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크메르연구소 KHMER INSTITUTE (번역) 크메르의 세계
※ 첨부된 사진은 모두 "크메르의 세계"가 추가한 것임.
캄보디아 명절 (2) : 캄보디아 추석
프쭘 번 : 조상의 날
Prachum Benda : Ancestors' Day
연구 및 집필: 와타니 서이 (Vathany Say)
프쭘 번 날에 절(와트)을 찾은 인파의 모습 (사진: ra’s blog)
캄보디아인들은 대부분의 생명체가 생전에 지은 악업(惡業) 때문에 죽은 후 다시 윤회(輪廻, Samsāra)하여 환생하지만, 어떤 영혼들은 윤회조차 하지 못하고 영계에 속박당해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이 믿음에 따르면, 그 영혼들은 매년 15일 동안만 속박에서 풀려나 생존해 있는 친척들을 찾아오며, 명상과 죄를 뉘우칠 기회를 갖는다고 한다. "쁘라쭘 번더"(Prachum Benda) 혹은 "조상의 날"로 불리는 15일 동안의 관례는, 생존해 있는 친척들에게도 조상들의 업장(業障)을 소멸시키는 데 도움이 될 명상과 기도를 올리는 중요한 기회이다. 이러한 행위를 통해 조상들이 영계의 고통과 비참함에서 벗어나 다시금 윤회를 통한 환생에 이를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일상적으로 "프쭘 번"(Pchum Ben)이라 불리는 "쁘라쭘 번더"는 "제사를 지내기 위해 모인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쁘라쭘"(prachum)은 "함께 모이다"란 의미이고, "번더"(benda)는 "제사" 혹은 "공양"(供養)을 의미한다. 조상들의 영혼이 살아 있는 친척들을 방문하도록 주어진 15일 간은 9월 중순부터 시작해 음력의 한 주기 전체를 관통한다. 2003년의 경우 그 시작과 끝은 9월 11일부터 25일까지였다.
(사진) 프쭘 번 의식에서 바쳐진 음식들을 공양 중인 스님들의 모습 (출처: www.jaunted.com)
프쭘 번은 기간의 15일째인 마지막 날이며, 각 지역의 불교 사원들마다 많은 신도들이 모여 축제를 연다. 하지만 이 마지막 15일째 외에 다른 날들 역시 각각 중요하며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마지막 축일이 되기 전까지의 14일 동안에는, 매일 각각 다른 가문들이 사원의 공양주를 맡아 사원 일을 돌본다. "프쭘 번" 이전의 날들을 "깐 번"(Kann Ben)이라 부르는데, "깐"(Kann)은 "받들다" 혹은 "유지하다"는 의미이며, 각 깐 번 날들은 "제1"부터 "제14"까지의 순번을 부여받는다.
한 가족 혹은 여러 가족들이 "깐 번"의 당번을 맡은 날이 되면, 사전에 친척들과 친지들이 모여 절(와트)에 가 공양을 올릴 준비를 한다. 준비를 하는 동안, 전통적으로 절의 마당에 모셔져 있던 조상들의 납골단지들(urns)을 세척해 본당(대웅전)인 "위히어"(viheara)(역주)에 모신다. 또한 조상들의 성명을 제사에 초청할 영가명부에 올려놓는다. 만일 생존한 친척들이 이렇게 초청할 영가명부에 이름을 올려놓지 않으면, 조상들은 공양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이 일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저녁이면 공양을 맡은 가족 및 여타 참여자들이 함께, 스님을 모시고 위히어에서 명상과 독경을 포함한 불공을 드린다. 이 자리에서 스님은 붓다의 가름침을 전하고, 참석자들에게 축원을 해준 후 조언을 해주기도 한다.
(크메르의 세계 역주) 원래 산스끄리뜨어 "위하라"(vihara [비하라])는 한문으로 "정사"(精舍)라고 하여, 연중 유행생활을 하던 승려들이 우기 중 잠시 머물던 거처였다. 후대로 가면서 이러한 정사는 일시적 거처가 아니라 상설된 수행처의 형식으로 발전했고, 그 후 "절"을 의미하는 말로까지 확장됐다. 캄보디아의 절(파고다)에서는 본당을 "위히어"라고 부르는 것으로 보인다. 크메르어 표기는 "viheara"라고 하여 산스끄리뜨 "vihara"의 원래 자모를 모두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크메르어 음운론의 특성 상 마지막 단모음 "a"는 발음을 안 하기 때문에 일상 화법에선 "위히어"라고만 발음하는 것이다. 태국과의 교전으로 유명한 "쁘레아 위히어 사원"의 경우, "프레아 비헤아르"라고 하여 "비헤아르"로 표기한 경우가 많은데, 이는 크메르어의 일상 화법의 발음만 표기한 영문 알파벳을, 다시 영어식 내지는 한국어식으로 읽은 것으로, 산스끄리뜨어도 아니고 크메르어와도 너무 많이 차이가 나는 발음이라 할 수 있다. |
깐 번 기간 중에는 아침 일출 전에 조상님을 위한 제사음식을 준비한다. 이때는 조상님이 평소 즐기던 다양한 향기와 색깔의 음식을 마련한다. 제사 음식들로는 전통 "놈 언소움"(nom ansom: 다양한 맛을 첨가한 후 바바나 잎으로 만 찰밥)과 같은 단순한 음식부터 "아목"(amok: 다양한 양념과 향신료로 맛을 낸 생선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가 포함된다. 또한 자비의 표식으로서, "바이 번"(bai ben: 참깨씨와 함께 버무린 후 공처럼 만든 찰밥)을 준비해 절 마당의 그늘진 곳들에 뿌리기도 한다. 이 공양물은 가족들로부터 잊혀졌거나 더 이상 생존한 친척들이 없어 굶주리는 영혼들을 위한 것이다.
깐 번 기간 중에는 정오가 되기 전에 초와 향을 태워 올리고, 스님들께 다양한 음식들을 공양한다. 또한 준비되었던 영가명부를 낭송한 후 불태워 없앤다. 이 영가명부의 낭송과 불을 태우는 행위는 조상들의 영혼으로 하여금 자신의 가족들이 있는 위치를 알리는 제식이다. 즉 조상들로 하여금 그들의 제사가 진행됨을 알려 초대하는 행위인 것이다. 스님들은 바쳐진 음식들을 공양한 후(=식사를 마친 후), 다시 독경을 독경을 하며 참석한 가족들 및 초대된 조상의 영가에 관정(灌頂, abhiseka: 성자가 뿌려주는 물세례)을 해준다. 깐 벤은 조상님을 기리고 그들을 위해 선업(善業)을 짓는 기회인 것이다.
(사진) 절에서 열린 프쭘 번 행사에 모인 신도들. (사진: mythi
caldude.typepad.com)
깐 번의 제사는 14일 동안 이어진다. 전통적으로 "프쭘 번"(제사를 위해 모임)을 하는 마지막 15일째에는 가족들 모두가 귀향하여 조상님께 제사를 올린 후, 마을 전체가 잔치를 벌인다. 이 마지막 날은 혹시라도 조상님이 "쁘라엣"(Priad) 영혼이 되었다면, 친척들로부터 공양을 받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에 특히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쁘라엣"은 너무 큰 죄업을 져 가장 비참한 상태에 빠진 영혼이다. 다른 영혼들과 달리 "쁘라엣"은 빛을 두려워하여 기도와 음식만을 향유할 수 있으며, 음력으로 달이 가장 어두운 날에만 살아 있는 친척들과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손님으로서든 가족으로서든 간에 "프쭘 번"에 참석하는 것은 캄보디아 문화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이 날은 재결합과 공동 추모의 시간으로, 자신의 조상에 대해 사랑과 감사를 표하는 날이다. 즉, 영계에 속박되어 있는 이들에게 제사를 올리고 선업을 쌓음으로써, 속박된 조상들이 다시금 윤회를 통해 환생할 수 있도록 돕는 날이다. 이러한 조상들은 환생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스스로 선업을 닦아 평화로운 내적 안식을 획득할 수 있다. 만일 이렇게만 된다면 살아 있는 가족들로서는 더 없이 축복스런 일이 되는 것이다.
(크메르의 세계 역주) 이 명절은 불교식 명절이긴 하지만 스리랑카, 태국, 라오스, 버마 등 다른 남방 불교국가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캄보디아만의 고유한 명절이라고 한다. (<위키피디아 영문판>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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