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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롤로그
호남정맥은 그 이름처럼 호남땅의 16개 시군을 지나는 산줄기이다. 3정맥 분기점인 주줄산에서 출발해 경각산, 왕자산, 정읍 내장산(763m), 담양 추월산, 산성산, 그리고 남해고속도로가 지나가는 과치재, 연산, 무등산(1187m), 천운산, 계담산, 봉황산, 삼계봉, 용두산, 제암산(807m), 사자산, 봉화산, 승주 조계산(884m), 문유산에 이어 광양 백운산(1218m)에서 섬진강으로 떨어지며 그 맥을 다한다. 백운산은 지리산과 마주보고 있으나 만나지는 않는다. 산은 물을 가르고 물은 산을 넘지 못하듯이 섬진강이 가르기 때문이다.
산경표에 의하더라도 주화산이 아닌 주줄산(珠崒山)이라 명기되어 있어, 이를 바로 잡아가는게 필요함에도 어제 본 주줄산 정상에는 생뚱맞게도 근래 보이지 않던 주화산(珠華山)이라 명시된 비석이 새로 생겼다. 도대체 아무런 검증작업도 없이 이 따위 비석을 세웠는지 갑갑해지는 느낌이다.
<주줄산 정상에 세워진 주화산 명칭의 비석>
도상거리 432.9km의 호남정맥을 시작한다. 주말에 가까워 날씨가 오락가락하더니 급기야 적지않은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행장을 챙겨 전주지방의 날씨를 예의주시하며 기다렸지만 천둥․벼락까지 치며 산행을 포기하게 한다.
한남금북종주 중 음성 행치고개에서 야간등반 중 천둥소리에 놀란 나머지 마을로 내려와 비박했던 기억이 난다. 밤에 시커먼 먹구름과 함께 천둥과 벼락이 칠 때면 자꾸만 전설의 고향과 같은 분위기가 연상이 되어 산행을 계속하기란 여간한 강심장이 아니고는 어려울 것 같다.
다음 날 아침 맑게 개인 하늘은 깨끗하리만치 아름다웠다. 그러나 집에서는 청명할 것 같은 날씨가 산행을 시작하자마자 짙은 먹구름을 드리우며 금방이라도 폭우를 쏟아낼 것인양 협박을 한다. 제발 내가 진행하는 동안 비를 내리지 말아 줄 것을 애원했지만 끝내 짧은 시간 쏟아내더니 이내 맑아진다.
그 별것도 아닌 협박성 폭우 때문에 북치고개에서 마을로 내려서서 택시를 타고 가다 다시 슬치에서 6.5km를 반대로 진행하는 이상한 산행도 경험해 본다.
★ 산행개요
- 산행코스 : 주줄산-만덕산-마재-북치-슬치
- 산행일행 : 단독산행
- 산행거리 : 도상거리 22.3km(알바 약 5km는 제외)
- 산행일시 : 5/28(일) 12:00~17:30, 18:10~19:55(7시간 15분)
- 산행구간 : 모래재(11:20)-주즐산(11:45~12:00)-곰치재(13:25)-만덕산 전위봉(15:00)-만덕산(15:07)-마재(16:20~16:50)-북치(17:30)-관촌면 상월리(17:40)-슬치(18:00~18:10)-박뫼이산(18:20)-416.2봉(19:40)-북치(19:55)-관촌면 상월리 하산
- 소요비용 : 37,600원(안양-전주 12,700원, 전주-안골 : 택시비 2,800원, 안골-모래재 2,100원, 관촌면 상월리-슬치 : 택시비 9,000원, 전주-남부터미널 : 8,000원, 식비 : 3,000원)
★ 산행기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창밖을 본다. 맑은 하늘이 풀어 헤쳐 놓았던 배낭을 다시 꾸리게 하였다.
20리터의 작은 배낭에 한끼의 식사와 몇가지 간식만을 챙기고 7시 50분 전주행 시외버스(12,700원)에 몸을 실었다.
전주에서 다시 택시를 타고(2,800원) 안골 쌍용아파트 앞에 있는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10시 50분 무진장여객(주)의 부귀행 버스(2,100원)을 타니 구불거리며 한참을 달린 후 모래재에 도착한다(아침 07:30부터 18:30까지 모래재를 경유하여 8회정도 운행한다고 함).
<새로 조성한 모래재 공동묘지 입구>
<모래재 휴개소>
11시 20분, 농로를 따라 주줄산을 향해 오르기 시작한다. 전주로 오는 도중에 여기저기서 비가 내리기도 하였지만, 다행히 모래재에는 비가 내리지는 않는다.
낮게 운무가 걸쳐 있어 오늘도 조망이 썩 좋지는 않을 것 같다. 풀섶에 맺힌 물방울은 산행시작 10분 되지 않아 옷을 흠씬 젖게 만든다. 덧신을 신었지만 발등에는 벌써 축축한 느낌이 전해진다.
11시 45분, 불과 3주만에 다시 와 보지만 생소한 비석이 생겼다. 진안문화원, 서부지방산림청과 전북산사랑회에서 주화산이라는 명칭으로 비석을 세웠다. 산경표에도 명백하게 나와있는 주줄산을 끝내 외면하고 주화산이라 비석까지 세웠으면 앞으로 산은 하나인데 조약봉(鳥躍峰)에다 삼수봉(三水峰), 주줄산 그리고 주화산까지 여러 이름이 사용되며 많은 혼란을 불러 일으킬 것은 자명하다.
약간의 요기를 한 후 덧신과 등산화 사이에 비닐을 넣고 다시 단단하게 옳아매었다. 8시간 정도 날이 밝아 있기 때문에 도상거리 22.3km 되는 슬치까지의 여정을 8시간내로 끝내기로 하였다. 다음의 여정을 대중교통의 접근이 용이한 슬치에서 하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등산화 위에다 덧신을 신었지만 자꾸 벗겨져 신발끈으로 감아 맴>
12시 정각, 무사하게 호남정맥을 완주해 달라고 산신령께 기원하며 잰 걸음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한참 성장하는 수풀은 공간이 있는 틈새를 파고들며 등로마저 포위하여 앞을 가로 막는다. 더욱이 풀섶의 물방울은 계속하여 몸에 떨어지며 질척거리게 한다. 그러나 온전하게 진행할 수 있는 등로에서는 무리하지 않으며 천천히 달려본다.
13시 곰치재 안내판을 지나 13시 25분, 웅치전승탑에 도착한다. 1시간 25분만에 도상거리 6km를 진행하였다. 이 정도의 속도라면 7시 이전에도 충분히 완주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웅치전승탑>
13시 50분, 만덕산을 오르는 길은 계속하여 된비알이다. 오두재를 넘어 금방 도착할 것 같았지만 만덕산은 쉽게 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15시 정각, 통신탑이 있는 만덕산 전위봉에 도착한다.
<만덕산 전위봉>
<만덕산 정상 삼각점>
만덕산이 정맥의 마루금에 있지는 않지만 다녀오기로 했다. 불과 7분정도 소요되어 도착한 만덕산은 아무것도 보여주질 않는다. 운무 때문에 조망이 갇혔을 뿐만 아니라 거친 오르막의 암릉과 달리 산 자체가 볼품이 없다.
다시 전위봉으로 돌아와(15:15) 슬치로 향한다. 바위로 이루어진 등로가 아름답다. 흑염소 몇 마리가 나의 출현에 놀랐는지 거친 절벽을 따라 황급히 도망을 친다. 누가 방목을 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나중에 이 놈들을 잡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가파른 암릉위의 염소떼>
16시 10분, 호남정맥 첫날 신고식으로는 호되게 알바를 시작한다. 계속 이어지던 표시기가 갈림길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분명히 표시기를 확인하여 왔고, 나침반을 정치하여도 방향이 틀리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림길에서 표시기기 전무하다는 것은 길을 잘못 들었다는 얘기다. 다시 돌아서 우회하는 길이 있는지 확인하며 10여분을 진행해도 빠지는 길은 따로 없었다. 또 그 자리로 되돌아가 갈림길에서 직진방향으로 진행했지만 표시기가 전무하다. 돌아와서 오른쪽 길로도 가봤지만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제는 그 표시기조차도 잘못 된 것으로 생각되어 표시기를 회수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가면 갈 수록 표시기가 많아지는게 이상하다. 이미 10여개를 회수하여 또 다른 봉우리에 서서 확인하니 방향이 틀리지가 않다. 다시 진행하면서 회수한 표시기를 메달아 놔야 했다.
<마재(?) 갈림길, 표시기가 없지만 직진방향으로 나무가지로 가로 막고 있어 우측길로 진행하여야 함>
16시 50분, 이제 세 번째로 그 갈림길에 섰다. 직진이냐 우회전이냐를 고민하다, 일단 직진하기로 한다. 40분의 시간을 허비했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여전히 내가 가는 방향이 맞는지 확인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계속하여 내리막의 등로를 따라 내려서자 시멘트 포장도로로 떨어진다. 지도를 보니 관촌면 회봉리일 것으로 짐작이 된다. 도로를 건너면 능선을 바꿔타는 것이기 때문에 임도를 따라가다 오른쪽으로 능선에 인접하여 마루금이라 생각되는 산줄기를 오르기로 하였다. 10분정도를 달려 내려가자 누군가 잘못 내려섰다가 올라간 흔적이 보인다.
17시 10분, 등로에 이르자 그제야 표시기가 보인다. 1시간만에 마루금으로 복귀하였다. 무엇 때문에 그 갈림길에 표시기가 전무한 지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그 갈림길(나중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갈림길은 마재일 것 같음)에서 오른쪽으로 진행하여야 정맥길로 이어진다.
<먹구름이 몰려 들기 시작함>
17시 30분, 북치를 조금 지난 지점에서 고사리 농장이 보인다. 주인이 함부로 고사리를 채취하면 형사처벌하겠다고 비닐에 메직으로 써 붙인 우스꽝스러운 표시가 보인다. 갑자기 시커먼 먹구름이 몰려들며 폭우를 쏟아 부을 기세다. 임도로 내려서면서 길을 잘못 들었다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었지만 되돌아가지 않았다. 절묘한 타이밍이다.
마을로 들어서자 후두둑 소리를 내며 빗방울이 떨어진다. 하늘을 보니 금새 그칠 것 같지도 않다. 논일을 하다가 부리나케 집으로 들어가는 할머니에게 동네 이름을 물으니 상월리(임실군 관촌면)라고 한다. 아직 해가 질 시간이 아님에도 해가 진 것처럼 온 천지가 캄캄하다.
이제 여기서 그만두기로 하고 차시간을 물으니 7시는 되어야 온다고 한다. 큰 길로 나왔다. 월은리 노인회관 앞에서 비를 피해 서 있으려니 택시가 한 대 왔다. 다행히 빈 택시라 전주시외버스터미널까지 가자고 했다.
<관촌면 상월리>
그런데 신전저수지를 지나자 빗방울이 가늘어지며 비가 멈춘다. 그러면서 엄청난 폭우를 쏟아 부을 것 같았던 하늘은 먹구름도 거두어간다.
이제부터는 갈등의 연속이다. 산행을 더 하느냐 마느냐 내 자신도 도무지 갈피를 못 잡겠다.
결정을 못한 채 그럭저럭 18시를 지나며 택시는 오늘의 목적지인 슬치에 도착한다. 기사가 의아해하지만 여기서 내려달라고 했다. 아무래도 북치까지 다시 되돌아 가야될 것 같다. 택시비가 이외로 많이 나왔다(9,000원). 기사가 심야할증요금으로 미터기를 누른 것을 알고 있었지만 항의하지는 않았다. 그동안 정맥꾼을 많이 태웠다고 하지만 별로 양심적인 기사 같지는 않았다.
18시 10분, 날이 어둡기 전에 북치까지 진행하되 만약 길을 잘못 들었을 경우에는 무조건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길이 나 있는 곳으로 하산하기로 하고 빠른 걸음으로 진행하였다. 계속하여 시멘트 포장도로로 연결이 되어 올라가기에는 문제가 없지만 해지기 전에 도상거리 6.5km를 완주하여야 하기에 신경이 쓰인다.
<최근에 포장된 편안한 등로>
내가 지금 가고 있는 이 길은 완주군과 임실군의 경계이지만, 차로에서 점점 멀어지는지 인기척도 없고 가끔씩 보이는 관촌면 신전리와 상월리 도로도 멀게만 느껴진다. 한번도 쉬지 않고 1시간 30분을 진행하자 삼각점이 보인다. 과연 내가 슬치에서 6km 떨어진 416.2봉에 도착하였는지 확신이 서질 않는다. 19시 40분, 귤하나를 먹고 해드렌턴을 착용한다.
<416.2봉 삼각점>
19시 55분, 삼각점에서 불과 15분이 경과되었을 뿐인데 고사리농장의 접근금지 표시가 보인다. 17시 30분에 지나쳤던 그 지점에 다시 도착한 것이었다. 임도를 따라 내려서며 상월리 마을에 두 번째 도착하였다. 길가에 묶여 있던 개들이 그래도 익숙한 지 처음 내가 지날 때보다는 덜 짖는다.
20시를 지나 익숙하게 마을을 가로질러 포장도로에 이르자 차 한 대가 내려오고 있다. 손을 들어 차를 세워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곳까지 태워 줄 것을 부탁하자 전주까지 태워주겠다고 한다. 순창고추장이라는 회사에 근무한다고 하면서 주말 부모님 집에 들렀다 전주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귀가 중이라 한다.
전화로 서울남부터미널행 시외버스 시간을 알아보니 막차시간이 20시 45분이었다. 얻어 타는 신세를 지는 형편에 염치없지만 그 시간까지 갈 수 있냐고 물어본다. 그 분은 가보자고 하면서 속도를 내기 시작하였다. 앞에는 자신의 어린 아이가 있었지만 내가 더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다.
버스 출발 5분을 남겨두고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하였다. 너무 고마워 만원짜리 지폐를 꺼내 애기에게 과자라도 사주시라고 하자 한사코 거절한다. 명함을 건네 서울에 오거들랑 꼭 전화하라고 부탁을 해 본다. 그 분 덕택에 막차를 탈 수 있었고(8,000원), 역시 막차이지만 지하철을 이용하여 귀가할 수 있었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남아있는 식수를 수건에 묻혀 대강 닦고 여벌의 옷으로 갈아 입는다. 휴게소에 도착하자 몸을 씻은 후 부리나케 헴버그 하나를 사서 차에 올라 남아 있는 음식과 함께 저녁으로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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