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소설 (6) (마지막 회)
森浦 가는 길
황석영(黃晳暎1943~ ) 作
박박 깎인 머리의 군 죄 수들이 바깥으로 몰려나왔다. 죄수들이 일렬로 서서 세면과 용변을 보는 모습이 보였었다. 그들은 간혹 대여섯명씩 무장 헌병의 감시를 받으며 마을로 작업을 하러 내려오는 때도 있었다. 등에 커다란 광주리를 메고 고개를 숙인 채로 그들은 줄을 지어 걸어왔다.
⌜처음에 부산에서 잘못 소개를 받아 술집으로 팔렸었지요. 거기에 갔을 땐 벌써 될 대루 되라는 식이어서 겁나는 것두 없었구요, 나이는 어렸지만 인생살이가 고달프다는 것도 깨달았단 말예요.⌟
어느날 그들은 마을의 제방공사를 돕기 위해서 삼십여명이 내려왔다. 출감이 멀지 않은 사람들이라 성깔도 부리지 않았고, 마을 사람들도 그리 경원하지 않았다. 그들이 밖으로 작업을 나오면 기를 쓰고 찾는 것은 물론 담배였다. 백화는 담배 두 갑을 사서 그들 중의 얼굴이 해사한 죄수에게 쥐어 주었다. 작업하는 열흘간 백화는 그들의 담배를 댔다. 날마다 그 어려뵈는 죄수의 손에 몰래 쥐어 주곤 했다. 다음부터 백화는 음식을 장만해서 감옥 면회실로 그를 만나러 갔다. 옥바라지 두 달 만에 그는 이등병 계급장을 달고 백화를 만나러 왔다. 하룻밤을 같이 보내고 병사는 전속지로 떠나갔다.
⌜그런 식으로 여덟 사람을 옥바라지 했어요. 한달, 두달, 하다 보면 그이는 앞사람들처럼 하룻밤을 지내구 떠나가군 했어요.⌟
백화는 그런 일 때문에 갈매기집에 있던 시절, 옷 한가지도 못해 입었다. 백화는 지나간 삭막한 삼년 중에서 그때만큼 즐겁고 마음이 평화로왔던 시절은 없었다. 그 여자는 새로운 병사를 먼 전속지로 떠나보내는 아침마다 차부로 나가서 먼지 속에 버스가 가리울 때까지 서 있곤 했었다. 백화는 그 뒤부터 부대 근처를 전전하며 여러 고장을 흘러다녔다.
아직 초저녁이 분명한데 날씨가 나빠서인지 곧 어두워질 것 같았다. 눈은 더욱 새하얗게 돋보였고, 사위는 고요한데 나무타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감옥뿐 아니라, 세상이란 게 따지면 고해 아닌가…….⌟
정씨는 벗어서 불가에다 쬐고 있던 잠바를 입으면서 중얼거렸다.
⌜어둡기 전에 어서 가야지.⌟
그들은 일어났다. 아직도 불길 좋게 타고 있는 모닥불 위에 눈을 한웅큼씩 덮었다. 산천이 차츰 희미하게 어두워졌다. 새들이 이리저리로 깃을 찾아 숲에 모여들고 있었다. 영달이가 백화에게 물었다.
⌜그래 이젠 어떡할 셈요, 집에 가면……?⌟
백화가 대답을 안고 웃기만 했다. 정씨가 말했다.
⌜시집 가야지 뭐.⌟
⌜시집은 안 가요. 이제 와서 무슨 시집이에요. 조용히 틀어박혀 집의 농사나 거들지요. 동생들이 많아요.⌟
사방이 어두워지자 그들도 얘기를 그쳤다. 어디에나 눈이 덮여 있어서 길을 잘 분간할 수가 없었다. 뒤에 처졌던 백화가 눈 덮인 길의 고랑에 빠져버렸다. 발이라도 삐었는지 백화는 꼼짝 못하고 주저앉아 신음을 했다. 영달이가 달려들어 싫다고 뿌리치는 백화를 업었다. 백화는 영달이의 등에 업히면서 말했다.
⌜무겁죠?⌟
영달이는 대꾸하지 않았다. 백화가 어린애처럼 가벼웠다. 등이 불편하지도 않았고 어쩐지 가뿐한 느낌이었다. 아마 쇠약해진 탓이리라 생각하니 영달이는 어쩐지 대전에서의 옥자가 생각나서 눈시울이 화끈했다. 백화가 말했다.
⌜어깨가 참 넓으네요. 한 세 사람쯤 업겠어.⌟
⌜댁이 근수가 모자라니 그렇다구.⌟
그들은 일곱시쯤에 감천 읍내에 도착했다. 마침 장이 섰었는지 파장된 뒤인데도 읍내 중앙은 흥청대고 있었다. 전 부치는 냄새, 고기 굽는 냄새, 곰국 냄새가 풍겨왔다. 영달이는 이제 백화를 옆에서 부축하고 있었다. 발을 디딜 때마다 여자가 얼굴을 찡그렸다. 정씨가 백화에게 물었다.
⌜어느 방향이요?⌟
⌜전라선이에요.⌟
⌜나는 호남선 쪽인데. 여비는 있소?⌟
⌜군용차를 사정해서 타구 가면 돼요.⌟
그들은 장터 모퉁이에서 아직도 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는 팥시루떡을 사 먹었다. 백화가 자기 몫에서 절반을 떼어 영달에게 내밀었다.
⌜더 드세요. 날 업구 왔으니 기운이 배나 들었을 텐데.⌟
역으로 가면서 백화가 말했다.
⌜어차피 갈 곳이 정해지지 않았다면 우리 고향에 함께 가요. 내 일자리를 주선해 드릴께.⌟
⌜내야 삼포루 가는 길이지만, 그렇게 하지?⌟
정씨도 영달이에게 권유했다. 영달이는 흙이 덕지덕지 달라붙은 신발 끝을 내려다보며 아무말이 없었다. 대합실에서 정씨가 영달이를 한쪽으로 끌고 가서 속삭였다.
⌜여비 있소?⌟
⌜빠듯이 됩니다. 비상금이 한 천원쯤 있으니까.⌟
⌜어디루 가려오?⌟
⌜일자리 있는 데면 어디든지…….⌟
스피커에서 안내하는 소리가 웅얼대고 있었다. 정씨는 대합실 나무의자에 피곤하게 기대어 앉은 백화쪽을 힐끗 보고 나서 말했다.
⌜같이 가시지. 내 보기엔 좋은 여자 같군.⌟
⌜그런 거 같아요.⌟
⌜또 알우? 인연이 닿아서 말뚝 박구 살게 될지. 이런 때 아주 뜨내기 신셀 청산해야지.⌟
영달이는 시무룩해져서 역사 밖을 멍하니 내다보았다. 백화는 뭔가 쑤군대고 있는 두 사내를 불안한 듯이 지켜보고 있었다. 영달이가 말했다.
⌜어디 능력이 있어야죠.⌟
⌜삼포엘 같이 가실라우?⌟
⌜어쨌든…….⌟
영달이가 뒷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오백원짜리 두 장을 꺼냈다.
⌜저 여잘 보냅시다.⌟
영달이는 표를 사고 삼립빵 두 개와 찐 달걀을 샀다. 백화에게 그는 말했다.
⌜우린 뒷차를 탈 텐데……잘 가슈.⌟
영달이가 내민 것들을 받아 쥔 백화의 눈이 붉게 충혈되었다.
그 여자는 더듬거리며 물었다.
⌜아무도……안 가나요.⌟
⌜우린 삼포루 갑니다. 거긴 내 고향이오.⌟
영달이 대신 정씨가 말했다. 사람들이 개찰구로 나가고 있었다. 백화가 보퉁이를 들고 일어섰다.
⌜정말, 잊어버리지……않을께요.⌟
백화는 개찰구로 가다가 다시 돌아왔다. 돌아온 백화는 눈이 젖은 채로 웃고 있었다.
⌜내 이름 백화가 아니예요. 본명은요…이 점례예요.⌟
여자는 개찰구로 뛰어나갔다. 잠시 후에 기차가 떠났다.
그들은 나무의자에 기대어 한 시간쯤 잤다. 깨어보니 대합실 바깥에 다시 눈발이 흩날리고 있었다. 기차는 연착이었다. 밤차를 타려는 시골 사람들이 의자마다 가득차 있었다. 두 사람은 말없이 담배를 나눠 피웠다. 먼 길을 걷고 나서 잠깐 눈을 붙였더니 더욱 피로해졌던 것이다. 영달이가 혼잣말로,
⌜쳇, 며칠이나 견디나…….⌟
⌜뭐라구?⌟
⌜아뇨, 백화란 여자 말요. 저런 애들……한 사날두 시골 생활 못 배겨나요.⌟
⌜사람 나름이지만 하긴 그럴 거요. 요즘 세상에 일이년 안으루 인정이 휙 변해가는 판인데…….⌟
정씨 옆에 앉았던 노인이 두 사람의 행색과 무릎 위의 배낭을 눈여겨 살피더니 말을 걸어 왔다.
⌜어디 일들 가슈?⌟
⌜아뇨. 고향에 갑니다.⌟
⌜고향이 어딘데…….⌟
⌜삼포라구 아십니까?⌟
⌜어 알지, 우리 아들놈이 거기서 도자를 끄는데…….⌟
⌜삼포에서요? 거 어디 공사 벌릴 데나 됩니까. 고작해야 고기잡이나 하구 감자나 매는데요.⌟
⌜어허! 몇년만에 가는 거요?⌟
⌜십년.⌟
노인은 그렇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두 말우 거긴 지금 육지야. 바다에 방둑을 쌓아 놓구, 추럭이 수십대씩 돌을 실어 나른다구.⌟
⌜뭣땜에요?⌟
⌜낸들 아나. 뭐 관광호텔을 여러 채 짓는담서, 복잡하기가 말할 수 없데.⌟
⌜동네는 그대루 있을까요?⌟
⌜그대루가 뭐요. 맨 천지에 공사판 사람들에다 장까지 들어섰는걸.⌟
⌜그럼 나룻배두 없어졌겠네요.⌟
⌜바다 위로 신작로가 났는데, 나룻배는 뭐에 쓰오. 허허 사람이 많아지니 변고지. 사람이 많아지면 하늘을 잊는 법이거든.⌟
작정하고 벼르다가 찾아가는 고향이었으나, 정씨에게는 풍문마저 낯설었다. 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영달이가 말했다.
⌜잘됐군. 우리 거기서 공사판 일이나 잡읍시다.⌟
그때에 기차가 도착했다. 정씨는 발걸음이 내키질 않았다. 그는 마음의 정처를 방금 잃어버렸던 때문이었다. 어느결에 정씨는 영달이와 똑같은 입장이 되어 버렸다.
기차가 눈발이 날리는 어두운 들판을 향해서 달려갔다. - 끝 -
<1973·신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