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오빠, 안녕? 나 낙지야.
어머 어머, '저 징그러운 것을 어떻게 생으로 먹어요' 라면서 미간을 찌푸리는 저 언니. 지난여름 서해안으로 친구들과 놀러 왔던 그 언니 맞지? 언니 때문에 우리 동족 전멸 하는 줄 알았거든? 내숭쟁이!
암튼 가을이자나.
가을은 말만 살찌는 계절이 아니야. 낙지도 피둥피둥 살이 오르는 계절이지. 5-6월 산란기 때 비실비실하다가 10-11월에는 완전 절정의 컨디션을 보이거든. 그 이야기 알지? 여름 낙지는 개도 안 먹고, 가을 낙지는 죽는 소도 살려낸다는 말. 특히 소 이야기는 정약전 선생의 <자산어보>에도 실려있자나. 일하다 지쳐 쓰러진 소에게 낙지 서너 마리를 먹였더니 소가 벌떡 일어나 밭을 갈더라는 목격담 말이지.
물 개가 해구신 어쩌구 하면서 나한테 대쉬했다가 빨판으로 싸대기 맞고 쫓겨날 정도로 스태미나에 관한 한 나도 만만치 않다는 뜻이지. 내 몸을 흐르는 34% 타우린이 바로 내 정력의 비결이야. 오죽했으면 사람들이 나를 ' 갯벌 속의 산삼'이라고 했겠어? 그니까 가을만 되면 바람 난 며느리까지 돌아오게 한다며 설래발을 치는 전어 그 녀석보다 내가 더 인간들에게는 유용한 거야. 대하? 푸훗, 고래 싸움에 등짝이나 터지는 약골을 어찌 나랑 비교를 해?
내 주 서식지는 서해안 갯벌이야. 저기 아랫동네 무안이라는 곳에는 하체 빈약한 세발 낙지라는 친척들이 집단촌을 형성해서 살고 있고, 오늘의 주인공인 나는 충남 태안 쪽 갯벌에서 조상 대대로 살고 있어.
아아 그러나 잠시 내가 고향을 등진 적이 있었어. 정말 생각조차 하기 싫은 태안기름유출사건. 그때 잠시 피난을 갔었더랬지. 그러다 태안 바다가 맑아지면서 다시 돌아온 거야. 역시 누가뭐래도 나는 내 고향이 좋아. 연어 그 아이의 마음을 나는 알 것 같아.
사람들이 나를 즐기는 방법은 여러 가지야. 세발낙지는 젓가락으로 돌돌 말아 생으로 씹어줘야 맛있다고 하고, 비위가 약한 사람은 나를 기절시켜 먹기도 해. 또한 볏짚에 싸서 낙지호롱구이라 부르며 먹기도 하고 연포탕이라고 해서 탕으로 즐기는 방법도 있어.
그런데 우리 동네 태안에서는 연포탕이라고 하지 않아. 박속 낙지탕이라고 하지. 그게 뭐냐구? 뭐긴 뭐야. 말 그대로 '제비 몰러 나간다'의 그 박 속을 넣고 대파와 매운 고추, 조개 등으로 국물맛을 낸 다음에 나를 살짝 데쳐서 먹는 거지. 연포탕이랑 다른 점은 시원한 국물 맛을 내기 위해 무대신 박을 쓴다는 거야.
얘들이 나를 위해
수중 발레를 해주는 박속 낙지탕
태안에서 두 군데 유명한 박속낙지탕 집이 있어. 원북면의 원풍식당(672-5057)과 이원면의 이원식당(672-8024). 지금부터 소개할 곳은 원풍식당이야. 왜 원풍만 소개하냐구? 노매드 기자들이 원풍만 가봤거든. 이원 식당 가본 독자는 알아서 코맨트 달아줘.
주말에는 아주 줄을 서서 먹는 곳이야. 언론에도 많이 소개됐고 어쨌든 태안을 대표하는 음식점이지.
가게가 작기도 하지만 이 북적거리는 분위기 좀 보라지.
손님이 많다 보니 평일이면 모를까, 주말에는 좋은 서비스를 기대하면 안돼. 그냥 태안까지 왔으니 유명한 집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는 생각 정도로 가볍게 입장하라는 이야기지. 글구 원래 충청도 양반님들 서비스가 살갑거나 그렇지 않잖아. 다 지방색이라고 생각하고 혹 종업원이나 주인이 퉁명하더라도 나를 봐서 그냥 넘어가기야.
메뉴 한 번 봐봐.
낙지를 다 먹고 나면 칼국수와 수제비를 마무리로 먹을 수 있어서 이름이 박속밀국낙지탕이야. 1인분에 낙지 한 마리 1만 2천 원. 싸? 비싸? 그건 각자 판단하시고 너무 탕만 좋아라 마시고 볶음도 한번 드셔봐. 볶음으로 화끈해진 입맛을 달래주는데는 탕이 또 환상 조합이거든.
요게 기본 상차림이야.밑반찬이 감동의 쓰나미로 몰려오거나 그런 것 없어. 그냥 수수해.소스는 식초간장에 고춧가루랑 파 등을 넣은 거야. 그것도 뭐 그냥 평범.
기자가 사진을 찍고 있으니까 주인 아주머니가 내 친구 한 마리를 서비스로 더 내놓으시네. 우리 아주머니 장사 참 잘하셔 ^^
박속 국물이 팔팔 끓으면 드디어 내가 살신성인 할 시간. 그래, 사람들의 즐거움을 위해서라면 내 한 몸 사우나에 뛰어드는 심청이가 못되리.
풍덩!
나를 너무 푹 익히면 질겨져서 안되. 2-3분만 살짝 익혀 먹는 거야. 사람이 많을 때는 종업원이 일일이 챙겨주지 못하니까, 종업원 믿다가 낙지로 껌 씹지 말고 알아서 날 살짝만 데쳐줘.
뭐니뭐니해도 박속 낙지탕의 매력은 나와 박속이 주연을 맡고 청양고추와 대파가 조연을 맡아서 일궈낸 국물의 맛이야. 그 맑고 담백하며 매콤하면서 시원하고 얼큰하면서 부드러운 이 국물 맛은 술꾼들의 해장에는 가히 지존이 아닐까 싶어.
그리고 아직도 내 몸통을 머리라고 우기는 언니 오빠들. 나 머리 그렇게 크지 않거든? 그러니 나를 모욕하지 말고, 내 몸통의 쫀득한 맛만 즐기셔.
이렇게 내 다리와 몸통을 드셨다면 이제 국물에 국수를 말아 드시는 거야. 땀 비질비질 흘리며, 입 화끈 화끈 거리며, 속 후끈 후끈 거리며. 그렇게 드셔야 속도 든든하고 포만감도 오는 거지.
어때?
살짝 입 안에 군침이 도셔? 그럼 가을 다 가기 전에 태안에 여행 함 오셔. 프래카드까지는 아니지만 이 한 몸, 올 누드로 두 팔 벌려 언니 오빠를 맞이할께.
그럼, 그때 봐~
■ 내가 자주가는 집- 낙지한마당
내용은 윗글에서 설명하는것과 똑 같고, 경치와 멋이 추가 되는 집 입니다.
바닷가를 보면서 즐길수 있으며, 식사 후 가벼운 산책도 가능 합니다.
특히 주중에 오시면 나랑 동행 하실수도 있으며, 때론 계산도 가능 합니다. 물론 여친들은 무료로 모시겠습니다.
위치 : 충남 서산시 지곡면 중왕리
Tel) 041-662-9063, 041-665-6036, 011-9809-6036
☞ 내가 먹는 모습 사진으로 ``` 보세여
▶ 식당 안에서본 바닷가 풍경
▶ 소맥 1잔으로 건배~~~~
▶박속+야체가 들어있는 육수
▶ 우리들을 위해 기꺼이 빠져주는 낙지들
▶ 한잔 된 내 모습- 창밖 경치가 쥑이는 날 이었지. 비가오고, 안개가 자욱한.....,
첫댓글 맛은 모르겠지만 경치 좋아요.
혼자드시지 마시고 같이 먹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