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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처(貧妻)
현 진 건
(1)
"그것이 어째 없을까?"
아내는 장문을 열고 무엇을 찾더니 입 안 말로 중얼거린다.
"무엇이 없어?"
나는 우두커니 책상 머리에 앉아서 책장만 뒤적뒤적하다가 물어 보았다.
"모본단 저고리가 하나 남았는데."
"……."
나는 그만 묵묵하였다.
아내가 그것을 찾아 무엇을 하려는 것을 앎이라. 오늘 밤에 옆집 할멈을 시켜 잡히려 하는 것이다.
이 2년 동안에 돈 한푼 나는 데 없고 그대로 주리면 시장할 줄 알아 기구와 의복을 전당국 창고에 들여밀거나 고물상 한 구석에 세워두고 돈을 얻어오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 아내가 하나 남은 모본단 저고리를 찾는 것도 아침거리를 장만하려 함이다. 나는 입맛을 쩍쩍 다시고 폈던 책을 덮으며 '후우' 한숨을 내쉬었다.
봄은 벌써 반이나 지났건마는 이슬을 실은 듯한 밤기운이 방구석으로부터 슬금슬금 기어나와 사람에게 안기고, 비가 오는 까닭인지 밤은 아직 깊지 않건만 인적조차 끊어지고 온 천지가 빈 듯이 고요한데, 투닥투닥 떨어지는 빗소리가 한없는 구슬픈 생각을 자아낸다.
'빌어먹을 것 되는 대로 되어라.'
나는 점점 견딜 수 없어 두 손으로 흩어진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올리며 중얼거려 보았다.
이 말이 더욱 처량한 생각을 일으킨다. 나는 또 한 번,
"후우."
한숨은 내쉬며 왼팔을 베고 책상에 쓰러지며 눈을 감았다.
이 순간에 오는 지낸 일이 불현 듯 생각이 난다. 늦게야 점심을 마치고 내가 막 권연 한 개를 피워 물 적에 한성 은행 다니는 T가 공일이라고 찾아왔다.
친척은 다 머지 않게 살아도 가난한 꼴을 보이기도 싫고 찾아갈 적마다 무엇을 뀌어 내라고 조르지도 아니하였건만, 행여나 무슨 구차한 소리를 할까 봐서 미리 방패막이를 하고 눈살을 찌푸리는 듯하여 나는 발을 끊고, 따라서 찾아오는 이도 없었다.
다만 이 T는 촌수가 가까운 까닭인지 자주 우리를 방문하였다.
그는 성실하고 공순하여 소소한 소사에 슬퍼하고 기뻐하는 인물이었다.
동년배인 우리들은 늘 친척 간에 비교 거리가 되었었다.
그리고 나의 평판이 항상 좋지 못했다.
"T는 돈을 알고 위인이 진실해서 그에게 돈푼이나 모일 것이야! 그러나 K(내 이름)는 아무짝에도 못쓸 놈이야. 그 잘난 언문 섞어서 무어라고 끄적거려 놓고 제 주제에 무슨 조선에 유명한 문학가가 된다니! 시러베아들놈!"
이것이 그네들의 평판이었다.
내가 문학인지 무엇인지 하는 소리가 까닭없이 그네들의 비위에 틀린 것이다.
더군다나 나는 그네들의 생일이나 혹은 대사 때에 돈 한푼 이렇다는 일이 없고, T는 소위 착실히 돈벌이를 해 가지고 국수 밥소라나 보조를 하는 까닭이다.
"얼마 아니 되어 T는 잘 살 것이고, K는 거지가 도리 것이니 두고 보아!"
오촌 당숙은 이런 말씀까지 하였다 한다.
입 밖에는 아니 내어도 친부모 친형제까지라도 심중으로는 다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래도 부모는 달라서 화가 나시면,
"네가 그리 하다가는 말경에 비렁뱅이가 되고 말 것이야."
라고 꾸중은 하셔도,
"사람이란 늦복 모르느니라."
"그런 사람은 또 그렇게 되느니라."
하시는 것이 스스로 위로하는 말씀이고, 또 며느리를 위로하는 말씀이었다.
그것을 보아도 하는 수 없는 놈이라고 단념을 하시면서 그래도 잘되기를 바라시고 축원하시는 것을 알겠더라.
하여간 이만하면 T의 사람됨을 족히 알 수가 있다.
그리고 그가 우리집에 올 것 같으면 지어서 쾌활하게 웃으며 힘써 재미스러운 이야기를 하였다.
단둘이 고적하게 그날 그날을 보내는 우리에게는 더할 수 없이 반가웠었다.
오늘도 그가 활발하게 집에 쑥 들어오더니 신문지에 싼 기름한 것을 '이것 좌라' 하는 듯이 마루 위에 올려놓고 분주히 구두끈을 끄른다.
"이것이 무엇인가?"
나는 물어 보았다.
"저어, 제 처의 양산이야요. 쓰던 것이 벌써 낡았고 또 살이 부러졌다나요."
그는 구두를 벗고 마루에 올라서며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여 벙글벙글 하면서 대답을 한다.
그는 나의 아내를 돌아보며 돌연히,
"아주머니 좀 구경하시렵니까?"
하더니 산 종이와 집을 벗기고 양산을 펴 보인다.
흰 비단 바탕에 두어 가지 매화를 수놓은 양산이었다.
"검정이는 좋은 것이 많아도 너무 칙칙해 보이고...... 회색이나 누렁이는 하나도 그것이야 싶은 것이 없어서 이것을 산걸요."
그는 '이것보다도 좋은 것을 살 수가 있다' 하는 뜻을 보이려고 애를 쓰며 이런 변명까지 한다.
"이것도 퍽 좋은데요."
이런 칭찬을 하면서 양산을 펴 들고 이리저리 홀린 듯이 들여다보고 있는 아내의 눈에는,
'나도 이런 것을 하나 가졌으면......" 하는 생각이 역력히 보인다.
나는 갑자기 불쾌한 생각이 와락 일어나서 방으로 들어오며 아내의 양산 보는 양을 빙그레 웃고 바라보고 있는 T에게,
"여보게, 방에 들어오게그려. 우리 이야기나 하세."
T는 따라들어와 물가 폭등에 대한 이야기며, 자기의 월급이 오른 이야기며, 주권을 몇 주 사 두었더니 꽤 이익이 남았다든가, 각 은행 사무원 경기회에서 자기가 우월한 성적을 얻었다든가, 이런 것 저런 것 한참 이야기하다가 돌아갔다.
T를 보내고 책상을 향하여 짓던 소설의 결미를 생각하고 있을 즈음에,
"여보!"
아내의 떠는 목소리가 바로 내 귀 곁에서 들린다.
핏기 없는 얼굴에 살짝 붉은 빛이 돌며 어느 결에 내 곁에 바싹 다가앉았더라.
"당신도 살 도리를 좀 하세요."
".........."
나는 또 '시작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번개같이 머리에 번쩍이며 불쾌한 생각이 벌컥 일어난다.
그러나 무어라고 대답할 말이 없어 묵묵히 있었다.
"우리도 남과 같이 살어 보아야지요."
아내가 T의 양산에 단단히 자극을 받은 것이다.
예술가의 처 노릇을 하려는 독특한 결심이 있는 그는 좀처럼 이런 소리를 입 밖으로 내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무엇에 상당한 자극만 받으면 참고 참았던 이런 소리를 하게 되는 것이다.
나도 이런 소리를 들을 적마다 '그럴 만도 하다'는 동정심이 없지 아니하나 심사가 어쩐지 좋지 못하였다.
이번에도 '그럴 만도 하다'는 동정심이 없지 아니하되 또한 불쾌한 생각을 억제키 어려웠다.
잠깐 있다가 불쾌한 빛을 나타내며,
"급작스럽게 살 도리를 하라면 어찌할 수가 있소. 차차 될 때가 있겠지."
"아이구, 차차란 말씀 그만두구려, 어느 천년에"
아내의 얼굴에 붉은 빛이 짙어지며 전에 없던 흥분한 어조로 이런 말까지 하였다.
자세히 보니 두 눈에 은은히 눈물이 괴었더라.
나는 잠시 명명하게 있었다.
성낸 불길이 치받쳐올라온다.
나는 참을 수 없었다.
"막벌이꾼한테 시집을 갈 것이지, 누가 내게 시집을 오랬소! 저 따위가 예술가의 처가 다 뭐야!"
사나운 어조로 물풍스럽게 소리를 꽥 질렀다.
"에그…!"
살짝 얼굴빛이 변해지며 어이없이 나를 보더니 고개가 점점 수그러지며 한 방울 두 방울, 방울 방울 눈물이 장판 위에 떨어진다.
나는 이런 일을 가슴에 그리며, 그래도 내일 아침거리를 장만하려고 옷을 찾는 아내의 심중을 생각해 보니, 말할 수 없는 슬픈 생각이 가을 바람과 같이 설렁설렁 심골을 분지르는 것 같다.
쓸쓸한 빗소리는 굵었다 가늘었다 의연히 적적한 밤공기에 더욱 처량히 들리고, 그을음 앉은 등피 속에서 비치는 불빛은 구름에 가린 달빛처럼 우는 듯 조는 듯 구차히 얻어 산 몇 권 양책의 표제금자가 번쩍거린다.
(2)
장 앞에 초연히 서 있던 아내가 무엇이 생각났는지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들릴 듯 말 듯 목 안의 소리로,
"오호‥‥‥ 옳지, 참 그 날‥‥‥."
“찾었소?"
"아니야요, 벌써‥‥‥ 저 인천 사시는 형님이 오셨던 날‥‥‥."
아내가 애써 찾던 그것도 벌써 전당포의 고운 먼지가 앉았구나! 종지하나라도 차근차근 아랑곳하는 아내가 그것을 잡혔는지 안 잡혔는지 모르는 것을 보면, 빈곤이 얼마나 그의 정신을 물어뜯었는지 족히 알겠다.
"……"
"……"
한참 동안 서로 아무말이 없었다.
가슴이 어찌 답답해지며 누구하고 싸움이나 좀 해 보았으면, 실컷 맞아 보았으면, 하는 일종의 이상한 감정이 부글부글 피어오르며 전신에 이가 스멀스멀 기어 다니는 듯, 옷이 어째 몸에 끼며 견딜 수가 없다.
나는 이런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점점 구차한 살림에 싫증이 나서 못 견디겠지?"
아내는 무엇을 생각하는지 모르게 정신을 잃고 섰다가 그 거슴츠레한 눈이 둥그래지며,
"네에? 어째서요?"
"무얼 그렇지."
"싫은 생각은 조금도 없어요."
이렇게 말이 오락가락함을 따라 나는 흥분의 도가 점점 짙어간다.
그래서 아내가 떨리는 소리로,
"어째 그런 줄 아세요?"
하고 반문할 적에,
"나를 숙맥으로 알우?"
라고, 격렬하게 소리를 높였다.
아내는 살짝 분한 빛이 눈에 비치어 물끄러미 나를 들여다본다.
나는 괘씸하다는 듯이 흘겨보며,
"그러면 그것 모를까! 오늘까지 잘 참아 오더니 인제는 점점 기색이 달라지는 걸 뭐! 물론 그럴 만도 하지마는!"
이런 말을 하는 내 가슴에는 지난 일이 활동 사진 모양으로 얼른얼른 나타난다.
6년 전에(그 때 나는 십육 세이고 저는 십팔 세였다.), 우리가 결혼한 지 얼마 아니 되어 지식에 목마른 나는 지식의 바닷물을 얻어마시려고 표연히 집을 떠났었다.
광풍에 나부끼는 버들잎 모양으로 오늘은 지나, 내일은 일본으로 굴러다니다가 금전의 탓으로 지식의 바닷물도 흠씬 마셔 보지도 못하고 반거들충이가 되어 집에 돌아오고 말았다.
그가 시집올 때에는 방글방글 피려는 꽃봉오리 같던 아내가 어느 겨를에 기울어가는 꽃처럼 두 뺨에 선연한 빛이 스러지고 벌써 두어금 가는 줄이 그리어졌다.
처가 덕으로 집칸도 장만하고 세간도 얻어 우리는 소위 살림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럭저럭 지내었지마는 한 푼 나는 데 없는 살림이라 한 달 가고 두 달 갈수록 점점 곤란해질 따름이었다.
나는 보수 없는 독서와 가치 없는 창작으로 해가 지며, 날이 새며 쌀이 있는지 나무가 있는지 망연케 몰랐다.
그래도 때때로 맛있는 반찬이 상에 오르고 입은 옷이 과히 추하지 아니함은 전혀 아내의 힘이었다.
전들 무슨 벌이가 있으리요. 부끄럼을 무릅쓰고 친가에 가서 눈치를 보아가며 구차한 소리를 하여 가지고 얻어온 것이었다. 그것도 한두 번 말이지 장구한 세월에 어찌 늘 그럴 수가 있으랴! 말경에는 아내가 가져온 세간과 의복에 손을 대는 수밖에 없었다.
잡히고 파는 것도 나는 알은 체도 아니 하였다.
그가 애를 쓰며 퉁명스러운 옆집 할멈에게 돈푼을 주고 시켰었다.
이런 고생을 하면서도 그는 나의 성공만 마음 속으로 깊이깊이 믿고 빌었었다.
어느 때에는 내가 무엇을 짓다가 마음에 맞지 아니하여 쓰던 것을 집어 던지고 화를 낼 적에,
"왜 마음을 조급하게 잡수세요! 저는 꼭 당신의 이름이 세상에 빛날 날이 있을 줄 믿어요. 우리가 이렇게 고생을 하는 것이 장차 잘 될 근본이야요."
하고, 그는 스스로 흥분되어 눈물을 흘리며 나를 위로하는 적도 있었다.
내가 외국으로 다닐 때에 소위 신풍조에 띄어 까닭 없이 구식 여자가 싫어졌다.
그래서 나는 일찍이 장가든 것을 매우 후회하였다.
어떤 남학생과 어떤 여학생이 서로 연애를 주고받고 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적마다 공연히 가슴이 뛰놀며 부럽기도 하고 비감스럽기도 하였다.
그러나 낫살이 들어갈수록 그런 생각도 없어지고 집에 돌아와 아내를 겪어 보니 의외에 그에게 따뜻한 맛과 순결한 맛을 발견하였다.
그의 사랑이야말로 이기적 사랑이 아니고 헌신적 사랑이었다.
이런 줄을 점점 깨닫게 될 때에 내 마음이 얼마나 행복스러웠으랴! 밥이 깊도록 다듬이를 하다가 그만 옷입은 채로 쓰러져 곤하게 자는 그의 파리한 얼굴을 들여다보며,
'아아, 나에게 위안을 주고, 원조를 주는 천사여!'
하고, 감격이 극하여 눈물을 흘린 일도 있었다.
내가 알다시피 내가 별로 천품은 없으나 어쨌든 무슨 저작가로 몸을 세워 보았으면 하여 나날이 창작과 독서에 전심력을 바쳤다. 물론 아직 남에게 인정될 가치는 없는 것이다.
그 영향으로 자연 일상 생활이 말유하게 되었다. 이런 곤란에 그는 근 2년 견디어 왔건만 나의 하는 일은 오히려 아무 보람이 없고 방 안에 놓였던 세간이 줄어지고 장롱에 찼던 옷이 거의 다 없어졌을 뿐이다.
그 결과 그다지 견딜성 있던 그도 요사이 와서는 때때로 쓸데없는 탄식을 하게 되었다.
손잡이를 잡고 마루 끝에 우두커니 서서 하염없이 먼 산만 바라보기도하며, 바느질을 하다 말고 실신한 사람 모양으로 멍멍히 앉았기도 하였다.
창경으로 비치는 어스름한 햇빛에 나는 흔히 그의 눈물 머금은 근심 있는 눈을 발견하였다.
이럴 때에는 말할 수 없는 쓸쓸한 생각이 들며 일없이,
"마누라!"
하고 부르며, 그는 몸을 움찔하고 고개를 저리 돌리어 치맛자락으로 눈물을 씻으며,
"네에?"
하고 울음에 떨리는 가는 대답을 한다. 나는 등에 물을 끼얹는 듯 몸이 으쓱해지며 처량한 생각이 싸늘하게 가슴에 흘렀다.
그러지 않아도 자비하기 쉬운 마음이 더욱 심해지며,
"내가 무자격한 탓이다."
하고 스스로 멸시를 하고 나서니 더욱 견딜 수 없다.
'그럴 만도 하다.'
는 동정심이 없지 아니하되 그래도 그만 불쾌한 생각이 일어나며,
"계집이란 할 수 없어."
혼자 이런 불평을 중얼거리었다.
환등 모양으로 하나씩 둘씩 이런 일이 가슴에 나타나니 무어라고 말할 용기조차 없어졌다.
나의 유일의 신앙자이고 위로자이던 처까지 인제는 나를 아니 믿게 되었다.
그는 마음속으로,
'네가 6년 동안 내 살을 깎고 저미었구나! 이 원수야."
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매 그의 불 같던 사랑까지 없어져 가는 것 같았다. 아니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 것 같았다.
나는 감상적으로 허둥허둥하며,
"낸들 마누라를 고생시키고 싶어 시켰겠소! 비단옷도 해 주고 싶고 좋은 양산도 사 주고 싶어요! 그러길래 왼종일 쉬지 않고 공부를 아니 하우. 남 보기에는 편편히 노는 것 같애도 실상은 그렇지 안 해! 본들 모른단 말이오."
나는 점점 강한 가면을 벗고 약한 진상을 드러내며 이와 같은 가소로운 변명까지 하였다.
"왼세상 사람이 다 나를 비소하고 모욕하여도 상관이 없지만 마누라까지 나를 아니 믿어 주며 어찌한단 말이오."
내 말에 스스로 자극이 되어가지고 마침내,
"아아!"
길이 탄식을 하고 그만 쓰러졌다.
이 순간에 고개를 숙이고 아마 하염없이 입술만 물어 뜯고 있던 아내가 홀연,
"여보!"
울음 소리를 떨면서 무너지는 듯이 내 얼굴에 쓰러진다.
"용서……."
하고는 북받쳐 나오는 울음에 말이 막히고 불덩이 같은 두 뺨이 내 얼굴을 누르고 흑흑 느끼어 운다.
그의 두 눈으로부터 샘솟듯하는 눈물이 제 뺨과 내 뺨 사이를 따뜻하게 젖어 퍼진다.
내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린다.
뒤숭숭하던 생각이 다 이 뜨거운 눈물에 봄눈 슬 듯 스러지고 말았다.
한참 있다가 우리는 눈물을 씻었다.
내 속이 얼마큼 시원한지 몰랐다.
"용서하여 주세요! 그렇게 생각하실 줄은 참 몰랐어요."
이런 말을 하는 아내는 눈물에 불어오른 눈꺼풀을 아픈 듯이 꿈적거린다.
"암만 구차하기로니 싫증이야 날까요! 나는 한번 먹은 맘이 있는데."
가만가만히 변명을 하는 아내의 눈물 흔적이 어룽어룽한 얼굴을 바라보며 겨우 심신이 가뜬하였다.
(3)
어제 일로 심신이 피곤하였던지 그 이튿날 늦게야 잠을 깨니 간밤에 오던 비는 어느 결에 그치었고 명랑한 햇발이 미닫이에 높았더라.
아내가 다시금 장문을 열고 잡힐 것을 찾을 즈음에 누가 중문을 열고 들어온다.
우리는 누군가 하고 귀를 기울일 적에 밖에서,
"아씨!"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내는 급히 방문을 열고 나갔다.
그는 처가에서 부리는 할멈이었다.
오늘이 장인 생신이라고 어서 오라는 말을 전한다.
"오늘이야? 참 옳지, 오늘이 이월 엿샛날이지, 나는 깜빡 잊었어!"
"원 아씨는 딱도 하십니다. 어쩌면 아버님 생신을 잊는단 말씀이야요. 아무리 살림이 재미가 나시더래도!"
시큰둥한 할멈은 선웃음을 쳐가며 이런 소리를 한다.
가난한 살림에 골몰하느라고 자기 친부의 생신까지 잊었는가 하매 아내의 정지가 더욱 측은하였다.
"오늘이 본가 아버님 생신이래요. 어서 오시라는데………."
"어서 가구려………."
"당신도 가셔야지요. 우리 같이 가세요."
하고 아내는 하염없이 얼굴을 붉힌다.
나는 처가에 가기가 매우 싫어졌다. 그러나 아니 가는 것도 내 도리가 아닐 듯하여 하는 수 없이 두루마기를 입었다. 아내는 머뭇머뭇하며 양미간을 모일 듯 말 듯 찡그리며 곁눈으로 나를 살짝 엿보더니 돌아서서 급히 장문을 연다.
'흥, 입을 옷이 없어서 망설이는구나.'
나도 슬쩍 돌아서며 생각하였다.
우리는 서로 등지고 섰건만 그래도 아내가 거의 다 빈 장 안을 들여다보며 입을 만한 옷이 없어서 눈살을 찌푸린 양이 눈앞에 선연함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자아, 가세요."
무엇을 생각하는지 모르게 정신을 잃고 섰다가 아내의 부르는 소리를 듣고 나는 기계적으로 고개를 돌리었다.
아내는 당목 옷으로 갈아 입고 내 마음을 알았던지 나를 위로하는 듯이 빙그레 웃는다.
나는 더욱 쓸쓸하였다.
우리집은 천변 배다리 곁이었고 처가는 안국동에 있어 그 거리가 꽤 멀었다.
나는 천천히 가노라 하고 아내는 속히 오노라고 오건마는 그는 늘 뒤떨어졌다.
내가 한참 가다가 뒤를 돌아다보면 처는 늘 멀리 떨어져 나를 따라오려고 애를 쓰며 주춤 주춤 걸어온다.
길가에 다니는 어느 여자를 보아도 거의 다 비단옷을 입고 고운 신을 신었는데 당목옷을 허술하게 차리고 청록당혜로 타박타박 걸어오는 양이 나에게 얼마나 애연한 생각을 일으켰는지! 한참 만에 나는 넓고 높은 처갓집 대문에 다다랐다.
내가 안으로 들어갈 적에 낯선 사람들이 나를 흘끔흘끔 본다.
그들의 눈에,
"이 사람이 누구인가. 아마 이 집 하인인가 보다."
하는 경멸히 여기는 빛이 있는 것 같았다.
안 대청 가까이 들어오니 내게 분분히 인사를 한다.
그 인사하는 소리가 내 귀에는 어째 비소하는 것 같기도 하고 모욕하는 것 같기도 하여 공연히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후끈거린다.
그 중에 내게 친숙하게 인사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아내보다 3년 맏인 처형이었다.
내가 어려서 장가를 들었으므로 그 때 그는 나를 못 견디게 시달렸다.
그, 때는 그게 싫기도 하고 밉기도 하더니 지금 와서는 그 때 그러한 것이 도리어 우리를 무관하게 정답게 만들었다.
그는 인천 사는데 자기 남편이 기미를 하여 가지고 이번에 돈 10만원이나 착실히 땄다 한다.
그는 자기의 잘 사는 것을 자랑하고자 함인지 비단을 내리감고 얼굴에 부유한 태가 질질 흐른다.
그러나 분으로 숨기려고 애쓴 보람도 없이 눈 위에 퍼렇게 멍든 것이 내 눈에 띄었다.
"왜 마누라는 어쩌고 혼자 오세요?"
그는 웃으며 이런 말을 하다가 중문 편을 바라보더니,
"그러면 그렇지 동부인 아니 하고 오실라구."
혼자 주고받고 한다.
나도 이 말을 듣고 슬쩍 돌아다보니 아내가 벌써 중문 앞에 들어섰다.
그 수척한 얼굴이 더욱 수척해 보이며 눈물괸 듯한 눈이 하염없이 웃는다.
나는 유심히 그와 아내를 번갈아 보았다.
처음 보는 사람은 분간을 못 하리만큼 그들의 얼굴은 혹사하다.
그런데 얼굴빛은 어쩌면 저렇게 틀리는가!
하나는 이글이글 만발한 꽃 같고, 하나는 시들시들 마른 낙엽 같다.
아내를 형이라고, 처형을 아우라고 하였으면 아무라도 속을 것이다.
또 한번 아내를 보며 말할 수 없는 쓸쓸한 생각이 다시금 가슴을 누른다. 딴 음식은 별로 먹지도 아니하고 못 먹는 술을 넉 잔이나 마시었다. 그래도 바늘 방석에 앉은 것처럼 앉아 견딜 수가 없다. 집에 가려고 나는 몸을 일으켰다.
골치가 띵하며 내가 선 방바닥이 마치 폭풍에 도도하는 파도같이 높았다 낮았다 어질어질해서 곧 쓰러질 것 같다.
이 거동을 보고 장모가 황망히 일어서며,
"술이 저렇게 취해 가지고 어데로 갈라구. 여기서 한잠 자고 가게."
나는 손을 내저으며,
"아니에요, 집에 가겠어요."
취한 소리로 중얼거리었다.
"저를 어쩌나!"
장모는 걱정을 하시더니,
"할멈, 어서 인력거 한 채 불러 오게."
한다.
취중에도 인력거를 태우지 말고 그 인력거 삯을 나를 주었으면 책 한 권을 사 보련만 하는 생각이었다.
인력거를 타고 얼마 아니 가서 그만 잠이 들었다.
한참 자다가 잠을 깨어 보니 방 안에 벌써 남폿불이 켜 있었는데 아내는 어느 결에 왔는지 외로이 앉아 바느질을 하고, 화로에서 무엇이 끓는 소리가 보글보글 하였다.
아내가 나의 잠깬 것을 보더니 급히 화로에 얹힌 것을 만져 보며,
"인제 그만 일어나 진지를 잡수세요."
하고, 부리나케 일어나 아랫목에 파묻어 둔 밥 그릇을 꺼내어 미리 차려둔 상에 얹어서 내 앞에 갖다 놓고, 일변 화로를 당기어 더운 반찬을 집어 얹으며,
"자아, 어서 일어나세요."
한다.
나는 마지못하여 하는 듯이 부스스 일어났다.
머리가 오히려 아프며 목이 몹시 말라서 국과 물을 연해 들이켰다.
"물만 잡수셔서 어째요. 진지를 잡수셔야지."
아내는 이런 근심을 하며 밥상머리에 앉아서 고기도 뜯어 주고 생선뼈도 추려 주었다.
이것도 다 오늘 처가에서 가져온 것이다.
나는 맛나게 밥 한 그릇을 다 먹었다.
내 밥상이 나매 아내가 밥을 먹기 시작한다.
그러면 지금껏 내 잠 깨기를 기다리고 밥을 먹지 아니하였구나 하고 오늘 처가에서 본 일을 생각하였다.
어제 일이 있는 후로 우리 사이에 무슨 벽이 생긴 듯하던 것이 그 벽이 점점 엷어져 가는 듯하며 가엾고 사랑스러운 생각이 일어났다.
그래서 우리는 정답게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우리의 이야기는 오늘 장인 생신 잔치로부터 처형 눈 위에 멍든 것에 옮겨 갔다.
처형의 남편이 이번 그 돈을 딴 뒤로는 주야 요리점과 기생집에 돌아다니더니 일전에 어떤 기생을 얻어가지고 미쳐 날뛰며 집에만 들면 집안 사람을 들볶고 걸핏하면 처형을 친다 한다.
이번에도 별로 대단치 않은 일에 처형에게 밥상으로 냅다 갈겨 바로 눈위에 그렇게 멍이 들었다 한다.
"그것 보아, 돈푼이나 있으면 다 그런 것이야."
"정말 그래요.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도 의좋게 지내는 것이 행복이야요."
아내는 충심으로 공명해 주었다.
이 말을 들으매 내 마음은 말할 수 없이 만족해지면서 무슨 승리나 한 듯이 득의양양하였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옳다, 그렇다. 이렇게 지내는 것이 행복이다.'
하였다.
(4)
이틀 뒤, 해 어스름에 처형은 우리집에 놀러 왔었다.
마침 내가 정신없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 즈음에 쓸쓸하게 닫혀 있는 중문이 찌그뚱 하며 비단옷 소리가 사오락사오락 들리더니, 아랫목은 내게 빼앗기고 윗목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던 아내가 문을 열고 나간다.
"아이고, 형님 오셔요."
아내의 인사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처형이 계집 하인에게 무엇을 들리고 들어온다.
나도 반갑게 인사를 하였다.
"그 날 매우 욕을 보셨죠? 못 잡숫는 술을 무슨 짝에 그렇게 잡수세요."
그는 이런 인사를 하다가 급작스럽게 계집 하인이 든 것을 빼앗더니 신문지로 싼 것을 끄집어 내어 아내를 주며,
"내 신 사는데 네 신도 한 켤레 샀다. 그 날 청록당혜를……."
말을 하려다가 나를 곁눈으로 흘끗 보고 그만 입을 닫친다.
"그것을 왜 또 사셨어요?"
해쓱한 얼굴에 꽃물을 들이며 아내가 치사하는 것도 들은 체 만 체하고 처형은 또 이야기를 시작한다.
"올 적에 사랑 양반을 졸라서 돈 백 원을 얻었겠지. 그래서 오늘 종로에 나와서 옷감도 바꾸고 신도 사고……."
그는 자랑과 기쁨의 빛이 얼굴에 퍼지며 싼 보를 끌러,
"이런 것이야!"
하고 우리 앞에 펼쳐 놓는다.
자세히는 모르나 여하간 값 많은 품 좋은 비단인 듯하다.
무늬 없는 것, 무늬 있는 것, 회색, 초록색, 분홍색이 갖가지로 윤이 흐르며 색색이 빛이 나서 나는 한참 황홀하였다.
무슨 칭찬을 해야 되겠다 싶어서,
"참 좋은 것인데요."
이런 말을 하다가 나는 또 쓸쓸한 생각이 일어났다.
저것을 보는 아내의 심중이 어떠할까? 하는 의문이 문득 일어남이라.
"모다 좋은 것만 골라 샀습니다그려."
아내는 인사를 차리느라고 이런 칭찬을 하나마 별로 부러워하는 기색이 없다.
나는 적이 의외의 감이 있었다.
처형은 자기 남편의 흉을 보기 시작하였다.
그 밉살스럽다느둥 그 추근추근하다둥 말끝마다 자기 남편의 불미한 점을 들다가 문득 이야기를 끊고 일어선다.
"왜 벌써 가시려고 하셔요. 모처럼 오셨다가 반찬은 없어도 저녁이나 잡수세요."
하고 아내는 만류를 하니,
"아니, 곧 가야지, 오늘 저녁차로 떠날 것이니까 가서 짐을 매어야지. 아직 차 시간이 멀었어? 아니 그래도 정거장에 일찍 나가야지, 만일 기차를 놓치면 오죽 기다리실라구, 벌써 오늘 저녁차로 간다고 편지까지 했는데……."
재삼 만류함도 돌아보지 아니하고 그는 훌훌히 나간다.
우리는 그를 보고 방에 들어왔다.
"그까짓 것이 기다리는데 그다지 급급히 갈 것이 무엇이야."
아내는 하염없이 웃을 뿐이었다.
"그래도 옷감 바꿀 돈을 주었으니 기다리는 것이 애처롭기만 하겠지."
밉살스러우니, 추근추근하니 하여도 물질의 만족만 얻으면 그것으로 기뻐하고 위로 되는 그의 생활이 참 가련하다 하였다.
"참, 그런가 봐요."
아내도 웃으며 내 말을 받는다.
이 때에 처형이 사 준 신이 그의 눈에 띄었는지(혹은 나를 꺼려, 보고 싶은 것을 참았는지 모르나)그것을 집어 들고 조심조심 펴 보려다가 말고 머뭇머뭇한다.
그 속에 그를 해케 할 무슨 위험품이나 든 것같이.
"어서 펴 보구려."
아내는 이 말을 듣더니,
'작히 좋으랴.'
하는 듯이 활발하게 싼 신문지를 헤친다.
"퍽 이쁜걸요."
그는 근일에 드문 기쁜 소리를 치며 방바닥 위에 사뿐 내려놓고 버선을 당기며 곱게 신어 본다.
"어쩌면 이렇게 맞아요!"
연해연방 감사를 부르짓는 그의 얼굴에 흔연한 희색이 넘쳐 흐른다.
"………."
묵묵히 아내의 기뻐하는 양을 보고 나는 또 다시,
'여자란 할 수 없어'
하는 생각이 들며,
'조심하였을 따름이다.'
하매 밤빛 같은 검은 그림자가 가슴을 어둡게 하였다.
그러면 아까 처형의 옷을 볼 적에도 물론 마음 속으로는 부러워하였을 것이다.
다만 표면에 드러내지 않았을 따름이다. 겨우
'어서 펴 보구려.'
하는 한 마디에 가슴에 숨겼던 생각을 속임없이 나타내는구나 하였다.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저는 모르고 새신 신은 발을 조금 쳐들며,
"신 모양이 어때요?"
"매우 이뻐!"
겉으로는 좋은 듯이 대답을 하였으나 마음은 쓸쓸하였다.
내가 제게 신 한 켤레를 사 주지 못하여 남에게 얻는 것으로 만족하고 기뻐하는 거다.
웬일인지 이번에는 그만 불쾌한 생각이 일어나지 아니하였다.
처형이 동서를 밉다거니 무엇이니 하면서도 기차를 놓치면 남편이 가다릴까 염려하여 급히 가던 것이 생각난다.
그것을 미루어 아내의 심사도 알 수가 있다.
부득이한 경우라 하릴없이 정신적 행복에만 만족하려고 애를 쓰지마는 기실 부족한 것이다.
다만 참을 따름이다.
그것은 내가 생각해야 된다.
이런 생각을 하니 그 날 아내에게 그런 말을 한 것이 후회가 났다.
'어느 때라도 제 은공을 갚아 줄 날이 있겠지!'
나는 마음을 너그러이 먹고 이런 생각을 하며 아내를 보았다.
"나도 어서 출세를 하여 비단신 한 켤레쯤은 사 주게 되었으면 좋으련만……."
아내가 이런 말을 듣기는 참 처음이다.
"네에?"
아내가 제 귀를 못 미더워하는 듯이 의아한 눈으로 나를 보더니 얼굴에 살짝 열기가 오르며,
"얼마 안 되어 그렇게 될 것이야요!"
라고 힘있게 말하였다.
"정말 그럴 것 같소?"
나는 약간 흥분하여 반문하였다.
"그럼은요, 그렇고 말고요."
아직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는 무명 작가인 나를 저 하나이 깊이깊이 인정해 준다.
그러길래 그 강한 물질에 대한 본능적 욕구도 참아가며 오늘날까지 몹시 눈살을 찌푸리지 아니하고 나를 도와 준 것이다.
'아, 아, 나에게 위안을 주고 원조를 주는 천사여!'
마음속으로 이렇게 부르짖으며 두 팔로 덥석 아내의 허리를 잡아 내 가슴에 바싹 안았다.
그 다음 순간에는 뜨거운 두 입술이……
그의 눈에도 나의 눈에도 그렁그렁한 눈물이 물 끓듯 넘쳐 흐른다.(끝)
운수 좋은 날
현 진 건
새침하게 흐린 품이 눈이 올 듯하더니, 눈은 아니 오고 얼다가 만 비가 추적추적 내리었다.
이날이야말로 동소문 안에서 인력거꾼 노릇을 하는 김첨지에게는 오래간만에도 닥친 운수 좋은 날이었다. 문 안에(거기도 문밖은 아니지만) 들어간답시는 앞집 마나님을 전찻길까지 모셔다 드린 것을 비롯하여 행여나 손님이 있을까 하고 정류장에서 어정어정하며 내리는 사람 하나하나에게 거의 비는 듯한 눈길을 보내고 있다가, 마침내 교원인 듯한 양복장이를 동광학교(東光學校))까지 태워다 주기로 되었다.
첫 번에 삼십 전, 둘째 번에 오십 전 --- 아침 댓바람에 그리 흉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야말로 재수가 옴붙어서 근 열흘 동안 돈 구경도 못한 김첨지는 십 전짜리 백통화 서 푼, 또는 다섯 푼이 찰깍하고 손바닥에 떨어질 제 거의 눈물을 흘릴 만큼 기뻤었다. 더구나 이날 이때에 이 팔십 전이라는 돈이 그에게 얼마나 유용한지 몰랐다. 컬컬한 목에 모주 한 잔도 적실 수 있거니와, 그보다도 앓는 아내에게 설렁탕 한 그릇도 사다줄 수 있음이다.
그의 아내가 기침으로 쿨룩거리기는 벌써 달포가 넘었다. 조밥도 굶기를 먹다시피 하는 형편이니 물론 약 한 첩 써본 일이 없다. 구태여 쓰려면 못쓸 바도 아니로되, 그는 병이란 놈에게 약을 주어 보내면 재미를 붙여서 자꾸 온다는 자기의 신조(信條)에 어디까지 충실하였다. 따라서 의사에게 보인 적이 없으니 무슨 병인지는 알 수 없으나, 반듯이 누워 가지고 일어나기는커녕 새로 모로도 못 눕는 걸 보면 중증은 중증인 듯. 병이 이대도록 심해지기는 열흘 전에 조밥을 먹고 체한 때문이다. 그때도 김첨지가 오래간만에 돈을 얻어서 좁쌀 한 되와 십 전 짜리 나무 한 단을 사다 주었더니 김첨지의 말에 의하면, 오라질년이 천방지축(天方地軸)으로 남비에 대고 끓였다. 마음은 급하고 불길은 닿지 않아 채 익지도 않은 것을 그 오라질년이 숟가락은 고만두고 손으로 움켜서 두 뺨에 주먹덩이 같은 혹이 불거지도록 누가 빼앗을 듯이 처박질하더니만 그날 저녁부터 가슴이 땅긴다, 배가 켕긴다 하고 눈을 홉뜨고 지랄을 하였다. 그때 김첨지는 열화와 같이 성을 내며,
“에이, 오라질년, 조랑복은 할 수가 없어, 못 먹어 병, 먹어서병, 어쩌란 말이야! 왜 눈을 바루 뜨지 못해!”
하고 앓는 이의 뺨을 한 번 후려갈겼다. 홉뜬 눈은 조금 바루어졌건만 이슬이 맺히었다. 김첨지의 눈시울도 뜨끈뜨끈하였다.
환자가 그러고도 먹는 데는 물리지 않았다. 사흘 전부터 설렁탕 국물이 마시고 싶다고 남편을 졸랐다.
“이런 오라질 년! 조밥도 못 먹는 년이 설렁탕은. 또 처먹고 지랄병을 하게.”
라고 야단을 쳐보았건만, 못 사주는 마음이 시원치는 않았다.
인제 설렁탕을 사 줄 수도 있다. 앓는 어미 곁에서 배고파 보채는 개똥이(세살먹이)에게 죽을 사줄 수도 있다. ---팔십 전을 손에 쥔 김첨지의 마음은 푼푼하였다
그러나, 그의 행운은 그걸로 그치지 않았다. 땀과 빗물이 섞여 흐르는 목덜미를 기름 주머니가 다 된 왜목 수건으로 닦으며, 그 학교 문을 돌아 나올 때였다. 뒤에서 “인력거!”하고 부르는 소리가 났다. 자기를 불러 멈춘 사람이 그 학교 학생인 줄 김첨지는 한번 보고 짐작할 수 있었다. 그 학생은 다짜고짜로,
“남대문 정거장까지 얼마요?”
라고 물었다. 아마도 그 학교 기숙사에 있는 이로 동기 방학을 이용하여 귀향하려 함이로다. 오늘 가기로 작정은 하였건만, 비는 오고 짐은 있고 해서 어찌 할 줄 모르다가 마침 김첨지를 보고 뛰어나왔음이리라. 그렇지 않다면 왜 구두를 채 신지 못해서 질질 끌고, 비록 ‘고꾸라’ 양복일망정 노박이로 비를 맞으며 김첨지를 뒤쫓아 나왔으랴.
“남대문 정거장까지 말씀입니까?”
하고, 김첨지는 잠깐 주저하였다. 그는 이 우중에 우장도 없이 그 먼곳을 칠벅거리고 가기가 싫었음일까? 처음 것, 둘째 것으로 고만 만족하였음일까? 아니다. 결코 아니다. 이상하게도 꼬리를 맞물고 덤비는 이 행운 앞에 조금 겁이 났음이다. 그리고 집을 나올 제 아내의 부탁이 마음에 켕기었다. 앞집 마나님한테서 부르러 왔을 제 병인은 그 뼈만 남은 얼굴에 유월의 샘물 같은 유달리 크고 움푹한 눈에다 애걸하는 빛을 띄우며,
“오늘은 나가지 말아요. 제발 덕분에 집에 붙어 있어요. 내가 이렇게 아픈데…….”
하고 모기 소리같이 중얼거리며 숨을 걸그렁걸그렁하였다. 그래도 김첨지는 대수롭지 않은 듯이.
“압다, 젠장맞을 년. 빌어먹을 소리를 다 하네. 맞붙들고 앉았으면 누가 먹여 살릴 줄 알아.”
하고 훌쩍 뛰어나오려니까 환자는 붙잡을 듯이 팔을 내저으며,
“나가지 말라도 그래, 그러면 일찍이 들어와요.”
하고 목메인 소리가 뒤를 따랐다.
정거장까지 가잔 말을 들은 순간에 경련적으로 떠는 손, 유달리 큼직한 눈, 울 듯한 아내의 얼굴이 김첨지의 눈앞에 어른어른하였다.
“그래, 남대문 정거장까지 얼마란 말이요?”
하고 학생은 초조한 듯이 인력거꾼의 얼굴을 바라보며 혼잣말같이,
“인천 차가 열한 점에 있고, 그 다음에는 새로 두 점이던가.”
라고 중얼거린다.
“일 원 오십 전만 줍시요.”
이 말이 저도 모를 사이에 불쑥 김첨지의 입에서 떨어졌다. 제 입으로 부르고도 스스로 그 엄청난 돈 액수에 놀래었다. 한꺼번에 이런 금액을 불러라도 본 지가 그 얼마만인가! 그러자, 그 돈 벌 용기가 병자에 대한 염려를 사르고 말았다. 설마 오늘 안으로 어떠랴 싶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제일 제이의 행운을 곱친 것보다도 오히려 갑절이 많은 이 행운을 놓칠 수 없다 하였다.
“일 원 오십 전은 너무 과한데.”
이런 말을 하며 학생은 고개를 기웃하였다.
“아니올시다. 잇수로 치면 여기서 거기가 시오 리가 넘는답니다.또 이런 진날에는 좀더 주셔야지요.”
하고 빙글빙글 웃는 차부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기쁨이 넘쳐흘렀다.
“그러면 달라는 대로 줄 터이니 빨리 가요.”
관대한 어린 손님은 그런 말을 남기고 총총히 옷도 입고 짐도 챙기러 갈 데로 갔다.
그 학생을 태우고 나선 김첨지의 다리는 이상하게 가뿐하였다. 달음질을 한다느니보다 거의 나는 듯하였다. 바퀴도 어떻게 속히 도는지 군다느니보다 마치 얼음을 지쳐나가는 스케이트 모양으로 미끄러져가는 듯하였다. 언땅에 비가 내려 미끄럽기도 하였다.
이윽고 끄는 이의 다리는 무거워졌다. 자기 집 가까이 다다른 까닭이다. 새삼스러운 염려가 그의 가슴을 눌렀다.
“오늘은 나가지 말아요. 내가 이렇게 아픈데.”
이런 말이 잉잉 그의 귀에 울렸다. 그리고 병자의 움쑥 들어간 눈이 원망하는 듯이 자기를 노려보는 듯하였다. 그러자 엉엉 하고 우는 개똥이의 곡성도 들은 듯싶다. 딸국딸국하고 숨 모으는 소리도 나는 듯싶다.
“왜 이러우? 기차 놓치겠구먼.”
하고, 탄 이의 초조한 부르짖음이 간신히 그의 귀에 들려왔다. 언뜻 깨달으니 김첨지는 인력거 채를 쥔 채 길 한복판에 엉거주춤 멈춰 있지 않은가.
“예, 예”
하고 김첨지는 또다시 달음질하였다. 집이 차차 멀어갈수록 김첨지의 걸음에는 다시금 신이 나기 시작하였다. 다리를 재겨 놀려야만 쉴새없이 자기의 머리에 떠오르는 모든 근심과 걱정을 잊을 듯이……
정거장까지 끌어다 주고 그 깜짝 놀란 일 원 오십 전을 정말 제 손에 쥠에 말마따나 십리나 되는 길을 비를 맞아가며 질퍽거리고 온 생각은 아니하고, 거저 얻은 듯이 고마웠다. 졸부나 된 듯이 기뻤다. 제 자식뻘밖에 안 되는 어린 손님에게 몇번 허리를 굽히며,
“안녕히 다녀옵시요.”
라고, 깎듯이 재우쳤다.
그러나 빈 인력거를 털털거리며 이 우중에 돌아갈 일이 꿈 밖이었다. 노동으로 하여 흐른 땀이 식어지자 굶주린 창자에서 물 흐르는 옷에서 어슬어슬 한기가 솟아나기 비롯하매 일 원 오십 전이란 돈이 얼마나 괜찮고 괴로운 것인 줄 절실히 느끼었다. 정거장을 떠나는 그의 발길은 힘 하나 없었다. 온몸이 옹송그려지며 당장 그 자리에 엎어져 못 일어날 것 같았다.
“젠장맞을 것! 이 비를 맞으며 빈 인력거를 털털거리고 돌아를간담. 이런 빌어먹을, 제 할미를 붙을 비가 왜 남의 상판을 딱딱 때려!”
그는 몹시 홧증을 내며 누구에게 반항이나 하는 듯이 게걸거렸다. 그럴 즈음에 그의 머리엔 또 새로운 광명이 비쳤나니, 그것은 ‘이러구 갈 게 아니라 이 근처를 빙빙돌며 차 오기를 기다리면 또 손님을 태우게 될는지도 몰라.’란 생각이었다. 오늘 운수가 괴상하게도 좋으니까 그런 요행이 또 한번 없으리라고 누가 보증하랴. 꼬리를 굴리는 행운이 꼭 자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내기를 해도 좋을 만한 믿음을 얻게 되었다. 그렇지만 정거장 인력거꾼의 등살이 무서워 정거장 앞에 섰을 수가 없었다. 그래 그는 이전에도 여러 번 해본 일이라 바로 정거장에서 조금 떨어져서 사람 다니는 길과 전찻길 틈에 인력거를 세워 놓고, 자기는 그 근처를 빙빙 돌며 형세를 관망하기로 하였다. 얼마만에 기차는 왔고 수십 명이나 되는 손이 정류장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 중에서 손님을 물색하던 김첨지의 눈에 양머리에 뒤축 높은 구두를 신고 망토까지 두른 기생 퇴물인 듯, 난봉 여학생인 듯한 여편네의 모양이 띄었다. 그는 슬근슬근 그 여자의 곁으로 다가들었다.
“아씨, 인력거 아니 타시랍시요?”
그 여학생인지 뭔지가 한참은 매우 때깔을 빼며 입술을 꼭 다문 채 김첨지를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김첨지는 구경하는 거지나 무엇같이 연해연방 그의 기색을 살피며,
“아씨 정거장 애들보담 아주 싸게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댁이 어디신가요?”
하고 추근추근하게도 그 여자의 들고 있는 일본식 버들고리짝에 제 손을 대었다.
“왜 이래? 남 귀찮게.”
소리를 벽력같이 지르고는 돌아선다. 김첨지는 어랍시요 하고 물러섰다.
전차가 왔다. 김첨지는 원망스럽게 전차 타는 이를 노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예감을 틀리지 않았다. 전차가 빡빡하게 사람을 싣고 움직이기 시작하였을 제 타고 남은 손 하나가 있었다. 굉장하게 큰 가방을 들고 있는 걸 보면 아마 붐비는 차안에 짐이 크다 하여 차장에게 밀려 내려온 눈치였다. 김첨지는 대어 섰다.
“인력거를 타시랍시요.”
한동안 값으로 실랑이를 하다가 육십 전에 인사동까지 태워다 주기로 하였다. 인력거가 무거워지매 그의 몸은 이상하게도 가벼워졌고 그리고 또 인력거가 가벼워져서 몸은 다시금 무거워졌는데, 이번에는 마음조차 초조해온다. 집의 광경이 자꾸 눈앞에 어른거리어 이젠 요행을 바랄 여유도 없었다. 나무 등걸이나 무엇만 같고 제 것 같지도 않은 다리를 연해 꾸짖으며 갈팡질팡 뛰는 수밖에 없었다. 저놈의 인력거꾼이 저렇게 술이 취해 가지고 이 진 땅에 어찌 가노 하고, 길 가는 사람이 걱정을 하리만큼 그의 걸음은 황급하였다. 흐리고 비오는 하늘은 어둠침침한 게 벌써 황혼에 가까운 듯하다. 창경원 앞까지 다다라서야 그는 턱에 닿는 숨을 돌리고 걸음도 늦추잡았다. 한 걸음 두 걸음 집이 가까워올수록 그의 마음은 괴상하게 누그러졌다. 그런데 이 누그러짐은 안심에서 오는 게 아니요, 자기를 덮친 무서운 불행이 박두한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오는 것이다.
그는 불행이 닥치기 전 시간을 얼마쯤이라도 늘리려고 버르적거렸다. 기적에 가까운 벌이를 하였다는 기쁨을 할 수 있으면 오래 지니고 싶었다. 그는 두리번두리번 사면을 살피었다. 그 모양은 마치 자기 집, 곧 불행을 향하고 달려가는 제 다리를 제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으니 누구든지 나를 좀 잡아다고, 구해다고 하는 듯하였다.
그럴 즈음에 마침 길가 선술집에서 친구 치삼이가 나온다. 그의 우글우글 살진 얼굴은 주홍이 오른 듯, 온 턱과 뺨을 시커멓게 구레나룻이 덮이고, 노르탱탱한 얼굴이 바짝 말라서 여기저기 고랑이 파이고 수염도 있대야 턱밑에만, 마치 솔잎 송이를 거꾸로 붙여 놓은 듯한 김첨지의 풍채하고는 기이한 대상을 짓고 있었다.
“여보게 김첨지, 자네 문 안 들어갔다 오는 모양일세 그려, 돈 많이 벌었을테니 한 잔 빨리게.”
뚱뚱보는 말라깽이를 보는 말맡에 부르짖었다. 그 목소리는 몸짓과 딴판으로 연하고 싹싹하였다. 김첨지는 이 친구를 만난 게 어떻게 반가운지 몰랐다. 자기를 살려준 은인이나 무엇같이 고맙기도 하였다.
“자네는 벌써 한 잔 한 모양일세 그려. 자네도 재미가 좋아 보이.”
하고 김첨지는 얼굴을 펴서 웃었다.
“압다. 재미 안 좋다고 술 못 먹을 낸가. 그런데 여보게, 자네 왼몸이 어째 물독에 빠진 새앙쥐 같은가? 어서 이리 들어와 말리게.”
선술집은 훈훈하고 뜨뜻하였다. 추어탕을 끓이는 솥뚜껑을 열 적마다 뭉게뭉게 떠오르는 흰 김, 석쇠에서 빠지짓 빠지짓 구워지는 너비아니 구이며, 제육이며, 간이며, 콩팥이며, 북어며, 빈대떡…….이 너저분하게 늘어 놓은 안주 탁자에 김첨지는 갑자기 속이 쓰려서 견딜 수 없었다. 마음대로 할 양이면 거기 있는 모든 먹음 먹이를 모조리 깡그리 집어삼켜도 시원치 않았다. 하되, 배고픈 이는 우선 분량 많은 빈대떡 두 개를 쪼이기로 하고 추어탕을 한 그릇 청하였다. 주린 창자는 음식맛을 보더니 더욱더욱 비어지며 자꾸자꾸 들이라들이라 하였다. 순식간에 두부와 미꾸리 든 국 한 그릇을 그냥 물같이 들이키고 말았다. 첫째 그릇을 받아들었을 제 데우던 막걸리 곱빼기 두 잔이 더 왔다. 치삼이와 같이 마시자 원원이 비었던 속이라 찌르르 하고 창자에 퍼지며 얼굴이 화끈하였다. 눌러 곱빼기 한 잔을 또 마셨다.
김첨지의 눈은 벌써 개개 풀리기 시작하였다. 석쇠에 얹힌 떡 두개를 숭덩숭덩 썰어서 볼을 볼록거리며 또 곱빼기 두 잔을 부어라 하였다.
치삼은 의아한 듯이 김첨지를 보며,
“여보게 또 붓다니, 벌써 우리가 넉 잔씩 먹었네. 돈이 사십 전일세.”
“아따 이놈아, 사십 전이 그리 끔찍하냐? 오늘 내가 돈을 막 벌었어. 참 오늘 운수가 좋았느니.”
“그래 얼마를 벌었단 말인가?”
“삼십 원을 벌었어, 삼십 원을! 이런 젠장맞을, 술을 왜 안 부어……괜찮다, 괜찮아. 막 먹어도 상관이 없어. 오늘 돈 산더미같이 벌었는데.”
“어, 이사람 취했군, 그만두세.”
“이놈아, 이걸 먹고 취할 내냐? 어서 더 먹어.”
하고는 치삼의 귀를 잡아치며 취한 이는 부르짖었다. 그리고, 술을 붓는 열다섯 살 됨직한 중대가리에게로 달려들며
“이놈, 오라질놈, 왜 술을 붓지 않아.”
라고 야단을 쳤다. 중대가리는 희희 웃고 치삼이를 보며 문의하는 듯이 눈짓을 하였다. 주정꾼이 이 눈치를 알아보고 화를 버럭내며,
“에미를 붙을 이 오라질 놈들 같으니, 이놈 내가 돈이 없을 줄 알고?”
하자마자 허리춤을 훔척훔척하더니 일 원짜리 한장을 꺼내어 중대가리 앞에 펄쩍 집어던졌다. 그 사품에 몇 푼 은전이 잘그랑 하며 떨어진다.
“여보게 돈 떨어졌네, 왜 돈을 막 끼얹나.”
이런 말을 하며 일변 돈을 줍는다. 김첨지는 취한 중에도 돈의 거처를 살피는 듯이 눈을 크게 떠서 땅을 내려다보다가 불시에 제 하는 짓이 너무 더럽다는 듯이 고개를 소스라치자 더욱 성을 내며,
“봐라 봐! 이 더러운 놈들아, 내가 돈이 없나, 다리 뼉다구를 꺾어 놓을 놈들 같으니.”
하고 치삼이 주워주는 돈을 받아,
“이 원수엣 돈! 이 육시를 할 돈!”
하면서 팔매질을 친다. 벽에 맞아 떨어진 돈은 다시 술 끓이는 양푼에 떨어지며 정당한 매를 맞는다는 듯이 쨍하고 울었다.
곱빼기 두 잔은 또 부어질 겨를도 없이 말려가고 말았다. 김첨지는 입술과 수염에 붙은 술을 빨아들이고 나서 매우 만족한 듯이 그 솔잎 송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또 부어, 또 부어.”
라고 외쳤다.
또 한 잔 먹고 나서 김첨지는 치삼의 어깨를 치며 문득 껄껄 웃는다. 그 웃음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술집에 있는 이의 눈이 모두 김첨지에게로 몰리었다. 웃는 이는 더욱 웃으며,
“여보게 치삼이, 내 우스운 이야기 하나 할까? 오늘 손을 태우고 정거장에까지 가지 않았겠나.”
“그래서?”
“갔다가 그저 오기가 안됐데 그려, 그래 전차 정류장에서 어름어름하며 손님 하나를 태울 궁리를 하지 않았나. 거기 마침 마나님이신지 여학생이신지, 요새야 어디 논다니와 아가씨를 구별할 수가 있던가. 망토를 잡수시고 비를 맞고 서 있겠지. 슬근슬근 가까이 가서 인력거를 타시랍시요 하고 손가방을 받으랴니까 내 손을 탁 뿌리치고 핵 돌아서더니만 ‘왜 남을 이렇게 귀찮게 굴어!’그 소리야말로 꾀꼬리 소리지, 허허!”
김첨지는 교묘하게도 정말 꾀꼬리 같은 소리를 내었다. 모든 사람은 일시에 웃었다.
“빌어먹을 깍쟁이 같은 년, 누가 저를 어쩌나, ‘왜 남을 귀찮게굴어!’ 어이구 소리가 체신도 없지, 허허”
웃음소리들은 높아졌다. 그런 그 웃음소리들이 사라지기 전에 김첨지는 훌쩍훌쩍 울기 시작하였다.
치삼은 어이없이 주정뱅이를 바라보며,
“금방 웃고 지랄을 하더니 우는 건 무슨 일인가?”
김첨지는 연해 코를 들여마시며,
“우리 마누라가 죽었다네.”
“뭐, 마누라가 죽다니, 언제”
“이놈아 언제는. 오늘이지.”
“예끼 미친놈, 거짓말 말아.”
“거짓말은 왜, 참말로 죽었어…… 참말로. 마누라 시체를 집에 뻐들쳐 놓고 내가 술을 먹다니, 내가 죽일 놈이야 죽일 놈이야.”
하고 김첨지는 엉엉 소리 내어 운다.
치삼은 흥이 조금 깨어지는 얼굴로,
“원 이사람아 참말을 하나, 거짓말을 하나. 그러면 집으로 가세, 가.”
하고 우는 이의 팔을 잡아당기었다.
치삼의 끄는 손을 뿌리치더니 김첨지는 눈물이 글썽글썽한 눈으로 싱그레 웃는다.
“죽기는 누가 죽어.”
하고 득의 양양.
“죽기는 왜 죽어, 생떼같이 살아만 있단다. 그 오라질년이 밥을죽이지. 인제 나한테 속았다.”
하고 어린애 모양으로 손뼉을 치며 웃는다.
“이 사람이 정말 미쳤단 말인가. 나도 아주먼네가 앓는단 말은 들었었는데.”
하고 치삼이도 어떤 불안을 느끼는 듯이 김첨지에게 또 돌아가라고 권하였다.
“안 죽었어, 안 죽었대도 그래.”
김첨지는 홧증을 내며 확신있게 소리를 질렀으되 그 소리엔 안 죽은 것을 믿으려고 애쓰는 가락이 있었다. 기어이 일 원어치를 채워서 곱빼기를 한 잔씩 더 먹고 나왔다. 궂은 비는 의연히 추적추적 내린다.
김첨지는 취중에도 설렁탕을 사가지고 집에 다다랐다. 집이라 해도 물론 셋집이요, 또 집 전체를 세든 게 아니라 안과 뚝 떨어진 행랑방 한 간을 빌어든 것인데 물을 길어대고 한 달에 일 원씩 내는 터이다. 만일 김첨지가 주기를 띠지 않았던들 한 발을 대문에 들여놓았을 제 그곳을 지배하는 무시무시한 정적(靜寂)---폭풍우가 지나간 뒤의 바다 같은 정적에 다리가 떨렸으리라. 쿨룩거리는 기침 소리도 들을 수 없다. 그르렁거리는 숨소리조차 들을 수 없다.. 다만 이 무덤 같은 침묵을 깨뜨리는, 깨뜨린다느니보다 한층 더 침묵을 깊게 하고 불길하게 하는 빡빡거리 그윽한 소리, 어린애의 젖 빠는 소리가 날 뿐이다.만일 청각이 예민한 이 같으면, 그 빡빡소리는 빨 따름이요, 꿀떡꿀떡하고 젖 넘어가는 소리가 없으니, 빈 젖을 빤다는 것도 짐작할는지 모르리라.
혹은 김첨지도 이 불길한 침묵을 짐작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대문에 들어서자마자 전에 없이,
“이 난장맞을 년, 남편이 들어오는데 나와 보지도 않아. 이 오라질년.”
이라고 고함을 친 게 수상하다. 이 고함이야말로 제 몸을 엄습해오는 무시무시한 증을 쫓아 버리려는 허장성세(虛張聲勢)인 까닭이다.
하여간 김첨지는 방문을 왈칵 열었다. 구역을 나게 하는 추기 --- 떨어진 삿자리 밑에서 나온 먼지내, 빨지 않은 지저귀에서 나는 똥내와 오줌내, 가지각색 때가 켜켜이 앉은 옷내, 병인의 땀 섞은 내가 섞인 추기가 무딘 김첨지의 코를 찔렀다.
방안에 들어서며 설렁탕을 한구석에 놓을 사이도 없이 주정꾼은 목청을 있는 대로 다 내어 호통을 쳤다.
“이 오라질년, 주야장천(晝夜長川) 누워만 있으면 제일이야! 남편이 와도 일어나지를 못해.”
라는 소리와 함께 발길로 누운 이의 다리를 몹시 찼다. 그러나 발길에 채이는 건 사람의 살이 아니고 나무등걸과 같은 느낌이 있었다. 이때에 빽빽 소리가 응아 소리로 변하였다. 개똥이가 물었던 젖을 빼어놓고 운다. 운대도 온 얼굴을 찡그려 붙어서 운다는 표정을 할 뿐이다. 응아 소리도 입에서 나는 게 아니고, 마치 뱃속에서 나는 듯하였다. 울다가 울다가 목도 잠겼고 또 울 기운조차 시진한 것 같다.
발로 차도 그 보람이 없는 걸 보자 남편은 아내의 머리맡으로 달려들어 그야말로 까치집 같은 환자의 머리를 껴들어 흔들며,
“이년아, 말을 해, 말을! 입이 붙었어, 이 오라질년!”
“……”
“으응, 이것 봐, 아무말이 없네.”
“……”
“이년아, 죽었단 말이냐, 왜 말이 없어?”
“……”
“으응, 또 대답이 없네, 정말 죽었나보이.”
이러다가 누운 이의 흰 창이 검은 창을 덮은, 위로 치뜬 눈을 알아보자마자,
“이 눈깔! 이 눈깔! 왜 나를 바루 보지 못하고 천정만 바라보느냐, 응”
하는 말끝엔 목이 메이었다. 그러자 산 사람의 눈에서 떨어진 닭똥 같은 눈물이 죽은 이의 뻣뻣한 얼굴을 어룽어룽 적시었다. 문득 김첨지는 미친 듯이 제 얼굴을 죽은 이의 얼굴에 한데 비벼대며 중얼거렸다.
“설렁탕을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왜 먹지를 못하니……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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