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립 캄보디아군(The Royal Cambodian Armed Forces: RCAF)은 프놈펜에 소재한 최고사령부(SCHQ)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예하에는 육군(육군본부), 해군(해군본부), 공군(공군본부), 헌병대(헌병본부)를 거느리고 있다.
“왕립 캄보디아군”(RCAF)은 1993년 “캄보디아 인민군”(Cambodian People’s Armed Forces)과 또 다른 2계열의 비-공산주의 계열 군대가 통합되어 결성되었다. 당시 이러한 정부군에 대항하는 크메르 루즈 군대 및 또 다른 왕당파 계열 군대가 존재했다. 이 왕당파 계열 군대는 “민족연합군”(The National United Army: NUA)이라 불렸다.
현재 캄보디아 군대는 국방부(The Ministry of national Defense)의 관할 하에 있다.
“왕립 캄보디아군” 내에서 “왕립 캄보디아 육군”이 가장 큰 전투력인데, 그 병력을 각 지방 시도마다 주둔시키고 있다. “왕립 캄보디아 해군”은 군 내에서 2번째로 큰 군사력으로, 바다는 물론 메콩 강, 바쌋(Bassac) 강, 그리고 떤레 삽 호수 및 강에서 작전을 벌인다. 7,800명의 조직원으로 구성된 “왕립 헌병대”는 민간 경찰과 나란히 어깨를 겨루고 있으며, 전국에 걸쳐 모든 시도에 거점을 확보하고 있다. “왕립 캄보디아 공군”은 가장 작은 규모의 조직으로 그 병력은 약 1,000명 정도이다. 공군은 모든 지방에서 공항을 운용하고 있다.(주1) Ian Ramage, Strong Fighting: Sexual Behavior and HIV/AIDS in the Cambodian Uniformed Services, 2002.
(동영상) 캄보디아 국방부의 홍보용 동영상.
1. 군 구
RCAF의 지휘체계는 지리적으로 5개의 지방군구(military regions)와 1개의 특별군구(special region)로 구분된다. 각 군구는 해당 시도의 지역적 구분에 맞춰 다시 여러 개의 예하 지역들로 나뉜다.(주2) Ian Ramage, Strong Fighting: Sexual Behavior and HIV/AIDS in the Cambodian Uniformed Services, 2002.
(역자 주)다른 자료들을 살펴보면 이들 5개 지방군구와 1개 특별군구 외에, 추가적으로 독자적인 1개 보병연대가 이들 군구들과 병렬로 배치되어 있다. 어떤 자료에서는 아예 “7개 사단”이라 표현한 경우도 볼 수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독자적인 보병 연대가 병력 수에 비해 전력이 상당한 부대일 것으로 추측된다.
·제1 군구: 본부는 스떵 뜨라잉(Stung Treng)에 위치. 스떵 뜨라잉과 로따나끼리(Ratanakiri), 그리고 몬돌끼리(Mondulkiri) 도를 관할.
·제 2군구: 본부는 껌뽕 짜암(Kampong Cham: 캄퐁 참)에 위치. 껌뽕 짜암과 쁘레이 웨잉(Prey Veng), 스와이 리엉(Svay Rieng), 껌뽕 톰(Kampong Thom) 지역을 관할.
·제 3군구: 본부는 껌뽕 스쁘으(Kampong Speu)에 위치. 껌뽕 스쁘으와 따께우(Takeo), 쁘레아 시하누(Preah Sianouk: 시하눅빌), 꺼 꽁(Koh Kong) 도 및 께입(Kep) 자치시 관할.
·제 4군구: 본부는 시엠 립에 위치. 시엠 립과 웃더 미언쩌이(Oddar Meanchey), 쁘레아 위히어(Preah Vihear) 도를 관할.
·제 5군구: 본부는 밧덤벙(Battambang)에 위치. 밧덤벙, 뽀우쌋(Pursat), 번띠 미언쩌이(Banteay Meanchey) 도 및 빠일른(Pailin) 도를 관할.
·특별 군구: 본부는 수도 프놈펜에 위치. 껌뽕 츠낭(Kampong Chhnang), 껀달(Kandal) 도 및 프놈펜 자치시를 관할.
2002년, 공동 국방부장관을 맡고 있던 시소왓 시리랏(Sisowath Sirirath)왕자는 캄보디아군 병력이 총 111,232명이라고 발표했다. 크메르 루즈 잔당과의 마지막 전투가 끝나고 그들이 항복함으로써 캄보디아 군대는 평화 시 군사력으로 돌아갈 절호의 기회를 포착하게 되었다.
1999년부터 캄보디아 정부는 “월드뱅크”(World Bank)의 지원을 얻어, 많은 수의 병력을 감축하는 정책을 펴왔다. 그 시범정책으로 2000년 2월부터 그 해 말까지 1,500명의 병사들을 전역시키면서 이 정책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2001년에는 1단계 정책이 추진되어 15,000명의 군인들이 국가의 성대한 환송회 속에 민간인 사회로 복귀했다. 2003년에 시행된 2단계 감군정책은 3만명의 군인과 군속을제대시킴으로써 더욱 큰 성과를 얻게된다. 하지만 이 정책은 부정부패 폭로와 불법적 거래 등으로 얼룩지기도 했다.
3. 캄보디아 군대의 역사
(1) 창 군
왕립 캄보디아군(RCAF)은 1953년 11월 9일에 프랑스-크메르 방식으로 “왕립 크메르군”(Forces Armées Royales Khmeres: FARK)이란 이름으로 창설됐다. 이 창군은 프랑스 식민지와 보호령을 종식시키고, 독자적인 군사조직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었다. “왕립 크메르군”의 임무는 다음과 같았다.
-국가와 국왕의 주권을 보장.
-국가안전과 사회질서, 그리고 법률준수를 보장.
-캄보디아 왕국을 방어.
35,000명이 못 되는 병력을 가졌던 “왕립 크메르군”은 국가수반인 군 총사령관의 지휘 아래 대대급 부대들로 조직되었다.
(2) 크메르 공화국 시대
1970년 3월 발생한 론 롤 장군의 쿱테타 이후군사적 환경은 급변한다. 크메르공화국(Khmer Republic) 정권은 “왕립 크메르군”을 “크메르 국군”(Forces Armées Nationales Khmeres: FANK)이란 이름으로 개칭한다. 캄보디아에서 전쟁이 발생해 국가비상 사태가 선포될 무렵에 “크메르 민족군”은 병력 면에서 거의 20만명에 육박했고, 연대와 사단들로 편성되어 있었다. 군대의 모든 조직은 대통령의 명령과 통제 하에 있었다.
(3) 크메르 루즈 정권 시대
크메르 공화국을 전복시킨 크메르루즈는 “민주 캄푸치아 국군”(National Army of Democratic Kampuchea: NADK)이란 명칭의 새로운 군사력을 창설했다. 그것은 전적으로 크메르 루즈 전사들로만 구성된 군대였다. 다른 군사조직들과 마찬가지로, NADK역시 합참의장(Chief of the General Staff)의 지휘 아래 사단급 조직까지 갖추고 있었다.
(4) 캄보디아 인민공화국 시대 (프놈펜 정권 시대)
1979년 1월 베트남군의 캄보디아 침공으로 --- 이 침공은 냉전체제의 효과에서 기인하였다 --- 크메르 루즈 정권이 전복되고 나자, 캄보디아에는 새로운 군대가 재조직되었다. 프놈펜 정권(헹 삼린 정권)은 처음에 이 군대의 이름을 “캄푸치아 민족혁명군”(The Kampuchean People's Revolutionary Armed Forces: KPRAF)이라 했다가, 이후 “캄보디아 인민군”(the Cambodian People's Armed Forces: CPAF)으로 개칭했다. “캄보디아 인민군”은 규모와 조직 면에서 대대급에서 사단급까지의 부대를 갖추고 있었다.
이와 동일한 시기에 반-베트남 운동이 캄보디아-태국 국경을 따라 형성되었다. 크메르 루즈의 NADK와는 별개로, 2개의 비-공산주의 계열 저항군이 결성되는데, 하나는 “크메르 민족해방군”(The Khmer People’s National Liberation Armed Force: KPNLAF)이고, 다른 하나는 “크메르 독립을 위한 민족군대”(the Armées Nationale pour Khmer Independent: ANKI)이었다. “크메르 독립을 위한 민족군대”는 원래 “시하누크 민족군대”(Armées Nationale Sihanoukist: ANS)라 불리던 조직이었다. 이들 두 조직의 군사적 전개 양상은 작은 무장조직에서 사단급까지 편제했다는 점에서 외형 상 동일했다.
냉전체제의 이데올로기적 경쟁의 영향과 일부 강대국의 끼어들기로 인해, 캄보디아는 불안정한 환경 속에 놓이게 된다. 1991년 10월 파리에서 평화조약이 서명될 때가지, 1970년 이후 이러한 상태는 20년 이상을 지속하게 된다.
(5) 캄보디아 왕국 시대(현 체제)
평화로운 선거를 통해 최초의 정부가 구성된 직후인 1993년에, “왕립 캄보디아군”(RCAF)은 캄보디아 내의 유일한 합법적 군사조직으로서 다시금 새롭게 결성되었다. 크메르 루즈의 NADK를 제외하곤 모든 정파의 군대가 하나의 국가적 군대에 통합된 것이다.
안보 불안 문제를 불식시키기 위해, 캄보디아 정부는 1995년 중엽부터 윈-윈 전략에 착수했다. 이 정책은 캄보디아 국왕의 군림 하에 국가적 화합과 통일 노력을 경주하여 내부적 불안을 종식시키려는 것이었다.
1996년 초부터 크메르 루즈 부대들의 항복이 이어졌다. 훈 센 총리의 윈-윈 전략은 마지막 크메르 루즈 게릴라 부대가 RCAF안으로 흡수되는 1998년 후반까지 지속되었다. 크메르 루즈의 정치, 군사적 조직이 완전히 분해되고 평화롭게 전국의 모든 지역이 정부의 통제권 안으로 들어오는 과정은 역사적인 것이었다.
정부가 정한 정치적 가이드라인에 맞춰 RCAF는 현재도 지속적인 개혁을 추진 중이다. 이 가이드라인은 감군을 통해 적정한 능력을 배양하고, 군대에 도덕성과 위엄을 갖추도록 하려는 것으로, 향후 캄보디아군을 국제적 표준에 발맞춰나갈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
또한 RCAF는 역내 공동체 내 국제적 공조를 통한 공동이익 달성과 평화를 실현한다는 계획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
(크메르의 세계 추가해설)
"왕립 캄보디아 군 총사령부"는 일반적인 다른 국가의 "합참본부"와는 약간 다른 특성을 보여준다. 병력 면에서 주력군이라 할 수 있는 각 군구들(사단급)은 육군본부 예하에 배치되어 있지만, 실제 공병사령부나 주요 포병병력 등 후방지원전력이 육군본부보다 상위인 "군총사령부"에 직접 배속되어 있어서, 종합적인 전술훈련은 육군본부 독자적으로 수행할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 또한 "911 공수여단"과 "70여단" 등 주요 특수부대들도 육군본부의 통제권이 아닌 군총사령부 예하에 직접 편제되어 있다. 이는 단순히 작전권만 행사하는 합동참모본부(합참) 구조와는 다른 상당히 강력한 군령권 및 일부 군정권도 소유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