무심하기만 하다. 소녀는 꽃잎을 자신의 이층 방으로 가져가 창턱 위에 놓아둔다. 그날 밤 소녀는 아래층에서 엄마와 아빠가 나누는 대화를 통해 신비의 여인이 자신의 집으로 엄마를 초대한 것을 알게 된다.
다음날 아침, 소녀의 집안은 온통 음악으로 가득하고 겨울 온실을 환하게 채운 따사로운 햇살은 소녀의 마음을 포근하게 해준다. 소녀는 건너편에 사는 신비한 여인에 대해 이 것 저 것 묻는다. 소녀의 아버지는 신비한 여인, 즉 에밀리가 꽃도 가꾸고 시도 쓴다며 이야기 해준다. 시가 무엇인지 모르는 소녀는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시가 무엇인지를 묻는다. 소녀의 아버지는 시를 다음처럼 은유적으로 설명해준다.
“엄마가 연주하는 걸 들어 보렴. 엄마는 한 작품을 연습하고 또 연습하는데, 가끔은 요술같은 일이 일어나서 음악이 살아 숨쉬는 것처럼 느껴진단다. 그게 네 몸을 오싹하게 만들지. 그건 설명할 수는 없어. 그건 정말 신비로운 일이거든. 그런 일을 말이 할 때, 그걸 시라고 한단다.”
소녀가
얼마나 정확하게 아버지의 설명을 이해했을지 모르겠지만, 이 그림책을 보는 우리는 이보다 더 멋지게 시를 정의내릴 수 있을지 감탄하게 된다.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소녀는 엄마에게 자신도 신비한 여인의 집에 데려가 달라고 청원을 하지만, 내심 그 분이 달아날까봐 조심스럽기도 하다.
소녀가 엄마의 손을 붙잡고 겨울 아침의 거리를 나섰다. 신비의 여인의 집에 들어선 소녀와 엄마를 에밀리의 여동생이 맞이한다. 거실은
어둡고 딱딱한 느낌이었지만, 사방에서 어지럽게 피어오린 히야신스의 짙은 냄새가 진동을 한다. 에밀리의 여동생은 자신의 언니가 몸이 안 좋아
2층에서 내려올 수 없지만 위층에서라도 감사한 마음으로 감상할 수 있다며 소녀의 엄마에게 피아노 연주를 부탁한다. 어두운 거실에 음악이 퍼지고
얼마나 지났을까? 소녀의 환청일까? 소녀는 ‘당신의 연주는 지빠귀의 노래보다 아름다워요. 좀 더 연주해주세요.’ 라는
가녀린 소리를 듣는다. 소녀가 거실을 빠져나와 소리가 시작된 계단으로 살금살금 올라간 순간, 계단참에 하얀 옷을 입고 의자에 앉아 재빠른
손글씨로 종이 위에 무엇인가를 적고 있는 여인과 마주치게 된다. 사람을 피한다는 소문과는 달리 신비의 여인은 소녀에게 미소를 지어 보인다.
미소에 용기를 얻은 소녀는 ‘그게 시예요?’라며 에밀리가 적고 있는 종이를 바라보며 질문을 한다. 에밀리는 소녀야말로 진정한 시라며 대답을
회피한다. 소녀는 자신의 주머니를 뒤져 집에서 가져온 백합 알뿌리 두 개를 꺼내 에밀리의 무릎에 내려놓는다. 소녀의 선물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에밀리는 종이를 건네준다. 건네주면서도 비밀에 부치길 당부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자, 이걸 숨겨 두렴. 나도 네가 준 선물을 숨겨 둘 거야.
아마 머지않아 둘 다 꽃이 필 게다.’
소녀는 에밀리와의 비밀을 간직한 채 봄을 맏이한다. 백합 알뿌리를 찾는 소녀의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소녀는 자신의 백합을 마당에 숨겨두었을 에밀리를 떠올린다. 언젠가 햇빛을 받고 비를 맞아 백합꽃이 온통 새하얗게 피게 될 때 소녀는 아무도 몰래 에밀 리가 건네준 종이를 열어볼 생각이다.
이런 시를 적어준 종이를....
지상에서 천국을 찾지 못한 자는-
하늘에서도 천국을 찾지 못 할 것이다-
우리가 어디로 가든 간에,
천사들이 우리 옆집을 빌리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림책 ??에밀리?? 속의 소녀가 정말 에밀리 디킨슨을 만났는지 알 수 없다. 마이클 베다드의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허구의 인물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에 적은 시는 1883년, 에밀리 디킨슨이 마사 디킨슨과 샐리 젠킨스에게 보낸 자필 편지의 일부이며, 이 편지는 현재 피어폰트 모건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따라서 이 그림책의 소녀는 오늘날 에밀리 디킨스의 박물관을 건립한 마사 디킨슨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려면 어떤가? 에밀리 디킨슨이 자신의 방에서 바구니에 실을 매달아 지나가던 어린이에게 생강빵을 건넸다는 기록으로 보건데, 그녀의 마음은 여전히 소녀처럼 여리고 백합처럼 깨끗한 것이 확인되었는데! 스스로 은둔의 생활을 택함으로서 신비의 존재가 되어버린 그녀의 베일을 전부 벗겨낼 필요가 없을진데.... 영원한 소녀로서 죽음의 신을 기꺼이 맞이한 그녀가 선택한 삶의 방식을 이러쿵저러쿵 떠들지 말자.
슈베르트의 죽음과 현악 4중주(String Quaret, No. 14 in d minor. D.810)
위대한 현악 사중주의 연주는 너무나도 관조적이고 철학적이기 때문에 단순히 즐거움을 위해 음악을 듣는 이들에게 현악 사중주 감상의 시간은 곤혹스럽기조차 하다. 하지만 이 그가 떠난 11월의 스산한 가을밤을 떠올리면서 서른 한 살의 나이로 삶을 마친 슈베르트의 현악 4중주를 듣고 있으면, 생의 환희와 젊음의 열정을 모르지 않던 한 예술가의 내면에 채워진 우수에 깊이 공감하게 된다. 자신을 곧 집어삼킬 죽음의 운명을 저속한 욕설로 저주하거나 방탕으로서 최후의 삶을 발악하며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내면화하여 음악으로서 그 아픔을 승화시키려는 최후까지의 노력은 발굴의 의지가 없이는 불가는 하기 때문이다. 베토벤 말기에 작곡된 현악 사중주들이 그러하듯이, 슈베르트의 말기 현악 사중주 역시 죽음을 목전에 둔 작곡가 자신의 생철학이 집약되어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죽음과 소녀>란 부제를 달고 있는 이 곡이 작곡된 해인 1924년 3월 31일, 슈베르트는 자신의 친구 레오폴트 쿠펠비저에게 자신의 비통한 마음을 담은 한 통의 편지를 보냈다.
“나의 평화는 사라지고, 내 마음은 무겁다. 다시는, 다시는, 마음의 평화는 돌아오지 않으리....”
자신의 가곡 <파우스트> 중 일부를 인용해 보낸 편지에서는 매독에 감염된 자신의 육신이 썩어 들어가는 신체적 고통에 대한 울분과 돌이킬 수 없는 지난 시간의 영화에 대한 그리움이 배어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 편지의 말미에 바이올린, 비올라, 그리고 첼로를 위한 두 곡의 사중주를 작곡했고 또 다른 사중주곡을 한 곡 더 쓰고 싶다고 밝히고 있다. 건강한 상태에서도 이런 저런 이유를 핑계로 살아가는 우리네 범인들과는 달리, 병마에 시달리는 중에도 창작으로 고통을 승화시키는 그의 의지도 정작 죽음의 신이 그의 영혼을 거두어가려는 의지 앞에서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죽음과 소녀>는 2악장이 슈베르트 자신이 쓴 죽음의 신과 소녀가 대화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는 동명 가곡 “죽음과 소녀”와 같은 주제를 갖고 있다. 마티우스 클라우디우스(M. Claudius)의 시에 붙여진 가곡으로 내용은 죽어가는 소녀와 그녀의 생명을 거둬가려는 죽음의 신의 대화이다. 소녀가 두려움에 떨며 말한다. ‘가세요. 아, 지나가세요! 무서운 죽음이여! 난 아직 젊으니, 가세요. 제발! 저를 만지지 말아요!’ 그러나 간절한 소녀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죽음의 신은 태연하게 소녀의 목숨을 요구한다. ‘네 손을 다오. 아름답고 사랑스런 소녀여! 나는 친구이지, 널 벌하러 온 게 아니란다. 편안해지거라! 나는 거칠지 않으니, 내 품에 안겨 평안히 잠들게 되리라!’ 내용을 보면 한스 발둥의 그림에서 해골의 형상을 한 죽음의 신에 목덜미를 잡힌 채 신음하며 무너져내릴 것 같은 겁에 질린 소녀를 연상하게 된다. 슈베르트의 젊은 영혼은 죽음을 달콤한 안식이라 생각하며 조용히 기다렸던 에밀리 디킨스와도 다르게 , 운명에의 반항을 포기하고 감수해낸다.
에드바르
뭉크의 ‘죽음의 무도’
목이 붓고, 신열과 발진이 거듭되는 매독의 증상에 신음하던 슈베르트는 29살의 나이로 위의 곡을 완성했다. 결국 티푸스까지 겹쳐 겨우 이 년을 더 버티다 1828년 11월 19일 이 세상에서의 삶을 마감한다. <죽음과 소녀>는 들으면 들을수록 낭만적인 슈베르트의 가곡들과는 다른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죽음이라는 모티프 때문에 눈물을 뚝뚝 흘릴 수 있으리란 기대로 이 음악을 접하면 크게 실망할 수 있다. 눈물로서 자신을 액화시키고 새롭게 정화된 영혼으로 삶의 희망을 발견하도록 하는 음악은 한 수 아래라 할 수 있다. 진정으로 깊은 슬픔에 빠진 사람은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그럴 힘도 없기 때문에 그들은 눈물대신 허탈한 웃음을 날린다. <죽음과 소녀>는 울음으로서 자신의 짧았던 삶을 비극적으로 바라보며 동정할 후대의 많은 사람들의 가벼움을 미리부터 염두하고 만들었을까? 나로서는 자꾸자꾸 들어도 눈물이 나지 않아 슬퍼진다. 그만큼 내 삶에서 소금기는 증발된 것인지, 그토록 건조한 채로 살아온 것인지. 그래서 나는 한없이 슬퍼진다.
이 곡은 알반 베르크 현악 사중주, 부쉬 현악중주단, 줄리어드 4중주단, 이탈리아노 4중주단의 연주 로 녹음된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훌륭한 명반이 많이 있다. 그런데 나는 음악애호가들이 매기는 순위와는 상관없이 아마데우스 4중주단의 연주를 권한다. 일반적으로 다소 밋밋하게 들리며 감정의 진폭이 적은 중용적 연주라는 것이 중론이지만, 곡해석이나 연주에 있어서 감정의 개입이 적은 쪽이 나의 슬픔을 돌아보도록 하는데 더 많은 여지를 남겨주기 때문이다. 대체로 현악4중주들이 감상을 요구하는 곡이라기보다는 관조를 요구하는 곡이라 할 때, 아마데우스 4중주단이 1959년 녹음한 이 음반이야말로 그런 요구를 충족시켜주고 있다. 슈베르트의 <죽음과 소녀>에서 소녀는 한스 발둥의 그림 속 소녀처럼 죽음을 거부하며 몸부림쳤다지만, 정작 슈베르트 자신은 죽음의 사신과 마주했을 때 당당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