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관의 공복을 4가지 색으로 구분하여 제정한것으로 원윤이상은 자삼, 중단경,이상은
담삼,도항경 이상은 비삼, 소주부이상은 녹사밍었다. 이로부터 고려는 22대 강종 원년
1212년까지 거란,송,요,금등의 관복을 다르고 있다.
왕복: 상복,공복,조복,연복,에복이 있다. 상복은 고려도경에 의하면 오사고모를스고 금벽을 수놓은 담황색의소매가 좁은 포를 입었으며 자색 늑건을 띠었다고 기록되어잇다. 여기에 오사고모는 중국천자의
조사절상건은 복두에서 일어난것으로 조선시대의 익선과이 되었다고 한다.공복으로는 자라공복을 입고 상아홀과 옥대를 갖춘다 조복은 평상복위에 복두를 쓰고 속대를 띠며 연복은 조건에 백저포를 입어
서민과 다를 바 없이 우리 고유 복식을 입었다고 한다. 제복으로는 구류면,구장복은 면복인데 이것은
나라의 제향 ,가례등 특수의식에 입는 법복으로 면류관과 거기에 따르는 복식의 총칭이다. 의복만을 할때 십이면류 십이장문을 수놓은 십이장복이다. 제복의 구성을 보면 면류관,면복,상,백사중단,폐슬,수,혁대,옥패,대대,흰버선,붉은신이다. 그런데 제례인 경우에는 방심곡령을 한다. 또 고려말 공민왕 19년
5월에 명의 복제의 영향으로 자주성을 모색해 보고자 중국황제와 동격의 십이류면,십이지장복을 입었으며, 조복에도 중국천자와 같은색의 원유관에 강사포,홍상 백사 중단 강사폐슬 백가대 방심곡령 홍햐대흰버선,검은신을 제정하고 있다. 고종18년 몽고의 침입을 받아 그영향 권에 들어섬..
백관복: 제복,조복,상복,공보이 있다 제복에서는 칠류면 오장복은 1풍의 6월을 입고 오류면,삼장복은
2품에 대상경 이하 15원 까지 무류면은 3품의 41원 이 입었다.조복과 상복에 대하여서는 자세한 기록이 없고 공복은 복두를 쓰고 광종대의 사색공복제도에 따르고 있는데 그 색복계급에 잇어 자, 단, 비,
녹의 4색 공복을 이루고 있다.
민서복 : 몽고풍에 비해 저고리 길이가 짧아지고 소매가 좁아 졌으며 고름을 매게 되었다. 진사는 사대문락건에 조주구를 입고 흑대를 혁리를 신었다. 농민이나 상인은 백저포에 조선, 민장은 조주구에 문라건,흑각대,오혁리였다. 뱃사람은 바지저고리를 입지 아ㅎ고 죽관에 단갈만 입었다고 하는데, 그형태는
잘 안수 없느나 현재의 승복인 동방과 비슷한것으로 짐작된다.불자는 일반사람들이 좋아하는 청적황배흑의 5가지 색을 제외한 잡색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다. 국사는 납기사에 장수편삼과 자상을 입고 오혁대를 띠면 행전과 같은 금발을 치고 방울 달린 영리를 신었다. 두루마기는 유학자들은 조주구위라는 중국식두루마기를 입엇다. 농공상기인들은 두루마기형의 백저포를입고 속대를 띠었다. |
고려의 여자복식은 통일신라 이래 별로 변함이 없었고 다만 원의 영향을 받안 몽고풍이 궁양을 이루었다.왕비복과 귀부녀복을 중심으로 알아보자
왕비복: 원과의 국혼관계로 원의 공주가 고려의 왕비가 됨으로 궁중관복에 몽고의 영향을 받았으나
이것은 상류층의 극소수에 지나지 않고 서민사회에서는 예복도 우리의 고유 복식을 입었다. 궁중관복은 고려 말렵 공민왕 19년 5월에 면의 효자황후가 보내온 적의 를 보면 알수 있는데 이것은 칠적관,적의 중단,폐슬 대대 혁대 ,수 .청말,청석으로 이어짐
<< 삼회장저고리>>
위부녀복 : <고려도경>에 보면 고려의 미혼귀녀들은 황의를 많이 입었다고 하며 상류층에서는 멱시
몽고의 영향을 많이 받음.
몽수 : 고려도경에 보면 귀부인들은 머리의 쓰개로서 몽수를 쓰고 다녔는데 그것은 1폭의 길이가 8자나 되는 검은 비단 3폭으로 만들며 이것을 머리위에서 드리워 얼굴만 내놓고 나머지는 땅에 끌리게 하고 다녔다고 한다. 일면 개두라구 함
화관,족두리 :화관은 신라문무왕 당시 당의 복식 제도에서 수입하여 궁양의 관모가 되었고 그후 고려세서도 귀족예급의 예복에 착용하였다.족두리는 고고리라하여 변발에 아름답게 장식하여 예복에 착용하였는데 이것은 중국의 원세조후의 고고관과 비슷하다.
두루마기 : 남자두루마기와 비슷한 형의 백색 두루마기를 입고 허리띠를 맸다. 이띠에는 채색끈에 금방울이나 향낭을 찼는데 이것이 많을 수록 귀인으로 여겼다고 한다.
저고리: 저고리는 차차 짧아져 띠가 없어지고 원의 영향을 받았을대는 아주 짧아진 것을 볼수 있다. 그리고 저고리 길이가 허리위로 올라가게 됨으로 자연히 저고리 의 띠가 없어지고 고름이 생기게 된것으로 보인다.
바지 : 무늬있는 비단으로 만든 통넓은 것을 입었는데 생견으로 안을 받쳐서 옷이 몸에 붙지 않도록 품을 크게 하는 관고를 좋아했다..
치마 : 가을과 겨울에는 색이 짙거나 엷은 황색면주치마를 공격대부의 부인에게 사민 유녀에 이르기
까지 특별한 차별없이 입었다.그리고 왕비의 겨울용치마는 홍색에 수를 놓았는데 일반 부녀자들의 치마에는 못하게했다. 이것이 조선조의 스란치마가 될것같고 이로부터 황유홍상이니 녹의 홍상이니하는
조선여자의 복색이 된것으로 짐작된다.
선군 : 속치마의 일종으로 치마폭을 넓게 하기위한것이었으며 조선시대의 무지기치마 같은것이었다.따라 이 선군위에 입는 겉치마는 8폭에 길이가 꽤 길어 서 걸을때 겨드랑이에 끼고 다녔다고 하는데 부귀한 집의 부인은 치마 한벌 만드는 데 옷감을 7~8필이나 드였다고 한다.
저상 : 3폭을한 가랑이로 한다는 것으로 왕에게 서민에 이르기까지 남녀를 가리지 않고 입었다.옷감으로주로 여름에는 모시를 겨울에는 비단을 사용
또한 선이 없어지고 대신 동정이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손끝을 보이는 것이 부끄러워 비록 주채를 들
때라도 붉은 주머니로 손을 가렸는게 이것은 한삼의 용도와 비슷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