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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클랜드 양떼의 나라, 뉴질랜드로 들어가는 현관인 오클랜드는 토착민인 마오리족과 유럽의 백인, 그리고 남태평양의 다른
제도로부터 이주해온 아일랜더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곳. 그래서 폴리네시아 문화와 유럽의 문화가 공존하는 독특한 분위기의 국제 도시이자 항구
도시이다. 뉴질랜드 전체 인구의 350만 명 중 95만 명이 모여 사는 최대의 도시이자 경제의 중심지인 오클랜드. 대부분의 국내, 국제선이 이곳을 지나기 때문에 뉴질랜드를 찾는 여행자들의 첫인상으로 기억되는 곳이다. 북섬의 북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와이테마타 항구와 마누카우 항구를 끼고 있어 항구 도시의 위용을 자랑하는 산뜻하고도 탁 트인 도시이다. |
역사14세기경 폴리네시아의 섬에서 이주해 온 마오리족에 의해 꽃핀 폴리네시안 문화는 1840년 유럽인들이 이주해 오면서 식민의 역사로 이어지게 된다. 1840년부터 1865년까지 식민지의 수도였던 오클랜드는 당시 영국에서 추앙받던 오클랜드 경의 이름을 따서 만든 것으로 19세기 말에 골드 러시의 붐이 일자 이에 편승하여 빠른 경제 발전을 이룩하면서 오늘날 뉴질랜드 제일의 도시로 성장하였다. |
지리서울의 절반 정도 크기인 오클랜드를 살펴보자면, 항구의 한쪽에 자리한 퀸 엘리자베스 2세 광장으로부터 시작되어
남쪽으로 쭉 뻗은 퀸 거리를 중심으로 다운타운을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도심 곳곳에 싱그러운 초록의 녹지가 조성되어 시민들의 편안한 휴식처를
제공하며, 과거 활발했던 화산 활동으로 인해 만들어진 비탈길은 단조로울 수 있는 도시에 언덕을 오르내리며 느낄 수 있는 산보의 재미를 더해
준다. 또한 항구를 중심으로 산재해 있는 여러 섬들 사이를 운행하는 배 위에서 바라다보는 도시의 아름다움과 상쾌함은 오클랜드를 찾는 여행자들에게 '항해의 도시(City of Sails)'란 별칭을 오감으로 느끼게 한다 |
날씨남위 37도에 위치한 오클랜드는 여름 평균 기온이 23℃, 겨울에는 15℃로 대체로 따뜻한 해양성 기후를 보인다. 또한, 12~2월은 여름, 3~5월은 가을, 6~8월은 겨울, 9~11월은 봄으로 북반구와는 계절이 반대이다 |
로토루아로토루아 여행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 세 가지는 온 도시를 삼킬 듯이 부글거리며 뿜어져 올라가는 지열 지대의
간헐천, 이 화산 지형을 이용하여 독특한 음식 문화를 만들어 낸 마오리족의 생활 모습, 그리고 들판의 양 떼와 함께 직접 체험해 보는 농장의
하루이다. |
크라이스트처치이주자들이 고향 옥스퍼드를 그리워해서 만들었다고 하는 아름다운 영국풍의 도시 크라이스트처치는 남섬의 중심 도시로, 북섬의 오클랜드,
웰링턴에 이어 뉴질랜드 제3의 도시다. 도시의 8분의 1이 공원과 녹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영국 고딕 양식의 중후한 건축물들이 자리잡고
있다. |
퀸스타운남섬의 남부, 센트럴 오타고라 불리는 지역의 한가운데 위치한 퀸스타운은 뉴질랜드 굴지의 리조트 타운이다. 보석 같이
아름다운 와카티푸 호수와 그 주변을 빙 둘러싸고 있는 서던 알프스의 산들이 그림 같은 풍경을 그리고 있다. 퀸스타운이란 이름은 골드 러시 시대에 이곳을 찾은 한 채굴자가 '여왕이 살기에 어울리는 도시'라고 칭송한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 족이 '비취 호수'라 부른 와카티푸(Wakatipu) 호수에 면하여 자리잡고 있는 퀸스타운은 개척시대, 골드 러시 시대에 번영했던 도시이며, 지금은 아름다운 자연경관으로 인하여 뉴질랜드에서 으뜸가는 관광도시가 되었다. 특히 깎아지른 듯한 절벽으로 둘러싸인 피오르드의 절경으로 알려진 밀퍼드 사운드로 가는 입구로, 전세계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있다. 퀸스타운이 더욱 인기 있는 이유는 일년 내내 다양한 레저 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는 것. 유명한 번지 점프를 비롯하여 제트 스키, 제트 보트, 래프팅, 카약, 열기구 풍선, 리버 서핑 외에 겨울철에는 스키도 탈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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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시드니의 매력은 아름다운 항구와 거리, 도회적인 스포트, 해변 등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비교적 아담한 범위 안에 그 모든 것이 담겨져 있어 관광객에게는 더 반갑다. 서큘러 키에서 세계 3대 미항인 항구 모습에 감동하고, 달링 하버에서는 수족관과 쇼핑 센터를 둘러본다. 거리 산책이 끝났다면 본다이나 맨리 등의 해변으로…. ‘하루만 더 있고 싶은 도시’, 그곳이 시드니이다. |
역사
오스트레일리아의 역사는 시드니에서 시작되었다. 1788년 최초의 이민선단이 상륙했던 곳이 바로 서큘러 키로, 이민자들은 이곳부터 대륙의 안쪽을
향해서 개척을 시작했다. 서큘러 키에서 건너다보면 오른쪽에는 거대한 흰 조개껍질을 연상시키는 오페라 하우스가 위용을 자랑하며, 왼쪽에는 ‘코트 행어’라는 별명을 가진 하버 브리지가 완만한 호를 그리며 맞은편 만으로 뻗어 있다. 시내를 걸으면 고층 빌딩이 빽빽이 서 있고, 더블 베이나 로즈 베이 등의 깨끗하고 아름다운 고급 주택가가 있으며, 교외인 본다이나 맨리에는 해수욕을 즐길 수 있는 해변도 있다. 확실히 ‘세계 3대 미항’ 중의 하나라는 명성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전망이다. 그러나 이 세련된 경관 뒤에는 이민자들의 고난의 역사가 숨어 있다. 이민자들이 최초로 도시를 만든 곳은 록스이다. 지금은 관광명소로 아름답게 정비되어 있지만, 시드니는 불과 200년 전만 해도 바위투성이의 황량한 들판이었던 곳이다. 바위를 깨고, 길을 만들고, 교회나 관공서를 세운 것은 영국에서 끌려온 죄수들이었다. 노동은 너무나도 가혹했다. 토지는 정비되지 않았고, 죄인들은 농업에 익숙지 않았기 때문에 식량마저 늘 부족했다. 더욱이 본국 영국으로부터는 2년 이상이나 배가 오지 않았다. 자급자족의 목표가 세워지기 시작한 때는 18세기말의 일이다. 그후 1820~30년대가 되자 목양업이 발전, 시드니는 번영의 실마리를 잡게 된다. 이후 시드니는 오스트레일리아 제1의 도시로 발전했다. 수도는 아니지만 라이벌인 멜버른을 제치고 경제의 중심지로서 군림하고 있다. 1770년 제임스 쿡이 동쪽 해안에 도착. 보타니 만에 상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