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덕문 2차공부 추가 자료
1.궁을기형(弓乙其形). 불사약의 형상이 弓乙과 같다고 하신 것이다. 영부의 형상을 弓弓이라고) 하기도 하며 弓乙이라고도 하며 또는 弓弓乙乙이라고 하기도 한다. 지황씨께서는 태극이라고도 하셨다(신사님 법설 영부주문법설) ▶經曰 「吾有靈符 其名仙藥 其形太極 又形弓弓 受我此符 濟人疾病」 弓乙其形 卽「心」字也 경에 말씀하시기를 「나에게 영부 있으니 그 이름은 선약이요 그 형상은 태극이요 또 형상은 궁궁이니 나의 이 영부를 받아 사람을 질병에서 건지라」하셨으니, 궁을의 그 모양은 곧 마음 心 자이니라.
太極玄妙之理也 透得則是爲萬病通治之靈藥矣 태극은 현묘한 이치니 환하게 깨치면 이것이 만병통치의 영약이 되는 것이니라.
2. 삼칠기자(三七其字)/선생주문/제자주문/초학주문 삼칠자는 과연 무엇을 이야기하는가? 선생주문인 3.7자 주문은 한울님으로부터 받으셨고 (포덕문: 吾有靈符 其名 仙藥 其形 太極 又形 弓弓 受我此符 濟人疾病 受我呪文 敎人爲我則 汝亦長生 布德天下矣 ) 제자주문과 초학주문은 지으셨다.(논학문 一以作呪文 一以作降靈之法 一以作不忘之詞 次第道法 猶爲二十一字而已 )
삼칠자라는 것은 3×7=21 즉 21자 주문을 말씀하신 것이다. 21자주문에는 두가지가 있으니 『지기금지원위대강 시 천주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는 제자 주문으로서 처음에 도에 들어온 사람들이 강령을 모시고 한울님의 가르침을 받으며 도를 닦고 수련할 대에 외우는 주문이고 『지기금지사월래 시천주영아장생 무궁무궁만사지』의 3,7자 주문은 선생주문으로서 제자주문의 21자 주문을 외워 수련을 하여 자연한 가운데 도가 이루어진 선생들이 장생을 하고 포덕교화를 하기 위해서 외우는 주문이다. 그러므로 대신사님께서는 일반교인들에게는 초학주문과 제자주문의 21자 주문을 외우라고 하셨고 대신사님께서는 3,7자 선생주문을 외우신 것이다. 보통 3,7자 주문과21자 주문을 혼용해서 말하지만 세밀하게 말하면 다르다. 3,7일을 기도를 드리는 것도 8일 6일 7일 합하면 21일이 되지마는 이렇게 드리는 것을 3,7일 기도라고 하지 않는다. 7일씩 연속해서 3회를 드리는 기도를 3,7일 기도라고 하는 것이다. 3,7자 주문도 이와 같은 것이니 제자주문의 강령주문과 본 주문은 지기금지원위대강<8자>, 시천주조화정<6자>, 영세불망만사지<7자>로 되어 있다. 8자 +6자+ 7자=합하여 21자이다. 그러므로 이 주문이 21자주문인 것이며 , 선생주문의 강령주문과 본 주문은 지기금지사월래<7자>, 시천주영아장생<7자>무궁무궁만사지<7자>, 3×7=21자이다. 그러므로 이 주문이 3,7자 주문인 것이다. 또한 제자주문에는 장생이란 말이 없으며 선생주문에는 장생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한 3,7자 주문은 선생주문을 말한 것이니, 대신사님께서는 항상 영부를 받을 생각을 가지고 계셨으며 항상 선생주문을 외우고 계셨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라 생각된다.
*초학주문.. 과거에는 도에 처음입도를 하면 3개월정도는 초학주문을 열심히 외우게 하여 과거의 살아온 바를 돌아보고 참회단계를 거쳐 영세불망 한울님을 위하게한 후 제자주문을 전해 주셨다함) 위천주고아정 영세불망 만사의(爲天主顧我情 永世不忘 萬事宜)
앞으로 의식에 사용되는 주문은 21자주문으로 의절이 통일될 것이라함.
3.상식으로 알아둡시다.(공문십철/儒家십철) 안회(=안연), 민자건, 염백우,중궁,재아, 자공,염유,자로(=계로), 자유,자하
공문십철(孔門十哲)
중국 춘추시대의 공자의 문하생 중 뛰어난 제자 10명. 《논어》 <선진편(先進篇)>에 <덕행에는 안연(顔淵)·민자건(閔子騫)·염백우·중궁(仲弓), 언어에는 재아(宰我)·자공(子貢), 정사(政事)에는 염유·계로(季路), 문학에는 자유(子遊)·자하(子夏)>라 하여 공자 문하생 70명 중 중심을 이룬 제자 10명을 그 장점에 따라 4분류하고 있다. 이것을 후세에 <사과십철(四科十哲)>이라 하였다. 덕행이란 모든 행위가 바른 것, 언어란 제후간(諸侯間)의 응대 수사(修辭)에 뛰어난 것, 정사란 치국(治國)에 재능이 있는 것, 문학이란 고전에 정통한 것이다. 이것을 사과라고 한 것은 후한(後漢) 때의 《논형(論衡)》 <문공편(問孔篇)>과 《후한서(後漢書)》 <정현전(鄭玄傳)> 가운데에서부터이고, 이 10명을 공자 문하생 중 우수한 자라고 생각하여 십철의 명칭을 부여한 것은 당(唐)나라 때 《사통(史通)》 <암혹편(暗惑篇)>에서 시작된 듯하다. 그러나 그 밖에도 증삼(曾參;曾子)·자장(子張)·유약(有若) 등 뛰어난 제자가 있었으므로 십철이라고 한정한 것은 뒷날 학자의 논의를 불러일으켰다. 특히 증삼이 포함되지 않은 것에 송유(宋儒)의 불만이 생겨서 주자(朱子;朱熹)의 《논어집주(論語集注)》는, 십철의 장(章)과 그 전장(前章)의 <공자가 말하기를, 나를 따라 진채(陳蔡)에 갔던 사람은 이제 내 곁에는 한 사람도 없다.(子曰從我於陳蔡者皆不及門也)>는 대목을 합쳐서 한 장을 이루고, 십철은 공자가 진채에서의 재난 때에 동행했던 제자만을 뽑았기 때문에 증삼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풀이했다. 그러나 이것은 여러 점에서 무리가 따르는 풀이로 평가되고 있다. 진채..진나라, 채나라.
*안회(顔回, =안연顔淵)..字 :子淵, 32세에 요절, 공자께서 3일동안 하늘이 나를 버린시 는구나하시며 탄식하셨다함. 덕의 실천에 가장 뛰어났다. 겸허한 구도자의 상징
사람을 알아본다는 것
사람의 인체(人體) 중에서 가장 진실한 부분이 눈이다. 눈은 있는 그대로 본다. 또 본 것에 대해서는 믿는다. 거지가 왕자 옷을 입었을 때 왕자로 믿고, 왕자가 거지 옷을 입었을 때에는 거지로 믿는다. 이렇듯 눈은 너무도 진실하기 때문에 곧잘 속기도 한다. 그럴싸한 치장에 현혹(眩惑) 당하기 쉽다.
한때 공자(孔子)는 진나라와 채나라 사이에서 매우 곤궁(困窮)한 생활을 했다. 그 당시 공자는 여러 날 동안이나 음식을 먹지 못하고 굶주렸다. 스승이 굶주리자 안회라는 제자(弟子)가 매일 양식(糧食)을 구하려 다녔다.
7일되던 날 안회는 마침내 양식(糧食)을 구했다. 스승에게 밥을 지어 올린다는 생각에 기쁜 마음으로 밥을 짓고 있는데, 달그락 소리를 들은 공자(孔子)가 문틈으로 부엌을 내다보았다. 거의 밥이 다 되었을 무렵에 안회는 솥을 열고 덥석 밥 한술을 떠먹었다. 그것을 본 공자(孔子)는 안회를 마음속으로 무척 괘씸하게 생각했다.
얼마 후 안회가 밥상을 들여왔다. 이때 공자(孔子)가 말했다.
"방금 잠깐 오수(午睡:낮잠)에 취했다가 꿈속에서 나의 아버님을 만났다. 모처럼 만에 대하는 쌀밥이니 먼저 아버님께 드려야겠다."
이 말을 들은 안회는 깜짝 놀라며 황급히 말했다.
"안됩니다. 스승님. 방금 전에 솥을 열어 보니 쌀밥에 수수가 들어 있었습니다. 스승님께 쌀밥을 대접하고 싶은데 그렇다고 수수도 먹는 음식이라 버릴 수는 없고 제가 집어먹었습니다. 제가 먼저 입을 댄 음식을 영전(靈前)에 올릴 수는 없는 일입니다.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 말에 공자(孔子)는 탄식하고 말했다. "눈은 믿을 수 있는 것이지만, 때로는 눈도 믿을 것이 못되는구나. 이와 마찬가지로 마음은 의지할 수 있는 것이지만, 때로는 의지할 것이 못된 사람을 알아본다는 것처럼 어려운 일은 없구나"
눈으로 직접 보았다고 해서 그것을 절대적(絶對的)인 사실(事實)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하다. 확고(確固)한 진실(眞實)로 믿는 그 마음에 의외로 큰 함정이 숨어 있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같은 인간(人間)이 어떤 사람에게는 선인(善人)으로 보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악인(惡人)으로 보인다.
또한 어떤 사람에게는 매력이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에게는 전혀 매력 없는 사람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인간(人間)이 자칫하면 자기의 눈과 자기를 둘러싼 주위 사정에 비치는 것 밖에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 *공자는 자신도 노자를 만나고 나올 때 그러하였지만 안회가 너무나 말이 없이 한 때 바보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 적이 있었다한다. 노자를 만나고 나올 때 제자들이 “왜 아무말씀도 하시지 않으셨습니까”하고 물으니 공자왈 “만약 그대가 첫눈에 반해버릴만한 사랑을 만나면 그 사랑을 설명할 수 있겠는가? 아니면 논리를 전개할 수 있겠느가? 진실이 진실을 만나면 말이 필요 없는 것일세”
말이 없는 안회의 속마음은 다음과 같았다 한다.
『우러러보면 높은 것은 이미 없고 파고 들어가면 견고함도 이미 없어서 이만하면 되었다 싶어 앞으로 나서면 홀연 뒤에 계셔서 요리 저리로 자연스럽게 이끄시기를 화두로서 평범하게 하고 계율로서 묶어 놓으니 이를 파하고자 하여도 파할 수 없는 것은 나의 재주를 다하여 홀로 우뚝 선 선생님을 따르기만도 벅차기 때문이다.』
*자공(子貢)..성은 단목(端木) 이름은 사(賜) 슬기롭고 부유한 공자의 제자로서 공자의 용처를 담당하였다 함
4. 修心正氣와 守心正氣 **인의예지(仁義禮智)는 선성지소교(先聖之所敎)요 수심정기(修心正氣)는 유아지갱정(惟我之更定)이라 인의예지는 옛 성인의 가르친 바요, 수심정기는 내가 다시 정한 것이니라. →인의예지는 먼저 성인인 공자가 가르치신 것이요, 마음을 닦고 기운을 바르게 하는 것은 오직 내가 다시 정한 것이니라.
수운 스승님께서는 修心正氣라 하셨는데 신사님 법설 수심정기편에 守心正氣로 표현하셨다. 이 부분에 대하여 논해보자
守心正氣 四字 更補天地 隕絶之氣 經曰「仁義禮智先聖之所敎 守心正氣惟我之更定」若非守心正氣則 仁義禮智之道 難以實踐也 吾着睡之前 曷敢忘水雲大先生主 訓敎也 洞洞燭燭 無晝無夜 수심정기 네 글자는 천지가 운절되는 기운을 다시 보충하는 것이니라. 경에 말씀하시기를 「인의예지는 옛 성인의 가르친 바요, 수심정기는 오직 내가 다시 정한 것이 라」하셨으니, 만일 수심정기가 아니면 인의예지의 도를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니라. 내 눈을 붙이기 전에 어찌 감히 수운대선생님의 가르치심을 잊으리오. 삼가서 조심하기를 밤낮이 없게 하느니라.
이는 적자심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지만 떼가 묻어 이를 닦아내어 적자심으로 회복하여 그 마음을 지키고 그 기운을 바르게 하고 그 한울님성품을 거느리고 한울님의 가르침을 받으면 자연한 가운데 화해나오는 것이다. 즉 우리 도는 무위이화다 하셨다(논학문)
修心수심▶赤子心(적자심)회복▶守其心수기심▶正其氣정기기▶率其性솔기성▶受其敎수기교▶化出於自然之中(화출어자연지중) 曰吾道無爲而化矣 守其心正其氣 率其性受其敎 化出於自然之中也 우리 도는 무위이화라. 그 마음을 지키고 그 기운을 바르게 하고 한울 님 성품을 거느리고 한울님의 가르침을 받으면, 자연한 가운데 화해나는 것이요
5. 사단칠정(四端七情) 측은지심(惻隱之心) 칠정(七情)..喜,怒,哀,懼,愛,惡,欲(희노애구애오욕)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
*사단칠정 [四端七情] ....인터넷자료에서 퍼온 글 성리학(性理學)의 철학적 개념 가운데 하나. 본문 사단(四端)은 인간의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씨 즉 선천적이며 도덕적 능력을 말하며, 칠정(七情)은 인간의 본성이 사물을 접하면서 표현되는 인간의 자연적인 감정을 말한다. 사단은 《맹자(孟子)》의 〈공손추(公孫丑)〉 상편에 나오는 말로 불쌍히 여기는 마음[惻隱之心(측은지심)], 자신의 불의(不義)를 부끄러워하고 남의 불의를 미워하는 마음[羞惡之心(수오지심)], 양보하는 마음[辭讓之心(사양지심)],잘잘못을 분별하여 가리는 마음[是非之心(시비지심)]의 네 가지 도덕적 감정을 말한다. 그리고 칠정은 《예기(禮記)》의 〈예운(禮運)〉에 나오는 말로 기쁨[喜]·노여움[怒]·슬픔[哀]·두려움[懼]·사랑[愛]·미움[惡]·욕망[欲]의 일곱 가지 인간의 자연적 감정을 가리킨다.
원래 사단은 인(仁)·의(義)·예(禮)·지(智)의 덕목과 관련된 윤리적 범주에, 칠정은 인간의 감정을 총칭하는 인성론의 범주에 각각 속하여 서로 다른 맥락에서 사용되던 말이었다. 그러나 송대(宋代)에 성리학이 일어나면서부터 이 두 개념은 인간 심성이 발현되는 과정에서 도덕적 성격을 띠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각각 나타내는 상반된 의미로 인식되어 대조되는 개념으로 쓰이게 되었다. 곧 성리학에서는 하늘의 이치와 사람의 심성(心性)이 일치한다고 하는 천인합일(天人合一)의 명제 아래, 우주 자연의 생성과 변화를 설명하기 위한 이론적 바탕으로 이기론(理氣論)을 발달시켰고 다시 이를 근거로 하여 인간 심성의 발생 과정과 그 작용을 탐구함으로써 인간의 도덕적 실천의 철학적 근거를 해명하고자 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사단 칠정의 문제가 자연스럽게 부각되었다.
중국에서 사단 칠정의 문제는, 성리학의 '이기 심성론'(理氣心性論)의 탐구에 있어 하나의 과제로 다루어지기는 했어도 태극론(太極論)과 같은 우주론에 비해 그다지 비중있게 다루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사단과 칠정의 발생 과정을 이기론적으로 해명하는 문제가 중요한 관심사로 떠올랐으며 이것은 대규모 논쟁으로까지 전개되었다. 이 논쟁은 이황(李滉)과 기대승(奇大升) 사이에서 처음 발생하였고 나중에 이이(李珥)와 성혼(成渾) 사이에서 다시 논의됨으로써 새로운 국면의 논쟁으로 전개되었다. 이 과정에서 주된 쟁점이 되었던 것은 사단이 이(理)에 속하는가 아니면 기(氣)에 속하는가 하는 문제와, 이(理)가 과연 발동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두가지 문제였다. 16세기 말에 발생하였던 이 논쟁은 당대의 저명한 성리학자들에 의해 주도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후 학계 전체의 문제로 확대되어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성리학자가 이 문제를 다루었을 정도로 한국 유교의 전개 과정에 절대적 영향을 미쳤다. *기대승 저는 기대승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만 좀 설명할게요. 이황은 주리론. 이이는 주기론이라는 것은 잘 아실 겁니다. 그러나 실제로 주기론에서 이이보다는 기대승이라는 사람이 더 유명한 사람입니다. 기대승을 '고봉'이라고 하는데요 '고봉'은 높은 봉우리를 말합니다. 성리학의 높은 봉우리시죠. 이 고봉 기대승 선생님께요 이황과 12년 가까이 편지를 주고 받으면서 논쟁을 벌였답니다. 이를 '사단칠정논쟁'이라고 합니다. 기대승 선생은 이이와 같은 계통의 학파 사람이구요, 이이 선생님 보다 나이는 더 많으신 분입니다. 물론 동시대 사람이고요. 보통 사람들이 이황과 이이를 대립적으로 파악하며 비교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실은 이이는 한참 후뱁니다. 실제로 이황 선생과 대립하며 논쟁을 벌엿던 사람은 고봉 기대승 선생님이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당시 성리학의 대선배 이황에게 도전장을 내민 젊은이가 고봉 기대승 선생입니다. 아주 뛰어난 젊은 유학자로 주위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은 사람이랍니다. 이황 또한 기대승을 좋아했고, 뛰어난 후배로 생각했죠. 기대승 또한 이황 선배를 존경하며 흠모했답니다. 그러니까 서로 12년 동안이나 편지를 주고 받을 수 있었겠죠. 어떻게 보면 스승과 제자 사이 정도로 봐도 되겠군요. 이황은 어린 후배인 기대승의 생각을 이해하고 인정해 주었답니다. 이렇게 '사단칠정논쟁'은 아주 건전한 학문적 토론이랍니다.
이제 기대승에 대해서 아셨을 것 같네요. 이이 선생님이 유명한 것은 학문적인 부분도 있지만, 사회적으로도 주장하신 일이 많기 때문이랍니다.
< 四端七情論 >
율곡과 우계 성혼은 평상시에 경학이나 도학과 관련하여 문답하는 서한을 교환하였는데 성리설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율곡이 37세(선조 5)가 되던 해이다. 1년 사이에 9회에 거쳐 주고받았다. 대체로 우계가 당시의 주류인 퇴계의 이기설을 채택할 것인지의 여부를 질의하고 율곡이 회답하는 것으로 되어있어 율곡의 철학사상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우계의 리기호발설에 대한 재론으로 인하여 율곡은 퇴계는 물론, 서경덕, 라흠순에 대한 논평뿐 아니라, 경전의 본의와 송대 여려 유학자의 성리설을 집약적으로 논술했다.
퇴계에 있어서 이발과 기발, 사단과 칠정, 그리고 도심과 인심은 각각 순수한 정신적 가치와 신체적,물질적 욕구의 두 방향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리기는 왕과 신하의 관계에 있는 것이요, 인심은 항상 도심의 명령을 순종하여야 한다. 이러한 관계가 전도된 상태에서는 개인적으로는 도덕성의 방기를 가져오며, 사회적으로는 윤리의 파멸과 정치의 타락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율곡은 이는 기를 주재하는 것이요, 기는 리의 타(승)는 곳이다. 여기서 승한다는 것은 타고 부린다는 뜻이다. 이것을 비유한다면 사람이 말을 타고 부리는 것과도 같은 것으로써 人乘馬 즉 理乘氣이다. 또 기가 아니면 능히 발할 수 없고, 리가 아니면 발하게 하는 것이 없다.“ 즉 발돌하는 자체는 기요, 그 발동하게 하는 것은 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칠론이나 인심도심설에 대한 해석도 이원적인 논의와 다르다. 사칠론에 있어서도 사단(측은,수오,사양,시비)이란 칠정 중의 善者일 뿐이며, 칠정(희,노,애,구,애,오,욕)이라 하여 形氣에 속한 것으로만 보지 않는다. 그러기에 율곡에 의하면 본연지성 또한 기질지성을 떠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리와 기는 논리적으로 구별하는 것이지, 사실적으로 분리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퇴계에 있어서 사단이 기발이라 함은 용납되지 않는다. 리기는 선후와 이합이 없는 것이다. 발하는 것은 ‘기’요, 발하는 소이는 ‘리’라고 한다.
서경덕 1489(성종 20)∼1546(명종 1) 조선 중종때의 학자. 자는 가구, 호는 복재. 화담. 13세에 서경을 읽고 복잡한 태음력의 수학적계산을 스스로 해득했으며 학문연구와 진리의 탐구에 전심하여 이기론의 본질을 연구하여 우주 본질로서의 기와 이를 논하고 기와 이의 상관관계에서 천지만물이 형태화하며, 음양으로 분화한다는 이기일원론을 체계화하였다. 그밖에도 성리학의 연구에 전심하고, 도학, 수학, 역학 연구로 여생을 보냈다. 황진이의 유혹을 물리친 일화가 전하며 박연폭포, 황진이와 함께 송도삼절로 불린다. 1575년 우의정에 추증되고, 시호는 문강공이다.
羅欽順(라흠순)
(병)Luo Qinshun (웨)Luo Ch'inshun. 1465 중국 장시 성[江西省] 타이화 현[泰和縣]~1547.
중국 명대 중기의 정치가·사상가.
때 더욱 높이 평가되었으며, 근래에는 기(氣) 철학자로 주목받았다.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