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인간 XQ-103
내가 ‘eXtraQ-serial 103’, 그러니까 축약해서 ‘XQ-103’이란 고유번호로 세상에 태어 난 것은 2022년11월14일 오후6시14분42초경이었어.
그 순간부터 나는 생체형성 인큐베이터로부터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생명유지활동을 시작하였으니, 이는 정상적인 인간으로 치면 분만을 통해 어머니의 자궁으로부터 분리되어 세상에 갓 태어난 시각을 말하는 것이지.
따라서 오늘이 2028년11월10일이니까 4일만 더 지나면 나는 태어난 지 만 6년이 되고, 인간나이로는 일곱 살이 되는 셈이지. 보통인간이라면 이 나이 때가 유치원에 다니며, 부모로부터 귀염을 한창 받을 나이일텐데….
그렇지만 나는 연구소의 한쪽 공간에 갇혀 온갖 난해한 공식들을 풀어야하고, 새로운 공식들을 정립해야 해. 그런 일들을 해야만 하는 것이 내가 과학자들의 손에 의해 세상에 태어나게 된 유일한 이유이자 목적이거든.
나는 또래의 아이들과는 달리 고도의 유전자형질개량과 가장 이상적 환경에서 마치 배양되듯 성장이 촉진되어 체격은 이미 어른을 능가할만큼 자라났고, 또 머릿속에 담긴 지식의 양으로 치면 과거와 현재를 통털어 세계의 내로라하는 석학들 수천 명이 지닌 것보다 더 방대할 거야.
난 이미 태어날 때부터 두개골의 부피가 여느 인간들보다 두 배가량 더 크게 개량되었고, 두뇌의 피질주름도 여느 인간들보다 표면적이 네 배가량 더 확장되어 있었어. 따라서 내 두뇌피질엔 두뇌세포라 불리는 뉴런의 수효가 평범한 인간들의 평균 5백억 개보다 자그마치 열여섯 배나 더 많은 8천억 개 이상 분포한 셈이지.
뿐만 아니라 과학자들은 내 머릿속의 뉴런을 활성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복합화학물질을 주입하고, 또한 그때마다 전기 자극을 가했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뉴런들이 활성화되어 있어.
보통 인간들의 뉴런이 고작 4~5% 정도 활성화된 것에 비하면 놀랄만한 성과이지.
그 때문에 내겐 일체의 자유가 없을 뿐더러, 이중삼중의 철저한 감시와 보호 속에 갇힌 생활을 하고 있어.
하루 세끼 아침 점심 저녁 식사시간과 샤워하고 잠자는 시간 외에는 늘 복잡한 장치들로 둘러싸인 의자에 앉혀져 원하지 않는 일을 해야만 해.
내가 갇혀 작업하는 실내엔 수많은 컴퓨터 관련장비와 각종 데이터분석장비들, 각종 계기와 첨단장치들로 둘러싸여 있어. 그뿐 아니라 시시각각 각종 출력기들로부터 쏟아져나오는 정보들과 그 정보들을 계속 머릿속에 주워담는 한편, 그 즉시 그런 정보들을 분석하는 것이 내가 해야할 일이야.
그리고 늘 대하는 사람들도 몇몇으로 한정되어 있어. 모두 하얀 가운을 걸친 과학자들로서 웃음기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무뚝뚝한 사람들뿐이야.
그 사람들은 내겐 애초부터 감정 따위가 없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어.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내게도 감정이란게 있고, 또 수많은 정보들을 대하면서도 한편으론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외에도 연구실 밖에는 80억이 넘는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는지 나는 속속들이 꿰고 있어. 즉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접할 수 있는 광통신망을 통해 외부의 상황을 알만큼은 알고 있다는 얘기지.
물론 이런 정보들은 내가 봐서는 안될 정보에 속할 수도 있겠지만, 나 역시 궁금한 것은 도저히 참아낼 재간이 없거든.
나는 근래들어 내 자신이 꽤나 불행하다고 느껴왔어. 내 머릿속에 계속 입력되는 천문학적인 정보들이 내 머릿속의 기존 정보들과 트러블을 일으키기 시작한 거야. 이른바 내 두뇌의 수용한계를 넘어섰다고나 할까. 그 때문에 뉴런에서 방출되는 강력한 전자파들로 두뇌신경이 한 올 한 올 뜯겨나가는 듯한 통증에 시달리게 된 거야.
“아이고…, 머리야!”
나는 연구소 전체를 책임지고 있는 안성길 소장이나 프로젝트 책임자인 이봉두 박사뿐만 아니라 내 건강상태를 늘 체크하고 관리하는 장은숙 박사한테도 여러 차례에 걸쳐 통증을 호소했었어.
그때마다 그 사람들은 내게 마약성분의 진통제 양을 점차 늘려가며 주사를 놓는 것만으로 내 호소를 무시하려 들었지. 자기네들이 원하는 자료만 얻으면 내가 어찌되든 전혀 개의치 않겠다는 생각인 것 같아.
처음에는 의식을 하지 못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난 모든 사실을 깨닫고는 나의 고통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저희들의 목적을 위해 나를 이용하려 드는 모든 사람들을 증오하기 시작했어. 그들에게 있어 나는 인간이 아니라 사육하고 있는 짐승과 다를 바가 없었거든.
나는 아이큐가 2,000이야.
물론 이 수치는 인간의 지능을 측정하기 위해 고안된 웩슬러식이나 카우프만식 따위의 필기형 지능검사를 통해서 측정된 것이 아니라, 초고성능 인공지능컴퓨터의 지능대비 산출에 근거하여 매겨진 수치야. 따라서 내 지능은 2,000이란 숫자가 의미하는 한계를 벗어날 수도 있음을 의미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의 내 상황에 대해 행복하다거나 만족하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어. 오히려 이러한 나 자신이 괴물처럼 여겨지면서 오히려 불행하다고 느끼게 된 거야.
비록 내 지능이 그렇듯 높아 보통사람으로서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은 지식을 쌓고, 고도의 이론을 도출하고 증명하는데 이용될른지는 몰라도, 나는 아무 생각도 없는 듯 살아가는 보통사람들이 너무 부럽다 못해 내가 다시 태어날 수만 있다면…, 차라리 평범한 사람으로 태어나길 소망하게 되었어.
얼마전부터 나는 죽음이란 실체를 분명히 인식하게 되었어. 두통도 점차 심해졌지만, 내 몸이 급격하게 늙어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 거야.
문제는 몸이 늙는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는, 즉 내 생명이 각종 복합화학물질과 전기자극으로 인해 억지로 벼텨왔던 생체 밸런스의 와해가 진행됨에 따라 급속도로 잠식되고 있을 것이란 예감이 든 거야.
물론 이런 사실들도 누가 내게 알려준 게 아니라 나 스스로가 깨닫게 된 거지.
추측컨데, XQ-103이란 내 고유번호가 말해주듯 나 이전에도 이미 102명이란 인조인간이 과학자들의 손에 의해 배양되었으나 성장이 완료되기도 전에 인큐베이터 안에서 생을 마감해야 했을 거야.
그리고 나 이후로도 104니 105니 새로운 인조인간들이 계속 태어났을테고….
난 그렇게 창조된 그들이 다른 곳에서 뭘하고 있는 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같은 존재의 말로가 상당히 비참하리란 것쯤은 확신할 수 있어.
지금 내게 남겨진 내 수명의 시계를 굳이 태양에 비유한다면, 아마 정오를 한참 지나 석양 무렵으로 치닫고 있겠지.
머잖아 빛을 모두 잃게 되면 지평선으로 자취를 감추듯 내 생명도 그렇게 소멸될 테고….
그래서 나는 죽기 전에 단 한 순간만이라도 보통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으로 살아봤으면 하는 소망을 지니게 되었어. 그리고 그러려면 이 지긋지긋한 곳에서 탈출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이를 실행에 옮기기로 결심했어.
그러기 위해선 먼저 내 몸 안에 이식되어 있는 위치추적기며, 일정거리를 벗어나면 자동감지기능이 작동되어 자동으로 내 몸이 폭발하게끔 되어있는 폭탄부터 제거해야겠지.
그 다음으론 엄청난 고통이 따를지라도 내가 그동안 이뤄놓은 수많은 자료들과 연구데이터를 삭제하기 위해 내 두뇌를 포멧해 버릴거야.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수단방법도 가리지 않는 그쪽 사람들에게 복수할 수 있는 방법이란 그것밖엔 더 있겠어?
사실 이런 일들쯤이야 내게 있어선 누워서 떡먹기지.
드디어 나는 내 결심을 실행에 옮기기로 했지.
야심한 시각, 대부분의 연구소 근무자들이 자리를 비운 그 시각에 나는 내 몸 안에 설치되어 있던 장치들과 연구소의 모든 경비시스템을 무용지물화시키고, 또 경비들이나 과학자들을 따돌림으로써 밖으로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어.
비로소 자유를 만끽하게 된 나는 가까운 도시를 향해 걸어갔지.
처음 보는 이상한 물건들도 눈에 많이 띄었고, 이상한 냄새들도 콧속으로 스며들었어. 그리고 이상한 소리들도 들려왔고…. 모두 처음 대하는 것들이라 마냥 신기했었지.
날이 점차 밝아오면서 거리를 걷는 내 눈에는 수많은 빌딩들과 그 빌딩숲 사이를 수많은 차량들과 사람들이 뒤섞여 바쁘게 오가는 모습들이 보였어.
나는 얼른 사람들 사이로 섞여들어 갔지. 이미 사람들 사는 모습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망설일 이유가 없었거든.
그런데 이상한 일들이 벌어졌어. 사람들이 나를 보고는 기겁을 하며 피해 갔어. 왜 나를 피해 가는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어. 내가 가까이 다가가려 할수록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뿔뿔이 흩어지는 거야.
“이봐요, 이봐요!”
나는 도망치는 사람들을 향해 딥따 고함을 질러댔어. 어처구니 없게도 그 많던 사람들이 갑자기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내 주위엔 아무도 얼씬거리지 않았어.
“아니, 내가 뭘 어쨌다고…?”
나는 눈에 띄는 한 건물 안으로 들어갔어. 넓은 로비가 텅텅 비어있었지.
“외계인인가 봐. 생긴 모습이 영화에서 나오는 외계인과 어쩜 그리도 똑같지?”
“저 두개골 좀 봐. 우리보다 두세 배는 족히 더 크겠다.”
“얼굴도 푸르스름한게 쪼글쪼글하기까지 하니 꽤 징그럽네.”
어딘가에 숨어서 지켜보고 있는 듯, 비록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으나 소곤대는 말소리는 내 귓속으로 또렷하게 들려왔어.
‘크크크…. 나더러 외계인이라네?’
나는 대수롭지 않다는 생각에 혼잣말로 중얼거리곤 로비 안을 천천히 둘러보았어. 그러다 나는 내 모습이 비쳐진 대형거울 앞에 서게 되었어.
“아…, 아!”
거울에 비쳐진 내 모습, 그건 인간이 아니라 분명 괴물의 모습이었어.
송이버섯 갓처럼 크게 부풀어있는 두개골도 의외였지만, 푸른 빛이 도는 주름진 피부는 도마뱀 거죽을 연상케 했어. 나는 너무 놀라서 한동안 내 얼굴을 쥐어뜯기까지 했어.
난 거울이란 물체도 처음 접했지만, 거울을 통해 내 얼굴도 처음 봤던 거야. 내 머리가 보통사람들보다 훨씬 크다는 것은 진작부터 알았지만, 내 얼굴이 보통사람들과 전혀 다르다는 것은 처음 알게 된 거야.
‘매일 샤워를 할 때마다 얼굴을 씻었으면서도, 나는 왜 내 얼굴이 인간들과 다르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을까?’
어느새 로비는 사람들로 들끓기 시작했어. 여러 명의 무장경찰들도 보였고, 인파를 뚫고 내게 천천히 다가오는 안성길 소장, 이봉두 박사, 장은숙 박사의 모습도 보였지.
“XQ-103, 사람들 틈새에 숨는다고 못 찾을 줄 알았나?”
“…….”
“봐라, 이 거울에 비쳐진 네 모습을….”
“…….”
“우리도 어쩔 수 없지만 너 또한 어쩔 수 없는 것이, 그게 바로 네 운명이란 것이다.”
“…….”
나는 그들의 손에 이끌려 내가 일해 왔던 곳으로 다시 끌려왔어.
“너를 당장 죽일 수도 있겠지만, 특별히 살려주기로 했다. 그러니 네가 삭제해버린 자료들과 데이터를 한 달 내로 모두 복원하도록 해라.”
“…….”
“그러니까 이곳만이 네가 유일하게 살 수 있는 곳이고, 또 이곳만이 너를 보호해 줄 수 있는 유일한 곳이라고….”
‘아빠!’
‘엄마!’
내겐 분명 존재하지도 않는 아빠와 엄마라지만, 이젠 내 머릿속에도 그들의 모습이 존재하게 되었어. 비록 그들이 다가오지 못하고, 단지 안타까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만 보고 있다지만….