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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늘어지는 한낮이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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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소년 악보!!
지금도 시골고향엘 가면 동네 어르신들은 이렇게 날 부른다..
그래 악보구나!..니가 벌써 이렇게 컸구나!...
느그 할머니가 어지간히 고생많이 하셨어야!!......하시며
나이가 벌써 이만큼(?) 되었는데도 어릴적 할머니의 얘기를 신화(?)처럼 들려주신다..
이놈 악보는
날만 밝으면 온 동네가 시끄러울만큼
악을 바락바락 써대며 울었고 할머니께서는 언제나처럼 그 손자를 등에 업고는
소리나는 물건이면 아끼지 않고 두드려대며 달래는 일로 사셨는데
어느날 할머니꿈에 저승사자가 나타나
"이제 가실 때가 되셨습니다"했고
"이보십시요..저승사자님!
지금 제가가면 저렇게 날만 밝으면 울어대는 저 어린 손자를
누가 달래주겠습니까..부디 손자가 세 살먹을 때까지만 ......"
그렇게 해서 저승사자를 돌려보냈고
할머니는 내가 정말로 세 살이 되었을때
편안히 하늘나라로 가셨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애틋한 할머니의 사랑과 기억을 더듬어보곤 한다..
지극정성으로 돌보셨던 할머니덕분에
무럭무럭 악보는 자랐고 지금은 눈가에 주름이 보일만큼 꽤 세월을 지나왔다..
군대에서 5년 6개월..그리고 간호사였던 아내를 만나 결혼하고
나의 애니매이션 세월과 함께하는 고등학교 1학년인 큰딸..
또 초등학교 5학년인 작은딸..이렇게 4식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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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무척 |
큰딸..다현이..이놈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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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아이..이놈은 정말 대단한(?)놈이다.. |
가끔은 주변에서
아들하나 또 낳치않느냐는 얘길한다..
대답은 언제나 ..노..이다..
이유는 아들에 대한 애착이 많치않은 것도 있겠지만 또 하나의 식구가 늘어난다면
혹시라도 지금 이 네 식구의 행복(^^)이 깨어질지도 모른다는
정말 울보! 악보같은 생각에서이다..
애니매이션은
푸르디푸른 나의 젊은 청춘을 다바쳐 지금껏 해왔다..
그림을 그리는일이 이토록 어렵고 힘든일인줄 알았더라면
아마도..아마도..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1985년 어느겨울
작은 애니매이션회사에 입문하여 힘겨운고행을 시작하였고
그동안 기억해내기 어려울 만큼 많은 만화영화작품들의 제작에 참여해왔다..
애니매이션이라는게 워낙 작업량이 방대하여
보통 제작량의 일부씩을 분담하여 한다..
그래서 국내창작작품은 물론이고 티비방영되는 외국하청작품들도 거의 대부분을 참여하는편이다..
지금은 연출감독으로 일하고 있으며 주로 미국 워너나 일본에서 제작의뢰하는
작품들을 작업하고 있다..
최근들어 4~5년전부터는
캐리커쳐의 매력에 흠뻑 빠져있다..
꾸준히 틈이 나는대로 습작을 해가며
웹상에서 사진을 전송받아 캐리커쳐를 그리기도 하고
현장 즉석이벤트행사에 나가기도한다..
지난 어린이날 천안 상록리조트에서 캐리커쳐행사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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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먹을 틈도없이
어둠이 깔릴 때까지 줄서있는 아이들을 그려내느라
혼쭐이 났던 기억이 생생하다..
캐리커쳐는 회화적 데포르마시옹...
그 범주속에 맘껏 희화화 할 수 있는 장르이지만
아직은 초상화와 캐릭터의 절반부근에 맞춰져있는
우리들의 눈높이가 좀더 세월이 흐르다보면 많이 변화되어 갈 것이라는 기대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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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아내와 그리고 아이들..
2002년 8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