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음식문화 담양 죽순

[정강김정숙]

김정숙의 음식이야기11

맛과 멋, 선비정신과 풍류의 고장 - 담양

담양에는 대숲만 푸른 것이 아니다. 단아한 선비의 기품이 푸르고,맛깔스런 음식과 청죽(靑竹)의 정신도 푸르다.
대숲에는 바람의 씨앗이 산다. 실바람에도 사각사각 제 살 부비벼 우는 바람이 새끼를 치고, 햇살은 감질나게 서성이다 지나가도 묵향냄새 그윽한 시가(詩歌)가 살아있다. 추월산 , 병풍산을 넘어 흐르는 유구한 세월은 면앙정, 송강정, 환벽당을 지키며 든든한 정신의 지주가 된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라 자연을 닮아가는 것인가. 담양 땅 어디를 가도 비옥한 들과 그리 높지 않은 산, 늘푸른 대숲들은 넉넉함과 훈훈한 인정을 느끼게 한다. 담양의 군목(軍木)이 대나무인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불의에 맞서는 곧은 성품과 탐욕과 이기심을 비워내자는 뜻일 것이다. 대나무는 때로는 분노의 죽창으로, 때론 갈퀴나 참빗, 얼레빗, 소쿠리로 민중의 삶을 지켜왔다.
대는 번성하는 푸르름을 상징한다. 번식력이 강한 늘푸른 나무라는 점에서 소나무와 비견되는 영생과 불변을 상징한다. 십장생(十長生)의 하나이며 영험한 동물인 호랑이가 대숲에 사는 것으로 믿어 많은 그림에도 묘사되어 있다. 결혼식 때 초례상 위에 촛대와 함께 송죽을 양쪽 병에 꽃아 놓고 청실홍실을 걸어 연결하는 것도 신성과 장수, 번성을 기원하는 듯이 함축되어 있다.

오동나무가 아니면 앉지 않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는다고 한다.
대나무는 줄기만 쓰는 것이 아니라 대잎도 유용하게 쓰인다. 방부작용을 하므로 떡을 대잎에 싸서 찌면 며칠씩 두어도 부패하지 않고, 팥을 삶을 때 조릿대 잎을 넣고 삶으면 빨리 삶아지고 더디 변한다. 대잎은 알카리성이 가장 높은 스테미너 건강식품이다. 근래에는 항암작용이 인정되어 대잎과 대나무의 활용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소동파(蘇東坡)가 녹균헌의 시에" 고기는 먹지 않아도 되지만/ 대나무 없이 살아갈 수 없다./ 고기를 먹지 않으면 몸이 야위게 되나/ 대나무가 없으면 사람은 속되어 교양을 잃어버린다./ 허약한 사람을 살찌게 할 수는 있으나/ 속된 것은 고칠 수 없다"고 비유하여 대나무가 옳게 살아가는 길을 감화시킨다는 정신 문화에 끼친 영향을 잘 나타내고 있다.
담양은 기후, 토질, 강우가 대나무의 생육에 가장 알맞아 대의 품질은 물론 죽순의 맛도 최고를 자랑한다.
죽순이란 대나무의 땅속줄기 마디에서 돋아나는 어린순으로 비늘 모양의 껍질에 싸여 땅위로 솟는데 신비한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 식용으로는 3 ~5년생 대나무 뿌리에서 돋아나는 것을 사용하는데 1시간에 2 ~3cm 자라며 죽순이 나와서 대나무로 성장하기 가지 40일 이면 족하다.
한달을 초순, 중순, 하순으로 10일 씩 묶어 순(旬)으로 표시하는데 이는 한다. 이는 싹이 나와서 10일(旬)이면 대나무로 자라기 때문에 서둘지 않으면 못 먹게 된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라 한다.
죽순은 길이가 짧고 연하면서 노란빛을 띠는 것이 좋다. 5월 초순에 나오는 분죽은 제일 맛이 좋고 6월에 나오는 왕죽( 참대)은 독이 없다.
죽순을 캐는 데도 몇가지의 주의가 필요하다. 바람 부는 날에는 캐지 말아야 한다. 바람이 들면 딱딱해지기 때문이다. 박하잎으로 죽순을 싸서 잿불에 구어 사용하는 것이 최상의 죽순이다. 껍질을 벗겨서 삶으면 맛과 향을 모두 잃으며 생순에 칼을 대면 부드러움을 잃는다.
죽순은 정신과 피를 맑게하는 작용과 숙취와 스트레스, 불면증을 해소하고 소변을 잘 나오게 한다. 목민심서에는 흉년에 구황식량으로 대나무 열매가 열거되어 있다. 고유의 아삭거리는 질감과 향취가 있어 옛부터 임금의 수라상에 오르던 죽순요리는 담양의 토속음식으로 별미이다.
죽순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민속의집(강정자. 061)381-2515)에 들어서자 나즈막한 초가지붕과 가즈런한 장독대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윤기나는 장독대에서 할머니는 고추장을 뜨고 있었다. 새끼 손가락으로 찍어 맛을 보았다.집에서 담가 쓴다는 고추장은 윤기가 나고 잘 삭아 맛깔스런 음식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았다.
죽순으로는 다양한 음식을 만들 수 있다. 채썬 죽순을 넣어 지은 죽순밥은 별미이고, 죽순의 등에 다진 고기를 채워 넣고 슴슴한 장국에 끓인 죽순찜은 고급스럽다. 과음한 사람의 속풀이로 제일이라는 죽순탕도 있고, 들기름을 발라서 살짝 구워내는 죽순구이, 죽순에 버섯, 완두콩, 당근, 밤, 은행, 피망 등에 들기름을 넣어 지은 죽순오행밥은 양념장에 비벼 먹는다. 죽순밥의 다섯 가지 색깔은 오행과 음양이 맞아서 음식궁합과 영양이 만점이다.
죽순을 이용한 요리는 다 특유의 맛이 있지만 죽순요리가운데 제일로 꼽히는 것은 죽순회( 10,000원)이다. 죽순에 우렁을 넣고 새콤달콤하게 초고추장으로 무친 요리로 산뜻하여 봄철 잃은 입맛을 돋구어준다. 죽순육회( 20,000원)는 한우고기와 부드러운 죽순을 넣어 양념고추장으로 무친 것이다. 아삭아삭 씹히는 죽순의 맛과 시원하고 단 배, 부드러운 육회가 곰삭은 고추장과 어우러진 맛은 맛있는 음식을 먹는 즐거움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또 독특한 전라도식 갈비구이인 '담양 떡갈비'( 신식당061)382-9901.덕인식당061)381-3991)는 전국유일의 담양전통식 떡갈비로 식도락가들이 즐겨찾는다. 담양에서 기른 한우만을 사용한다는데 갈비에 붙은 살을 떼어 곱게 다져 가진 양념을 하여 동글납작하게 만들어 정성껏 구운 것이다. 한입 베어 물면 입안에서 부서지는 부드러움과 씹을수록 쫄깃한 갈비살의 고소한 맛이 어우러져 한번 먹어본 사람은 오래토록 잊지못하는 담양의 맛이된다.
담양에서 대나무통밥 (대나무통밥집061)382-1999. 대나무숲전통식당 061)381-9595)을 빼고 맛을 이야기 할 수 없다. 대통에 불린 쌀과 대추, 은행, 밤을 넣고 압력솥에서 쪄낸 대통밥은 쫄깃쫄깃 차진 영양밥으로 은은한 대나무 향기를 먹는다. 대나무로 만든 음식은 정신과 피를 맑게 해주고 간과 숙취에 좋다.

10년을 경영하여 초가삼간지어내니
나 한 칸, 달 한 칸에 청풍 한 칸 맡겨두고
강산은 들일데 없으니 둘러두고 보리라

면앙정에 올라 송순의 시조를 읊는다. 면앙정을 지키고 선 참나무 거목은 수백년의 연륜 위에 수없이 많은 연두빛 잎새를 매달고 있다. 저 고운 잎좀봐, 저 귀한 생명들 좀봐. 나도 모르게 그말이 나왔다. 고목 밑에는 제비꽃, 현호색, 양지꽃등 수많은 풀꽃들이 피어있다. ' 땅을 내려다 보고 하늘을 쳐다 본다'는 면앙정에 와서 송순의 여유로운 마음은 짐작으로 대신하고 피고 지는 풀꽃과 너른 들판, 멀리 높지 않은 산세를 둘러본다.
꽃들은 피고 또 지겠지만 꽃이져야 열매가 맺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종종잊고 산다. 한 시대를 달관과 풍류로 살다간 선인들의 숨결이 살아있는 담양에서 맛깔스러운 맛과 풍류를 느끼는 멋으로
'하롱하롱' 벚꽃이 눈처럼 지는 봄날 한나절의 호사를 즐긴다.


2002. 예술광주.봄호 < 맛이있는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