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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심법요 심법 마음의 도리, 마음의 도리를 가르치는데 에 대한 요긴한 법문이다
이렇게 말씀 드릴수가 있는데 대지를 전심법요의 대지를 唯傳一心 更無別法 그랬습니다. 전심법요의 근본종지를 이렇게 간추리면 어떤 이야기가 나오던지 말하자면 다른 길로 갈 까닭이 없어요. 대게 불교경전이야기를 이렇게 듣다 보면 잡다한 사이에 낀 이야기들이 많기 때문에 다른 길로 가기가 일수된 그럴 때마다 대지를 잘 기억해서 되세기면은 딴 길로 가는 것을 막아줍니다
대지라는 게 이제 여기서는 唯傳一心 更無別法 오로지 한마음의 도리만을 가르치고 그 외는 다른 법이 없다 이런 이야기이죠. 그러니까 깨달은 분의 관점에서 보면 이 세상 모든 것이 마음하나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이제 일체유심조 그러잖아 일체가 다 이 한마음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니 이 마음을 잘 알아가지고 마음 운전을 잘 하면은 우리가 인생을 어떻게 사는가 하는 문제도 다 해결돼요. 마음운전하기에 다린 거야 그냥 자기 인생이, 어떤 상황이 벌어졌던지 그 상황은 별게 아니에요 사실은 상황은 별게 아니라고 그런데 내가 마음을 어떻게 운전하느냐 거기에 달린 거야
우리가 흔히 아는 이야기로 오늘도 이렇게 비가 오는데 짚신장사를 하는 아들과 우산 장사를 하는 아들 두 사람을 둔 어머니가 있는데 날이 맑으면 짚신이 잘 팔리고 날이 흐리면 비가 오면 우산이 잘 팔리잖아요. 그러니까 날이 맑아도 즐겁고 날이 비가와도 즐거운 길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날이 맑아도 걱정 비가와도 걱정, 걱정하는 쪽으로 마음을 운전하는 거야 날이 맑으면 우산이 안 팔리는 아들 생각에 걱정이고 비가 오면 집신이 안 팔리는 아들걱정이고 마음을 그렇게 쓰면 계속 걱정만 하는 거지
그런데 날이 맑으면 짚신이 잘 팔려서 기분이 좋다 이래 생각하고, 비가 오면 우산이 잘 팔려서 좋다 이래 생각하면 항상 즐거울 텐데 반대로 이제 생각하는 거지 그래서 인생은 그렇죠 뭐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좋은 방향으로만 어떻게 하든 좋은 방향으로만 생각하고 스스로 이제 그런 훈련을 쌓아야 되는 거죠
그게 이제 불교에서 일체유심조라고하는 이치를 잘 배워가지고 마음 운전하는데 내 인생이 달려있다 내 인생은 내 마음 하나 운전하는데 달려있다 이렇게 그 이치를 알고 사는 것 이게 이제 말하자면 불교 공부한 소득이라
가족을 일찍 잃은 사람도 생각하기에 달린 거야
나는 팔자가 좋아서 40에 벌써 혼자되었다
얼마나 복이 많으면 40부터 혼자 사는지 모르겠다고 허~허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거예요.
그런데 백년회로 한다. 그건 또 그것 데로 좋은 것 아니야, 얼마나 좋아 사실은
그런데 또 일찍이 혼자되어서 자유롭게 사니까 그것도 생각해보면 아주 좋아
그러니까 이 마음 하나먹기 달려다는 것 그걸 다 알아 알기는 알아 근데 얼마나 깊이 있게 아느냐 요게 문제라
그래서 그것을 제대로 이제 내 살림살이가 되도록 내 공부 내 인생관이 되도록 하는 데는 자꾸 성인의 가르침을 배워야 되고 자꾸 경전을 보고 성인의 아주 큰 깨달은 분들이 그냥 깨달은 것이 아니거든요 얼마나 큰 희생을 치르고 깨달은 건데 부처님만 보더라도 그렇잖습니까? 태자의 지위를 다 헌신짝처럼 버려버리고 그 예쁜 자식 마누라 다버려버리고 6년 고행하고 그리고 나서 깨달았으니까? 그 뒤에 뭐 전심법요의 주인공 황벽스님만 하더라도 석가모니부처님 못잖은 그런 희생을 치렀을 거라 말이다 속속들이 우리가 그분의 일생을 낱낱이 알지 못해서 그렇지 그러니까 이게 보통 깨달음이 아니라고요
그러니까 이분들의 깨달음을 자꾸 우리가 자주 접하고 거기서 또 이제 생각해 보고 그게 이제 뭐 큰 돈은 설사 아니라고 하더라도 우리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잘 활용할 수 있는 그런 방향으로 이것을 이끌어다가 생각해보는 것 그것이 불교 공부하는데서 얻을 소득이라 그게 소득이라고요
불교공부를 하면 무슨 뭐 요행수나 떨어질 것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은 불교공부 잘못하는 거라 대게 이제 불자들이 무슨 요행수 바라고 절에 다니는 예들이 많죠. 이 자리에 있는 분들은 말고 다른데.... 솔직하게 그런 심리가 있잖아요. 나부터도 있는데 뭘 우리가 깨놓고 이야기하지
그런데 그래도 점심법요를 공부하고 여기서 내 대승경전 아니면 조사어록들 당신들의 그런 그~ 참 피나는 각고 끝에 얻으신 깨달음을 다른 시시한소리 하려고 깨달은 것이 아니니까 그대로 토해놓은 마음에서 우러나는 그런 말씀을 우리가 여기서 귀동냥이라도 자꾸 이렇게 하는 그 인연으로 그래도 이제 어떤 정법의 길로 이렇게 가게 되고 정법의 길로 가야 그게 이제 서로가 소득이 많아요. 괜히 임시로 귀에 달콤한 그런 방편 그것 해봐야 금방 좋은 것 같지만 정작 그것은 멀리 볼 것 같으면 서로가 손해인거라
예를 들어서 좋은 다이아몬드를 두고 구리나 무슨 철이나 뭐 돌멩이이나 이런 것 나눠주는 것하고 우선은 그게 필요한 것 같이 생각이 들는지는 모르지만은 서로가 손해가 많죠. 주는 사람도 보시를 시원찮게 해서 큰 복 못 짓고 받는 사람도 별 가치 없는 것 받아가지고 큰 복 못 짓고 우선 돌멩이 하나 방에 갖다 놓으면 예쁘게 볼일는지는 모르지만 그것 별 가치 없는 것 거든 요 당장에 그런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정말 귀에 스치는 공덕만으로도 큰 공덕이 되는 그런 일심의 도리 대승의 도리 최고의 가르침을 전해주는 사람도 그렇고 받는 사람도 그렇고 서로가 이제 멀리 보면 그것이 제일 큰 소득이 되고 이익이 큽니다.
그러니까 항상 귀만 들고 와서 듣는다고만 하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도 불교 이야기를 할 때도 그런 일심의 도리, 연기의 도리, 모든 현상은 연기로 되었다라고 하는 것 인연의 도리로 되었다고 하는 것 이것도 참 불교가 부처님이 발견한 지극한 도리고 아주 심심 미묘한 그런 법이예요 사실 인연이야기 전부 불교에서 나간 것 아니에요 전부가 연기의 도리로 이 현상은 전부 인연으로 그렇게 되었거든요
그리고 그런 인연을 내가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그런 주인공으로써는 마음자리라
한마음이 어떻게 먹고 하느냐에 따라서 인연이 달라지는 거야
인연은 운명하고 다르잖습니까?
운명은 저절로 내가 어떻게 하고 안 하고 관계없이 돌아오는 것을 운명이라며
인연은 내가 하는데 따라서 달라지는 거야 중간에 달라져
곡식을 심어 놓고 거기에 풀도 안 뽑고 거름도 안 하고 그렇게 놔둔다면 운명이 될지 모르지만 아~이 풀도 뽑아주고 거름도 하고 햇빛도 가려줄때 가려주고 햇빛도 볼 수 있도록 하고 물도 대주고 말이야 이런 식으로 해가지고 곡식이 아주 많이 잘 성장하게 하고 많은 결실을 얻을 수 있도록 그렇게 하는 것은 그건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말이야 그렇게 노력을 기울려써므로 해서 좋은 결실을 얻는 것 거든 그게 인연이라
인은 직접적인 씨앗이고 직접적인 원인 그다음에 연은 간접적인 원인 이런다고요
직접적인 원인과 간접적인 원인 씨앗이라면 직접적인 원인이겠지만 그 주변에 태양, 땅, 비료, 물 이런 온갖 사람의 노력 이것은 간접적인 원인이야 간접적인 원인이 상당히 중요하죠. 우리 곡식을 심는 일에다가 비유, 생각해 보면 간접적인 원인이 얼마나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잖습니까 그게 인연 운명하고 다른 점이 바로 그 점이죠.
운명은 내버려둬도 이건 뭐 어쩔 수 없다 이렇게 생각하는 경우고
인연은 내가 노력하는 데로 그런 위치를 부처님이 많이 이야기 했거든요
상당히 많이 이야기 했어 내가 늘 소개하지만은 사리불과 목건련이 다른 종교의 지도자였었는데 마성이라는 스님을 만나가지고 그 품위에 너무 감동을 했어 당신은 어떤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에 옮기고 또 어떤 분에게 그런 가르침을 공부하느냐 하니까 싯다르타태자가 출가해가지고 성도를 했는데 그분의 가르침을 배웁니다. 이건 뭐 목건련 사리불 그 당시 작은 나라들은 수없이 많아서니까 수없이 많아서요 그러니까 뭐 알 수가 없는 거야 싯다르타 태자가 누군지 석가모니 누군지 모르는 거예요.
그래 그 분은 무엇을 가르치느냐 그러니까 諸法從緣生 諸法從緣滅 我佛大沙門 常作如是說(제법종연생 제법종연멸 아불대사문 상작여시설)이라 모든 것은 일체사람이 하는 일이나 자연현상이나 뭐가 되었던지 간에 전부 인연에 의해서 생기고 인연에 의해서 소멸한다. 성주괴공하고 일체성공과 실패 이런 모든 것들이 전부 인연으로 돌아간다. 라고 하는것 이걸 늘 가르치신다. 그러니까 그 말에 그만 눈이 활짝 띄어가지고 아이 그런 훌륭한 가르침을 가르치는 소위 스승이 계시냐고 얼른 안내하라고 해가지고 당장 거기로 가서 제자들 다 데리고 수백 명 제자를 다 데리고 부처님에게 가서 계종하고 귀의를 했거든요.
인연의 위치를 우리가 이해하고 또 거기에 따라서 우리가 생활을 한다고 하는 것은 불자들만의 특권이고 대단히 아주 중요한 일이에요
뭐 유교에서나 다른 종교에서도 선행을 권장해요 권선징악을 하지만은 그걸 인연으로 개입시켜서 연관시켜서 이야기는 안 한다고 그저 좋은 일해라 좋은 일해라 그러면 세상이 좋아지니까 착한일하면 세상이 좋아지니까 그런데 그것이 어떻게 원인이 되고 결과가 되는지 그런 구체적인 그런 인연의 이치를 다른 종교에서는 이야기를 안 해요 공자나 맹자도 착한일해라고 하지 선한일해라고 하지만은 거기에 대한 전, 후 어떤 결과나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잘 모르거든
오직 부처님 불교만이 인연에 대해서 인연에 대해서 이야기 많이 하는 거라
그것 그 위치 하나만이 이 세상 살아가는데 참 좋은 그런 가르침이고 그중에서 특히 유전일심법이라고 해가지고 전심법요에서 말하는 일심사상 이 한마음의 도리, 한마음의 어떤 위대성, 한마음의 힘, 이건 힘이라고 말해야 돼요. 한마음의 힘이라고 하는 것은 대단한거야
예를 들어서 우리가 착한 일을 한다고 하는 것도 한마음이 좌지우지 하는 거예요. 결국은 주인은 한마음이라 한마음이 들어서 착한일도하고 나쁜 일도 하니까
그래서 한마음의 도리를 우리가 제대로 알면 그야말로 도통을 하고 견성성불을 하는 것이고 중간정도만 알아도 한마음의 이치를 중간정도만 알아도 인생을 아주 밝고 긍정적으로 살 수가 있는 거라 왜냐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라고 하는 여기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고 내 마음이 잘못되었다 내 처지가 문제가 아니고 내처지 같은 사람 수천수만도 넘는데 그 사람은 내같이 생각 안한다. 내가 마음을 잘못 먹었구나? 이렇게 해서 마음을 확 바꿔가지고 생각할 수가 있는 거지
내가 간혹 이야기 하지만은 그전에 월내 관음사에 향곡스님 사실 때 거기에 어떤 거지들하고 친해놓으니까 그 사람들이 나중에 스님 뭐 할 짓이 없어서 스님 합니까? 우리는 좋다고 하는데 세상 다 버리고 좋다고 하는데 그 사람 거지가 보기에는 거지보다 못한 짓하고 있는 거야 그게 전부 마음먹기 달린 것 아니야 결국은 그 사람들은 그 사람마음에 그게 좋으니까 스님 생활하는 것보다 훨씬 좋게 보여 가지고 뭐 할 짓이 없어서 스님 생활합니까? 이러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참 마음이라는 것이 이게 참 요술과 같은 거라
정말 그야말로 요술쟁이라 마음먹기 달려다고 하는게 이게 흔히 하는 말이지만은 크게 믿음이 안가 가지고 마음이 도리에 대해서 그렇게 확신이 적습니다.
그래 이제 마음의 도리를 제대로 알면 도통을 하고 견성성불을 해서 부처와 조사가 되는 것이고 보통만 알아도 우리가 이렇게 귀로 이렇게 자꾸 듣고 눈으로 보고 이렇게 해서 자꾸 그런가. 그런가. 이렇게 사유를 자꾸 함으로 해서 중간정도만 마음의 위치를 알아도 상당히 인생을 긍정적으로 살 수가 있습니다. 이 대단한 재산이에요 이게 마음에 대해서 우리가 이해한다는게 그런 사례들이 무궁무진하죠.
오늘 8번 도를 닦는 다는 것
배휴라고 하는 삼국벼슬을 한 아주 훌륭한 분인데 이분하고 대화이지 않습니까?
問 如何是道며 如何修行이닛고
배휴가 묻기를 어떤 것이 도면 어떻게 수행합니까.
우리가 도도하니까? 제일 관심사죠 이게 불도라 이렇게도 말 할 수도 있고 그냥 도라고도 하고 뭐 불교라고 해도 좋고 그렇습니다. 무엇이 도면 어떻게 수행합니까? 그러니까 황벽스님말씀하시기를
師云 道是何物이관대 汝欲修行고
글쎄 나는 도에 대해서는 우선 나두고 도가 무슨 물건이긴데 이 기회에 그대가 그것을 닦으려고 하는가? 무슨 물건인지부터 우리가 우선 밝혀놓고 그걸 닦을 것인지 닦는 것이 아닌지 그건 은 나중 문제이니까 도가 도대체 무슨 물건이냐 그러니까 배휴가 묻기를
問 諸方宗師相承하야 參禪學道는 如何닛고
여기 이제 황벽스님은 도가 무슨 물건이기에 니가 닦으려고 하느냐 라고 하는 말 속에는 아예 도를 부정하는 거야 아예 부정해 버리는 거야 그런데 부정하고 나서니까 배휴가 제방에 종사들이 서로서로 이어오면서 부처님으로부터 석가, 가섭, 아란, 상납하수, 우바국 따로 무슨 쭉 이렇게 대외로 조사들이 이어오잖아요. 그리고 이 당시만하더라도 또 달마스님, 혜가스님 승찬, 도시, 홍인, 육조 이렇게 쭉 이제 이어오는 종사들 종사라는 것은 그런 뜻입니다 그런 아주 훌륭한 도승들을 말하는 거죠. 어느 한 지역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곳곳에 있으니까 그래서 제방이라고 하는 거죠 제방에 많은 큰 종사들이 서로서로 그 도를 이어온다 이거야 참선수행해서 도를 이어오지 않냐 그 사실은 어떻게 하겠느냐 참선학도 참선을 해서 도를 배우고 있는데 그건 뭐니까? 스님 왜 그런 사실이 있는데 불구하고 왜 부정하느냐 이렇게 물었죠. 사실 물을 만하죠. 이게 분명히 물을 만합니다. 딴 데 말이야 곳곳에서 절이 있고 절에서 수행한다고 수천수만 명 수십만 명이 큰 스승 밑에서 공부하고 이게 다 도 닦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 이거지 그러니까 이거 중요한 말이야 그 다음이
師云 引接鈍根人語니 未可依憑이니라
둔근 둔한근기의 사람들을 인접한 이끌어 들이기 위한 방편의 말이다
의지할 가없다 未可依憑 의지할 것 없다 그 말이에요
그런 식으로 해가지고 그것 방편으로 둔한사람들을 긁어모아 놓고 하는 거지 의지할 것 없다 이 말이요. 천청변력 같은 소리죠 그 당시 중국에 종사들 도인들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리고 수행하는 도량은 또한 얼마나 많았습니까? 한 총림에 수백 명씩 많은 경우 삼천 명까지도 있는 총림이 있었다니 지금 우리나라도 상당해요 작은 나라치고는 불교공부를 이렇게 경전공부를 하다던 지 모여서 참선을 한다던지 뭐 승속을 막론하고 많은데 는 700~800명씩 모여서 결제를 하고 300~400명씩 이렇게 모여서 참선하고 스님들도 보통 모였다하면 20명,30명,40명,50명 이렇게 모여서 어떤데는 100명이상도 모여서 참선하는 그런 사찰들이 많지 않습니까. 그런데 거기에 대한 이야기라
그건 전부 둔근 근기가 둔한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말씀이다 거기에 의지할 것 없다 둔한근기를 위해서 끌어들이는 방편이 참 무수히 많은데 이런 참선학도 하는 그런 일도 둔한근기를 위해서 펼쳐놓은 방편이다 이런 의미입니다.
또 배휴가 말하기를
云 此即是引接鈍根人語인댄 未審커라
이게 전부 둔한근기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말인즉
상근기 사람을 끌어들이는데 는 무슨 법을 설합니까.
무슨 법을 설합니까. 저 총림에서 종사들이 많은 대중들을 모아놓고 참선학도 한다고 하는데 그건 전부 둔근기를 위한 거라니 상근기를 위해서는 무슨 법을 설합니까. 이제 막다른 골목으로 가고 있는 정도에요
師云 若是上根人인댄
만약 상근기의 사람이라면
何處에 更就人覓이리오
어느 곳에서 다시 사람에게 나아가서 찾으리오.
뭐 600명 700명 모이고 20명 30명씩 모여서 공부한다고 하는 것은 그것 다 둔근기에 하는 사람들이라 거기에 안간 사람들은 상근기라 허~허 맞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런데 간 사람은 둔근기고 상근기는 어디 가지 않는다 이거야
여기 온 사람들도 다 모두 둔근기여 모여왔으니까
어째든 뭐 참선을 하던지 경을 하든지 뭘 하던지 간에
상근기는 다시 사람에게 나아가서 찾지 않는다. 그랬어요.
뭘 구하고 뭘 찾고 하는 일이 아예 상근기는 없다
그렇지 둔근기니까 어디 가서 뭐라도 한마디라도 들을까 하고 또 가서 참선이라도 한다하고 앉자있어 보는 거지
他自己도 尚不可得이온
사실 우리가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내 자신도 그자신도 상불가득이라 오히려 가히 얻지 못한다. 내 자신도 못 찾아, 니가 누고, 또는 나는 누고, 내가 무엇이고, 나의 실체는 무엇인가 이렇게 찾아들어가면요 사실 못 찾아 손에 안 잡힌다고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언가 나의 실체는 과연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곰곰이 생각해 보면 대충생각해도 몸은 사대육신으로 이루어졌고 이게 사대가 각각 지수화풍 사대가 각각 흩어지면 나라 것 없는 거여
또 많은 세포에 의해서 결성되었으니까 이게 또 세월이가면 뿔뿔이 흩어져버리는 거지 흩어질 것은 지금도 사실은 이게 어떤 공한거야 마음도 역시 마찬가지고
나 라는게 없는 거여 그 타 자기도 그 자기라고 하는 것도 오히려 가히 얻지를 못해 나 자신도 얻지를 못하는데 어디 가서 사람 찾고 자시고 사람에게 의지하고 뭐 할게 있느냐 이거지 상근기 사람들은 이쯤 된다는 이거여
何況更別有法當情이리오
어찌 하물면 지 자신도 없는데 지 자신도 공한데 어찌 하물면 다시 특별한 법이 있어가지고 당정 마음에 당하는 게 있겠는가. 마음에 잡히는게 있겠는가. 이 말이여 없어 내가 없는데 뭐가 있겠어요. 내가 있을 때 그다음부터 뭐가 있기 시작하는 거야
아와 아소 그러거든요 내가 있고 그 다음에 나의 것이 있어
뭐 법당도 있고 사람도 있고, 이웃도 있고, 부모도 있고, 자식도 있고, 친척도 있고 온갖 세상이 그때부터 벌어지기 시작하는 거야 내가 있다고 하는데서 출발해 가지고 부모가 나를 낳았다고 하지만은 그것은 상식적으로 하는 소리고 냉정하게 우리가 보면 내가 있으므로 해서 부모가 있어 내가 있으므로 부모가 있다고
그러니까 나 자신도 없는데 그 외 다른 것이 무엇이 마음에 잡히는게 있겠는가.
不見가 教中에 云하되
보지 못했는가. 교 가운데 경전에도
法法何狀고하니라
이법 저법 그게 도대체 무슨 모양인가 말은 그래요
법과 법이 무슨 모양인가 이렇게 이 뜻은 무엇인가 하면은
우리 자신도 따지고 보면 공한 것이고 온갖 현상은 따지고 보면 공하지 않는 것이 없어 전부 상이 없어 모양이 없어 공한거야 텅 비었어 왜냐 연기로 되었으니까 인연으로 되었으니까 그러니까 이것이 우리 몸이 사대육신으로 이렇게 되었고 이런저런 여러 가지 조건으로 몸이 되었고, 저 산에 있는 나무 한그루도 이런저런 인연에 의해서 되었고, 저 흘러가는 구름도, 그렇고 산도 그렇고 일체가 다 여러 가지 조건에 의해서 되었으니까 그 조건이 흩어지는 날 없는 거야 조건이 흩어지는 날 없다고요
내가 늘 비유를 들지만은 법회라고 하는 이것을 두고 생각하면 좋은 거라 우리 법회 할 시간이 되어서 모여서 시간이 끝나면 다 법회라는 것이 없어 우리 육신도 똑 같아요. 우리 육신도 똑같아 이 법회하고 똑같아 그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야 요 법회는 한 시간으로 한정되어 있다면 우리 일생은 예를 들어서 뭐 70년이면 70년 80년 90년 그렇게 딱 시간 차이 일뿐이야 다른 것은 아무것 없어요. 요는 시간의 차이가 잇을 뿐이지 어느 것 하나도 영원불변하는 실체가 있는 것이 없어 그래서 法法何狀고 이것저것 이 도리 저 도리 그것이 무슨 모양인가
그게 아무 것도 실체라고 할만한 것이 없다 이런 말입니다
그렇게 아는게 제대로 아는 거다
云 若如此則 都不要求覓也닛가
만약에 그렇다면 그러면 도대체 아무것도 구하고 찾을 것이 없는 것입니까
뭐 참선을 해서 도를 통한다. 경전어록을 공부해서 소견을 좀 깨우친다. 지혜가 난다 이런 것들 그것 바라고 이렇게 하는데 기도를 해서 일념이 된다든지 아니면 소원성취가 된다든지 등등 우리가 하는 일들은 그 나름대로 전부 구하고 찾는 게 있어 스님 말대로라면 아무 것도 찾을 것이 없네요 이 말이라 아무것도 찾을게 없네요
요 대답이 중요해. 아무것도 찾을 것이 없네요.
師云 若與麼則省心力이니라
만약에 아무것도 찾을 것이 없다고 보면 그 말이여
그렇게 보면 마음에 힘을 들지 힘이 안들지 사는데 힘이 안 든다 이거지
참 요긴한 말이야 중요한 말
인생은 텅 빈 것이다 뭐 세월 가서 무상하지만은 이왕 없어질 것이지만은 지금도 없다고 생각하면 가뿐해 省心力이야 마음의 힘을 덜어 가뿐해져 버려
마음속에 어떤 희로애락이 있다손 치더라도 이렇게 우리가 알면 그래서 평소에 이런 무슨 뭐 라고 할까 주사라고나 할까 사전에 이런 소리를 자꾸 이제 들어둬야 한다니까 귀에 많이 익숙해져야 돼 그러면 어느 날이게 효력을 발휘할 때가 있어 뭐 어쩌다가 돈을 떼어다던지 파산을 했다든지 그래도 본래 내가 아무것도 가지고 나온 게 없는데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고 어차피 다 버리고 갈 건데 이 몸뚱이도 버리고 갈건데 우리 불자들 잘 하죠 이 몸뚱이도 버리고 갈건데 뭐 그 까짓것 좀 떼였기로 손이 내 마음까지 뭐 떼일 것 있나 돈 떼였지 마음 떼이나 하고 그냥 대법하게 큰마음을 그렇게 쓸 수가 있는 거라
그래 마음이 성심력이라 마음의 힘을 든다 이거야
그렇게 생각할줄 알면 어느 것도 어떤 것도 구할 것이 없다 라고 하는 이치를 알면 마음의 이치를 훨씬 들려
그러니까 잘 살려고 할 것도 없고 아무것도 도통할 것도 없고 실지로 그렇게 딱 알면 마음이 홀가분해 기틀처럼 아주 가뿐해진다고요
그게 불교를 통해서 뭔가 자꾸 얻으려고 하는 그런 마음하고 이것하고 영 반대의 길인데 사실은 우리가 우리 감량대로 불교를 이해하려고 해서 그렇지 부처님의 가르침이나 깨달은 사람의 가르침은 우리생각하고 정반대에 있어요.
우리는 불교를 통해서 자꾸 채우려고 하고 얻으려고 하고 많이 쌓으려고 하는데 부처님은 자꾸 비워라 비워라 덜어내라 덜어내라 이런 가르침이라 왜 덜어내라고 하는고. 하면 본래 없는 거야 본래 없는 건데 니는 환상을 보고 자꾸 끌어잡을려고 하고 환상을 자꾸 모으려고 하고 그렇게 한다. 환영을 가지고 그림자를 가지고 자꾸 끌어모을려고 하니까 딱해서 내가 그것 하지 말라고 하는 거다 이 말이여 깨놓고 이야기하면 그것에요
깨달은 사람들의 눈에는 전부 환상 환영 그림자고
그림자를 가지고 우리는 자꾸 끌어모을려고 하는 거라
그러니까 깨어있는 사람이 보니까 우습지도 않지 그래서 꿈 깨라 꿈 깨라 그러는 거라
우리불자들 대다수가 거의다가 이런 전심법요나 조사어록을 우리가 늘 공부해 왔지만은 여기서 더 이상 숨길 것도 없고 우리가 그게 마음에 얼마만치 와 닿아서 그것이 내 것이 되느냐 안 되느냐는 하는 것은 차후 문제고 일단 이야기는 더 이상 나아갈 때 없는 조사스님들의 깨달음의 가르침이기 때문에 거기에 걸맞게 이야기를 해야 될 수밖에 없는 거여
그러니까 보통 우리는 자꾸 우리 인생에 있어서 가벼워지려고 안하고 무거워지려고 자꾸 하는 거야 그래 부처님에게 와서 자꾸 길몽 꿈은 꿈인데 길몽을 꾸게 해달라고 자꾸 비는 거야 길몽을 악몽은 싫고 나에게 손해나는 악몽은 싫으니까 길몽 꾸게 해주십시오. 하는 것 하고 똑 같은 거야 깨달은 사람들은 니가 꿈을 깨라고 했지 길몽 꾸라고 했나 길몽이던 악몽이든 다 이건 꿈이다 깨달은 사람들은 꿈 깨라고 가르치지 길몽 꾸라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야 법당에 와서 내 조르는 것은 길몽 꾸게 해달라고 조르는 것이여 따지고 보면 나부터 라도 그렇지요 뭐 길몽 꾸게 해달라고 그렇지 꿈 깨달라고 와서 조르는 것이 아니잖아 허~허 알고 보니 여척 없죠. 아이고, 내가 뭐 자식이 공부 못하는 것은 길몽이고 공부 잘해서 좋은 학교 가는 것은 길몽이고 공부 못해가지고 자꾸 떨어지는 것은 악몽이니까 악몽 안 꾸고 합격하는 길몽 꾸게 해주십시오. 이 말이거든
꿈 깨라 꿈 깨라 뭐 길몽이다 악몽이다 나는 그건 관심 없고 너거가 꿈 깨기를 바라고 꿈 깨기를 가르친다고 하고 앉자있는 부처님은 우스울 것 아니요
저 꿈 깨라고 하는데 자꾸 꿈꾸려고 자꾸 저렇게 좋은 꿈꾸게 해달라고 하니 좋은 꿈꾸게 해달라고 하니 이게 참 그것은 부처님도 사실 글쎄 그야말로 일부러 어떤 요술을 부려서 꿈꾸게 할런지는 몰라 그렇지만 그런 짓 안 할 거야 아마 부처님은 무슨 요술쟁이나 하겠지 마술사 이렇게 할런지 몰라도
진짜부처님 우리가 알고 있는 도인이나 부처님은 중생들이 아무리 그렇게 길몽 꾸게 해달라고 매달린다고 해서 길몽 꾸게 해주지는 않을 거라 말이라 꿈 깨도록 해주지 어떻게 하더라도 꿈 깨도록 해주지 길몽 꾸도록 하지는 않을 거라
길몽 꾼 사람이 왜 악몽은 안 꾸겠어요. 길몽 꾸면 악몽 꾸게 되어있고
악몽만 있는 것도 아니야 인생은 악몽 한참 꾸다보면 간혹 길몽도 있어 허~허
그 재미로 그냥 안 죽고 살아가는 거지
한번씩 살만할 때도 있잖아요. 그냥 아둥바둥 살다보면 보면 그런 대로 한고비 넘어가지고 숨 푹 쉬면서 이제 살만한 그런 시절도 또 있잖아 살만할 때쯤 되면 또 이제 저세상으로 간다. 또
우리 도반이야기를 해서 안되었지만 옛날에 봉암사에서 참 열심히 정진을 하다가 무슨 인연으로 환속을 했어 거기에 또 아주 사연이 구구절절 많아 소설을 쓰도 한 3권을 써야 그게 500페이지 3권을 써야 다 쓸 수 있는 그런 정도로 참 사람 좋아 내가 만난 사람 중에서 인간성 그렇게 좋은 사람 처음봐었요
인간성 좋은 사람들 다섯 손가락 꼽을 수 있는데 그 사람이 첫손가락에 꼽히는 사람이라 그런 인간성 때문에 환속을 하더라고 인간성이 좋아놓으니까 그렇게 어쩔지 못해가지고 그렇게 내인간성 정도만 되어도 싹 잘라버리고 말텐데 하~하
그 사람은 너무 인간성이 좋아가지고 그래가지고 어떤 스님이 자기 절 주변에 뭐 땅도 있고 뭐 이래가지고 전라도 쪽으로 가가지고 땅도 마련해가지고 고구마도 심고 뭐해가지고 겨우겨우 살아서 고구마를 심고 살 때 내가 한번 가보았다고요 워낙에 사람이 좋고 하니까 도반들이 잘 찾아가 평소에 대게 스님들이 환속하면 싹 안쳐다보거든요 절대 거래안합니다 밉다고 또 그렇잖아요. 같이 공부하다가 뭐 환속해버리면 인간도 아니다 이렇게 해버리는데 이 사람은 아니야 워낙 사람이 좋아놓으니까 도반스님들이 자꾸 찾아가는 거야 가서 걸망도 맡겨놓기도 하고 그냥 가난한집에 가서 실컷 며칠씩 얻어먹고 오기도 하고 나중에 조금 살만하니까 이것보다 그 예기가 재미있죠. 허~허 살만하니까 거기다가 큰방에다 캐비닛을 쭉 사다놓고 이건 누구 캐비닛 누구 캐비닛 그래 가지고 관물함이 되어버렸어 그만 거저 내장산 앞에 있을 때 그랬었어요. 아는 사람은 내장산하면 벌써 그 사람이 누군지 다 알아
그래가지고 하여튼 고생고생하면서 그때 고구마심고 살 때 살기가 어떠냐. 그랬더니 일 년내 농사지어면 골병만 남는다고 그러더라고요 일 년내 농사지어면 골병만 남는다. 그래 그래도 그 일을 몇 년을 했어 하다가 절에 가게를 주었어. 관광사찰이니까 가게가 잘 되는 데라 요지에다 가게를 하나 이제 주었어. 하도 저거해가지고 어떻게 어떻게 그것도 어려운데 어떻게 보면 약간의 부정이지 그게 아는 사람에게 했으니까 그런데 가게를 주어가지고 몇 년 해가지고 아주 살만하게 되었어요. 집도 서울에 아들 공부한다고 한 채 사주고 밑에도 절 밑에도 한 채 사고 그래서 가끔 들여다보았어. 그래 가지고 이제 아이도 하나 있었는데 대학교 가고 뭐 이렇게 했어요. 가게도 다 처분하고 서울 와서 좀 살다가 저기 산중에 강원도 산중에 아주 평생 원이 과거에 공부하던 그게 늘 머리에 남아있어 가지고 토굴하나 산중에 지어가지고 거기서 내가 공부하고 살겠다. 이게 원인거야 평생 원이 그것거야 거기에 미련이 있으니까 그래가지고 강원도 안흥찐빵 많이 나는데 그 집에 간다고 찐빵 많이 얻어 먹었거만 몇 번 대녀거든요. 그래 가기고 거기에 토굴을 아주 잘 지었어. 잘 짓었다기 보다 꼭 절같이 지어 놓은 거야 똑 절같이 집한 채를 나무를 가지고 그렇게 지었는데 그래 가지고 거기서 이제 공부하고 산에나 왔다 갔다 하고 농사 좀 짓고 이제 그렇게 편안하게 안 지어도 살 수 있는 그런 정도 돼가지고 이제 편안하게 공부나 좀 한다고 그렇게 하더니 아니나 다를까 중병에 덜컥 걸려가지고 그만 가더라고요 아이고 그래 좀 살만하니까 그렇게 간 사람들 흔히 우리가 주변에서 이야기는 많이 듣는데 진짜 내 눈으로 일생역사를 훤히 꿰뚫어 아는 사람이 우리도반이 그런 사람이 하나 있었어. 이제 돌아가신 지가 벌써 몇 년 되었어요. 나중에는 경주 동대병원에 와서 죽었는데 결국 살만하니까 그렇게 가더라고요
그래 이제 이러나저러나 인생은 꿈인 것은 사실이야 허 꾼 것은 사실이라고
여기에 이제 심력을 든다. 그랬잖아요.
아무것도 구할 것이 없다 아무것도 구할 것이 없네. 도 마저 구할 것이 없는데
여기는 도를 이야기하잖아요. 다른 뭐 세속적인 명예나 부귀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야 도를 이야기하는데 그 소중한 도를 이야기하는데 그럼 도도 구할 것이 없네요. 이 말이라
그렇게 물으니까 황벽스님이 있다가 그래 도도 구할 것이 없다고 안 다면 마음이 가뿐해지지 이렇게 되잖아 省心力
若與麼則省心力 만약 그렇다면 마음에 힘을 든다.
그렇다면 與麼라고 하는 말은 도불요구멱 요말이라 아무것도 구별하기를 요하지 아니해야 됩니까? 아무것도 구하고 찾을 것이 없네요. 이런 말이라
그렇니까 그렇지 그렇게 이해한다면 마음의 힘을 들지 아무것도 구할 것이 없네요. 하는 것은 말했듯이 도거든요. 세상에 부귀공명이 아니라고요 절대 부귀공명을 구할 것이 없네. 는 그것은 여기서 이야기 상대가 안 되고 도도 구할 것이 없다 이렇게 알면 나머지 여타 뭐 부귀공명은 더 말할 것이 없지 그놈의 부귀공명이 뭐라고 전 개망신을 하고 야단법석을 떤다. 그 뭐 조금 있는데도 먹고 말지 아이고 참 뉴스 듣기가 겁이나 하도 그런 것만 자꾸 나와 가지고 이런 소리 부처님하고 인연되신 불자님들은 이런 소리 자꾸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나야 자기분에 지나친 일을 안 하는 거라 자기 분 넘는 일을 안 아면 망신을 안 하고 사는 거지 그래도
일생을 살면서 망신 안하고 사는 것만 해도 어딘데 거 대단한 일이에요
다 분에 넘는 일을 하고 분에 넘는 욕심을 부리고 부정하게 하고 부정 저지르고 그러니까 그만 망신하게 되는 거지 그게 다 한계가 있거든요 자기능력의 한계가 있고 그런데 그 능력을 넘어가지고 그만 부정을 저질러가지고 더 많이 더 많이 자꾸 하니까 잘 나간다고 해가지고 그냥 잘 나가는 권력남용을 해가지고 여기 그냥 뭐라고 힘을 쓰고 저기도 힘을 쓰고 하니까 저 높은 자리에 있다 해가지고 겁나니까 또 무슨 손해 볼까 싶어가지고 기분 나쁘지 윗자리에서 뭐라고 하면 기분 나쁘지만 나중에 더 손해볼까봐 괘심죄에 걸릴까 싶어가지고 할 수 없이 들어주는 거야 안 사도 되는 그것 뭐 사주고 하~하
아이고, 참 그게 세상에 들어난 것만 그렇지 안 들어난 것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안 들어난 것은 몇 배는 더되죠. 그에 참 아무것도 구할 것이 없다 그렇게만 알면 마음에 힘을 든다. 가뿐해진다 이거야
도도 구할 생각 하지마라 도도 구할 생각을 안 한데 다른 여타 구할 것이 뭐 있겠습니까? 뭐 배고프면 정 먹을 것이 없으면 물이라도 한 그릇 마시지 흘러가는 물이라도 한 그릇 마시고 그 쯤 마음자세가 되면 그다음에 뭐 만포장이라 세상에 지금 갖고 있는 것만 해도 만포장이라 너무너무 풍족하고 너무 많은 거예요 그 마음먹기에 달린 것 아니에요 결국
그래 생각 안하면 늘 부족한 거야 아무리 많이 가져도 부족하고 더더더 하는데 이렇게 봐 버리니까 그만 만포장인거야 있는 것만 해도 아이고 내가 있는 것만 해도 저기 큰 차타고 다니는 것만 해도 기분 좋고 큰 차타니까 더 좋은 거야 그냥 에어컨 안트는데도 에어컨 싹 나오지 운전 안 해도 그냥 싹 데려다주지 운동하라고 조금 더 집까지 10~20분 걸으면 되지 뭐 좋은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야
첫댓글 唯傳一心 更無別法,,, 오직 한 마음을 전할 뿐, 다른 법이 또 무엇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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唯傳一心 更無別法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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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법문 잘 읽고 또 가져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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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음의 도리를 우리가 제대로 알면 그야말로 도통하고 견성성불하는 것이고 중간정도만 알아도 인생을 아주 밝고 긍정적으로 살 수가 있다. 왜냐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내 마음이 잘못되었다 내 처지가 문제가 아니고 내처지 같은 사람이 수천이 넘는데도 그 사람은 내같이 생각 안한다. 내가 마음을 잘못 먹었구나 이렇게 해서 마음을 확 바꿔가질 수가 있기 때문이다. 감사합니다.
모셔 갑니다
마하반야바라밀()()()
삼배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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若與麼則省心力.........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감사합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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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_()_ _()_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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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