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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구 동기와 목적
풍물굿은 음악성이 두드러진 풍물과 제의성이 두드러진 굿의 결합 상태를 말한다. 따라서 '풍물굿'은 제의로서 '무당굿'과 구별될 뿐 아니라, 음악으로서 순수 풍물과도 어느 정도 구별되는 개념이다. 농사 현장에서 벌어지는 두레 풍물이나 줄당기기 판에서 벌이는 놀이 풍물과 구별되는 풍물이자, 무당들이 굿판에서 치는 무악으로서 풍물과도 구별되는 것이 마을 굿으로서의 풍물굿이다. 다시 말하면 풍물잽이들이 마을 굿을 베풀기 위하여 치는 풍물을 흔히 풍물굿이라 한다. 자연히 풍물굿은 마을 공동체를 중심으로 마을 공동체 성원의 주체인 풍물패들이 공동체 단위로 수행되는 제의적 목적을 염두에 두고 치는 풍물에 한정된다. 그러므로 풍물 일반이나 굿 일반과 달리 풍물굿은 마을 단위 이상의 공동체 제의와 유기적 결합을 지니게 마련이다. 여기서 논의의 대상으로 삼는 필봉풍물굿 역시 필봉이라는 마을 공동체 제의와 유기적 연관성 속에서 생성되고 전승된 것을 전제로 한다.
풍물과 굿이 결합되어 있는 것을 풍물굿이라 일컫는다고 하여, 풍물과 굿이 물리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상태가 풍물굿은 아니다. 제의 속에 음악이 내포되어 있고 음악 속에 제의가 내포되어 있어서 풍물이면서 굿이고 굿이면서 풍물인 관계를 이루고 있는 것이 풍물굿이다. 따라서 풍물굿을 두고 '풍물 친다'고 하거나 '굿 친다'고 하여 '풍물' 또는 '굿'으로 일컫기도 한다. 특히 풍물잽이들이 주도하는 가무오신(歌舞娛神) 형식의 마을 굿에서는 풍물과 굿의 구별이 없어서 풍물의 연행을 '굿 친다'고 할 뿐 아니라, 풍물패를 굿패라 일컫기도 한다. 그러므로 풍물이라 해도 좋고 굿이라 해도 상관없지만, 제의의 기능을 발휘하지 않는 풍물과 음악적 형상물이 동원되지 않는 제의와 구별하기 위해서, 그리고 공동체 단위로 전승되는 전통 풍물을 겨냥하는 뜻에서 굳이 '풍물굿'이라 한 것이다.
풍물굿의 핵심은 신명이다. 신명으로 풍물을 치며 신명으로 굿을 마치고 신명으로 풍물을 즐긴다. 이처럼, 우리 민속예술 가운데 신명이 핵심을 이루는 것은 풍물굿뿐만 아니다. 무당굿에도 신명이 있고 탈놀이와 민속춤과 대동놀이 등에도 신명이 핵심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 민속예술의 미학을 신명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봉산탈춤과 같은 탈놀이에 극적 신명이 두드러지고, 재수굿이나 병굿과 같은 무당굿의 제의적 신명이 두드러지며, 동채싸움이나 강강술래와 같은 놀이에 오락적 신명이 두드러진다면, 풍물굿에는 상대적으로 음악적 신명이 두드러진다. 그러므로 탈춤 연구에서 극적 갈등이 주목되고 무당굿 연구에서 제의적 의미와 기능이 관심거리이며 놀이 연구에서 오락적 성격이 문제되듯이, 풍물굿에서는 음악적 가락이 논의의 초점이 되어야 풍물굿의 본질적 이해에 이를 수 있다. 이 논의가 풍물굿의 여러 국면 가운데 특히 가락에 초점을 두고 집중적인 분석을 하려는 것도 이러한 근거에서 비롯된다.
마을 공동체를 기반으로 전승되는 풍물굿의 생명력은 공동체적 신명의 흐름을 통한 주체적 삶의 훈련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공동체적 신명은 같은 계급적 울타리 속에서 같은 삶의 규범과 규율을 지키며, 일상생활을 공유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생성될 뿐 아니라, 오랜 삶의 과정에서 축적된 집단적 생명력의 발산이자 가장 자유로우며 고조된 상태의 '흥풀이'를 뜻한다. 이러한 신명은 개별적 신명처럼 그냥 느닷없이 신이 나서 하는 '흥풀이'가 아니라, 공동체적 삶을 주체적으로 영위할 수 있는 성원으로 훈련시키거나, 또는 공동체적 합의와 통합에 이르는 문화적 장치로 긴요하게 필요해서 하는 '흥풀이'이다. 그러므로 풍물굿은 음악적 가락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 단위의 집단적 신명풀이라 해도 좋겠다.
풍물굿은 음악적이고 제의적인 국면 외에 공동체를 기반으로 전승된다는 점에서 사회적이며, 보고 듣는 구경거리로서 재미를 즐긴다는 점에서 오락적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는 음악적 가락을 바탕으로 하거나 음악예술을 매개로 한 국면들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풍물굿에 관한 논의를 음악적인 것에서부터 출발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풍물굿의 제의성과 오락성 또는 사회성조차도 풍물의 음악적 성격에서부터 논의가 확장되어야 온전하게 해명될 문제들로 인식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 아래, 풍물굿을 음악적 연행의 한 행위로 바라보면서 그 속에 내재한 다양한 가락의 양상들을 분석하고, 분석된 양상들의 다양성과 가변성을 역동적으로 해석함으로써 풍물굿의 실체를 좀 더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풍물굿이 지니는 복합적인 성격을 한 국면에서만 일면적으로 조명하는 것은 자칫 풍물굿의 총체적인 모습을 놓칠 가능성도 있지만, 논의가 구체적이고 논지가 분명한 국면 단위의 분석이 정밀한 작업으로 계속해서 축적될 때 풍물굿의 실체가 온전하게 포착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현재 풍물굿을 연행하는 사람들은 과거의 집단적 신명보다는 개별적으로 뛰어난 연행 능력을 갖추고 이를 음악적 역량으로 발휘하는 데 한층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것은 두 가지 의미를 뜻한다. 하나는 굿으로서 제의적 요소는 탈락되고 풍물로서 음악적 요소만 부각된다는 뜻이며, 둘은 풍물굿이 마을 공동체 속에서 민중들의 종교제의적 염원을 담아 내던 문화 장치에서 벗어나, 이제는 마을을 떠나 도심 한 복판에서 또는 공연장의 무대 위에서 연행되는 공연예술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는 뜻이다. 모든 사람이 한 덩어리가 되어 대동적 신명 풀이를 하는 전통적 '풍물굿'이 아니라, 무대에서 화려한 기량과 묘기로 구경꾼들에게 음악적 감동을 주고자 하는 현대적 '풍물예술'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풍물굿의 다양한 국면들 중에서 음악적 특징이 강조되어 있음을 나타낸다. 제의적이거나 사회적인 의미와 기능들은 축소되면서도 풍물굿의 음악적 요소와 예술적 국면들은 오히려 더욱 확대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풍물굿에서 음악적 국면을 우선적으로 분석하고자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종교 주술적 풍물굿에서 음악 예술적 풍물굿으로 연행 양식과 구체적 기능이 달라짐에 따라 공동체적 요소보다는 예술적 측면들을 더욱 강조하게 되고, 음악적 기량의 세련화에 몰입하는 경향을 조성하게 되었다. 그 결과 마침내 사물놀이와 같은 극단적 경향성을 드러내는 현대 풍물예술이 창출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음악적 가락의 분석은 풍물굿에서 사물놀이까지 지속되는 전승력과 변이 양상을 해명하는 이론적 준거를 마련하는 기초가 될 것이다.
현재 풍물굿은 어느 정도 본디 모습대로 또는 사물놀이라는 변화된 양식으로, 도시 한 복판의 공연장 무대 위에서, 또는 시위를 위한 군중들의 집회 현장 등에서 연행되고 있다. 풍물굿이 시대에 적응하며 새로운 모습으로 재창조되고 있는 실제적 양상이다. 이는 마을 단위의 공동체 사회에서 이루어지던 풍물굿이 이제는 고도로 분업화된 산업사회 속에서도 도태하지 않고 민중적 신명 풀이의 하나로서, 또는 음악예술의 한 갈래로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풍물굿이 마을 공동체의 해체와 함께 사라지지 않고 현대 도시 사회에서 음악예술로 살아남을 수 있는 원인은 과연 무엇일까. 이 의문은 역시 풍물의 음악적 가락을 해명하는 데에서부터 풀어 나가지 않을 수 없다. 그러자면 풍물굿을 연행하는 치배 구성과 풍물을 이루는 악기들은 어떠한 구조로 짜여져 있는가 하는 문제에서부터, 풍물 가락의 짜임새들을 음악적 층위에 따라 두루 분석하면서, 최종적으로는 굿 거리들은 어떻게 엮어져 있는가 하는 문제까지 해명해야 할 것이다. 이 논의는 기본적으로 이러한 문제들을 차례로 제기하고 풀어 나가고자 한다.
연구자는 필봉풍물굿의 전수자로서 오랫동안 풍물굿 치배 노릇을 하는 동안, 선배 치배들은 물론 고참 상쇠들로부터 풍물굿의 가락을 익히고 풍물굿의 이치를 가르침 받아온 풍물굿 연행자이다. 따라서 치배로서 겪은 체험과 전수자로서 터득한 연행 능력을 토대로 풍물굿 가락을 분석하고 그 역동성을 해명하되, 가장 집중적으로 겨냥하는 문제는 음악적 구성과 가락의 순차적 전개 양상이다. 치배들은 흔히 가락의 암수 구조를 일컫는가 하면, 선행 연구자들 가운데에는 판소리 가락의 '내고 달고 맺고 푸는 구조'를 언급하는 성과가 있었다. 따라서 치배의 구성과 가락의 음양 관계를 중심으로 그 대립적 배치와 조화 양상을 검토하고, 판소리 가락에서 제기된 내고 달고 맺고 푸는 구조가 풍물굿의 장단과 가락, 굿 거리, 굿판 등의 층위에 따라 실제로 어떻게 나타나는가 하는 것을 구음정간보(口音井間譜)에 의한 분석으로 명쾌하게 해명하고자 한다.
선배 치배들이 지적한 것처럼 악기의 배치와 가락이 음양 또는
암수로 대립적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전제와, 풍물굿의 가락은 층위에 상관없이 한결같이
내고 달고 맺고 푸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는 가설을 염두에 두고 이 논의를 시작한다.
그러므로 이 연구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풍물의 구성과 음악적 구성을 음양의 대립적
조화 관계를 밝히는 동시에, 모든 층위의 풍물굿 가락이 내고 달고 맺고 푸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프렉탈 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체계적으로 해명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겨냥하는 것이 연행의 가변성이자 가락의 역동성이다. 풍물굿의 연행상황
속에서 치배와 가락이 굿판의 상황과 구경꾼에 따라 어떠한 변이를 보이고 있는지를
검토하고,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여러 문화적 상황들이 풍물굿의 전승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문제에도 소박하나마 관심을 기울이고자 한다.
2. 선행 연구의 검토
농경 사회에서 마을 공동체의 집단적 신명을 부추기고 공동체 민속과 두루 결합되어 전승되는 풍물굿은 보편적 성격을 지니면서도 지역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러한 풍물굿의 실상에 관한 연구는 그렇게 만족스럽다고 평가할 수 없다. 풍물굿에 대한 체계적 분석보다는 특정 지역 풍물굿의 연행상황과 전승 형태를 기록해 놓은 보고서 성격의 내용들이 주종을 이루며, 또한 여타 민속예술을 종합적으로 연구하면서 그 관련 자료의 하나로 풍물굿을 살피는 연구가 대부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풍물굿 연구는 농악이라는 이름 아래 상당히 이른 시기부터 시작되었다. 일제 강점기의 학자들에 의해 비롯된 풍물굿 연구는 자료 수집에서부터 비롯된다.
일제 강점기에 吳晴과 村山之順에 의하여 마을굿 조사가 시작되면서, 처음으로 풍물굿에 대한 조사도 이루어졌다. 이 시기의 풍물굿 연구는 식민지 문화 정책의 일환으로 조사된 것일 뿐 체계적인 연구라고 볼 수는 없고 식민 지배 수단으로 사용하기 위한 자료 조사였다. 이 시기에 가장 주목해야 할 사항은 현재 전국 어디서나 널리 사용되고 있는 '農樂'이라는 용어가 처음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吳晴이 조선 총독부 위촉을 받아 작업한 {朝鮮の年中行事}에서 6월의 행사로 '農樂'을 소개하면서부터 이 말이 일반화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여기서 그는 '농악'을 일종의 풍속으로 보고 "이것을 속칭 '농부놀이' 혹은 '農樂'이라고 한다"고 서술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속칭은 당시 우리 민중들이 널리 사용하고 있는 용어가 아니고 吳晴이 만들어 낸 속칭이었을 따름이다. 일제시대 吳晴이 속칭으로 사용하던 것이 오늘날에는 가장 널리 사용되는 명칭으로 자리잡게 되고, 때로는 학술용어로 굳어져서 논문 제목으로는 물론 저서 제목으로까지 두루 쓰이게 되었다. 吳晴이 풍물굿을 실제 현장에서 사용되는 의미보다 축소된 의미로 한정하여 농악으로 일컬었던 것이 일부 학자들에 의해서 비판없이 쓰여지면서 풍물굿의 전승 현장에서도 풍물이라는 토박이 말들을 억누르고 농악이라는 왜색용어가 행세하게 된 것이다.
60년대 이후 문화재관리국에서 펴낸 관련 자료들은 전국 풍물굿의 실태 조사로 풍물굿의 전국적 분포 현황을 파악하고 총체적 조사로서 가능성을 확보한 의의를 갖고 있다. 그러나 어느 한 곳도 집중적으로 면밀하게 조사하지 못하고 대략적인 현황 파악에만 머물고 있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다음 단계에는 개괄적 조사 연구를 바탕으로 한 시론적 수준의 이론 연구가 이루어지는데, 박헌봉, 유기룡, 홍현식, 김천홍, 유무열 정병호 이보형 등의 연구가 이에 해당된다. 이들의 연구는 집약적 조사에 의한 심층적 연구보다는 특정 지역의 풍물굿 양상을 조사하는 민속지적(民俗誌的)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이들은 풍물굿의 진행 순서, 진(陣)풀이, 가락, 연행자 등을 조사의 대상으로 삼고 민속학적 접근과 음악적 해석을 함께 시도해 풍물굿 연구의 새로운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 가운데에서 특히 정병호와 이보형은 풍부한 현장 경험을 토대로 깊이 있는 연구 성과들을 내놓아 풍물굿 연구의 수준을 한 단계 진전시켰다. 이들 연구는 풍물굿의 독특한 연행 문법을 밝히지 못하고, 다른 민속예술의 관점에 입각해서 풍물굿을 주목한 까닭에 풍물굿의 잽이들 곧 연행자들의 역할에 깊은 관심을 갖지 않는 등 몇 가지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긴 하지만, 풍물굿의 용어 정리에서부터 무가와 판소리, 민요 등을 함께 다루어 음악적 가락을 지방별로 비교하고 이를 통하여 거시적이고 미시적인 분석을 함께 시도함으로써 풍물굿 연구에 괄목할 만한 기여를 하게 되었다.
풍물굿이 가지는 다양한 학문적 성격 때문에 민속학과 사회학, 음악학, 무용학, 체육학, 연극학 등 여러 학문 분야에서 제각기 독자적 연구가 이루어졌다. 따라서 연구의 시각을 음악, 무용, 음악과 무용, 사회적 연구와 지역적 연구, 그리고 종합적 연구 등으로 나누어 살펴 볼 만하다.
풍물굿의 음악적인 연구는 풍물의 본디 가락을 여러 모로 분석하는 연구에서, 최근에는 사물놀이에 관한 논의들로 관심이 기울어지고 있는 경향을 보인다. 먼저 풍물굿의 음악적 연구로 김현숙의 [湖南左道 農樂에 關한 硏究], 김학주의 [左道 영산 가락에 關한 音樂的 考察]을 들 수 있다. 이들 연구는 호남좌도 가락을 중심으로 가락의 리듬 패턴을 통해 가락 구조의 쓰임새에 대하여 논의를 집중하였다. 그 동안 개괄적으로 이루어지던 연구가 음악적 국면에 초점을 맞추어 심층적 분석을 함으로써 풍물굿 연구의 전문성을 높여 주었다고 할 수 있다. 주영자는 {民俗樂 Rhythm 硏究}를 통해 호남우도 풍물굿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꽹과리와 장고 그리고 북춤 가락을 중심으로 리듬의 원형을 밝히는 작업을 하였다. 아울러 꽹과리와 장고 속에 내재되어 있는 몸짓(춤)의 미적 요소에 관한 특징을 주목함으로써 꽹과리와 장고의 연행문법(演行文法)을 밝혀 내는 성과를 거두었다.
사물놀이가 대중의 인기를 누리며 국악의 한 장르를 점유하고 있는 현실에서 국악관현악과 함께 사물놀이 협연을 하게 되었다. 이의 상관성을 다루는 연구가 출현하게 된다. 그 중에서 박범훈이 작곡한 '신모듬'을 유문식은 국악 관현악과 사물놀이 Rhythm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사물놀이가 관현악기들과 어떻게 어울어지는가를 체계적으로 보여주는 성과를 거두었다.
무용적인 측면의 연구로는 정병호의 {韓國의 民俗춤}을 들 수 있다. 이 글에서 저자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풍물굿 춤의 분류 체계를 세우고 춤사위 속에 내재되어 있는 의미와 기능을 밝히고 있다. 金洋坤의 {舞踊의 探究}에서는 2편의 논문을 통하여 농악을 무용적인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지역적 편성, 채, 복식의 특징을 총론적으로 살피고 있다. 박은하의 [설장고의 리듬과 몸 동작의 관련성에 관한 연구]와 최경혜의 [杖鼓의 리듬에 關한 考察] 등의 연구는 장고를 중심으로 설장고놀이에 나타나는 리듬과 춤사위를 본인들의 경험을 토대로 기존의 오선보가 아닌 새로운 표기법을 도입하여 춤사위와 가락을 채보하고 연구하여 주목을 끌었다. 그리고 오승희의 [湖南 右道 農樂에 관한 考察]과 민경숙의 [경기 농악의 춤사위에 관한 연구]등에서는 풍물굿의 소고춤과 장고춤 그리고 무동춤의 원리를 규명하고 있다. 풍물굿의 진풀이에 대한 연구는 김옥희의 [湖南 農樂 판굿의 陣풀이에 關한 硏究]에서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풍물굿의 극적 요소에 관한 연구로는 조동일과 김익두의 연구를 들 수 있다. 조동일은 {탈춤의 역사와 원리}에서 풍물굿에 등장하는 잡색들의 의미와 기능에 대하여 논하고, 탈춤의 기원을 풍물굿의 잡색 놀이에서 찾아 풍농굿기원설을 확립하였다. 잡색으로 등장하는 양반과 각시, 포수 등의 구실과 그 변모과정을 통해서 사회적 갈등을 주목하고 탈춤의 전승주체인 민중적 시각에서 신분체제에 항거하는 민중의식들을 해명함으로써, 탈춤의 극적 갈등을 분석하는 이론적 준거로 삼는 데까지 나아갔다. 김익두의 [韓國 民俗藝能의 民族演劇學的 硏究]도 풍물에 대한 연극학적 검토로 볼 수 있다. 동제, 무당굿, 판소리 등의 상호 비교를 통해 풍물굿의 총체적인 모습을 주목하였으되, 특히 극적 요소들을 놓치지 않고 집약적으로 부각시킴으로써 민속예술 각 갈래들에 갈무리되어 있는 민족극적 성격들을 효과적으로 해명하는 성과를 올렸다.
풍물굿의 사회적 연구는 공동체 속에서 풍물굿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관심이 주종을 이룬다. 심우성, 신용하, 권두현 등의 연구가 이에 해당된다. 특히 신용하는 문헌 기록으로 정리될 수 없었던 두레와 풍물굿의 내력을 선행 조사자료들을 이용하여 밝히고 풍물굿이 두레라는 조직과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가 하는 것을 사회학적 관점에서 논하였다. 그는 풍물굿의 기원을 '노동기원설(勞動起源說)을 통해 두레에서 찾았으며 두레와 풍물굿의 사회사를 조명함으로써 이 방면의 연구를 개척하였다.
지역별 풍물굿을 주목하고 비교를 통해 지역적 특징을 밝힌 연구로는 유옥재의 연구를 들 수 있다. 전국의 풍물굿을 경기, 충청, 호남좌도, 호남우도, 경남, 경북, 강원 등으로 구분하고 그들의 춤사위, 가락, 굿 거리의 종류와 복색, 치배 구성 등을 통하여 지역적 특징을 여러 모로 조명하였다. 이 작업으로 지역적 특징이 어느 정도 드러나긴 했으되, 특정 지역의 풍물굿도 고장에 따라서 제각기 다르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앞으로 좀더 광범위한 현지조사와 고장 단위의 미시적 비교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풍물굿의 여러 측면들을 종합적으로 바라보려고 한 연구로는 김인우의 [풍물굿과 공동체적 신명]을 들 수 있다. 그는 풍물굿을 분석의 대상이 아닌 실체로 인식하여 본인이 직접 농사짓고 일하며 느껴 볼 수 있는 경험을 토대로 농사꾼에게 있어서 풍물굿은 무엇이며 그들은 풍물굿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풍물굿판의 흐름과 가락을 현장감 있게 논하고 있다. 김헌선의 {풍물굿에서 사물놀이까지}와 {김헌선의 사물놀이 이야기}에서는 사물놀이의 기원을 풍물굿에 두고 풍물굿의 역사에서부터 연구사를 비롯하여 가락 구조와 음악적 짜임새 등을 본격적으로 논의하였다. 이 연구에서는 사물놀이를 풍물굿의 전통을 이어받은 새로운 형태의 변형으로 보며 사물놀이의 구조와 비나리의 사설을 논함으로써 독창적 연구의 입지를 마련하였다. 특히 뒤의 연구는 사물놀이의 연행 현장을 꼬박꼬박 찾아다니며 그들의 연행상황과 비나리 자료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노작으로 평가된다.
풍물굿에 관한 이색적 연구로는 최근의 생태학적 접근을 들 수 있다. 현장에서 실천적 연구를 하고 있는 박문기의 작업이 주목된다. 그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풍물굿 소리를 들은 벼와 그렇지 않은 벼의 수확량은 상당한 차이가 있으며, 병충해 또한 풍물굿에 영향을 받는다고 믿고 있다. 따라서 그는 현재까지도 농약을 뿌리는 대신에 풍물굿을 쳐서 농사를 짓고 있다. 연구자는 풍물패 회원으로써 매년 그의 풍물패에 참여하여 풍물을 거들어 쳐주곤 하였다. 임재해와 김익두의 연구는 공생적 세계관에 입각하여 풍물굿을 생태학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들은 자연농법의 전통을 과학적으로 재인식하게 하는 한편, 현대사회의 각종 모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적 세계관을 제시하고 있다. 그들의 성과는 풍물굿 연구뿐만 아니라 민속연구의 새로운 관점으로 주목을 끌고 있다.
지금까지 기존연구를 살펴본 것처럼, 풍물굿에 대한 연구들은 양적으로 상당히 축적되었을 뿐 아니라 다양한 관점의 연구가 두루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질적으로는 여전히 개설적 수준과 표층적 문제인식에 머무르고 있는 한계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자료 보고서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들이 주종을 이루는 가운데, 연구자들간의 시각 차이가 줄어들지 않고 연구자간의 연결 고리도 확보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풍물굿의 가락을 채보하여 자료를 제시하고 분석하는 데, 여전히 풍물의 음악적 실상을 온전하게 나타낼 수 없는 오선보에 의한 채보에 전적으로 매달리고 있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풍물굿 연구가 진전을 보이지 못하는 데에는 몇 가지 요인이 있다. 첫째는 풍물굿을 음악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민속학 전공자들이 풍물굿을 하나의 민속자료로 주목했다는 점이다. 이들은 악보를 채보하여 분석할 역량이 없으므로 민속적 해설이나 기능을 설명하는 데 머물 수밖에 없다. 둘째, 음악 전공자들이 풍물굿을 주목하면서 음악적 분석이 어느 정도 가능했으나, 실제로 풍물가락을 익히고 풍물굿 현장에서 치배로 활동한 경험이 없으므로 풍물굿의 전승과정과 현장의 역동성을 해명하는 데에는 현장 밖에서 겉돌 수밖에 없다. 셋째로는, 풍물굿 연행자들의 경우 연행 자체에만 관심을 가지고 자신의 연행 능력을 키우는 데 몰두할 뿐, 풍물굿의 이론적 체계를 규명하는 연구 작업에는 관심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자연히 현장 체험이 연구 역량으로 발휘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연구자처럼 필봉풍물굿의
전수자로서 치배로서 역할에 만족하지 않고 음악과 민속학을 함께 전공한 역량을
기초로, 풍물굿의 전승 양상과 변화과정을 민속학적 관점에서 주목하고 음악적 가락을
채보하여 그 체계를 분석하고 해명하는 작업까지 함께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연구는 그러한 기대 속에서 시작된다.
3. 연구 방법과 자료
풍물굿은 堂山祭와 마당밟이 때, 걸쭉한 재담과 덕담으로 마을의 안녕과 태평을 기원하고 집안의 복을 비는 제의로서, 무당굿과 달리 풍물잡이들이 주체가 되어 수행하는 공동체굿이다. 그러나 일상생활 속에서는 굳이 풍물굿이라 일컫지 않고 편의에 따라서 풍물 또는 굿으로만 일컫기도 한다. 그래서 풍물굿의 연행현장을 풍물판이라고도 하고 굿판이라고 하며 어떤 부분들은 판굿이라고도 한다.
춤과 노래와 기악이 한데 어우러지는 대동놀이로서 풍물의 판굿은 다양한 놀이와 진풀이로 굿판에 모인 사람들을 하나로 모아 집단적 신명풀이 속으로 몰입시키는 구실을 한다. 그리고 두레 때의 풍물굿은 공동체 노동의 효율을 높이며 인간과 자연의 일체감을 갖게 한다. 그러므로 악보나 민속적 해설을 자료만으로는 풍물의 실상을 온전하게 포착할 수 없다. 마을공동체 속에서 실제로 전승되고 연행되는 풍물굿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자연히 현장론적 방법에 입각해서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장론적 방법에서 제기한 분석체계는 전승적 맥락에서 일정한 틀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유형 차원의 자료와, 연행 상황 속에서 가변적으로 존재하는 각편 차원의 자료로 분별해서 포착한다. 따라서 풍물굿 가락을 음양의 조화와 내고 달고 맺고 푸는 구조로 분석하면서 카오스 이론의 프렉탈 현상을 포착해내는 작업은 유형 차원의 자료로서 풍물굿을 주목한다. 그럼으로써 필봉마을에서 누대로 전승되어온 풍물굿 가락구조의 전형성을 유형 차원에서 포착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연행되는 각편 차원의 풍물굿은 그때마다 다르게 존재한다. 연행현장의 역동성을 밝히는 데에는 유형 차원의 풍물굿 가락이 어떻게 변이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내고 달고 맺고 푸는 구조'를 이루는 풍물굿의 전형성이 연행상황에 따라서는 '내고 달고 달고 맺고 푸는 구조'로 전개되거나 때로는 '내고 달고 달고 달고 맺고 맺고 푸는 구조'로 전개될 수도 있는 것이다. 연행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전개되는 변이의 양상은 전승 차원에서 확보된 기본 가락을 근거로 해명할 때 명쾌할 수 있다.
풍물굿은 전통 사회에서는 아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한마디로 언급하기에는 많은 무리가 따르며, 또한 몇 번의 참여 관찰로 풍물굿을 현장론적으로 분석하기도 어렵다. 장기 지속적으로 참여하여 다양한 연행상황을 현지조사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연구자처럼 풍물굿의 연행 현장에서 오랫 동안 치배로 활동한 전수자가 현장론적 연구를 하는 데 제격이라 할 수 있다. 현재 행해지고 있는 풍물굿이 과거의 풍물굿과는 여러 가지로 다르지만 그래도 시골 어른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하며 경험할 수 있었던 연행현장의 상황을 토대로 풍물굿의 구조를 밝히고 이러한 구조가 어떠한 변이를 일으키는가를 살펴보는 데에는 전수자로서 체험이 여간 소중한 것이 아니다.
연구 대상은 호남좌도 임실 필봉풍물굿을 중심으로 하고 기타 호남 지역에서 연행되고 있는 풍물굿도 적극 참고하기로 한다. 다른 지역의 풍물굿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 참고하였다. 필봉풍물굿을 주자료로 삼는 근거는 명백하다. 연구자가 이 풍물굿의 장고잽이 전수자로서 약 15년에 걸쳐 풍물굿을 익히며 연행 현장에 치배로 참여하였기 때문이다. 연구자가 그 동안 필봉마을 사람들과 연행을 함께 하면서 경험할 수 있었던 풍물굿의 내용과, 상쇠 양순용을 스승으로 모시고 1980년부터 1995년까지 풍물굿 전수를 통하여 경험했던 사실들을 중요 자료로 삼는다. 관찰자의 입장에서 풍물굿 연행현장의 상황과 인적 구성만 주목하기보다는 직접 연행현장에서 연행자들과 호흡을 함께 하며 풍물굿에서 벌어지는 가변적인 상황과 풍물굿이 시작되기 전에 구상하고 굿판을 예측하는 과정, 풍물굿을 배우고 익힌 것들을 실제 굿판에서 관철시켜나가는 과정, 그리고 풍물굿이 끝나고 치배와 구경꾼 속에서 나오는 다양한 담론들을 적극 끌어들임으로써 현장감 있는 논의를 전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공시적 접근으로는 인적 구성에 따른 굿판의 짜임새, 치배의 역할과 기능, 가락의 구조, 풍물굿 속에 내재하고 있는 음양의 조화, 내고 달고 맺고 푸는 구조의 반복 등에 주목하고자 한다. 통시적 접근으로는 시대 상황에 따른 풍물굿의 변화 양상, 상쇠의 계보에 따른 지역 풍물굿 연행 형태, 전수 방법;[ 형태, 전승 형태, 치배의 변화, 문화 변동에 따른 풍물굿 가락의 변화 등에 주목할 것이다.
필봉풍물굿 가운데서도 이 연구에서 주 대상으로 삼는 자료는 연구자가 1984년부터 필봉풍물굿의 장고잽이로 연행했던 경험 속에서 수집된 자료들로 한정한다. 이와 함께 논의할 자료들은 문예진흥원 자료실에서 확보하고 있는 필봉풍물굿 자료와 봉천놀이마당, 양순용 등이 소장하고 있는 필봉풍물굿 자료, 그리고 MBC와 KBS 방송국에서 녹화한 비디오 테이프 자료를 중요한 자료로 끌어들인다. 필봉풍물굿의 상쇠이자 기능보유자인 양순용으로부터 풍물굿을 전수 받던 당시의 구술 자료와 양순용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수하며 구술했던 자료들을 풍물굿의 전승과 연행을 이해하는 참고 자료로 삼는다. 논의의 객관성을 높이기 위하여 구체적인 가락 구조 분석은 기능보유자인 양순용의 꽹과리와 장고 가락을 채보 하여 분석 대상으로 이용하였다.
본 논문을 작성하고 있는 도중 양순용이 타계한 까닭에 미진한
부분을 보강하거나 확인하는 데에는 상당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양순용이 계속
연구자를 지켜보며 계속해서 가르침을 주었더라면 한층 나은 연구가 가능했을 것이라
믿으며 새삼 그분의 명복을 빈다. 연구 대상으로 삼은 자료 목록을 밝히면 다음과
같다.
<풍물굿 자료>
1)1980년 2월 8일, 필봉마을 발표 공연 판굿 비디오 테이프,
(연구자 소장),(문예진흥원소장, VTR. 13.Vol.3-7).
2) 1984년 2월 20일, 필봉마을 발표 공연 판굿 비디오테이프 (양진성 소장).
3) 1987년 2월 23일, 남원보절에서의 발표 공연 비디오테이프 (연구자 소장).
4) 1990년 6월 8일, 서울 놀이마당 공연 비디오테이프 (봉천놀이마당 소장).
5) 1991년 2월, 1991년 남원보절 정월대보름굿.
6) 1994년 5월, 임실사선제 공연(연구자 소장).
7) 1994년 5월 23일, 전주다가공원 보름굿.
8) 1995년 9월, 예술의 전당 공연.
9) 1995년 10월, 광주비엔날레.
10) 1996년 2월 17일, 남원 광한루 정월대보름굿 비디오 테이프.
11) 1996년 9월 22일 서울놀이마당 공연.
12) 1992년 전라 좌도 진안중평굿 보존회 결성 기념 공연 비디오테이프
상쇠 김봉열, (연구자 소장).
13) 1992년 이리 풍물굿 비디오테이프, (연구자 소장).
14) 1979년 진주삼천포 12차풍물굿 비디오테이프(연구자 소장).
15) 연도 미상 금산좌도 풍물굿.
Ⅱ. 풍물굿 전승 현장과 치배의 역할
1. 필봉마을과 풍물굿 연행 상황
필봉마을은 전라도의 남부지역에 위치하고 동쪽으로는 진안 군과 장수군이, 남쪽으로는 남원군과 순창군이, 서쪽으로는 정읍군이, 북쪽으로는 전주시를 끼고 있는 완주군이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군 소재지에서 서쪽으로 약 30km 가량 떨어진 곳에 면 소재지가 자리하고 있으며 다시 면 소재지에서 북쪽으로 약 3km 가량 떨어진 곳에 마을이 있다. 마을 서쪽으로 붓끝이 모아지듯 산자락이 정상을 향해 반듯하게 모인 필봉산이 마을을 감싼다. 이 마을의 산세는 험하기 때문에 농토의 규모가 작고 논농사보다는 밭농사가 주를 이루는 농업 형태를 취한다.
마을의 지명 유래를 살펴보면 동쪽에 있는 산이 암소 형국이고, 마을의 위치가 외양간과 같다고 하여 중방리라 하였다. 마을은 두 개로 나뉘어져 있는데 각각 윗중방, 아래 중방이라 부른다. 두 마을은 마을간 명칭 관계로 원님에게 상소하는 사건까지 겪어 가며 원과 가까운 곳을 상중방, 먼 곳을 하중방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지리적으로는 상중방이 남쪽, 하류쪽에 있고, 하중방이 북쪽, 상류쪽에 위치하고 있어 다른 곳과는 상 하 관계가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위 아래의 개념이 지리적 조건보다는 원을 중심으로한 문화적 개념이 반영된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일제시대에 마을 서쪽에 있는 산 모양이 붓과 같다고 하여 산 이름을 따 필봉리로 개칭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본고에서 사용하고 있는 필봉리는 상중방과 하중방을 포함한 것이 아니라 상중방을 말한다. 이 마을에는 박(朴), 김(金), 양(梁) 3성씨가 힘에 균형을 가지고 유지하고 있다.
현재 필봉마을은 24가구에 74명이 살고 있는데, 50세 이상이 대부분이고 30대 부부 1가구, 40대 부부 1가구만이 살고 있으며 이제는 젊은이가 모두 떠나간 마을이다. 그러나 과거 80년에는 47가구 150명의 인구가 살고 있었다.
풍물패를 구성하려면 꽹과리 4-5명, 징 2-3명, 장고 7-8명, 북 2-3명, 소고 12-15, 잡색 7명, 기수 3명 등 40-50여명의 인원이 필요하게 된다. 필봉마을의 경우 80년대까지는 마을 사람들만으로 굿패를 충분히 꾸려 나갈 수가 있었다. 하지만 점차 이농현상으로 사람들만으로 풍물패에 필요한 인원을 채울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인근 마을에서 필요한 잽이을 부르게 되어. 현재는 필봉마을 사람들과 인근 사람들이 함께 풍물패를 구성하고 있다.
치배구성의 또 다른 변화는 기예를 갖춘 젊은 사람들이 풍물패에 들어오는 것이다. 이렇게 기예가 뛰어난 젊은이들의 유입은 필봉풍물굿 전반적 기예 상승을 가져왔다. 반면 전통적으로 유지해 오던 삶과 밀착한 풍물굿의 특성은 조금씩 빛을 잃어 가며 기예중심의 공연위주의 경향을 보인다.
마을 사람들이 풍물굿에 대한 관심이 큰 경우에 그 마을 연행력은 대단히 뛰어나며 형태 또한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그렇지 않은 마을의 연행력은 떠러지되 된다. 그리하여 마을 굿을 큽려고 하면 다른 마을에서 상쇠를 비롯한 핵심 치배들을 불러 들여 마을 굿을 해야만 한다. 따라서 연행력이 아주 뛰어난 상쇠와 잽이들은 이곳 저곳 불려 다니며 굿을 치게 되며, 인근 지역에서 가장 뛰어난 상쇠는 '도상쇠'라는 칭호를 받으며 인근지역 풍물굿을 이끌어 나간다. 이렇듯 상쇠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상쇠의 성향이 곧 그 지역 풍물굿의 특징을 결정짓는 경우도 많이 있다. 이러한 이유로 풍물굿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상쇠에 대한 연구는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대부분 마을의 경우 상쇠 외에도 치배들은 많이 있지만 굿 머리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상쇠가 타계하고 나면 그 지역 풍물굿이 소멸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 현상도 상쇠의 중요성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상쇠의 위치가 이러한 만큼 상쇠들의 내력을 밝히는 것 또한 한 지역의 풍물굿을 연구하는데 대단히 중요한 작업이라고 여겨 진다.
필봉풍물굿의 상쇠 양순용은 필봉마을에서 태어났다. 집안이 그리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농사를 지어 생계를 유지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는 집안이었다. 갈담국민학교를 마치고 임실동중학교를 다니다 중도에 포기하고 집에서 한학을 공부하였다. 어린 시절부터 풍물굿에 유달리 관심이 많아 풍물굿 소리가 나면 집에 가는 것도 잊고 풍물굿 뒤를 따라 다녔다. 그리하여 14세 때 인근에서는 가장 뛰어난 상쇠 박학삼 밑에서 끝쇠를 치기 시작하면서부터 풍물굿에 등장하게 된다. 그러나 얼마 후에 박학삼이 타계하자 부쇠를 치던 송주호가 상쇠를 치고 양순용이 부쇠를 치지만 송주호 스스로 상쇠를 양순용에게 물려 주고 자신은 풍물굿을 치지 않게 된다. 18세의 나이에 상쇠가 된 그는 본격적으로 상쇠에게 필요한 기능을 익히기 위하여 순창과 임실지역에서 뛰어난 연행능력을 가지고 있는 상쇠들을 찾아다니며 쇠가락과 부포놀이을 배우기 시작한다. 그렇게 풍물굿을 배우러 다니다가 인근에 양순용의 뛰어난 기예가 소문 나자 24, 25세 때에는 임실군과 순창군의 걸궁패 상쇠를 하게 된다. 그리고 필봉마을 청년들에게 풍물굿을 가르치며 필봉풍물굿은 체계를 갖추어 가게 되고 그는 뛰어난 기예를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던 것이다.
필봉마을이 풍물굿의 체계와 기예를 갖추게 되자 이제는 '필봉농악단'이라는 이름으로 대외적 활동을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1975년에는 전주대사습놀이에서 '壯元'을 하게 되었다. 그후 1980년 필봉마을 사람들이 힘을 모아 필봉풍물굿 전반을 소개하는 발표회를 가졌다. 84년에는 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국무총리상을 받는 등 활발한 대외 활동과 함께 전국의 대학생들이 필봉마을로 풍물굿을 배우러 몰려오면서 필봉풍물굿은 이제 단순한 필봉마을의 풍물굿이 아닌 전국적인 풍물굿이 되었다. 이렇게 양순용은 필봉풍물굿의 대외적 활동과 전수에 대단한 애착을 보이면서 현재의 필봉풍물굿을 유지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되었다.
1985년 남원군 보절면 금다리 호동마을로 이사하였지만 필봉마을에 있을 때보다 더욱 많은 사람들이 풍물굿을 배우기 위하여 찾아오게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풍물굿을 배우려는 사람이 많아져 마을에서 수용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따라서 1994년에는 폐교된 학교에서 배우러 오는 사람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1995년 12월, 1996년 1월 2월 겨울방학 동안 120개 팀 1500여 명, 1996년 6월, 7월, 8월 여름방학 동안 160개 단체 1700명이 풍물굿을 배우러 왔다. 그리고 1994년에는 임실군 강진면 필봉리에 전수회관이 건립되어 일반인과 학생들이 필봉풍물굿을 배우러오게 되어 1994년 37팀 800명, 1995년 40팀 1143명이 다녀갔으며, 1996년 1월 3팀 13명, 2월 2팀 16명, 3월 2팀 23명, 4월 1팀 16명, 6월 1팀 10명, 7월 5팀 91명, 8월 2팀 71명 등 16개팀 230명이 풍물굿을 배우고 갔다. 양순용은 이렇게 필봉풍물굿 연행과 전수에 전념하며 왕성한 활동을 하다가 1995년 8월 55세에 타계하였다. 현재는 그의 아들 양진성이 상쇠를 이어받아 아버지의 뒤를 잇고 있다.
이렇듯 필봉마을 사람들의 열의와 상쇠의 뛰어난 연행력은 마을 전체의 풍물굿 기예가 향상됨은 물론 풍부하고 다양한 형태의 풍물굿 연행을 온전히 보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필봉마을뿐아니라 진안중평마을 김봉렬의 경우에도 같은 모습을 보인다. 개인의 지대한 노력으로 한 지역의 풍물굿이 소멸하지 않고 온전하게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는 것이다.
84년 민속경연대회 출전 |
88년 무형문화재 조사 |
94년 서울놀이마당 공연 |
95년 예술의 전당 공연 |
95년 광주비엔날레 공연 |
|
상 쇠 |
양순용(필봉), |
양순용(남원), |
양순용(남원), |
양진성(남원), |
양진성(남원), |
쇠 |
임초대(필봉), 박병기(필봉), 강재홍(필봉), 강재근(필봉) |
박종술(필봉), 박병규(필봉), 강재근(필봉), 양진성(필봉), |
강재근(필봉), 양진성(전주), 촤남동(광주), |
강재근(필봉), 최기성(필봉), 최남동(남원), 최호인(서울), |
강재근(필봉), 최남동(남원), 최호인(서울), |
징 |
박종래(필봉), 박봉용(필봉), 김영렬(필봉), |
박종래(필봉), 박봉용(필봉), 박종원(필봉), |
김영열(필봉), 한강수(서울), 외 1명 |
김영열(필봉) 한강수(서울) 손길환(서울) |
김영렬(필봉), 조계원(갈담), 양순주(부산), |
장 고 |
유복천(필봉), 박형래(필봉), 박병권(필봉), 김문용(필봉), 박노수(필봉), 양순주(필봉), |
박형래(필봉), 유복천(필봉), 박병권(필봉), 김문용(필봉), 박노수(필봉), 양윤석(필봉), |
박병권(필봉), 박춘석(청웅), 박남수(필봉), 이종진(전주), 양진환(남원), 이수금(김해), |
박병권(필봉), 박춘석(청웅), 박남수(필봉) 최기철(남원), 이종진(전주), 양진환(남원), 남기원(서울), |
박형래(필봉), 박병권(필봉), 박춘석(청웅), 박남수(필봉), 최기철(남원), 양진환(남원), 이재정(전주), 이수금(남원), |
북 |
소태호(남원), 소재옥(남원), |
조희춘(울산) 외 1명 |
한승열(여수), 황순주(부산), 최석민(서울), |
이종원(경주), 문찬기(광주), |
|
소 고 |
김종술(필봉), 김길원(필봉), 박종윤(필봉), 박봉엽(필봉), 김형곤(필봉), 조현섭(덕치), 박경년(필봉), 박봉성(필봉), 김형식(필봉), 홍순호(필봉), 박병규(필봉), 양병오(필봉), 김원호(필봉), 임종원(필봉), 김혀문(필봉), |
김종술(필봉), 김길원(필봉), 조현섭(덕치), 박종윤(갈담), 박기두(남원), 백병문(남원), 이의정(남원,) 소재균(남원), 김종철(남원), 양승렬(남원), 정용원(필봉), 방양원(남원), |
이원재(남원), 채규병(필봉), 이강인(필봉), 이재석(갈담), 황인성(광주), 김희석(이목), 이강언(이목), 조기선(갈담), 조재권(갈담), 서성표(덕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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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포수 |
박순기(필봉), |
박순기(필봉), |
최상길(서울), |
최상길(서울), |
최상길(서울), |
창 부 |
김종열(필봉), |
서영래(이목), |
서영래(이목), |
서영래(이목), |
서영래(이목), |
조리중 |
박동조(필봉), |
박동조(필봉), |
김덕만(필봉), |
박영훈(서울), |
박영운(서울), |
양 반 |
김봉기(필봉), |
양봉준(필봉), |
김석균(전주), |
박훈채(갈담), |
, |
각 시 |
소재삼(남원 |
오미애(광주), |
김점순(갈담), |
김점순(갈담), 오미애(광주), |
|
무 동 |
양진성(필봉), |
박조숙(필봉), 양숙희(필봉), |
김성숙(갈담), 김성희(갈담), |
김성숙(갈담), 김성희(갈담), |
김성숙(갈담), 김성희(갈담), |
농 구 |
, |
방상원(남원), |
|||
농기수 |
박태갑(필봉), |
박태갑(남원), |
공병량(갈담,) |
공병량(갈담), |
공병량(갈담), |
영기수 |
이춘승(필봉), 김종갑(필봉), |
이춘승(남원), 박석수(필봉), |
박창엽(갈담), 남기원(서울), |
김덕만(갈담), 조기선(갈담), |
정인하(갈담), 박차엽(갈담), |
태평소 |
양순주(울산), |
||||
총 원 |
40명 |
40명 |
35명 |
44명 |
42명 |
<표 1> 필봉풍물굿 치배 현황
필봉풍물굿의 시대별 치배구성을 보면, 위 <표1>에 나타나듯이 명단의 변화는 많다. 그렇지만 핵심적이 치배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므로 필봉풍물굿의 변화는 심하지 않고 과거의 형태를 많이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1984년 이전 필봉마을에서 풍물굿 치배 구성은 대부분이 마을 사람들로 이루어졌다. 당시에는 마을 사람들의 관심도 많았고 마을의 단합도 잘 이루어졌다. 그렇지만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풍물굿에 관심도 떨어지고 마을을 떠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풍물패에 외부인들의 유입이 많아지게 되었다.
2. 풍물굿의 전승 방식과 전통의 지속
풍물굿은 판이 벌어지고 있는 연행현장에서 전승, 전수가 동시에 이루어진다. 풍물굿이 벌어지는 현장이 풍물굿을 배울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다. 만약 이 때를 놓치면 일년 뒤 다시 굿판이 열릴 때까지 기다려야만 한다. 왜냐하면 풍물굿은 일상적인 행위가 아닌 비일상적인 행위로서 특정한 시기와 장소에서만 열리기 때문이다. 즉 정월의 당산제, 걸립, 호미씻이, 잔칫날 등 특별한 경우에만 연행되는 것으로서 연습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전통 사회에서는 굿이 끝나면 악기를 당집이나 마을회관에 넣어 두기 때문에 풍물굿을 따로 연습하기 위하여 개인이 악기를 가지고 다닌다거나 풍물을 집안에 들여놓을 수는 없었다. 평상시 악기 소리는 무당집에서만 들리고 악기 연습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마을 사람은 풍물굿이 열리는 현장에서만 악기를 구경할 수 있었을 뿐 평시에는 전혀 악기를 보거나 연습할 수 없었던 것이다.
치배들의 배치 순서에서는 연행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맨 앞에 서고 그 뒤로는 연행 능력 순서대로 서는 것이 일반적인데, 그 이유는 앞에 선 치배가 굿판의 풍부한 경험과 굿의 흐름을 잘 읽고 가락을 이끌어 가면, 뒷 사람은 앞 사람의 영향을 받아 판의 흐름을 잡아간다. 만약 앞 치배가 가락이 틀린다거나 판의 흐름에 어긋나게 되면 그 뒤를 따르는 치배는 중심을 잃고 흔들리게 된다. 그리고 뒤 치배는 앞 치배의 연행을 자신의 연행에 견주어 봄으로써 자신의 기예를 높이는 기회를 가지며,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자리이기도 하다. 구경꾼은 치배들의 가락과 몸짓을 지켜 보다가 그 가락이나 몸짓이 마음에 들거나 좋다고 생각될 때 넌즈시 한번 흉내를 내봄으로써 자연스럽게 가락과 몸짓이 전수 되는 것이다.
다음 단계는 풍물굿 가락에 말을 붙여 가락을 익히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풍물굿은 학습을 통한 전수 형태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길거리를 걸어간다거나 들에 일하러 가거나 아니면 마을 사람들끼리 모였을 때 ぢ땅도 땅도 내 땅이다 조선 땅도 내 땅이다っ 또는 ぢ긴길사 돈닷돈 긴기리사 돈닷돈っ라는 말을 흥얼거리는 것이다. 앞의 것은 삼채의 입장단이고, 뒤의 것은 질굿의 입장단이다. 이러한 풍물굿 가락은 연행현장을 벗어나 있음을 말해 준다. 그리고 사람끼리 모여 악기를 칠 수 없을 때에는 악기 소리를 흉내내어 판을 벌인다. 필봉마을에서는 '입장단'이라고 한다. 휘모리가락의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꽹과리는 "주께 주께 주께 주께", 징은 "주어라 주어라", 장고는 "줄똥 말똥 줄똥 말똥", 북은 "푹푹 쑤셔라" 등의 표현이 있다. 이러한 입장단는 악기와 가락의 특성들이 잘나타내고 있다. 이렇듯 저마다의 입장단에 맞추어 가상의 풍물굿을 벌이는 것이다. 이러한 놀이는 악기만 가지고 있지 않았지 실제의 풍물굿에서와 같은 흥과 신명을 느낄 수 있다. 곧 풍물굿 가락이 연행현장에서 뿐만아니라 일상의 공간에서도 익혀지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오늘날 전수 방법은 학습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러한 방식을 흔히 "풍물굿 전수"라고 한다. 풍물굿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풍물굿에서 시·공간적으로 많이 떨어져 있기 때문에 풍물굿이 벌어지는 현장을 체험하기란 흔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가상의 굿판을 상정해 놓고 부단한 학습을 통해 가락과 몸짓을 익힌 후 기존의 풍물굿에 들어오게 된다. 이러한 학습은 주로 가락을 중심으로한 기예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풍물굿은 유희적 성격은 더욱 강화된다.
과거의 풍물굿은 마을 단위의 공동체 생활속에서 마을의 안녕과 개인의 축복을 빌어 주는 신명의 굿판을 벌였다. 그러나 오늘날 고도로 분업화된 산업 사회에서 풍물굿은 뛰어난 기예를 바탕으로 하는 공연 위주로써 인식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현재의 풍물굿이 전적으로 학습에 의해서만 전수되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풍물굿은 연행현장을 중요시하며 현장에서의 전승이 강조되고 있다. 연행자들에게 현장 경험은 필수 불가결한 것이지만 사실상 그 기회는 점차 줄어들고, 입장단과 학습을 통해 전수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풍물굿은 한 개인의 두드러진 모습보다는 모든 사람이 함께 어울러질 수 있는 대동의 정신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이는 개인의 독자성보다는 여러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공동체적 삶을 익히는 것이다.
풍물굿의 전승에서 상쇠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상쇠가 독주를 하는 경우 굿의 변질을 가져올 수도 있으므로 상쇠의 독주를 막을 수 있는 역할이 필요하다. 이 역할은 풍물굿에 직접 참여하지 않는 마을 노인들이 맡는다. 노인들은 풍물굿이 벌어지면 판에서 멀리 떨어져 굿판을 바라본다. 그들은 따로 차려준 술상 앞에 모여 풍물굿을 지켜보면서 치배와 구경꾼들과는 다른 흥과 신명을 만끽한다. 뿐만아니라 과거에 당신들이 느끼던 풍물굿을 회상하며, 치배들을 논하거나 현재 판에서 누구의 가락이나 몸짓, 재담이 판 속에서 잘 어울리고 어울리지 않는가를 비교 평가하는 것이다.
다른 형태로는 다른 마을로 걸립(乞粒)을 하러 가거나 우리 마을에가 들어올 때 마을 어귀에 있는 당산 아래서 당산굿을 치는 '들당산굿'이 있다. 들당산굿은 상대 마을에 "우리 풍물패들이 당신의 마을에서 풍물굿을 치려고 하니 허락하여 주십시오"라는 뜻으로 상대 마을에서 풍물굿을 칠 수있도록 허락을 받아 내는 굿이다. 이때 마을 노인들이 나와 풍물패를 보고 법도에 어긋난다거나 기예가 떨어진다고 생각하면 마을로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 그러면 풍물패들은 뛰어난 상쇠를 불러와 다시 들당산을 친다. 이때 마을 노인들은 풍물패에게 법도에 맞게 굿 머리를 잘 이끌어 가면 암호나 문자로서 수수께끼를 낸다. 만일 문제를 풀지 못하면 마을에 들어올 수 없고, 문제를 풀었을 때에는 마을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
마을 안에서 풍물굿이 벌어지고 나면 '상쇠대접'이라는 것이 있다. 상쇠대접이란 마을 노인들이 상쇠를 불러 술상을 차려 놓고 상쇠에게 술을 권하며 상쇠의 잘된 부분과 잘못된 부분을 논평하는 자리이다. 특히 "상쇠가 굿 머리를 잘 알고 있다", "그때 참으로 적절하게 굿 머리를 돌렸다"는 등의 말을 건네면서, 술 잔을 권한다. 결국 잘한 상쇠는 노인들로부터 후한 대접을 받는다. 반대로 잘못한 상쇠는 노인들에게 하나 둘 잘못을 지적받으며, 술상의 안주를 내려 놓아 결국 술상위의 안주는 모두 술상 아래로 내려오고 마는 것이다. 이렇듯 풍물굿에서 노인들은 무서운 존재로서 풍물굿의 교정자 역할을 담당한다.
풍물굿의 질서는 느슨한 것처럼 보이지만 거기에는 아주 엄격한 질서가 존재한다. 예컨대 풍물굿 치배들은 '법도'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데, 법도란 풍물굿에서 치배와 구경꾼이 지켜야 할 규율이다. 풍물굿이 진행되는 동안 구경꾼의 추임새, 판 안으로 들어가는 것, 춤추는 것, 진풀이, 굿 거리의 엮음새, 가락의 붙임새, 몸짓, 복장, 치배구성 등에서 지켜야 할 정도를 말한다. 굿판에서 치배는 물론이고 구경꾼들은 아무곳에서나 끼어들 수는 없다. 만약 치배와 구경꾼이 신명이 날 경우 자기의 신명으로 무작정 판 안으로 들어오게 되면 굿판이 지속되기 힘들다. 풍물굿에는 시작하는 굿, 신명나게 놀 수 있는 굿, 마무리하는 굿이 존재한다. 처음부터 흥겹다고 하여 신명만 끌어 올린다면 쉽게 지치고 싫증을 내서 하나의 완성된 굿판을 완성하기란 불가능하다.
풍물굿은 엄격한 법도에 맞추어서 판을 형성할 때 비로소 잘하는
굿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풍물굿에는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치배와 구경꾼 사이에는 일정한 거리가 존재하고 법도는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판의 원만한 진행을 위하여 종래에는 보이지 않던
연출자나 진행자와 같은 사람이 있어야만 판이 깨어지지 않고 이끌어 지는 것이다.
3. 치배의 구성과 역할
1) 상쇠의 역할
풍물굿에서 상쇠가 누구냐에 따라 큰굿이 되기도 하고 작은 굿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요인은 순전히 상쇠의 역량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 마을에 큰 굿을 벌이려 하는데 뛰어난 상쇠가 없을 경우, 다른 마을에서 연행 능력이 뛰어나고 굿머리를 잘 알고 있는 상쇠를 품삯을 주고 사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연행 능력이 뛰어난 상쇠는 이 마을 저 마을로 불려 다니며 풍물굿을 치러 다니기 때문에 인근 마을에 소문이 나게 되는 것이다.
상쇠는 굿판의 지휘자, 연출자, 기획자이며, 동시에 연행자까지를 겸하는 중심인물인 것이다. 그러므로 상쇠의 능력이 곧 굿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상쇠의 역할은 그 호칭에서도 잘 부각된다. 즉 상쇠를 부를 때 나이의 고하를 막론하고 ぢ상쇠영감っ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렇듯 상쇠는 극진한 대접을 받는다. 그러면 상쇠의 기능과 역할을 살펴보자.
첫째, 기획자로서의 기능이다. 상쇠는 처음 어디에서 어떠한 굿을 열 것인가를 구상한다. 또한 풍물굿을 열고자 하는 사람이 상쇠에게 굿의 성격과 내용을 이야기하고, 이에 따르는 제반 문제를 상의하여 결정한다. 여기에서 상쇠의 의견이 가장 두드러지게 반영되는 것은 물론이다. 그리고 때로는 상쇠가 굿판을 구상하여 결정한 다음 이를 치배들에게 알려 굿을 벌릴 때도 있다.
둘째, 지휘자로서의 기능이다. 상쇠는 굿판의 성격과 시기, 상황에 따라 전체 판의 흐름을 잡아가며 인원 통제와 구성에 관여하는 역할을 한다. 치배를 구성함에 있어 상쇠는 모든 치배들의 장단점을 파악하여 판의 흐름에 맞게 인력을 배치한다. 그렇게 하려면 상쇠는 기능은 물론 지략과 덕망을 함께 갖추어야만 모든 치배들이 그의 통솔에 따르게 된다. 물론 똑같은 풍물굿이라도 상황과 여건에 따라 다른 굿을 열게 되는데, 상황 변화에 맞는 굿판을 구상하여 모든 치배들에게 알려 준다. 그리고 굿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치배가 있으면 일정 부분 숙지시키는 작업 또한 상쇠의 역할 중 하나인 것이다.
풍물굿이 진행되는 동안 굿판에 어울리지 않는 치배와 구경꾼들의 과다한 행동이나 가락은 상쇠가 통제하고 자제하도록 해야만 한다. 그리고 치배와 구경꾼들에게 놀 수 있는 여백을 만들어 주고, 주위 상황과 어울리지 않을 때에는 가락에 변화를 주거나 굿 머리를 전환해 주는 작업을 하여야만 하는 것이다.
셋째, 연행자로서의 기능이다. 상쇠는 여타 다른 연행자들과 같이
풍물굿의 한 구성원으로서 악기를 들고 연주하는 것은 물론이요 부포를 쓰고 춤추며
부포놀음을 하여 구경꾼과 치배들에게 흥을 불어넣어 주어야 한다. 따라서 상쇠가
뛰어난 기예를 갖추고 있어야만이 치배는 물론 구경꾼들의 시선을 끌어낼 수 있는
것이다. 상쇠의 모든 지시는 몸짓과 악기연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연행을 하는 모든
치배들은 항상 상쇠를 주목하고 있다. 상쇠의 가락과 몸짓은 오케스트라에서 지휘자의
지휘봉과 같은 기능으로 가락의 맺고 넘기는 시기를 적절하게 조절해 주는 역할을
한다. 그리하여 풍물굿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상쇠가 되려면 가락만 잘 쳐서도
안 된다"고 말하며, "가락만을 잘치는 것은 오히려 부쇠이지 상쇠는 판을
잘 읽을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2) 꽹과리의 역할
꽹과리 소리는 음이 매우 높고 자극적이며 충동적이기 때문에 사람의 감정을 고조시키고 흥을 돋우는데 적합하다. 또 악기가 작기 때문에 기동성이 있어 머리에는 상모를 쓰고 손에는 꽹과리를 들고 춤을 추는 모습은 우리 민속춤의 한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꽹과리의 리듬은 풍물굿 전체를 주도하며 정교하고 다양한 리듬을 구사한다.
꽹과리는 굿판에 소리가 가장 잘 들리기 때문에 모든 가락의 중심이 되는 것이다. 만약 꽹과리 잽이들의 가락이 흔들리면 풍물굿 전체의 가락이 흔들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꽹과리 잽이들은 상쇠의 소리를 잘 듣고 가락을 쳐야만 한다.
꽹과리 가락은 풍물굿의 분위기를 이끌어가야만 하기 때문에 풍물굿의
분위기를 잘 파악하여 가락의 강약과 빠르기를 적절히 조절 해야만 한다. 가락의
빠르기를 조절하려고 할 때에 상쇠는 꽹과리 잽이에게 지시하고 꽹과리가 상쇠의
요구를 잘 지켜주면 다른 치배들은 꽹과리 소리를 듣고 따라가게 되는 것이다.
3) 징의 역할
꽹과리 다음으로 징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풍물굿에서는 징의 인지도가 매우 낮은 것을 볼 수 있다. 치배를 구성함에 있어서
특정한 악기에 주특기가 없는 사람이 징을 잡는다거나, 서로의 관계에서 실력이 떨어지는
자가 징을 잡는 경우가 자주 보인다. 그리고 풍물굿이 열리면 구경꾼 중에 어떤 이는
징잽이의 징을 빼앗아 징을 치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풍물굿을
가락 중심으로 볼 때 꽹과리, 장고, 북에 비하여 징이 리듬이 복잡하지 않고 대박만
쳐주기 때문에 징은 누구나 쉽게 다룰 수 있다는 생각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잘 못 된 것이다. 징은 리듬을 치는 것이 아니라 리듬의 대박을 짚어
주고 쇠와 가죽의 튀는 소리들을 한데 모아 주는 구실을 함으로써, 도드라지는 것이
아닌 바닥에서 감싸고 안아 주는 집안의 어머니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의 풍물굿 잽이들은 징을 무척 소중하게 생각하고 다루었으며 꽹과리와 장고의
치배끼리는 서로 바꾸기도 하지만 징만은 절대 다른 사람에게 주지 않고 징잽이만이
칠 수 있다. 그리고 징의 타점이 어떻게 들어가느냐에 따라 가락의 이름이 지어질
정도로 징이 중요하게 여겨졌다. 가락 이름에서 '채'가 들어가는 것이 많이 있는데
'일채', '이채', '삼채', '사채', '오채', '육채', '칠채' 등과 '마치'라고 불려지는
'두마치', '세마치', '자진마치', '열두마치' 등은 징의 타점 수에 따라 붙여진 이름이다.
그리고 양순용은 "현재의 징은 대박만 짚어 주지만 과거에는 징의 타점이 매우
많아서 똑같이 악기를 치는 다른 치배에 비하여 징이 가장 힘이 든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에서 과거의 징은 대박 뿐만 아니라 대박 사이사이를 쳤다고 한다. 그
예로 예천통명마을의 풍물굿에서 징을 치는 권오한을 보면 양순용의 말과 같이 징의
타점이 현재 풍물굿에서와는 다르게 대박 뿐만 아니라 사이 가락에서도 징이 들어간다.
결론적으로 징은 풍물굿의 중요한 기준으로써 전체 판을 하나로 묶어 주는 구실을
하는 것이다.
4) 장고의 역할
장고는 꽹과리와 함께 풍물굿의 주 리듬을 연주하는 것으로 풍물굿
악기 중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꽹과리가 쇳소리로 리듬을 쪼개어
나간다면, 장고는 가죽으로 리듬을 쪼개어 나가 쇠와 가죽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하지만 장고는 상당한 숙련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초보자가 쉽게 접근하기에
어려움이 따른다. 풍물굿에서 뛰어난 상쇠잽이로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 많듯 장고잽이도
기예가 뛰어나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 많이 있는 것은 숙련된 기예를 바탕으로한 개인적
능력이 돋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쇠가 어느 곳에 풍물굿을 치러 갈 때 수장고잽이를
데리고 가는데, 이는 상쇠와 장고잽이는 서로 호흡이 잘 맞아야 좋은 풍물굿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장고는 호남 지역에서는 매우 발달하여 풍물굿에 여러 명의 장고잽이가
등장해서 전반적인 굿판을 이끌어가지만, 영남지역은 소수의 장고잽이가 등장하고
가락 또한 호남지역에 비하여 다채롭지 못한 경향을 보이고 있다. 호남지역의 장고잽이는
장고 놀이를 하는데 이것은 풍물굿에서 합주용의 악기 수준을 넘어 장고 혼자서 다채로운
가락과 발림을 구사하여 현재에는 고도의 기예를 바탕으로 한 예술적 경지에까지
이르고 있다. 이러한 장고 놀이는 '설장고'라고 하여 혼자 하는 경우도 있고 여러
명의 장고잽이가 함께 연행하는 경우도 있다.
5) 북의 역할
북은 풍물굿에서 가장 가슴 깊이 스며드는 힘과 박력이 넘치는
남성적인 소리로 장단의 대박을 중심으로 연주한다. 필봉풍물굿에서는 타 지역에
비하여 북이 그리 많지 않으며 가락 또한 원박에 충실하다. 양순용의 말에 의하면
북은 "장고의 궁채 들어가는 것과 같이 장고의 소리를 도와주는 것"이라고
하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필봉에서 북은 장고에 종속된 악기로 장고의 소리를 도와
주는 역할로 보여진다. 그러나 영남 지역의 북은 매우 발달하여 판굿 중개인 놀이에서는
호남지역의 장고 놀이와 같이 예술적인 경지에까지 도달해 있다. 호남의 여수에서는
북채 하나를 들고 북놀이를 하고, 진도 지역에서는 '쌍북'이라고 하여 북채를 장고채
쥐듯 두 개의 북채로 북놀이를 하기도 한다. 필봉에서 별도의 북놀이가 없는 것은
북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6) 소고의 역할
풍물굿은 소리와 춤이 함께 하는 것이다. 춤을 추기 위해서는 소리가 있어야 함으로 소리가 먼저 있고 몸짓이 따르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춤이 주가 되는 소고는 악기 다음에 위치하는 것이다. 소고잽이의 춤은 크게 채상소고춤과 고깔춤으로 나누어지는데, 채상소고춤은 호남좌도지역에서 발달하였고 고깔소고춤은 호남우도지역에서 발달하였다고 풍물굿 연구자들은 말한다. 현재의 우도와 좌도에서는 이러한 경향이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는 실정으로 필봉 같은 경우에도 채상 소고보다 고깔소고가 더욱 많은 편이다. 채상소고춤의 기원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내려오는 이야기들은 짐승을 사냥할 때나, 적을 방어하거나 현혹시킬 때 쓰였다고 전해오고 있으며, 상쇠의 부포놀음은 군대의 신호에서 나왔다고 전해 내려오고 있다. 고깔 춤은 머리에 고깔을 쓰고 소고를 머리 위까지 올렸다 내리는 동작을 취하는데 이러한 동작을 양순용은 "적과 대치하면서 싸울 때의 수비 동작으로서 신체의 중요한 부위를 방어하는 것이다. 첫 박에는 낭심을 막고, 둘째 박에 머리를 막고, 셋째 박에 목을 막고, 넷째 박에 심장을 방어하는 동작을 춤으로 형상화시켰다"고 말하고 있다. 필봉의 소고춤은 그 장단과 몸짓을 볼 때 충분한 설득력을 지닌다. 또한 소고의 동작은 신체의 중요한 부분에서 박이 머무르는 것을 볼 때 양순용의 증언이 맞는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타 지역의 소고춤에서 여러 가지 동작과 사물들의 모방동작(模倣動作)이 나타나는 것은 농경모의(農耕模擬)의 흔적이 엿보이는 것으로써 주술적 의미를 담고 있다.
한편 정병호는 풍물굿의 춤에 대하여 "農樂 춤은 성격적으로
푸는 춤과 밟음의 춤이 있는데 푸는 춤은 감정의 유입과 발산으로 이룩된 액풀이
춤 또는 신명의 춤이고, 밟음의 춤은 지신을 밟아 토신의 기(氣)를 부드럽게 하고
逐鬼하며 또한 농산물의 성장을 촉진시킨다는 주술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 라고
말하고 있다.
7) 잡색의 역할
호남지역에서는 탈놀이가 보이지 않는 이유는 풍물굿이 다른 지역에 비하여 유난히 발달하여 극적인 탈놀이가 풍물굿 속에 포함되어 내려오다 점점 판굿 중심으로 풍물굿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결국 극적인 부분은 쇠퇴해 버리고 가락과 놀이 부분만 남은 것이라고 여겨진다. 탈춤은 이와는 반대로 극적 의미를 강조하여 확대 발전시키고, 그렇지 못한 부분은 쇠퇴한 것이라 여겨진다. 이러한 전환을 겪으면서 탈춤은 독자적인 성격을 지니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탈춤의 기원을 풍물굿의 잡색에서 찾는 것과 같이 여러 형태로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잡색은 풍물패의 앞 뒤 그리고 원진(圓陣)의 안과 바깥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춤을 추면서 노는 인물들을 말하며, 잡색 놀이는 동제, 판굿, 지신밟기 등에서 특정 배역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잡색을 하는 사람의 성품과 성향에 따라 어떤 자리이건 끼여든다. 판굿은 상쇠와 함께 연희적 부분을 담당하며 놀이를 이끌어 가기도 하는 잡색놀이와 지신밟기가 있다 지신밟기에서는 집 주인과 치배 사이를 넘나들며 주인을 골탕먹이기도 하고 상쇠와 주인 사이의 흥정을 붙이기도 하여 굿판을 풍성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렇듯 잡색은 놀이적 기능과 극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
풍물굿에서 악기를 연주하거나 춤을 추는 잽이들은 판의 흐름에 따라 움직여야 하며, 모든 사람이 어룰릴 수 있는 판을 만들기위하여 나름대로의 질서에 따라 움직여 주어야 한다. 그렇지만 잡색은 좀 더 자유롭게 판의 안팎을 넘나드는 것이다. 잡색은 굿판 전체의 흐름을 파악하고 치배와 구경꾼들을 연결시켜 주며, 굿판을 좀 더 풍요롭고 푸지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즉 잡색은 구경꾼과 치배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해주는 것이다.
잡색의 또 다른 성격은 풍자적인 성격을 띤다. 잡색으로 등장하는 인물에는 놀이적 성격을 띤 잡색과 풍자적 성격을 띤 잡색이 있는데 대포수, 창부, 무동, 각시, 화동 등은 놀기 위하여 등장하고 양반, 조리중은 풍자하기 위하여 등장한다. 양반, 조리중 등과 같이 풍물굿과는 썩 어울릴 것 같지 않는 인물들을 등장시켜 풍물굿이 열리고 있는 동안 다른 잡색들과 구경꾼들이 조롱하고 놀리며 양반이나 중의 모습을 풍자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잡색은 지역에 따라 종류와 역할에 있어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필봉의 잡색에는 '대포수', '창부', '조리중', '양반', '각시', '화동', '무동', '농구' 등이 있다. '대포수'는 잡색들의 수장으로서 풍물굿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굿 머리를 잘 알고 굿판의 흐름을 잘 파악하여 치배나 구경꾼의 잘못을 지적한다거나 바로잡는 역할을 수행한다, 또 뒷굿의 도둑잽이에 가서는 상쇠와 둘이서 극을 진행하기도 한다. 풍물굿에서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등장하는 것이 '대포수'이다. 그리고 필봉에서만 보이는 특이한 잡색은 '농구'이다. 농구는 일명 '새끼 상쇠'라고도 불리며 앞으로 상쇠를 맡게 될 후보감 이다. 상쇠의 복장과 똑같이 하고 있으면서 꽹과리만 들지 않은 상태로 상쇠 근처에서 상쇠 수업을 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풍물굿에서 상쇠 유고시 부쇠가 상쇠 자리를 이어받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렇게 필봉풍물굿에서는 미리 상쇠감을 지정하여 상쇠로서의 자질을 익히는 것이 '농구' 이다.
Ⅲ. 가락의 유형과 음양의 엮음 구조
1. 가락의 유형
전통음악에 사용되는 가락의 유형을 고찰함에 있어 민요, 판소리, 선율 악기 등의 반주 장단이 비록 비슷하다고는 하지만 그 역할과 쓰임새는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반주 장단에서의 반주 가락은 노래나 악기의 리듬과 선율 변화에 따라 다양한 변주 가락이 이루어지며 변이가 이루어진다. 이러한 변이는 문화 현상의 특징보다는 악기나 노래의 특징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여기에서 가락은 노래나 선율 악기의 특성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게 할 때에만 반주 장단의 의미가 있으므로 노래와 선율 악기에서 반주 장단이 종속되고 장고 가락은 노래나 선율 악기의 흐름에 따라 무수한 변이를 보이게 된다.
사물놀이 가락을 제외한 이유는 사물놀이가 최근에 풍물굿 연행자 중에서 악기의 연주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기예를 바탕으로 정착된 음악이기 때문이다. 즉 전국 각 지역의 풍물굿 가락 중에서 음악적 구조가 뛰어난 가락만 모아서 극적 요소와 무용적인 요소는 생략하고 음악적 요소만 연주용으로 엮어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지역적인 특징이나 가락이 가지고 있는 본래의 맛보다는 연주자의 가락 해석과 연주자의 취향, 그리고 연주자들끼리의 정교한 호흡을 바탕으로 한 기예 중심의 가락을 치기 때문에 같은 가락이라도 풍물굿 가락과는 전혀 다른 맛과 느낌을 가지고 연주하게 된다. 그러므로 사물놀이에서는 가락의 특징을 찾는다기보다는 타악기 리듬의 구조를 보고 이것의 엮음 구조와 연주자의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풍물굿을 연주한다"는 말이 성립될 수 없는 것이 단적으로 풍물굿과 사물놀이의 차이를 대변해 주는 말이다. 사물놀이는 음악이기 때문에 연주라는 말이 충분히 성립될 수 있다. 하지만 풍물굿은 연주한다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지만 연주한다고 표현했을 때 연주 속에 포함되지 않는 무용적 , 제의적, 극적 등은 담아 낼 수 없다.
유형을 분류하는데 사용된 중중모리형, 자진모리형, 휘모리형, 엇모리형, 자진모리 엇모리 혼합형 등의 용어는 전통음악에서 이미 사용하고 있는 장단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전통음악에서 이미 사용한다는 것은 이러한 명칭을 사용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이 그 음악에 대하여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며, 풍물굿의 가락도 전통음악에서 사용하는 음악 어법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에서이다. 결코 풍물굿을 전통음악의 장단틀에 맞추려는 의도는 아님을 밝혀 둔다.
악보는 구음에 정간보 표기법을 사용하려고 한다. 하나의 정간을 한 박으로 하고 하나의 정간 속에는 악기의 구음 입장단을 기록하여 악기의 미세한 맛과 리듬의 강약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본고에 사용하고 있는 악보들은 아직 완전한 악보 표기법으로 보기에는 부족하다. 하지만 앞으로 악보에 대한 연구에 많은 힘을 기울여 좀 더 완성된 악보 체계를 갖출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밝혀 두고 본 논문에서는 미흡하나마 현행 연행자들이 자주 사용하고 있는 구음정간보(口音井間譜) 표기법을 사용하였다.
기존에 많이 사용하고 있는 오선보 표기법은 우리 음악을 표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오선보에서 한 박의 개념과 전통음악에서 한 박의 개념은 근본적으로 차이를 보인다. 오선보의 악보를 보면 한 박이 두 개로 나누어지는 2박 개념을 사용하고, 한박이 반절씩 2등분 된다. 이러한 반면 구음정간보에서는 한 박이 세 개로 나누어지는 3박 개념을 사용하고, 한 박자를 잘게 나눌 때 3등분 하는 것이 우리음악과 서양음악의 차이이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점을 간과하고 기존의 국악계에서는 오선보 표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그렇지만 실제 연주자들은 오선보에 표기된 한 박의 개념을 2분박의 개념으로 하지 않고 3분박으로 연주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것은 악보와 연주가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모든 음악가들에게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한국의 전통음악을 공부한 사람이 오선보로 표기된 악보를 보고 연주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렇지만 서양음악만 익힌 사람은 전통음악를 오선보로 표기하면 그들이 기존에 익혀 온 방법으로 연주하기 때문에 같은 악보를 놓고도 연주는 다르게 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풍물굿 가락 악보도 오선보로 표기했을 경우 이미 가락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악보에 의존하지 않고 원형대로 연주하지만 가락을 알고 있지 못한 사람이 악보만을 보고 연주한다면 전혀 다른 가락이 되고 만다. 오선보 표기는 이러한 단점을 안고 있기 때문에 본고에서는 오선보로 표기하지 않고 구음정간보를 사용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기존의 연주자나 연구자들이 풍물굿 가락을 오선보로 표기하는 문제는 재고되어야 한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본고에서 오선보를 사용한 부분은 연구자가 가락을 설명하기 위하여 임시로 사용하고 있을 뿐 결코 오선보 표기법을 따르고 있는 것이 아님을 밝혀 둔다.
서양음악에서 박자가 나누어지는 것을 보면 ┨는 ┢┢로 나누어지고,
다시 ┢는 ┠┠로 나누어진다. 그리고 ┠는 ┤┤로 나누어지고, 다시┤는 ┖┖로
나누어진다. 이렇듯 서양음악 악보 표기는 한 박이 반절씩 2등분 되는 반면 정간보에서는
한 박 이 로 나누어진다. 앞에서 보았듯이 서양 음악은 한 박을 2등분하고 우리 전통음악은
3등분하고 있기 때문에 전통음악을 서양 악보로 표기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현행
전통음악에서는 대중화라는 명분과 일반 대중이 서양 악보에 익숙해 있다고 하여
오선보를 차용하여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표기법은 서양 음악의 내부구조와
전통음악의 내부구조를 같게 보는 데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진정 한국의 전통음악을
생각한다면 이는 반드시 시정되어야만 할 것이다. 전통적으로 우리 음악에 사용하고
있는 정간보는 한 박을 2분박으로 하건 3분박으로 하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전통음악은 정간보로 표기해야만 한다.
0
┢ ┢
┠ ┠ ┠ ┠
┤ ┤ ┤ ┤ ┤ ┤ ┤ ┤
┖┖┖┖┖┖┖┖┖┖┖┖┖┖┖┖
<오선보 표기법> <정간보 표기법>
1) 중중모리 장단형
덩 |
궁 |
따 |
궁 |
따 |
따 |
궁 |
궁 |
척 |
궁 |
궁 |
기존의 풍물굿 연구자나 연주자들 사이에는 가락을 분류함에 있어 굿거리 유형으로 분류하는 것이 일반적 관례였다. 전통음악에 쓰이는 아주 보편적인 가락인 굿거리 가락을 유형 분류 목록으로 하지 않고, 중중모리 가락으로 한 것은 굿거리보다 중중모리 장단이 훨씬 풍물굿 가락을 잘 수용하고 있으며 가락의 맛 또한 굿거리의 화려함보다는 투박하고 맺음새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 호남우도지역의 풍류굿이나 좌도지역의 질굿과 느린풍류에서 보면 굿거리보다는 중중모리 장단형과 유사한 시김새를 지니고 있다.
중중모리 장단은 굿거리 장단과 매우 유사하여 가끔씩 사람에 따라, 혹은 성악 반주나 기악 반주 때 혼용해서 사용하기도 하는 모습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반주 음악이라고 하는 것은 소리나 악기의 리듬 변화에 따라 변화해야 하기 때문에 다양한 변주 가락을 사용하다 보면 중중모리 유형과 같은 형태가 나타날 수도 있지만, 굿거리 장단과 중중모리 장단은 근본적인 구조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오선보 표기법은 굿거리 장단과 중중모리 장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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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으로 같게 표기하고 있다.그러나 이것은 우리 음악의 특성을 감안하지 않고 빠르기와 리듬만을 서양음악의 개념으로 옮겨 놓다 보니 굿거리와 중중모리가 같게 나타나는 것이다. 실제 연행자들은 분명하게 굿거리와 중중모리를 구분하며 연주하고 있다. 연구자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에도 두 장단의 차이는 확연히 드러난다.
중중모리는 민요, 판소리, 기악 장단에 쓰이는 것이지 풍물굿에서는 그러한 용어를 쓰지 않으므로 재고의 여지가 있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풍물굿 가락은 지역마다 용어가 다르고 지역에서도 각기 다른 용어를 사용하는 장단이 많이 있기에 용어를 하나로 통일하기 어렵다. 따라서 한국 음악에서 가장 널리 사용하고 있는 중중모리 유형, 자진모리 유형, 휘모리 유형, 엇모리 유형, 엇모리 중중모리 또는 엇모리 자진모리 혼합형 등으로 분류하였다. 각각의 가락에는 나름대로의 독특한 맛이 있는데 이러한 맛들을 몇 개의 유형으로 묶는다는 것은 장단의 빠르기와 박자 그리고 리듬 구조가 비슷한 것들을 하나로 묶어 다양한 가락의 공통분모 속에서 그 가락의 역할과 쓰임새를 이해하기 위함이다. 먼저 아래의 가락보를 보자.
<굿거리 장단>
덩 |
기닥 |
궁 |
더러 |
러러 |
궁 |
기닥 |
궁 |
더러 |
러러 |
위에서 보이는 것처럼 서양음악에 개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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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표기한다면 굿거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휘모리 등도 똑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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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된다. 그러나 우리 음악에서는 굿거리장단에서처럼 "강약약
중강약약 강약약 중강약약" 형태의 장단은 존재하지 않고 그렇게 치지 않는다.
실제 굿거리 장단이라 부르는 많은 민요와 기악 반주에서도 앞의 표와 같은 굿거리
장단은 별로 연주하지 않고 초심자에게 굿거리를 가르칠 때에만 위의 악보처럼 연주하고
실제 연주에서는 이렇게 하지 않는다. 중중모리 장단과 유사한 유형의 변이형을 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굿거리 장단이라고 부르는 현상으로 미루어 볼 때 굿거리
장단은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중중모리 장단은 내고, 달고, 맺고, 푸는 구조이다.
여기에는 맺고 풀어 주는 4단계 구조가 확실히 드러나 있다. 아홉 박에 해당하는
곳에서 강하게 척하며 맺어 주고 10, 11, 12 박에서 풀어 주는 구조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풍물굿 가락에서도 분명히 내고, 달고, 맺고, 풀어 나가는 구조를 가지고
있으므로 굿거리 유형이라 부르지 않고 중중모리 유형으로 분류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하여 중중모리 유형으로 분류하였다.
<중중모리 장단>
덩 |
궁 |
다 |
궁 |
다 |
다 |
궁 |
척 |
궁 |
궁 |
중중모리 장단형은 풍물굿에서 가장 느린 가락으로 여유가 있는 유장한 장단형이다. 중중모리 장단형이 나오면 구경꾼이나 치배들은 가락에 맞추어 흐드러진 춤을 추기도 한다. 그리고 이는 호남좌도 지역보다는 호남우도 지역에서는 선호하는 가락이다. 우도 풍물굿에서는 잔가락이 많이 들어가고 화려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좌도 풍물굿에서는 대박에 매우 충실하며 투박하고 힘이 있는 가락들이 많다. 그리고 타 지역에 비하여 종류는 다양하지만 다채로운 변주보다는 원박에 충실하면서 가락이 풍기는 여유로운 맛에 충실히 따른다. 이 중중모리 장단형에서 좌도와 우도의 특징이 가장 잘 나타나고 있다. 중중모리 유형의 가락의 느낌은 화창한 봄날 봄바람에 버드나무가 흔들리는 듯 넉넉한 여유와 풍류가 가득한 느낌을 가지고 쳐야만 한다.여기에 해당하는 가락은 '질굿'(외마치질굿), '느린풍류', '느린겐지갱', '인사굿', '춤굿' 등이 있는데 '외마치질굿'은 길을 걸으며 치는 질굿으로서 일종의 행진곡이라 할 수 있다. 질굿가락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오채질굿과 외마치질굿으로, 보통 질굿이라 함은 외마치질굿을 의미한다. 가락은 중중모리형 4장단이 하나의 가락으로 이루고 있는데, 3장단을 진행하고 마지막 4장단째는 반복하게 된다. 4번째 장단을 반복하여 연주하는 중에 상쇠가 신호를 주면, 그의 신호에 따라 처음 장단부터 다시 들어가서 4번째 장단을 반복한다. 이러한 형태는 풍물굿의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특이한 가락으로 좌도 풍물굿에서만 존재하는 가락 구조이다.
'느린풍류'와 '느린겐지갱'이 있으며 인사할 때 쓰이는 '인사굿'
가락이 여기에 해당한다. '느린풍류' 가락은 좌도 풍물굿의 전형을 잘 나타내 주는
것으로 아주 느리면서 춤추기에 좋은 가락이다. 그리고 '춤굿' 일명 '돌굿'이라고
하는데, '돌굿'은 처음 도입부에 돌면서 하기 때문에 '돌굿'이라고 부른다. 이 '춤굿'은
'느린풍류' 가락에서 마지막 소절의 첫 박을 치지 않고 엇박으로 넘어가는 가락으로써
이때는 '무동'이 나와 흥겨운 춤을 추는 것이다. 춤굿에서는 구경꾼들이 대거 굿판
안으로 들어와 치배들과 한 덩어리가 되어 춤을 추게 된다. 중중모리 장단형의 가락을
칠 때에는 손으로 악기만을 치지 않고 오금질과 어깨를 함께 움직이면서 온몸으로
가락을 쳐야만 제대로 맛을 낼 수 있는 것이다.
2) 자진모리 장단형
덩 |
궁 |
궁 |
따 |
궁 |
풍물굿에서 가장 많이 나타나는 유형으로서 다채로운 변화를 갖는다. 여기에 해당하는 가락은 반풍류, 빠른겐지갱, 일체, 이채, 느린삼채, 된삼채, 사채, 육채, 칠채, 중삼채, 가진영산, 자진호허굿, 가진영산, 다드래기영산, 재능기영산 등이 있다. 전통음악의 리듬이 발달하였다는 것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부분이 바로 자진모리 유형이다.
어떤 사람은 '반풍류'나 '빠른겐지갱', '가진영산'이 같은 가락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지만, 가락 하나 하나가 가지는 느낌과 쓰임새를 파악한다면 이러한 견해는 적절하지 않다. 자진모리의 전반적인 느낌은 가을에 추수한 곡식을 곡간에 가득히 쌓아 놓고, 정겨운 친구와 단둘이 마루에 걸터앉아 술잔을 기울이는 것처럼 풍요롭고 넉넉한 가락들이다. 이 자진모리 장단형을 칠 때에는 조급한 마음을 가지면 가락이 자꾸만 빨라지기 때문에 찰흙을 발뒤꿈치로 누르듯, 어금니로 음식을 자근자근 씹듯이 가락을 쳐야 제대로 맛을 낼 수 있다.
'반풍류' 가락은 '느린풍류'를 빠르게 치는 것이며, '빠른겐지갱'도 '느린겐지갱'을 빨리 치는 것이지만 '느린겐지갱'이 6박 한 장단인데 반하여 '빠른겐지갱'은 12박 한 장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빠른겐지갱 가락은 휘모리 가락과 리듬상의 유사점을 가지고 있지만 느낌이 다르다. 빠른겐지갱 가락은 매우 빠르게 진행되면서도 가락이 촘촘히 엮어지고 삼박자가 잘 지켜진다. 그리고 타법에 있어 직타를 사용하기 때문에 음양이 크고 소리가 투박하다. 빠른겐지갱 가락은 감정을 폭발적으로 분출하는 가락이기 보다는 바닥 깊숙이 들어가 있는 감정을 서서히 끌어올리는 가락이다.
빠른겐지갱은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가락으로 필봉풍물굿을 대표하는 가락이다. 빠른겐지갱은 심성저변에 깔려 있는 신명을 서서히 끌어올리는 듯한 가락으로써 그 맛을 내기가 아주 어려운 가락이다. 처음 필봉굿을 대하는 사람들은 겐지갱 가락이 어려워 필봉풍물굿 못하겠다는 사람도 있을 정도이다. '가진영산'은 여러 개의 자진모리 장단형으로 이루어진 가락들을 적절하게 엮어 하나의 가락으로 짜여진 것으로 한 가락이 13장단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상쇠와 부쇠가 서로 한 가락씩 주고받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재능기영산'은 상쇠가 즉흥적으로 하는 것으로 장고에서 장고
놀이(설장고놀이)와 같고, 상쇠가 자신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하여 부포놀음과 함께
펼치기 때문에 자진모리 장단형의 빠르기에 맞추어 하는 상쇠의 독무대가 된다.
3) 휘모리 장단형
덩 |
궁 |
궁 |
궁 |
휘모리 유형을 분류함에 있어서도 여러 가지 논의들이 있다. 민속촌의 정인삼은 "휘모리는 농악에는 없고 민요나 기악에서만 있는 가락이다" 라고 하여 휘모리 명칭을 부정한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실제 현지인들에게서는 휘모리 가락이 많이 나타나고 좌도지역에서 만큼은 휘모리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곳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필봉풍물굿은 물론이며 여성농악단의 상쇠였던 나금추도 휘모리를 치고 있으며 "필봉의 가락과 유사하지만 휘모리가 극도로 빨라지면 잦아 들어가다가 '갯'하고 맺는다" 라고 말한다. 그리고 우도 지역에서는 "두마치" 흑은 "이채"라는 명칭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한 장단 안에 두 번의 징이 들어가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휘모리' 가락은 가장 흥겨운 가락으로써 풍물굿에서 끝을 장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락은 매우 빠르게 몰아가는 것이 당연하되, 너무 빨라 춤을 출 수 없을 정도까지 빨라서는 안된다. 정회갑은 "3분박이 매우 빨라지면 각 박을 3등분 할 여유가 없어 2분박이나 단일 박으로 연주할 수 밖에 없다."라고 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듯 3분박에서 2분박으로 전환되는 흐름을 인정하고 있지만 이것은 잘못이다. 리듬에서도 3박자의 리듬과 2박자의 리듬은 완전히 다른 것으로 3분박에서 2분박으로의 자연스러운 전환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처음 3분박으로 시작했으면 3분박의 느낌을 마지막까지 유지해야만 한다.
<3분박 가락>
덩 |
덩 |
궁 |
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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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드름에서 장고는 휘모리를 치지만 꽹과리는 휘모리 반 장단씩을 상쇠와 부쇠가 서로 주고 받는다. 그리하여 일명 '품앗이', '짝쇠', '미지기 가락'이라고도 한다. 또한 '다드래기영산휘모리' 또한 상쇠와 부쇠가 서로 한 가락씩 주고받는 형태를 가지고 있다. 지신밟기에서 덕담과 함께 치는 굿이 있는데 이것을 '영문삼채'라 부른다. 삼채라는 이름이 붙어있어 자진모리형으로 혼돈할 수도 있지만 이 역시 휘모리 장단형이다.
4) 엇모리 장단형
덩 |
궁 |
다 |
궁 |
따 |
궁 |
엇모리 장단은 5분박으로 되어 있는 리듬 꼴로 5분박 2개로 이루어진 10박이 한 장단을 이루고 있다. 장단을 치는 사람들과, 민요, 판소리 또는 악기를 하는 사람들에게 널리 사용되고 있으므로 엇모리 장단형이라 이름하게 된 것이다. 엇모리 장단형의 리듬은 2+3+2+3으로 되어 있거나 또는 3+2+3+2의 박자 형태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 해당하는 가락은 호허굿 본 가락, 참굿, 열두마치, 등이 있다.
다양한 진풀이와 함께 "호호", "허허"하면서 치는 굿이 호허굿이다. 호허굿 본 가락은 엇모리 6장단으로 이루어져 있고 호허굿되드르미(돌호허굿)는 엇모리 7장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호허굿의 6번째 장단에서는 3박+2박+2박+3박 구조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적이고, 바로 여기에서 호허굿의 妙味가 살아난다. 그러다 보니 이 장단을 틀리게 치는 것을 흔하게 발견할 수 있다. 이유는 5번째 장단까지가 2박+3박으로 계속되기 때문에 이 곳에서도 계속 2박으로 나가려고 하는 속성을 지니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5번째까지 해 왔던 느낌으로 해서는 안되고 5번째보다 훨씬 여유를 가지고 처리해야만 한다. 이는 그 다음에 나오는 '호허굿되드르미'의 7번째 장단과 같은 리듬 꼴인데 '호허굿되드르미'는 제대로 치면서 '호허굿' 6번째는 틀리게 치는 것은 관성의 법칙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풍물굿을 치다가 잠시 휴식을 취한다거나 술을 먹을 때에는 악기를
내려놓게 되는데, 이렇게 악기를 내려놓았다가 다시 풍물굿을 하려면 치배들에게
악기를 메고 풍물굿을 다시 시작하자는 굿으로 '참굿'을 친다. 그러면 치배들은 빨리
악기를 챙기고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소리를 울리게 되는데 이때 치는 굿이 참굿이다.
이 참굿 가락은 엇모리 2장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5) 자진모리 엇모리 혼합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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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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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 |
엇모리형에 자진모리형의 혼합으로 이루어진 가락을 혼합형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구조를 갖고 있는 것으로 '오채질굿'이 있는데 '오채질굿'은 징을 다섯 번 친다고 하여 5채라 부른다고 양순용은 말하고 있다. '오채질굿'은 자진모리 장단형 한 장단 그리고 엇모리형 세 장단, 자진모리형 한 장단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한 장단에 한 번씩의 징을 친다. '오채질굿'의 쓰임새는 '외마치질굿'과 같으며 질굿으로 행진곡의 성격을 띠고 있다. 이는 풍물굿 가락 중에서 가장 어려운 가락으로 '오채질굿'을 칠 수 있으면 "이제 풍물은 최고의 경지에 올라 있다"라고 호남 지역 사람들은 말 할 정도로 어렵고 난해한 가락이다. 고을에서 '오채질굿'을 칠 수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것이다.
장단 유형별로 필봉풍물굿 가락을 표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가 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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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중모리 장단형 |
질굿(외마치질굿), 느린풍류, 느린겐지갱, 인사굿, 춤굿(돌굿). |
자진모리 장단형 |
반풍류, 빠른겐지갱, 일채, 이채, 느린삼채, 된삼채, 사채, 육채, 칠채, 중삼채, 자진호허굿, 가진영산, 다드래기영산, 재능기영산, 벙어리삼채 |
휘모리 장단형 |
휘모리, 두마치, 짝드름, 다드래기영산휘모리, 탈머리굿 가락, 영문삼채 |
엇모리 장단형 |
호허굿, 참굿, 열두마치, |
자진모리 엇모리 혼합형 |
오채질굿. |
<표2> 필봉풍물굿의 유형 분류
2. 악기의 음양
풍물굿이 지향하는 것은 조화에 있다. 자연과 삶의 조화, 공동체 구성원끼리의 조화, 소리의 조화, 악기들끼리의 조화는 결국 풍물굿이 총체적으로 지향하는 세계이다. 이러한 조화로운 모습은 인간과 인간끼리의 조화이자 곧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 나아가는 것이다. 자연을 보호하는 것이 아닌, 자연이 인간을 보호하고 지켜 주는 존재로 자연과 더불어 조화를 이루며 함께 하는 인간 생활을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마을의 무사태평과 안녕을 기원하며 생활 속의 도드라진 모습들을 아우르는 것이 풍물굿이다. 풍물굿이 열리면 각각의 악기 소리들이 불협화음을 내지 않도록 하고, 악기를 잘 하는 사람은 잘 하는 대로 흥겹게 놀 수 있고, 악기의 기능이 조금 미흡하다고 하여도 자신이 본래 가지고 있는 신명으로 잘 어우러지면 좋은 굿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술이 너무 과하여 굿판의 분위기를 깨는 구경꾼과 이를 말리는 사람이 있기 마련인데, 이 또한 굿판 속에 모두 녹아 들 수 있게 만드는 것이 풍물굿이다. 이렇듯 풍물굿은 모든 것을 포용하여 하나 되게 할 수 있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고 또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풍물굿은 악기의 구성에서부터 악기의 배치, 치배의 편성, 가락의 구조까지 그 무엇하나 임의적이고 자의적인 것은 없으며, 모두 치밀한 음양의 조화에 의한 협화 정신을 기저에 깔고 있다. 즉 악기를 만드는 재료에서부터 악기의 구성에는 음양의 조화가 있고, 악기의 배치 순서에도 앞뒤가 있으며 가락 속에서도 암가락과 숫가락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풍물굿은 꽹과리, 징, 장고, 북, 소고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여기에 유일한 선율 악기인 날라리(쇠납 또는 태평소)가 끼여 있다. 이러한 악기 편성에는 쇠 소리와 가죽 소리가 음양의 구조를 이루고 있다. 꽹과리는 뜨거운 여름날에 내리쬐는 태양처럼 강렬하고 폭발적인 에너지를 발산한다. 즉 양의 기운이 가장 강한 악기이며 소리 또한 매우 자극적이어서 풍물굿 속에서는 꽹과리 소리에 묻혀 다른 악기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꽹과리가 서로 가락이 맞지 않으면 굿판 전체가 흔들리게 된다. 그리하여 풍물굿 속에서는 꽹과리가 전체를 이끌어 가고 꽹과리 소리에 모든 치배들이 맞추는 것이다.
반면에 장고의 가죽 소리는 한겨울 폭풍한설과 함께 불어오는 한파와 같은 싸늘함과, 장대비가 처마 끝을 타고 쏟아지는 소리와 같이 열채와 궁채로 가락을 엮어 간다. 장고는 가락을 잘게 부수어 풍물굿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것이다.
북은 꽹과리와 장고의 중요한 대박을 짚어 주며 가락을 덩어리로 묶어 주는 구실을 한다. 징은 꽹과리, 장고, 북소리의 사이사이 여백을 메워 가며 굿판 전체 소리를 하나로 감싸 안아 모나고 날카로운 소리를 아우르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울림이 가장 멀리 가지만 가까이에서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징은 풍물굿 악기 중 가장 음하다고 할 수 있는 악기이다. 이렇게 쇠와 가죽이 서로 상호 보완하며 완전한 소리를 만들어 가는 것이 풍물굿의 악기 구성인 것이다.
꽹과리는 양한 악기이고 장고는 음한 악기이지만 꽹과리와 장고 속에서도 음양의 악기가 구분된다. 꽹과리의 쓰임새에서 숫꽹과리와 암꽹과리를 교대로 쓰는데, 상쇠는 음이 높고 카랑카랑하며 울림이 벌의 울음소리처럼 윙윙거리는 꽹과리를 쓰고, 부쇠는 소리가 부드럽고 자갈 자갈 끓고 여운이 많이 남는 암꽹과리를 쓴다
장고를 치는데는 장고와 신체적 조건이 일치해야 하는데, 장고를 보면 장고 통이 한쪽은 작고 다른 쪽은 크며, 가죽의 한 쪽은 두껍고 다른 쪽은 얇다. 결국 작은 쪽 얇은 쪽이 양이고, 크고 두꺼운 쪽이 음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오른손이 양이므로 열 채를, 왼손이 음이므로 궁채를 잡고 오른손으로 장고 통이 작고 가죽이 얇은 쪽을 치며, 왼손으로 장고 통이 크고 가죽이 두꺼운 쪽을 치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하지 않는 경우도 발견되는데 대표적인 경우가 호남우도 이리농악 기능 보유자 김형순의 경우이다. 이러한 현상은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자주 나타나는 현상으로 오른손잽이인데 열 채와 궁채를 바꾸어 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김형순의 경우 장고 가락을 보면 궁채는 오른손으로 치기 때문에 잘 되지만 열 채가 궁채보다 가락이 덜 들어가면서 장고 가락을 궁채가 이끌어 가는 현상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경우는 암수가 뒤바뀐 경우인 것이다. 결국 음양이 일치하여야만 제대로 소리가 나는 것이다.
이렇게 악기들의 소리가 조화를 이루며 완성의 소리를 지향할 때, 굿판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오는 고함과 함성 소리가 어울려 완벽한 소리의 완성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굿판 속에 들어와 있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몰아의 경지에 다다르게 되고, 이것이 바로 모든 사람이 하나가 되어 어우러지는 대동의 판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악기들의 음양 조화와 함성 소리 중 무엇 하나라도 빠질 경우에는 하나가 될 수 없으며, 굿판은 공허하고 제 각각이 되는 것이다.
풍물굿이 항상 신명나고 흥겨운 것만은 아니다. 신명도 나지 않고 재미도 없이 의무감에 쳐야만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때에는 앞에서 언급했던 요소들이 빠져 있을 때이다. 이러한 경우는 치배 구성원 중에 조화를 중요시하지 않고 자신의 기예만을 자랑하려 한다거나, 구경꾼들이 판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고 소극적으로 대응하며 호응하지 않을 때 굿판은 아주 공허해진다. 그렇지만 나름대로 풍물굿에 익숙한 치배나 구경꾼은 과거 자신이 경험했던 풍물굿에 흥을 되새기며 언젠가 대동의 판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며 끊임없이 노력한다. 결국 마지막까지 대동의 굿판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끝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경우는 요즘의 대학생이나 사회 풍물패들이 공연할 때 자주 발견된다.
풍물굿 안에서는 꽹과리 소리가 잘 들리고 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함성과 가죽 소리가 잘 들리고 더욱 먼 거리에서는 징 소리가 들리는데,
이렇게 꽹과리, 장고, 북, 징, 함성 소리가 어우러졌을 때 풍물굿은 넉넉하고 풍요로우며
어떠한 모남도 아우를 수 있는 흥과 신명으로 가득한 굿판이 될 수 있다.
음(암) |
양(수) |
|
악기 |
징 > 북 > 장고 > 꽹과리 |
|
재료 |
가죽 |
쇠 |
꽹과리 |
부쇠(암꽹과리) |
상쇠(숫꽹과리) |
장고 통의 크기 |
큰 쪽(궁편) |
작은 쪽(채편) |
장고 가죽의 두께 |
두꺼운 쪽(궁편) |
둬은 쪽(채편)) |
장고 채 |
궁채(끝이둥근 채) |
열채(대나무쪽) |
장고 치는 손 |
왼손 |
오른손 |
장고 치는 위치 |
복판 |
변죽 |
꽹과리 치는 위치 |
개방음 |
막음새 |
굿판에서의 소리 |
악기 소리 |
함성 소리 |
<표3> 악기의 음양
3. 가락의 암수
풍물굿 가락의 한 가락이 여러 개의 장단을 갖는 경우도 있고 한 개의 장단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가락은 두 개의 장단을 쌍으로 가지고 있다. 전통음악의 반주 장단은 한 장단이 한 가락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풍물굿의 가락은 두 개씩 한 쌍으로 이루어져 있는 점이 반주 장단과 다른 것이다. 모든 가락이 처음 가락에는 변화를 주지 않고 원박을 치는데, 이것을 연행자들은 앞 가락을 '암가락'이라 부른다. 그리고 뒷가락은 앞 부분이나 중간 아니면 마지막에 변화를 주게 되는데 이것을 '숫가락'이라 부른다. 이렇게 한 쌍의 형태로 이루어진 가락이 '음양대비형'(陰陽對比形)이다.
일반적으로 기본 가락에 변화를 주는 것을 '겹가락', '접가락', '변주가락', '잔가락' 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이것은 기본 가락에 변이를 주는 것과 음양의 조화를 이루며 한 쌍을 이루는 것과는 다르다. 호남우도 풍물굿과 사물놀이에서 변주 가락으로 사용하고 있는 삼채 가락가락에 변화를 주는것이지 음양 엮음이 아니다. 이렇게 암가락 숫가락으로 가락을 앞뒤로 엮어 가는 것을 안팎 엮음이라 한다. 물건을 만들 때 안에 있는 것을 밖으로 끌어내고 밖에 있는 것을 안으로 넣어 안과 밖을 튼튼하고 조화롭게 엮어가듯이 가락도 안과 밖을 교차하여 엮어 나가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직접 악기를 치던 명인들도 '암가락', '숫가락'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면서 가락을 제대로 엮어 나가지 못하면 "가락의 앞뒤가 잘 맞아야 한다"라고 하면서 가르치는 모습을 여러 차례 경험할 수 있었다.
장단의 첫 머리가 쳐 올리는 ┤┠으로 시작되느냐, 아니면 푸는
리듬형┠┤로 시작하느냐에 따라 장단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달라진다. 전자는 씩씩하고
남성적이며, 후자는 우아하고 여성적인 리듬형이다. 남성적 리듬은 양이고, 여성적
리듬은 음이다.
1) 중중모리 장단형의 음양
<질굿>
꽹과리
갱 |
갱 |
갱 |
깨 |
갠 |
지갱 |
갱 |
깨 |
||||
갱 |
갱 |
깨 |
갠 |
지갱 |
갱 |
갱 |
|||||
갱 |
갱 |
갱 |
깨 |
갱 |
기리 |
갱 |
기리 |
갱 |
갱 |
||
갱 |
갱 |
갱 |
기리 |
갱 |
갱 |
갱 |
기리 |
갱 |
기리 |
갱 |
갱 |
장 고
덩 |
덩 |
덩 |
따 |
덩 |
기다 |
궁 |
따 |
||||
덩 |
덩 |
따 |
덩 |
기닥 |
궁 |
따 |
|||||
덩 |
덩 |
덩 |
따 |
덩 |
구궁 |
따 |
궁 |
따 |
궁 |
||
덩 |
궁 |
다 |
궁 |
다 |
궁 |
덩 |
구궁 |
따 |
궁 |
다 |
궁 |
첫째 둘째 장단은 느린풍류 가락과 분위기가 유사하며 세 번째
장단은 네 번째 장단으로 넘어가기 위한 이음새 구실을 한다.
암가락 : 덩궁다 궁다궁
숫가락 : 덩구궁따 궁다궁
<느린풍류>
꽹과리
갱 |
갱 |
갱 |
개 |
깨 |
갠 |
지갱 |
갱 |
개 |
|||
갱 |
깨 |
갱 |
깨 |
갠 |
지갱 |
갱 |
개 |
장 고
덩 |
덩 |
궁 |
다 |
궁 |
덩 |
기닥 |
궁 |
다 |
|||
덩 |
다 |
궁 |
다 |
궁 |
덩 |
기닥 |
궁 |
다 |
숫가락 : 덩덩 궁다궁 덩기닥 궁다
암가락 : 덩다 궁다궁 덩기닥 궁다
2) 자진모리 장단형의 음양
<반풍류>
괭과리
개 |
갱 |
개 |
갱 |
갠 |
지 |
갱 |
개 |
갱 |
|||
갱 |
개 |
깽 |
개 |
갠 |
지 |
갱 |
개 |
갱 |
장 고
더 |
덩 |
더 |
덩 |
덩 |
기닥 |
궁 |
다 |
||||
덩 |
다 |
궁 |
다 |
궁 |
덩 |
기닥 |
궁 |
다 |
숫가락 : 더덩 더덩 덩기닥 궁다
암가락 : 덩다 궁다궁 덩기닥 궁다
<느린삼채>
꽹과리
갠 |
지 |
갠 |
지 |
갠 |
개 |
개 |
갱 |
||||
개 |
갱 |
갠 |
지 |
갱 |
개 |
개 |
갱 |
장 고
덩 |
기 |
덩 |
기 |
덩 |
구 |
궁 |
따 |
||||
더 |
덩 |
덩 |
기 |
덩 |
구 |
궁 |
따 |
암가락 : 덩그 덩그 덩다 궁다
숫가락 : 더덩 덩그 덩다 궁다
<자진호허굿>
꽹과리
갠 |
갱 |
개 |
깬 |
지 |
개 |
갱 |
갱 |
||||
갱 |
지개 |
개 |
깬 |
지 |
개 |
갱 |
갯 |
장 고
덩 |
따 |
궁 |
따 |
구 |
궁 |
따 |
궁 |
||||
덩 |
기따 |
궁 |
따 |
구 |
궁 |
따 |
따 |
암가락 : 덩 다 궁다궁 궁다 궁
숫가락 : 덩기닥 궁다궁 궁다 궁
< 중삼채 >
꽹과리
갱 |
깨 |
주 |
깨 |
갱 |
깨 |
주 |
깨 |
||||
갱 |
깨 |
주 |
깬 |
지 |
갱 |
깨 |
주 |
깨 |
장 고
덩 |
구 |
궁 |
따 |
덩 |
구 |
궁 |
따 |
||||
덩 |
구 |
궁 |
따 |
구 |
덩 |
구 |
궁 |
따 |
암가락 : 덩구 궁따 덩구 궁따
숫가락 : 덩구 궁따구 덩구궁따
3) 휘모리 장단형의 음양
< 두마치 >
꽹과리
갠 |
지 |
갱 |
깨 |
지 |
갱 |
||||||
개 |
갱 |
갱 |
깨 |
지 |
갱 |
장 고
덩 |
기 |
덩 |
따 |
궁 |
따 |
궁 |
|||||
더 |
덩 |
덩 |
따 |
궁 |
따 |
궁 |
암가락 : 덩기 덩따 궁따궁
숫가락 : 더덩 덩따 궁따궁
< 영문삼채 >
꽹과리
갠 |
갱 |
갠 |
지 |
갱 |
|||||||
개 |
갱 |
갱 |
지 |
갠 |
지 |
갱 |
장 고
덩 |
기 |
덩 |
기 |
궁 |
따 |
궁 |
|||||
더 |
덩 |
덩 |
기 |
궁 |
따 |
궁 |
암가락 : 덩기 덩기 궁따궁
숫가락 : 더덩 덩기 궁따궁
4. 치배구성의 음양
풍물굿에서 악기의 배치 순서를 보면 양기가 가장 왕성한 꽹과리가 선두에서 판을 가락을 이끌어 간다. 꽹과리 잽이 중 상쇠는 숫꽹과리를 쓰며 대열의 맨 앞이나 원 안에서 가락의 변화를 주며 화려한 굿판을 이끌어 가는 지휘자 역할을 담당한다. 그리고 상쇠 다음에는 암꽹과리인 부쇠가 위치하여 흔들림 없는 가락의 중심 역할을 담당한다. 상쇠는 가락을 치지 않고 몸짓과 춤으로써 판을 돌아다니기 때문에 가락적인 면에서는 부쇠가 잡아 주어야 한다. 그리하여 부쇠는 상쇠보다 가락을 잘 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상쇠는 숫꽹과리를, 부쇠는 암꽹과리를 쓰는것이 풍물굿에서 일반적인 꽹과리의 구성이다. 그렇기 때문에 악기의 구성도 짝수로 짜여진다. 그리고 징, 장고, 북의 순서로서 양, 음, 양, 음으로 양한 기운에 음한 기운을 옆에 위치하게 하여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는데 경상도 지방의 북은 징의 뒤에,
장고의 앞에 배치하는 경우가 발견된다. 경상도 지방에서는 장고보다 북이 가락도
많이 들어가고 변이도 다양하며 타 지역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북은
장고 보다 앞에 서며 장고 보다 양기가 강한 악기로 취급하는 것이다. 이렇듯 악기
자체가 지니는 속성은 음하지만 악기의 기능과 역할에 따라 또는 가락의 변화에 따라
악기의 배치 순서를 달리한다는 것은 주목해야 할 부분이라 하겠다. 이같은 현상은
악기를 기능중심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호남 지방을 비롯한 충청, 경기에서는
예외 없이 장고가 북보다 가락이 화려하고 쓰임새도 다양하다. 북은 대박을 짚어
주지만 장고는 잔가락이 많이 들어가면서 다양한 변이를 일으키고 있기 때문에 장고
뒤에 북이 서게 되는 것이다.
* 호남지방 악기 구성 : 꽹과리 > 징 > 장고 > 북 > 소고
* 경기지방 악기 구성 : 꽹과리 > 징 > 장고 > 북 > 소고
* 충청지방 악기 구성 : 꽹과리 > 징 > 장고 > 북 > 소고
* 영남지방 악기 구성 : 꽹과리 > 징 > 북 > 장고 >
소고
풍물굿은 소리와 춤이 함께 하는 것이다. 춤을 추기 위해서는 소리가 있어야 하므로 소리가 먼저 있고 몸짓이 따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춤이 주가 되는 소고는 악기 다음에 위치하는 것이다. 소고잽이는 항상 악기 다음에 서는데 이것은 풍물굿이 악기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소고가 악기이기는 하지만 악기로서의 기능은 약화된 반면, 춤은 더욱 발전을 거듭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머리에 채상(상모)을 쓰고 펼치는 놀이와 '연풍대', '자반뒤집기'등 고도의 숙련된 기량이 수반되어야만 가능한 것에까지 발달하였다.
Ⅳ. 내고 달고 맺고 푸는 구조
우리의 생활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수많은 일들은 무질서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나름대로 질서와 리듬을 가지고 있다. 리듬은 일상에서 규칙적으로 이루어지는 패턴으로서 음악에서 리듬 패턴과도 상통하는 의미를 갖는다. 리듬에 대한 정의는 많은 학자들이 내리고 있는데 음악에서 사용하고 있는 리듬에 관하여 크레스톤(Paul Creston)은 선행 연구자들의 리듬에 대한 정의를 수용하고 논의들을 좀더 진전시켜 리듬의 요소를 박자(meter), 속도(pace), 엑센트(accent), 패턴(pattern)에까지 확대하고 있다.
그리고 최동현은 판소리 장단 속에 나타나는 리듬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말하고 있다.
첫째, 리듬은 현재적 지각이다. 둘째, 리듬은 등질적인 운동이
아니라 분절에 의한 운동의 갱신과 지속에 의해 성립하고, 유사한 요소의 회귀에
의해 보강되는 특질을 갖고 있다. 셋째, 리듬은 수동적인 현상의 특질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즉, 리듬은 물리적 시간에 형태를 부여함으로써 시간을 인간화 한다. 즉
리듬은 인간화된 시간이다. 판소리는 장단이라는 리듬으로 지각되는 예술이라면,
판소리의 장단은 한국인이 한국적으로 인간화한 시간이라고 할 것이다.
여기서 최동연은 결국 장단과 리듬을 판소리에 적용하여 판소리의 미학까지 발전시키고 있다. 풍물굿은 음악적인 측면에서 리듬에 의하여 이루어져 있으므로 리듬에 관한 논의를 살펴보았고 전통음악의 리듬을 많이 사용하는 판소리 고법과는 유기적 관계가 있을 것으로 믿어지기 때문에 판소리에서 사용하는 리듬과 풍물굿에서 사용하는 리듬과 같은 측면에서 볼 수 있다. 판소리에 내는소리, 다는소리, 맺는소리, 풀어주는 소리가 있다. 즉 처음에는 문을 열어 주는 듯 소리를 끌어내고, 다음에는 리듬과 빠르기에 변화를 주어 분위기를 끌어올리고, 올려진 소리가 극한 점에 다다랐을 때 맺어 주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절정에 오른 분위기를 식히고 새로운 출발을 위하여 휴식을 취하듯 잠시 분위기를 식히고 긴장을 푸는 단계가 있는데, 이것을 푼다고 한다. 잠깐 풀기도 하고 다음에는 다시 더 위로 밀었다가 절정에 이르러 소리를 죽이며 맺는데 이것을 소리에서는 '맺어 떨어진다' 또는 '졸라맨다'고 한다.
同草 金演洙의 경우에는 판소리 다섯 마당을 내고 달고 맺고 푸는 4단계 구조에 입각하여 판소리 다섯 바탕을 정리하였다. 그리고 吳聖三은 이것을 기경결해(起景結解)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해(解)라고 하는 것은 이완을 말하는 것으로 절정으로 몰아가다 절정에 도달해서는 다시 풀어 주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기 위한 마무리이며 동시에 준비를 의미한다. 이렇듯 푸는 구조의 특징 때문에 풍물굿의 구조는 결국 순환의 고리를 형성하며 무수히 계속되는 것이다. 전통음악의 구조를 이렇게 맺고 풀어 주는 구조로 바라보는 것은 한국음악의 구조와 특성을 밝히는 데에 매우 타당하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이미 판소리에서는 소리의 맥을 짚는데 있어서나 북 장단을 치는 데에서 맺고 푸는 구조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맺고 푸는 것은 상향곡선을 그리며 올라가다가 절정에 이르러 맺어 주고 어느정도 하강하면서 풀어 주는 전개를 체계적으로 드러낸다는 것이다. 이 구조는 결말을 향하여 올라가다가 절정을 고비로 하강하여 완전하게 해결을 이루고 끝을 맺는 기승전결(起承轉結)의 양상과는 다른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굳이 이 용어를 선택한다면 기승결해(起承結解)라고 하는 것이 타당 할 것이다. 맺고 푸는 가락 구조의 프렉탈 현상은 우리 풍물굿의 가락이 무질서한 혼돈 속에 있는 것 같으면서도 일정한 구조와 체계 속에서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해명하는 이론적 근거를 마련한 것이며, 풍물굿의 신명이 어디서 비롯되어 어떻게 전개되는가 하는 것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이것은 계속되는 가락의 반복에서 오는 지루함을 순간 순간 깨뜨리며 항상 새로운 가락으로 다시 전개할 수 있는 역량을 확보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굿판의 신명이 잦아들다가도 어떤 계기가 마련되면 다시 신명이 고조되기도 하고, 반대로 고조된 신명이 어느새 잦아들게 되는 것도 '내고 달고 맺고 푸는 구조'의 순환적 반복성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만일 이러한 구조가 아니라면 그때마다 연행을 끝내고 나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결국 토막난 음악적 단위 여럿을 이어서 계속 연행하는 양식이 되어, 풍물굿이 하나의 판굿으로서 통일성을 확보하기 어렵게 된다.
이것은 자동자기복제(自動自己複製) 방식에 의하여 계속해서 자기 모습을 복제하는 프렉탈 현상이다. 즉 전체 속에서나 아주 작은 분자에서나 같은 구조를 가지고 반복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자체 유사성(類似性)의 프렉탈 현상은 고사리 잎의 가지치기, 전기의 방전 모습, 눈 결정의 성장 모습, 마른 진흙의 갈라짐 등 자연현상에서 무수히 발견할 수 있다. 이렇게 자연의 불규칙한 패턴에 관한 연구와 무한히 복잡한 현상에 관한 탐구에는 지적인 교차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자체유사성(self-similar)으로 패턴 안의 패턴을 의미하며 동일한 변형을 점점 더 작은 규모로 반복하는 것이다.
한 장단의 리듬에서도 맺고 풀어 가는 구조를 취하고 있으며, 가락의 반복에서, 굿 거리에서, 여러 굿 거리가 모여 하나의 판굿이 이루어지는 데에도 맺고 푸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풍물굿 연행자들은 가락의 맺고 푸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지 않더라도 이미 이러한 구조에 익숙해져 있다. 이러한 구조는
누구에게 배워서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연행자의 오랜 경험을 통해 심성 저변에
깔려 있는 잠재된 무의식 속에 축적되어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표현이다. 여기에서
맺고 푸는 구조가 항상 네 단계를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어떤 경우에는 내고 달고
맺고 하는 경우도 있고 또 내고 달고 달고 달고 푸는 경우도 있지만 이러한 경우들은
같은 구조로 볼 수 있다. 반면에 풀고 맺고 달고 달고 하는 역순의 경우는 잘못 된
구조에 해당한다.
<장단에서 프렉탈 현상> <가락에서 프렉탈 현상>
< 굿 거리에서 프렉탈 현상 > < 판굿에서 프렉탈 현상>
1. 장단에서 맺고 푸는 구조
1)중중모리 장단형
'질굿'이란 행진곡을 말한다. 즉, 길을 걸으면서 치는 가락이다. '질굿'은 '외마치질굿'과 '오채질굿'이 있는데 외마치질굿을 대부분의 경우 '질굿'이라 하고, 오채질굿은 '오채질굿' 또는 '겹마치질굿'이라 부른다. 양순용은 질굿의 반복장단에서 첫박에 징을 한 번만 친다고 하여 외마치라는 이름을 붙인다고 한다. 이 외마치질굿(이하 질굿)은 중중모리형 네 장단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아주 느린 가락이다. 그런데 질굿이 판굿에서 쓰이는 경우 자진모리형으로 빨라지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곧 중중모리형이 점점 빨라지면 자진모리형으로 바뀌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첫째 둘째 장단은 느린풍류 가락과 유사하여 '느린풍류'와 혼돈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세 번째 장단 6박 이하는 헤미올라(hemiola)
를 뜻한다)에 유래하는 말로서 3:2의 비를 가르친다. 絃의 길이를 2:3에 의해 완전 5도 위의 음정을 얻을 수 있다는 데서 나온 말로 15-16세기의 흰표 정량기보법에 있어 프로포르티오의 일종으로서 음가의 비에 적용되었으며 특히 흰표를 착색(검정)함으로써 2개의 브레비스의 음가에 3개의 브레비스를 적용시키는 (즉 2B=3B의 전환을 행한다) 것을 말한다.({음악대사전}, 신진출판사, 1972. {음악용어 사전}, 삼호출판사, 1994, 참고)전통음악에서는 3분박의 리듬이 주종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자주 사용되는 리듬 기법이다. 그러나 이러한 리듬에 대한 논의는 아직 통일되지 못하고 '잉어걸이', '완자걸이', '엇붙임' 등의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완자걸이'가 헤미올라와 같은 것이다.
6over4 |
┣┣/┢┢┢또는
3over4 |
┡┡/┠┠┠현상이 나타나는데, 기존의 3분박 진행에서 2분박으로 바꾸어 가락을 쳐야 된다. 느린풍류와 같은 리듬이지만 여기서는 헤미올라로 쳐야만 하고 '느린풍류'에서는 3분박 진행의 엇박을 쳐야 한다. 외마치질굿에서는 3분박 진행의 부드럽고 곡선적인 리듬패턴 속에 2분박의 힘차고 패기있는 리듬이 나타나 극적 전개의 반전을 이르키고 있는 곳이다. 그리고 반 장단을 이음새 가락으로 채우고 마지막으로 네 번째 장단을 반복하게 된다. 네 번째 장단을 계속 반복하여 치다가 상쇠의 신호에 따라 첫 번째 장단으로 되돌아가 진행하고 다시 네 번째 장단에서 반복하기를 계속한다.
네 번째 반복하는 장단을 입장단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사람에 따라 조금씩의 차이는 있지만 일반적인 입장단으로는 "징길산 돈닷돈 징기리산 돈닷돈" 또는 "긴길사 돈닷돈 긴기리산 돈닷돈" 등으로 불려지고 있다. 입장단의 정확한 뜻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없으며 예전부터 어른들이 그렇게 입장단으로 부르던 것을 그들도 따라서 할 뿐이라고 한다. 이렇듯 필봉풍물굿에서는 뜻은 알지 못하지만 관행적으로 하는 입장단이나 덕담들이 있는데, 현지인들은 원래 말이 지니는 뜻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고 말 자체가 지니는 리듬감만을 주목하고 있다. "과거 어른들이 그런 식으로 입장단을 했기 때문에 우리도 그것에 그렇게 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경우는 삼채 입장단을 "땅도 땅도 내 땅이다 조선 땅도 내 땅이다" 그리고 지신밟기에서 장독굿을 칠 때 덕담인 "철륭 철륭 우 철륭 좌 철륭 우 철륭"과 같다.
<외마치질굿 가락>
| 내고(起) | 달고(承) | 맺고(結) | 풀고(解) |
꽹과리
갱 |
갱 |
갱 |
깨 |
갠 |
지갱 |
갱 |
깨 |
||||
갱 |
갱 |
깨 |
갠 |
지갱 |
갱 |
갱 |
|||||
갱 |
갱 |
갱 |
깨 |
갱 |
기리 |
갱 |
기리 |
갱 |
갱 |
||
갱 |
갱 |
갱 |
기리 |
갱 |
갱 |
갱 |
기리 |
갱 |
기리 |
갱 |
갱 |
장
덩 |
덩 |
덩 |
따 |
덩 |
기닥 |
궁 |
따 |
||||
덩 |
덩 |
따 |
덩 |
기닥 |
궁 |
따 |
|||||
덩 |
덩 |
덩 |
따 |
덩 |
구궁 |
따 |
궁 |
따 |
궁 |
||
덩 |
궁 |
따 |
궁 |
따 |
궁 |
덩 |
구궁 |
따 |
궁 |
따 |
궁 |
위 악보에서 7, 8, 9박에 보면 꽹과리에서는 '갠-지갱' 또는 '갱기리깽'으로 되어 있으며 장고는 '덩-기닥' 또는 '덩구궁따'로 되어 있다. 꽹과리의 '기'는 '갱'을 치기 전에 들어가는 겹가락으로서 '갱'을 꾸며 주는 소리이기도 하지만 '갱'을 더욱 선명히 드러내 주기 위한 가락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기리깽'에서 '기리'는 꽹과리를 완전히 막고 치는 것으로, 막고 치는 '기리' 다음에 '깽'은 완전 개방 음으로 강한 소리를 낸다. 그리고 장고에서도 '기닥'과 '구궁따'가 나오는데 '기닥'은 강하게 치면서 소리를 흘리지 않고 잡아 주듯이 쳐야 한다. 다음에 나오는 '구궁따'에서는 '구궁'은 약하게 굴리듯이 치고 '따'는 '구궁'에서 굴리듯 부드러운 소리를 야무지게 잡아 주는 '따'이다.
이렇게 1박에서 시작한 소리들을 9박에서 마무리 짓고 10, 11, 12박에는 풀어 주는 것인데, 1장단 리듬은 ┠┤(갱-깨)로 풀고 있지만, 2장단에서는┤┠(개갱-)으로 풀지 않고 조여 준다. 이것은 다음에 이어주는 힘차고 패기 있는 2분박으로 넘어가기 위해 준비하는 것이며 3장단, 4장단은 ┤┤┤(갱갱갱)으로 분위기가 내려가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김현숙은 ┠┤(갱-깨) 리듬을 "우아하고 여성적이다"고 말하고 ┤┠ (개갱-) 리듬을 "씩씩하고 남성적이다"라고 한다. 그리고 ┤┤┤ 리듬 또한 "진양조" 24박 중에서 마지막 풀어 주는 부분이 이와 같은 리듬으로 이루어져 있듯이 ┤┤┤ 와 ┠ ┤ 리듬은 풀어 주는 리듬형이다.
느린풍류나 춤굿(일명 돌굿)과 같은 가락은 풍물굿에서 가장 느린
가락으로 악기를 치는 사람이나 춤을 추는 사람이 여유가 있다. 그리고 악기를 치는
사람은 가락에 여백을 충분히 활용하여 온몸으로 부드럽게 춤을 추면서 연행한다.
그래야 가락과 춤이 어우러져 풍성한 춤가락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느린풍류 가락>
| 내고(起) | 달고(承) | 맺고(結) | 풀고(解) |
꽹과리
갱 |
갱 |
갱 |
개 |
개 |
갠 |
지갱 |
갱 |
개 |
|||
갱 |
깨 |
갱 |
개 |
갠 |
지갱 |
갱 |
개 |
장 고
덩 |
덩 |
덩 |
따 |
덩 |
기닥 |
궁 |
따 |
||||
덩 |
따 |
궁 |
따 |
궁 |
덩 |
기닥 |
궁 |
따 |
위의 느린풍류 꽹과리 악보를 보면 1박을 ┤┠(갱갱-)으로 시작하여7, 8, 9박에서 맺어 주는 '기닥'이 붙었다. 그리고 마지막 풀어 주는 곳에서는 ┠┤(갱-깨)으로 부드럽게 처음으로 연결시키며 풀어 주고 있는 것이다. 첫 소절이 ┤┠(갱갱-)으로 시작하는 리듬은 느린풍류와 반풍류에서만 나타나는 특이한 경우이다. 그러나 왜 풍류 가락(느린풍류, 반풍류)에서만 이렇게 특이한 경우로 시작되는지는 아직 의문이 남는다. 대부분의 가락은 ┠┤(갱-갱)으로 시작하는데 이곳에서만 다른 리듬꼴이 나타나는지 이직 연구자로서도 의문으로 남는다.
느린풍류 가락 2번째 장단의 꽹과리 가락을 보면, 질굿 가락의
3번째 장단과 유사한 리듬 꼴이 나타난다. 그러나 질굿에서는 엇박으로 앞에서 진행한
리듬꼴인 3분박의 느낌을 유지하며 가락을 쳐야만 한다. 즉 2째 장단 4째 박에서
엇박으로 들어가야 느린풍류 맛이 나는 것이다. 그러나 질굿에서는 2분박으로 진행하는
헤미올라로 처리 해야만 한다.
<인사굿 가락>
| 내고(起) | 달고(承) | 맺고(結) | 풀고(解) |
꽹과리
갱 |
개 |
갱 |
개 |
개개 |
갱 |
깨 |
갱 |
갯 |
장 고
덩 |
덩 |
덩 |
덩 |
더더 |
덩 |
덩 |
덩 |
다 |
꽹과리의 9박에서 '깨'하고 강하게 맺어 주는 곳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장고 가락은 악보상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9박에서 '덩'이 강하다.
2) 자진모리 장단형
자진모리형은 실제 가락에서는 다채로운 가락의 변주가 이루어지지만
기본 구조가 유사하므로 '반풍류', '느린삼채', '중삼채' 등을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반풍류 가락>
| 내고(起) | 달고(承) | 맺고(結) | 풀고(解) |
꽹과리
개 |
갱 |
개 |
갱 |
갠 |
지갱 |
개 |
갱 |
||||
갱 |
개 |
깽 |
개 |
갠 |
지갱 |
개 |
갱 |
장 고
더 |
덩 |
더 |
덩 |
덩 |
기닥 |
궁 |
따 |
||||
덩 |
따 |
궁 |
따 |
궁 |
덩 |
기닥 |
궁 |
따 |
반풍류 가락은 느린풍류를 빠르게 치는 것이기다. 그리하여 느린풍류와
반풍류는 같은 느낌을 갖는다. 우도풍물굿에선 필봉풍물굿의 반풍류, 느린삼채, 된삼채
등과 같은 가락이 나누어지지 않고 함께 묶어서 '삼채'라고 부른다.
<느린삼채 가락>
| 내고(起) | 달고(承) | 맺고(結) | 풀고(解) |
꽹과리
갠 |
지 |
갠 |
지 |
갠 |
깨 |
개 |
갱 |
||||
개 |
갠 |
갠 |
지 |
개 |
깨 |
개 |
갱 |
장 고
덩 |
기 |
덩 |
기 |
덩 |
구 |
궁 |
따 |
||||
더 |
덩 |
덩 |
기 |
덩 |
구 |
궁 |
따 |
<중삼채 가락>
| 내고(起) | 달고(承) | 맺고(結) | 풀고(解) |
꽹과리
갱 |
깨 |
주 |
깨 |
갱 |
깨 |
주 |
깨 |
||||
갱 |
깨 |
주 |
깬 |
지 |
갱 |
깨 |
주 |
깨 |
장 고
덩 |
구 |
궁 |
따 |
덩 |
구 |
궁 |
따 |
||||
덩 |
구 |
궁 |
따 |
구 |
덩 |
구 |
궁 |
따 |
반풍류, 느린삼채, 중삼채 가락은 9박에서 의도하지 않아도 강하게 처리된다. 서양음악에서 9박이 강하게 나타나는 경우는 작곡자의 임의적인 의도에 의하지 않고는 발견하기 어렵다. 그러나 우리 음악에서는 9박이 강하게 처리되는데 이것이 바로 맺는 곳에 해당하는 것이다.
3) 휘모리 장단형
휘모리 가락과 영문삼채 가락의 맺고 푸는 구조를 보자.
<휘모리 가락>
| 내고(起) | 달고(承) | 맺고(結) | 풀고(解) |
꽹과리
갠 |
지 |
갠 |
지 |
갠 |
지 |
갠 |
지 |
장 고
덩 |
기 |
덩 |
기 |
궁 |
기닥 |
궁 |
기 |
꽹과리 가락은 ┠┤(갠-지)의 리듬이 반복되기 때문에 맺는 곳이 악보 상에는 선명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꽹과리 치는 소리를 들어보면 같은 리듬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가락이 시작하는 첫 박에서 강하게 처리하고 9박에서 강하게 처리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첫박이 강박이므로 마지막을 약하게 처리해야 하는데 마지막을 약하게 처리하기 위하여 9박에서 강하게 함으로써 그 이하는 자연스럽게 소리가 약하게 들리면서 첫 박이 강조되는 것이다.
장고 가락에서는 9박이 다른 곳과 달리 '기닥'으로 하기 때문에
위 악보에서나 실제 연주에서는 맺는 곳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영문삼채 가락>
| 내고(起) | 달고(承) | 맺고(結) | 풀고(解) |
꽹과리
갠 |
갠 |
갠 |
지 |
갱 |
|||||||
개 |
갱 갠 |
갠 |
지 |
갠 |
지 |
갱 |
장 고
덩 |
덩 |
궁 |
기닥 |
궁 |
|||||||
더 |
덩 |
덩 |
따 |
궁 |
기닥 |
궁 |
영문삼채 가락은 '샘굿', '문굿', '조왕굿' 등 지신밟기에서 나타나는 가락으로 덕담의 리듬과 같은 리듬으로 되어있는 가락이다. 영문삼채 가락 다음에 느린겐지갱, 휘모리로 이어진다. 빠르기는 자진모리 장단형과 휘모리 장단형의 중간에 해당하지만 휘모리 가락과 유사하여 혹자는 휘모리 가락과 혼돈하여 휘모리 가락을 치는 경우도 발견된다.
영문삼채의 가락에서도 휘모리와 마찬가지로 꽹과리에서는 맺는
곳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지'가 들어감으로써 다른 곳과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장고 가락에서는 맺는 곳이 악보에서도 드러나고 구음과 실제
가락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2. 가락의 순환에서 맺고 푸는 구조
풍물굿은 동일한 가락을 무수히 계속하다 다시 다른 가락으로 넘어가는 형식을 취한다. 동일한 가락을 여러번 반복한다는 것은 듣는 이나 연주자로 하여금 지루함을 줄 수 있는 가능성이 많이 있다. 그러나 지루함을 없애는 방법이 곧 맺고 푸는 구조이다. 휘모리의 경우 굿 거리의 마지막에 나타나는데, 굿 거리마다 휘모리 가락은 조금씩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차이는 학습을 통해서 전수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 실제 경험 속에서 우러나오는 가락의 변화를 느끼고 판의 흐름을 잘 파악 할 수 있을 때만이 가능한 것이다. 굿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 가락의 맺고 푸는 곳이 어디인지 알지 못한다. 치배는 풍물굿 속에서 신명나게 흥을 돋우면서 자신의 흥 풀이를 해야 하지만 한편으로 흥에 빠져들지 않고 전체 판의 흐름을 파악하는 냉철함 또한 잊어서는 안된다.
학습을 통하여 가락과 굿의 순서를 알고 있다고 할지라도, 아직 풍물굿의 분위기와 흐름을 이해하지 못하는 잽이들과 함께 풍물굿을 치는 경우 가끔씩 무미건조하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때가 있다. 이것은 바로 맺고 푸는 맥을 모르고 자신의 흥에 취해 혼자서 치기 때문이다. 이때 사람들은 "가락은 잘 치는데 재미가 없다"라고 말한다. 그렇지 않고 맺고 푸는 생사의 맥을 알고 분위기에 조화를 이루어 가락을 치면, 아무리 한 가락만 오래 치는 경우에도 지루함을 느끼지 않고 재미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맺고 푸는 맥을 느낀다는 것은 곧 풍물굿의 분위기를 이해하고, 다른 사람들의 반응도를 감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락에서 맺고 푸는 분위기를 아는 방법은 학습을 통해서 배우는 것 보다는, 연행현장 속에서 경험으로 알아내는 것이다.
가락의 반복에서 맺고 푼다는 것은 가락의 넘어가는 곳이 어느 때인지 아는 것을 말한다. 한 가락을 계속 치다가 다음 가락으로 넘기는 것은 구경꾼들의 분위기와 치배들의 분위기를 잘 파악하여 넘겨야만 한다. 이것은 풍물굿의 가장 기초가 되고 풍물굿의 흥을 이끌어 가는 맥점이 되는 것이다. 이 맺고 푸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느끼는 것이 아니라 사람마다 조금씩의 차이를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가락을 넘기는 것은 사람마다 조금씩 차이를 보인다.
같은 치배들끼리 오랫동안 풍물굿을 연행하다 보면 가락의 넘기는 시기를 서로 알게 되며 상황의 변화에 따른 느낌이 일치하게 되는데 이것을 바로 "호흡이 잘 맞는다"라고 하는 것이다. 다음 가락으로 넘기고 싶은 생각이 일치하여 가락을 넘겨주는 것이다. 풍물굿을 아무리 잘 하는 사람이라도 상대방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는 경우 한 사람은 이제 흥이 서서히 오르고 있는데 다른 한 사람은 벌써 흥이 절정에 도달하여 가락을 다음으로 넘겨 버리면 아무리 기능이 뛰어난 경우에도 흥과 신명이 맞아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즉 호흡이 맞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서로의 맺고 푸는 시점이 다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내는 부분에서는 가락이 정갈하고 꿋꿋하며 강하고 긴 호흡을 가지고 차분하게 진행해야 한다. 달고 가는 부분에서는 서서히 호흡을 빨리 하여 가락의 맛을 느낄 수 있도록 가락의 끝과 시작을 원만히 이어주며 잔 가락을 섞어 치기 시작한다. 맺는 부분에서는 호흡이 매우 빨라지면서 가락도 빨리 몰고, 음량도 세게 하여 분위기를 절정까지 끌어 올려 그 가락이 가지고 있는 맛과 멋을 한껏 부린다. 그리고 이렇게 절정에 도달한 흥을 다시 한번 감아 올린 다음 호흡을 가다듬을 수 있게 풀어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이렇게 계속 맺고 푸는 것을 반복함으로써 악기를 치는 치배나 구경꾼들은 시간을 잊고 가락 속에 빠져들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겐지갱을 치는데 2-3분 가량 치는 것이 보통이지만 1988년 남원보절에서 보름굿을 치면서 겐지갱만 30분을 칠 수 있었던 것이다.
3. 굿 거리에서 맺고 푸는 구조
대부분의 굿 거리는 본 가락에서 시작하여 점차 분위기를 빨리 몰아가다 휘모리 가락에서 절정을 이루어 맺는다. 겐지갱 가락과 휘몰리 가락은 모든 굿 거리의 마지막에 온다. 이렇게 겐지갱, 휘모리로 끝내는 것을 푸는 가락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푸는 가락은 다음에 이어지는 굿 거리의 본 가락이 푸는 가락이 된다. 그리고 다시 내는 가락에서 시작하여 푸는 가락인 휘모리로 이어지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즉 본 가락은 새로 시작하는 굿을 중심으로 본다면 내는 가락이지만 앞의 굿에서 보면 푸는 가락이 되는 것이다. 본 가락은 관점에 따라 푸는 가락이 되기도 하고 내는 가락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굿 거리의 시작 가락은 일반적으로 속도가 느리고 정갈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고 분위기를 가다듬는 것이다.
맺고 푸는 구조를 분석함에 있어 내는 가락을 A, 다는 가락을 B, 맺는 가락을 C, 푸는 가락을 D 등의 기호를 사용하여 풍물굿의 굿 구조를 분석하였다. 이음새 가락은 가락과 가락 사이를 원만하게 연결시켜 주는 연결 가락으로써 한 장단이나 반 장단 내외의 짧은 가락이기 때문에 구조에는 포함시키지 않았다.
1) 외마치질굿
질굿 순서 : 질굿 본 가락 →이음새 →느린겐지갱(빠른겐지갱)
→이음새 →휘모리→채굿
A : 내는 가락-질굿 본 가락
B : 다는 가락-느린겐지갱(빠른겐지갱) 가락(빠른겐지갱)
C : 맺는 가락-휘모리 가락
D : 푸는 가락-채굿 가락
외마치질굿의 구조 : A, B, (B`), C, D
외마치질굿 본 가락은 중중모리 장단형으로 풍물굿 가락 중에서 가장 느린 가락이다. 이렇게 느린 가락으로 질굿 본 가락을 시작하는 것이 내는 가락이다. 그리하여 달아 올리는 가락인 느린겐지갱으로 넘어가게 된다. 이 느린겐지갱은 휘모리와 질굿 본 가락을 연결시켜 주는 가교 역할을 하는 가락이다. 이렇게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휘모리 가락에서 흥은 절정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이 휘모리 가락이 맺는 가락에 해당된다. 그리고 절정에 도달한 분위기를 풀어 주는 채굿 가락을 내는 것이다.
여기에서 만약 느린겐지갱으로 분위기가 끌어 올라가지 않거나
분위기를 좀더 끌어올리고 싶으며 빠른겐지갱으로 분위기를 좀더 고조시킬 수도 있다.
이렇게 느린겐지갱 다음에 빠른겐지갱을 추가할 경우는 행진곡으로써 질굿이 아니라
춤추며 놀기 위한 춤곡으로써 질굿이 되는 것이다.
2) 채굿(오채는 제외)
채굿 순서 : 일채(이채, 삼채, 사채, 육채, 칠채)본 가락 →두마치
→느린겐지갱 →이음새→휘모리
A : 내는 가락-일채(이채, 삼채, 사채, 육채, 칠채) 가락
B : 다는 가락-두마치 가락, 느린겐지갱 가락
C : 맺는 가락-휘모리 가락
D : 푸는 가락-진다드래기호허굿 가락
채굿의 구조 : A, B, B', C, D
채굿의 구조는 B, B`가 두 번 나타난다. 채굿 본 가락은 신명 나는 가락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채굿 본 가락에서 두마치 가락으로 넘어가도 아직 분위기는 달아오르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두마치 가락보다 속도가 떨어지는 느린겐지갱을 사이에 넣고 있다. 즉 두마치 가락으로 끌어올리지 못한 분위기를 느린겐지갱 가락으로 반전을 꽤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형태는 다른 굿들이 점층적으로 빨라져 절정에 도달하는
것과는 달리 빨라지다 갑자기 느려짐으로서 예상을 뒤엎는 흐름으로 가는 것이다.
이렇게 상반되는 가락을 배치함으로써 느린겐지갱과 휘모리는 더욱 빛을 발하게 된다.
이러한 기법은 강박 앞에는 약박을, 빠르기 전에는 느리게 함으로써 강박과 약박,
느린 것과 빠른 것을 대비시켜 명암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3) 호허굿
진다드래기호허굿은 진풀이가 중심이 되는 것으로 가락은 단순한
편이다. 그리고 호허굿 본 가락은 춤을 추기에는 어렵고, 걸어가는 가락을 친다.
호허굿에서는 모든 치배나 구경꾼이 "호호 허허"하며 외치는 소리에서
굿 판에 모인 사람들의 일체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호허굿되드르미는
돌면서 치는 가락이라 하여 일명 돌호허굿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호허굿 순서 : 진다드래기호허굿→어름굿→호허굿 본 가락→호허굿되드르미(돌호허굿)→자진호허굿→중삼채→이음새→휘모리→짝드름(싸잽이)→이음새→느린풍류
진다드래기호허굿은 진풀이가 중심을 이루는 가락이기 때문에
가락 구조분석에서는 제외 하였다.
A : 내는 가락-호허굿 본 가락, 호허굿되드르미(돌호허굿) 가락
B : 다는 가락-자진호허굿 가락, 중삼채 가락,
C : 맺는 가락-휘모리 가락, 짝드름 가락(싸잽이)
D : 푸는 가락-느린풍류 가락
호허굿의 구조 : A, A', B, B' C, C', D,
호허굿은 다른 굿 거리와 비교하여 다양한 진풀이와 가락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시간이 많이 걸린다. 가락의 변화는 A, A`, B, B`, C, C`, D 등의 구조를 가지며 서서히 변화를 주고 있다. 이것은 긴 시간 동안 서서히 변화를 주면서 맺는 부분에서는 가장 흥겨운 가락인 싸잽이 가락으로 절정에 도달하는 것이다. 이 싸잽이 가락으로 그 동안의 축척하고 있던 흥과 신명을 모두 풀어내는 곳이다. 싸잽이가 끝나고 나오는 이음새 가락은 휘모리와 느린반풍류를 연결시켜주는 연결 가락으로 중중모리 장단형 2장단으로 휘모리와 느린풍류를 이어주는 것이다.
호허굿은 다른 굿 거리와 다르게 싸잽이 가락으로 맺는 점이 특이하다.
짝드름은(일명 품앗이 가락 또는 미지기 가락) 휘모리를 빠르게 몰아 흥을 최대한
끌어 올린 다음에 꽹과리 소리는 소리를 내지않고 장고와 북소리만 낸다. 이것은
가슴속에 감추어져 있던 신명을 가죽 소리로 끌어올린 다음에 상쇠와 부쇠가 반 장단씩
주고 받는 것이다. 이렇게 속도가 빠르게 진행되고 짝드름이 들어가는 부분을 다른
이름으로 싸잽이라고도 부른다.
4) 풍류굿
풍류굿 순서 : 느린풍류→반풍류→이음새→빠른겐지갱→이음새→휘모리
A : 내는 가락-느린풍류 가락,
B : 다는 가락-반풍류가락, 빠른겐지갱 가락
C : 맺는 가락-휘모리 가락
D : 푸는 가락- 다음으로 이어지는 가락
풍류굿의 구조 : A, B, B', C, D
풍류굿도 다른 굿과 마찬가지로 느린가락에서 시작하여 점점 빨라지다가 휘모리에서 맺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B, B' 형태가 나타나는데 이것은 반풍류 가락으로 분위기가 달아 올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빠른겐지갱으로 분위기를 고조 시키는 것이다.
5) 가진영산굿
가진영산 순서 : 어름굿→가진영산 본 가락→다드래기영산→다드래기영산휘모리→휘모리(짝드름)→이음새→반풍류→이음새→빠른겐지갱→이음새→휘모리→어름굿
A : 내는 가락-어름굿, 가진영산 본 가락
B : 다는 가락-다드래기영산,
C : 맺는 가락-다드래기영산휘모리 가락, 휘모리(짝드름) 가락
D : 푸는 가락-반풍류 가락
A : 내는 가락-반풍류 가락
B : 다는 가락-빠른겐지갱 가락,
C : 맺는 가락-휘모리(짝드름) 가락,
D : 푸는 가락-어름굿
가진영산굿의 구조 : A, B, C, D, A', B', C', D'
가진영산에서는 맺고 풀어 다시 맺고 푸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다드래기영산 휘모리에서 절정으로 끌어올려진 분위기를 고개를 넘듯 이음새 가락으로 연결하여 반풍류로 넘어가고 있다. 여기에서 이음새 가락은 휘모리와 반풍류를 연결시켜 주는 연결가락으로 자진모리 장단형 4장단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빠른겐지갱으로 달고 가다가 휘모리에서 다시 한 번 정점에 도달하여 맺는 다음 어름굿으로 끝난다. 처음에 나오는 어름굿과 마지막에 나오는 어름굿은 길게 치는데 시작에서는 준비를 의미하기 때문이고 미지막은 풀어 주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가진영산에서는 맺고 푸는 구조가 두 번 순환하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굿 거리의 구조를 살펴보면 모든 굿 거리는 A, B,
C, D 등의 순서로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조금 긴 굿의 경우 A, A'또는 B, B'
등의 구조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가진영산에서 처럼 A, B, C, D, A', B', C', D',
의 순환형도 발견된다. 굿거리에서는 2-3번 반복되는 경우가 있지만 항상 A, B, C,
D의 순서는 유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4. 판굿에서 맺고 푸는 구조
풍물굿 시작은 아주 빠른굿인 휘모리가 주를 이루는 싸잽이(일명
굿내는가락, 굿머리가락)로 시작한다. 싸잽이란 매우 빨리 몰아 짝드름이 수반되는
것을 말하는데, 상황에 따라 가락의 내용을 생략하여 휘모리 가락만으로 대치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빠른 가락으로 분위기를 잡은 다음 질굿, 채굿, 호허굿, 풍류굿,
가진영산, 노래굿, 춤굿, 재능기영산(군영놀이), 수박치기, 등지기굿, 도둑잽이굿,
탈머리 순으로 이뤄지며 풍물굿이 끝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순서는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으며 생략도 가능하다. 그렇지만 순서가 바뀌거나 생략함에 있어
무작위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내고 달고 맺고 푸는 구조만은 절대 무너뜨리지 않고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면 그 동안 이루어졌던 필봉굿의 순서를 토대로 굿 판의
맺고 푸는 구조를 검토 해보자.
가) 1980년 2월 8일 발표 공연 판굿 순서
장소 : 임실군 강진면 필봉마을
굿내는가락→질굿→채굿→호허굿→풍류굿→삼방울진→乙자진→미지기→(이후로는
비가 내려 중단함)
나) 1984년 2월 20일 발표 공연 판굿 순서
장소 : 임실군 강진면 필봉마을
굿내는가락→질굿→채굿→호허굿→풍류굿→참굿→삼방울진→乙자진→미지기→가진영산→노래굿→춤굿→군영놀이→수박치기→등지기굿→도둑잽이→탈머리굿
A : 내는 굿 : 싸잽이, 질굿, 채굿(1채-7채), 호허굿
B : 다는 굿 : 풍류굿, 삼방울진, 乙자진, 미지기
C : 맺는 굿 : 가진영산, 노래굿, 춤굿, 군영놀이
D : 푸는 굿 : 수박치기, 등지기굿, 도둑잽이, 탈머리굿
풍물굿의 구조 : A, A', A', A', B, B', B', B', C, C', C', C', D, D', D', D'
다) 1987년 2월 23일 발표 공연
장소 : 남원군 보절면 금다리 호동마을
당산제→마당밟이→질굿→오채질굿→채굿(사채)→호허굿→풍류굿→참굿→삼방울진→乙자진→미지기→가진영산→노래굿→춤굿→군영놀이→수박치기→등지기굿→도둑잽이→탈머리굿
당산제와 마당밟이는 판굿이 아니고 제의 굿이므로 대상에서 제외했다.
A : 내는 굿 : 질굿, 오채질굿, 채굿(1채-7채), 호허굿
B : 다는 굿 : 풍류굿, 삼방울진, 乙자진, 미지기
C : 맺는 굿 : 가진영산, 노래굿, 춤굿, 군영놀이
D : 푸는 굿 : 수박치기, 등지기굿, 도둑잽이, 탈머리굿
풍물굿의 구조 : A, A', A', A', B, B', B', B', C, C', C', D,
D', D', D'
라) 1990년 서울놀이마당 공연
싸잽이→느린풍류→인사굿→채굿(칠채)→호허굿→풍류굿→삼방울진→乙자진→미지기→가진영산→인사굿→뒷풀이
공연 위주의 풍물굿은 싸잽이, 느린풍류, 인사굿 등은 무대에
입장하기 위한 굿이므로 대상에서 제외했다. 인사굿부터 본격적인 풍물굿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A : 내는 굿 : 칠 채굿, 호허굿
B : 다는 굿 : 풍류굿, 삼방울진, 乙자진, 미지기,
C : 맺는 굿 : 가진영산, 군영놀이,
D : 푸는 굿 : 뒤풀이
풍물굿의 구조 : A, A', B, B', B', B', C, C', D,
위에 열거한 굿 거리 중 '내는굿', '다는굿', '맺는굿', '푸는굿'의 순서가 아닌 역순으로 굿을 치면 절대 안되며 시간이 없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각 굿 거리 중 하나씩만 치고 넘어가도 구성에 맞는 풍물굿이 될 수 있다. 필봉풍물굿의 연행 형태를 보면 대부분 비슷하다. 이유는 풍물굿이 필봉마을을 위한 굿도 아니고 치배들 자신의 굿도 아닌 남에게 보여 주기 위한 공연으로 처음부터 굿 순서를 정하고 많은 시간 동안 공연을 위하여 연습을 하고 연습한 내용대로 공연을 하기 때문이다. 계획에 없던 내용을 즉흥적으로 첨가하지 않고 분위기에 휩싸여 새로운 굿 거리를 만들어 내서 공연하지 않고 처음 계획하고 연습한 것만 공연하기 때문에 시간이 경과하여도 연행 목록은 비슷하게 진행되는 것이다.
Ⅴ. 연행상황에 따른 가락 변이의 역동성
1. 가락 변이의 역동성
풍물굿 전반에서 상쇠가 치는 가락과 부쇠가 치는 가락은 서로
다를 수 있다. 상쇠는 가락도 치지만 전체 판을 이끌어 가다 보니 치배 구경꾼과의
반응을 중요시한다. 그래서 다른 치배들의 가락보다는 상쇠의 가락을 살펴 보는 것이
판의 흐름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겨져 상쇠의 가락을 중심으로
검토 보고자 한다. 물론 장고, 북 등도 같은 현상이 나타나지만 여기에서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상쇠의 가락을 중심으로 분석하고 필요한 경우 장고
가락도 참고 하였다.
1) 휘모리 가락의 변이
휘모리 가락은 풍물굿 가락 중에서 가장 빠르고 흥겨운 가락에
해당한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풍물잽이들은 휘모리 가락이 나오면 발걸음도 빨라지고
몸짓 또한 격렬해지며 구경꾼들은 모두 흥분하여 최고의 절정에 도달하게 된다. 이때
모든 치배들은 가락에 변이를 주어서는 안되고 더욱 기본 박에 충실해야만 한다.
하지만 상쇠는 다양한 변이 가락을 구사하게 되는데 이때 상쇠 가락의 변이를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휘모리 가락 기본형>
꽹과리
갠 |
지 |
갠 |
지 |
갠 |
지 |
갠 |
장 고
덩 |
기 |
덩 |
기 |
궁 |
기닥 |
궁 |
<휘모리 가락 변이형 1>
갠 |
지 |
갠 |
지 |
갠 |
갠 |
개 |
<휘모리 가락 변이형 2>
갠 |
지 |
갠 |
갠 |
갠 |
갠 |
<휘모리 가락 변이형 3>
갠 |
갠 |
갠 |
갠 |
지 |
갠 |
<휘모리 가락 변이형 4>
갠 |
지 |
갠 |
깨 |
지 |
갠 |
<휘모리 가락 변이형 5>
개 |
개 |
갠 |
깨 |
지 |
갠 |
가락을 처음 시작할 때는 정확한 기본형을 치는 것이 관례이다. 그러나 기본 가락만 가지고는 극점까지 도달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상쇠는 가락에 변이를 주게 된다. 상쇠가 가락에 변이를 줄 때에 위 악보에 나타나는 변형을 치게 된다. 그렇지만 다른 꽹과리 잽이는 변형을 쳐서는 절대 안 되고 상쇠만이 변이형을 칠 수 있는 것이다. 기본형 가락이 저변에 깔리면서 상쇠의 변이형 가락이 기본형의 사이사이를 파고드는 것이다. 결국 기본형과 변이형이 동시에 이루어지며 기본형의 3분박과 변이형의 2분박이 결합하고 엇붙임을 사용하면 여기에서 절묘한 리듬의 조화로 분위기를 절정까지 몰아 갈 수 있는 것이다
변이형 1, 2, 3 등은 판소리나 기악 장단에서 자주 사용하고 있는 완자걸이를 사용하고 있다. 규칙적인 리듬 패턴에 헤미올라(hemiola)현상을 이용하여 3분박의 리듬 속에서 2분박의 리듬을 이동시켜 가면서 위기의 전환을 꾀하고 있다. 그리고 변이형 4는 엇붙임을 사용하고 있으며, 변이형 5는 가락의 엇붙임을 사용하고 있고, 변이형 4, 변이형 5를 엮어치게 되면 음양대비형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여러 가지 변이형들을 독립적으로 하나씩 구사하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여러 가지 변이형들을 서로 섞어서 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여러 가지 변이를 함께 구사하면 분위기는 극에 달하여 굿판 사람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장고 가락에서도 이러한 변이는 나타난다
<휘모리 가락 기본형>
덩 |
기 |
덩 |
기 |
궁 |
기닥 |
궁 |
<휘모리 가락 변이형 1>
덩 |
따 |
궁 |
따 |
궁 |
따 |
궁 |
<휘모리 가락 변이형 2>
덩 |
따 |
궁 |
궁 |
따 |
궁 |
장고 가락 기본형은 가락이 처음 시작 될 때, 즉 내는 가락에서
주로 사용한다. 가락이 절정에 다달아 있을 때 기본형을 계속 치면 속도가 빨라지지
못하고 분위기가 살아나지 않는다. 분위기가 달고 가는 때에는 변이형1과 변이형2
가락을 구사한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에 변이형은 나오지 않고 휘모리 가락이 어느정도
무르익어가고 있을 때 변이형 가락을 치는 것이다.
2) 외마치질굿 가락의 변이
그런데 질굿 가락의 리듬에 맞추어 걸어가면 걸음걸이가 너무 느리다. 그렇기 때문에 가락과 발걸음이 일치하지 않게 걸어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좁은 공간에서나 마당에서 풍물굿을 칠 때에는 가락과 발걸음을 맞추게 되고, 발걸음이 가락과 일치하니 춤이 함께 이루어지게 된다. 결국 질굿의 걸음걸이는 가락에 일치하지 않는 경우와 가락과 일치하는 경우, 두 가지가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행진곡이 되기도 하고 춤굿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질굿 가락은 첫 장단에서 시작하여 세 번째까지 진행하다가 네 번째 장단을 반복하게 된다. 네 번째 장단을 계속해서 반복한다. 길을 걸으며 가락을 치다가 처음으로 가락을 넘기는 것은 앞에 가는 상쇠가 모든 치배들에게 어떠한 의사를 전달하고자 할 때에 가락을 넘긴다. 즉, 길을 가고 있는 중에 개울이나 기타 장애물이 있을 경우 치배들에게 주위를 환기시키려는 경우에 가락을 넘기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춤을 추고 있을 때에는 분위기 전환을 위해서 가락을 처음으로 넘긴다.
질굿 가락의 빠르기는 중중모리 장단형을 취하는 것이다. 길을 걸으면서 가락을 칠 때에는 중중모리 장단형을 유지하지만 마당에서 질굿을 칠 때에는 중중모리 장단형을 점점 빠르게 몰아가 결국 자진모리 장단형의 빠르기로 속도를 가져가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자진모리 장단형으로 질굿 가락이 바뀌면 다음에 나오는 느린겐지갱에서 빠른겐지갱으로 바꾸어 앞의 속도에 맞게 만든다.
<질굿의 기본형>
꽹과리
갱 |
갱 |
갱 |
깨 |
갠 |
지갱 |
갱 |
깨 |
||||
갱 |
갱 |
깨 |
갠 |
지갱 |
갱 |
갱 |
|||||
갱 |
갱 |
갱 |
깨 |
갱 |
기리 |
갱 |
기리 |
갱 |
갱 |
||
갱 |
갱 |
갱 |
기리 |
갱 |
갱 |
갱 |
기리 |
갱 |
기리 |
갱 |
갱 |
장 고
덩 |
덩 |
덩 |
따 |
덩 |
기닥 |
궁 |
따 |
||||
덩 |
덩 |
따 |
덩 |
기닥 |
궁 |
따 |
|||||
덩 |
덩 |
덩 |
따 |
덩 |
구궁 |
따 |
궁 |
따 |
궁 |
||
덩 |
궁 |
따 |
궁 |
따 |
궁 |
덩 |
구궁 |
따 |
궁 |
따 |
궁 |
질굿 기본형에서 4번째 장단을 반복되는데, 이 반복 부분에서
꽹과리 가락에 변이를 주게 된다.
<질굿의 변이형 1>
갱 |
갱 |
깨 |
기리 |
갱 |
깨 |
기리 |
깨 |
기리 |
갱 |
깨 |
<질굿의 변이형 2>
갱 |
갱 |
깨 |
갱 |
깨 |
갱 |
기리 |
깨 |
갱 |
깨 |
<질굿의 변이형 3>
갱 |
갱 |
깨 |
기리 |
갱 |
깨 |
기리 |
깨 |
기리 |
갱 |
깨 |
<질굿의 변이형 4>
갱 |
깨 |
기리 |
갱 |
깨 |
기리 |
깨 |
기리 |
갱 |
깨 |
질굿 가락에서는 엇붙임과 완자걸이 기법을 섞어 가며 변이를 주고 있다. 첫 박에서 엇박을 넣는 경우는 없고 네번째 박, 일곱 번째 박, 열 번째 박에서 엇붙임을 구사한다. 이러한 변이는 상쇠뿐만 아니라 모든 꽹과리 잽이들이 가락에 변이를 줄 수 있다. 이러한 변이는 가락이 느릴 때보다 가락이 빨라지면서 변이형을 더욱 빈번하게 사용한다. 그리고 상쇠는 휘모리에서와 같이 완자걸이나 잉어걸이도 사용할 수 있다.
3) 영산 가락에서의 변이
'영산'이라는 말이 붙은 가락은 모두 변화무쌍하고 매우 화려하여 흥과 신명의 극치에 도달하게 만든다. 영산 가락은 주로 꽹과리 가락이 중심을 이루며 쇠잽이의 가락과 부포놀음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상쇠와 부쇠가 주고 받는 가진영산도 있지만, 재능기영산과 같은 것은 꽹과리 혼자 가락을 친다. 영산은 꽹과리 가락을 잘 맞출 수 있는 장고와 북이 뒤를 받쳐 준다. 여기에서 꽹과리 가락을 익숙하게 따라 칠 수 없는 장고는 악기를 치지 않거나 친다고 하여도 아주 약하게, 가락을 넣지 않고 원박만을 따라 친다. 이러한 경우는 풍물굿의 협화 정신과는 맞지 않지만 꽹과리 잽이가 충분히 판을 압도하여 구경꾼과 다른 치배들에게 설득력을 지닐 수 있다고 생각될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가진영산은 재능기영산 보다는 장단의 수나 가락의 변이에 있어서 정형화된 틀을 가지면서 상쇠와 그외 꽹과리 잽이가 서로 한 가락씩을 주고받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자진모리 한배에서 시작하여 빠른 휘모리 한배인 짝드름으로 가면서 점점 가락이 빨라 지는데, 현재 필봉풍물굿에서는 17장단으로 정형화되어 가락을 치고 있다. 그렇지만 양순용은 17장단으로 정형화된 형태가 아니라 굿 판의 상황에 따라 16장단보다 더 길게도 하고 짧게도 치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상쇠가 가락을 늘려 치는 경우에도 다른 꽹과리 잽이들은 16박의 정형화된 가락을 쳐야만 한다.
가진영산 장고 가락을 보면, 현행 필봉굿을 치는 사람들은 꽹과리 가락에 맞추어 가락이 정형화되어 있지만 본래는 그렇지 않았다. 장고 가락은 꽹과리 가락에 적절하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범위에서 장고 잽이의 흥에 따라 가락의 변이를 주어 가면서 치는 것이다. 연구자가 장고를 전수하던 80년대만 하여도 가진영산 장고 가락은 누구에게 배워서 치는 것이 아니라 꽹과리 치는 것을 보며 장고 잽이가 즉흥적으로 대응하여 쳤었다. 그러나 최근 젊은이들과 학생들이 풍물굿을 배우는 과정에서 다른 가락을 배우듯이 영산 가락도 배워는 과정에서 가락을 외워 치게 되면서 배운대로 장고 가락을 치다 보니 어느덧 가진영산 장고 가락이 현재와 같이 정형화된 틀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풍물굿이 학습을 통해 전수되다 보니 즉흥성이 강한 가락이 점점 정형화 되어가는 현상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앞으로는 이러한 현상이 더욱 늘어날 것이며, 가락은 고정된 틀 속에서 연행될 것이라 여겨 진다.
<가진영산>
꽹과리
갱 |
개 |
갱 |
갱 |
갯 |
|||||||
개 |
갱 |
도리 |
깽 |
갱 |
갯 |
||||||
갠 |
지 |
갠 |
지 |
갱 |
개 |
주 |
깨 |
||||
갠 |
지 |
갠 |
지 |
갱 |
개 |
주 |
깨 |
||||
갱 |
개 |
주 |
깨 |
지 |
갱 |
개 |
주 |
깨 |
|||
갱 |
개 |
주 |
깨 |
지 |
갱 |
개 |
주 |
깨 |
|||
개 |
갱 |
도리 |
깽 |
갱 |
개 |
주 |
깨 |
||||
개 |
갱 |
도리 |
깽 |
갱 |
개 |
주 |
깨 |
||||
뚝 |
뚝 |
뚝 |
깽 |
||||||||
뚝 |
뚝 |
뚝 |
깽 |
||||||||
도리 |
깽 |
도리 |
깽 |
깽 |
|||||||
도리 |
깽 |
도리 |
깽 |
깽 |
|||||||
뚝 |
깽 |
||||||||||
뚝 |
깽 |
||||||||||
개 |
주 |
깨 |
개 |
주 |
깨 |
||||||
개 |
주 |
깬 |
지 |
갱 |
개 |
주 |
깨 |
||||
개 |
갠 |
지 |
깽 |
깨 |
도리 |
깽 |
깽 |
장 고
덩 |
더 |
덩 |
덩 |
덩 |
|||||||
더 |
덩 |
더 |
덩 |
덩 |
덩 |
||||||
덩 |
기 |
덩 |
기 |
덩 |
구 |
궁 |
따 |
||||
덩 |
기 |
덩 |
기 |
덩 |
구 |
궁 |
따 |
||||
덩 |
구 |
궁 |
따 |
구 |
덩 |
구 |
궁 |
따 |
|||
덩 |
구 |
궁 |
따 |
구 |
덩 |
구 |
궁 |
따 |
|||
더 |
덩 |
궁 |
따 |
구 |
덩 |
구 |
궁 |
따 |
|||
더 |
덩 |
궁 |
따 |
구 |
덩 |
구 |
궁 |
따 |
|||
덩 |
구 |
궁 |
따 |
구 |
덩 |
구 |
궁 |
따 |
|||
덩 |
구 |
궁 |
따 |
구 |
덩 |
구 |
궁 |
따 |
|||
더 |
덩 |
궁 |
따 |
구 |
덩 |
구 |
궁 |
따 |
|||
더 |
덩 |
궁 |
따 |
구 |
덩 |
구 |
궁 |
따 |
|||
덩 |
구 |
궁 |
따 |
구 |
덩 |
구 |
궁 |
따 |
|||
덩 |
구 |
궁 |
따 |
구 |
덩 |
구 |
궁 |
따 |
|||
덩 |
구 |
궁 |
따 |
덩 |
구 |
궁 |
따 |
||||
덩 |
구 |
궁 |
따 |
구 |
덩 |
구 |
궁 |
따 |
|||
더 |
덩 |
기 |
덩 |
따 |
궁 |
따 |
궁 |
< 다드래기영산>
꽹과리
개 |
주 |
깬 |
개 |
주 |
깨 |
||||||
개 |
주 |
깬 |
지 |
깽 |
개 |
주 |
깨 |
||||
개 |
갠 |
지 |
갱 |
개 |
도리 |
깽 |
깽 |
장 고
덩 |
구 |
궁 |
따 |
덩 |
구 |
궁 |
따 |
||||
덩 |
구 |
궁 |
따 |
구 |
덩 |
구 |
궁 |
따 |
|||
더 |
덩 |
덩 |
따 |
궁 |
따 |
따 |
가진영산은 꽹과리 잽이의 재량에 따라 가락의 변이가 가능하다. 하지만 시작과 끝은 변이를 주어서는 안 된다, 첫 번째 장단은 원박으로 쳐야하며 변이를 주어서는 안되고, 마지막 장단도 다른 꽹과리 잽이에게 넘겨 주는 장단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곳에 변이를 주게 되면 다음에 받는 사람이 어디가 끝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처음과 마지막 15, 16, 17번째 장단에서는 변이를 주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변이를 주는 방법은 같은 한 장단이나 여러장단을 새로운 가락을 추가하는 경우, 기존의 장단을 반복하는 경우, 기존의 장단을 생략하는 경우 등 3가지 경우가 있다.
또 한가지 가진영산의 순서를 보자면 어름굿→가진영산→다드래기영산→다드래기영산휘모리→짝드름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지막 絶頂에 오르는 부분인 짝드름이 맺는 부분에 해당하는데 이렇게 짝드름으로 절정에까지 끌어 올리는 것이다. 판굿 전체에서도 영산굿이 맺는 굿이고, 가진영산굿에서도 맺는 가락에 해당하는 짝드름으로 끝내는데, 이 곳이 풍물굿의 가장 화려하고 분위기가 달아 올라 있는 곳이다. 원래는 여기에서 가진영산을 끝내야 하지만 양순용은 여기에서 끝내지 않고 이음새 가락으로서 반풍류 가락으로 넘어가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었다. 이렇게 휘모리 다음에 반풍류로 이어지는 굿은 미지기가 끝나고 진(陣)을 풀어 나올 때에 이렇게 가락을 이어가는데 가진영산에서 이러한 구조를 사용하여 판을 이끌어 가는 것이다.
짝드름에서 끝내는 것이 가진영산의 마무리이지만 반풍류로 넘어가는 것은 결국 분위기를 풀어 주는 것으로써, 한없이 올라간 흥을 여기에서 마친다면 풍물굿의 흥은 주체할 수 없는 곳으로 치달아 다음에 이어지는 굿에 상당한 부담이 생기게 된다. 하지만 다시 반풍류로 굿 판의 열기를 풀어 주고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곧 가진영산 뒤에 이어지는 반풍류의 역할인 것이다.
2. 연행상황에 따른 판의 역동성
1) 구경꾼이 중심이 되는 풍물굿
풍물굿의 구성 요소 중에서 구경꾼이 풍물굿 속에 어떻게 참여하며 그들이 어떻게 풍물굿에 영향을 미치는가를 분석 하고자 한다. 여기에서는 당산제나 마당밟이보다는 놀이판이 주를 이루는 판굿을 중심으로 살펴보려고 한다. 마당밟이에서도 구경꾼이 참여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요즘에는 자주 열리지 않고 열린다고 해도 지역에 따라, 상쇠에 따라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현재에는 마당밟이를 할 수 있는 상황이 너무 많이 변이하여 버렸다. 그러므로 마당밟이는 다음 기회에 다루기로 하겠다.
필봉에서 마을 사람들을 위하여 풍물굿이 펼쳐지는 것은 이제 사라지고 말았다.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이곳 저곳 불려 다니며 일년에 20여 차례씩 풍물굿을 열고, 자체적으로 풍물굿을 준비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경우 마을 사람 그 누구도 자신을 위한 우리들의 풍물굿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풍물굿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그들을 즐겁게 하기 위하여 공연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요즘 필봉풍물굿의 실정이다. 이제는 풍물굿이 다른 사람들에게 볼거리로써 공연화되어 버린 것이다. 그렇지만 본래 풍물굿은 공연 중심이 아니고, 직접 참여해서 뛰고 춤 추고 땀흘리며 고함을 지르는 것임을 필봉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현재에는 여러 상황들이 변이하여 과거의 풍물굿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그렇지만 풍물굿이 다른 공연물과 변별력을 갖는 것 중의 하나가 아직도 구경꾼이 참여할 수 있는 여백이 많이 있다는 것이다.
풍물굿을 벌이는 주체가 누구이며, 현장이 어디이며, 어떠한 구경꾼이냐에
따라 풍물굿의 분위기가 다르게 나타난다. 자료로 제시하고 있는 풍물굿은 필봉마을
사람과 젊은 연행자들이 굿판을 한께 기획하여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벌이는
풍물굿이였다. 이러한 풍물굿은 과거의 전통을 가장 잘 반영하고 있으며 구경꾼과
치배의 교감이 잘 이루어진 풍물굿을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가) 1991년 2월 정월 대보름굿
장소 : 남원군 보절면 금다리 호동마을
호동마을 사람들은 풍물굿을 대단히 좋아했다. 그래서 양순용을 1984년 이 마을로 이사하게 한 후 양순용에게 소작할 수 있는 논과 밭을 주고 양순용으로부터 풍물굿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마을 사람들이 풍물굿에 관심을 보이고, 호동마을로 여름 방학과 겨울 방학 기간에 풍물굿을 배우려고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정월 대보름굿을 벌이기로 결정했다. 마을 사람들 경비는 양순용과 그에게 풍물굿을 배웠던 제자들이 맡고 마을 사람들은 돼지 한 마리와 음식을 마련 하는 등 직접 풍물굿을 준비하는 형태로 정월 대보름굿이 열리게 되었다.
오후 3시에 당산굿을 시작으로 5가구의 지신밟기가 6시에 끝나고
6시 30분부터 판굿에 들어가 새벽 1시에 끝났다. 풍물굿에 참여한 치배 인원은 43명이고
구경꾼은 500여명 정도였다.
나) 1996년 2월 17일 정월 대보름굿
장소 : 남원시 일대 당산에서 당산제, 광한루 내에서 지신밟기,
광한루 앞 고수부지에서 판굿
양순용이 풍물굿 전수를 위하여 94년 보절면에서 남원 시내와 가까운 금지면 낙동마을로 옮겨오면서 전수를 받으러 오는 사람들이 일년에 이천 여명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양순용은 95년 여름 타계하고 그의 제자들이 양순용의 뒤를 이어 전수를 계속하게 되면서, 이제는 보름굿을 남원시와 공동으로 광한루에서 지신밟기를 하고 판굿은 광한루 앞 고수부지에서 열기로 하였다. 모든 경비는 남원시에서 보조하고 풍물패 구성과 준비는 전수관 측에서 하기로 하고 대보름굿이 열리게 되었다. 오전 10시에 치배들이 모여 남원시내 세 곳의 당산굿을 치고 12시 30분에 광한루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은 후에 3시에 광한루 안에 있는 월매집에서 지신밟기를 하였다. 판굿은 6시에 시작하여 밤 11시에 판굿이 모두 끝났다. 상쇠는 양진성이었으며 치배 수는 45명이었고 판굿의 구경꾼은 시간에 따라 유동적이기는 하나 8시에서 9시 사이의 인원은 1000여명 정도였다.
호동마을의 정월 대보름 굿은 주체자의 의도에 의하여 행해지는 풍물굿이지만 그래도 과거에 풍물굿이 연행되던 현장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치배 구성에서 풍물굿을 경험한 적이 있는 나이든 분들이었기 때문에 풍물굿에 대한 마을 주민들의 호응은 대단하였다. 오랫동안 풍물굿을 칠 수 있는 사람이 없어 당산제와 지신밟기를 할 수가 없었는데 이제 과거에 그들이 정월이면 행하던 풍물굿을 연다고 하니 마을 사람들은 대단히 기뻐하였다. 며칠 전부터 마을 사람들이 총동원되어 남자들은 복장과 굿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준비하고 아주머니들은 음식 준비에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풍물굿 시작은 오후 3시에 마을 앞에 있는 당산굿부터 시작하여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걸립을 하였는데 마을 사람들은 모두들 자기 집에 걸립을 와서 지신밟기를 원했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시간이 넉넉하지 않아 다섯 집만 지신밟기를 하였다. 이때 한 집에서 쌀과 현금이 10만원에서 50만원 정도의 걸립비가 나왔다. 이러한 돈은 상당히 많은 액수인데 모두들 즐거운 마음으로 선뜻 내놓는 것이었다. 걸립이 오후 7시 정도에 끝나고 잠시 휴식한 후에 8시경에 판굿이 시작되어 새벽 1시경에 판굿이 모두 끝나고 1시 이후에는 아직도 신명이 남아 있는 사람들이 모닥불 근처에 모여 밤새 악기를 치거나 노래를 부르며 놀았다. 이것은 과거에 행해지던 마을의 풍물굿과는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있겠지만 그래도 그날 굿판에 모인 구경꾼과 치배들이 풍물굿의 면모를 한껏 느낄 수 있었던 굿판이었다.
여기에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 필봉풍물굿의 흐름에 대하여 어느 정도 알고 있거나 치배들에 대하여도 잘 알고 있는 사람들로서 이미 풍물 굿판에 오기 전부터 즐거운 놀이판을 준비하고 있었다. 따라서 굿판이 열리자 굿판의 분위기는 한껏 달아올라 있었고 굿판이 진행됨에 따라 구경꾼들 속에서 "잘한다", "좋지", "좋다", "누구 잘한다" 또는 "얼씨구 좋다"라고 하는 함성이 여기저기에서 들려 왔다. 말 그대로 대동굿이 이루어진 셈이다. 그러다 보니 상쇠나 기타 치배들은 더욱 신명이 달아올라 구경꾼에게 흥을 보내고 구경꾼은 치배들에게 흥을 실어 주어 구경꾼과 치배는 한 덩어리가 되는 것이다. 풍물굿이라는 것은 시작은 있지만 끝나는 것은 언제 끝날지 기약은 없다. 지신밟기에서 어느 집에 들어가 굿판이 재미있고 주인의 호응도가 좋으면 몇 시간이고 굿을 치는 경우도 있지만, 재미가 없고 주인의 호응도가 떨어지면 짧게 끝내고 그 집을 나오게 된다. 구경꾼과 치배가 서로 교감하고 있는 풍물굿은 연행 종목도 훨씬 다양하게 펼쳐지며 또한 굿판에서 우연히 벌어지는 돌출 상황에 의하여 굿이 계속 길어지기도 할 수 있는 것이다. 풍물굿이 처음 시작할 때 어느 정도 줄거리를 가지고 들어가지만 막상 굿판에 들어가면 흥에 취한 구경꾼이나 치배들이 갑자기 예정에 없는 행동을 하거나 구경꾼 중에서 신명풀이를 잘하는 사람이 나타나 돌출 상황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풍물굿은 판에서 벌어지는 모든 행위들을 수용하고 기존의 풍물굿 모습도 과감히 떨쳐 버리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강강술래에서와 마찬가지로 연행목록은 무한히 확대되는 것이다.
1994년 5월 23일 전주의 다가 공원에서는 굿패 "겐지갱"이라는
단체에서 보름굿을 치는데 굿판이 무르익어 군영놀이를 하고 있었다. 장고 개인놀이와
북 개인놀이 그리고 소고춤이 끝나자 잡색 중에서 양반을 하던 박양규가 갑자기 "징도
개인 놀이를 할 수 있다"고 하며 징을 들고 판 가운데에 들어왔다. 원래 박양규라는
사람은 풍물굿을 매우 좋아하며 풍물굿이 열리면 멋들어진 춤을 잘 추던 사람이라
모두 그가 징을 치는 것에는 암묵적 동의가 이루어졌다. 그런데 박양규는 징을 들고
악기 소리에 맞추어 즉흥적으로 징춤을 추는데 참으로 멋진 징춤을 약7분 가량을
추었다. 기존의 판에서는 징 개인 놀이는 없었던 것이 그날 즉흥적으로 등장함으로써
과거에 연행되었던 풍물굿 판보다 훨씬 흥겨운 굿이 될 수 있었으며 함께 참여한
모든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는 멋진 장면이 연출되었다. 이와 같이 풍물굿은
정형화된 것만을 연행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의 전개에 따라 새로운 연행 형태가 새롭게
추가되고 소멸해 가는 것이다.
2) 치배가 중심이 되는 공연 풍물굿
풍물굿이 점차 공연장에서 이루어지면서 이제는 구경꾼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는 그만큼 줄어들고 있는 반면 치배들의 역할은 더욱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러한 결과로서 요즘 풍물잽이를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가장 중요시하는 부분이 기능이다. 현재의 구경꾼들은 소극적인 구경꾼이다. 흥과 신명이 난다고 하여도 추임새를 넣지 못하고, 어깨가 들썩거려도 춤을 추지 못하는 구경꾼이 되고 마는 것이다.
앞으로 풍물굿의 공연화 추세는 더욱 가속화되어 갈 것이라 여겨진다. 하지만 과거 풍물굿의 모습은 공연이라기 보다는 다함께 어우러져 즐기는 풍물굿이었던 것이다. 그러면 현재 자주 연행되는 필봉풍물굿의 형태를 살펴보자.
가) 1994년 5월 서울놀이마당공연(공연 시간 1시간)
주최 : 문화재보호재단
굿내는 가락 →느린풍류→인사굿→채굿→호허굿→풍류굿→미지기→삼방울진→군영놀이(잡색놀이,
고깔소고, 채상소고, 설장고)→인사굿→안내방송→뒷풀이
나) 1995년 9월 예술의 전당 공연(공연 시간 1시간)
주최 : 예술의 전당
굿내는 가락→느린풍류→인사굿→채굿→호허굿→풍류굿→미지기→삼방울진→재능기영산→군영놀이(채상소고,
설장고)→인사굿→뒷풀이
다) 1995년 8월 광주비엔날레 공연 (공연시간 1시간)
주최 : 광주비엔날레
굿머리가락→질굿→인사굿→채굿→호허굿→풍류굿→미지기→방울진→군영놀이(설장고)→인사굿
라) 1996년 9월 22일 서울놀이마당 공연(공연시간 1시간)
주최 : 문화재보호재단
굿내는 가락→느린풍류→인사굿→채굿→호허굿→풍류굿→미지기→방울진→→군영놀이(설장고)→노래굿→인사굿→안내방송→뒷풀이
앞에서 보는 바와 같이 풍물굿의 굿 거리가 모두 유사함을 볼 수 있는데 요즘 행하여지고 있는 풍물굿은 구경꾼과 치배가 즉석에서 만들어 가는 풍물굿이 아닌 공연이기 때문에 풍물굿 속에서 함께 어우러지기 힘들다. 대부분 공연 요청자의 요구에 따라 치배의 흥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이 그들이 가지고 있는 기예를 정해진 시간 내에 보여 주어야만 하는 형편이다. 이렇게 주어진 시간 속에 풍물굿을 하는 것은 사전에 치밀하게 기획된 풍물굿으로서 구경꾼 또한 풍물굿에 빠져들어 자신의 흥과 신명을 느껴 보려 하는 것이 아니라, 치배들이 하는 것을 보고 즐거워하는 모습 속에서 자신은 대리 만족을 느끼는 스포츠의 선수와 관중, 오페라 공연의 공연자와 관객과 같은 역할로 그 형태가 바뀌어졌다. 치배는 뛰어난 기량을 바탕으로 관객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 때에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놀이마당 풍물굿은 일정한 시간 안에 끝내야만 하는 정해진 풍물굿이다. 굿을 치기 전에 풍물굿패 또한 치밀하게 계획을 짜서 굿판에 임해야 한다. 그리고 어떤 굿 거리를 쳐야 화려하고 관객들에게 호응을 얻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굿 거리들을 준비해야 한다. 이렇게 계획된 굿은 구경꾼들이 끼여들 수 있는 여유가 주어지지 않는다. 굿판에 구경꾼이 끼여드는 것은 공연을 지체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하고 치배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거나 굿 거리들이 빠르게 전환하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요즘의 풍물굿에서 구경꾼이 끼여드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오로지 주어진 시간에 굿패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관중들에게 보여주고, 시간이 되면 무대에서 退場해야만 하는 풍물굿으로 변모하고 있으며 함께 하는 풍물굿에서 단지 보는 풍물굿으로 변화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무대에서 계획한 대로 굿을 하지 못하면 낙심해 하고 굿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첫째, 풍물굿에 대한 풍부한 지식이 부족하거나 현장을 직접 본적이 적어 풍물굿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둘째, 서구의 공연 문화 영향으로 공연장에서 무대 위에 뛰어드는 것은 구경꾼의 예의가 아니며 공연자를 방해할 수도 있다는 의식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시종일관 치배들의 모습만 지켜보고 박수 정도로 참여하는 것이다. 셋째, 공연자와 구경꾼의 생활 모습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공동체적 연대감이 결여되고 구경꾼들끼리도 문화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공연 위주의 풍물굿은 구경꾼들이 판에 들어와 춤을 출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구경꾼들은 치배들에게 뭔가 볼거리를 요구하게 된다. 그러면서 치배들은 항상 화려한 기예를 바탕으로 한 볼거리를 제공해야만 한다는 관념이 생기게 되었다. 이제는 일상적인 삶 속에서 서로 공유하고 있는 풍물굿이 아니다.
전통적인 풍물굿에서는 틀렸다고 하는 개념보다는 풍물굿이 벌어지고 있는 동안 생길 수 있는 모든 것들이 굿이요, 판이라고 생각한다. 구경꾼 중에서 술이 너무 취하여 굿판을 아무렇게나 돌아다니고 치배들에게 시비를 건다 하여도 이 사람을 말리는 것 자체가 풍물굿이며, 판에서 싸우는 것 또한 풍물굿이다. 풍물굿을 벌이는 동안 생기는 모든 것들이 풍물굿 속에 녹아들 수 있으며 바로 그것 자체가 풍물굿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였던 것이다.
Ⅵ. 풍물굿 가락의 변화 양상
여기에서는 풍물굿이 시간의 흐름을 어떻게 반영하고 있으며, 당대 문화의 영향을 어떻게 받고 있는지를 검토하고자 한다. 그리고 현재 풍물굿 가락의 변이 양상을 살펴보고, 앞으로 어떠한 변이를 겪게 될 것인가를 조명해 보고자 한다. 첫째, 풍물굿 가락 중에서 휘모리 가락을 통하여 리듬 패턴의 변이 양상을 분석한다. 둘째, 호허굿 가락을 통하여 리듬 패턴의 변이 양상을 분석해보며 셋째, 전통음악의 리듬을 서양음악의 오선보로 기록하여 초·중·고등학교 음악 교육에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 전통음악의 리듬 패턴 변이에 어떠한 양상을 나타내는지 검토하려 한다.
문화는 지역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지역 문화란 지역의 사회적 상황과 문화생태학(文化生態學的) 측면을 반영하고, 행동의 근간을 이루며 표출 방식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울음도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인식하고 주목하면 지역적 특징을 발견하게 된다. 전라도 사람이 곡(哭)을 할 때에는 육자배기 토리로 하고, 경상도 사람이 곡을 할 때에는 메나리 토리로 하며, 경기 충청도 사람은 경토리로 하며, 서도 사람이 哭을 할 때에는 서도 토리로 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그 지역 특유의 토리가 울음 속에 표출되어 나타나는 지역적 특수성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이러한 지역적 특수성은 점점 약해지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소리는 울음 속에 그 지역 소리의 특징을 담고
있는데 연구자의 관찰에 의하면 95년 8월 전주 예수병원에서 갑자기 교통사고로 자식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60대 아주머니가 울고 있는데 그 아주머니는 분명히
육자배기 토리로 울고 있었다. 그리고 메나리조 울음은 연구자가 안동에 생활하면서
몇 군데 상가집을 방문할 기회가 있어 관찰하였는데, 전라도 지역보다는 훨씬 적은
숫자이기는 하여도 나이 드신 할머니에게서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젊은이들의
울음을 들어보니 울지 못하고 헉헉대기만 할 뿐 토리는 찾기 어려웠다. 그 이유는
요즘 젊은이들이 학교에서 서양음악의 선율과 리듬을 익히고 대중매체를 통하여 대중가요를
듣고 부르면서, 지역의 민요 선율은 접하지 못했거나 접해 보았다 하여도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듯 지역적 특징을 지닌 다양한 소리들이 이제는 그 지역에서도
사라지고 있다. 인간의 원초적 소리인 울음에서 그 지역의 특징적인 토리를 전혀
찾아볼 수 없게 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1. 휘모리 가락의 변화
풍물굿의 리듬은 대부분이 3박자의 리듬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약간의 5박자 리듬이 나타나고, 2분박
<오방진>
갱 |
갠 |
지 |
갠 |
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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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
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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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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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
갱 |
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빠르기의 정도 차이는 있지만 결국 대부분이 3분박의 구조를 갖고 있다. 중중모리 장단형과 자진모리 장단형, 그리고 휘모리 장단형 등은 모두가 3분박 계통이다. 그리고 엇모리 장단형은 5분박 계통의 10박 장단이며, 혼합형은 5분박 계통과 3분박 계통의 복합 장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3분박 계통의 가락 : 중중모리 장단형, 자진모리 장단형, 휘모리 장단형 등
5분박 계통의 가락 : 엇모리 장단형
3의 의미를 강재철은 완성을 위한 수로 다(多), 구(久), 최대(最大), 종극(終極), 한계(限界) 등의 의미를 담고 있는 수라고 말하고 있다. 3은 우리 문화 현상들을 지배하고 있는 숫자로써, 전통음악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12율명을 만들어 내는 삼분손익법(三分損益法)에서 우리 음의 체계가 3이라는 숫자를 근본으로 삼고 있으며, 하나의 박자 속에 내포하고 있는 의미도 2박이 아닌 3박을 기저에 깔고 있고, 리듬에서도 3박자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이제는 3박자 리듬 패턴이 2박자로의 변화하고 있다.
위에서 보는 것처럼 우리 민족의 정서에서 3이라는 숫자가 중요한 의미를 지니듯이, 풍물굿 속에서도 3이라는 숫자를 기저에 깔고 있다. 가락의 붙임새에 있어서 주류를 이루는 3박자는 우리의 정서에 잘 맞아 떨어지며 과거의 사람들은 3박자 리듬에 매우 익숙했음을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렇듯이 3분박이 주종을 이루던 풍물굿 가락이 현대에 와서는
바뀌고 있다. 휘모리 장단은 원래 3분박 4개로 이루어진 12박의 리듬인데 3분박을
2분박으로 바꾸어 2분박 4개 8박으로 연주하다 보니 가락의 느낌이 완전히 달라져
버리는 것이다. 3분박이 2분박으로 바뀌면 그 차이는 낮이 밤으로 바뀌는 것 만큼이나
분위기가 다르다. 하지만 서양음악 리듬에 길들여진 사람은 그러한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그들은 3분박으로 교정을 해주어도 여전히 2분박으로 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이것은 결국 2분박과 3분박의 개념이 설정되어 있지 않다고 볼 수 있다.
<기본형 가락>
덩 덩 |
기 |
덩 |
기 |
궁 |
기닥 |
궁 |
12over8 |
┡ ┡ ┠ ┤ ┡
<변화형 가락>
덩 |
그 |
덩 |
그 |
궁 |
기닥 |
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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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전통적으로 동양 삼국 중 중국과 일본은 2분박계통의 음악이 주를
이루고, 우리 나라는 3분박 계통의 음악이 주를 이루고 있다. 민요에서도 보면 3분박
계통이며 가끔씩 5분박 계통의 음악이 등장한다. 그러나 2분박 계통의 음악은 거의
볼 수 없을 뿐더러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앞에서 본 풍물굿의 경우와 반대로 2분박
계통의 노래도 3분박으로 바꾸어 부르는 것이다. 서양의 찬송가를 가사만 바꾸어
부르기 때문에 찬송가는 대부분이 2분박 계통의 음악이 주종을 이루는데,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3분박에 익숙해 있어 자꾸만 3분박으로 바꾸어 부른다. 나이든 어른들의
경우에는 3분박의 리듬에 익숙해져 있으며 주로 3분박을 사용해 왔기 때문에 모든
리듬을 3분박으로 인식하고 있고 3분박 리듬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 젊은이들은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난다. 유아 시절부터 3분박 리듬보다는 2분박 리듬을 유행가나
서양음악에 의하여 길들여지면서 3분박 리듬은 그리 익숙하지 못하다. 그러므로 대부분이
3분박 리듬인 민요나 풍물굿 가락을 배우고 익히면서도 자꾸만 2분박의 리듬으로
바꾸어 부르는 것이다.
2. 호허굿 가락의 변화
호허굿은 진다드래기호허굿으로 시작하여 싸잽이로 끝나는데,
풍물굿에서 전개 과정이 가장 다채롭고 음악적 짜임새가 잘 이루어진 굿이다. 그래서
어른들은 호허굿이 가장 어렵다고 말하기도 한다. 과거의 잽이들은 연행현장에서
가락을 전수한다. 호허굿이나 오채질굿과 같이 한 가락이 매우 긴 것은 연행현장에서
익히기에는 벅찬 가락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채질굿과 호허굿은 어렵게 여겨졌다.
그렇지만 현재의 풍물굿 가락은 대부분이 학습을 통하여 익히기 때문에 이러한 가락들도
어렵지 않게 익힐 수 있는 것이다.
호허굿 순서 : 진다드래기호허굿→어름굿→호허굿→돌호허굿(호허굿되드르미)→자진호허굿→중삼채→이음새→휘모리(싸잽이)
'진다드래기호허굿'은 다양한 진풀이를 하면서 치는 가락이기 때문에 가락은 일명 '진풀이 가락' 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호허굿되드르미'는 돌면서 하기 때문에 일명 '돌호허굿'이라고 부른다.
호허굿 본 가락은 엇모리 6장단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악보는 아래와
같다.
<호허굿 본가락>
꽹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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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 |
호 |
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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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 |
갱 |
호 |
허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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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 |
갱 |
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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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 |
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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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 |
갠 |
지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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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
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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갠 |
지 |
갠 |
지 |
갱 |
갠 |
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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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갱 |
지갱 |
갱 |
개 |
장 고
덩 |
덩 |
호 |
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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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 |
덩 |
호 |
허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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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 |
덩 |
따 |
궁 |
덩 |
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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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 |
덩 |
기 |
덩 |
덩 |
따 |
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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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 |
기 |
덩 |
기 |
덩 |
덩 |
기 |
덩 |
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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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덩 |
더덩 |
덩 |
덩 |
호허굿의 원형은 10박 1장단으로 이루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필봉풍물굿의 호허굿은 3, 4번째 장단이 10박으로 마무리 짓지 못하고 있다. 그리하여 김현숙은 호허굿에서 이 부분을 지적하며 수정 가락을 제시한 바 있다. 하지만 연구자가 양순용에게 문의한 결과에 따르면 3번째 장단의 2박이 추가되었다는 증언을 들었다 "원래 필봉에서는 2박을 빼고 했는데 주위 마을(덕치면 회문리)에서 가락이 들어가 양순용도 언젠가부터 그렇게 따라 치게 되었다"는 말을 통해 원래 호허굿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양순용의 증언처럼 2박이 빠지면 호허굿은 10박 한 장단의 구성이 되는 것이다.
과거의 치배들은 호허굿 본 가락을 매우 어려운 가락으로 인식하고 있으며,이 가락을 칠 수 있으면 굿판에 대한 것은 거의 알고 있는 것으로 생각할 정도로 어려운 가락으로 치부하였다. 그래서 호허굿을 칠 수 있는 연행력이 뛰어난 사람이다. 호허굿 한 가락이 매우 길고 동형반복의 장단 형태가 아닌 복합장단으로 이루어져 있고, 한 가락이 복잡하며 짤룩베기 가락 있기 때문이다.
가락의 구조를 보면 10박의 엇모리 장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내부는 2+3+2+3 / 2+3+2+3 / 2+3+2+3 / 2+3+2+3 / 2+3+2+3 / 3+2+2+3박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에서 주목할 곳은 6번째 장단이다. 다른 곳에서는 2+3+2+3박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에 비하여 6번째 장단에서는 3+2+2+3박으로 이루어져 있다. 앞에서 2+3+2+3박의 진행을 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도 앞부분이 3박보다 2박 진행을 유지하려고 한다. 그래서 초보자들은 이 곳을 2+2박으로 진행하는 경우를 흔하게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양순용은 이곳에서 3+2박의 진행을 하고 있으며 다른 사람들이 2+2의 진행을 보일 때 이 분을 "축 느러지게", "갑자기 허공에 빠지듯이"라는 말을 종종 하였다. 정확한 지적인 것이다. 2+3+2+3박의 진행에서 3+2+2+3박의 진행을 하고 있으니 당연히 갑자기 늘어지는 느낌을 받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는 앞 장단에서와 같은 느낌으로 진행하다 보면 한 박이 어디로 사라져 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6번째 장단에서 뒷부분의 2+3박의 진행이 2+2 박의 진행으로 바뀌어 버리게 되고 이러한 영향으로 첫박의 2+3+2+3박의 진행이 2+2+2+2박의 진행으로 바뀌어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장단은 학습을 통하여 배운 것을 외워서 치기 때문에 변하지 않고 5분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은 호허굿 가락은 첫 번째 장단 2분박, 두 번째 장단 2분박, 세 번째 장단 5분박, 네 번째 장단 5분박, 다섯 번째 장단 5분박, 여섯 번째 장단 2분박의 형태가 되어 버렸던 것이다. 현재 필봉풍물굿을 치는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2분박과 5분박의 혼합형의 가락을 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이리풍물굿을 비롯한 우도풍물굿의 경우에도 호허굿을 혼합형의 가락을 치고 있는 경우가 발견된다. 하지만 이러한 형태의 가락은 잘못 된 것으로 시정되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가락이 전수 과정에서 변화를 겪는 것은 선배가 정확하게
연행한다고 하여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연행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의적 해석은 쉽게 바로 잡아지지 않는다. 본인은 그것이 맞는 것이라고
믿고 있기에 다른 연행자의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한번 잘못된
가락은 다시 전수되어 많은 시간이 흐르게 되면 이제는 잘못된 채 굳어지고 마는
것이다.
3. 엇모리 장단형의 변화
김현숙의 논문에서 노래굿은 엇모리 장단의 5박으로 채록되어 있다. 현재는 굿거리 장단으로 부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필봉풍물굿 뿐만아니라 진주삼천포 풍물굿과 사물놀이에서도 '월산가'라고 하여 같은 노래를 부르는데 굿거리 장단으로 부른다. 이러한 현상은 2+3+2+3 / 2+3+2+3의 리듬형이 3+3+3+3 / 3+3+3+3의 형태로 바뀌어 버리면서 생긴 것이다. 5박 계통의 리듬은 사라져 가고 있다 대중가수 조용필이 부르던 강원도 아리랑은 원래 엇모리의 5박 계통의 엇모리 장단의 노래를 조용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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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으로 편곡하여 2분박 계통의 부른 것인데, 요즘은 강원도 아리랑을
2분박으로 부르고 있다. 이러한 예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보인다. 그리고 초,
중, 고등학교 음악 교과서에 실려 있는 민요들을 보면 많은 수의 민요가 3분박에서
2분박으로 바뀌어 채보되어 있거나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민요의 본래 가지는 구조는
파괴되어 있다. 이렇게 잘못 채보되어 있는 민요들을 서양 음악을 배운 음악 선생님들이
가르치다 보니 우리 민요 대부분이 3박자에서 2박자로 바뀌어 버리는 것이다. 심지어는
이렇게 서양음악 하는 사람에 의해 잘못 채보된 악보를 다시 국악 하는 사람이 정간보로
옮겨 이제는 완전히 국적불명의 민요를 부르는 경우를 우리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고등학교 음악 교과서 {현대음악}에 수록된 민요 악보 중 민요와 현지에서
불려지고 있는 민요를 비교하여 보면 음악의 흐름을 볼 수 있다.
<자료1> 강원도 아리랑
<자료2> 양산도
양산도의 경우 세마치 장단으로써 3분박 계통의 음악이 오선보를 사용하여 악보를 기록함으로써 박자는
3over4 |
로 표기하여 1박이 가지는 의미는 2분박으로 변해 버렸고, 1박이
3분박으로 이루어진 것은 셋잇단음표(┛)로
기록하여 양산도 노래가 3분박 계통에서 2분박 계통의 음악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그러다 보니 양산도를 제대로 부르는 사람은 교과서의 악보대로 부르지 않지만 교과서에
나온 대로 배운 사람은 기존의 양산도와는 다른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다른 노래란 3박계통의 노래가 2박계통의 노래로 바뀌어진 것을 말한다. 이렇듯 앞으로
시간이 경과하면 이러한 현상은 더욱 뚜렷이 나타날 것이다. <동아출판사>와
<현대음악 출판사>에 기록된 박자의 관계를 보면 3분박과 2분박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두 악보는 모두 2분박으로 3분박은 전혀 표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자료3>
<자료4>
12over8 |
과
4over4 |
그리고
3over4 |
와
9over8 |
은 서양음악 패턴에서는 비슷하게 될 수 있다. 그렇지만 전통음악의 리듬과는 완전히 다른 음악 패턴을 가진 것으로 결코 오선보의 표기법으로는 나타낼 수 없는 구조다. 그리고 서양음악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전혀 다른 리듬 리듬패턴이 이렇게 같게 나타나는 것이다.
필봉풍물굿에서 나오는 노래굿의 노래를 검토해 보면 과거에는 분명히 5박 계통의 엇모리 장단이었던 것이 요즘에 와서는 굿거리 장단으로 불려지고 있다. 진주농악, 웃다리농악, 사물놀이 등에서는 '월산가'라고 하여 굿거리로 바꾸어 부르는데, 이러한 현상은 5박자의 리듬이 서양음악에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서양음악에 익숙해 있는 현실에서 5박은 자연히 다른 박자로 대치하여 부르는 현상이 나타나며 오히려 이제는 우리의 정서가 전통적인 선율과 리듬보다는 서양의 리듬과 선율에 익숙한 세대가 되어 버린 것이다.
Ⅶ. 결론
이 연구는 필봉풍물굿을 대상으로 가락 구조를 분석하고 그 변이와 역동성을 고찰한 것이다. 연구자는 필봉풍물굿을 전수하면서 체험했던 사실들을 토대로, 가락 구조의 기본 틀을 유형 차원에서 분석하고 이러한 구조의 실현 양상과 변이 양상을 풍물굿의 음악적 국면에 따라 해명하고자 하였다. 가락의 유형과 구조 분석이 구조주의적 방법에 입각한 것이라면 연행상황에 따른 변이 양상의 고찰은 현장론적 방법에 입각한 것이며, 가락 구조의 층위별 동일성 분석은 카오스 이론에 입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풍물굿의 구조와 변이의 역동성을 분석하는 데 필봉풍물굿이 특히 유리한 것은 다른 고장의 풍물굿에 비하여 비교적 원형이 고스란히 유지되고 있을 뿐 아니라, 뛰어난 상쇠가 기능보유자로 지정되어 전통적인 굿 거리들을 온전하게 전승하여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필봉풍물굿은 전승자들에 의하여 현대적인 공연 무대에서 다양한 형태로 연행되고 있어, 그 변화 과정도 잘 드러내고 있어서 전승과 연행의 변화를 이해하는 데에도 기능적인 자료이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연구자가 필봉풍물굿 전수자로서 15년에 걸쳐서 이 풍물굿의 기능보유자인 양순용으로부터 직접 가락을 전수 받는 가운데 풍물굿 연행에 참여하는 체험을 다양하고 풍부하게 하였다는 점이다. 풍물굿의 관찰자로서가 아니라 전승자이자 연행자로서 연구하는 데에는, 연구자의 처지에서 볼 때 필봉풍물굿은 최고의 자료라고 할 수 있다.
가락 구조와 그 변이의 역동성을 해명하는 것이 연구의 주요 목적이지만, 치배들의 구성과 역할 특히 상쇠의 구실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가락의 유형과 악기의 구성도 기본적인 논의로 끌어들였다. 그 동안의 논의 결과를 집약적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풍물굿에서 치배들은 그들만의 연행법칙을 지니고 있다. 잽이들을 중심으로 본다면 상쇠는 그 판의 총 지휘자로서, 무당굿의 주무(主巫)가 전체의 굿을 총괄하는 것과 같은 구실을 담당하고 있다. 상쇠는 뛰어난 연행 능력을 필요로 하면서도 다른 치배들과 함께 굿판 주변의 상황을 잘 읽어 그때그때 굿의 짜임을 달리하고, 가락의 변이를 통해 구경꾼들과의 상호 교감을 나눌 수 있어야 하므로 풍물굿 연행을 주도하는 지휘자와 풍물패를 이끌어 가는 지도자의 역량을 함께 갖추어야 한다. 결국 상쇠의 연행력에 따라 굿판이 고정된 불변의 것이 아니라 연행현장의 상황에 따라 변화 발전하며 역사적으로 전승하는 힘을 확보하게 된다. 그러므로 상쇠의 전승 계보는 곧 풍물굿의 전승상황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필봉풍물굿의 가락은 기존의 전통음악에서 많이 사용되는 중중모리, 자진모리, 엇모리, 자진모리 엇모리 혼합형의 다섯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렇게 다섯 가지 유형의 기본틀 속에서 연행상황에 따라 다양한 변이형을 보이고 있다. 필봉풍물굿에서 가장 다양한 변이형을 보이고 있는 것은 자진모리 장단형으로 느린삼채, 된삼채, 일체, 이채, 사채, 육채, 칠채, 중삼채, 빠른겐지갱, 가진영산, 다드래기영산, 재능기영산, 자진호허굿, 반풍류, 벙어리삼채 등과 같은 15개의 변이 가락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중중모리 장단형 5개, 휘모리 장단형 5개, 엇모리 장단형 3개, 자진모리 휘모리 혼합형 1개 등의 변이형을 가지고 있다.
풍물굿의 구조는 두 가지 준거에서 분석하였다. 첫째는 음양의 구조이고 둘째는 내고 달고 맺고 푸는 구조이다. 음양의 구조로 분석해 보면 악기 재료는 물론 가락의 성격까지 음양의 대립구조로 이루어져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음양의 대립은 조화이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 공동체 성원끼리의 조화, 악기들끼리의 조화, 치배끼리의 조화, 가락의 조화 등은 풍물굿이 가지는 음양의 대립에서 비롯된 것이자 풍물굿을 전승하는 민중들의 음양적 세계관의 반영이다. 음양구조의 조화는 악기에서 '암쇠'와 '숫쇠'와 같이 꽹과리도 암수의 대립을 이루고, 가락에서는 '암가락'과 '숫가락'처럼 가락의 성격도 암수의 대립을 이룬다. 치배 구성에서는 꽹과리 징 장고 북의 순서를 취하는데 여기에는 양과 음의 대립 구조를 이룬다. 음양이든 양음이든 한결같이 이원적 대립을 통해 풍물굿의 악기와 가락이 조화를 이룬다는 점에서 동질성을 지닌다. 음양의 구조는 대척적 관계에 있는 것이지만 더불어 있어야 조화를 이루며 음악적 아름다움을 다양하게 생성해 낼 수 있는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음악적 가락을 '내고 달고 맺고 푸는 4단계 구조'로 분석하였다. '맺고 푸는 구조'는 풍물굿의 가락이 상향곡선을 그리며 올라가다가 절정에 이르러 맺어 주고 어느 정도 하강하면서 풀어 주는 전개를 체계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이 구조는, 결말을 향하여 올라가다가 절정을 고비로 하강하여 완전하게 해결을 이루고 끝을 맺는 기승전결(起承轉結)의 양상과는 다른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굳이 이 용어를 사용한다면 기승결해(起承結解)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맺고 푸는 구조가 하나의 장단 속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가락의 반복에서도 나타나고 굿 거리에서도 나타나며 풍물굿 전체에서도 나타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러한 가락 구조의 체계는 자동자기복제(自動自己複製) 방식에 의하여 계속해서 자기 모습의 복제를 거듭하는 카오스 이론의 프렉탈 현상과 같은 것이다.
맺고 푸는 가락 구조의 프렉탈 현상은 우리 풍물굿의 가락이 무질서한 혼돈 속에 있는 것 같으면서도 일정한 구조와 체계 속에서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해명하는 이론적 근거를 마련한 것이며, 풍물굿의 신명이 어디서 비롯되어 어떻게 전개되는가 하는 것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이것은 계속되는 가락의 반복에서 오는 지루함을 순간 순간 깨뜨리며 항상 새로운 가락으로 다시 전개할 수 있는 역량을 확보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굿판의 신명이 잦아들다가도 어떤 계기가 마련되면 다시 신명이 고조되기도 하고, 반대로 고조된 신명이 어느새 잦아들게 되는 것도 '내고 달고 맺고 푸는 구조'의 순환적 반복성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만일 이러한 구조가 아니라면 그때마다 연행을 끝내고나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결국 토막난 음악적 단위 여럿을 이어서 계속 연행하는 양식이 되어, 풍물굿이 하나의 판굿으로서 통일성을 확보하기 어렵게 된다.
한 장단에서 맺고 푸는 구조가 있을 뿐 아니라, 가락의 반복에서
맺고 푸는 구조, 굿 거리에서 맺고 푸는 구조, 판굿 전체에 맺고 푸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카오스 이론에 입각해서 밝혔는데, 여기서는 한 장단에서 맺고 푸는
구조를 반풍류 가락을 통하여 제시함으로써 결론적 논의의 근거로 삼는다.
<반풍류 가락>
l 내 고 (起) l 달 고 (承) l 맺 고 (結) l 푼 다 (解) l
꽹과리
개 |
갱 |
개 |
갱 |
갠 |
지갱 |
개 |
갱 |
||||
갱 |
개 |
깽 |
개 |
갠 |
지갱 |
개 |
갱 |
장 고
더 |
덩 |
더 |
덩 |
덩 |
기닥 |
궁 |
따 |
||||
덩 |
따 |
궁 |
따 |
궁 |
덩 |
기닥 |
궁 |
따 |
위의 악보를 보면 3박씩 나누어 내는 부분, 다는 부분, 맺는 부분, 푸는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1박이 강박이고 9박이 강박인데 서양음악에서는 보이지 않는 리듬 패턴이다. 그렇지만 풍물굿 가락에서는 9박에 강이 온다. 이것이 바로 맺는 곳으로 다음 10, 11, 12박은 푸는 곳에 해당한다. 꽹과리는 '지갱', 장고는 '기닥'으로 처리하여 맺는 박을 강조해 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반풍류 가락의 맺고 푸는 구조이다. 이러한 구조는 모든 가락에서 나타나고 있다.
판굿 전체에서 맺고 푸는 구조를 보면 내는 굿은 굿내는 가락, 질굿, 채굿 호허굿 등이 있고, 다는 굿에는 풍류굿, 삼방울진, 乙자진, 미지기 등이 있고, 맺는 굿에는 가진영산, 노래굿, 춤굿, 군영놀이 등이 있고, 푸는 굿에는 수박치기, 등지기굿, 도둑잽이, 탈머리굿 등이 있다. 이러한 굿 거리들은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조합되는데 기본 구조인 내는 굿, 다는 굿, 맺는 굿, 푸는 굿 등의 순서를 이룬다.
풍물굿은 상황에 따른 변화와 역동성이 대단히 강조되고 있다. 정해진 가락을 정해진 시각에 일방적으로 연행하고 그 예술적 평가를 기대하는 현대음악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상쇠와 치배들은 상황에 따라 굿판의 신명을 적절히 읽고 그때마다 융통자재하게 연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훌륭한 풍물패로 인정받는다. 자연히 가락의 변이는 다양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가락의 변이는 빠르기에 차이를 주기도 하고, '완자걸이', '엇붙임' 기법을 다양하게 사용하여 절정으로 끌어올린 다음 다시 풀어 주는 형식을 취하기도 한다. 굿 거리와 판굿의 경우에도 내는 굿 다음에 어김없이 다는 굿이 오고 다는 굿 다음에 어김없이 맺는 굿이 오는가 하면, 다는 굿 다음에 거듭해서 다는 굿이 오기도 하고 맺는 굿 다음에 거듭 맺는 굿이 오기도 한다. 그러므로 맺고 푸는 구조는 연행상황에 따른 변이의 역동성을 해명하는 중요한 준거가 될 수 있다.
풍물굿은 정형화된 구조를 토대로 상황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변이 되는 가변적인 음악 연행 물이다. 연행 차원에서 그럴 뿐 아니라 전승 차원에서도 그러하다. 전승이라는 차원에서 통시적 변화를 주목해 보면, 현재에 가까울수록 풍물굿이 쇠퇴하고 마침내 현장에서 사라지는 것 같지만, 반대로 새로운 형태의 풍물굿이 생겨나기도 한다. 소멸되고 생성되는 가운데 풍물굿의 지속되면서 또한 변화되는 것이다. 과거의 지신밟기 풍물굿에서 조왕굿, 철륭굿, 샘굿을 행하던 것이 이제는 주택 문화가 바뀌면서 아파트에서 조왕굿, 철륭굿, 샘굿보다는 싱크대굿, 가스누출방지굿과 같은 굿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문화의 변화에 따라 굿의 명칭이 달라지고 거리의 양상이 바뀌는 것은 자연스럽다. 같은 맥락에서 풍물굿의 변화를 더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늘 보고 듣는 문화 체험들은 알게 모르게 풍물굿 연행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젊은이들이 치는 풍물 가락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문화의 영향에 따른 변화를 쉽사리 발견할 수 있다. 우리 풍물굿의 기본 리듬은 3분박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 민요의 가락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학교에서 배우고 가르치는 서양음악의 리듬은 2분박에 입각해 있다. 대중음악도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다. 학교에서 의도적으로 가르치는 음악교육과 학생들의 음악생활을 좌우하는 대중음악의 영향으로 3박자의 기본 가락이 무너지고 있다.
학교에서 음악교육을 받은 사람은 전통음악의 3분박 리듬보다는 서양음악의 2박자 리듬에 익숙해져 있다. 물론 대중음악의 영향은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요즘 젊은이들은 풍물굿을 익히면서도 서양음악의 기법을 따라 3분박을 2분박으로 바꾸어 치기 예사이고, 5박자인 엇모리는 다시 3박자로 바꿔치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특히 오선보로 풍물굿 가락을 채보 하는 경우에 이론적으로도 이러한 변화를 부추길 가능성이 높다. 굳이 구음정간보를 통해 풍물굿을 분석한 것도 이러한 차질을 막기 위해서였다.
지금까지 풍물굿의 가락구조와 그 역동성을 살펴보았다. 논의 현장성과 구체성을 살리기 위하여 주로 필봉풍물굿만을 대상으로 삼아 분석함으로써, 다른 지역의 풍물굿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상황들은 검토하지 못한 점이 한계로 남는다. 필봉풍물굿의 구조는 맺고 푸는 순환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다른 지역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지 자료를 달리하면서 계속해서 확대 고찰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좀 더 많은 연행현장 관찰과 연행자의 내력을 살펴보아 풍물굿 전승과 연행 법칙에 대한 일반화 가능성을 모색하면서 풍물굿의 보편성과 지역적 특수성을 변별해 나가야 할 것이다. 특히 가락 구조의 체계를 너무 명료하게 분석함으로써 작위적인 도식화에 이를 수 있다는 점도 경계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풍물굿의 실체를 어떻게 하면 좀 더 잘 드러낼 수 있을까 하는 문제가 연구자의 가장 큰 관심거리이다. 그러자면 가락 구조의 분석 외에, 풍물굿에 나타나는 진풀이와 춤사위의 구조에도 관심을 가지고 풍물굿을 계속 연구해야 할 것이다. 풍물굿에서 불려지는 이름 중 진풀이를 뜻하는 이름인 삼방울진, 乙자진, 가새진, 오방진 등이 있는데 이러한 진풀이들은 어떠한 의미를 지니며 진풀이가 가지는 풍물굿의 역할과 기능은 어떠한 것인지 검토할 만하다. 그리고 풍물굿에 나타나는 각종 농경 모방의 몸짓과 춤을 통하여, 풍물굿이 농경 사회에서 어떠한 구실을 담당하고 있었는지를 밝혀 내는 작업도 앞으로 연구 과제로 남겨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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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ructure and dynamics of Pungmul Kut Karak
-Based on maonly Pilbong Pungmul Kut
Lee jong jin
Department of folklore
Graduate School
Andong National University
Abstract
This study is to analyze the structure of Pilbong Pungmul Kut Karak (farmer's traditional music) and to consider its variations and dynamics. The aims of this study are to embody the basic form of Karak(Rhythm+Rhythm cycle+Rhythm Phrase) structurally and explain the variations and dynamics on the basis of my experience about Pilbong Pungmul Kut.
The reason why I choose Pilbong Pungmul Kut is that it has its original form, comparing it with other Pungmul Kuts performanced in many regions and by Yang Soon Yoeng Sangswae(Leader of Pungmul Kut) of special skill, and keeps various Kutg?ri as they were. Besides, excellent performers still exist and Pungmul Kut is frequently performanced in the theaters of PilbongMa?l and cities.
The Karak of Pilbong Pungmul Kut can be divided into Chungjungmori, Chajinmori, Hwimori, ?nmori and the mixture between Chajinmori and ?nmori. Through these five forms exist, we can see many kinds of variations. There are five-Chungjungmori, fifteen-Chajinmori, six-Hwimori, three-?nmori rhythms and one mixture between Chajinmori and Hwimori rhythms.
The structure of Pungmul Kut consists of yin and yang, introduction, turn, conclusion and solution. It means the harmony between man and nature, members of community, musical instruments, performers and Karak and that is to say, it is the view of world that Pungmul Kut has. We can see the structure of yin and yang in the musical instruments, Karak, and composition of performers. Such a harmony ultimately means the unity between yin and yang. Therefore performers frequently use the words, "Am-Karak" and "Su-Karak".
The Karak of Pungmul Kut and the stream of Kutpan were analyzed by four-step such as introduction, turn, conclusion and solution. Conclusion and solution, rising drawing an upswing, conclude at the peak and solve it again. We can see the structure of conclusion and solution in the repetition of Karak, Kutg?ri, the whole Pungmul Kut as well as a rhythm. This fractal phenomenon, which repeats the duplication of its own form continuously, is the self-similarity which means a pattern in a pattern and repeats the same variations far smaller structure. Bringing refreshment without boredom from the monotonous repetition of Karak, Pungmul Kut is not a mere repetition but an archetypal structure between "tense and relax", "raising and falling", "conclusion and solution".
So far I have analyzed the structure of conclusion and solution
in a rhythm through the Panpungryu
Karak.
<Panpungruy Karak>
| Introducing | Turning | Concluding | Solving |
Kkwaengwari
개 |
갱 |
개 |
갱 |
갠 |
지갱 |
개 |
갱 |
||||
갱 |
개 |
깽 |
개 |
갠 |
지갱 |
개 |
갱 |
Janggu.
더 |
덩 |
더 |
덩 |
덩 |
기닥 |
궁 |
따 |
||||
덩 |
따 |
궁 |
따 |
궁 |
덩 |
기닥 |
궁 |
따 |
풍물굿은 굿판의 상황 전개에 따라 자유롭게 굿 거리와 가락이 늘어나기도 줄어들기도 하며, 치배와 구경꾼들 또한 정형화된 고정틀 속에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연행현장의 상황에 적절하게 대응하며 전개되어 간다. 그렇기 때문에 풍물굿 연구는 연행현장의 상황과 관찰자의 시각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것이다. 필자는 필봉풍물굿 연행현장에 직접 참여하여 그곳에서 체험할 수 있었던 연행자로서의 경험과 필봉풍물굿을 전수하면서 들었던 내용을 토대로 필봉풍물굿의 구조를 밝히고 이러한 구조가 실제 연행현장에서 어떠한 변이를 보이며 역동성을 갖는지를 살피고자 한다. 풍물굿의 구조와 역동성을 살피는데 필봉풍물굿은 다른 지역 풍물굿과 비교하여 가락의 세련미는 덜하지만 윤색되지 않은 과거의 원형을 많이 간직하고 있으며 뛰어난 기능을 갖춘 상쇠 양순용이 다양한 굿 거리들 온전하게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재에도 뛰어난 연행자들이 많은며 필봉마을과 도심의 공연장에서 자주 풍물굿이 연행되고 있기 때문에 연구 대상으로 필봉풍물굿을 택하였다..
풍물굿에서 치배들은 그들만의 連行法則을 지니고 있다. 잽이들을 중심으로 본다면 상쇠는 그 판의 총 지휘자로서 무굿의 主巫가 전체의 굿을 총괄하는 것과 같은 역할과 기능을 담당하게 된다. 상쇠는 뛰어난 연행 능력을 필요로 하면서도 다른 치배들과 함께 굿판 주변의 상황을 잘 읽어 그때그때 굿의 짜임을 달리하고 가락의 변이를 통해 구경꾼들과의 相互 交感을 나누고자 한다. 결국 상쇠의 연행력에 따라 굿판이 고정된 不變의 것이 아니라 연행현장의 상황에 따라 변화해 가는 것이다.
필봉풍물굿의 가락은 기존의 전통음악에서 많이 사용되는 중중모리, 자진모리, 엇모리, 자진모리 엇모리 혼합형의 다섯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렇게 다섯 가지 유형 속에서 다양한 변이형을 보이고 있다. 필봉풍물굿에서 가장 다양한 변이형을 보이고 있는 것은 자진모리 장단형으로써 느린삼채, 된삼채, 중삼채, 겐지갱, 가진영산, 다드래기영산, 재능기영산, 자진호허굿, 반풍류 등과 같은 7개의 변이 가락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중중모리 장단형 5개, 휘모리 장단형 6개, 엇모리 장단형 3개, 자진모리 휘모리 혼합형 1개 등의 변이형을 가지고 있다.
풍물굿의 구조를 분석해 보면 첫째는 음양의 구조이고 둘째는 맺고 내고 달고 맺고 푸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음양의 구조는 조화로움에 있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 공동체 성원끼리의 조화 악기들끼리의 조화, 치배끼리의 조화, 가락의 조화 등은 풍물굿이 가지는 세계관이다. 이러한 조화는 결국 음양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악기에서는"암쇠". "숫쇠"라 하고, 가락에서는 "암가락". "숫가락"이라고 하며, 치배 구성에서는 꽹과리 징 장고 북의 순서를 취하는데 여기에는 양 음 구조를 가지고 있다.
내고 달고 맺고 푸는 4단계 구조로 풍물굿의 가락과 굿판의 흐름을 분석하였다. 맺고 푸는 구조는 상향 곡선을 그리며 올라가다가 절정에 도달하여 맺어 주고 다시 풀어 주는 것이다. 이것은 상향하여 올라가다가 절정에서 끝나는 起承轉結과는 다른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맺고 푸는 구조가 하나의 장단 속에서도 나타나는 것은 물론, 가락의 반복에서도 나타나고 굿 거리에서도 나타나고 풍물굿 판 전체에서도 나타난다. 이러한 현상은 결국 自動自己複製 방식에 의하여 계속해서 자기 모습의 복제를 거듭하는 프렉탈 현상과 같은 것이다. 이것은 계속되는 가락의 반복에서 오는 지루함을 순간 순간 깨 나가며 항상 새로운 세계로 빠져들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풍물굿은 단순 반복이 아닌 "긴장과 이완", "상승과 하강", "맺고 품" 과 같은 형태가 圓形의 순환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한 장단에서 맺고 푸는 구조, 가락의 반복에서 맺고 푸는 구조,
굿 거리에서 맺고 푸는 구조, 판굿 전체에 맺고 푸는 구조를 분석하였는데 여기에서는
한 장단에서 맺고 푸는 구조를 반풍류 가락을 통하여 살펴보자
<반풍류 가락>
| 내 고 (起) | 달 고 (轉) | 맺 고 (結) | 푼 다 (解) |
꽹과리
장 고
위의 악보를 보면 3박씩 나누어 내는 부분, 다는 부분, 맺는 부분, 푸는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1박이 강박이고 9박이 강박인데 서양음악에서는 보이지 않는 리듬 패턴이다. 그렇지만 풍물굿 가락에서는 9박에 강이 온다. 이것이 바로 맺는 곳으로 다음 10, 11, 12박은 푸는 곳에 해당한다. 꽹과리는 "지갱", 장고는"기닥"으로 처리하여 맺는 박을 강조해 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반풍류 가락의 맺고 푸는 구조이다. 이러한 구조는 모든 가락에서 나타나고 있다.
판굿 전체에서 맺고 푸는 구조를 보면 내는 굿은 굿내는 가락, 질굿, 채굿 호허굿 등이 있고, 다는 굿에는 풍류굿, 삼방울진, 乙자진, 미지기 등이 있고, 맺는 굿에는 가진영산, 노래굿, 춤굿, 군영놀이 등이 있고, 푸는 굿에는 수박치기, 등지기굿, 도둑잽이, 탈머리굿 등이 있다. 이러한 굿 거리들은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조합되는데 기본 구조인 내는 굿, 다는 굿, 맺는 굿, 풀는 굿 등의 순서를 가진다.
굿판에 들어가서 흥과 신명을 느낄 수 있으면 좋은 풍물굿이 되고 흥과 신명을 느끼지 못하면 잘못된 굿판이라는 것이다. 풍물굿은 상황에 따른 변화와 역동성이 대단히 강조되고 있다. 굿판은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는 것이며, 그것의 재미 또한 똑같지 않다. 정형화된 틀보다는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모델들이 나타나 적절히 대처하고 즉흥적인 가락과 굿 거리로써 굿판의 만들어지는 것이다. 가락의 변이는 빠르기에 차이를 주기도 하고, 가락의 구조를 '완자걸이', '엇붙임' 기법을 다양하게 사용하여 변이를 주어 절정에까지 끌어올린 다음 다시 풀어 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풍물굿은 정형화된 틀보다는 상황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으로써 과거에도 그렇듯이 현재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형태의 풍물굿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과거의 지신밟기에서 조왕굿, 철륭굿, 샘굿을 행하던 것이 이제는 주택 문화가 바뀌면서 아파트에서 조왕굿, 철륭굿, 샘굿보다는 싱크대굿, 가스누출방지굿과 같은 굿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As you see, the music is divided into four parts. The first and the ninth rhythms are stressed and this pattern is not used in Western music. The ninth rhythm is the conclusion and sound of Kkwaengwar 'Chigaeng' and Janggu 'Kidak' emphasize it. The following tenth, eleventh and twelfth rhythms are solution. This is the structure of conclusion and solution and such a structure is well brought out in the whole Karak.
There are introduction, ture, conclusion and solution in the whole Pungmul Kut. These Kutg?ri are properly compounded and ordered according to given situation. Therefore Kutpan is flexible at any time and it gives us a new interest. Composing Karak and Kutg?ri improvisatorially with a fixed form is more important than conventional pattern. The variations of Karak change tempo raise the structure to the peak and then loosen it with hemiola, 'Wanjag?li' and '?buchim'.
This dynamics makes it possible for Pungmul Kut to change its form into various ones in the modern society. Sinkdae-kut and Kasnuchlbangi-kut, which have appeared in the apartments in these days, are good examples that we can compare with Chowang-kut, Ch?ryung-kut, Saem-kut in the Chisinbalk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