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 가톨릭 전파 - 지역 주민과 함께 30년간 성탄 축제 '별 행렬'
태국정부관광청 초대로 태국 북동부 이산 지역 타레농상대교구 성탄 축제와 순교 성지를 둘러봤다. 불교의 땅에서 싹을 틔우고 있는 가톨릭 신앙의 못자리를 2회에 걸쳐 연재한다. 공항에서 도심으로 향하는 길은 태국이 '입헌군주국'이며 '불교'의 나라임을 확인시켜줬다. 거리마다 불교사원과 사당이 있고, 현 푸미폰 아둔야뎃 라마 9세 국왕 부부의 사진이 걸려있다. 불교와 국왕은 태국을 지탱하는 두 기둥이다. 특히 국왕은 태국과 동의어다. 화폐에서 조각상까지, 건물에서 거리까지 새겨져 있고 붙어있는 국왕의 얼굴은 그가 태국의 모든 장소에 편재해 있음을 일깨워주었다. 딱딱한 태국의 첫 인상은 이튿날 태국 북동부 '이산'(I-San)지역을 도착하자 마자 사라졌다. 메콩강을 끼고 형성된 비옥한 평야지대인 이 지역은 주민들의 맑고 깊은 눈동자 만큼이나 순박한 정이 넘쳐나는 아름다운 곳이다.
# 타레농상대교구 이산 지방은 특이하게 태국 여느 곳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가톨릭 교회를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태국 가톨릭교회는 현재 방콕대교구와 이산 지방을 관할하고 있는 '타레농상(Thare-Nonseng)대교구' 등 2개 대교구와 8개 교구가 있다. 타레농상대교구는 태국 북동부 나콘파놈(Nakhonphanom)ㆍ묵다한(Mookda harn)ㆍ칼라신(Kalasin)ㆍ사콘나콘(Sa konnakhon) 등 4개 지방을 관할하며, 지역인구 320만여 명 가운데 16.3%를 차지하는 52만여 명이 가톨릭 신자다. 대교구내 본당은 74개가 있고, 사제 수는 58명, 수녀는 136명이 있다. 이 지방에 가톨릭 신앙이 본격적으로 전래된 것은 19세기 후반부터라고 한다.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 베트남과 라오스의 신자들을 이끌고 메콩 강을 건너 이곳으로 이주해 정착하면서 가톨릭 교세가 급속도로 전파됐다. 피터 피리야(Peter Phiriya) 신부는 "순박한 농부일수록 미신을 많이 믿는데 서양 신부들이 귀신을 쫓아준다고 해서 아마 더 많은 농민들이 가톨릭으로 개종한 듯하다"며 "현재도 많은 농민들이 개종해 교세는 계속 늘고 있다"고 말했다. 12월 24일 성탄 전야. 메콩강 국경 지대 '농상'(Nonseng)마을 성 안나 성당을 방문했다. 황토빛 메콩 강에 어둠이 채 앉기도 전인 오후 5시 예수 성탄 대축일 전야 미사가 시작됐다. 성당에는 300여 명의 신자가 자리했다. 젊은이들이 도시로 빠져나간 탓에 노인과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 성가가 태국어로 울려퍼지는 가운데 시작된 미사는 좀처럼 몰두할 수 없었다. 성당 문을 모두 활짝 열어놓아 도로를 오가는 자동차와 오토바이 소리가 자꾸만 신경을 건드렸다. 또 미사 내내 제단 주변으로 주인없는 개가 어슬렁거리는가 하면, 한 취객은 아예 성당 바닥에 드러누워 끊임없이 술주정을 해댄다. 그런데도 그 누구도 괘념치 않고 엄숙한 표정으로 합장한 채 진지하게 미사에 몰입할 뿐이다. 아마 이 정중동의 심상은 생활 곳곳에 배어 있는 태국인들의 종교심일 것이다.
# 별 행렬 축제 타레농상대교구의 가장 큰 성탄 축제는 바로 '별 행렬'이다. 차량에 아기 예수 탄생을 기념하고 상징하는 장식들을 꾸며 시내 곳곳을 누비는 '카퍼레이드' 행사다. 30여 년 전부터 매년 여는 이 축제는 해를 거듭할수록 지방청으로 확대돼 몇년 전부터는 대교구와 지방 정부가 공동으로 주최하고 있다. 이제 가톨릭신자 뿐 아니라 주민 축제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가장 아름답게 꾸민 차량에 2만바트(한화 약73만원) 상금이 주어져 불교신자들도 많이 참가한다. 이처럼 종교에 상관없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지만 심사기준은 엄격하다. 성탄 축제 참가 차량은 가로 길이가 1.5m가 넘고 어둠을 밝힐 전구가 설치된 '별'을 반드시 장식해야 한다. 또 차량 앞쪽에 태국 국기와 교황기를 달아야 하고, 성탄 구유와 성탄 축하 문구가 설치돼야 하며, 산타클로스가 차량에 탑승해야 한다. 올해는 12월 25일 타레농상대교구청이 있는 사콘나콘에서 이 행사가 열렸다. 참가 차량은 모두 100여대. 태국의 명물인 오토바이 택시 '뚝뚝이'부터 승용차, 트럭까지 참가 차량도 다양했다. 장식도 바나나 껍질에 진흙으로 만든 구유에서부터 살아있는 염소까지 다채롭다. 상카우 마을에서 출전한 워라우트(바오로, 16)군은 "신자들과 함께 일주일 동안 차량을 장식했다"며 "꼭 우승해 상금을 성당 건축 기금으로 보태고 싶다"고 밝혔다. 솜야트 신부는 "이 축제가 있기 전에는 성탄 전야때 신자들이 별모양의 초 장식을 들고 가두 행진을 했다"며 "한 주교님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이 행사가 교구뿐 아니라 지역 전통 축제로 자리잡아가고 있어 무척 기쁘다"고 말했다. 카퍼레이드는 장식 차량 심사를 모두 마치고 어둠이 완전히 내려앉은 저녁 7시부터 시작됐다. 교구장 루이스 깐니엔 산티숙니란 대주교를 비롯한 내빈들이 탄 차량을 선두로 100여 대의 차량이 뒤를 이었다. 차량별로 산타클로스를 분장한 이들이 구경꾼들에게 사탕을 던지자 어른 아이 할 것없이 사탕을 받기 위해 높이뛰기에 여념없다. 골목마다 전깃줄이 널부러져 있어 차량 옆에서 길다란 막대기를 들고 뛰어가면서 전선을 떠받치는 청년들 모습도 이채롭다. 뚝뚝이에 구유를 장식한 한 노점상은 카퍼레이드를 하면서도 열심히 한치를 구워 판다. 보는 이의 마음에도, 참가하는 이의 마음에도 이날 만큼은 크리스마스 정취에 흠뻑 젖어있다. 불교의 나라 태국에서 지역 축제로 성탄 행렬이 개최되고 있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3시간여 만에 숨쉬는 모든 시간과 공간을 채우던 캐럴과 성탄 장식의 불빛이 사라졌다. 텅빈 정적 속 침묵이 이명으로 마음 속 길게 여운을 남겼다. "메리 크리스마스. 불교의 땅 태국에도 아기 예수 탄생의 기쁨을…."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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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레농상대교구는 30여년 전부터 성탄대축일에 구유와 별을 장식한 차량으로 카퍼레이드를 펼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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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상본당 신자들이 성탄 전야 미사를 마친 후 구유를 경배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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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재협조 : 태국정부관광청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