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5-1-1.zip
惠庵 門人 淸峯 淸韻 선사 의역 강설
不 增 不 減
부 증 불 감
느는 것도 주는 것도 아니니라.
자성은 허공이라는 것도 없는 허공같은 것으로 끝없는 무한대의 우주에 상즉해 꽉 차있는 원만구족한 전체이니 늘고 줄 것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법성의 실상이 끝없는 태허와 같은 데 갓이 없는 것이 늘고 줄 것이 있을 수 없다.
한계가 있을 때 늘고 줄 것이 있으나 무한대의 존재를 생각해 보라.
따라서 더하고 덜함이 있을 수 없고 보태고 뺄 것이 없는 것이다.
다시 비유로 말하면 틈 없이 꽉 찬 병 속의 물이 흔들리거나 늘거나 줄 것이 없는 것과 같다]
是故 空中無色 無受想行識 無眼耳鼻舌身意
시고 공중무색 무수상행식 무안이비설신의
無色聲香味觸法 無眼界乃至無意識界
무색성향미촉법 무안계내지무의식계
이러하므로 빈 가운데는 물질의 현상이 없으니,
느낌, 생각, 지어감과 의식이 없고 눈, 귀, 코, 혀, 몸, 뜻도 없으며,
물질, 소리, 냄새, 맛과 닿는 것 모두가 없고,
보는 영역에서 인식하는 영역까지도 없고,
그러므로 허공같이 청정한(깨끗한) 빈 가운데
몸 등 물질의 현상 일체가 무엇인들 있을 것이 없다.
즉 6근이 없으므로 6경이 없고 따라서 6식을 낼 것이 없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니 18계가 곧 환이건만 중생의 삶은 일상생활에 6근과 6진으로 살림을 살아 6식을 내고 있는 것이다.
[오온(근)인 눈, 귀, 코, 혀, 몸이 없고 이 오온이 없으니 여섯 가지 경계인 곧 보이는 물질현상, 소리, 냄새, 맛, 촉감, 의식작용을 일으킬 6경이라는 것이 본성이 공하여 있을 것이 없고, 또 보이는 것에서 의식하며 느끼는 영역까지도, 즉 의식 작용하는 6식이 따라서 없는 것이다.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는 6근이 6경으로 인하여 의식하는 6식을 처음과 끝 사이를 乃至로 줄여서 즉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 보고, 감촉 해 아는 인식작용 하는 경계를 처음인 보는 경계에서 끝인 의식하는 경계를 들어 설명한 것이다.
차별상으로 보면 6근이 인연에 응하여 경계인 6경(6진)을 6식으로 인식하고,
평등본질 면으로 보면 6근이 6식으로 인하여 6진인 경계를 동시에 내는 것이다.(이 6심의식에서 제7심식 末那識과 제8식 阿賴耶識이 제9식인 白靜識:암바라식에 이르러 계합하게 되면 곧 견성이라 하는 것이다)
이 6근 6진 6식이 본질에 있어는 둘이 아니며,
하나(공)로부터 생하고 멸하는 것이라 일체의 생하고 멸하는 것은 실체가 없는 공한 것이다.
따라서 모든 상으로 존재하는 것은 남(生)이므로 멸하는 것을 전제하는 것이어서 있다면 필경에는 없어져 하나(空)로 돌아가는 것이다.
처음부터 상으로 존재하지 않으면 없어질 것도 또한 없을 것이니,
따라서 절대 없어지지 않는 것은 근본체인 없이 있는 법성체 뿐 이어서,
이 본래면목은 원융무애(일체하나로 융통한)하며 사사무애(事事無碍: 사물 하나하나가 실체가 공하여 서로 장애가 없음)하여 걸림없이 방해받지 않고 뜻대로 되며 또 이사무애(理事無碍: 理는 절대평등한 본체이고, 事는 상대적 차별현상)하여 걸림이 없는 이치이나,
진여문에서는 본질이 공하여 걸림없는 不二이므로 곧 걸림없는 열반의 경계, 색불이공의 투철함이 이와 같은 것이기에 무애자재한 묘유묘용이고 중도상이다.
묘한 공이라는 것은 있음 없음을 초월하여 머물며,
일체가 여기에서 나투고 멸하는 것으로 오묘하여,
비었으면서도 비지 않는 것이기 때문인 것(진공묘유)이다.
나고 멸하는 일체는 실체가 없는 환(幻)인 것이고, 시작 없는 본래부터 있는 공한 법성체는 일체를 나투고 작용하는 근본 모태요 바탕인 것이다.
따라서 따로 창조신이 있어 우주를 만들었다면 그 神은 있음이니 분명 있기 전에는 만든 것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럼 그 신은 누가 만들었나?
만들어진 것이 있다면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살펴보면 생긴 것은 반드시 머물렀다 허물어져 멸하여 없어지는 성주괴공(成住壞空)으로, 생주이멸, 생노병사로 생했다 멸하는 것이 거듭될 터이니 이 神 또한 윤회를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신마저 필경에는 없이 있음(공)으로 돌아가야 해답이 나올테니 그것은 근본당체(根本當體: 진여인 만유일체의 본바탕)라고 하는 법성을 요달하여야만 증득할 수 있는 것이다.
빈곤도 상대적으로 부유함을 세워야 있다고 할 수 있고, 불행도 행복을 대비함으로서 갖는 현상이며 실재하지 않는 것이니,
따라서 무엇이든 있다면 상대적인 있음을 세워 "같지 않다"는 부정이 성립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공)도 집착 말고 중생도 떠남이라고 한 것이다.
일체가 공하므로 형상(모양)의 실다움이 없어 듣는 것과 보는 것과 듣고 보는 것의 처소도, 분별하는 것의 처소도 없이 공한 가운데는 근(根)과 진(塵)의 세계가 본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