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골계는 생김새부터가 여느 닭과는 다릅니다. 살과 뼈가 검다고 해서 한자로 "까마귀 오"자에 "뼈 골"자를 씁니다.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에서 기르던 재래종 오골계는 거개가 깃털이 보통 닭과 같습니다. 그러나 유럽에서 들어온 실크 오골계 곧 깃털이 짐승털과 같은 국제 표준형의 오골계가 교잡된 것도 있어 오늘에 이루고 있습니다.
닭의 선조는 학명이 "개루스 개루스"라는 들닭으로 현재도 라오스, 베트남 같은 곳에서 야생으로 살고 있는 적색 들닭에서 개량되었다는 것이 정설이기 때문에 전 세계에 존재하는 몇백종에 이르는 어느 품종의 닭이거나 학명은 "개루스 개루스 바 도메스티쿠스", 곧 적색 들닭의 변종으로 개량되었다는 뜻의 단일 학명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새 품종의 닭이 탄생된다고 해도 학명은 마찬가지입니다.
실제로 적색 들닭과 엇비슷한 들닭 종류인 회색 들닭이나 세일론 들닭, 녹색 들닭 들과의 교잡종은 어려워서 현재 이 닭의 원종에 대한 학설은 영국의 생물학자이며 진화론의 대가인 찰스 다윈 설에 따른 것입니다.
예부터 중국에 오골계가 있었다는 것은 마르코 폴로가 십삼 세기에 동방을 여행한 체험담을 적은 「동방견문록」에 "중국에는 머리카락 같은 깃털의 닭이 있다"고 기록한 것으로 알 수 있으며, 그 기록이 유일한 것이고 최초입니다.
한편으로 중국 명나라 때의 본초학자 이시진이 천오백구십륙년에 집대성한 쉰두권의 방대한 「본초강목」에 오골계가 약용으로 쓰인다고 적혀 있으며, 그보다 열네해 뒤인 천육백십년에 우리나라의 허준이 쓴 「동의보감」에도 그렇게 적혀 있습니다. 이 두 저명한 고서에는 오골계의 알과 고기, 피가 동맥경화, 고혈압, 결핵, 부인병 따위에 약효가 있다고 씌여 있습니다.
일반적인 닭고기의 성분을 보면 단백질이 100 그램, 탄수화물이 20.7 그램, 지방이 4.8 그램, 열량이 126 칼로리인 데에다 비타민 비투, 에이, 비원을 꽤 많이 함유하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글루타민산과 아미노산, 핵산이 풍부하여 감칠 맛을 냅니다.
닭고기의 맛은 품종에 따라 조금씩 다릅니다. 성장이 빠르거나 빨리 성장시킨 닭은 맛이 아주 떨어집니다. 그에 견주어 노지에서 자연스럽게 자라고 운동을 많이 하며 풀씨나 곤충, 푸성귀, 곡물 따위를 많이 먹고 자란 닭들은 훨씬 더 맛이 좋습니다. 그러므로 자유롭게 놓아 기르는 오골계가 맛이 좋을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전문으로 하는 양계장에서는 닭의 먹이를 배합용 사료에만 의존하고 있는데다가 일부러 살을 찌우기 위해 운동량이 전혀 없는 좁은 닭장에서 키우는 이른바 속성 사육을 하므로 앞서 맛이 한결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므로 요새 사람들은 닭고기 맛을 별도로 높이 치지 않고 있습니다.
단순한 육용종이나 난용종은 알을 낳을 만큼 낳고 당대를 살다 떠나면 다시 종금장에서 종자 병아리를 들여다 기르는 소모품에 지나지 않으므로 큰 문제가 아니나 오골계나 관상용으로 기르는 혈통을 중시하는 품종은 재래식 방법으로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겠습니다.
닭을 한꺼번에 많이 기르려면 질병을 예방하려고 항생제가 들어있는 닭 사료나 예방약을 쓸 수 밖에 없습니다. 그곳이 남용되면 유전자 저항을 받아 번식력이 떨어지고 질병에 대한 내성이 생길 수 있습니다. 더우기 요새 와서 맨땅에다 비닐 하우스를 짓고 그 속에서 양계를 하는 수가 많은데 두해에 한번쯤은 양계장을 옮겨야 한다는 사육자들의 푸념은 깊이 음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알을 낳아 잘 품어 까던 닭도 산란용 배합 사료만 먹이면 모계 부화 능력이 생리적으로 바뀌어 산란만 하는 일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집에서 기르는 애완 조류의 사육에서도 양계용 산란 강화제를 먹이면 알을 많이 낳게 되나 무정란이 많아지고 산란 수면 곧 번식 수명이 급격하게 짧아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설사 태어나더라도 거개가 약체의 새가 되므로 이를 경험한 사조인들은 자연 순히에 따른 재래식 방법을 쓰고 있는 실정입니다. 무엇이든 자연의 섭리에 따르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 하겠습니다.
오골계는 일천구백팔십년 사월 일일에 충청남도 논산군 연산면 화악리 307번지의 오골계 - 즉 깃털이 보통닭 같은 재래종 오골계 - 를, 이내진 씨를 보호 사육인으로 하여 천연 기념물 이백륙십오호로 지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글은 이정우님의 글을 옮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