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김포에 다녀왔다. 중학교 동창 cafe에 남의 글 내가 좋아하는 이 해인 수녀님의 글을 남겼는데 여기에도 남기고 싶다.
가을 편지 , 그래 가을은 남자도 바람이 나는 계절이라고 하던데,
이 나이에 바람이라도 나면 괜찬은 남자 아닐까... NK
가을 편지
-이해인
1
그 푸른 하늘에
당신을 향해 쓰고 싶은 말들이
오늘은 단풍잎으로 타버립니다
밤새 산을 넘은 바람이
손짓을 하면
나도 잘 익은 과일로
떨어지고 싶읍니다
당신 손 안에
2
호수에 하늘이 뜨면
흐르는 더운 피로
유서처럼 간절한 시를 씁니다
당신의 크신 손이
우주에 불을 놓아
타는 단풍잎
흰 무명옷의 슬픔들을
다림질하는 가을
은총의 베틀 앞에
긴 밤을 밝히며
결 고운 사랑을 짜겠읍니다
3
세월이 흐를수록
드릴 말씀은 없읍니다
옛적부터 타던 사랑
오늘은 빨갛게 익어
터질 듯한 감홍시
참 고마운 아픔이여
4
이름 없이 떠난 이들의
이름 없는 꿈들이
들국화로 피어난 가을 무덤가
흙의 향기에 취해
가만히 눈을 감는 가을
이름 없이 행복한 당신의 내가
가난하게 떨어져 누울 날은
언제입니까
5
감사합니다, 당신이여
호수에 가득 하늘이 차듯
가을엔 새파란 바람이고 싶음을
휘파람 부는 바람이고 싶음을
감사합니다
6
당신 한 분 뵈옵기 위해
수없는 이별을 고하며 걸어온 길
가을은 언제나
이별을 가르치는 친구입니다
이별의 창을 또 하나 열면
가까운 당신
7
가을에 혼자서 바치는
낙엽빛 기도
삶의 전부를 은총이게 하는
당신은 누구입니까
나의 매일을
기쁨의 은방울로 쩔렁이는 당신
당신을 꼭 만나고 싶읍니다
8
가을엔 들꽃이고 싶읍니다.
말로는 다 못할 사랑에
몸을 떠는 꽃
빈 마음 가득히 하늘을 채워
이웃과 나누면 기도가 되는
숨어서도 웃음 잃지 않는
파란 들꽃이고 싶읍니다
9
유리처럼 잘 닦인 마음 밖엔
가진 게 없읍니다
이 가을엔 내가
당신을 위해 부서진
진주빛 눈물
당신의 이름 하나 가슴에 꽂고
전부를 드리겠다 약속했읍니다
가까이 다가설수록
손잡기 어려운 이여
나는 이제 당신 앞에
무엇을 해야 합니까
10
이끼 낀 바위처럼
정답고 든든한 나의 사랑이여
당신 이름이 묻어 오는 가을 기슭엔
수 만 개의 흰 국화가 떨고 있읍니다
화려한 슬픔의 꽃술을 달고
하나의 꽃으로 내가 흔들립니다
당신을 위하여
소리없이 소리없이
피었다 지고 싶은
11
누구나 한번은
수의를 준비하는 가을입니다
살아온 날을 고마와하며
떠날 채비에
눈을 씻는 계절
모두에게 용서를 빌고
약속의 땅으로 뛰어가고 싶읍니다
12
낙엽 타는 밤마다
죽음이 향기로운 가을
당신을 위하여
연기로 피는 남은 생애
살펴 주십시오
죽은 이들이 나에게
정다운 말을 건네는
가을엔 당신께 편지를 쓰겠읍니다
살아남은 자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아직은 마지막이 아닌
편지를 쓰겠읍니다
26
깊은 밤,홀로 깨어 느끼는 배고픔과 목마름.
방 안에 가득한 탱자 향기의 고독.
가을은 나에게 청빈을 가르칩니다.
대나무 처럼 비우고 비워 더 맑게 울리는 내 영혼의 기도 한 자락.
가을은 나에게 순명을 가르칩니다.
27
가을이 파놓은 고독이란 우물가에서 물울 긷습니다.
두레박 없이도 그 맑은 물을 퍼 마시면 비로소 내가 보입니다.
지난 여름 내 욕심의 숲에 가려 아니 보였던 당신 모습도 하나 가득 출렁여 오는 우물.
날마다 새로이 나를 키우는 하늘 빛 고독의 깊이를 나는 사랑합니다.
이해인(李海仁)
직업 : 시인, 수녀
출생일 : 1945년 6월 7일
소속 : 성베네딕도수녀원 문서선교실 수녀
학력 : 성희여자고등학교 - 세인트루이스대학교 - 서강대학교대학원
상세정보
1945년 강원도 양구에서 이대영, 김순옥의 1남3녀 중 셋째로 출생.
서울 청파동에 살 무렵(6세) 한국 전쟁발발. 9월에 부친이 납북됨
1952년 부산 피난시절 부산 성남초등학교에 입학
1958년 서울 창경초등학교 졸업 무시험으로 서울 풍문여중 입학. 특활반 문예반에 들어
임영무 선생님의 지도를 받고 삶에 영향을 주는 친구들을 사귐
1960년 부산 가르멜 수녀원에 입회한 언니의 권유로 중3때 학교를 동래여중으로 옮김
(프랑스 유학을 염두에 두고 한 학년 월반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이행하지 않음)
1961년 부산 동래여중 졸업
1964년 김천 성의여고 졸업 (제2회 신라문화제 전국 고등학교 백일장에서 시 장원: 1963)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입회
1968년 첫서원
1968~70년 • 한국천주교 중앙협의회 소임
1970년 • <소년>지에 동시 '하늘',' 아침'등으로 추천 완료
1975년 • 필리핀 성 루이스 대학 영문학과 졸업
1976년 • 종신서원과 더불어 첫시집 <민들레의 영토> 출간
1976~78년 • 부산 성분도 병원 소임
1978~85년 • 수녀원 교육팀에서 일함 (지원자 담당: 1980 ~ 1982)
1985년 • 서울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졸업
1985~87년 • 수녀원 자료실 담당
1988~90년 • 제44차 세계성체대회 신심분과에 소임
1990~91년 • 수녀회 설립 60주년 준비위원으로 일함
1992~97년 • 수녀회 총비서로 소임
1997~2000년 • 수녀원 내 문서선교실 소임
1998~99년 • 부산 신라대학 사범대학에서 시감상 교양 강좌
2000년~ • 부산 가톨릭대학 지산 교정에서 '생활 속의 시와 영성' 강의
수녀님께서 받으신 상
1982년 • 제9회 새싹 문학상
1985년 • 제2회 여성동아 대상
1998년 • 제6회 부산여성 문학상
사랑한다는 말은
사랑한다는 말은
가시덤불 속에 핀
하얀 찔레꽃의 한숨 같은 것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은
한 자락 바람에도 문득
흔들리는 나뭇가지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는 말은
무수한 별들을
한꺼번에 쏟아 내는
거대한 밤하늘이다.
어둠 속에서도
훤히 얼굴이 빛나고
절망 속에서도
키가 크는
한 마디의 말
얼마나 놀랍고도
황홀한 고백인가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말은.
작품
꽃삽 (1994, 샘터)
사랑할 땐 별이 되고 (1997, 샘터)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1983, 분도출판사)
내 혼에 불을 놓아 (1979, 분도출판사)
두레박 (2001, 분도출판사)
민들레의 영토 (2001, 가톨릭출판사)
시간의 얼굴 (2000, 분도출판사)
엄마와 분꽃 (2000, 분도출판사)
모든 것은 기도에서 시작됩니다 (1999, 황금가지)
성공한 선배들의 충고 (1997, 쪽지(십대들의 쪽지))
고운 새는 어디에 숨었을까 (2000, 샘터)
마음의 풍경 (2000, 이레)
사계절의 기도 (2001, 분도출판사)
내 삶은 당신을 향해 흐르는 그리움입니다 (2000, 동천사)
태교를 위한 시 (2001, 프리미엄북스)
마더 데레사의 아름다운 선물 (2001, 샘터)
뱃속아기와 나누는 사랑의 대화, 태담 (2002, 한울림)
향기로 말을 거는 꽃처럼 (2002, 샘터)
외딴 마을의 빈집이 되고 싶다 (2002, 열림원)
우리는 아무도 혼자가 아닙니다 (2003, 황금가지)
꽃은 흩어지고 그리움은모이고 (2004, 분도출판사)
Lumieres Lointaines(머나먼 빛) - Andre Gagn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