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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ABC트래킹의 성공담
네팔 행 비행기를 타기까지
네팔 트래킹을 계획하고 처음 시작한 게 인터넷을 뒤지는 것이었다. 네팔 트래킹은 말로만 들어왔던 꿈속의 이야기 인양 그냥 스쳐지나가기만 했던 것을 실행해보자 생각하니 네팔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우선 트래킹 코스를 결정해야 한다. 2006년 11월 중순부터 인터넷을 통해 알아본 결과 네팔 트래킹에는 여러 코스가 있다는 걸 알았다. 여행사에서 실시하는 문화탐방을 제외하고도 랑탕 국립공원(Langtang National Park) 트래킹이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트래킹, 또 안나푸르나를 중심으로 한 바퀴를 빙 둘러보는 안나푸르나 라운드 트래킹,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EBC)를 올라가는 트래킹, 티베트와의 국경에 있는 황량한 사막 지방으로 가는 무스탕(Mustang) 트래킹 등이 있다. 트래킹의 난이도, 기후, 여행 기간, 경비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하여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이하 ABC로 표기)로 결정했다.
다음은 어떻게 가느냐를 결정해야했다. 여행사를 통해 가이드와 포터, 숙식을 해결하고 편안하지만 정해진 일정대로 갈 것인가, 직접 비행기 표를 구해 현지에서 가이드와 포터를 구하고 가이드를 의지하여 그때그때 숙식을 현지 상황에 따라 처리하고 자유스럽게 트래킹을 할 것인가를 고심해야 했다. 인터넷의 여러 사이트와 인터넷에 기고한 경험자를 직접 찾아가 경험담을 듣고 우리 부부의 건강과 초행인 점을 감안해 트래킹에 많은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는 “ㅎ” 여행사에 1월 29일 출발하여 15박 16일 가기로 11월 말 예약을 하였다.
본격적인 체력 훈련에 들어갔다. 실내 자전거를 손보고 집 부근의 앞산과 뒷산에서부터 청계산으로 점차 산행 시간을 늘려 나갔다. 어느 눈이 많이 온 날 청계산을 타고 난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와이프가 무릎이 아파서 꼼짝을 못 하겠단다. 무리가 됐나보다. 계속 진행해야 할 것인가, 모든 것을 취소 할 것인가. 며칠 쉬며 경과를 보았으나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아보고 결정을 하기로 했다.
정형외과에 가서 자초지종을 이야기 하니 일생에 한 번쯤 가 볼만한 곳인데 못 가게 되면 어떻게 하냐며 젊은 의사는 무릎에 주사를 1주일 간격으로 3주 맞고 약물 치료를 해 보는 것을 권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빨리 좋아지지 않는다. D-day는 다가오고 하는 수 없이 여행사와 협의하여 2주를 연기하여 2월 12일 출발하기로 하였다.
첫째 날, 카투만두(Kathmandu) 도착. 2007년 2월12일
우여곡절 끝에 출발이다. 원래 출발 예정일 인원은 정상적인 트래킹 정원인 6명을 넘었는데 2주를 연기하니, 구정이 끼어서인지 우리를 포함하여 3명이다. 또 한 분은 68세인 김 선생님으로 이미 4000m급인 키나바루와 후지산을 다녀온 경력이 있다는 분이다. 공항에서 서로 인사를 나누고 둘러보니 “ㅎ” 여행사 카고 백이 사방에 보인다. 우리 말고도 8박 9일의 푼힐 (Poon Hill 3200m) 전망대에 가는 팀이 14명, EBC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5545m) 팀 2명, 문화탐방팀 등, 대한항공 전세기가 꽉 들어찬다.
네팔은 우리나라보다 3시간 15분이 늦다. 인천에서 10시 반에 출발하여 6시간 반을 날아카투만두 공항에 도착하여 여권사진을 첨부한 비자신청서와 Visa Fee $30 을 지불하고 입국 수속이 다 끝나고 화물을 찾고 나오니 현지 시간 오후 3시 반 가까이 되었다.
공항에는 미리 연락을 받은 여행사 직원인 가이드가 차를 가지고 대기하고 있다. 차에는 우리3명의 명단이 써 붙어 있고 우리들에게 환영한다며 생화 꽃목걸이를 걸어 주었다.
가이드는 자신을 한국어로 놀부라고 소개하며 이제부터 타멜 (Thamel) 시장으로 안내하겠다고 한다. 약간 어눌하지만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는 한국어 실력이다. 타멜시장 지역은 호텔, 레스토랑, 여행사, 환전소, 각종 기념품 가게 등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여행자에게 필요한 것은 모두 구할 수 있는 우리나라 이태원과 남대문 시장을 합쳐 놓은 것과 비슷하다.
가이드는 타멜 예티 항공사 앞에서 6시에 만나자며 대충 구경할 곳을 말해준다. 보름동안 산에서 쓸 돈을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1인당 50$정도면 충분할 것이라며 환전소 에 가서 환전을 해주고 헤어졌다. 환전소는 곳곳에 많이 있다. $당 68.5Rs 정도(Rupee)로 우리나라 돈으로 계산해보니 1루피는 14원 정도 된다. 루피는 날마다 조금씩 변하며 모든 환전소 앞에 고시되어 붙어있다,
처음 와본 곳에서 말도 안 통하니 꿀 먹은 벙어리다. 시장을 뱅뱅 돌아다니며 이색적인 상품으로 가득 찬 상점을 구경해 보지만 물건 값은 물어볼 생각도 나지 않고, 이곳저곳을 다니다 보니 발도 아프고 적당한 곳에서 커피라도 먹으며 쉬고 싶지만 어디가 커피 파는 곳인 줄도 모르겠고 그럴 듯한 곳에 가서 물어 보니 커피는 안 판다고 한다. 커피 대신 아이스케키를 하나씩 사 먹으며 쉬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6시에 가이드를 만나 한국 식당 “정원”에 가서 삼겹살로 저녁을 먹었다. 먼 이국땅에서 친절한 주인아주머니의 서비스를 받으며 먹는 네팔 삼겹살은 각별한 맛이 있었다. 저녁 식사 후 가이드는 우리가 미처 준비하지 못한 침낭 2개를 빌려주고 숙소인 하이야트 호텔로 안내했다.
둘째 날, 카투만두ㅡ>포카라(Pokhara)ㅡ>나야풀(Naya Pul)ㅡ>티케둥가
2월13일. 새벽 6시부터 일어나 호텔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가이드를 만나 포카라로 가기위해 국내선 공항 터미널에 도착하니 7시 반이 조금 넘었다. 갈 때는 비행기, 올 때는 버스를 이용한다고 한다. 가이드가 예티 항공 비행기 표를 건네준다. 우리들과 가이드의 짐을 부치는 데 무게가 65Kg이 된다. 이 무거운 것을 포타 2명이 어떻게 들고 갈 것인가 슬그머니 걱정을 하는 데, 인천 공항에서 보았고 호텔에서도 보았던 트래킹 팀이 뒤따라 도착한다. 우리는 그들과 같이 고라파니 (푼힐전망대)까지 같이 동행하게 된다고 한다.
호텔 창문으로 본 카투만두 모습
비행은 15분 정도가 걸린다고 하고 인터넷에 의하면 오른쪽 좌석에 앉아야 히말라야의 산맥을 따라 펼쳐지는 장관을 볼 수 있다고 하며, 기내에서는 귀를 막는 솜과 사탕을 준다고 한다. 동행한 김 선생님에게 오른 쪽으로 앉으라고 알려주고 줄 앞에 기다렸다가 우측에 자리 잡았다.
탑승하자 여승무원이 예상대로 솜뭉치와 사탕을 가져다준다. 이륙하여 조금 지나자 과연 히말라야의 웅장한 산들이 오른 편 창문으로 펼쳐진다. 정신없이 창문을 통하여 연이어 나타나는 산맥을 바라보고 있는데 또다시 과자와 커피를 가져다준다. 서비스가 많이 향상된 모양이다.
포카라 공항에서
포카라에 도착하자 차가 기다리고 있다. 공항을 벗어나 시내로 들어가자 우리와 함께 여행할 포타 2명이 기다리고 있다. 젊지만 조그마한 체구다. 우리는 박수로 그들을 환영하였다. 페와 호수를 보며 나야풀로 가는 도중에 안나푸르나 지역에 눈이 많이 왔다고 한다. 여행사에서는 눈은 ABC에 갈 때가지 없다고 장담하고 아이젠과 스패츠는 준비물 목록에도 없었는데, 가이드는 아이젠이 꼭 필요하다고 한다. 다행이도 우리는 만일의 경우를 생각하여 아이젠과 스패츠를 준비하였으나 동행한 김 선생님이 없어서 그곳에서 사기로 했다.
가이드와 함께 호수 주변의 줄지어 있는 상점들 중에 등산구점을 들려 아이젠을 물어 보았지만 없다는 말만 듣고 심지어 아이젠이 무엇이냐고 묻는 곳도 있다. 대여섯 곳을 들려 아이젠을 찾았는데 3,500루피를 달라고 한다. 6발 아이젠 하나가 우리 돈으로 무려 49,000원. 목마른 놈이 샘 파는 격이다. 3,000루피로 흥정해 사고 보니 우리나라 “한라” 제품이다. 역시 관광지라 만만치 않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ABC의 들머리인 나야풀로 가는 도중에 가이드가 차를 세우고 안나프루나 지역 트래킹에 꼭 필요한 허가증을 찾아온다. 이것은 ACAP (안나프루나 자연 보호지역 프로젝트)가 발행한 것으로 서류와 증명사진 1매를 제출하고 국립공원 입장료 2,000루피를 지불해야 한다. 우리는 트래킹 도중에 허가증 검사를 받아보지는 않았지만 허가증이 없이 트래킹을 할 경우 첵크 포스트에서 2배인 4,000루피를 지불해야 한단다.
구불구불한 험한 산길을 달려 11시에 나야풀에 도착했다. 이곳은 본격적인 트래킹이 시작되는 곳이다. 포터들은 우리들의 짐을 끈으로 꽁꽁 묶기 시작하고 우리는 스틱을 챙기고 등산화 끈을 조이며 각오를 다지는데 우리와 출발을 같이 한 푼힐 팀은 벌써 출발하여 저 멀리 가고 있다.
나야풀은 산길에 접한 자그마한 마을로 길가에 판자와 녹이 슨 양철 지붕으로 지은 조그마한 가게가 줄을 지어 이어져 있고, 그 속에는 탁자 몇 개와 먼지가 잔뜩 낀 음료수 와 등산객을 위한 기념품 같은 것들이 진열돼 있다.
등산을 하기에 따스한 맑은 날 씨 속에 우리들은 포터를 뒤로 하고 가이드와 함께 가게 앞을 지나 마을을 거쳐 ABC로 향했다.
나야풀은 산길에 접한 자그마한 마을로 길가에 판자와 녹이 슨 양철 지붕으로 지은 조그마한 가게가 줄을 지어 이어져 있고, 그 속에는 탁자 몇 개와 먼지가 잔뜩 낀 음료수 와 등산객을 위한 기념품 같은 것들이 진열돼 있다.
등산을 하기에 따스한 맑은 날 씨 속에 우리들은 포터를 뒤로 하고 가이드와 함께 가게 앞을 지나 마을을 거쳐 ABC로 향했다.
한국의 산하와 비슷해 별로 이질감을 느낄 수없는 들길을 30분 정도 걷자 비레탄티 (Birethanti, 1025m)가 나온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자고 한다. 말로만 듣던 롯지 (Rodge) 이다, 문 라이트 호텔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다.
이곳 현지 음식으로 달밧(Dhal Baht)과 생선 튀김을 시켰다. 달밧이 어떤 음식인지, 어차피 이곳에서 보름을 지내려면 가장 대중적인 음식과 친해져야 할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다.
달밧
생선 튀김은 송사리 보다는 조금 큰 것으로 계곡에서 잡은 것인 모양이다. 맛은 좋았는데 달밧은 쌀이 흐물흐물해 스푼으로 떠먹을 수도 없고 녹두로 만든 스프와 따라 나온 채소가 향이 너무 강해 먹기가 약간 거북스러웠다. 그러나 산행을 하기 위해서는 먹어야 했다. 다른 일행은 생선은 맛있다며 먹지만 달밧은 입에 안 맞는 눈치이다.
옆 막사에는 우리와 내일까지 같이 갈 푼힐 전망대 팀이 식사를 끝마치고 휴식을 취하고 있다. 그들은 인원이 많아서 물어보니 한진과 혜초를 합쳐 트래킹 팀이 14명, 그에 따른 가이드, 포터, 그리고 요리사 등이 17명 합이 31 명이라고 한다. 그들이 탄 버스 앞에 정통 로얄 트래킹 팀이라고 써 붙어져 있는 이유를 묻자, 영국 왕실에서 이 코스를 통하여 푼힐 전망대까지 트래킹을 하였다하여 그런 이름이 붙었다 한다.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오후 2시에 다시 비레탄티를 출발하여 오늘의 종착지인 티케둥가로 향했다. 점차 고도를 높여가며 천천히 걷는다. 주위의 풍경은 한국의 시골과 비슷하나 주위에 많은 돌을 이용해 길바닥을 돌로 깔아 놓고 계단과 담도 돌로 정교하게 쌓아 놓은 것이 아주 아름답게 보인다. 짐을 지고 가다 피곤하면 등짐을 잠시 내려놓고 쉴 수도 있게 실용적으로 해놓았다.
네팔에는 30여개의 소수민족이 있는데 동행하는 가이드와 포터는 티베트계의 산악 민족인 세르빠족 이라고 한다. 그 들은 가이드와 포터로 많이 활동하여 좀 더 나은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하며, 또한 가이드와 포터는 엄격히 구별이 되어 가이드는 포터들이 없을 경우에는 가이드 겸 포터로 약간의 짐은 들어 주지만, 포터들을 고용했을 경우에는 자신의 조그마한 배낭만 메고 다닐 뿐 전혀 도와주지 않는다고 한다.
베낭을 맨 가이드, 포터들의 고향 선배이다.
포카라로 올 때 공항에서 짐의 무게가 65Kg이었고 거기다 자신의 배낭 2개를 합하여 최소 70Kg은 충분히 될 것인데 포터 2명은 이걸 나누어지고 오히려 우리를 앞질러 나아가고 있다. 동행한 김 선생님은 직업이라 그런 다지만, 아무리 직업이 직업이라 하더라도 한 사람이 35Kg이상의 짐을 지고 산길을 오른다는 게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마주치거나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은 크던 적던 간에 다 짐을 지고 다닌다. 이곳에서는 말이나 노새를 제외하고 별 다른 운반 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생필품을 조달하는 수단은 가장 기본적인 힘을 이용하는 방법밖에 없을 것이다. 포터들은 땀도 별로 흘리지 않고 묵묵히 걷는 것이 공연히 미안한 마음이 들곤 한다. 짐을 잘 포장하여 끈으로 꽁꽁 동여맨 후 중심을 잘 잡아 등에 메고 그 끈을 이마로 지탱하여 걷는 게 신기하기만 하다. 짐의 크기에 따라서는 바구니 같은 걸 이용하기도 한다.
2시간 반을 더 올라가서 오후 4시반경에 목적지인 티케둥가 (Tirkhedhunga, 1540m)에 도착했다. 이곳이 해발 1540m라고 하니 우리나라 계방산 정상 정도 높이이다. 오늘은 470m 정도 올라왔지만 내일은 고라파니( Ghorepani, 2750m)까지 1210m 를 7시간에 걸쳐 올라야 하는 힘든 날이 될 것이다.
짐을 풀고 나니 샤워가 된다고 한다. 샤워 룸에 들어가니 미지근한 물이 나온다. 이것도 다행이라 생각하며 땀을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가이드는 저녁 식사는 6시에 한다고 하며 된장국에 쌀밥이라고 한다.
원래 여행사와 계약조건은 정상적인 트래킹 인원인 6명이상이 되면 요리사와 키친 보이를 데리고 와서 한식을 제공하고, 트래킹이 끝나갈 때는 현지인과 같이 파티를 열어주며 특식으로 양 한 마리 바베규도 해주겠다고 했는데, 3명만 오게 되니 그게 불가능하며 우리 3명이 돈을 조금 더 내면 한식 조리가 가능한 가이드를 선정해 주겠다고 했다. 카트만두 에서 가이드에게 식사 문제를 확인 했더니만 자신이 식사를 제공하겠다고 했다. 간단한 문답은 가능하지만 한국말이 능숙하지는 않아 현지 문화나 풍습을 잘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런대로 묻는 말에는 잘 대답해주는 가이드 인데 취사 솜씨는 어떨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저녁식사는 예상보다 훨씬 맛있어 한 그릇을 거뜬히 비우고 더 청해 먹었다. 식사 후 커피를 마시고 일행과 식당 홀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어두워지니 날씨가 무척 추워진다. 다운 자켓을 꺼내 입고 헤드 랜턴을 켜고 마을을 둘러보았지만 별 구경 거리가 없다.
내일의 산행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기 위해 침대에 누웠는데, 딱딱한 나무로 만든 침상에 칸막이는 나무로 만들어 옆방에서 가방 지퍼 여닫는 소리까지 다 들리니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니다. 말을 하려 해도 귀속 말을 해야 할 형편이다.
밤 9시가 되었다. 침낭을 펴고 그 속에 들어가 잠을 청하려고 하는데 번개가 번쩍 거리고 천둥소리가 요란하다. 곧 이어 우박과 비가 양철 지붕을 때리는 소리가 기관총 소리처럼 귀를 어지럽힌다. 네팔은 지금 건기로 비가 거의 오지 않고 오더라도 조금 오다 그친다고 들었는데 계속 쏟아진다. 이렇게 비가 오면 내일은 어떻게 해야 하지 걱정하는데 전기도 나가 버린다. 헤드 랜턴을 머리 위에 준비해놓고 잠을 청해 본다.
셋째 날, 티케둥가(Tirkhedhunga 1540m)ㅡ>반탄티(Banthanti 2300m)
2월 14일. 잠자리가 불편해서인지 잠을 통 못잔 것 같다. 춥기도 하거니와 밤새 양철 지붕의 빗소리는 그치지 않고, 어디선가 꽝 꽝하고 총소리 같은 것도 계속 들려온다, 옆방에 소음이 들려 잠을 방해할 가봐 일어나지도 못하고 침낭 속에서 날이 밝기를 기다리는 것도 큰 고역이다.
희미하게 날이 밝아 오면서 좀 조용해지기 시작한다. 비가 눈으로 바뀌어 오고 있는 것이다. 롯지 마당에 눈이 쌓여 있는 것을 보고 나도 모르게 좋아서 환호성을 질렀다. 그러나 그건 좋아할 일이 아니었다. 고라파니(2750m)로 가는 길이 끊겼다는 것이다. 밤 새 내린 눈과 비로 통과해야할 밀림의 나무가 부러져 길을 막고 있다고 한다. 또 밀림을 가다 나무위에 쌓인 눈이 쏟아지는 것도 문제지만, 눈 무게로 나무 가지가 부러지면 다칠 수 있다는 것이다.
우선 아침을 네팔 빵과 달걀 프라이로 먹고 기다려 보기로 했다. 우리 숙소 밑에서 자리 잡고 있던 정통 로얄 팀이 짐을 꾸려 가는 데까지 가겠다고 나선다. 그들은 우리보다 시간이 촉박하고 시작하자마자 다시 내려 갈 수도 없는 형편이 되었다. 그 들이 길을 만들어 주면 우리에게는 참 좋은 일이다. 다시 짐을 꾸리고 8시 30분경 비옷으로 완전 무장을 한 후 길을 나섰다.
계속 비와 눈이 뒤섞여 내리고 있다. 마을 골목길을 걸어가는 데 할아버지 한 분이 눈 위를 맨발로 내려 가신다. 어제 아래 마을에서 한 여자 분이 맨발로 걸어가는 것을 보고 오늘 또 보는 것이다. 평소에 신발이 없이 다니다가 갑자기 눈이 와서 그런 모양이다.
가는 길에 눈에 쓰러진 나무가 곧 잘 눈에 띈다. 이곳이 기후가 따뜻하고 나무가 잘 크니 뿌리가 깊지 않고 줄기가 약한 모양이다. 굵은 나무들이 뿌리째 뽑혀 있다. 밤새 꽝꽝거리는 소리가 나무 쓰러지는 소리였던 것이다.
앞뒤 산이 안개에 덮여 전혀 보이지 않는다. 묵묵히 길을 따라 계속 올라간다. 마을 사람들이 낫과 도끼를 들고 넘어진 나무를 자르고 무너진 길을 보수하는 모습도 보인다.
한 시간 정도 올라가니 울레리(Ulleri, 1960m)마을이 나온다. 이곳에서 가이드가 차를 한잔 마시고 가자고 한다. 먼저 출발한 로얄 트래킹 팀들도 쉬고 있다.
롯지에서 레몬 티를 한 잔씩 마셨다. 그곳에서 쉬면서 정보를 수집하며 마을 사람들이 파손 된 길을 보수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가이드는 위에서 내려오는 가이드들과 정보를 교환하고 로얄팀과 상의 하더니 오늘 고라파니까지 가는 것은 위험하여 불가능하니 중간에 반탄티까지 가서 점심을 먹고 오후는 쉰다는 것이다. 이제 시간이 넉넉하니 모두들 천천히 이야기 하며 쉬고 있다.
포터들은 같이 모여 네팔식 알까기에 열중하고 있다. 그들은 시간이 남으면 모여서 포커를 하거나 포커에 끼지 못한 사람들은 이 놀이를 즐겨한다. 둘이서 흑과 백의 동그란 플라스틱 알을 손가락으로 튀겨서 네 귀퉁이에 있는 구멍 속으로 집어넣고 최종적으로 중앙의 빨간 알을 넣은 사람이 이기는 게임인 것 같다.
오후2시40분경 반탄티의 Fish Tail 롯지에 도착했다. 여기에는부터 고라파니까지는 밀림지대로 위험해 더 이상 갈 수가 없다는 것이다. 식당 중앙에는 드럼통으로 만든 난로를 피워놓아 여러 사람들이 눈길을 걸으며 젖은 등산화며 양말들을 벗어 말리고 있다. 우리도 젖은 옷을 벗어 말리며 쉬고 있는데 위에서 가끔 내려오는 사람들도 보인다. 그들 중에는 한국 사람도 있어 ABC는 롯지가 닫혀 올라갈 수가 없다고 하며, 고라파니에서 내려올 때 큰 나무들이 쓰러져 있어 위로 넘기도 하고 밑으로 기기도 하며 왔다는 말을 한다. 외국 여자들도 끼리끼리 왔다가 점심을 먹고 내려간다.
가이드가 점심으로 라면과 밥을 가져온다. 한국 라면에다 쌀밥을 맛있게 말아 먹고 밖을 내다보며 한가한 시간을 보낸다. 이미 머무를 방은 배정받아 짐도 그곳에 갖다 놓았지만 썰렁한 방으로 가기가 싫어 난로가로 다시 갔다. 마른 나무 가지를 난로 속으로 집어넣으며 나른한 오후를 즐기면서 내다 보니 밖은 구름이 흘러가는 대로 개였다 흐렸다를 반복한다.
옆 긴 의자에 앉아있던 서양 여자들이 배낭을 챙기고 내려가니, 와이프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누워서 쉬고 있다. 따뜻한 난로 가에 누워 무료한 시간을 보내던 와이프가 갑자기 소리를 치며 일어나 창문을 가리킨다. 창문을 통하여 황금색으로 불타는 Fish Tail의 모습이 나타난다. 너무나 황홀한 광경에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는데, 가이드가 급히 달려와 마차푸차레 !! 하며 소리친다. 구름 속에 쌓여 있던 마차푸차레가 꼬리만 살짝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다. 석양의 햇빛을 받아 황금색으로 빛나는 모습은 상상을 초월한 감동을 안겨 준다. 정신없이 셔터를 누르는데 황금색이 점점 사라져 버린다. 겨우 5분 정도의 시간만을 허락해 주는 것이다.
마차푸차레 (Machhapuchhre, 6993m)는 네팔 사람들이 신성시하는 산으로 1957년 영국의 짐 로버트 대령이 이끄는 영국의 등산 팀이 등반 시도를 했다. 그러나 궂은 날씨와 구릉족들의 강력한 항의 때문에 정상 150(혹은 50)m 아래에서 단념했고 그 일이 있은 후 네팔 정부에서는 마차푸차레의 입산을 금지시켰고 지금까지 오른 사람이 없다는 산이다. 산의 정상은 포카라에서 보면 마터호른처럼 삼각형으로 보이지만 ABC를 하면서 바라보면 물고기의 꼬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Fish Tail 이라고 부른다.
넷째 날, 반탄티(2300m)ㅡ>고라파니(Ghorepani 2750m). 2월15일
새벽에 일찍 깨어나 창문을 보니 달과 별이 총총히 빛나고 있더니만 아침에 일어나니 아주 화창하다. 언제 눈이 왔느냐는 듯 맑게 갠 하늘이다.
포터가 문을 노크하더니만 밀크티를 한 잔씩 가져다준다. 여기에서는 6시에 기상하고 7시에 아침 식사, 8시 출발이다. 아침을 먹기 전에 차를 한잔 먹고 아침 식사를 하고, 산행하다 중간에 롯지에서 차를 한잔하며 휴식을 취하고 다시 산행, 그리고 점심을 먹고 또 산행하다 새참으로 차를 마시고 숙소에 도착하여 저녁을 먹고, 매 식사 후에는 차와 디저트로 사과나 귤이 따라 나온다. 우리가 먹는 과일이나 김, 배추김치와 깍두기, 고추장, 된장, 쌀 등은 가이드가 준비해 온 것으로 과일은 포카라에서 구입한 것이지만 나머지는 한국 여행사에서 보내온 것이라 한다.
어제 석양에 황금 색으로 빛나던 마차푸차레의 Fish Tail
밀림을 통과할 때 나무위에서 눈이 떨어질 것에 대비해 모자와 비옷을 단단히 챙겨 입고 로얄 팀을 뒤 따라서 고라파니로 출발하였다. 평소 3시간 걸리는 거리를 기고 넘으며 또 나무위에서 쏟아지는 눈 폭탄을 맞아가며 5시간이 걸려 오후 1시 반에 고라파니에 도착했다.
밀림 지대를 포터가 비닐 포장을 한 짐을 지고 쓰러진 나무위를 넘고 있다.
고라파니로 가는 도중 내려오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오늘 아침 푼힐 (Poon Hill, 3210m) 전망대에서는 날씨가 아주 좋아 멋있는 전망과 일출을 잘 보았다고 말한다. 어제는 눈과 비로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는데 날씨의 변화가 참 무쌍하다.
가이드는 오늘 여기에서 쉬고 내일 새벽 5시에 푼힐 전망대에 올라 일출과 다울라기리, 안나푸르나 사우스(남봉), 히운출리등 히말라야의 산군을 보고 내려와 아침 식사를 하고 타다파니(Tadapani, 2590m)까지 갈 예정이며 눈으로 지체된 하루는 하산으로 단축하자고 한다.
롯지에서 바라다보는 안나푸르나 사우스와 히운출리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인다. 내일도 오늘 같이 날이 맑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가이드는 오늘 저녁은 닭백숙으로 하겠다며 닭고기를 구하러 내려가고 우리 일행은 난롯가에 앉아 등산화와 젖은 옷을 말리며 서툰 영어로 주인아주머니와 이야기 해보니, 딸은 포카라에서 중학교에 다니고 방학 때는 데려오고 데려다 준다고 한다. 막둥이 아들놈은 눈이 와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자기와 놀자고 공을 가지고 달라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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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또 다시 재 편집하느라수고가 더욱 많았으리라 생각이 든다.늘 그렇듯이 트레킹하는 것이 오히려 쉬울지도,,, 친구들에게 단지 봉사를 한다는 희생정신이 있으니까 밤 늦게까지 기록을 정리하여 사진도 곁들여서 올리지. 시킨다고 누가 하겠는가하는 생각이 든다. 이 글을 다른 친구들도 이수철 부부에게 많은 격려를 아끼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이다.그래야만 다음에도 더 좋은 산행후기를 볼 수 있으니까. 지금은 글씨도 크고 잘보이고,사진도 선명하니 생동감이 훨씬 좋다. 다음이 기다려진다.
하느라고 했는데 잘 되었는지 모르겠다. 재미있게 읽어주어 고맙다. 리필이 재미 있구나. 다음 산행 후기도 곧 올릴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