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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판 여행 기행문 ■
2015년 11월 9일 4박 5일 일정(9일~13일)으로 우리 세노모임 친구(사빈, 재화, 수연, 선숙) 네명은 사이판 여행길에 올랐다. 인천국제 공항에서 6시 반에 만나기로 하여 우리는 대전에서 2시 40분 리무진을 타고 출발하여 30분 정도 일찍 도착해 캔디여행사 사장님의 지시로 수속을 일찍 마치고 사장님깨서 사주신 갈비탕까지 맛나게 얻어먹고 면세점을 돌아보다가 10시 10분 이륙하는 제주항공에 올랐다. 사이판 여행을 계획한 기간은 1년... 모임에서 약속하고 계획했었지만 날짜가 근접해 올수록 친구들은 이런 저런 핑계로 물론, 당사자들에게는 피치 못할 사정이었겠지만 8명의 모임인원 중 4명만이 움직이게 되었다.
어려운 계획을 한만큼 소수인원일지라도 그냥 강행하기로 하였다.
재화의 어릴 적 친구 사적 항렬로는 아줌마벌이 된다고 하였다. 그 친구가 사이판에 살고 있어서 여행지를 그쪽으로 잡긴 했었지만 우왕좌왕 하다가 시간을 다 놓쳐버리고 임박해서 많은 애로점들이 따랐다. 설상가상으로 재화 친구와도 연락이 닿지를 않아서 난감하기도 하였지만 캔디여행사 사장님께서 백방으로 애써 주신 덕에 부득불 제주항공을 이용하게 되었고 호텔도 현지로 수십번 연락을 취해 가며 겨우 잡았다고 하였다.
암튼 우여곡절 끝에 여행 날짜에 맞춰 움직이게 되었다. 우리가 출발하기 전전날 재화 친구와 다행히 연락이 닿았는데 국내에 들어와 있은 지 2개월이 되었다는.... 그 친구는 토요일에 출발하고 우리는 월요일에 출발하게 된 셈이다. 새벽 세시 반쯤에 사이판 공항에 도착하여 입국 수속을 하는데 어머나,,,,, 세상에 끝도 없는 입국수소 행렬.... 온통 중국 여행객들 판이었다. 우리가 도착하기 15분 전에 중국인들을 태운 비행기와 아시아나 항공기가 도착하여 그들부터 수속하느라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한 2시간 정도 걸린 것 같다. 날이 훤히 밝아 오고 있었다.
여행일정 하루를 넘겨 새벽시간 사이판 공항에서 한국인 가이드 이윤준씨를 만났는데 첫 인상부터가 푸근하고 편해 보이진 않았다. 많은 시간 입국 수속하느라 지쳐 있어 그런가 짜증부터 앞섰다. 공항에서 그랜드 브리오호텔까지는 15분 정도 걸렸는데. 날씨는 새벽이라서 그런지 그리 덥다라는 느낌은 없었다. 공기가 좋아 그런지 하늘에 별이 정말 초롱초롱 바로 머리 위에 있는 느낌이었고 달의 모양은 우리나라 초승달 모양이었는데 특이한 것이 태양의 높이 차이 때문이겠지만 밑으로 뒤집어진 눈썹 모양이었다.
호텔 Check In 후 씻고 조금 눈을 붙이기로 한 후 9시에 호텔 조식을 먹고 10시 반에 가이드와 만나기로 하였다. 그곳 시간은 우리나라보다 딱 1시간가량 빨랐다. 11월 10일 가이드와 만나 전쟁의 상흔이 그대로 남아 있는 일본군의 마지막 요새 일본군 최후 사령부이자 2차 세계대전 중 우리 민족들이 억울한 죽음을 당한 장소 그 곳을 찾아갔다. 잠시 희생자들의 넋을 달래기 위해 마음속으로 기도를 올렸다. 전쟁의 슬픈 사연을 간직한 태평양의 바다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자살절벽과 만세절벽.
이 절벽들은 풍경과는 어울리지 않게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었다.
일본군들이 사이판을 사수하기 위해 전쟁을 벌였는데 그 이유는 일본에서 가장 가까운 섬이 사이판 섬이라고 한다. 이곳을 사수하고자 했던 이유는 미국에서 설치하는 원자폭탄을 막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이 작전을 수행했던 사이판 사령관은 일본의 사이또 장군.
이 사람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정신대와 731부대에서 자행한 마루타 실험. 그런 부대를 만든 사람이다. 이 작전에 실패하자 군사들은 자살절벽에서 뛰어내려 자살할 것을 종용. 이를 따라 일본인 민간인들은 뒤편 산 만세절벽에서 함께 뛰어내려 자살을 했다고 한다.
작전명령은 옥쇄작전. 일본군 한명이 미국군 7명씩을 죽이고 죽으라는 작전명령. 참 대단한 민족들이다. 그 전쟁 때문에 사탕수수 농장에 노무자로 끌려왔다가 총알받이가 되었던 무고한 우리 민족들도 이때 25,000명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작전 실패 후 사이또는 미국군에게 승복 않고 할복자살한 것을 미국군들이 발견했다고 했다. 일본 본국에서는 사이또를 영웅으로 치부하나 우리에게는 나쁜 전범.
이때 시대적 배경으로 만들어진 드라마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여명의 눈동자”인 것이다.
전쟁에 지고 난 후 미국이 원자폭탄을 설치하게 되는데 사이판에서 비행기로 7분 거리인 티니안섬에 2개를 설치해 놓는다. 그 원자폭탄의 이름은 뚱뚱보와 거리의 소년.
원자폭탄을 설치한 섬은 평평한 평지라서 활주로로 이용하기 용이 사이판은 그런 평지가 없어서 그 섬을 그토록 사수하려 했던 것.
그 원자폭탄이 나가사끼와 히로시마에 투하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되었던 것.
그러면서 우리는 해방을 맞게 되고.
그렇게 죽어간 사람들을 위해 일본인들은 자살절벽 해변에 위령탑을 설치해 놓았는데 그곳에는 군데군데 껌이 붙어 있었다. 우리 민족들이 그들 때문에 억울하게 돌아가신 우리 민족들을 생각해 반감의 의미로 그렇게 붙여 놓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 모두는 잠시 눈을 감고 묵념의 기도를 올렸으며 너무 환상적으로 멋진 푸른 바다를 내려다보며 머릿속에 여명의 눈동자 드라마 장면들도 회상해 보았다.
이곳 바닷가는 산호섬이라 우리나라처럼 비릿한 바다 냄새가 나질 않았다. 해조류가 없으며 산호초로만 이루어져 있어서 그런 것. 그리고 바다 수평선을 멀리 보아도 신기하게도 한국에서 보는 수평선은 일직선인 반면 사이판의 수평선은 원처럼 그려졌다.
“지구는 둥글다”라는 이론을 실감하게 만드는 풍경이었다.
사이판에서 가장 높고 큰 산이 타포차우산이라 했는데 해발 460미터. 거기서 보면 바다 모양이 360도로 보인다고 하였다.
아직도 총알받이 흔적들이 여기저기 남아 있는 풍경들을 뒤로하고 우리는 새섬으로 향했다.
산호 방파제에 둘러 싸여 새들이 낙원이 된 아름다운 남태평양의 작은 섬 새섬.
새섬은 위에서 보면 갈매기 모양으로 보여서 그렇게 불리기도 하지만 새들이 지금은 낮이라 다 들어가 잠을 자고 있다가 밤이면 나와 활동한다고 해서 새섬이라고 불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곳에서 배를 타고 1시간 50분정도 50키로 나가면 마리아나해구라고 부르는 곳이 나오는데 모든 태풍이 거의 그곳에서 만들어 진다고 했다. 우리가 잘 아는 태풍 매미도 이곳이 근원지라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수심이 깊은 바다.
제주항공이 하늘에 뜨는 높이가 11,000미터 인데 그 높이를 가름해보면 쉽게 이해가 될 듯하다. 해발로 따져서 세계에서 가장 깊은 바다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다음은 천연 자연동굴로서 최고의 다이빙 포인트인 그로토 동굴도 돌아보았다.
그로토 동굴은 바다 표면 그러니까 수면을 통해 동굴 안으로 빛이 투과되는 과정에 산호들 때문에 바닷물 색깔이 각기 다르다고 하였다. 그곳에서 그림처럼 다이빙을 즐기는 여행객들만 구경하고 동굴 형상이라 그런지 너무 습하고 더워 더 머무를 수가 없었다. 많은 부분 사진에 담고 우리는 점심 식사를 하러 움직였다.
중식은 컨트리하우스에서 스테이크를 먹었는데 분위기와 음식 맛 그런대로 좋았다.
점심을 먹고 호텔로 돌아와 새벽에 움직인 관계로 피곤하다며 잠시 휴식의 시간을 갖고 석식으로 6시에 현지식 참치회가 준비되어 있다는데 취소하고 재화 친구 부부를 만나기로 하였다. 호텔로 돌아와 가이드는 잠시 미팅을 하자고 하였다. 이곳은 미국해이기 때문에 어떤 일이든 미리 예약이 필요한 만큼 이 시간 이후 선택 관광을 미리 정하고 예약해 두어야 한다며 우리를 불편하게 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불친절하여 마음 내키는 부분도 하나 없는데 그래도 우리는 의사표현을 해 줘야 하므로 협의 끝에 마나가하섬에 가서 파라세일링(80$)만 하기로 하였다. 그 다음 사항들은 다시 생각해보고 알려주겠다. 했더니 지금 결정하지 않은 사항은 안된다는.... 그 이후부터 가이드가 우리에게 베푸는 친절이란 짐작 그 이하였다.
우리가 그에게 돈으로 보이겠지만 그래도 가이드로서 최소한의 소임은 해야 하지 않은가? 나름 많은 여행을 해 보았지만 정말 최악이었다. 어떤 사항을 재 질문하면 몇 번을 설명해야 하냐는 둥 이제 말하려고 하니까 기다리라는 둥. 우리의 말을 끊어 버리는 것은 다반사고 그 뒤 친절한 설명은 NO, 그저 식사시간에 식당 데려다주고 호텔에 데려다 주는 것 외에는... 우리도 쌩까고 그렇게 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 최악은 마지막 공항에 실어다 주면서 일상적인 작별인사 하나 없이 짐 부려 놓듯 하였다. 그저 우리들도 지나가는 빈말 수고했습니다가 다였고 그 친구는 차에서 내려 공항 안까지 들어와 보지도 않고 오른쪽 왼쪽 지시대명사만 난발 한 후 쓩~ 가버렸다. (나쁜시끼 욕이 저절로 나왔다.)
그렇게 11월 10일 저녁은 친구가 데리러 와서 한인이 하는 식당으로 움직였는데 여기가 한국인지 사이판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한국식당 분위기.... 한국에서는 냉동 참치회만 먹어봤었는데 이곳에 오니 바로 잡은 생 참치회가 일미였다. 입안에서 살살 녹는 듯한 느낌.
참치회를 먹고 이어서 생 갈비구이에 된장찌개로 마무리를 하였다.
친구 남편께서도 합석하여 반가움을 더했으며 그분은 현지 호텔지배인으로 일하신다고 하였고 친구는 임대업을 하고 있었다.
처음 호텔에 입실해서는 기대 이상으로 쾌적하지 못하고 곰팡이 냄새가 너무 나서 짜증이 났었다.
그런데 그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부터 아하~ 하고 이해하게 되었다.
8월에 아주 큰 태풍이 한번 강타해서 사이판을 전쟁터같이 만들어 놓았는데 미쳐 복구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2차로 또 10월에 한번 더 강타했다고 했다. 아름들이 나무들이 가로로 누워 있는 것들이 많이 보였으며 건물들은 지붕이 다 날아가고 뜯기고 부서지고 아직도 복구되지 않아 풍경이 아주 안좋았다. 그 친구는 우리들이 때를 잘못 맞추어 왔다고 안타까워했지만 그런대로 있는 모습 그 자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기억하는 대부분의 큰 태풍들은 근원지가 이곳 사이판에서 만들어 진다고 하였다.
태풍 후 자가발전이 있는 호텔 등에 주민들을 대피시켜 생활하게 했었으며 전기가 끊긴지 한달 후쯤에서야 연결이 되었다니 이해 못할 것도 없었다.
습한 날씨에 전기도 없었으니 뭐 가전제품에서부터 생활용품에 곰팡이가 서식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인 듯.... 그렇지만 한국에 있는 캔디여행사 사장님께서 사이판 여행사로 여러번 전화 연락 후 보다 쾌적한 환경으로 바꿔 주셨다. 그래서 머무는 내내 좋은 분위기에서 잘 여행하고 온 셈이다.
11월 11일 삼일째 되는 날은 마나가하섬엘 가기로 하였다.
조식 후 아침 10시 반에 가이드와 미팅 후 배를 타고 마나가하섬에 도착했는데 또 말을 아꼈던 가이드 때문에 우리는 또 분통이 터졌다. 락카룸에서 수영복을 갈아입을 거라고 챙겨 갔는데 우리를 바로 파라세일링을 할 수 있는 배에 옮겨 태우는 것이었다.
물론 몸이 바다에 빠져 옷은 다 젖을 수 밖에.... 암튼 파라세일링을 하는 동안은 정말 신나고 즐거웠다. 일전 태국 갔을 때 한번 타 보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2인 1조로 타서 그런지 더 신나고 좋았다. 배를 운전하는 현지 원주민 때문에 더 즐겁기도 하였지만 좋은 경험이었다. 그 놀이를 즐긴 후 우리는 해변가로 이동해서 그곳 파라솔에서 일광욕을 즐기며 구명조끼를 빌려 입고 수중마스크까지 착용한 후 잠시 몰속 놀이를 하였지만 바람이 세고 수영도 미숙해 길게 즐길 수는 없었다.
점심은 바닷가에서 바베큐 요리로 즐겼으며 저녁은 한식으로 오징어 볶음 같은 음식을 먹었다.
저녁을 먹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가이드 속에 불을 확 질러 버렸다.
호텔이 아닌 쇼핑센타에 내려 달라고 하였으니 그도 우리가 너무 미웠겠지?
쇼핑센터도 사이판에 그곳밖에 없다고 하였다. 쇼핑센터 밖에서는 원주민들이 쇼를 하였는데 그들과 섞여 기념촬영도 하고 지인들에게 선물할 작은 선물들도 구입 한 후 호텔로 돌아와 일찍 쉬었다. 여기가 휴양지다 보니까 여행 일정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11월 12일인 내일은 하루 종일 자유시간. 우리가 더 이상의 옵션을 선택하지 않은 관계로 한가한 편이었다.
마침 재화 친구가 오후 시간에 우리와 만나 사이판 주변 드라이브를 시켜 주겠다고 하여 가이드가 점심 먹을 장소에 실어다 주었는데 어제 저녁 먹은 그 식당이었고 점심 메뉴는 비빔밥이었으나 그런대로 맛은 괜찮았다. 점심을 먹고 그 친구를 만나 사이판 서쪽으로 한바퀴 구경하고 그 친구 남편이 근무한다는 호텔로 가 보았으나 그분이 없다고 판단. 다른 한인이 운영하는 커피숍을 찾아갔는데 그곳에서 우리는 과일 쥬스를 마셨고(고새 뭔 과일이었는지 잊어버렸네 에잉) 거기서 친구가 아는 사람을 만났는데 그분도 여행사를 운영한다고 하였다. 그 친구 지인이 피자와 빵까지 주문해 주셔서 맛나게 먹고 호텔로 돌아와 석식을 즐기러 갔다. 이미 피자와 빵으로 배가 그득하였지만 그래도 끼니는 때워야 했기에 가이드를 따라 갔다. 현지식 식사라 해서 약간 기대를 했었는데 흐미 닭구이 한 점에 갈비 한 대, 쏘세지 구이가 전부.... 뭐 아무거나 잘 먹으니까 그래도 난 접시를 말끔히 비었지만 수연이는 포장을 해 달라해서 호텔로 가져왔다. 물론 맛도 별로....
11월 13일 내일이면 우리는 돌아가야 하기에 마음이 급해졌다.
발리에서처럼 호텔 수영장에서 실컷 놀 것이라고 단단히 벼르고 왔는데 그럴만한 시간이 없었다. 물론 호텔 수영장이 7시까지 밖에 운영되지 않아서 더 그랬는데 마지막 날은 9시까지 운영한다고 하여 수연이와 난 수영장으로 내려가 긴 시간동안 신나게 놀았고 선숙이는 물이 싫다며 마다했으며, 재화는 친구와 다시 만나 뭐가 그리 할 말이 많은지 늦은 시간에서야 돌아왔다.
서둘러 짐을 싸고 호텔 Check Out 후 7C3403 제주항 비행기에 탑승하는 과정에 또 한번 쇼를 했다. 게이트를 잘못 알아 모두 공항 안에서 달리기를 했고 다행히 시간 안에 무사히 탑승해서 인천공항에 오전 8시 20분 도착. 짐을 찾고 재화가 갈비탕을 사 줘서 맛있게 아침 식사를 마친 후 또 우왕좌왕하며 리무진 버스표를 예매하고 3시간가량 달려와 대전 도착.
4박 5일 동안 고운 추억을 함께 쌓고 무탈하게 여행한 재화. 수연이, 선숙이 친구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또 다음 기회를 손꼽아 기다리며 우리 함께 잘 지내보자고....친구들아 사랑해.
■ 간단한 사이판 정보 ■
사이판은 에머럴드 빛의 깨끗한 바다와 오묘한 색깔을 내는 산호초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섬이다. 자연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청정지역이어서 사랑받고 있는 해양 스포츠의 천국이다.
사이판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마나가하섬은 여행의 여유로움을 더하는 휴양지로서 최고다.
위치는 서태평양 마리아나제도 미국의 자치령이며 수도는 사이판이고 인구는 약 8만 5천명이라고 한다. 언어는 영어와 차모러어, 그리고 종교는 카토릭교이고 평균 온도는 섭씨 27° 건기와 우기가 있는데 7월부터 9월은 우기라했다. 시간은 서울보다 1시간 빠르며 전압은 110V. 무비자이며 화폐는 US$를 사용한다.
산이 많은 섬으로 길이는 19㎞이며, 가장 넓은 지점의 너비가 9㎞이다. 면적 115.4㎢.
1565~1899년 스페인의 통치 아래 있던 사이판은 1899~1914년 독일의 지배를 받았고, 1920년부터 일본의 위임통치를 받다가 제2차 세계대전중인 1944년 미군에 의해 점령되었다. 전쟁 후반에 미국의 주요공군기지가 되었고, 1962~86년 태평양군도 내 미국이 통치하는 국제연합(UN) 신탁통치지역의 본부역할을 했다.
북마리아나 연방 본부가 있는 찰란카노아가 사이판의 주요정착지이다. 코프라는 섬 주민들이 생산하는 주요농작물이며 자급용 작물로는 타로토란· 카사바· 마· 빵, 과일· 바나나가 있다.
사이판에는 상업용 부두와 국제공항이 있다.
466m의 타그포차우 산을 비롯해 산이 많은 섬으로 길이는 23㎞이며, 가장 넓은 지점의 너비가 8.8㎞이다. 머지시엔(라우라우) 만과 타너파그 항만이 섬 양 측면에 있고 티니안의 작은 섬이 사이판 해협 건너편 바로 남서쪽에 있다.
▲ 우리가 묵었던 그랜드 브리오 리조트 해변가
▲ 자살절벽 & 만세절벽
▲ 새섬
▲마나가하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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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곳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